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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당신은 무엇입니까(황은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5-13 14:54
조회
987

황은성/ 회원 칼럼니스트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또렷이 생각난다. 피 끓는 애송이들이 한 방에 삼삼오오 모여 음란물을 감상하던 순간이었다. 방 안에 모인 모두가 침을 꿀덕, 꿀덕 삼키면서 여성의 나체를 탐닉했다. 이름도, 나이도, 삶도. 아무것도 모르는 여성의 나체였다.


 그리고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기사 하나를 읽었다. ‘n번방 사건’이라는 이름의 기사였다. 사건을 정독해보았다. 개요에 따르면 2018년 9월경 어느 경찰서로 ‘경찰 사칭 성폭행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신고 하나가 접수됐다고 한다. 이상한 일이다.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담당 수사관은 사건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 사건은 그대로 묻힌다. 후에 시간이 흐르고 그 사건은 n번방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한다.


소나기가 쏟아진다.


 ‘반문명적 범죄’, ‘한국의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인성교육 대실패’, ‘추정 가해자 30만’, ‘엄중한 법의 처벌’,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심판’ 등의 이름을 가진 수백 개의 기사들이 쏟아진다. 유명인사나 저명한 이들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정치하는 누구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는 행동해야 하는 때’라는 말을 힘있게 외치고 사람들은 그를 지지한다. 정부의 청원도 올라온다. n번방 가해자들의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그 청원은 수많은 독려를 받고, 눈을 감고 일어나면 몇천 개의 서명 혹은 몇만 개의 서명이 늘어나 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입을 모은다.


 가해자들을 욕한다. “그들은 욕먹을만한 짓을 했다. 사회적으로 매장당할만한 몰염치하고도 천인공노할 짓이었다. 윤리성에 크게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그 비난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말한다. “자신은 호기심에 그랬고, 시청만 했을 뿐이고,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았는데 왜 처벌을 받아야 하느냐”고. 그들은 괴물이 맞다.


그렇다. 그들은 괴물이 맞다.


 보안이 철저한 가상화폐를 이용해 경찰의 추적망을 피했고, 미성년자와 여성들의 성을 착취했고, 협박했고, 인생을 망쳐 놓았고, 돈을 벌었다. 겉으로는 사회의 일원이라며 한 행동들이다. 2018년도 당시에는 학생으로, 오늘의 평범한 38살의 회사원으로, 사회의 공익을 위한 공익근무요원으로 활동하며 뒤에서는 살인까지 교사하는 악행을 저질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n번방 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한 클럽에서 성폭행이 이루어졌다. 그때도 지금처럼 똑같이 목소리를 내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여성의 인권과 존엄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입에 오르내리고, 남자들은 잠재적인 가해자가 되고, 반증하듯 역시나 새로운 성범죄의 가해자가 되었는데 바뀐 것은 없었다. 반성을 논하는 칼럼들이 쏟아져 내렸는데, 안이한 처벌과 뒷배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들이 많았는데, 청원 역시 이루어졌는데 바뀐 것은 하나도 없었다. 성을 착취하는 괴물들과 그것을 소비하는 괴물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서 하나의 질문을 건네고 싶다. 도대체 우리는 왜 바뀌지 않았을까?


 답은 간단했다. 멀리 찾을 것도 없었다. 남자들은 불쾌해하고 있었다. 정상적인 자신들이 어째서 소수의 괴물 때문에 잠재적 가해자가 되느냐고 말하고 있었다. 거기엔 진정한 반성도 없고 진정한 고민도 없었다.


 그러니까, 그래서이다.


거기엔 진정한 반성도 없고 진정한 고민도 없었기에 사회와 우리는 바뀌지 못했다. 남자들은 여성들이 주장하는 “2020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깔린 저변의 강간 문화”라는 말에 매우 민감하게 눈살을 찌푸리곤 한다. “강간 문화까지는 아니다.” “비약이다”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 남성들은 알게 모르게 여자들을 수없이 강간해왔다. 모니터 속에서 그랬으며 현실에서 그랬다. 그러자 누군가 말한다. “나는 한 번도 여성의 성을 학대하지 않았으며 음란물을 시청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왜 잠재적인 가해자로 몰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거기에 대한 대답 또한 매우 간단하다. 침묵은 때로 부정이 될 수 있지만, 긍정도 될 수 있다. 나는 한 가지를 고해하고자 한다.


 나는 n번방 사건을 처음 접하고 피 끓는 애송이들이 한 방에 삼삼오오 모여 음란물을 감상하고 난 이후의 일을 생각했다. 감상을 끝내고 난 다음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비밀로 하자는 말도 감상평도 없었다. 이름도, 나이도, 사는 곳도, 삶도 모르는 여성의 나체를 탐닉한 채 그저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우리가 그날 본 것을 우리는 우리의 가슴에 묻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렇게 나는 침묵을 택하고 괴물이 되었다.


 그렇게 괴물이 된 나는 이제 말하고자 한다. 진정한 반성과 고민이 있어야만 변화가 생겨난다. 관망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잠재적인 성폭력 가해자가 되어 분노하는 것도 이제는 지겨워해야 할 때다. 이 사건 앞에서 결코 결백이란 있을 수 없다.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인간이지 괴물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지 괴물이 아니다.



사진 출처 -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죽음을 목도했을 여성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죽음과 착취로 이어지는 폭력적인 소비를 근절해야 한다. 이유는 필요 없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말을 구태여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물론 누군가는 나는 결백하다고 할 수 있다. 또 누군가는 그저 음란물을 시청했을 뿐인데 왜 이런 처우를 받아야 하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괴물로 살고 싶지 않다. 이미 현실에서 한 줌의 재가 된 후에도 모니터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여성의 나체를 탐닉하고, 또 누군가를 죽이고 소비해가며 추악하게 살아가고 싶지 않다. 이것은 나의 고해이자 결심이고 나는 이제 마지막으로 당신들에게 묻고 싶다. 나는 괴물로 사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괴물로 살고 싶은가? 아니면 인간으로 살고 싶은가?


황은성: 황은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