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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오징어 중학교 이야기2- 화해(이승은)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11-23 10:16
조회
279

이승은 / 경찰관


 

”저,,, 기훈이랑 다시 만나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 시선은 더 이상 신경


안 쓰고 싶네요..“


”덕수랑 저랑 다시 전처럼 만나면 안되나요? 함께 보내던 시간들이 그리워요.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든지간에요“



위의 말들은 어떤 상황에서 나온 말일까요? 기훈이와 덕수라는 성소수자 커플이 주변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고 싶다는 그런 사연 ? 언뜻 봐서는 그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기훈이는 학교폭력의 피해자, 덕수는 학교폭력의 가해자입니다. 덕수와 다른 아이들 네 명이 기훈이를 청소도구함에 억지로 밀어 넣으면서 폭행을 하였고,이 사건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회부되어 가해자 전원에 대해 2호(신고,고발 학생에 대한 접촉,협박 및 보복행위의 금지)조치가 내려졌습니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이후 한 달 남짓 흐른 후,덕수와 교육청 wee센터 특별교육장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그동안 학교생활에 어떠한 변화가 있는지 그리고 기훈이를 우연히라도 마주친 적이 있다면 어떻게 서로 반응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출처 : pngtree


 

”기훈이가 요새 자꾸 저한테 말을 걸어요.그저께는 우리반에 와서 제가 입고 있던 점퍼를 빌려달라길래 거절 못 하고 줬더니 그걸 입고 교내를 돌아다니고요..어제는 점심 시간에 운동장에서 축구하고 있는 데 갑자기 뛰어 들와와서 제 옆에서 같이 축구를 하고 있고..우리는 절대 다시 만나면 안 되는 사이라서 반도 분반되었는데 말이죠.


 

덕수의 말만 듣고 섣불리 판단 할 수 없어 나중에 기훈이에게 따로 물어서 확인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육이 끝난 후 덕수를 차에 태우고 집으로 데려다 주는 길에 기훈이와의 일에 대해서 다시 물어 보았습니다.


 

”아까 네가 한 말,기훈이가 요즘 너한테 자꾸 다가온다는 거,,


너 솔직히 그럴 때 마다 기분이 어때?“


“솔직히 이해가 안돼요. 기훈이가 다가올 때마다 도망갈 수도 모른 척 무시할 수도 없고요. 다른 애들이 제가 걔한테 접근하는 걸로 오해하고 선생님들께 신고할까봐 겁이나기도 해요.”


“그럼 넌 기훈이를 피하고만 싶어? 아니면 다시 예전처럼 같이 놀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니?”


조수석에 앉아 정면만 응시하고 있던 덕수가 고개를 떨구며 말합니다.


“사실,예전처럼 다시 친하게 지내면 좋죠..그 사건 전에는 기훈이가 매일 아침 저희집에 절 데리러 와서 함께 등교하고 그랬거든요. 담치기도 같이 하고 그랬는데...”


‘담치기’라는 단어를 내밷을 때 살짝 입가에 미소가 어리는 모습을 보면서 덕수가 기훈이와 보낸 시간들을 은근히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너 기훈이랑 화해하고 싶지? 그런거지? 내가 도와줄게. 솔직히 말해 볼래?”


제 말이 떨어지자마자 덕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합니다.


“에이~참.. 맞아요. 다시 예전처럼 지내면 제일 좋겠는데 어쩌죠? ”


“기훈이가 피해자이니 기훈이의 결정이 가장 중요한 거 아니겠니?


기훈이에게 의사를 물어본 후에 교육청 담당자에게도 물어볼게.“


“오~! 진짜요? 헤헤~”


덕수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발랄하게 당부의 말까지 남깁니다.


“샘~그거 진짜 꼭 알아봐 주세요. 샘 제 전화번호 알죠? 부탁 좀 드릴게요~샘~”


“알았다 좀 기다려보렴 ,, 으이구~~”


 

곧장 기훈이를 만나 덕수의 말이 모두 사실인 것을 확인한 후 지체없이 교육청 담당자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교육청에서는 피해학생이 원하면 접근금지 처분은 무시해도 괜찮지만 이후 덕수가 다시 기훈이를 괴롭히게 되면 가중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뒤따랐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 둔 방과 후,


 

덕수와 기훈이는 저와 학생부장 선생님 앞에서 악수를 하며 화해를 하였고 오랜 만에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함께 하교하였습니다.


보통의 경우, 학교폭력으로 인해 2호 조치 결정이 내려지면 기훈이와 덕수처럼 피해자와 가해자가 적극적으로 화해를 원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둘의 사연은 최초 신고가 이루어진 직후부터 학폭위 개최와 화해에 이르기까지 피해회복이 빨랐던 매우 보기 드문 사례입니다. 자주 일어 나는 일이 아니기에 2호 처분을 더이상 준수하지 않아도 괜찮은지에 대해 현장 선생님들도 정확히 모를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위의 사례처럼 학폭위를 개최한 교육청 담당자에게 문의해 보면 명확한 대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같은 기훈이와 덕수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학교ㆍ경찰ㆍ그리고 피해학생이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 화해의 골든타임을 놓치지않고 따스한 악수로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