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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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재환/ 시흥시청 지역화폐팀  요즘 주변에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지역화폐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이다.  발단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최근 국회 대정부 질의응답에서 시작됐다. 추 부총리는 “전국 지역화폐를 중앙정부 예산으로 대대적으로 지원한 데 대해 학계 등 전문가의 많은 지적이 있었고, 원점에서 실효성을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각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해야 한다. 중앙정부 예산으로 광범위하게 지원하는 형태는 재고돼야한다”고 덧붙였다. 출처 : 시흥화폐 시루  정부의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지원 예산 축소는 올해부터 있었다. 정부는 2022년 국비 지원액을 2021년보다 5,000억 원 이상 적은 7,053억 원으로 편성했다. 그 결과 경기도의 경우 국비:도비:시비 지역화폐 인센티브 비율이 4:3:3 수준으로 편성되었다. 지난해는 8:1:1 수준이었다.  정부의 올해 급격한 지역화폐 지원 축소로 인해 각 지자체들은 매칭되는 지자체 부담 예산의 증가로 지속가능성의 한계에 부딪치게 되고, 인구수가 많아 발행량이 큰 광역시·대도시를 중심으로 지역화폐 인센티브 축소 및 중단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이 와중에 추 부총리의 발언이 나오자 곳곳에서 지역화폐가 내년부터는 발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마저 나오는 것이다.  사실 관계부터 톺아보자. 추 부총리의 재고 발언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효과성에 대한 학계 및 전문가들의 의문. 그 근거는 2020년 조세재정연구원의 보고서이다. 조세재정연구원은 ‘지역화폐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 보고서를 통해 “특정 지역 소비가 늘어나도 국가 전체적으로는 소비 증대 효과가 없다. 지역화폐는 소비자가 원래 쓰려고 한 현금을 대체하는 것에 불과하다. 지역화폐를 쓸 수 있는 업종에만 소비가 몰리게 하는 문제를 불러 온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지역화폐를 대신해 전통시장 상품권인 온누리상품권의 확대’를 대안으로 지목했다.  지역화폐 도입의 가장 큰 목적은 ‘역외소비방지’이다. 서울·수도권으로 지역소비의 부가 몰리는 것을 막고 지역 내 소비로 돌려보자는 것이다. 서울·수도권에 본점이 몰려있는 대형마트, 백화점, 온라인쇼핑몰, 대기업 직영점 및 프랜차이즈 등이 지역화폐 가맹점이 안 되는 이유이다.  다시 말해 지역화폐는 국가 전체적인 소비 증대가 목적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난맥상 중에 하나인 부의 서울·수도권 집중 현상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보자는 의도로 시작된 것이다.  지역에서만 쓰게 한 지역화폐는 다음단계로 지역 내 소외된 소비처에서 순환시키자는 목적이 덧붙여진다. 그래서 대기업상권에서는 못쓰고 주로 골목상권에서만 쓰도록 지자체마다 가맹점 기준을 정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동안 별다방에 가던 소비자의 발길을 동네카페로 돌리려는 것이다. 대기업상권과 골목상권의 상생과 공존을 위함이다.  덧붙여 보고서는 지역화폐를 쓸 수 있는 업종에만 소비를 몰리게 하는 문제라고 했지만 이는 지역화폐의 가맹점 기준을 감안하면 역설적으로 동네상권에서만 소비를 몰리게 하는 게 문제라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현실에서 지역화폐를 쓸 수 있는 업종(가게)들은 지역화폐를 쓰지 못하는 가게보다 대체로 열악하다.  조세재정연구소의 해당 보고서가 나온 이후 지역화폐에 부정적인 입장에서는 전가의 보도처럼 이 보고서의 내용이 인용된다. 하지만 이 보고서가 과연 지역화폐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현장의 현실을 제대로 살펴보고 나온 보고서인지 의문이다. 이 보고서가 나온 이후 지역화폐 관련 다수의 논문이 나왔고, 대부분 지역화폐가 지역경제 활성화 및 경제공동체 강화에 순기능을 하고 있다는 분석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보고서가 제시한 대안이 온누리상품권이라는 부분에서는 더욱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온누리상품권은 전국의 전통시장과 상점가에서만 쓸 수 있게 만든 상품권이다. 지역화폐의 목적과 용도와는 전혀 다른 상품권을 대체재로 내놓았다는 생각이다.  두 번째 근거는 재정문제이다. 어떤 시각에서는 정치적 변화가 지역화폐 정부지원 축소의 배경이라고 말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정부의 지역화폐 지원 축소는 이미 4년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다. 2019년부터 정부는 기재부의 예비비로 4년 동안 한시적인 지원 예산을 마련했다. 그 기간이 올해 종료된 것이다. 그러니 2023년부터 새로운 틀에서 지원 방향을 모색해야 했고, 바뀐 정권의 긴축재정 정책에 따라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인 것이다. 정부 지원 축소는 이미 예고된 미래였다.  앞서 말한 대로 정부는 올해 지역화폐 지원 국비 투입액을 7,053억원으로 편성했다. 내년도 정부 총 예산은 640조원으로 편성될 것으로 보인다. 만일 올해 지역화폐 국비 투입액만큼을 전액 삭감한다 해도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지역화폐에 대한 국민의 만족도와 정책 효율성을 감안한 정책 방향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튼 정부 지원이 축소되거나 중단된다 하더라도 지역화폐 정책이 일제히 일몰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역사랑상품권은 지자체가 발행 권한을 가지기 때문에 존폐는 지자체의 선택 여부에 달려있다. 지자체의 의지에 따라 지역화폐가 유지되거나, 더욱 발전하거나 반대로 복지비(정책수당)의 전달 수단에 머물거나, 아예 정책을 중단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확실한 사실은 지난 3년간 코로나19 민생위기 극복 차원에서 유지됐던 10% 할인/적립 인센티브를 지속하기 힘들다는 점이다.(지자체가 의지와 예산을 부담할 수 있는 여력이 된다면 예외이지만)  이 와중에 살아남을 지역화폐는 지역화폐의 도입 취지에 충실한 지자체의 지역화폐가 될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지역 소비의 역외유출을 막고, 역내로 유입된 소비가 고르게 배분되어 대기업 상권과 골목상권 자영업이 균형 있는 발전을 이루기 위함이 지역화폐의 목적이다.
2022-08-17 | hrights | 조회: 333 | 추천: 1
염운옥/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올해 7월의 어느 날, 드디어 파리 ‘인간박물관(Musée de l'Homme)’에 다녀왔다. 지구 온난화로 매년 더워지고 있는 유럽 날씨. 에어컨 없이도 쾌적한 유럽의 여름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그날 파리는 섭씨 40도에 가까운 기록적인 폭염이었다. 메트로 트로카데로 역에 내리면 인간박물관이 있는 팔레드샤요(Palais de Chaillot)와 에펠탑이 바로 보인다. 팔레드샤요는 1937년 파리박람회장으로 세운 건물로 인간박물관은 양 날개처럼 펼쳐진 반원형 건물의 오른편에 위치해 있다. 바깥 날씨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유물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박물관이건만 그날은 어찌나 더운지 냉방을 하는데도 실내가 더웠다. 인간박물관 전시실을 옮겨 다닐 때면 통창 너머로 에펠탑의 멋진 전경이 각도를 달리해 시야에 자꾸 들어왔다. 한여름 한낮 데워진 지면에서 열기가 피어올라 에펠탑이 아래로부터 녹아내리는 것 같은 착시마저 들었다. 출처 - 저자 촬영 (인간박물관<Musée de l'Homme>)  인간박물관은 가장 가보고 싶었던 인류학 박물관이었다. 인간박물관은 영광과 오욕을 동시에 지닌 박물관이다. 초대 관장 인류학자 폴 리베(Paul Rivet)는 반파시즘과 반인종주의의 정신에 충실했고, 이본 오동(Yvonne Oddon)을 비롯한 박물관 소속 학자들은 프랑스를 점령한 나치에 저항하는 최초의 레지스탕스 조직을 결성했다. 리베와 오동에게 바치는 레지스탕스의 영광된 기억은 이 박물관의 ‘폴 리베 아트리움’과 ‘이본 오동 도서관’이라는 이름에 새겨져 있다. 한편, 인간박물관은 사르키 바트만(Saartjie Baartman)의 유해가 있던 곳이다. 해부되고 분해된 바트만의 몸이 유리병에 담기고 박제 표본이 되어 1970년대까지 전시되었던 곳이 바로 인간박물관이다. 바트만의 유해는 2002년 고향 남아프리카로 귀환했지만, 인간박물관이 식민박물관으로서 식민지 타자의 유해, 유골, 유물을 소장하고 있었고, 지금도 일부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인간박물관의 기원은 1882년에 문을 연 트로카데로인류학박물관(Musee d’Ethnographie du Trocadero)에 있다. 트로카데로인류학박물관은 식민지에서 가져온 유물과 아르 네그르(Art nègre)라 불리는 아프리카 미술을 모아둔 식민박물관이자 인류학 박물관이었다. 1937년 인간박물관이란 이름을 걸고 개관할 때는 인종주의 극복과 보편적 인류애를 내세웠다. 그러나 식민박물관의 유산을 탈피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더구나 2006년에는 소장 인류학 유물의 대부분을 새로 개관한 자크 시락-케브랑리미술관(Musée du quai Branly-Jacques Chirac)에 넘겨주게 되면서 인간박물관은 새로이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박물관은 6년 동안 문을 닫고, 상설전시 개편을 단행해 2015년 10월 재개관하는 길을 택했다. 현재 보고 있는 전시는 대규모 리뉴얼의 산물이다.  리뉴얼 기간과 코로나19 폐관 동안 기다리며 기대도 부풀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개편 이후 벌써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만큼 상설전시가 낡은 것이 되었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도 생겼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대와 우려는 절반씩만 맞았다. 먼저 인간박물관은 전혀 낡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 박물관은 실체가 모호한 ‘인류’라는 허구의 개념에 매달리는 대신, 피와 살을 지닌 구체적인 ‘인간’에서 출발한다. 그 때문에 이 박물관의 우리말 번역어도 ‘인류박물관’이 아니라 ‘인간박물관’이 되어야 옳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 전시실은 각기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하며, 인간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조망한다. 혹자는 이 박물관이 지나치게 생물학에 치우쳐 있다고 평하기도 하지만, 나는 오히려 형질인류학과 문화인류학을 통합적으로 적용해 생물로서의 인간과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모순되지 않게 설명하고 전시한 것이 장점으로 보였다.  인간의 미래 전시실 마지막 케이스에는 안경, 얼굴 부상 성형, 임플란트, 미용 성형, 인공보철 팔과 다리 등 다양한 인공보철이 걸려 있었다. 인공보철이라고 하면 SF에 나오는 수퍼 히어로나 사이보그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시가 보여주듯이 손상으로 해를 입은 육체를 보완하는 보철은 인간 역사 이래 계속 존재해 왔다. 보철은 질병과 장애에 인간이 대처해온 긴 역사와 함께 공존해왔다. 보철은 미래를 말하는 동시에 미래를 장밋빛 판타지로 상상하는 오류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는 생각거리다. 인간 육체의 한계를 한방에 극복할 ‘마법의 알약’ 같은 건 존재할 리 없고, 우리는 아프고 다치고 부러진 데를 어루만지고 꿰매고 덧대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미래를 보철로써 말하는 전시는 인간 존재의 한계와 존엄을 동시에 일깨우는 울림을 전했다. 출처 - 저자 촬영 (인공적 세계의 확장-보철/부분확대)  인간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인류학 박물관으로서 인간박물관의 또 다른 미덕은 고인류학에서 널리 인정되고 있는 인류 아프리카 기원설을 구체적 유물로 전시하고,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답으로 아프리카를 인류의 요람으로 정확히 자리매김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인종적 다양성에 관한 전시는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피부색과 안면 골격이 다양한 인간의 흉상을 1층과 2층을 연결해 수직적으로 배치해 놓은 전시는 언뜻 보았을 때 피부색 차이를 정면으로 드러내며 인간 다양성을 찬미하는 전시로 보였다. 하지만 설명문을 읽어보고는 긍정적 평가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럽인 흉상은 이름 없이 ‘전형’으로 전시된 반면 눈을 감고 있는 비유럽인 흉상에는 구체적인 이름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유럽인 흉상은 인간전시를 위해 프랑스에 왔던 아메리카 인디언, 애보리진, 태즈메이니아인, 그린란드인, 무어인, 아랍인, 수단인의 실제 얼굴을 본떠 제작됐기 때문이다. 전시 설명문에 비유럽인 흉상의 주인공 이름을 밝히고, 그들이 프랑스에 오게 된 연유를 적고, 그들을 부당하게 ‘열등한’ 인종으로 낙인찍는데 동원된 도구인 두개계측기(cephalic index)를 나란히 놓고 과거 골상학과 인종주의를 반성한다고 해서 이 전시를 타당하고 올바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 평자가 혹평하듯이, 과거 ‘호기심의 방’에 놓였을 유물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재활용한 것에 불과한 것 1) 은 아닐까? 인간 다양성을 전시하는 대안적 방식은 무엇일까? 출처 - 저자 촬영 (인간유형흉상전시와 두 개계측기)  젠더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박물관 전시의 문제점은 더 눈에 들어온다. ‘여성은 육체, 남성은 정신’이라는 낡은 이분법을 무심코 드러내고 있는 곳이 여럿 보였다. 첫 전시실 ‘우리는 누구인가’의 시작점에는 젊은 여성과 노인 남성의 두상이 있고, 그 옆의 버튼을 누르면 오디오 설명이 나오는 장치가 있었다. 인간의 육체적 형질과 특성에 대한 설명은 여성이 하는 반면, 생각하는 인간의 이성에 대해서는 남성 노인이 “자, 내 주름을 만져보렴”이라면서 설명을 시작한다. 21세기 전시로서 너무 낡은 사고방식이라 지적하면 속 좁은 반응인가? 또한 인간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전시하면서 출생과 양육에서 여성의 역할을 전통적 생물학적 성별분업에 고정해 제시한 것, 미래의 사이보그 인간을 굳이 임신한 여성으로 재현한 것도 상식에 기댄 게으른 설정이었다. 이외에도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인간의 현재와 미래의 당면한 현실이자 지향으로 제시하면서도 글로벌라이제이션이 결코 평등하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거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교류 증대를 식민주의의 극복과 안이하게 연결 짓는 점도 취약한 부분이었다. 출처 - 저자 촬영 (인공적 세계의 확장: 오디오 전시 임신한 여성)  반인종주의와 탈식민주의를 완벽하게 구현한 박물관과는 거리가 있지만, 인간박물관은 적어도 내가 본 인류학 박물관 가운데는 앞줄에 놓일만한 박물관이다. 프랑스의 박물관들은 대체로 프랑스어에 능숙하지 않은 관람자에게 불친절하다. 영어 가이드가 소략하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인간박물관은 영어와 스페인어 오디오 가이드를 잘 갖춰놓았고, 설명 내용도 깊이 있고 훌륭하다. 관람 시에는 오디오 가이드 앱 다운로드를 추천한다. 1) Herman Lebovics and Gilles Boëtsch, “Biology and Culture at the reinvented Musée de l'Homme,” French Cultural Studies, Vol. 29(2), 2018, p. 105.
2022-08-11 | hrights | 조회: 1011 | 추천: 11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철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들뢰즈(Gille Deleuze, 1925∼1995)를 알 것이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대통령 윤석열 씨가 혹시 들뢰즈라는 현대 철학자가 있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다고 한다거나, 심지어 한 걸음 더 나아가 ‘리좀’이란 말을 한 철학자 아니요? 하는 말을 한다거나 하면, 나로서는 깜짝 놀란 나머지 그의 취임 80일에 28%라는 국민의 지지율이 혹시 조작된 것 아닐까, 하고서 의심하는 잘못을 범할지도 모른다. 설사 언감생심일지언정, 마음 한쪽에서는 우리의 대통령인 그가 이처럼 나를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인문 · 철학을 가까이하는 정치가였으면 하는 간절함이 있다.  들뢰즈가 그의 학문적 절친인 가타리(Pierre-Félix Guattari, 1930〜1992)와 함께 쓴 <천 개의 고원>이란 책이 있다. 철학 영역에서는 워낙 유명한 책이다. 이 책 맨 앞에 약 30쪽 분량의 '서설: 리좀'이란 글이 실려 있다. 두 달 전쯤에 나는 <철학아카데미>에서 이 글에 관해 2시간씩 네 번에 걸쳐 강해를 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윤재은  ‘리좀’(rhizome)은 감자와 같은 ‘땅속줄기’인데 본래 생물학에서 식물을 분류하는 개념이다. 나무는 ‘주축 뿌리’ 식물이라고 하는데, 이와 달리 지구를 뒤덮고 있는 풀은 대체로 리좀의 구조를 갖고 생장하고 확산한다. 예를 들어, 잔디는 땅 밑에 뿌리들이 중심이 없이 엄청 복잡하게 얽혀 사방으로 넓게 퍼져 있어서 한 부분을 떼 내려면 가위를 써서 잘라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뿌리가 동등하게 수평으로 한껏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식물이 리좀 식물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그들의 탁월한 창의적인 사유 능력을 발휘해 이 ‘리좀’이란 생물학적인 개념을 철학적인 개념으로 둔갑시켜 활용한다. 그럼으로써, 개인의 사유와 표현과 실천의 방식, 일상에 밴 욕망과 습관의 방식, 나와 나 아닌 것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관계 맺기의 방식, 권력에 관련한 사회나 국가의 구성 형태, 사회 혁명을 위한 저항의 형태 등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이들은 사유방식과 이에 따른 실천의 방식을 크게 나무의 구조를 반영한 수목형(樹木型)과 풀의 리좀 구조를 반영한 리좀형으로 나눈다. 2.  나무는 땅 위의 중심 둥치와 흙 밑의 주된 중심 뿌리가 있다. 그리고 나무의 가지는 대체로 중심 둥치가 위로 두 개로 나뉘고 그 두 개의 가지가 또 각각 두 개로 나뉘면서 위로 자란다. 이러한 나무의 구조를 반영한 사유방식을 ‘이항 논리’ 또는 ‘이분법’에 따른 것이라 말한다. 세상과 온 우주에는 인간들과 동식물을 비롯한 온갖 것들이 무한할 정도로 많다. 수목형 사유는 이 모든 존재자가 하나의 근원에서 생겨나 갈래져 변화 · 운동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지닌다. 그리고 그 근원인 하나에서 둘이 갈래져 나오고, 그 둘 각각에서 또 둘이 갈래져 나온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이 이원법적인 수목형의 사유는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들어 이해하기 쉽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정신과 물질, 리(理)와 기(氣), 무한과 유한, 존재와 무, 참과 거짓, 추상과 구체, 본질과 현상, 주체와 대상, 이성과 본능, 사유와 행동, 이론과 실천, 실재와 가상, 선과 악, 천사와 악마, 주인과 노예 등, 서로 대립하면서 쌍을 이루는 두 항이 있고, 이 두 항이 서로에 의존해서 작용하면서 만물의 변화를 일으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거꾸로 만물의 변화와 운동을 이러한 각종 두 항의 모순과 대립을 원리로 삼고 이 원리에 환원함으로써 설명하고자 한다. 이분법의 원리는 아주 편리한, 인류가 고안해 낸 너무나 오래된 사유의 장치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유는 우리가 자연을 필연적인 환경으로 삼아 그 속에서 사는 데서 출발한다. 환경을 잘 알아 잘 이용 또는 역이용해야만 생명을 잘 가꾸고 유지할 수 있고 더 많이 퍼뜨릴 수 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하늘과 땅이 있고, 해와 달이 있고, 낮과 밤이 있고, 밀물과 썰물이 있고, 암컷과 수컷이 있다. 그리고 가만히 보니,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이 있고 수시로 변하는 것이 있다. 늘 죽은 것이 있고, 산 것이 있다. 움직이는 생물이 있고, 움직이지 않는 생물이 있다. 강한 것이 있고, 약한 것이 있다. 뜨거운 것이 있고, 찬 것이 있다. 주변 환경을 둘러보니, 이같이 두 가지로 뚜렷이 나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니 만약 그 두 가지 각각의 항이 지닌 고유한 성질과 성격 등을 제대로 알아 구분할 줄 모른다면 목숨을 유지할 수도 없고 자손을 퍼뜨릴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분법적인 원리를 고안해서 생각하게 되고, 그에 따라 자연환경에 대해 예측하고 방비책을 미리 마련해서 우환과 불행을 막아내고자 했던 셈이다.  그런데 인류의 사유 능력이 점점 발달한다. 생각해서 보고 듣고 만지고 하니까 생각하지 않고 그럴 때보다 더 정확하게 보고 듣고 만지게 되고 그 경험적인 지각의 효력을 더 많이 더 잘 활용할 수 있음을 발견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그리하여 이른바 ‘호모 사피엔스’가 생겨났다. 사유 능력이 발달할수록 아는 것이 더 많아지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모르는 것도 더 많아졌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모르는 것을 모른 채 그냥 놔둘 수 없는 호기심과 이를 어떻게든 설명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상상력이 발달했다. 그리하여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 신화다. 그리고 신화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환경의 변화와 인간의 모듬살이에서 생겨날 수 있는 나쁜 일을 몰아내고 좋은 일을 끌어들이려는 행위가 주술이다. 신화는 모든 일이 신들 말하자면 귀신들의 힘과 의지에 따라 생겨난다고 믿는다. 그래서 주술의 기본은 신들을 기분 좋게 해서 그들의 분노를 잠재워 일어난 불행은 되돌리고 일어날 불행은 막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주술을 집행하는 자는 신들과 교섭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하고, 신들의 말을 인간들에게 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샤먼이 생겨나고, 사제 계급이 생겨나고, 주술이 체계화된다. 이에 따라 주민들이 절대로 벌받을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 행동 규범이 만들어진다. 제례와 행동에 관한 교리를 갖춤으로써 체계적인 종교가 생겨나 자리를 잡게 된다.  각 부족은 각기 그들 나름의 신들을 창안해서 믿고 후대에 전한다. 역사가 흐르면서 그 신들을 무조건 믿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대적인 종교적인 관념과 그에 따른 관습과 도덕이 생겨나 굳건해진다. 신들과 종교의 힘을 장악한 특정한 인간 또는 사제들이 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지도하고 감시하고 통제하면서 부족을 이끄는 통치자로 군림하게 된다. 그런데 다른 부족들을 만나보니 자기 부족과는 다른 신들을 믿고 있다. 부족들 간의 투쟁과 전투는 곧 서로 다른 신들 간의 전투로 여겨진다. 이리하여 패배한 부족의 신은 가짜 신이 되고, 승리한 부족의 신은 진짜 신이 된다. 이 과정이 오래 진행되면서 생산력이 발전하여 부족국가 내지는 도시국가를 형성하게 되니 그에 따른 수호신이 등장하게 된다. 사회가 점점 더 발전하면서 더 많은 전쟁과 전투를 통해 더 큰 나라, 이른바 제국을 형성하게 된다. 제국의 수호신은 단 하나의 신이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하위의 신들은 모두 가짜 신 즉 우상 신으로 인식되어 제거된다. 그리하여 유일신 사상이 만들어진다. 이제 만물은 유일신에 의해 창조되었고, 그 유일신이 힘을 발휘하여 자연의 일뿐만 아니라 인간 세상사의 모든 일을 일으켜 생겨나게 하고 억눌러 사라지게 한다고 믿게 된다. 그리하여 유일신에 의한 창조 사상과 섭리의 사상이 생겨난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수십억의 사람들이 유일신을 믿고 있다.  유일신은 단 하나의 영원한 절대자로서 우뚝 올라서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유일신이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존재로서 그 본질과 활동을 제한하는 일체의 경계가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유일신은 무한자로 등극한다. 이를 바탕으로 유일신은 영원한 자, 무한자, 절대자, 전지전능한 자로 정확하게 자리매김한다.  이러한 종교에서의 유일신이 철학으로 넘어와 ‘일자’(一者, the One)로 개념화된다. 그리고 일자가 만물 · 만사의 궁극적인 근원으로 여겨지고, 이 일자가 다시 종교와 결합하여 일자인 신은 만물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자, 그 명령을 어기는 사람 또는 집단에게는 벌을 가하고 지켜 실현하는 사람 또는 집단에게는 복을 내리는 자로 정확하게 자리를 잡는다. 일자인 신의 힘은 천사와 악마라는 두 대립적인 존재의 힘으로 분화된다. 천사는 천사대로, 악마는 악마대로 계속 분화되어 전체적으로 보이지 않는 신을 정점으로 한 거대한 피라미드 형태의 위계 조직을 형성한다.  사람들은 장구한 역사의 과정을 거쳐 이러한 일자를 정점으로 한 위계 조직에 따라 자신들의 욕망과 사유, 습관과 신념을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형성하여 대를 이어 계승한다. 이에 지상에서 이렇게 위계적으로 습관화된 욕망을 지닌 사람들을 지배하고 통치하려 하는 자는 당연히 일자를 정점으로 한 위계 조직을 구성하여 강화하고, 이를 철저하게 활용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이 위계 조직 전체가 유기적으로 한 치 빈틈도 있어서는 안 되는 하나의 통일된 몸으로 이데올로기화된다. 개개인의 위계 조직에 따른 욕망을 역용하여 지배하는 데는 위계 조직으로 된 통치가 가장 효과적이고 유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위계적인 집단 조직의 형태는 사회 곳곳에 아형(亞型)들을 만들어낸다. 이 아형들은 왕과 황제 그리고 교황 등은 물론이고, 가부장적인 가족에서의 아버지, 회사에서의 사장 또는 회장, 민주적인 정부 조직에서의 대통령, 심지어 혁명에서의 최고 지도자 등의 우두머리를 정점에 내세운다. 그 우두머리들의 권력은 우두머리 쪽으로 올라가 가까울수록 소수의 사람에게 강하게, 아래로 내려가 멀수록 다수의 사람에게 약하게 분화되면서 퍼진다. 그리하여 권력의 강약에 따른 상명하복의 질서가 형성된다. 상명하복의 질서에 따른 집단 조직은 그렇지 못한 집단 조직보다 더욱 결집한 위력으로써 높은 사회적 생산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검증 과정을 거쳐 가장 효율적이라 여겨진 탓에 전체적으로 거대한 위계 조직의 체계 즉 거대한 관료제가 형성된다. 상명하복이 행동 지침으로 통용되고, 삼각형 사다리 형태로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가 중간을 거쳐 아래에까지 관철된다.  이를 극단적으로 구현한 것이 파시즘적인 독재 통치의 구조다. 인민들에 대해 이른바 ‘내 안의 파시즘’을 운운하는 것은 인민들이 일자 정점의 이 위계 조직을 대대로 받아들여 무의식적인 욕망의 구조로 삼음으로써 그러한 지배 · 피지배의 사다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사회정치 철학자인 미셀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사회정치적인 권력 관계가 사람들의 몸 깊숙이 파고들어 내면화하는 것을 보고서 ‘미시권력의 그물망’이라는 개념과 ‘생체 권력’이란 개념을 만들고 이를 통해 일자 정점의 위계적인 권력의 구조를 지탱하는 이러한 내 안의 파시즘적인 욕망을 고발했다.  자본주의 사회 경제 체제는 일자 정점의 위계에 따른 내 안의 무의식적인 파시즘적 욕망의 구조적인 형태가 사회 전체적으로 확산하는 데 적극적으로 작동한다. 이제 일자 정점의 자리에는 자본이 차지한다. 자본은 외부가 없는 무한한 신과 동형이다. 자본은 노동자건 자본가건, 물질이건 정신이건, 자연이건 문화건, 시장이건 국가건, 법이건 도덕이건, 집단이건 개인이건 상관없이 그 모든 다양하고 특정한 이질성을 저 자신의 맹목적인 양적 동질성으로 바꾸어내는 위력을 발휘한다. 이 세상에 돈 좋아하지 않는 놈이 누가 있어! 돈도 안 되는 쓸데없는 생각을 왜 해!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잖아! 그리하여 돈은 신적인 자본이 인간에게 내리는 절대적인 명령인 계시처럼 작동한다.  3.  들뢰즈와 가타리가 제시하는 리좀형 사유 및 실천 그리고 그에 따른 욕망은 이제까지 설명한 수목형 사유 및 실천 그리고 그에 따른 무의식적 욕망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그 전략의 핵심은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정점의 ‘일자’인 그 ‘머리’를 단칼에 베어 버리는 것이다. 그 정점의 일자가 무엇이건 상관없이 그 아래의 위계적인 몸으로부터 절단함으로써 몸의 위계적인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누구나 잘 아는 철학자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의 능력을 배, 가슴, 머리라는 인체의 구조에 빗댄다. 배는 무질서한 욕망에 해당하고, 가슴은 행동을 이끄는 의지에 해당하고, 머리는 삶을 최고의 선으로 이끄는 이성적인 지혜에 해당한다. 당연히 머리가 온몸에 명령을 내린다고 생각하고 머리를 배와 가슴에서 솟구쳐 오르는 욕망과 의지를 제압하여 지혜에 따라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내세우는 철인(哲人) 정치는 지혜롭기 이를 데 없는 철학자를 우두머리로 삼아 귀족들과 인민들을 다스리도록 하는 체제다. 이는 가톨릭교회에서 교황과 사제들 그리고 일반 신도들이 교회라고 하는 큰 몸을 이루는 구조와 닮았고, 또 북한에서 내세웠던 주체사상에서 수령을 정점으로 한 당과 인민들의 조화를 내세운 것과 닮았다. 그리고 우리 가까이에서는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한 검사 동일체 원칙과 닮았다.  정점의 우두머리는 결코 둘일 수 없다. ‘하나’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 ‘하나’에 대해 엄청난 실천철학적인 적개심을 지닌다. 이에 대해 그들은 이론의 구성을 위해 다소 어려운 수학적인 용어를 활용해 ‘n-1’의 사유와 실천 및 욕망의 발휘 방식을 주장한다. 여기에서 n은 존재하는 일체의 것들을 추상화해서 일반적으로 지칭한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1은 n에 해당하는 일체의 것들을 한 손에 거머쥔 정점의 일자로 보면 된다.  그런데 이 일체의 것들은 무질서하게 아무렇게나 카오스 상태를 이루지 않는다. 그 나름으로 일정하게 배치 상태를 이룬다. 그 구성적인 형태와 상관없이, 가족이건 사회건 국가건 근본적으로는 원리상 이러한 성격을 지닌 하나의 배치 장치다.  그런데 이러한 배치 관계에서 만약 정점의 일자(우두머리) 즉 1을 인정해 꼭대기에 놓게 되면, 그 바깥으로 아무것도 빠져나갈 수 없는 일사불란한 상명하복의 닫힌 위계의 배치가 이루어진다. 사회와 국가를 구성하는 인민 또는 국민의 경우, 각자는 정해진 자리를 지켜야 하고, 그 자리에서 알게 모르게 위에서부터 자신에게 주어지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이에 각자는 자신의 삶을 다르게 살 수 있는 권리,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다양하게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기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지배적이면서 피-지배적인 상대적인 위치에 갇혀 명시적이거나 암시적으로 아래를 향해서는 일방적으로 억압하면서 위를 향해서는 일방적으로 굴종하는 일에 길든다.  인민 모두가 타고난 권리에 따라 각자 나름으로 다양한 형태의 삶을 자유롭게 살 수 있으려면, 이같이 정점의 일자를 중심으로 한 수목형의 수직적 위계 조직을 해체 · 파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들뢰즈와 가타리의 생각이다. 이를 위해, n-1 즉 n에서 1을 빼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n-1의 원리를 투쟁의 전략이자 대안으로 삼는 것이 리좀형 사유와 실천의 방식이고, 그에 따른 사회 구성의 방식이다.  리좀은 중심이 없다. 리좀은 통일성 대신에 다양성을 띤다. 리좀은 시작점과 끝점이 없다. 시작점에서 끝점은 한없이 멀 뿐만 아니라, 그래서 철저히 배타적인 이원성을 띠게 된다. 리좀은 항상 중간과 사이에서 힘을 발휘하여 확산한다. 중간과 사이는 시작점과 끝점이라는 대립적인 두 끝을 섞은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그 두 끝을 인정하지 않는 데에서 성립한다. 중간은 정점의 일자에서 비롯되는 보편성이 아니라,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 것들을 두루 인정한다는 데서 성립하는 보편성을 지닌다. 리좀은 정확한 질서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전혀 질서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리좀은 ‘카오스모스’(chaosmos), 즉 코스모스 쪽에서 보면 카오스이면서 카오스 쪽에서 보면 코스모스인 상태를 이룬다.  리좀을 이루는 구성 요소는 무한정한 방식으로 다른 구성 요소들과 연결되지만, 그 연결은 고정되지 않은 접속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기존의 접속을 버리고 새로운 접속을 이룰 수 있다. 연결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리좀은 창조적인 생산의 장(場)이 된다. 리좀은 수직선을 형성하지 않고 수평면을 형성한다. 사회 구조에서 보면, 리좀은 파시즘적인 기미를 보이는 그 어떤 형태의 관료적인 위계 조직이라 할지라도 아예 허용치 않는다. 리좀은 워낙 탈중심적이다. 그리하여 인민들 각자가 서로를 매개로 해서 자발성을 발휘하고, 또 자발성을 발휘함으로써 서로에게 매개로 작동한다. 각자는 나 홀로 우뚝 솟아 만물을 지배하는 중심을 지향하는 주체성이 아니라, 다른 주체들을 더 많이 매개로 삼으면 삼을수록 소멸할 정도로 더욱 확산해 나가는, 말하자면 인민적인 주체성을 확보한다. 그리하여 인민들은 더 많은 매개를 통함으로써 성립하는 생명의 강렬함과 높은 밀도를 누리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4.  세상이 순식간에 잔인해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여 지속하는 것을 신호탄으로 해서 세계의 주요 지점에서 헤게모니 즉 누가 어느 나라가 정점으로서의 일자의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를 놓고 갈수록 적대적인 기세 싸움의 기미가 강화된다. 헤게모니 장악을 둘러싼 이항 대립의 중심 국가는 물론 미국과 중국이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한미일 대 북중러의 이항 대립의 전선이 강화되는 중이다.  지난 30여 년 인터넷의 급속한 발달은 인류의 욕망과 사유와 행위를 위계적인 수목형에서 수평적인 리좀형으로 규정했다. 그리하여 사회문화적인 영역을 비롯한 경제적인 영역이 다양성과 열림에 따른 자유롭고 창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향을 보였다. 그런 가운데, 군사 외교의 영역에서는 치열한 적대적인 대립이 지속했지만 으르렁대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 갑자기 입을 크게 벌려 날카로운 이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발톱을 일으켜 물어뜯기도 하고 덤벼들기도 한다. 노골적으로 핵전쟁 운운하기까지 하는 위기가 노현되고 있다. 정점의 일자를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적 파시즘이 부활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구촌의 시계가 20세기 초의 상황을 향해 거꾸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이 와중에 우리네의 정치가 하필이면 그야말로 일자 정점의 위계 조직적 동일체를 강조하는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이 들어서서 남북 간의 극적인 대립을 당연하게 여기고 부활하고 있는 제국주의적인 세계 냉전의 구도를 아무런 성찰 없이 수용하면서 뒤따르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우리 국민의 집단 지성이 리좀적 사유와 실천을 무기로 삼아 일방적인 폭력을 정당화하는 일자 정점의 수목형 수직적 위계의 도래를 미연에 방지하는 쪽으로 결집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아울러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의 우두머리들이 그러잖아도 기후 위기로 절체절명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는 지구촌을 향해 리좀적 사유와 실천의 긴급한 필요성을 절감하기 바란다.
2022-08-03 | hrights | 조회: 1438 | 추천: 5
윤요왕/ 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대선, 지선이 끝나고 정책의 큰 기조가 바뀌어 가고 있고 조직 개편에 대한 무수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마치 폭풍전야같은 느낌이다. 어쩌면 벌써 폭풍의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지 모르겠다. 그 중에서도 지역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청에 유독 눈길이 많이 간다. 기존 성향과 다른 교육감들이 당선된 지역에서는 아이들의 ‘학력’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간 진보교육감들이 전국을 감싸고 있어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청소년 인권, 혁신교육, 마을교육공동체, 협동과 문제 해결형 미래인재 등 과거 전통적인 학력-좋은 대학을 지상목표인 듯 점수 올리는 학력-에 대한 정책보다는 교육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키고 변화시키려는 움직임이 활발했던 것 같다. 그러나, 벌써부터 기존 정책을 비판하며 ‘학력’에 대한 공약과 정책들이 맨 앞순위에 있는 곳들이 있어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피라미드 위로 올라갈수록 패배자, 낙오자를 양산시키는 획일적인 학력 위주의 교육정책으로 회귀하는 듯 하여 많은 분들이 우려와 걱정에 한탄하고 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그동안 소위 진보교육감들의 교육기조를 보면,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 모두가 행복한 교육 등 학력이 전부가 아니라 민주시민교육을 기본으로 교육의 다양성, 교육의 본질을 중심에 두는 정책을 꾸준히 펼치는 노력이 엿보였다. 그렇다고 기초학력이 부진하다던가 문해력이 떨어지는 문제,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사교육 등 모든 교육정책이 성공적이었다고만은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좋은 대학 보내고 ‘00대학 합격’ 이런 플래카드를 걸기위해 ‘학력’을 최우선시하는 교육정책이 미래시대에 맞는 합당한 정책인가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1970년대까지 대학 진학률이 20%대였다고 하니 그 당시만 해도 대학에 진학할 수만 있다면 안정된 직장과 성공이 어쩌면 보장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그럴지는 의문이다. 이제는 ‘학력’이 아니라 ‘실력’ 또는 ‘삶의 힘을 키우는 능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대학입시의 변별력을 위해 어렵게 어렵게 출제해야하는 시험과 등수를 매기기 위한 상대평가의 내신 시스템은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초등 고학년에 벌써 수포자, 영포자(수학포기자, 영어포기자)를 양산하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기초학력, 문해력, 사회성, 관계성, 협동성, 소통, 주체성 등은 오랜시간 배우고 익히고 경험해야 하는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며 이는 학교와 가정, 사회에서 소위 이야기하는 ‘교육의 본질’일 것이다.  앞으로는 1인 1직장,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다고들 한다. 오래 사는 만큼 급변하는 시대에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학력보다 ‘실력’, ‘능력’의 시대를 살아갈 우리 미래세대의 아이들이 배우고 익혀야 할 내용이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또한, 등수 매기기에만 매몰되어 있는 학력만능주의의 시대가 다시 도래한다면 소외되고 버려지고 대접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더욱 양산될 것이다. 부모의 재력이 아이들의 학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이토록 만연되어 있는 현실이 너무나 서글프지 않은가 말이다. 또한 학력만능시대의 병폐는 지역소멸-중앙집중(서울 등 대도시)의 가속화를 불러오고 지방에 사는 사람은 루저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학력-대학-성공이라는 구시대적인 발상과 정책은 교육을 후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가슴아픈 소식 하나가 들려온다. 어느 지방 도시 한 아파트에서 고등학생이 중학생을 흉기로 가해하고 투신자살했다는 뉴스를 속보로 접했다. 한명한명 존중받고 각자의 꿈을 키우며 행복해야 할 청소년들의 쓰라린 사건사고들은 하루도 쉬는 날이 없는 듯 하다.  이제 우리 아이들을 살리자. ‘괜찮아’라는 이 사회의 목소리가 아이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공부 좀 못해도 괜찮아. 넌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어” 함께 손 잡아 줄 어른이 사회에 넘쳐났으면 좋겠다. 무언가를 잘 해야만 생기는 자신감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로 존귀한 ‘자존감’을 아이들이 잃지않게 해야만 한다. 무한히 펼쳐져 있는 미래의 가능성을 ‘학력’이라는 잣대와 기준으로 짓밟지 않았으면 좋겠다. 학령인구 감소의 시대 오히려 한명한명 맞춤형 교육시스템으로 각자의 능력과 실력을 키우는 교육정책을 간절히 바라본다. 사진 출처 - 필자  (덴마크의 폴케호이스콜레라는 시민교육을 춘천에 맞게 적용해보는 ‘춘천 시민학교’ 모집 신청서에 한 청소년이 쓴 글을 싣는다. 서글픈 글이지만 우리시대의 아픔을 모두가 함께 고민해보아야 할 교육의 대한 화두라 생각하며 옮겨적는다.)    “도망가고 싶어  더 이상 거짓말하기도 싫고 전부 그만두고 싶어  나를 더 힘들게 해줘  어쩌면 다시 태어날 수 있게    휴식이 필요해  내가 받았던 모든 상처들과  각자의 고충때문에 힘든  삶으로부터 말야”  -2021년 열아홉
2022-07-14 | hrights | 조회: 969 | 추천: 7
: 걸프 아랍지역에서 세파르디 유대인이 부상하는가? 홍미정/ 단국대학교 아시아 중동학부  ▢ 이스라엘 유대인 네트워크 특성  2020년 12월 이스라엘 세파르디 최고 랍비 이츠하크 요세프가 UAE를 방문하여 레비 두크만을 UAE 최고 랍비로 임명하였다. 이로써 이스라엘 세파르디 유대인들이 UAE를 교두보로 활용하여 유대인 네트워크를 걸프 아랍지역으로 확장하는데 선봉에 선 것처럼 보인다.  전체 이스라엘 유대인 7백 2만 명(2022년 5월 1일 이스라엘 통계청 발표) 중 60% 이상이 미즈라히/세파르디이고, 나머지가 아쉬케나지이다. 이와 같이 인구수로는 미즈라히/세파르디 유대인이 아쉬케나지 유대인을 능가한다.  미즈라히/세파르디는 역사적으로 수백 년 이상 북아프리카 및 중동에 기반을 둔 유대인들과 그 후손들이다. 이스라엘 아쉬케나지의 주류는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통치하던 1917년 12월-1948년 5월에 러시아제국 혹은 동유럽으로부터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50만 명 이상의 유대인들과 그 후손들이다. 유대기구 발표에 따르면, 작년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1만 9천 명 정도의 유대인들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로부터 이스라엘로 이주하였고, 대부분은 올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시기에 집중되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 하임 와이즈만부터 현재 대통령 이삭 헤르조그까지 11명의 대통령 가운데 9명이 러시아제국 내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폴란드 및 오스트리아 가계 출신으로 아쉬케나지 유대인이다. 나머지 2명, 즉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이츠하크 나본 대통령(재임:1978.05-1983.05)은 15세기 말 스페인에서 추방당하여 예루살렘에 정착한 가계 출신의 세파르디 유대인이고, 모세 카차브 대통령(재임:2000.08-2007.07)은 1951년 이란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한 미즈라히 유대인이다. 이렇게 이스라엘 정치에서 아쉬케나지 유대인들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게다가 이스라엘 정치에서 대통령보다 훨씬 더 강력한 실권을 행사하는 총리 초대 데이비드 벤구리온 총리(재임:1948-1953, 1955-1963)부터 현재 나프탈리 베네트 총리(재임: 2021-현재)까지 13명 모두 아쉬케나지 유대인들이다. 이 총리들은 러시아제국(1721–1917) 소속 인접 지역들, 폴란드(3명), 우크라이나(5명), 벨라루스(4명), 리투아니아(1명) 출생이거나 총리들의 부계가 이 지역 출신 이민자들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실은 총리 5명의 가계가 현재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이주하였다는 것이다. 총리 모세 샤레트(재임:1954-1955), 레비 에슈콜(재임:1963-1969), 골다 메이어(재임:1969-1974)는 러시아제국 내 키에프에서 출생했다. 또 이츠하크 라빈(재임:1974-1977, 1992-1995)의 아버지와 에후드 올메르트(재임:2006-2009)의 아버지는 러시아제국 내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였다. 현재까지 러시아제국 출신 아쉬케나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정치를 좌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제국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시된 1897년 러시아제국 인구조사(The Russian Imperial Census of 1897)에 따르면, 러시아제국 전체 인구(125,640,021명) 중 랍비 유대교인들이 5,215,805명(4.15%), 카라이트 유대교인들이 12,894명이었다.  세파르디 유대인 공동체는 가톨릭 스페인 왕국이 1492년 3월 유대인들에게 가톨릭으로 개종하거나 스페인 왕국을 떠나라는 유대인 추방령(알함브라 칙령)을 내렸을 때, 개종을 거부함으로써 스페인 왕국에서 추방당한 유대인들과 그 후손들로 구성되었다. 당시 가톨릭 스페인 왕국은 이베리아반도 무슬림 통치자들을 완전히 축출하였고, 무슬림 통치하에서 번영을 누리던 유대인들을 박해하는 과정에서 약 20만 명의 유대인들이 가톨릭으로 개종되었고, 나머지 4만-10만 명(자료에 따라 숫자가 다름)의 유대인들이 추방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페인 왕국에서 추방당한 세파르디 유대인들은 역사적으로 오스만제국 등 무슬림통치 지역에 정착하면서,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존재하던 미즈라히 유대인 공동체들 및 무슬림들과 어울려 살았다. 이 과정에서 미즈라히 유대인과 세파르디 유대인들의 전통과 풍습이 비슷해졌다. 아랍국가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아랍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며, 아랍문화에 익숙하게 되었다.  이를 근거로 이스라엘은 세파르디 의미를 확장하여 미즈라히 유대인들을 통합함으로써 공식적으로 세파르디 유대인으로 규정한다. 실제로 이스라엘 최고 랍비 법령에 따라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모든 미즈라히 랍비들은 세파르디 최고 랍비 지시를 받는다. 결국 이스라엘 종교 제도 내에서 아랍·중동 지역에 역사적으로 거주해 온 원주민 미즈라히 유대인들은 배제되고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현재 150명으로 구성된 랍비 선발위원회(도시 랍비들, 종교위원회 대표들 등)는 투표로 두 명의 이스라엘 최고 랍비들, 아쉬케나지 최고 랍비와 세파르디 최고 랍비를 10년 임기로 선출하며, 미즈라히 최고 랍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 이스라엘 세파르디 랍비들과 UAE 관계 강화  1971년 UAE가 창설된 이후 UAE에는 소규모 외국인 유대인 공동체가 존재했다. 최근 아브라함 협정으로 이스라엘과 UAE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이스라엘 유대인의 후원을 받는 유대인 공동체가 UAE 내에서 공식 조직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UAE 국적자 유대인의 존재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따라서 UAE의 유대인 공동체는 외국인 유대인들이 조직하여 운영하는 외국인 유대인들을 위한 조직이다.  2020년 12월 17일-20일 이스라엘 세파르디 최고 랍비 이츠하크 요세프가 두바이 소재 JCCU(Jewish Community Center of UAE)를 방문하였다. 이것은 현직 이스라엘 랍비가 아랍국가를 최초로 공식 방문한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JCCU는 “이번 이스라엘 세파르디 최고 랍비 이츠하크 요세프의 두바이 방문은 새로 승인받은 유대인 유치원을 개원하고, 미국 출신의 UAE 영주권자 랍비 레비 두크만을 UAE 유대인 공동체 최고 랍비로 임명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레비 두크만은 JCCU를 이끄는 랍비이기도 하다.  영국 및 UAE 국적을 보유한 사업가이며 JCCU 센터장인 솔리 울프는 “세파르디 최고 랍비 이츠하크 요세프의 방문은 이스라엘과 UAE 간의 관광과 협력의 시작에 불과하다. 이번 방문으로 이 지역 유대인들과 무슬림들 사이에서 신뢰와 따뜻한 우정이 더욱 공고해지기를 희망한다.”라고 밝혔다.  이것은 걸프 아랍지역 유대공동체 확장의 전초기지 UAE에서 이스라엘 세파르디 유대인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아랍지역에서 활동하기에는 미즈라히 유대인들과 통합세력으로 존재하는 세파르디 유대인들이 언어나 문화적으로 아쉬케나지 유대인들보다 훨씬 더 유리한 상황이다.  2021년 5월 30일 이스라엘 주재 UAE 대사 무함마드 알 카자는 이스라엘 아쉬케나지 최고 랍비 데이비드 라우를 방문하였다. 이 자리에서 알 카자 대사는 UAE 사람들이 그를 존경한다고 말하면서, UAE를 방문하도록 공식적으로 초대했다.  같은 날 알 카자 대사는 세파르디 유대인들이 이끄는 우파 종교 정당인 샤스당의 영적 지도자 세파르디 랍비 샬롬 코헨을 만났다. 이스라엘 공영방송 캔에 따르면, 알 카자 대사는 랍비 코헨에게 2021년 5월 예루살렘 소재 알 아크사 모스크를 대상으로 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인들 충돌에 관하여 “예루살렘에서의 최근 사건들은 ‘광기’다. 당신의 지혜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샬롬 코헨(1931-)은 예루살렘에서 1924년 바그다드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주한 세파르디 랍비 에프라임 하코헨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스라엘 외무부가 운영하는 트위터 계정 ‘IsraelArabic’은 알 카자가 랍비 코헨으로부터 ‘축복’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방문에서 대사 알 카자와 랍비 샬롬 코헨은 아랍어로 대화를 나눴다.  UAE 대사 알 카자는 아랍문화를 이해하는 랍비 코헨과 아랍어로 소통하면서 매우 친밀감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이유로 UAE를 비롯한 걸프 아랍지역에서 세파르디 유대인들이 걸프 역내 유대인 네트워크 개척 및 확장을 선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출처 - 직접 촬영 (두바이 올드 시티, Al Shindagha' 지역에 있는 박물관 '문명의 교차로 전시관; 마당'에서 찍은 <이스라엘UAE 우리는 사촌>)  ▢ 유대조직의 걸프 역내 확장을 이끄는 세파르디 랍비  2020년 10월 세파르디 랍비 엘리에 아바디에는 UAE 유대인 공동체를 대표하는 JCE(Jewish Council of the Emirates) 소속 고위급 랍비로 임명되었다. 엘리에 아바디에는 1960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태어나서 모국어는 아랍어이고, 미국으로 이주하여 뉴욕 예시바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엘리에 아바디에는 ‘맨하튼 세파르디 아카데미’를 설립하였고, 뉴욕 소재 예시바 대학교에서 ‘세파르디 유대학 연구를 위한 야곱 사프라 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세파르디학 전문가이며, ‘미국 세파르디 연맹’ 이사회에 소속되어 있다. ‘미국 세파르디 연맹’은 아랍 세계에서 과거에 존재했던 대규모의 유대공동체들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또한 엘리에 아바디에는 ‘세계 세파르디 교육 센터’의 이사이면서, ‘아랍국가 출신 유대인들을 위한 정의’ 공동 대표이다. 이렇게 그는 세파르디 유대인들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JCE 고위급 랍비가 된 엘리에 아바디에는 UAE를 교두보로 삼아 다른 걸프 아랍왕국들(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로 유대인 공동체 네트워크 확장을 주도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2021년 2월 15일 AGJC(The Association of Gulf Jewish Communities)을 창설하였다. AGJC는 걸프 아랍왕국들 소재 유대인 공동체들이 역내에서 유대인 삶을 구축하고 증진시키기 위하여, 랍비 1명과 유대 법정을 갖추었다. 현재 JCE 고위급 랍비 엘리에 아바디에와 바레인 원주민 유대인 사업가 에브라힘 노누가 공식적으로 AGJC를 이끌고 있다. 엘리에 아바디에는 AGJC 대표 랍비이며, 에브라힘 노누는 AGJC 의장이다.  AGJC 이사회는 명예의장 랍비 예후다 사르나(JCE 수석 랍비, 몬트리올 출생, 미국인) 및 바레인대표 후다 노누(2008-2013 미국주재 바레인 대사 역임), 쿠웨이트대표 라파엘 슈워츠(영국인) 오만대표 메나쳄 코헨, 카타르대표 야곱 사무엘(영국인) 사우디아라비아대표 샘 루빈, UAE대표 알렉스 피터프룬드 등 7인으로 구성된다.  AGJC는 아라비아 유대법정(유대인 간의 분쟁, 결혼, 이혼, 상속 문제 취급), 아라비아 코셔인증기관(음식 관리), 생활주기 행사(할례, 성년의례, 결혼식 등) 및 기타 공동체 프로그램 등을 계획하고 서비스함으로써 걸프역내 유대인들의 삶 증진을 목표로 내세운 조직이다.  AGJC 대표 랍비 엘리에 아바디에는 “2022년 4월 현재 UAE에 약 2,000명의 유대인 거주자들이 있으며, 약 500명의 ‘활동적인 유대인들’이 종교 생활을 하고 있다. 아브라함 협정 이후, UAE는 20만 명이 넘는 유대인 관광객을 맞이했으며, 현재 많은 유대인들이 UAE로 이주하여 사업하기 위한 탐색을 하고 있다. 유대인 관광객 숫자가 향후 5년 동안 4배가 될 것이다. UAE는 호텔, 쇼핑센터, 학교, 유대교 회당, 커뮤니티 센터가 있는 전용 유대인 마을을 준비해야 한다. 사우디에는 유대인들 약 1,000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바레인, 쿠웨이트, 카타르, 오만에는 이보다 적은 수의 유대인이 거주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바레인을 제외한 다른 걸프 아랍왕국들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외국인들이다. 바레인에는 에브라힘 노누 가족과 친척 등 50여 명의 바레인 원주민 유대인들이 살고 있다. 1920-1930년 대에 800명-1,500명(자료에 따라 숫자가 다름)에 달하던 바레인 유대인들 대부분은 1948년 이스라엘 국가가 창설되면서, 이스라엘로 이주하였다.  에브라힘 노누는 AGJC의 의장에 취임하면서 본인이 이스라엘과 바레인 간 무역 활성화 등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고 자신감을 표현하였다. 그는 “바레인 사람들이 유대인과 이스라엘 회사들과의 사업 기회를 찾기 위해 나에게 접근해 왔다. 조금씩 움직임이 있지만, 매우 느리다. 어떻게 보면 느린 게 좋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인지하고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는, 더 느린 속도로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낫기 때문입니다.”라고 밝혔다.  엘리에 아바디에는 걸프 지역에서 유대인의 삶이 꽃피울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그는 “나는 분명히 몇 가지 이유로 이곳 걸프 지역의 유대공동체가 성장할 것으로 본다.”라고 말하면서, 구체적으로 그는 관광 및 사업 기회를 예로 들면서 많은 유대인들이 걸프 지역으로 많이 이주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엘리에 아바디에는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서 세파르디 유대인들이 아쉬케나지 유대인들보다 현지 문화 적응에 훨씬 더 유리하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는 “UAE로 돌아와서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나는 레바논에서 어린 시절에 살던 때와 거의 같은 느낌이 든다. 아랍어, 아랍 음악, 아랍 요리 냄새, 모스크의 고무적인 기도를 들으며.”라고 말했다.  UAE나 카타르에는 자국민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외국인노동자들이 거주하며,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오만도 외국인노동자 비율이 매우 높다. 이러한 환경에서 UAE에 기반을 둔 유대인 조직들이 활동하면서 바레인뿐만 아니라, 걸프 아랍왕국 전역으로 유대인 네트워크가 확장되고, 외국인 유대인들이 서서히 걸프 아랍왕국들로 밀려들어 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기존의 외국인노동자들과는 달리, 다양한 정치, 경제, 종교 권력과 연계되어 새롭게 출현한 유대인 조직들은 장기적으로 천천히 걸프 아랍왕국들의 권위주의적인 정치 체제를 위협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 UAE 라스 알 카이마 국립박물관 소장 故다윗의 비석  이번 달 7월 7일 필자가 현지 조사차 방문한 UAE 북부 토후국, 라스알카이마 국립박물관에는 라스 알카이마 지역에서 발견된 16세기-17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유대인 모세의 아들 다윗의 비석’이 박물관 입구 매우 잘 보이는 곳에 보기 좋게 전시돼 있었다. 이 비석에는 히브리어로 “이곳은 故모세의 아들 故다윗의 무덤이다. 그를 기억하며 축복하소서”라고 써있다. 출처 - 직접 촬영 (모세의 아들 다윗의 비석:라스알 카이마 국립박물관 소장)  다니엘 프랭크는 1998년 출간한 그의 논문 「라스 알 카이마의 유대인 묘비」에서 “1970년대에 라스알 카이마 시말지역 부족민이 이 비석을 발견했다. 비문의 언어적인 특징과 문구로 볼 때, 모세의 아들 다윗은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유대인(세파르디 유대인)이었다.”라고 주장한다. 역사가 티모시 파워는 당시에 라스 알 카이마 인근 호르무즈 섬에 주목할 만한 유대인 공동체가 존재했다고 강조한다.  2019년 11월, 라스 알 카이마 국립박물관은 이 비석을 최근에 발견된 고대 유물이라고 주장하면서 관용, 공존, 평화의 역사적인 상징물로 전시하기 시작하였다. 라스알 카이마 정부는 유대인들과의 평화적 공존을 통한 경제적 번영 및 정치 체제의 안정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2022-07-12 | hrights | 조회: 905 | 추천: 4
이윤/ 경찰관    2022. 6. 21. 행정안전부 경찰제도개선 자문위원회는 행안부에 경찰국을 신설하여 법령 발의 제안, 소속청장 지휘, 인사제청, 국가경찰위원회 안건 부의, 수사 규정 개정 협의 등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고, 소속청장에 대한 지휘 규칙을 제정하며, 감찰 및 징계제도를 개선함으로써 권한이 비대해진 경찰에 대해 통제하는 방안을 권고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행안부 장관의 경찰 장악력이 막강해진다. 참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권고안이다.  행안부 자문위원회는 ①수사권 조정으로 경찰 권한 비대→②통제 필요→③경찰국 신설로 통제라는 논리를 펼쳤는데, 이 논리에는 허점이 많다. 첫째, 수사권 조정 이전보다 경찰 권한이 비대해졌다는 전제부터 잘못되었다. 비대해진 권한도 없지만, 형소법 개정 이후에도 경찰 수사는 검사로부터 과거와 다름없는 통제를 계속 받고 있다. 둘째, 수사권 조정으로 비대해진 경찰을 통제한다면서 수사와 관련없는 경찰청장 등에 대한 인사제청 및 소속청장에 대한 지휘 규칙을 제정하여 치안업무 전반을 통제하겠다고 하니 ①번은 경찰 장악을 위한 핑계로만 들린다. 셋째, 경찰국을 만들지 않아도 이미 경찰위원회가 인사, 예산, 정책, 장비 등을 통제하고 있는데 굳이 경찰국으로 통제하려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현재의 경찰위원회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일할 수 있는 조직으로 만들면 된다.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손상될 우려가 있는 위 권고안의 비민주성, 반역사성, 위법성에 대해서는 많은 분이 의견을 피력하셨으니 여기서는 경찰위원회 실질화와 관련한 첨언을 하겠다.  경찰위원회에 의한 경찰통제 모델로 영국 경찰이 있다. 영국은 과거 전국 지방경찰청 관리를 위해 내무부장관, 지방경찰위원회, 지방경찰청장이 권한과 책임을 분담하는 3원 체계였다. 1980년대 이후 점점 내무부의 권한이 강해져서 중앙정부에만 집중하는 경찰, 관료제적 경찰, 현장에서 동떨어진 경찰이라는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2011년 4원 체계로 전환하여 전국 45개 지방경찰청을 지역치안평의회, 지역치안위원장(주민 직접 선출), 내무부장관, 지방경찰청장의 책임과 권한 하에 중앙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중앙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주민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고, 치안활동에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다는 방향성이 있다. 행안부에 경찰국을 신설하여 중앙정부의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자문위원회 권고안은 이 방향성에 역행한다. 현대 경찰의 세계적 흐름은 중앙정부를 위한 사회질서 유지보다는 범죄로부터 안전한 주민 생활에 초점을 두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지금 한국의 경찰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되면 경찰국에 두려고 했던 인원과 예산을 경찰위원회에 주면 된다. 지금까지는 위원회 활동을 지원하고 보조할 상근직원이 경찰관 몇 명뿐이어서 본래의 역할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위원 7명이 월 2회 회의에 소집되면 주어진 안건을 토의하고 결정하기에도 바쁘다. 경찰위원회에 경찰관 아닌 40~50명의 공무원으로 구성된 상근 조직이 만들어지면 인사와 감찰만 하더라도 할 일이 참 많다.  치안에 전문성이 있는 인재를 객관적 기준에 의해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을 경찰위원회가 하면 경찰국보다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경찰통제가 가능하다. 이를 위해 객관적이고 공정하며 타당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인사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평가는 정량적, 정성적 지표를 근거로 이루어져야 하며 정실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인사에 정실과 외압이 개입하면 인사 정의는 사라지고, 이로 인해 일할 동기와 활력이 없어진 조직은 엉망이 되고, 60년 전의 비극이 되풀이될 것이다(그레샴 법칙 참조). 행안부 장관도 경찰국 신설 목적이 인사를 지원하는 것이라고 하였으니 경찰국 신설에 들어갈 비용으로 괜찮은 인사평가 프로그램을 만들어주면 잘 쓸 것 같다. 요즘 빅데이터에 AI까지 있으니 돈만 들이면 13만 경찰 디지털 인사평가 자동화 시스템 정도 만드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다.  조직 내 부패와 비리 등 위법·부당한 직무수행을 확인하여 인사권자로 하여금 징계 등 조치를 하게 하는 것이 감찰이다. 감찰은 조직 내에서 수행하기보다 외부에서 하는 것이 더 객관적이고 책임성이 있다. 경찰위원회 상근 조직에 감찰부서를 두면 제3자 입장에서 공정하고 정확하게 감찰활동을 함으로써 경찰을 통제할 수 있다.  이상에서 경찰위원회 실질화로도 경찰통제가 가능하다고 했는데, 그에 더하여 제발 정부에서는 비대해진 경찰을 통제하려고만 하지 말고 우선 비대해진 경찰의 살부터 좀 빼주면 좋겠다. 실상은 지금까지 경찰 권한이 비대해진 것이 아니라 업무가 많아진 것일 뿐이다(5. 10.자 ‘경찰수사에도 투자가 필요하다’ 참조). 수사업무뿐만이 아니다. 스토킹, 가정폭력, 아동학대, 학교폭력, 정신이상자 등 점점 새로 생기는 범죄예방 업무에, 어금니아빠 사건 이후로는 연락이 안 되는 가족을 찾아주는 일까지 하려니 할 일은 태산같이 쌓여만 가는데 인원은 부족하다. 이런 일은 여성가족부나 교육부 등에 담당 부서를 만들고 특별사법경찰 권한을 주면 경찰 권한도 분산시키고 업무 연계성 및 전문성도 키울 수 있다. 경찰에게 계속 일을 시키려면 일할 수 있는 권한, 인력, 예산도 함께 주면 참 좋겠다. 지금은 적은 인력으로 권한도 없이 힘들게 일만 하다가 큰 사건 터지면 욕만 배터지게 먹고 있다. 이렇게 욕을 많이 먹으니 경찰관이 장수할 것 같은데 그렇지도 못한 현실이 서글프다.
2022-07-06 | hrights | 조회: 935 | 추천: 10
이재환/ 시흥시청 지역화폐팀  ‘우리가 사는 곳, 우리가 사는 것, 곧 동네가 되다.’  지난해 중소기업벤처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2021 동네단위 유통채널 구축 시범사업’ 공고를 냈었다. 동네단위 유통채널 구축사업이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소상공인+동네상점+소비자’를 연계하여 지역상품의 소싱·유통·판매 구조를 하나로 통합하는 하이퍼로컬(지역밀착형) 개념의 유통·물류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시범사업 공모결과 시흥시가 선정되었고, 함께 공모한 운영기관 ㈜컬쳐네트워크와 주식회사 빌드가 약 8개월 여 동안 시범사업을 마쳤다. 동네단위 유통채널 구축이라는 사업명 그대로 참여자들과 시민들에게 다가갈 수는 없으므로 ‘동키마켓’이라는 서비스명을 갖추었다. 동키마켓은 ‘동네를 키우는 상점’의 줄임말이다. 맞다. 예상하듯 마스코트는 ‘당나귀(Donkey)’이다. 당나귀는 예부터 소상공인의 친근한 벗이자 일꾼이었다.  처음에 언급한 ‘우리가 사는 곳, 우리가 사는 것, 곧 동네가 되다’는 슬로건은 동키마켓의 지향점을 축약한 내용이다. 동키마켓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는 ‘동네 단위’이다. 동네 주민과 지역 생산품을 연결하여 지역 내 유통과 소비를 지향하고자 한다. 최근 다시 회자되고 있는 ‘지역순환경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뤄내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이런 사업을 할까? 나 자신만 하더라도 소비의 절반은 대형 e커머스 플랫폼을 통하고 있다. 없는 물건이 없고, 배송도 빠르면 반나절 만에 이뤄지니 편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찜찜하다. 분명 우리 동네 시흥 포도를 주문했는데 나라를 한 바퀴 돌아 저기 옥천hub를 거쳐 오는 것도 그렇고, 겹겹이 쌓인 상품 포장지도 볼 때마다 지구에게 미안하고, 쇼핑몰 입점 판매 수수료도 만만치 않다고 하고, 온라인 쇼핑몰에 밀려 동네 가게와 소규모 생산자들은 점차 힘들어지고...  더 이상 편리함에 취해 더 중요한 가치를 놓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지역순환경제를 생각하는 소비자들에게 맞춤형으로 선보인 공공 유통 서비스가 바로 동키마켓이다.  동키마켓의 사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동키마켓 앱에 시흥시의 생산자들이 상품을 올린다. 마치 ‘당근마켓’에 올리듯 말이다. 예를 들어 시흥 포도 농부나 시흥 미산동 두부공장 사장님이 직접 상품을 올린다. ‘시흥 포도 100상자 10% 할인해서 팝니다’, ‘당일 생산 두부 3판 팝니다’ 등등. 쇼핑몰에 입점하려면 수십 퍼센트 대 수수료 부담 때문에 엄두를 못 냈던 지역 생산자들이 투박하지만 자유롭게 지역 온라인 쇼핑몰에 상품을 올릴 수 있다.  동키마켓 앱에서 이를 본 소비자가 구매를 결정하면 결제는 시흥시 지역화폐인 ‘모바일시루’로 가능하다. 모바일시루는 현재 10% 인센티브 혜택이 주어지므로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10% 할인 효과를 보게 된다.  지역화폐 결제까지 이뤄지면 소비자는 쇼핑한 물건을 수령할 오프라인 동키마켓을 지정해야 한다. 많은 물류 운송 및 포장비용이 드는 택배송 보다 퇴근길 또는 산책길에 들러 쇼핑한 물건을 픽업해야 한다.(불가피한 경우 별도이용료를 내고 택배송을 이용할 수 있는 방안도 강구 중이다.)  이 오프라인 동키마켓은 새로운 가게들이 아니라 기존 동네 상점들로 구성되어 있다. 동네 입구 슈퍼마켓이나 북카페 등이 ‘동키마켓+**수퍼’, ‘동키마켓+북카페’처럼 기존의 영업을 유지하면서 동키마켓이란 브랜드를 함께 사용한다. 일종의 숍인숍 개념이다.  오프라인 동키마켓은 ‘앵커스토어’를 지향한다. 앵커스토어란 고객이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전달하여 꾸준히 발길이 이어질 수 있는 동네 사랑방같은 가게를 말한다. 지역 내 생산품을 지역 내 소비자에게 직접 연결해 전달하는 가치를 키우면서 쇠락해가는 골목상권을 되살려 보자는 의도를 담고 있다.  물건 픽업해오면서 가게 사장님과 가벼운 정담을 주고받으며 내친 김에 우유 한통, 막걸리 한 병 더 사는 느슨한 공동체 경제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렇게 동네단위에서 지역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고 새로운 시너지를 불러일으키려는 시도가 동네단위 유통채널-시흥 동키마켓 시범사업이었다. 현재 1개의 동키마켓 쇼핑앱, 9개의 오프라인 동키마켓 상점, 약 50곳의 생산자 및 상품 구성이 시범사업 기간 내 구축 완료되었다.  시범사업 이후 운영기관인 ㈜컬쳐네트워크와 주식회사 빌드가 동키마켓 참여 상점 및 생산자들과 함께 구축된 시스템을 돌리고 확산하게 된다.  물론 당장 당일직송에 익숙한 지역 소비자의 큰 호응을 기대할 순 없을 터이다. 대신 물류 유통 및 재고처리 비용을 최소화하여 저렴하고 신선하며 특색 있는 지역 생산품을 제공함과 동시에 지역화폐로 결제할 수 있는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켜 스며들 듯 지역 소비자들에게 다가 갈 것이다.  지역 맘카페와 연계하여 소구력을 갖춘 지역 생산품 공동구매와 같은 이벤트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57만 시흥시 인구 가운데 32만 명이 사용하는 지역화폐 모바일시루가 모객과 마케팅의 첨병으로 서게 된다.  지역 소비자들이 대기업 플랫폼에서 소비량 중 다만 10% 만이라도 동키마켓이란 채널을 이용한다면 지금도 시나브로 시들어가는 골목상권과 지역경제를 되살리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분 좋은 소식도 들린다. 오프라인 동키마켓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단속민원을 요청하는 시민이 위치를 묻는 시청 직원에서 ‘동키마켓 건너 편’이라고 일러줬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9개 오프라인 동키마켓이 간판을 건 지 보름도 안 지났음에도 눈에 띄다 보니 자연스럽게 앵커스토어가 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키마켓의 PB상품인 동키맥주와 두부도 맛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3차례 걸쳐 보낸 ‘동네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시리즈를 마무리하려 한다. 지역화폐 시루를 매개로 시흥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역 경제활성화+공동체 강화 정책을 소개 했다. 과거 국내외를 막론하고 경제가 어려워지면 지역과 동네로 눈길과 관심을 쏟기 마련이었다. 지역화폐 역시 지난 200여 년 간 경제가 어려워질 때 등장했다.  물가는 오르고 돈은 돌지 않는 스태그플래이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동네에 관심을 가져보자. 파랑새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2022-06-29 | hrights | 조회: 726 | 추천: 6
박상경/ 인권연대 회원   1.  “비 올 것 같은데, 우산 가지고 가요!”  “지금 오는 비는 맞아도 돼. 예전 같으면 이런 날 우산 쓰면 어른들한테 야단 들었어. 가뭄이 너무 길다.”  친구 만나러 마을 가는 엄마가 꾸물거리는 날씨에도 그냥 나가기에 우산 타령을 했더니 돌아온 엄마의 대답이다.  겨울 가뭄이 봄 가뭄으로 이어져 초여름에 들어선 지금도 여전하다. 겨우내 묵은 계단의 먼지를 한바탕 쏟아지는 비에 털어내려고 했으나, 올 듯 올 듯 비를 머금은 먹장구름은 이내 불어오는 바람의 기세에 뚝 뚝 비 몇 방울 뿌리고 만다. 가뭄이 너무 긴데, 기우제라도 지내야 할런가…. 2.   네팔 겨울 산에 오른 적이 있다. 고도가 4천 미터 되는 마을에서 한 소녀를 만났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는 한낮, 소녀 앞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듯한 물이 가득 담긴 대야가 놓여 있었다. 세수라도 할 모양이지 싶어 가만히 바라보는데, 소녀가 한 가닥으로 질끈 묶은 머리를 풀어 빗으로 곱게 빗어 내린다. 그러더니 대야에 머리를 담그고는 또 정성껏 물을 축이는 것이다. 머리를 감으려는 것인가, 주변을 둘러봐도 물은 대야에 있는 물이 다인데, 어떡하려는 거지 싶어 발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머리에 물을 다 축이는가 싶더니 이내 머리에 비누칠을 하고 헹구어낸다. 그러더니 두 손으로 비눗물을 조심스럽게 대야 한쪽으로 밀어내고 다시 머리를 헹군다. 머리를 감은 그 물은 버리지 않고 옆에 있던 동생의 얼굴을 한 번 쑥 닦아준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그 시간을 나는 숨죽여 바라보았다. 소녀의 머리 감기는 대야에 있는 물, 그 하나로 다 되었다. 참으로 신기했다. 먹을 물조차 귀한 이곳에서 살아가는 생존 본능이라고 해야 하나. 겨울 한낮에 내리는 햇살이 마치 조명처럼 소녀만을 비추는 것 같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하산 길에 나선 나는 2천 미터 고지의 한 로지에서 열흘 만에 씻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떡이 된 긴 머리와 먼지로 뒤엉킨 내게, 주어진 물은 무릎까지 오는 한 양동이뿐. 이 물로 몸도 씻고 머리도 감아야 한다. 그런데 그게 되었다. 조심스럽게 머리부터 감고 조금씩 조금씩 물로 몸을 축이며 닦아낸 뒤에 마지막 한 바가지로는 머리에서부터 부어버렸다. 그때 머리를 감고 마른 수건으로 머리를 털어내다 눈이 마주친 나를 보며 수줍게 웃던 소녀가 내 앞에서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출처 - NEWSIS 3.  거리두기가 풀리면서 수영장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샤워장도 덩달아 붐빈다. 2년여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는 대화로 시끌벅적거린다. 그러자니 쓰지도 않는 샤워기 꼭지는 열린 채로 물을 쏟아낸다. 샤워기는 틀어놓은 채 잠깐 자리를 비우기도 한다. “쓰지 않을 때는 잠깐 잠그면 어때요?” 했더니 혼잣말로 별걸 다 참견한다며 투덜댄다. 슬며시 샤워기를 잠그며 제자리로 돌아와 눈을 흘긴다. 내 물건 왜 맘대로 손대냐 하는 시위 같다. 샤워장의 이 풍경은 사실 거리두기 이전에도 비슷했다. 아이들은 아이들이어서 그렇다고 해도 가뭄 걱정을 경험했을 어른들이 그럴 때는 마음이 편치가 않다.  일본의 온천장 샤워기는 참 불편하다. 예전 우리 목욕탕에도 그런 샤워기가 있었다. 중간 손잡이를 눌러야 물이 나오는. 수영장의 샤워장 입구에는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다. “샤워기를 쓰지 않을 때는 잠그시기 바랍니다.”  비금도는 물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지만 가뭄이 길어지면 씻는 일을 삼간다. 많은 섬들이 그럴 것이다. 어느 해 겨울, 일로 비금도에 갔을 때 숙소를 안내해 주시던 분이 샤워는 짧게 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늘 그런 것은 아닌데 올해는 겨울 가뭄이 길어 물탱크의 물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뒤꼍에 있는 물탱크를 가리켰다. 비가 오면 빗물을 담아둔다는 물탱크를 보면서 어릴 적 비가 오면 처마 아래로 떨어지는 물을 받아 담아 두던 항아리가 기억났다. 항아리에 받아놓은 물은 다음 날 머리 감는 데 썼다.  한여름 뙤약볕을 받으며 설악산의 용아장성을 갔다. 왼쪽으로는 공룡능선을 마주보면서 오른쪽으로는 구곡담계곡을 끼고 하루 종일 그 능선을 가면서 물이 흘러넘치던 수렴동 계곡의 물소리가 환청으로 들리곤 했다. 고작 1리터의 물은 이미 떨어지고 입은 버캐가 낄 정도로 타들어갔다. 그때 바닥 구덩이에 고인 물이 보였다. 사람이 급하면 얼마나 지혜로워지는지. 잘못 건드리면 곧 흙탕물이 될 그 물을 먹으려고 풀잎에 물을 적셔 입술부터 축였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갈증이 가셨다기보다는 입술이 축축하니 길을 다시 나설 만하였다. 하루를 타는 목마름을 달래며 닿은 봉정암에서 마신 물은 신선의 세계에서 맛보는 그런 꿀맛이었다.  엄마는 계단 청소는 미루자고 했다. 먼지 풀풀 날리는 계단을 비질만 했다. 밖에서 집에 올 때 비가 오면 혹여라도 전화하지 말고 맞고 들어오라고도 한다. 엄마의 기원이 하늘에 닿아 오늘이라도 비가 오시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며칠 흐리던 날씨는 다시 화창해졌다.
2022-06-22 | hrights | 조회: 388 | 추천: 4
석미화/ 평화활동가  날이 뜨겁다. 경복궁역에서 나와 청운동사무소 방향으로 가는 길은 차도 많고 사람도 많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자 나오는 보도블록은 중간에 지하철 환기구가 떡하니 자리차지를 하고 있어 더 좁게 느껴진다. 오늘따라 그 길을 따라 걸으려니 도착지까지 길이 더 멀게만 보인다.  갤러리 류가헌으로 향하는 길, 여권법 개선을 위한 ‘세계 분쟁지역’ 사진전 <금지된 현장> 심포지엄을 찾았다. 시작 시간을 넘겨 도착하니 토론이 한창이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분쟁지역을 사진에 담아 온 작가, 기자가 모여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취재제한을 비롯해 그간 ‘여권법’이 규정하는 취재허가절차가 실질적으로 언론자유를 통제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을 나눴다. 성명서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여권 사용 허가 제도를 개정하여 여행금지 국가의 취재 및 보도를 보장하라!’는 제목 아래 “여권법 제17조로 인한 지나친 제한과 절차가 사실상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므로 여행금지 국가에 대한 언론의 취재와 보도를 보장해야한다.”  이에 대한 반응인지 며칠 후 외교부가 취재 목적의 우크라이나 방문에 대한 기존 방침을 변경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취재지역을 확대하고 방문기간과 인원을 늘리는 것이 핵심이다. 변화라고 보기에는 허용 범위를 약간 늘린 수준이었다. 또 복잡한 서류와 허가절차를 거쳐야하는 문제 등은 여전히 남아있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내내 전장(戰場)에 가지 못하는 문제가 전쟁보도의 총체적 원인인 것처럼 비춰지는 모습이 다소 불편했다. 그것이 해결해야하는 과제임은 분명하나 현재 한국 언론의 부실하고 무능한 전쟁보도는 단지 거기에서만 이유를 찾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전반적으로 우리 언론이 갖고 있는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다. 취재보도의 기본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을 포함해 저널리즘의 실종을 목격하는 일은 분초 단위로 뉴스를 보는 시대에 시시때때로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정처 없이 쏟아지는 기사들을 볼 땐 심지어 이것이 종이에 찍혀 나오는 게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전쟁보도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자리에서 뉴스를 생산하는 이들 사이에 적어도 책임을 통감하는 목소리가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출처-뉴스프로  평화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전쟁 보도에 관심이 많다. 지구촌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전쟁과 분쟁의 현장들, 그곳의 상황을 주시하고 평화의 눈으로 어떻게 바라보고 연대할 것인지 고민한다. 그래서 전쟁 보도를 주의 깊게 본다. 하지만 한국 언론의 전쟁 보도는 이러한 관심과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보도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외신이나 현지 SNS를 받아쓰는 상황에서 팩트 체크, 출처를 정확히 밝히지 않는 사례는 부지기수고, 현장에서 취재할 수 없는 다양한 분석과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제시하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세계 경제가 요동치고 있고 한국도 예외가 아닌 상황에서 알고자 하는 시민들의 요구를 우리 언론은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전쟁보도라는 것이 누군가를 편드는 일에만 매몰되어선 안 될 텐데, 전적으로 서방 언론을 받아쓰기하며 우리의 관점은 실종되고 없다. 전쟁의 이면을 살피는 일에 대해서도 게으르다. 1년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할 때의 보도는 그저 긴박했던 철수장면을 보여주기에 바빴다.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오사마빈라덴과 대량인명살상무기를 찾으러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간 미국, 전쟁은 끝났지만 20여 년 동안 그들이 일으킨 전쟁에 대해 깊이 있게 살피는 기사를 찾기는 어려웠다. 한국으로 온 아프간 사람들을 ‘난민’이 아닌 ‘특별기여자’로 부르는 것에 대해 질문할 줄도 몰랐다. 한국 언론은 그들을 ‘특별기여자’로 부름으로써 ‘난민’에 대한 차별적 시각을 재생산했다. 한국 언론은 파괴되고 무너져 내린 전장(戰場) 넘어 종합적이고 분석적인 시각을 제시하지 못했고, 전쟁이 낳은 비극에는 관심 갖지 않았다.  한국이 최초로 해외에 특파원을 보낸 것은 베트남 전쟁 때부터다. 1965년 비둘기부대와 함께 종군기자 13명이 전쟁취재를 위해 월남에 간 것이 시작이다. 국가와 군의 주도아래 월남으로 간 기자들은 파병을 홍보하는 전쟁 나팔수로 역할 했다. 당시 열악한 취재환경과 보도지침이라는 통제 속에 소영웅주의, 전과중심의 보도, 정부의 조치나 발표 등이 보도의 주를 이루었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미군에 의해 베트남 민간인 500여명이 희생된 밀라이 학살은 미국의 종군기자 세이모어 허쉬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가 촬영해 공개한 사진들은 지금도 밀라이박물관과 호치민시전쟁증적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 한 기자의 빛나는 특종은 그의 노력과 더불어 그것을 가능케 한 여러 조건들의 창조물이다. 비록 정부의 보도통제 아래 한국의 전쟁보도가 시작되었지만 이제 세상은 바뀌었고 적어도 ‘보도지침’과 같은 것들은 없어졌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언론에 세이모어 허쉬와 같은 이의 활약이나 보도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때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얼마나 나아간 것일까? 혹은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 한국 언론이 지금처럼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소홀히 하고 기존의 전쟁 보도 관행을 버리지 않는다면 50년 후에도 우리는 똑같은 질문을 하게 되지 않을까? [참고자료] <베트남전쟁과 평화교육>, 한베평화재단 창립 5주년 기념 웨비나, 2021 우크라이나 전쟁 보도로 드러난 외신 기사의 문제점, 임영호, 신문과방송 2022년 4월호https://www.kpf.or.kr/front/news/articleDetail/592562.do <우크라이나 전쟁과 언론보도> 세미나, 한국언론진흥재단, 2022.4.27. ‘우크라 2박3일 취재’ 제한 변경… 2주간 11개주 취재 가능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4222 우크라이나-러시아 상반된 전쟁범죄 주장에 대한 언론의 고민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3306
2022-06-15 | hrights | 조회: 795 | 추천: 4
염운옥/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코로나 팬데믹 동안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반려식물, 식물집사라는 말도 이제 낯설지 않다. 한국인 4명 중의 1명이 반려동물을 기른다는 통계도 나와 있지만, 자그만 식물 화분 하나라도 집에 두고 있는 경우를 센다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외로움을 달래줄 비인간 존재로 동물보다는 식물이 선택하기 쉬운 탓도 있을 것이다. 식물은 돌아다니며 집안을 어질러 놓지도 않고, 놀아달라고 보채지도 않는다. 귀찮게 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기에 내가 필요할 때만 위로를 구할 수 있다는 게 식물 반려의 장점이라고들 말한다. 식물 반려도 반려이기에 물과 거름주기, 햇빛 보이기, 벌레 잡아주기, 통풍과 환기 등 집사로서의 노동이 따르는 건 물론이지만.  우리 집 베란다에서 해마다 3월이면 선명한 오렌지색 꽃을 피우는 군자란은 원산지가 남아프리카다. 군자란은 8월의 시드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우리 곁에 있는 많은 식물이 외래종이다. 외래식물이라도 이미 적응을 거쳤기에 원산지가 어딘지 따지는 건 이제 무의미한지도 모르겠다. 발이 달리지 않은 식물이 먼 거리를 이동하고 새로운 생태를 만드는 일은 자연스럽게 생겨나지 않는다. 이동성이 없는 식물에 이동성을 부여하는 건 우리 인간이다. 특정 식물의 분포와 식생에는 인간이 자연에 개입한 흔적이 짙게 남아 있다. 현재 우리가 보는 자연은 순수한 자연이 아니라 인공 자연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식물의 이동에는 다양한 욕망과 정치가 개입해 있다. 근대 초 유럽인들의 이국식물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이 식물수집과 식물사냥을 부추겼다. 이국식물 열풍은 튤립에서 양치류에 이르기까지 여러 식물을 거쳐 불었다. 몇몇 식물은 씨앗이나 꺽꽂이로 들여오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식물표본으로 수집됐다.  식물의 이동성에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발명이 바로 워디안 케이스(Wardian Case)다. 워디안 케이스는 영국인 나다니엘 백쇼 워드(Nathaniel Bagshaw Ward, 1791~1868)​가 만든 일종의 휴대용 테라리움 장치를 말한다. 이 덕분에 전 세계 식물 종을 수집해 ‘살아있는 채로’ 유럽으로 운반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워디안 케이스는 한편으로는 ‘집안의 수정궁’이라 불리며 중산층 가정의 거실을 장식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차와 고무 같은 상업작물의 지리적 독점을 돌파하는 역할을 했다. 스코틀랜드의 식물학자이자 식물사냥꾼인 로버트 포춘(Robert Fortune)은 1849년 중국 상하이에서 차를 워디안 케이스에 넣어 영국령 인도로 운송해 아삼지방에 차 플랜테이션의 길을 열었다. 브라질에서 수입된 고무나무 씨앗은 큐가든(Kew Gardens)이라 불리는 런던 왕립식물원(Royal Botanical Gardens)에서 발아한 다음 워디안 케이스에 담겨 말라야와 실론으로 운송되어 고무 농장에서 대량 재배되었다. 더비셔에서 개발된 캐번디시 바나나를 소모사로 옮겨 심을 때도 워디안 케이스가 쓰였다. 그림1. Portrait of Nathaniel Bagshaw Ward, 1859. Lithograph by R. J. Lane after the portrait by J. P. Knight. Courtesy Wellcome Collection, CC BY. 출처: Luke Keogh, The Wardian Case: How a Simple Box Moved Plants and Changed the World,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20, p. 16. 그림2. Traveling-style Wardian case, as described by Nathaniel Ward. From N. B. Ward, On the Growth of Plants in Closely Glazed Cases (London: John Van Voorst, 1852). 출처: Luke Keogh, The Wardian Case: How a Simple Box Moved Plants and Changed the World,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20, p. 22.  워드는 어떻게 이 대단한 상자를 만들 수 있었을까? 워드는 이스트엔드라고 불리는 런던 동쪽의 화이트채플의 내과 개업의였다. 이스트엔드는 19세기 산업화 시대 불결한 도시의 대명사였던 지역이다.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계승한 의사 워드는 아마추어 식물학자이자 원예가였다. 어릴 때부터 식물을 좋아해 열세 살 때 자메이카로 식물 탐험을 다녀오기도 했다. 워드는 당시 대기오염이 인간과 원예에 끼치는 악영향을 개탄했다. 템즈 강변의 공장에서 나오는 시커먼 재가 식물의 성장을 저해하고 말라 죽게 하는 일이 반복되자 워드는 얼마 전의 우연한 발견을 떠올리고, 뚜껑 달린 유리병에 고사리를 심었다. 1829년 어느 날, 워드는 스핑크스 나방 번데기를 흙에 묻어 밀폐된 유리 용기에 넣었다. 원래 목적은 스핑크스 나방 번데기의 변태를 관찰하는 것이었는데 예상 밖의 발견을 하게 됐다. 흙 속에서 양치류 식물의 싹이 올라오더니 잎사귀가 조금씩 나기 시작했고 물을 주지 않았는데도 계속 자라났던 것이다. 사실 비슷한 생각을 했던 동시대인은 워드 말고도 여럿 있었지만, 워드의 혁신에서 핵심은 밀폐 시스템이었다. 식물이 호흡할 때 내는 증기가 일정 기간 식물에 필요한 수분을 충분히 공급하기 때문에 워드가 실험한 식물은 밀폐된 공간에서 생존할 뿐만 아니라 풀은 꽃을 피웠고, 고사리는 잎을 피웠다. 워디안 케이스는 밀봉된 미니어처 정원인 셈이었다. 1) 의사로서 워드는 식물 가꾸기 취미를 노동계급에까지 널리 전파하고 싶어했으나 값이 싸졌다고는 하지만 유리는 사치품이었고, 가난한 노동자들은 워디안 케이스를 사기보다는 집세를 내야 했다. 워드의 이상은 모두에게 공유되지 못하고, 중간계급 거실 장식품으로 안착했다.2)  또 한편으로 워디안 케이스는 영국과 외부 세계 사이의 식물 교류의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했다. 워드는 1833년 밀폐 유리 상자에 고사리, 이끼, 풀을 넣어 배에 실어 런던에서 시드니로 보냈다. 몇 달 후인 1833년 11월 23일에 워드는 선장 찰스 말라드(Charles Mallard)로부터 실험이 성공했다는 편지를 받았다. 20개의 상자 중에서 19개 상자의 식물이 살아남았던 것이다. 말라드 선장의 배는 1834년 2월 오스트레일리아의 식물을 싣고 런던으로 돌아왔다. 항해는 시드니에서 케이프혼, 리우데자네이로를 거치는 항로였는데, 식물들은 영상 30~40도까지 오르고, 영하 7도까지 내려가는 극심한 온도 차를 무사히 견뎌냈다. 그 결과 워드와 친구들은 영국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오스트레일리아산 풀고사리(coral fern. 학명 Gleichenia microphylla)를 관찰할 수 있었다. 1851년 런던에서 열린 세계 최초의 만국박람회(The Great Exhibition)에도 장식용 양치류 식물을 키우는 워디안 케이스와 18년 동안 물을 주지 않은 밀폐 유리병이 출품되었다. 3)  휴대용으로 개량을 거듭한 워디안 케이스는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의 식물원들이 식민지와 식물을 주고받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도구로 활용되었다. 영국에서는 큐가든이 중심이었고, 독일에서는 베를린식물원(Berlin Botanical Gardens), 프랑스에서는 열대농경식물원(Jardin d'agronomie tropicale), 네덜란드는 암스테르담식물원(Amsterdam Botanical Gardens)과 라이덴식물원(Leiden Gardens)이 워디안 케이스로 식물을 운반했다. 제국주의 중심국가들의 식물원과 식민지 식물원을 연결하는 네트워크에서 워디안 케이스는 핵심적 매듭으로서 식물의 이식과 정착에 관여했다. 전지구적 식물 이동을 가져온 제국주의 팽창과 식민지 정복, 노예제와 플랜테이션을 성립시킨 이음새로서 현재의 생태계를 만드는 역할을 다했던 것이다. 그림3. Specially crafted Wardian cases made by local Indonesian workers were used to send plants from the Buitenzorg Botanic Gardens, Java, in 1904. 출처: Luke Keogh, “The Wardian Case: How a Simple Box Moved the Plant Kingdom,” Arnoldia 74/4(May 2017), p. 12 그림4. Wardian cases preparing to leave the Royal Botanic Gardens, Kew, ca. 1940. © The Board of Trustees of the Royal Botanic Gardens, Kew. 출처: Luke Keogh, The Wardian Case: How a Simple Box Moved Plants and Changed the World,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20, p. 9. 1) Margaret Flanders Darby, “Unnatural History: Ward’s Glass Cases,” Victorian Literature and Culture, 35(2007), pp. 635-636. 2) Ibid., p. 639. 3) Luke Keogh, “The Wardian Case: How a Simple Box Moved the Plant Kingdom,” Arnoldia 74/4(May 2017), pp. 6-7.
2022-06-08 | hrights | 조회: 1118 | 추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