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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에서 날아든 편지, <오마르> (이다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3:29
조회
315

이다솜/ 청년 칼럼니스트



전쟁이 끔찍한 건 인간성을 말살시키기 때문이다. 인간성을 죽인다는 건, 한 개인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일상을 망가뜨리며, 그가 정성스레 가꾸어온 관계들마저도 잔혹하게 흩뜨려 놓는 일일 것이다. 지난 2월,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하니 아부 아사드 감독의 작품 <오마르>는 이스라엘 점령하의 팔레스타인에서 날아든 한 통의 편지다. 이 영화는 주인공 오마르가, 전쟁의 광기로 질식된 일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덤덤하게 그리고 있다.

오마르는 빵을 굽는 사람이다. 그는 연인인 나디아를 만나기 위해 분리장벽을 수시로 넘나든다. 이 분리장벽은 이스라엘이 건설한 거대 장벽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제한된 영토 내에서 제한된 생활만을 하도록 만든다. 총 연장이 730km에 달하는 이 벽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존권과 이동권을 침해하며 그들의 영혼을 옥죈다. 이 장벽 때문에 팔레스타인 주민 수만 명의 삶이 일터와 학교로부터 격리된다. 심지어는 팔레스타인으로 향하는 구호물자마저도 들어갈 수가 없다. 이 벽은 팔레스타인에서 일종의 감옥 역할을 하는 셈이다. 영화에서도, 오마르가 연인인 나디아를 만나기 위해 분리장벽을 넘을 때마다 이스라엘군은 기다렸다는 듯 총을 쏘아댄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연인을 만나는 일상적인 행위를 위해서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오마르는 분리장벽을 넘다가 이스라엘군의 검문을 받는다. 그리고 그는 “저기 보이는 돌 위에 한 발로 서봐”라는 명령을 받는다. 군인들의 심심함을 달래기 위한 굴욕적인 서커스를 요청받는 셈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렇듯 인간성의 말살, 존엄성의 파괴를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이에 분노한 오마르는 이스라엘을 향한 복수극에 가담한다.

인간은 ‘희망’이 있어야 인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희망도 꿈꾸기 힘든 절망적인 현실은 계속되는 팔-이 무력분쟁의 원인이다. 좌절과 무력감을 견디지 못하는 팔레스타인 청년들은 하나, 둘 이스라엘을 향한 테러에 가담하기 시작한다. 희망을 볼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한 이들이 자연스레 테러 조직으로 흡수되는 것이다.

마침내 오마르는 이스라엘에 붙잡히고, 고문과 회유 끝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오가는 이중첩자가 된다. 지금껏 함께해온 친구들을 배신해야 하고, 연인과도 멀어져야 하며 가족으로부터 내쳐지는 고통이 그를 잠식한다.

<오마르>는 냉정하게도, 이런 비참하고 잔인한 현실을 그리면서 절대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 영화의 감독은 헛된 희망을 줌으로써 성급한 결론을 짓고 싶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점령 현실을 사유하도록 하는 것이 그의 의도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상이야말로 우리의 남루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출구’라고 생각하는 나는, 총칼이 아니라 언어를 나눔으로써 삶을 꾸려가는 세상을 꿈꾼다. 오히려, 이 절망적인 영화를 보면서 인간은 오직 언어를 나눔으로써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가슴속에서 불탄다.

“앗살람 알레이쿰(‘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는 뜻의 팔레스타인 인사)”이나 “샬롬(‘평안하시기를 빕니다’라는 뜻의 이스라엘 인사)” 같은 언어. 우리는 이렇게 타자를 환대하는 자세로 서로의 언어를 교환하며 살아가야 한다. <오마르>는 언뜻 우리와 별 상관없는 머나먼 중동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는 것 같지만, 계속되는 무력대결로 평화의 상상력이 질식되어가는 한반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죽음의 에너지가 지배하는 이 사회를 삶의 에너지, 사랑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럼으로써 죽음과 죽임의 세력에 대항해갔으면 좋겠다. 무력대결을 멈추고, 지구촌을 사랑과 평화의 화원으로 가꾸어가야 한다. 마치, 지금의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에서 태어난 예수가 설파했던 인류애의 메시지처럼 말이다. 이 세상은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정원. 그러니 나는 그 정원지기로서 이곳을 지금보다 더 아름답게 가꾸어가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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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씨네21


이다솜씨는 여성과 이주민 문제에 관심이 있는 청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