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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민주주의는 어디서 오는가(윤요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11-22 14:32
조회
261

윤요왕 / 전 춘천별빛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웃마을 원주에 마지막 남은 단관극장인 ‘아카데미 극장’이 논란과 갈등 끝에 철거가 되었다. 원주지역 시민단체들과 종교계는 물론 한국영화학회, 한국사회학회, 역사문제연구소 등 역사·기록·문화·예술·건축·사회 등 다양한 학제를 망라한 단체들까지 나서서 긴급 호소문을 발표하고 국회포럼을 여는 등 보존에 대한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주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도 현장 농성장에 가서 찬반의 이야기를 들어봤지만 어쩔수 없는 ‘힘’ 앞에 무기력한 생각이 들면서 씁쓸함과 허탈감이 들었다. 시민들의 여론조사를 통해 보존-철거의 결정을 내리자는 시민사회의 마지막 요구도 무산되었다.



<‘깊은 민주주의’의 또 다른 예>
"선거로 선출되었다는 단 하나의 근거로 국민(혹은 주민)들의 의사는 묻지 않고 마치 제왕처럼 군림하는 정치지도자, 행정책임자들에게 너무나 길들여진 우리로서는 그저 부러워만 하고 있어야 할까?"
<경향신문 2015년 / 고 김종철 | 녹색평론>


얼마 전 ‘깊은 민주주의’(Deep Democracy) 관한 포럼에 참가하면서 2015년 경향신문에 기고한 故 김종철 녹색평론 편집장님의 글을 읽게 되었는데 원주 아카데미 극장 철거현장이 오버랩되었다. 그동안 마을자치, 주민자치, 마을공동체 활동과 정책사업들을 통해 직접민주주의의 노력들이 다양한 곳에서 펼쳐지고 있지만 아직 멀었구나 생각되었다. 지방자치, 지방분권은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까지만 내려온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풀뿌리 직접민주주의(마을자치 등)를 통해 주민,시민,국민들의 권한과 자치를 위해 노력해 온 것이 아직 멀었구나 하는 자괴감까지 든다. 비단 지방작은 소도시만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2024년은 알 수 없는 국가의 경제위기, 소득불균형으로 그 어느때보다 힘든 한해가 될 거란 예측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걷어진 예산이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하나로 하루아침에 없어진다는 통보를 받아야만 하는 오늘의 현실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깊은 민주주의’(Deep Democracy) 관한 포럼에서 발제를 한 성공회대 김찬호 교수님의 한국 민주주의의 자화상에 대한 분석을 새겨 봐야 할 것이다.


첫째, 옅은 민주주의 측면에서는 선진국이다(선거,법의 지배 등) 둘째, 뿌리없는 정당의 포플리즘 공세로 편가르기 속의 혐오아 적대 감정의 격화로 과제해결 능력의 퇴화가 가져온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는 정치 셋째, 특정 소수의 단기적 이익 넷째, 불신과 냉소주의가 만연되어 돈과 권력과 사회적 위세를 향한 질주로 진단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치현실의 대안으로 ‘파커 파머’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는 정치권력과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 ‘마음(heart)’을 화두로 던지고 있었다. 마음이 열린 사람들이 정치의 주축이 될 때, 보다 평등하고 정의롭고 자비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 같은 얘기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민주주의를 얘기하면서 제도나 체계, 질서, 법 등을 강조하면서 역설적이게도 형식적 민주주의만을 구축한 건 아닌가 성찰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홋카이도의 작은 시골마을 ‘히가시카와’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8,000명의 주민들이 사는 작은 산골농촌마을이었다. 이 마을에서 어떻게 민주주의(자치)와 마음이 정책화되고 마을을 가꾸어 가면서 지역소멸의 위기를 극복하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내 호기심과 관심을 끈 것은 근사한 중장기 정책도 상큼한 아이디어도 아닌 주민들과 행정의 지역의 아이들에 대한 ‘마음’이었다. ‘너의 의자’ ‘배움의 의자’라고 불리우는 태어난 아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작은의자였고 중학생들이 3년동안 공부하는데 앉는 의자였다. 지역의 마음의 선물로 시작한 의자가 산업화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단초가 되었다.


여기서 하나 더 궁금한거는 행정과 어떻게 이게 논의가 되고 합의가 되었는지였다. 우리보다 훨씬 앞서서 또 깊어진 풀뿌리 지방자치(마을자치)가 민주주의의 방식으로 실현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알게되었다. 히가시카와 행정공무원들이 일을 함에 있어서 지켜야 하는 원칙같은 것이 있는데 ‘3無’라고 한다. 이 3無는 공무원들이 ‘예산이 없어서 못한다, 다른지역 사례가 없어서 못한다, 우리지역에는 없다’라는 변명과 핑계가 없다는 뜻이다. 다양한 마을의 분과위원회가 있고 자생단체와 주민들의 의견이 제안되고 토론해서 협의하면 행정은 최대한 그것이 가능하도록 방안과 정책을 찾는다고 한다. 그러니 주민들의 효능감이 높아져 참여가 왕성하다는 설명이다.


결국 민주주의는 국민들 각자가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 민주주의가 ‘마음((heart)’을 기본으로 권한과 권력을 국민들에게 가능한한 이양해야 하는 단계로 발전되어야 하리라 생각한다. 선거라는 그 제도 하나로는 국민이 주인인 국가를 만드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없음을 우리모두 깊이 깨달아야 한다. 권력을 권한을 가졌다고 모든 것이 통용되던 시대는 지나갔다. 시민들에게 묻고 확인하고 대화하는 최소한의 민주적인 절차를 거치는 정치인들을 보고 싶다. 또한, 시민들의 삶은 우리들의 마음과 행동에 달려있음을 다시한번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