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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절실할 때 필요한 것 - 손상훈/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상담위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6:31
조회
214

손상훈/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상담위원



눈물을 흘리며 준법을 외치던 경찰청장 내정자와 성폭력 사건으로 민주노총 지도부가 비슷한 날 사임했다. 이번 사안을 대리했던 인권단체는 지난 주 민주노총의 간부였던 사건 당사자에 대해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이다. 일반 언론들이나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사건이 될 수 도 있겠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잊어도 시민사회단체에 일하고 있는 우리 자신들은 잊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왜 자꾸 재발되느냐와 대안은 무엇인지다. 원인과 해결방법을 알아야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민사회단체 활동의 핵심이 대의와 명분, 그리고 사명과 비전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근거를 갖고 계속 활동할 수 있다.

노동단체에서 일하는 한 분은 이번 민주노총 지도부가 총 사퇴한 것으로 '성폭력 사건'이 잊히길 바란다고 말한다. 이런 바람은 인권의 기준, 성찰의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경찰청장 내정자는 눈물을 흘리는데, 민주노총 간부들은 참회의 눈물을 흘리지 않아서가 아니다. 곡소리를 내고 운다고 해서 같은 잘못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정부나 공공기관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휘두르기 위해서는 내부에 대한 칼날도 무디지 않아야 한다. 하늘을 우러러 티끌하나 없는 사람이나 조직이 있겠는가? 그러나 조직 내부에서 자정 노력을 하고, 이런 노력에 진정성을 담으려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일반 회원이나 평조합원에게도 이런 자세는 필요하겠지만, 그에 앞서 일하는 사람들부터 책임있게 활동하겠다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책임있는 자세 다음에는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평가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민주노총이란 조직과 가해자는 기회를 여러 번 놓쳤다. 과연 민주노총 뿐일까. 반복되는 시민사회 내부의 성폭력 사건들이 돌장승처럼 우리 앞에 서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같은 잘못이 반복될 위험 요소가 우리 주변에 그대로 맴돌고 있다.

몇 해 전 <시민의신문> 이 모 사장의 성희롱 사건을 접하면서 시민사회의 '성찰'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 때와 지금의 민주노총 사건은 엄연히 다른 사건이다. 하지만 시민사회가 함께 돌아봐야 할 성찰의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서는 똑같은 사건이다. <시민의신문> 사건 진행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저명한 지도자 한분이 공개적으로 이 모 사장을 옹호하고, 이 모 사장에 대한 비판이 잘못되었다는 항변을 하기도 했다. 사실 책임있거나 유명한 단체의 중견 활동가들 대부분도 이 문제를 외면했다. 그들은 침묵했지만, 침묵이 묵인이나 방조와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다. 본의와 상관없이 침묵이 면죄부가 되기도 한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은 스스로를 비춰보는 하나의 거울이기도 하다. 시민사회 내부의 인권의식은 어떤 수준인지, 조직을 운영하는데 있어 성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아픈 숙제가 주어진 것 같다. 솔직히 나 자신도 다른 할 일도 많고, 더 중요한 일도 많은데 성폭력 사건 같은 '사소한' 일은 그냥 사과를 잘하고 넘어갔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바람을 가지기도 했었다.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 등 피해정도에 따라 단계론적 접근만 생각하고 성폭력이 아닌 성희롱과 성추행은 아직 위법이 아니거나 범죄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할 때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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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신문> 이 모 사장의 성희롱 사건에 대해 항의하는 시민사회의 젊은 운동가들의 모습.


그러나 이제는 세상도 바뀌었고, 관련 법률도 바뀌었다. 시대의 흐름에 쫓아가지 못하거나, 피해자와 연대하려는 상식도 갖추지 못한 게 잘못이다. 스스로 공부하지 않고 스스로 변화하지 않고 구태의연하게 머물러 있던 것이 잘못이었다. 세상은 민주노총이나 시민사회단체의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냉정하고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에서 일반 직장에서도 하는 성희롱예방교육을 하는 단체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30명 이상의 모든 직장에서 의무적으로 받는 기본적인 프로그램조차 운용하지 않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성폭력 같은 것은 그저 여성인권관련 단체의 사업으로만 여기는 태도도 적지 않다.

그래서 이번 사건이 교훈이 되었으면 좋겠다. 구성원들의 인권의식을 높이고 내부에서부터 착실한 성찰이 진행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시민사회단체가 보다 빨리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교육활동도 강화되어야 한다. 아예 교육이 없었다면 지금부터라도 시작하고, 아주 조금 형식적인 교육만 있었다면 지금부터라도 활성화해야 한다. 자기 자신과 자기가 속한 조직을 함께 들여다 볼 수 있는 마음을 관찰하고 사유하는 명상교육도 필요하고, '자정 진단 기준' 도 마련되어야 한다.

한 때 분노의 마음, 복수의 마음만으로 군사정권에 대항하기도 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각팍하기도 했지만, 싸움이 동인이 분노만일 수는 없다. 공안통치, 철권독재에게 분노를 느끼는 건 너무도 당연하지만, 그 분노의 첫마음만으로 운동을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 분노라는 첫번째 문제의식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를 맑게 하는 일'을 통해 자신을 점검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성희롱 예방교육이나 성찰을 위한 교육, 또는 인권교육이 그저 맛 보기식 또는 '우리도 이런 일을 한다'며 면피용으로 진행되어선 안된다. 지도부가 총사퇴해야 할만큼 중요한 문제이고, 아니 그 이전에 20년 역사의 민주노조운동의 뿌리 자체가 흔들리는 중대한 사태임을 인식해야 한다. 사태를 무겁게 인식한다면, 그만큼의 무게로 인권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경찰관도 군인도 인권교육을 받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의 지도자들이라면 훨씬 더 많이 철저하고도 심도깊은 교육이 필요하다.

겉말로가 아니라, 속내까지도 잘못을 지적해 준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면, 뼈저린 각성의 결과물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민주노총만이 아니라, 그동안 적당히 지냈던 시민사회단체 모두가 뼈아픈 각성의 바늘을 찾아야 한다. 그런 과정이 모두 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