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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똑같은 자식 낳아서 겪어봐라!(정한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4-03-26 16:30
조회
130

정한별 / 사회복지사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겨우 9년 정도 세상을 겪은 아이가 마주한 세상이 낯설게 느껴졌다. 아이라는 존재가 나(부모)와는 별개의 존재라는 것을 머리로 알고 있었지만 피부로는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2024년 3월 23일, 아이가 사는 세상이 결국 그 아이만의 것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부모는 매우 중요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없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자신의 무대에서 주인공은 자신이며, 부모는 그 어떤 손도 내밀어 줄 수 없단 사실에 기분이 묘해졌다.


아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자신이 주인공인 무대를 만들었다. 그 덕에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마냥 어리게만 생각했던 아이가 나 없이도 잘 해낼 수 있단 사실에 뭔가 섭섭한 기분마저 들었다. 생각해 보면 결정도, 준비도, 도전도, 실수도, 극복도, 인내도, 결과에 대한 수용도, 그 어떤 것도 자신의 것이 아닌 게 없었다.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하고 있었다. 모르고 있던 사이 아이는 부모라는 존재에서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아이가 있었던 무대는 그 어떤 노력으로도 어찌해 볼 수 없는 영역이 있었다. 자신의 노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들이 너무도 극명하게 보였다. 이미 정해져 있는 것들, 태어나는 순간 사실 이미 정해져 버린 운명 같은 것들이 부모인 내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마냥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이를 만나러 가는 길에는 미뤄뒀던 피로가 몰려와 너무 힘이 들었는데, 돌아가는 길엔 굳이 내가 미안해 할 필요도 없는 것들에 대한 미안함과 먹먹함이 피로감을 밀어 내버렸다. 미소를 보이려 했는데, 마냥 웃음이 입가에 머물지 못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자 피곤에 절은 몸이 평정심을 밀어 내버렸다. 내 마음의 실체를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어른이 되어가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노력을 배신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수용하는 것,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마음대로 되는 일보다 훨씬 많이 있다는 것을 익히는 것, 그럼에도 그 어떤 것들에도 부러지지 않는 마음을 익히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 그 부러지지 않는 마음은 꼭 혼자서 유지할 필요도 유지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아들의 작은 성공과 수많은 실패들을 그렇게 말없이 지켜보고 계셨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실패에 상처받을 아들이 걱정되서, 실망할 아들이 마음에 걸려 마음 편히 위로도, 더 열심히 해보라는 비판의 채찍질도 편하게 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어머니의 걱정을 내가 자식을 낳고 길러보니 이제야 알 것 같다. 너무 늦게 알게 되어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제사상에 술 한 잔 올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는 사실이 마음이 아프다.


아버지는 내게 하고 싶은 말을 주로 편지로 써서 주고는 했다. 특히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 통 이상 편지를 써 주셨다. 아버지의 편지는 A4 용지 3분의1 정도 분량 밖에 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항상 그 편지를 컴퓨터로 타이핑한 후 출력해서 깔끔하게 자른 뒤 고이 접어 도시락 가방에 넣어주셨다. 편지의 내용은 고3인 나에게 하는 잔소리가 대부분이었다. 꽤나 조심스럽게 간접적으로 전하는 잔소리. 어느 순간부터는 제대로 편지를 읽지도 않았다.


얼마 전, 서랍을 정리하다가 아버지가 내게 보냈던 그 편지들을 우연히 발견했다. 20년이 지난 뒤 다시 꺼내 본 편지는 힘들어하는 고3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걱정과 위로가, 되려 아들을 불편하게 할세라 자신의 진심을 조심스레 전하고자 했던 배려가 듬뿍 담겨 있었다. 동시에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자신의 슬픔을 위로 받고 싶어했던 연약한 한 인간의 모습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20년이 지나서, 아버지가 했던 행동들을 그대로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하고 싶은 말과 전하고 싶은 마음을 편지로 남기고, 위로도 질책도 너무 조심스레 하느라 무슨 말인지도 모를 선문답식의 이야길 아이에게 전하기도 하고... 아이의 세상이 대견하면서도 섭섭하기도 한 마음에 울적해 하기도 하고... 사실은 자신 역시 연약한 인간임에도 아이에겐 단단한 사람으로 비치고 싶은 마음에 몇 겹의 가면을 쓰기도 한다.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부모도 성장한다고 하던가. 이 너무도 진부한 문구가 어떤 의미인지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아울러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 역시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면, “너도 너랑 똑같은 자식 낳아서 겪어봐라”라고 하시며 훌쩍이던 어머니의 말씀이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