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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호] 학생들의 목소리 찾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3-03 11:26
조회
81

박윤경/ 청주교대 사회과교육학과 교수


 지난해 처음으로 만 18세 청소년들이 참정권의 주체로서 투표권을 행사했다. 미래 시민, 또는 예비 시민으로 일컬어지던 학생들이 “교복 입은 시민”으로 불렸고, 교육 당국은 부랴부랴 선거 교육 방법을 마련하느라 부심했다.


 대표자를 선출하는 것은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가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는지에 대한 의사 결정이자 민주시민으로서 자신의 정치적 관점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첫 유권자’와 ‘예비 유권자’를 가르치는 좁은 범위의 선거 교육을 넘어서 더 넓은 의미에서 학생들의 정치적 의사 결정을 돕고 정치적 존재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탐색할 수 있는 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최근 국내외에서 정치적 문해력(political literacy)을 민주시민성의 요체로 강조하고, 학교 교육에서 정치사회적 이슈 학습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교에서의 정치사적 이슈 학습에 주목해야
 그런데 우리 학교 교육의 실상은 이와는 거리가 있다. 교실에서는 여전히 지식전달 중심의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사회 현상을 수업에서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한국교육개발원 보도자료, 2020.2.17.). 학계에서도 어떤 사회적 이슈를, 언제부터,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를 둘러싼 논쟁이 반복되고 있다.


 더 나아가 학교 교실에서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것에 대한 우려의 시선과 회의적 태도가 지배적이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학교에서 이슈 학습을 시도하지 않는 편이 차라리 안전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 논쟁이 성인의 관점에서 진행된 것이라면, “교복 입은 시민”으로서 학생들의 생각은 과연 어떨까?


 필자는 지난 2013년부터 3년간의 연구를 수행하면서, 서울 지역의 초중고 학생 60여 명과 만나 당시의 사회적 현안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있다. 대화의 주제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선행학습 규제부터 무상급식 의무화, 동성 결혼 합법화, 학교폭력 학교생활부 기재, 통일의 필요성, 대통령 선거 투표 시간 연장 등 다양했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두 가지를 전제했다. 대화 주제를 담은 간략한 읽기 자료와 학생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듣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학생들 모두에게 동등하게 대화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했다. 원하지 않으면 말하지 않을 자유가 있었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다음에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학생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니
 당시 이슈 토론은 학생들에게 각자의 “정치적 의견을 탐색/형성하는 장(場)”이었다. 학생들은 자기 주변의 실제 이슈들에 대해 기꺼이, 그러나 때로는 불확실하게 또는 자신 있게 자기 생각들을 이야기했다. 바로 옆 또래 학생들의 말을 들으면서 같은 문제에 대해 다양한 입장이 있고, 각각의 입장에 나름의 근거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학생들이 무엇보다 의미 있게 생각했던 것은 우리 사회의 이슈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경험, 그 자체였다.


 학생들은 다른 누군가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가상의 의견을 제시할 필요 없이 온전히 자기 자신의 의견을 탐색하는 데 집중했다. 그래서 한번 정한 입장을 고집하지 않고 대화 중에 자신의 의견을 수정하거나 이전 토론에서 했던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이슈 토론을 “살아 있는 경험”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했다.


 초등학생들은 미성숙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슈 토론을 하는 것이 시기상조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한마디 첨언하고 싶다. 개인적 경험에 의하면, 초등학생들은 다른 사람들의 지식과 의견에 매우 유연하게 반응하며, 토론을 마친 후에도 친구나 가족과 토론을 이어가거나 혼자서도 이슈에 대해 반복하여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학생들이 어렸을 때부터 진지한 이슈 대화의 참여자로 여겨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학생들이 가정이나 학교에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경험은 제한되어 있다.


초등학생들도 얼마든지 이슈 토론에 참여하며
 또 한편, 학교나 학원에서 사회적 이슈와 관련하여 다른 사람과 대립, 충돌, 경쟁하는 부정적인 경험들을 이미 가지고 있다. 자신의 입장을 자유롭게 탐색할 기회도 없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반박하고 공격하는 경험을 먼저 쌓는다. 경쟁적 토론 환경에서 학생들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타인을 ‘적’으로 인식하고 이기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


 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학교 밖 사회로부터 차단당한 무균의 교실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들을 둘러싼 사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이제 학교 교육이 해야 할 일은, 학생들이 실제 자신들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이슈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충분하고 안전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안전한 교육 환경의 첫 번째는 학생들 사이의 비대립적 대화의 기회이다. 초중고 학생들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실험하고 새로운 생각에 도전하는 다양한 사고 실험의 과정에 놓여 있다.


 그런데 ‘오늘의 의견’을 ‘불변의 의견’인 것으로 여겨 더 생각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면 시민으로서의 잠재태(潛在態)를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와 타인의 의견을 분리하고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고정된 것으로 여기는 접근 방식은 사회적으로 양극단이 아닌 중간 지대의 목소리를 제거하고 서로 간의 정치적 타협을 위한 여지를 거의 남겨놓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민주주의는 목소리의 정치다.
 학생들이 학교 교육에서 정치적 존재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탐색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자신과 다른 정치적 지향성을 가진 사람들과 민주적인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는 태도를 형성하는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목소리의 정치이다. 모든 시민의 목소리가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약속’이다.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건 바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목소리를 내는 것에 선행하는 것은 목소리를 갖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의 길고 긴 공교육 기간은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정치적 목소리를 탐색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회를 충분히 마련하고 그 과정을 안전하게 돕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학교 교육, 학교 민주시민교육의 ‘약속’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 주 : 이 원고는 필자의 졸고, “정치사회적 이슈 스토리 기반 토론에 대한 초중고 학생들의 반응 분석: 학교 민주시민교육에의 시사점” [시민교육연구, 52(2), 155-196, 2020]의 내용을 활용하여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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