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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호] 대통령 취임식, 현대판 군주가 태어나는 자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4-18 09:49
조회
473

하상복/ 목포대학교 정치학 교수


 독립을 이룬 지 얼마 안 된 미국은 권력 구조로 유럽 모델인 의회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럽의 끊임없는 간섭을 받고 있던 신생국을 강력한 리더십 기반 위에서 안정적으로 성장시켜내야 하는 것이 핵심적인 이유였을 테지만, 의회제를 발명한 영국에 대한 반감도 작용했을 법하다. 그 나라는 대통령제라는 당시로써는 매우 생소한 정치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의회에서는 대통령이 왕과 어떻게 다른가를 둘러싸고 긴 논쟁이 있었다.


 전통적으로 국가는 왕, 황제 등 자연인적 인격에 의해 표상되어 왔다. 정치적 근대는 그 원리로부터의 근본적 단절에서 출발한다. 지배자의 카리스마라든가 혈연적 정통성에서 통치의 토대를 확립해온 전근대국가와는 달리 근대국가는 특정 이념 위에서 자신의 존립근거를 확보하고 정당성을 구축해왔다.


손에 잡힐 듯 눈앞에 보이는 권력


 오늘날 국가 정체성과 관련해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표방하지 않는 근대국가는 없다. 그 점에서 근대국가는 대단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다. 근대국가의 궁극적 주체로 명명되는 국민을 포함해, 주권, 자유, 평등, 인권, 존엄과 같은 근대 이념들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리고 국민을 대표해 권력을 행사하는 의회 또한 특정한 권력자가 아니라 이념을 공유하고 실천하려는 의원들의 집합적 실체로 작동한다.


 영국의 정치사상가 토머스 홉스가 사회계약으로 탄생하는 새로운 국가를 설명하기 위해 마치 절대적 군주를 연상시키는, 리바이어던이라는 인물을 표지에 그린 것은 근대국가가 풀어내야 할 정치적 숙제를 예견해주고 있다.


 정치적 근대는 자신의 이념적 추상성과 관념성이 인지되고 감지될수록 그것을 구체적인 감각적 형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과제 앞에 놓여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 존립의 원천인 구성원들의 충성심을 확보할 기반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느낄 수 없는 정치적 실체에게 자신을 희생할 존재는 없는 것이다. 그러한 연유로 근대국가는 다양한 층위에서 이른바 의인화(personification)와 상징화를 실천해왔다. 근대국가는 너무나도 다채로운 이미지로 둘러싸여 있다.


왕과 대통령


 미국이 발명한 뒤 많은 나라에 도입된 대통령은 엄격히 말해 근대적 원리에서 벗어나 있다. 정치적 근대는 자연인적 인격체를 매개로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전근대적 원리를 차용해 정치적 근대의 고민을 풀어낸 예외적이고 특별한 사례로 해석되어야 한다.


 대통령제 국가들에서 대통령 취임식이 의회제 국가들의 총리 취임식에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장대한 이유를 거기서 찾을 수 있다. 대통령의 취임의례는 전근대 군주의 즉위식을 방불케 한다.


 본질적으로 의례는 종교적이다. 우리가 종교를 성과 속의 이분법 위에 자리하고, 그 성을 체험하게 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면, 의례는 성스러움을 체험하고 공유함으로써 단일성의 느낌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종교적이다. 여기서 정치의례도 다르지 않다.


 새로운 권력자의 탄생을 알리는 즉위의례야말로 종교성을 짙게 느끼게 한다. 전통국가에서 군주의 즉위의례는 새로운 권력자의 신체를 정치적으로 성화하는 과정이다. 새로운 군주의 신성화를 위해 특별한 장소가 선택되고, 엄격하고 조밀한 의례절차가 진행되며, 중대한 의미의 상징들이 동원된다.


 우리는 프랑스의 가장 위대한 군주로 칭송받는 태양왕 루이 14세의 즉위식에서 그와 같은 원리의 놀라운 드라마를 만날 수 있고, 조선왕조 군주 즉위식에서도 동일한 원리와 양상을 만난다.


 그렇다면 그러한 의례는 과거의 정치적 유물인가? 그렇지 않다. 『의례, 정치, 권력』(Ritual, Politics and Power – D. Kertzer)이란 책이 보여주고 있듯이, 오히려 근대국가는 다양한 의례를 실천해오고 있다. 그러한 관점에 우리가 선다면, 전근대국가의 즉위의례 원리를 근대국가의 대통령 취임식에서도 관찰할 것을 예측해볼 수 있다. 대통령의 취임식을 위해 국가적 신성함으로 채워진 장소를 선택함으로써 공간적 성과 속이 구별된다.


왕의 즉위식과 대통령의 취임식


 그 성스러움을 감각화하기 위해 중대한 상징들이 결합하고, 새로운 권력자의 성화를 위해 취임의례의 원리와 절차와 형식과 내용이 구상된다. 즉위식을 마친 군주가 백성들의 죄를 면해주고, 병자들을 치료해줄 초월적 존재로 태어나는 것처럼, 취임식을 끝낸 새로운 대통령은 가장 신성하고 가장 성스러우며 가장 위대한 국가적, 공적 주체로 재탄생한다.
한국은 이러한 취임식 양상의 대표적인 모델 중 하나로 관찰될 법하다. 1948년 1공화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출발하는 한국 대통령 취임식의 전통을 보자. 새로운 권력자는 근대국가의 이념적 신성함이 분출되는 국회의사당을 무대로 자신의 권력을 드러낸다.


 신임 대통령은 취임식장에 도착하기 전에 근대국가의 애국이념을 표상하는 국립묘지(국립서울현충원)를 들려야 한다. 그는 국가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친 위대한 혼령들의 세례를 받음으로써 신성한 존재로의 전환을 시작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근대정치가 결코 전근대정치 원리와 말끔하게 단절될 수 없음을 인식한다. 근대는 합리화와 세속화를 본질로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근대는 죽은 자의 세계와 산자의 세계가 조우하고 소통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본래 동양의 군주 즉위식을 구성하는 상징적 과정이었다.


 새로운 군주의 즉위식은 사망한 군주의 장례식에서 그 문을 열어왔다. 이제 국회의사당에 도착한 신임 대통령은 근대의 가장 신성한 이념인 민주주의와 동일한 존재로 표상된다. 그는 전근대적 신성함의 원리와 근대적 신성함의 원리가 교차하는 지점 위에서 자신의 정치적 성화를 이루어낸다. 그렇게 성스러움을 입은 그의 존재는 그의 언어를 통해 마법의 힘을 실천한다.


 우리는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행해지는 취임선서와 연설이 결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언어행위로 축소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 언어들은, 마치 제사장이 그러하듯이 의례의 공간에 모인 사람들에게 자신의 성스러움을 분배함으로써 자신과 그들이 공통의 집합체로 단일화되고 일체화되는 신비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대통령 취임식은 성스러운 정치적 존재를 탄생시키는 장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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