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내일을 위한 시간을 위해(신종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2-01 16:08
조회
302

신종환 / 공무원


 

오늘의 글은 2015년에 개봉한 프랑스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다. 영화에서 산드라는 복직 예정인 회사에서 해고될 위기에 처해있다. 그러나 친한 동료의 항변으로 그녀의 해고 여부를 직장 동료들이 투표를 통해 결정하게 된다. 그녀가 해고되면 동료들은 1,000유로, 당시 기준으로 130만원 가량의 보너스를 받게 되고, 동료들이 보너스를 거절키로 하면 그녀의 자리는 유지된다.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포스터


 

그녀는 다가올 투표에서 자신의 복직을 부탁하기 위해 같이 일했던 동료들을 만나러 간다.어떤 동료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얘기하며 미안한 마음으로 거절하고, 어떤 동료는 자신에게 부탁하러 온 그녀를 보고 울며 그녀에 대한 지지를 약속하고 부자가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그녀의 말을 듣던중 부자간에 몸싸움이 난다.


 

복직을 향한 그녀가 겪는 어려움은 공권력 등의 외부적 제재로 인해 발생하지는 않는다. 경찰도 행정력도 그녀를 막거나 훼방 놓지 않는다. 그녀를 괴롭게 하는 것은 동료들이 자신으로 인해 이런저런 식으로 불편해함을 느끼면서도 계속해서 불편을 유발해야 하는 순간이 이어짐에서 기인한다. 이는 계속해서 남을 불편하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서러운 회의감이기도 하고 자신의 더도 덜도 없는 자리를 위해 이만큼의 일을 감수해야 하는가 하는 다소 우울하고 별로 던져본 적 없는 질문으로 읽히기도 한다. 끊임없이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을 목도해야 하는가, 자신이 130만원이라는 금액보다 그들의 인생에서 낮은 가치를 지녔는가. 아팠던 나날에서 회복하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것만 해도 번거로운데 왜 자신은 남들을 이토록 불편하게 들쑤셔야 하는가. 가뜩이나 슬픈 그녀에게 이어지는 질문들은 그녀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산드라의 여정은 자신의 자리의 소중함과 무거움을 보여주는 한편 그녀 동료들의 삶의 무게도 직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녀의 무게는 집수리, 전기세, 자녀의 학비 등 여러 가지와 저울되고 동시에 그런 무게를 지탱하기 힘들어하는 동료들의 삶의 아슬아슬하고 무거운 균형을 느끼게 해준다.


 

길게 이어진 분투 끝에도 아쉽게 그녀의 해직이 결정될 것처럼 보이자 그녀는 먹던 약을 한번에 털어넣고 침대에 눕는다. 눈이 감기기를 기다리던 중 남편이 그녀의 동료 한명이 그녀에 대한 지지를 약속했다는 말을 하고 희망이 보이자 그녀는 급히 속을 게워내고 입원한다. 짧은 시간동안 죽어버리려고 마음먹었다가 바로 다시 살고자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김준산 작가가 본인의 책에서 ‘상상력이 현실에 완전히 포섭될 때 사람은 자살한’다고 했던 말이 이번에도 생각난다. 우리를 죽고 살게 하는 건 미래에 대한 낙관을 빚어낼 수 있는지 인것 같다.


 

그녀를 힘들게만 만들었던 이틀의 여정은 실은 그녀를 강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회사를 어수선하게 만들어 좋냐며 그녀를 힐난하는 반장 앞에서 그녀는 이전처럼 움츠러들지 않고 그가 한 행동을 짚으며 그를 오히려 비판한다.


 

투표결과 이틀의 분투에도 그녀는 과반 득표를 실패하나 사장은 그녀의 분투를 높이 사며 다가오는 계약직들의 계약만료 기간에 그들을 해고하고 그 자리에 동료들에게 보너스 지급과 그녀의 고용유지 모두 약속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자리가 남의 자리를 뺏은 자리로 만들어질 수는 없다며 회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들 잘 싸우지 않았냐며 자신은 행복하다고 말하며 영화는 끝난다.


출처 - 저자


악화되는 경제 속 세대와 직업 등 분화되는 기준이 늘어만 가는 것 같은 요즈음 거진 10년이 다 되어 가는 이 영화가 새롭게 다가온다. 서로를 구분 짓는 여러 가지 말들이 있겠지만 근 1, 2년간 세대 혹은 세대의 행위를 지칭하는 대표적인 단어를 짚자면 라떼와 mz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두 단어 모두 구체적인 까닭으로 분석되기보다는 농담 섞인 비난과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상호간에 지칭할 때 쓰이는 모습이 더 자주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서로에 대한 이해의 시도보다는 이해할 수 없음을 부끄럼 없이 드러내는 대표적 표상 같다.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자연스럽던 행동에 ‘mz세대는 역시’라는 주변의 농담섞인 시선이 닿을 때는 타 세대에 대한 가벼운 배척과 누가 먼저 칭했을지 모르는 서로를 대용할 칭호로 서로를 포섭해서 치부해 버리면 상황이 쉬워진다는 점을 받아들였다고 보여지기도 한다. ‘라떼’와 ‘mz’를 세대의 특성을 파악한다기 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기를 방기한 지금 서로를 무엇으로 치부하기로 한 결과물이 아닌가 한다. 물론 서로를 이격시키기만 한 것은 아니라서 공무원 임금과 연금에 대한 탄식이 예전보다 많은 공감을 이루고 있음은 분명 피부로 느껴진다. 하지만 자신의 이해범위 밖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예전보다 더 차갑고 날선 비난을 세우기에 주저치 않는다. 화물연대의 파업은 어느 부분에서는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비단 정부의 강경한 태도만이 그들의 파업을 중지시킨 것은 아니기에 이를 더욱 상기시킨다.


 

훌륭하게 번역된 영화 제목들은 원제가 미처 예상치 못한 의미들을 발굴한다. 영화 ‘미용사의 아내’가 ‘사랑한다면 그들처럼’으로 그들의 애정의 궤적을 강조하고 ‘ghost’의 한국어 제목이 ‘사랑과 영혼’이 되었다. ‘two days one night’는 ‘내일을 위한 시간’으로 번역되어 ‘내일’을 위한 시간은 ‘내 일’을 위한 시간이고 나아가 내 일을 향하는 시간만큼 우리는 남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마지막 그녀의 결단과 약에 의존했었던 그녀의 홀가분하면서도 강해진 태도에서 그 상호적인 면을 느끼게 한다. 하나의 현상은 하나의 해석으로만 치부되기 어렵지만 전에 없던 강한 공감과 강한 배척은 우리의 더 강한 원자화와 신호인 한편 전보다 나은 연대의 미약한 가능성을 품게 하는 것 같다. 각자를 호명하는 기호를 넘어선 시대를 향한 투쟁에의 생각이 내 일과 네 일을 향한 시간을 잉태하지 않을까. 추운 날 따뜻한 볕을 생각해본다. 자기로부터 시작된 시선이 타인을 경유해 자신에게 돌아올 때 신영복 선생님이 말씀하신 사람과 사람 사이 라는 뜻의 ‘인간’이 우리 안에서 힘을 얻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