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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선균, 나의 아저씨를 떠나보낸 슬픔(이원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4-01-16 10:57
조회
235

이원영 / 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배우 이선균의 죽음. 그 죽음은 많은 이들을 슬프게 했다. 마약 사범으로 몰려 비난과 공격의 화살을 맞고 만신창이가 된 한 인간의 쓸쓸한 뒷모습. 결국 그는 고통을 감당하지 못해 소중한 목숨을 버리고 말았다.


공격하는 자는 많았지만 그를 지켜주려고 나선 사람은 없었다. 그가 마약을 하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은 결국 지켜주지 못한 안타까움, 그리고 속절없는 원망으로 우리를 칭칭 감아버렸다.


혼자서 아픔을 감당해야 할 때, 주변의 차가운 시선을 견뎌야 할 때, 억울한 마음이 커져 갈 때 누군가 함께 울타리가 되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돌아보고 부정해보아야 아무런 소용없었다.


영화도, 드라마도 자주 보지 않다 보니 이선균이라는 배우에 대해 친근감, 애틋함이 강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부터 ‘나의 아저씨’ 드라마 짤(짧은 영상)이 내 핸드폰 유튜브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연기와 이야기가 슬플 때 나를 위로해 주는 친구처럼 불쑥 다가왔다. 저절로 그의 팬이 되었다. 연기자들이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은 이런 이유일 것이다. 어쩌면 배우라는 직업은 참 숭고한 점이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런 인기, 배우라는 직업의 함정이 그를 외로운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도 모른다. 특히, 경찰과 언론의 무차별 공격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에 그의 죽음은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인격이 무너지는 순간에


새해는 갑진년이다. ‘년’이라는 말이 좀 그렇지만 ‘갑진’이라는 말은 참 어감도 뜻도 좋다. 연초부터 갑진년, 갑진년 인사말을 주고받으면서 상쾌한 출발을 기대해본다.


소시민들의 이런 일상의 바람과는 달리 지금 시대 상황은 어둡고, 칙칙하다. 극단적인 대결과 혐오로 치닫는 정치도 그렇고 고물가, 고금리, 치솟는 가계부채 상황도 서민들 마음을 겨울바람처럼 차갑게 꽁꽁 얼리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겨울이 너무도 싫었다. 시민운동 하면서 각종 집회와 농성을 할 때면 찬바람이 온몸을 냉동시켜버리는 고통이 견디기 힘들었다. 거기에 더해 겨울이면 두꺼운 옷을 입어야 하고 난방비가 급등하는 통해 가난한 이들의 살림살이가 더 힘들어지는 것이 걱정되었다. 평상시 5만 원 하던 집과 사무실의 도시가스비가 어떨 때는 20만 원이 넘게 나오기도 했다. 자연의 섭리를 어쩌랴마는 감정적으로 안 좋을 수밖에 없는 처지 때문이었다. 그래서 겨울로 접어들고 날씨가 추워지면 주변에 걱정하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 같다.


추운 겨울일수록 더욱 힘든 이들. 경기가 안 좋을수록 버티기 힘든 이들에게는 나의 아저씨가 있어야 한다.


가난한 이들에게 정부(정치)가 나의 아저씨처럼 위안이 되길 바라는 것은 과한 욕심일까? 누군가 곁에서 위로의 말을 건네고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는 공동체를 만들 수는 없을까? 누군가의 인권이 무너질 듯, 위태로울 때 마지막까지 지켜줄 버팀목이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사회는 불가능할까?


이런 근원적이고 도전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새해에는 좋은 일들이 더 많기를 바란다. 역시 새해 덕담도 가볍지는 않다.


좋은 선택과 행동이 많아야 좋은 사회


사회에 드리운 짙은 우울감과 분노를 매일 실감한다.


유유상종이어선지 내 주변에는 진보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정치 문제에 관한 뜨거운 토론이 자주 벌어진다. 무엇보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을 느낀다.


개인적으로는 현 정권을 파시스트 정권이라고 부르고 싶다. 검찰 독재는 물론이고 정권의 일거수일투족이 민주주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등 현 정부의 모든 정책은 시대를 역주행하고 있다.


권력을 손에 쥔 자와 세력이 나쁜 방향으로 선택을 반복하고 있어 그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올해 4월 총선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현 정권의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단순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좋은 삶을 사는 방법은 좋은 선택을 자주 하는 것이다. 사회도 마찬가지일 게다.


좋은 선택과 행동이 모여야 좋은 사회로 갈 수 있다. 어떤 선택이 좋은 것일까? 견리망의(見利忘義)라는 사자성어가 던지는 메시지를 생각한다. 이익이 보일 때 의로움을 선택하는 용기를. 그런 용기가 서로 연결되어 더 강해지기를.


답답할 때마다 되새겨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