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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영 경찰청장, 여의도 참극에 책임 없나(오마이뉴스, 2005.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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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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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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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

최근 시위현장에서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농민 2명이 잇따라 숨졌다. 그러자 경찰은 진압과정의 폭력행사를 인정하면서 서울경찰청 기동단장 직위해체 방침 등을 발표했다. 그러나 농민, 시민사회단체 등에서는 경찰청장 사퇴와 대통령 사과, 관련자 사법처리 등이 없으면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경찰청 인권수호위원회 위원이자 검·경 수사권조정위원회 위원을 지냈던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의 글을 싣는다. <편집자 주>


지난 11월 15일 여의도 집회에 참석한 두 명의 농민이 유명을 달리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수사기관의 결과가 정확히 나오지는 않았지만, 농민이 경찰의 강경 폭력진압에 의해 사망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상황은 단순하다. 집회에 참석한 600여명의 농민이 경찰에 의해 부상을 입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 사건으로 두 명의 농민이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가해자로 지목받는 경찰은 경찰청 차장 주재로 기자회견을 열어 폭력사태에 대해 사과했다.

경찰은 숨진 고 홍덕표씨의 경우, 경찰 가격에 의해 부상(사과 당시는 홍씨가 투병 중이었다)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책임을 인정하기도 했다. 이처럼 단순한 상황인데도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를 놓고 소모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농민 폭력' 있었지만... 경찰 대응은 합리적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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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대문 경찰청에서 열린 '마음놓고 학교가기 포스터 시상식'에 참석한 허준영 경찰청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경찰의 반발과 보수언론의 문제제기로 진행되는 이 논쟁에는 두 가지 쟁점이 있다. 우선 농민사망 사건은 유감이지만 '폭력시위'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경찰의 강경진압이 있었다는 것이다. 경찰의 과잉진압도 문제지만 시위대가 과거 구태를 벗지 못하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폭력적인 방법에 매달리는 게 더 큰 문제라는 주장이다.

최근 홍콩에서 벌어진 한국 시위대의 폭력시위 행태까지 덧붙여져 "이제 폭력시위는 중단돼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농민사망 사건에 유감의 뜻을 밝히면서 폭력시위 행태에 대해 지적한 뒤 보수언론들도 적극적으로 폭력시위의 문제점을 부각하고 있다.

물론 아무리 절박한 상황이라 해도 농민들이 사전에 물푸레나무를 준비해 경찰을 선제공격하고 경찰차량에 방화한 것은 부적절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물론 하루 세 끼 밥을 농민의 일방적인 희생에 기대 해결하고 있는 도시민 처지에서 농민의 처절한 분노를 가늠할 길은 없다.

하지만 아무리 처절한 분노가 있다고 해도 경찰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행태는 잘못된 것이다. 좀더 냉정하게 표현하면 범죄행위일 수밖에 없다.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피해자의 저항폭력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몇 가지 조건은 충족해야 한다.

농민들이 경찰을 선제공격한 것도 사실이고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한 차량에 불을 지른 것도 사실이다. 경찰도 이를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구체적인 불법행위를 제지하고 시위진압에 동원된 경찰인력을 보호할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불법행위를 제지하고 불법행위자를 검거하는 것은 경찰의 분명한 기본 책무다. 따라서 경찰이 그냥 맞거나 참고 있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전혀 없다.

진짜 중요한 문제는 그 다음에 있다. 경찰이 물리력을 사용해 불법행위를 제지하고 불법행위자를 검거하는 게 정당하려면 역시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그것은 경찰관직무집행법이 규정하고 있는 최소성과 합리성의 원칙이다. 두 명의 농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방패'와 '진압봉' 같은 경찰장구를 사용하는 경우를 경찰관직무집행법은 매우 까다롭게 제한하고 있다.

10조의2 (경찰장구의 사용<개정 1999.5.24>)①경찰관은 현행범인인 경우와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범인의 체포·도주의 방지, 자기 또는 타인의 생명·신체에 대한 방호, 공무집행에 대한 항거의 억제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그 사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필요한 한도 내에서 경찰장구를 사용할 수 있다. <개정 1991.3.8, 1999.5.24>

불법행위 제지한다며 시민 죽이는 일 용납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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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운동사랑방, 민변, 평화인권연대 등 35개 인권단체가 참여하는 '인권단체연석회의'는 지난 22일 오전 서울 동대문운동장 부근 서울기동단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동단 정문에 '경찰폭력 추방' '기동단 해체'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등의 글이 적힌 스티커를 붙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경찰관들이 농민들에게 일방적으로 구타를 당하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법률에 규정된 대로 경찰장구를 사용한 것은 적법한 일이다. 하지만 그 사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해 '필요한 한도'에서만 사용했어야 했다.

농민사망 사건의 핵심은 경찰의 대응이 과연 사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한 뒤 필요한 한도에서 행한 것이냐는 점이다.

일부 언론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농민의 폭력시위가 있었으니까 경찰이 폭력을 행사한 것'이라는 식의 접근은 본질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얘기다. 편의적이고 특정한 목적을 배경으로 한 접근일 뿐이다. 핵심은 당일 경찰의 대응이 합리적이었느냐, 필요한 최소한도 범위에서 행했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지난 11월 15일 경찰의 대응은 필요한 최소한도 범위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불법행위를 제지하고, 불법행위자를 검거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판단한 활동이었다면 경찰의 대응은 물대포를 기준으로 20m 안팎에서 진행됐어야 마땅하다. 그 정도 선에서 멈췄으면 '2명 사망, 600명 부상'이라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예전과 확실히 달랐다. 충돌지점부터 무려 200~300m를 밀고 내려왔다. 흥분한 고위급 지휘관들의 주문에 따라 잘 훈련된 경찰인력이 밀고 내려오며 진압봉과 방패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유혈이 낭자했다. 이게 사태의 핵심이다.

경찰관에게 위해를 가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며칠 후면 70세가 될 노인까지 목숨을 잃게 할 정도로 지나쳤다는 것이 바로 문제다. 시민의 불법행위를 제지한다는 이유로 시민을 죽이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너무도 당연한 이 원칙을 외면하고 본질을 호도하려는 일체의 의도에 대해 나는 분노한다.

여의도 참극의 위험신호, 이미 넉달 전 평택에서 울렸다

두 번째 쟁점은 사망한 농민에 대한 책임이 과연 누구에게 있느냐는 점이다.

고 전용철 농민 살인규탄 범대위는 '대통령 사과, 경찰청장 파면, 서울경찰청 기동단장 구속'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공식적으로는 "책임질 것이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밝히면서도 내부에는 전혀 다른 기류가 팽배해 있다. 경찰청장이 책임질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경찰관은 인터넷에 올린 글을 통해 농민 사망의 가장 큰 책임은 지난 20년간 한국 농업을 방치한 역대 집권당(민정당부터 열린우리당까지) 모두에게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당시 농민시위 진압을 관할한 서울경찰청장과 차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쌀 협상과 관련된 문제는 경찰과 아무런 관계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제기되는 책임추궁은 쌀협상에 관한 것이 아니다. 2명의 농민이 죽고 수백명이 부상당한 경찰의 폭력행위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당시 폭력진압의 책임을 경찰청장에게 묻는 것이 과연 적정하느냐는 데 있다.

나는 허준영 경찰청장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고 서로 의기투합해 남영동 대공분실을 폐쇄하는 등의 일을 진행한 적도 있다. 어쩌면 '수사권 조정'에서 유리한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허 청장이 인권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고 진지한 실천을 했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허 청장을 아는 것과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것은 별개다. 결론부터 말하자. 허준영 청장에게는 단순한 지휘 책임을 떠나 공직을 사퇴해야 할 만큼의 책임이 분명히 있다.

11월 15일의 농민집회가 있기 넉달 전 이미 경찰에게는 매우 중요한 신호가 전해진 바 있다. 7월 평택미군기지 반대를 위한 평화대행진 과정에서 폭력진압과 이를 독려했던 서울경찰청 기동단장 이종우 경무관의 언동이 바로 '위험신호'였다.

당시 그는 방송차량을 타고 다니면서 집회 전부터 "훈련된 동작으로 과감히 상체를 공격하여 논두렁에 쳐박아 버려라"고 지시했다. 시위가 시작된 다음에는 평화적으로 미군부대 주변을 따라 걷던 시위참가 시민들을 향한 폭력진압을 지시했다.

이 경무관은 "훈련된 동작으로 아주 작살을 내버려라" "작대기로 쳐! 방패로 쳐!" "몽둥이로 치고 소화기로 분사하고 잘한다" "어이 시위대, 돌아가 이제…, 여러분 팰 병력도 없어 이젠, 여러분은 무슨 여러분이냐"는 등의 막말을 했다. 그건 분명히 사람의 말이 아닌 '짐승의 말'이었다.

법무장관·검찰총장도 고문치사 책임지고 물러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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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대문 경찰청에서 열린 '마음놓고 학교가기 포스터 시상식'에 참석한 허준영 경찰청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하지만 허 청장은 이 '명백한 범죄행위'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내가 직접 들었던 조치란 겨우 불러서 '꾸짖었다'는 것뿐이었다. 이종우 단장에 대한 징계위원회는 열리지 않았고, 감찰조사도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경찰청 인권수호위원회의 출석 요구도 그는 번번이 무시해 버렸다. 그리고 농민집회가 열린 여의도에 다시 지휘용 방송차량을 타고 나타났다.

허 청장이 평택에서 벌어진 무차별적 폭력진압에 대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의 지휘를 받는 경기경찰청은 그뒤 기자회견을 열어 "오히려 폭력시위 때문에 경찰 97명이 다쳤다"며 "폭력 행위자를 가려내 엄정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다. 그뿐인가. 허 청장은 평택집회에서 부상당한 전경 15명이 입원한 경찰병원을 방문했다. 11월 21일에도 농민집회에서 부상당한 전경들을 위문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이틀 후인 23일 고 전용철씨는 싸늘한 주검이 됐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경찰에 대해 조금은 더 안다. 경찰활동을 감시하는 인권단체에서 일하고 있고,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경찰혁신위원회 위원을 거쳐 지금은 경찰청 인권수호위원회 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경찰의 추천으로 검·경 수사권조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적도 있다.

내가 아는 한 경찰은 경찰청장을 정점으로 하여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다. 평택이나 여의도 농민집회 같은 곳에서 일선 지휘관의 책임은 사실 보잘 것 없으며, 중요한 결정은 경찰청장 1인에게 집중되어 있다. 경찰조직에서 청장은 머리이고, 청장이 아닌 모든 경찰관은 손발에 불과하다. 이는 과언이 아니다.

만약 허 청장이 범죄행위한 경무관에게 책임을 물었다면

이종우 단장의 '위험신호'가 전해졌을 때 허 청장은 이 단장에게 어떤 책임도 묻지 않은 채 경찰병원을 방문하는 것으로 자신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

만약 그가 명백한 범죄행위를 한 이종우 경무관을 형사처벌하도록 지시했거나 적어도 징계를 했다면 어떠했을까. 최소한 허 청장이 자신의 부하인 이종우 경무관에게, 늘 강조했던 것처럼 '인권경찰'의 역할을 주문했다면 여의도의 참극이 벌어졌을까.

이래도 허 청장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과한 것일까. 사람이 죽었으니 최고 책임자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정말 허 청장이 여의도 집회의 '잔혹한 폭력'에 대해 책임이 없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두 명의 농민이 경찰폭력에 희생됐는데도 경찰은 조사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고작 경찰청 인권수호위원회 권고 중 일부를 수용해 서울경찰청 기동단장을 직위해제한 게 전부다. 2002년 10월 26일 서울지검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나자 8일 만에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과 크게 비교되는 상황이다.

나는 사실 지난 며칠 동안 허준영 경찰청장에게 스스로 사퇴할 것을 조언하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주변에서는 말렸다. 그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그저 서운해 하기만 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렇지만 나는 허준영 경찰청장의 사퇴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에게는 그렇게 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상처를 입을 대로 입은 뒤 밀려나지 말고 경찰조직이나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 사임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조언은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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