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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실연보다 아픈 실업급여 (조아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1:05
조회
395

조아라/ 청년 칼럼니스트



10월 7일 인천의 한 고용센터. 이곳에서는 하루에 100명 정도가 실업급여 교육을 받는다. 고용센터를 찾은 사연은 제각각이다. 김정문(56)씨는 전직 은행원이다. 정년퇴직 후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고용센터를 찾았다. 두 남매를 키우는 홍성애(40)씨는 중소기업에서 경리로 일했지만 회사 사정이 악화됐다는 이유로 계약을 해지 당했다. 은행원과 중소기업 직원. 지금까지의 삶은 달랐으나 다가올 삶을 걱정하는 모습은 똑 같아 보였다.

월요일 낮 11시였지만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부분은 우리 아버지뻘로 보이는 50대 남성이었다. 20대로 보이는 사람은 나 말고 한두 명 뿐이었다. 11개 창구는 실업급여 신청자로 꽉 찼다. 150번대 대기표를 받고 20분 정도 기다렸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의자가 모자라 서 있는 사람도 있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공통점을 굳이 찾으라면 아무 표정이 없다는 것이다. 재취업을 준비하는 대가로 사회로부터 받는 돈이 실업급여라면 당당해도 될 텐데, 어깨는 지쳐 있었고, 얼굴엔 희망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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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파이낸셜뉴스


 

“신청 끝내신 분, 1시에 강의실로 모여주세요.”

줄을 서서 들어갔다. 교육이 시작됐다. 몇 사람이 컴퓨터 사용법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연사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모르셔도 반드시 컴퓨터로만 신청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이런 저런 사연과 질문을 듣다보면 진행에 차질이 생긴다는 이유였다. 다들 말이 없어졌다. 기계적으로 이어지는 강의에 모두 기계처럼 고개를 숙이고서 유인물을 읽었다. 1시간 정도 교육을 받고 밖에 나왔다. 고용센터를 나서던 김승희(53)씨는 “신청하고 기다리는 게 까다롭다”고 했다. 그는 “돈을 받을 수 있어서 좋지만 내 처지가 왜 이렇게 됐나 자괴감이 든다”고도 말했다. 무미건조한 고용센터는 실업 이후의 삶에 대한 희망을 품는 곳이라기보다는 불안감을 깊게 확인하는 곳이었다.

이 고용센터를 찾는 사람은 하루에 100명 정도다. 매일 낮 1시에 신청절차 교육이 있다. 일주일이면 500명, 한 달이면 2000명이다. 전국의 고용센터가 83개다. 이곳을 평균으로 잡으면 전국적으로 한 달에 12만 5000명 정도가 실업급여를 받으러 온다는 얘기다. 수급 요건이 안 되는 사람까지 따져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실업 상태일까?

“65살이 돼 기초연금을 받게 된다면 인생을 잘못 사신 겁니다.”

얼마 전 김용하 전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장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낙오한 사람들을 걱정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사실은 그들을 책망하고 있는 게 아닐까? 마이클 샌델이 쓴 ‘정의란 무엇인가’에 따르면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에게도 사회에 공헌할 책임이 있다. 그가 천재성을 발현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뛸 만한 무대를 마련해 준 사회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거다. 부모님 세대의 지친 어깨, 그것은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다.

조아라씨는 교육과 언론에 관심을 갖고 이주여성을 위한 한국어 교실 강사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