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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16 학교폭력의 해법 찾기(이회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8-12 11:20
조회
596

이회림/ 경찰관


 A, B 두 중학생들 사이에 1대 16의 학교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중학교 2학년 학생인 ‘기훈이(가명)’는 아파트 복도에 몰려온 16명의 아이들이 현관문을 발로 차며 위협하는 소리에 극도의 공포감을 느꼈다. 직접 경찰에 신고할 용기를 내지 못해 다급히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를 알렸고 친구가 대신 112로 신고했다. 출동 경찰이 작성한 112신고처리표의 사건개요란에는 “친구 집 앞에 10명 이상이 찾아와 벨을 계속 누른다. 친구를 대신해 신고한다”라고만 간단히 적혀 있었다.


 반면에 종결란은 16명 아이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그들의 부모님 전화번호로 꽉 차 있었다. 도합 서른명 넘는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중요한 사안이니만큼 A4사이즈의 보고서 한 장이 매우 무겁게 느껴졌다.


 먼저 피해자 기훈이의 학교폭력 담당교사에게 전화를 건다. 수업중이라 받지 않아 문자로 자초지종을 보내 놓고 학생부장 교사에게도 전화한다.


 역시 받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교감선생님에게 연락하니 다행히 바로 받으신다. 신고 내용에 대해 알리고 학생과 면담이 가능한지 학부형과 학생에게 의사를 물어달라고 요청한다. 학교측에서 면담 준비를 하는 동안 제복을 챙겨들고 학교 정문에 들어섰다. 곧 점심시간이 시작이라 점심을 먹고 바로 상담실로 오겠다는 기훈이를 기다렸다. (*기훈이는 제복 경찰과 만나는 모습을 다른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해서 사복차림으로 만나기로 하였다.)


 기훈이를 기다리는 동안 B학교 담당 SPO(학교전담경찰관)에게 전화를 건다. 나의 좋은 동료인 김경사는 이미 주동자인 ‘덕수’ 학부형과의 면담을 통해 신고처리표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저간의 사정을 샅샅이 파악하고 있었다. 김경사를 통해 기훈이가 초등학교 시절 집단 따돌림을 당하던 피해자이고 덕수는 그런 기훈이를 보호해주던 유일한 친구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덕수조차 기훈이를 따돌리는 식으로 상처를 준 일이 한 번 있었다고 한다. 이때 덕수 어머니의 주선으로 여러번 사과를 받긴 했으나 기훈이의 마음속은 배신감과 피해의식으로 단단히 응어리졌고 서로 다른 중학교로 배정을 받은 후로는 어쩌다가 한번씩 안부를 묻는 정도로만 연락을 하였다고 한다.


 기훈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112신고사건처리표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루는 덕수가 기훈이에게 전화를 걸어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며 하소연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화 도중, “너는 내 편이냐? 그쪽(여자친구)편이냐?” 라고 캐묻고 “줄을 서라” 고 말하며 무리하게 선택을 강요하는 일이 일어났다. 애초에 덕수에 대한 신뢰가 없던 기훈이는 이를 오랜만에 전화 온 동네친구의 한심한 넋두리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한다.


 그래서 휴대폰의 녹음 기능을 켜 녹취를 하였고 통화가 끝난 후, 둘 간의 대화 내용을 고스란히 유튜브에 업로딩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덕수의 어머니를 겨냥한 욕설을 해당 유튜브에 댓글로 단 후 주변 친구들에게 링크를 전달해버렸다. 이런 행위를 한 이유에 대해 물으니 “다른 아이들이 덕수의 실체를 알았으면 해서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덕수의 친구들인 15명의 아이들은 애초에 기훈이가 먼저 학교폭력에 해당하는 행위를 저질렀기때문에 응징받아 마땅하고 자신들의 분노는 순수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친구의 명예가 훼손되고 친구의 어머니까지 모욕당한 것이 사실이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16명이 1명에게 집단으로 몰려가 고함치며 문을 발로 차고 위협하는 행위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진심을 담아 자발적으로 하는 사과는 장려되어야 함에 틀림없지만, 사과를 하지 않는 경우라도, 당사자에게 사과를 강요하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 단죄하듯 우루르 몰려가 위력을 과시하며 사과를 강요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보복심에 기인하고 또한 인격권 침해에 해당되는 행위일뿐이다.


 이제는 양쪽 다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상황. 이대로 학폭위나 형사고소 절차로 들어가면 각자의 위법행위에 책임지는 조치를 받는 것이 불가피하다. 즉, 서로에게 더 깊은 상처로 남을 결과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김경사와 나는 여기서부터 고민이 깊어졌다. 그래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깊이 깊이 들어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양쪽 다 서로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깊이 뉘우치고 있고 사과를 통해 해결하고 싶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마음이 그러하다면 더이상 학폭위나 형사 고소등의 절차를 밟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비치셨다.


 우리는 경찰서에서 주관하는 ‘회복적경찰활동’ 제도를 활용하여 공식적인 ‘사과와 화해의 절차를 가지는 것을 제안하였고 양쪽 아이들과 부모님들 모두 이에 동의하였다. ‘회복적경찰활동’이란, 상담전문기관, 경찰, 그리고 가·피해자 학부형, 학생들이 경찰서의 상담실 등에 모여 사전모임, 본모임, 모니터링의 3단계를 거쳐 ‘약속이행문’을 작성하는 절차로 끝나는 회복적 대화 모임을 말하는데 피해자의 피해회복과 관계 개선을 가장 큰 목적으로 한다.


 3시간 동안의 회복적 대화모임이 끝난 후, 아이들과 학부형들을 경찰서 정문 앞까지 배웅하면서 기훈이의 심하게 말린 어깨를 보게 되었다.


 ‘서로 사과하고 잘 끝났으니 그만 어깨 좀 펴자!’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기훈이의 등을 한 번 탁! 치며 말했다. 곁에 있던 어머니께서 살며시 웃으시지만 기훈이는 약간 놀라며 멋쩍어 할 뿐이다. 곧 다시 위축된 어깨로 걸어가는 기훈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초등학교때 둘 사이에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내 마음이 씁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