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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도 구성원도 성폭력 피해자 보호 시스템을 작동하지 않았다(주윤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6-09 15:58
조회
360

주윤아/ 교사


 지난 한 달간 중·고등학생과 군인 등 성폭력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연이어 세상에 알려졌다. 특히 이들은 성폭력 피해를 용기 내어 신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법 정의 실현은커녕 성폭력 피해자로서 기본적인 보호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점과 피해자들이 고인이 된 뒤에야 본격적으로 수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공군 내 성폭력 피해 발생 석 달 뒤인 바로 피해 당사자가 고인이 된 뒤, 그것도 언론 보도 직후 여론의 집중 질타를 받은 뒤 가해자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단 3시간도 걸리지 않고 구속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다른 사건의 경우도 유사하다. 청주에서도 중학생 피해 학생 2명의 극단적 선택이 세상에 알려지고 엄중 수사 및 처벌에 대한 국민청원이 등장하고 나서야 성폭력 혐의를 받고 있던 피의자에 대한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을 앞서 세 차례나 기각했던 검찰이 피의자를 구속했다. 이처럼 피해자들이 성폭력 피해를 신고한 후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경과가 언론을 통해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면서 우리 사회가 결국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라는 비판과 성찰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청주 중학생들의 죽음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가장 최소한의 보호 조처가 이루어지지 않은 안타까움이 큰 사건이다. 피해자 측의 고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피의자에 대한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이 번번이 반려되면서 의붓아버지이고, 그리고 친구의 가족인 가해자를 피하기 어려웠던 두 학생의 고충과 공포를 가히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1)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북지부는 24일 성명서를 통해 "오창 중학생 두 명의 죽음은 성폭력 피해 대응체계 부재가 부른 참사"라고 규정하며 특히 "아동학대, 성폭력의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가 즉각 분리될 수 있도록 피해자 보호 체계를 보강할 것과 수사기관, 아동 성폭력 전담기관, 교육 당국이 공조해 피해 청소년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대응체계를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 사건은 미투 운동 이후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크게 변화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성폭력 피해 사실 인지 후 조직의 대응 과정에서 끝도 없이 나오고 있는 군 조직 전체의 총체적 난국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현재까지의 수사 결과로는 여성 변호사 우선 배정 매뉴얼도 어긴 데다 피해자와 국선변호사의 직접 면담은 단 한 차례도 없었으며 사건을 넘겨받은 군검찰도 피해자가 숨진 채 발견될 때까지 두 달 가까이 피해자, 가해자 조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2)피해자가 최초 신고 이후에도 20번이나 성폭력 피해를 호소했지만, 공군은 한 달이 지나서야 국방부에 ‘월간현황보고’에 수치만 반영해 넣는 단순 보고로 처리했다고 한다. 가장 기본적인 가해자와 피해자 즉각적인 분리 조치를 하기는커녕 ‘신고해봐’라며 조롱하고, ‘없던 일로 해 달라,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일이다’ 등 사건을 은폐하기에 급급하거나 ‘상부나 외부에 알리지 말라, 가해자가 명예로운 퇴임을 하게 해달라’ 등 성폭력 피해 이후에도 가해자와 부대의 조직적인 회유와 n차 가해에 시달렸고 설상가상 부대를 망치는 관심병사로 따돌려 낙인을 찍으며 공식 신고 접수도, 후속 조치도 없이 피해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부대관리훈령>에 명시된 성폭력 피해자 보호와 비밀 유지, 가해자와 피해자 우선 분리, 신고를 포함한 피해자의 제반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행위 금지 등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는 매뉴얼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성폭력 피해 사실을 신고한 피해자가 석달 동안 방치되는 동안 피해자를 보호하고 피해자 편에서 지원한 사람이 현재까지는 특별히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올해는 스쿨미투 운동 3주년이 되는 해이다. 스쿨미투 운동 이후 학교의 변화를 정확히 파악하긴 어렵지만 분명 이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여성 청소년들이 학교 안에서 겪고 있는 성차별과 성폭력 등을 용기 내어 말하며 공론화 활동이 시작되었고 동시에 비민주적이고 불평등한 학교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후 교육부는 사립학교 교원에 대해 국공립 교원과 같은 징계기준 적용 등 개선안을 담은 교육 분야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과 ‘학교 내 성희롱·성폭력 대응 매뉴얼’ 등을 발표했고, 서울시교육청은 ‘성평등 교육환경 조성 및 활성화 조례’를 제정을 하는 등 관련 법적·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했다. 그러나 학교구성원들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고, 성인지 감수성이 낮은 조직의 구조와 문화가 학교 대지에 깊이 뿌리박혀 잔뿌리조차 뽑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법과 제도가 완비되어 있다 한들 실효성이 없는 전시성 조치로 전락할 것이 뻔하다. 스쿨미투 운동 3년이 된 지금, 스쿨미투가 발생했던 학교에서 다시 스쿨미투가 일어나는 사례가 있고, 스쿨미투 가해 교사들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다시 교단에 복귀하는 등 학교는 크게 변하지 않았고 스쿨미투도 끝나지 않았다. 또 스쿨미투를 드러내놓고 반대하는 구성원들은 줄었지만, ‘하고 싶은 말이나 농담을 자유롭게 할 수 없어 수업이 지루할 수밖에 없다’라는 등의 펜스룰이나 ‘요즘 선생 노릇하기 어렵다’는 등 ‘교권’침해를 운운하며 학생인권(조례)과 대립시키는 왜곡된 프레임으로써 스쿨미투를 폄하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사진 출처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위원회


 이런 학교가 위의 군대 문화와 다르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학생들은 일상 속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기 어렵고, 성폭력 피해 사실을 용기 내어 말하는 학생에게 ‘어떻게 선생님한테 그럴 수가 있냐’며 말문을 막으며 입단속부터 시키고, 피해 학생보다 가해 교사를 옹호하며 회유와 협박의 2차 가해를 하던 학교 조직과 구성원은 스쿨미투 이후 얼마나 달라졌는가 말이다. 폐쇄적 조직 문화, 낮은 인권 감수성, 금지와 지시 일색인 비민주적 규율과 규정 등 유서 깊은 전근대적 구조와 문화를 과연 얼마나 개혁했는지 객관적 진단이 시급하다.


 인권적이고 평등한 학교는 누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전국의 모든 교육청에서 학생(학교구성원)인권조례가 입법되는 과정 자체가 교육 과정의 일부가 된다면 인권과 민주시민 교육의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교사들은 교실 내 자신의 권력과 위계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약자와 소수자,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모두가 안전한 학교 환경을 만들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1) 2021.05.24. 충북일보 "성폭력피해 대응체계 부재가 부른 참사"
2) 2021.06.07. 시사저널 “20번이나 피해 호소했지만..'성추행 감추기'에 일치단결했던 공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