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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때 동성애를 혐오했다 (박보경)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2:00
조회
469

박보경/ 청년 칼럼니스트



“동성애? 그거 정신병 아냐?” 이렇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동화 속에서도, 드라마에서도, 사랑은 당연히 남녀가 하는 것. 내가 이해하는 동성애란 방황하는 청소년이 잠시 맛보는 일탈, 혹은 이성에 대한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겪는 정신증 정도였다.

그 정도의 관심밖에 없던 나는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주간지 표지에 시선을 빼앗겼다. 옥상 난간 위에 교복을 입고 걸터앉은 여학생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내 또래나 될 것 같은데 무엇 때문에 저런 심각한 고민을 할까? 그렇게 펼쳐든 잡지에서 혼란은 시작됐다.

한국의 청소년 동성애자들 중 70% 이상이 자살에 대해 생각해본 경험이 있고, 18.1%가 ‘매우 자주 해봤다’고 응답했다. 또한 동성애자의 절반 이상(52.9%)이 욕설 등 언어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진정으로 나를 이해해주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괴롭다고 말한 학생도 있었다. 그들이 겪는 아픔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아무리 비정상이라도 이런 괴로움까지 겪어야 할까? 아니, 애초에 동성애가 비정상이기나 한 걸까? 나는 왜 동성애가 나쁘다고 생각했을까.

찾아보니 과거 동성애를 비정상으로 규정한 의학적, 윤리학적, 정신분석학적 설명은 잘못됐다는 게 오늘날의 연구 결과였다. 20세기에 이르러서 미국 정신 의학회에서는 공식적으로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했다. 나 역시 동성애가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근거 없는 편견이었던 게다. 애초에 사랑은 오롯한 나만의 감정 아닌가? 철학박사 강신주 씨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추울 때 자기가 입고 있는 겉옷을 기꺼이 벗어 주는 것이라고. 그 감정을 사랑이라 느낀다면 사랑이 맞다. 내 사랑을 어느 누가, 무슨 권리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종교가 있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바로 신에게 그런 권리가 있다고. 실제로 동성애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는 기독교에서 시작됐다. 한없이 넓고 따뜻한 예수님의 사랑을 말하는 사람들이, 왜 동성애자에 대해서는 그토록 잔인한 모습을 보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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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한겨레21/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그런데 그 종교마저 변하고 있다. 지난달, 가톨릭 교회는 동성애자와 이혼자, 결혼하지 않은 커플과 그들의 자녀를 환대해야 한다는 내용의 예비 보고서를 공개했다. 세계 주교 대의원대회에서 참석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해 이 문항은 결국 삭제됐지만, 찬성이 반대보다 월등히 많았던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였다. 심지어 문항이 너무 ‘보수적’이어서 진보 성향 주교들이 반대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우리나라는 정반대다. 올봄 국립국어원은 ‘사랑’이라는 단어 때문에 난데없이 곤욕을 치렀다.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뜻풀이가 문제였다. 사랑은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항의가 잇따랐던 것이다. 항의를 주도한 건 보수 기독교 단체였다. 결국 뜻풀이는 그들의 뜻대로 바뀌었다.

심지어 이런 차별과 공격에 맞서야 할 국가인권위원회에마저 ‘동성애는 죄악’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목사가 인권위원으로 임명됐다.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다. 차별에 앞장서는 인권위원이라니! 세계는 모두 변해 가는데, 우리나라만 거꾸로 가고 있다. 대체 어디까지 시대를 거슬러 가려는 것일까.

박보경씨는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들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청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