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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0월(정한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10-31 11:30
조회
147

정한별 / 사회복지사


 

2018년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코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들은 세 번 죽는다. 숨이 멎는 순간 생물학적으로 죽고, 장례식에 온 하객들이 떠나갈 때 사회적으로 죽고, 그 사람을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이 죽으면 그것이 진정한 죽음이다.”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에서 사고가 났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사고 뉴스에 이은 전원구조 뉴스로 세월호 사고는 잠깐 동안 관심 밖으로 비껴났다. 전원구조가 오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14년 4월 18일 세월호는 완전히 침몰했고, 300여명이 숨졌다. 생존자들의 다수는 해양경찰보다 늦게 도착한 민간선박에 의해 구조되었고, 침몰한 선체의 인양은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인 2017년 3월 22일이나 돼서야 시작되었다.

출처 - 무등일보


세월호 사고는 대한민국의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대형 여객선의 선장을 계약직으로 고용한 해운사, 선원 교육 등의 관리 소홀, 선박의 적재 한도 초과, 사고가 나자 배를 버리고 도망가버린 선장과 선원, 대형 재난의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정부, 보도윤리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던 언론, 이와 대비되는 시민사회의 구조와 자원봉사.

세월호 사고를 기점으로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정부가 자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있겠구나, 책임을 질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일들을 뻔뻔한 얼굴로 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구나. 부패한 정부에 비해, 우리 시민들의 의식은 상당히 성숙했기에 그래도 희망은 있구나.

2014년 봄에 생겼던 관심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내내 뉴스를 챙기며, 관련 소식을 챙기고 관련 행사를 챙기고, 자원봉사활동을 했던 마음은 얼음이 전부 녹아버려 싱거워진 아이스아메리카노처럼 옅어졌다. 그 사이 세상은 또 변했다.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무너지고, 은행과 기업도 무너지고, 배가 침몰하는 것도 모자라, 도심의 길거리 마저 무너져 버렸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골목길에서 160여명의 시민들이 사망했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사람 많기로 유명한 이태원 할로윈 축제에서 사람들이 깔려 유명을 달리했다. 축제 이전 많은 인파가 예상되었지만 경찰, 지자체 그 누구도 적극적으로 인파운집을 대비하지 않았다. 사고가 일어나기 3시간 전부터 수많은 인파로 인한 압사 우려 신고가 접수되었지만 시민들의 신고 역시 참사를 막지 못했다.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기시감을 느꼈다. 불현 듯 2014년 4월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에 볼을 꼬집어도 봤지만, 아무리 볼을 꼬집어도 현실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다.

출처 - KBS뉴스


정부는 국가애도기간을 정하며 근조 리본에 근조라는 글씨를 쓸 수 없게 했다. 참사라는 명칭도, 피해자라는 용어도 쓸 수 없게 했다. 대한민국의 안전을 책임지는 부서의 장관은 “경찰 등 인력 배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책임을 피하는 데 급급했다. 이태원 참사 외신 기자회견에 참석한 높으신 나으리는 “한국 정부 책임의 시작과 끝은 어디라고 보느냐”라는 외신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잘 안들리는 것에 책임져야 할 사람의 첫 번째와 마지막 책임은 무엇인가” 라며 웃는 얼굴로 농담을 뱉었다.

한 기초지자체 의원은 세월호를 운운하며 “나라 구하다 죽었냐”고 조롱 섞인 혐오를 SNS상에 뿌렸고, 대통령실의 비서관은 “부모도 놀러 가는 것을 못 말려놓고 왜 정부에게 책임을 떠넘기냐”라며 도대체 이해가 불가능한 논리로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고, 여당의 국회의원은 “지난 세월호 사태에서 우리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국가적 참사가 발생했을 때 이를 숙주로 삼아 기생하는 참사 영업상이 활개치는 비극을 똑똑히 보았습니다”라며 혐오표현의 진수를 보여주셨다. 어찌보면 고마운 분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분노는 연료로 쓰일 수 있으니 말이다.

출처 - 한겨레


10년 같은 1년이 흘러, 다시 10월 29일이 되었다. 참사의 진상을 밝히게 될 거라는 일말의 기대감을 안고 시작한 국정조사는 그 어떤 의혹도 밝혀내지 못한 채 끝나버렸고,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법사위에 계류중이다.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지만,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참사의 원인도, 참사에 대한 책임도 밝혀진 게 없는데,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다.

세월호도, 이태원도, 잊지 않아야 할 것들, 잊을 수 없는 아픈 기억들이 조금씩 늘어가는 현실에 가을밤의 공기가 한없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너무 일찍 별이 된 이들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라도 조금 더 머물 수 있도록 기억의 나무에 물을 주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