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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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퇴행과 윤희근 청장(경향신문 2023.03.03)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3-06 09:40
조회
164

경찰이 퇴행을 반복하고 있다. 지난 20여년 동안 숱한 연구와 논의를 바탕으로 쌓았던 경찰개혁의 성과들이 단박에 무너지고 있다. 끝도 없이 뒷걸음치는 형국이다. 가장 큰 책임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물어야겠지만, 대통령의 의중만 좇는 윤희근 경찰청장의 잘못도 만만치 않다. 윤석열 정권이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을 통해 경찰청을 통제하려 할 때, 윤희근 당시 경찰청 차장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김창룡 당시 경찰청장이 경찰국 신설을 반대하며 사임했던 것과 비교되는 태도였다. 이때만 해도 이해할 만한 대목은 있었다. 그만두는 결단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던 경찰청장의 몫이고, 수습은 차장의 몫이라 여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어떻든 윤희근 경찰청장 시대가 열렸지만, 그는 경찰청장으로서의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출퇴근 시간에 교통신호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황제 대접은 어떤 전임자도 누리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정적 장면에서는 청장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지 않았다. 경찰의 이해할 수 없는 무책임, 무대응 때문에 벌어진 이태원 참사에도 불구하고 그는 멀쩡했다. 국민 안전의 책임자 이상민 행안부 장관도 꿈쩍 않고 있으니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갑자기 행안부 장관이 된 사람과 평생 경찰관으로 일했던 사람은 좀 달랐어야 했다.





그의 동료들이 주말을 이용해 행안부 경찰국 설치에 대해 논의하자며 모였을 때, 뜬금없이 즉각 해산명령을 내렸다. 휴일을 이용해 의견이나 나누자는데도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회의 참석자 중 대표 격인 류삼영 총경에 대한 징계도 강행했다. 경찰청 시민감찰위원회는 굳이 징계가 필요하다면 견책 등 경징계를 하라고 권고했지만, 윤희근 청장은 중징계를 관철했다. 총경 회의 같은 일은 검찰에서는 흔한 일이고, 그 때문에 처벌받은 검사는 아무도 없었지만, 경찰에서는 중징계까지 단행한 거다. 이처럼 윤 청장은 단호했다.


징계를 받은 사람은 류삼영 총경뿐이었지만, 나머지 회의 참석자들은 인사보복을 당했다. 경찰청은 새로 도입한 복수직급제를 악용해 총경들을 아래 계급인 경정 또는 경감 자리에 발령을 냈다. 연고지에서 먼 곳에, 지휘할 인력이 적은 곳이나 한직을 골라 보냈다. 때론 인사권이 이렇게 사람을 해치는 흉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도 윤 청장은 개개인의 역량과 자질 등을 다양하고도 종합적으로 고려해 “소신껏 한 인사”라고 했다. 총경에 대한 인사는 경찰청장의 권한이다.


정순신 전 검사를 국가수사본부장에 단수 추천한 것도 놀라웠다. 국가수사본부는 20여년 동안 진행한 검경 수사권 조정 작업의 상징과도 같은 기구다. ‘수사의 주재자’로 군림하며 모든 수사권을 장악했던 검찰의 권한을 조금이나마 덜어내자는 차원에서 만든 기구였다. 그 기구의 책임자에 검사 출신, 그것도 대통령이 검사 시절에 함께 일했던 사람,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과 연수원 동기인 사람을 추천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게다가 기본적인 검증조차 없었다. 세평 수집이 전문인 정보경찰을 지휘하는 경찰청장이 정 전 검사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을 아예 들여다보지도 않았다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게다가 정순신 전 검사는 스스로 밝힌 사임의 변에서 수사의 목적을 “유죄판결”이라고 했다. 특수부 검사들의 실체를 알려주는 놀라운 말이다. 수사는 유죄판결을 받기 위한 활동이 아니라, 진실을 발견하는 작업이다. 어떤 사건은 기소는 물론 아예 송치조차 하지 않아야 할 것도 있다.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수사과정에서 인권보장을 위한 적법절차 원리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헌법상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 국가수사본부장이 될 뻔했다. 대통령이 임명권자이나, 추천권자인 경찰청장의 책임도 작지 않다. 법률로 규정한 경찰청장의 권한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왜 경찰청장 자리에 앉아 있으려는 걸까?



 

정순신 전 검사의 국가수사본부장 취임이 좌절된 직후, 거취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윤 경찰청장은 “고민은 늘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장은 거취를 고민해야 하는 자리가 아니라, 일을 하는 자리다. 당장 그만둘 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경찰청장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 그저 대통령실 의중만 좇는 게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자유,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경찰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피고 곧바로 실행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당장 그만두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