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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 창피한 답보를 드러낼 이유(신종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12-07 09:59
조회
226

신종환 / 공무원


 

대학생 시절은 무언가를 배우고 이해한다는 사실에 취했었다. 삶의 원동력은 여러 곳에서 흘러왔었고 세상은 총천연색이었으며 새로운 앎과 깨달음이 주는 일상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방향으로 마음을 이끌었지 ‘무엇을 더 하지 못할 때는 어떡할까’에 대한 공간을 많이 남기지는 않았다. 돌이켜 보면 당시의 심취된 마음은 무언가를 이해할 때 느끼는 절반의 감정과 그 감정을 느낌으로써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역시 미래에 대한 구체적이지 않은 결의로 한없이 유예시키는 안정감이 절반씩 혼합된 것이었던 것 같다.


월급생활자가 되고 나서는 무언가를 알고 이해하는 것은 점점 어렵고 알고 있는 것을 잊지 않는 일에 할애할 시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생활 속 작은 투쟁이 되었다. 무언가를 공부하거나 과거를 반추하는 일에 겨울 때면 DC코믹스의 그래픽노블을 영화화한 ‘와치맨’의 대사가 떠오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래는 어두워지지만 과거는 밝고 또렷해진다’.


향수가 여러 형태로 나타날 때면 그 까닭은 지금 여기의 문제를 직면하기보다는 다시 돌아갈 가능성이 없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이 더 편한 방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동시에 그 충동에 휩쓸리지 않는 데 애를 먹는 자신을 보게 한다. 한 때 열풍이 불었던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혁명’에서 선생은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스무살 나이에 무정부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바보지만 서른이 넘어서 무정부주의자인 사람은 더더욱 어리석다’고. 편히 배척했던 이런 문장들은 과거에 보이지 않게 각자를 추동해주던 동력의 공급은 중지되고 두껍고 차가운 현실이 목전에 다가와 스스로도 모르는 채 피동적으로 마음이 전환될 것이란 은유임을 종종 느낀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부지런히 캐내고 보듬은 낙관적인 면을 알리거나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지나치던 것들에서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글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이 의미없는 데이터 낭비는 무슨 짓인가 싶다. 그러나 드러나는 훌륭한 사람들에 비해 분명 완전 연소하지 않아도 훌륭함을 잊지 않고 또 지향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란 생각에 키보드를 두들긴다. 여러분, ‘양심과 지성에 자꾸 구멍이 난다고 벗어던지지 맙시다. 그것을 기워서 어떻게든 입어보려는 노력만큼이 저의 영역인만큼 우리의 영역이에요!’ 이어 소개할 책에 따르면 맹자는 번제물로 끌려는 소의 울음에 번제물 양으로 바꾸라는 왕의 태도에 말했다고 한다니까요! ‘그것이 바로 인을 행하는 기술입니다.’라고 했어요!


김영민 교수의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지지부진함과 그 지지부진함에 계속 머물러 있으려는 태도에 대한 저자의 응원을 낄 수 있는 책이다.


책은 ‘논어’를 재료로 고전 읽기에 대한 훈련의 부분을 소개한다. 저자는 우선 서두에서 고전을 전가의 보도처럼 대하는 태도를 비판함으로써 고전의 독해는 여러 맥락을 알고 적용해야 하는 콘텍스트적 독해임을 강조한다. 논어의 경우 공자가 이루고자 했던 가치들은 그 시대 안에서 창안되고 해석되고 추구되던 것이었으므로, 그대로 지금으로 옮기는 적용하려는 시도는 헛되다는 것을 짐작키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고전을 다시 읽는 것은 그들이 바라던 것이 지금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짐작해보고 변화된 지점에서는 어떤 방향성과 지향성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곱씹다 보면서 생기는 차이와 공통점에서 삶의 보편성을 체득할 수 있으리라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보편성, 이것에서 저것을 발견할 수 있는 훈련된 능력을 우리는 지혜라 부른다.


저자는 이 책을 시작으로 여러 권에 걸쳐 독자와 고전 읽기를 시도하고자 하나 아직 공자와 논어에 관해서는 저자의 다음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이 책은 고전 같이 읽기의 시작이므로 책 내부에서 서로 연결되지 않고 나열되는 여러 구절과 에피소드는 논어 자체 보다는 고전이란, 나아가 텍스트 읽기란 이처럼 시간적, 당시 화자 내지는 저자가 처한 상황과 그 상황에서의 지향성을 염두하며 읽고 또 그 감각을 연마하는 것이 독서의 목적이기도 함에 대한 안내판이다.


가령 신에 대한 부분에서 저자는 공자와 묵자의 시대의 문제성에 반한 그들의 의견을 되짚으며 그 시대 속 그들의 한계성과 급진성을 한꺼번에 보여준다. 묵자는 신에게 적극적으로 원하는 것을 갈구하라고 말함으로서 피동적으로 신이 주는 대로 받아들임을 타파코자 하였다, 반면 공자와 맹자는 신이란 없다고 말하나, 신에 대한 예는 계속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종교가 있든 없든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행동이라고 보기 어려운 바람과 기도에서 묵자는 주체적인 면을 부각해 강조한 것이고 공자는 예가 가리키는 목적 그 자체보다도 목적을 위해 수반되는 올바른 과정이 우리를 더 이롭게 함에 주목했다. 어느쪽이든 당시의 민중이 봉착한 한계를 타파하려 한 것이고 그 한계를 넘을 수 있는 단초를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재발견하고자 한 것이다.


책은 더 많은 내용들을 담지만 그 내용들은 개별적 함의를 짚기보다는 이미 널리 알려진 내용을 여러 각도에서 짚어볼 가치가 있다고 알리는 예시들의 모음집으로 느껴진다. 노나라의 제신으로 있다 제사 고기가 본인에게 이르지 않아 떠났다는 부분에서도 저자는 현실에 비근한 예시를 들어 독자에게 납득 가능한 상황을 다각으로 제시하는데 비중을 둔다. 책의 마치는 말에서 책의 내용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한겨레에 기고한 글들의 모음이라는 문장도 이 책이 저자가 고전이라는 무의미해 보이는 텍스트의 유의미한 콘텍스트를 읽자는 취지를 매차례 권유했던 기록으로 읽히게 한다.


이뤄지지 못한 바람들은 어떻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져야 할까. 지난 공무원노조 속초시지부 청년 영화 모임에서 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에 대해 ‘무엇이고자 싶었으나 무엇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온정’이라고 썼다. 앞선 책의 시선들이 발화되지 못한 것들은 발화되과자 했던 것으로 재발견 했듯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시선도 비실현을 실현의 가능성으로 다시 보고자 했다. 이 책의 시선도 앞선 영화의 시선이 담은 고만고만한 미처 발화되지 못한 것들을 향하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 앞으로의 나날에서 나와 당신 스스로를 긍정하는 단초를 발견하고 뿌리 내리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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