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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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김인아/ 객원 칼럼니스트 개강이다. 전공과목인 생물분자공학의 수강 인원은 여덟 명. 50명이 들어가는 공간의 앞 줄만 간신히 채웠다. 식품저장학, 식품분석실험 등 다른 전공과목도 수강생이 열 명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강의실과 실험실에서 함께 지냈던 친구들이 사라져 간다. 늦은 밤 함께 실험실을 지키던 그 많은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내 주변을 보면 약대 진학 열풍으로 짐작된다. 식품공학 전공 강의를 듣는 대신 약대 준비를 위한 입시과목으로 몰려간 듯하다. 3년 전 230명 정원의 일반화학 강의는 약대 준비생들로 인해 수강생이 400명을 넘겼다. 콩나물시루 속에서 강의를 듣다보니 강의의 질도 떨어져 간다. 이공계 출신 여학생들이 약대 입시 열풍을 이끌고 있다. 한국약학교육협의회 통계를 보니 2012학년도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PEET) 응시자는 1만3077명인데, 이중 여성이 8638명이다. 66.1%다. 전체 약대 합격률을 보면 남녀 비율이 3:7이다. 대부분 이공계 출신자들이 이 시험을 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대에서 약대 열풍이 더 두드러진다. 의치약학 입시전문 교육기관의 신입생 분석 자료를 보면 으뜸이 이화여대 출신이란다. 실제 지난해 12월 이화여대 자연과학대학 3학년 학생의 29.3%인 88명이 자퇴했다. 경제적 사정 같은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약대 진학을 목표로 했을 의도적 자퇴란 말이 학생들 사이에서 떠돈다. 이화여대 공대에 다니는 김모(23)씨도 지난해 3학년 2학기를 마치고 약대 진학을 결심했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과도한 취업 경쟁 속에서 느끼는 불안감이 가장 큰 이유였다. “요즘에 대학만 졸업해서는 전공 살려서 취업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요. 공대니까 취업이 쉽겠다고 하지만 취업도 취업 나름이죠. 비정규직이 대부분이고, 평생직장은 꿈도 못 꿔요. 대학원가서 석․박사를 하면 괜찮을까 생각했는데 선배들 말을 들어보니까 오히려 취업문이 더 좁아진대요. 거기다 들어가는 돈하고 시간은 오죽한가요? 따지고 보면 약대를 가는 게 훨씬 낫죠. 나중에 결혼해서 애 낳고 키울 때도 안정적인 직업이 있으니 안심이잖아요.” 김씨는 자신의 여동생 역시 함께 약대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김씨의 동생은 모 사립대 자연과학대학에 입학 후 바로 약대 준비를 시작했다. 자연대에 진학한 이유 역시 약대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주변 친구들 중에 생물학, 화학 같은 순수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경우가 있어요. 근데 그 친구들 보면 경영이나 경제학 복수 전공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예요. 대학원 진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구요. 아마도 동생이 약대 준비를 할 계획이 없었더라면 아마 다른 전공을 선택 하라고 했을 거예요. 돈 잘 벌고 취업 잘되는 쪽으로요.” 김씨의 고민은 이공계 여성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2010년 여성과학기술인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규직 여성 비율은 10.6%였다. 반면 비정규직의 경우 31.1%로 약 3배정도 더 높게 나타났다. 심지어 정규직 여성 신규채용비율은 전년도에 비해 1.7% 감소한 15.3%로 나타났다. 취업도 힘들다. 그러나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는 더 힘들다. 약대 입시 설명회 모습 사진 출처 - 한겨레 결혼으로 가정을 이루면 또 다른 문제가 시작된다. 가장 활발히 연구를 해야 하는 시기에 출산과 육아로 공백 기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연구 중단으로 기술 개발이나 논문과 같은 연구 실적을 내기도 힘들다. 성과가 부족하면 연구책임자로의 승진도 연구비 지원도 어려워진다. 엄마 과학자로 살아가기는 현실적으로 쉽지만은 않다. 이제 곧 졸업이다. 내년 2월이면 4년간의 대학생활도 끝난다. 함께 졸업을 앞 둔 08학번 동기는 단 한 명. 나머지 26명의 친구들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졸업을 연기했다. 그리고 일부는 약대로 떠났다. 4년간 등록금으로 4000만원이 들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탓에 매 달 집세와 생활비로 100만 원 정도를 꼬박꼬박 쓰고 있다. 명절이나 주말에 고향집에 내려가 부모님을 뵐 때면 반가움보다는 죄송한 마음이 앞선 지 오래다. 실험실에서 늦은 밤까지 청춘을 바쳤다. 그러나 남는 것은 졸업장 하나다. 취업 준비는 별개다. 하고 싶은 일만을 꿈꾸며 살기에 현실은 차갑기만 하다. 전문직만이 대우받는 현실. 전공과 취업이 따로 노는 현실. 여자 공대생에게 약대 진학만이 유일한 해법처럼 보이는 이 현실을 바꾸어 볼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오늘도 답답함만 커져간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713 | 추천: 0
조재희/ 객원 칼럼니스트 친구의 미니홈피에 방문했다. 홈페이지 방명록의 상태는 처참했다. 온갖 비난과 욕설로 도배가 돼 있었다. 원인은 웹상의 한 동영상에 있었다. 영상의 제목은 ‘지하철 막말남’이었다. 한 청년이 지하철 내에서 욕설을 내뱉었다. 상대는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였다. 이를 목격한 시민이 휴대폰으로 촬영을 했다. 그 후 이 영상은 인터넷에 던져졌다. 한 트위터 글은 수없이 리트윗되었다. 글의 내용은 ‘지하철 막말남은 OO대학교 OOO’였다. ‘막말남’의 신상을 공개하는 글이었던 것이다. 동명이인들의 미니홈피는 테러를 당했다. 내 친구도 그 중 한명이었다. 해당 학교의 게시판 또한 그러했다. 잠시 뒤 학교는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동명의 재학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어이없는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한 네티즌의 작은 장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만약 동명의 학생이 존재했다면 어땠을까? 그는 순식간에 ‘패륜남’이 되었을 것이다. 네티즌들의 공공의 적이 됨은 물론이다. 이처럼 허위 정보 유포의 문제는 심각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 여자 아나운서가 투신자살로 사망했다. 이 사건은 SNS 논란에 불을 지폈다. 사건은 미니홈피의 게시 글에서 시작됐다. 아나운서 본인이 직접 올린 글이었다. 글은 현직 야구선수와의 성적관계를 담고 있었다. 잠시 후 최초의 글은 삭제되었다. 하지만 이미 수습은 불가능했다. 아나운서의 사생활은 전달에 전달을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SNS라는 확성기가 이용됐다. SNS 사용자들은 각기 한마디씩 보탰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많은 루머와 추측이 더해졌다. ‘소셜이 아닌 소설’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는 끝내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였다. 그리고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 개개인에게는 짧은 글 한마디에 불과하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처럼 한 인생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은 급속히 확대되었다. 이는 SNS에 강력한 엔진을 달아 주었다. 시간과 장소의 구애 없이 정보교환이 가능하다. 가족, 친구들과 언제든 안부를 주고받는다. 정치인, 연예인들과도 대화를 나눈다. SNS가 계층 간의 소통통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대중에게 알릴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목적 지향적인 참여행위가 유도된다. 최근의 반값 등록금 시위가 대표적이다. 이들을 한 곳에 모은 힘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SNS였다. 이처럼 SNS는 우리사회에 많은 순기능을 한다. 이미 대세가 돼버린 상황 또한 거스를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부작용을 이대로 방치할 순 없다. 무엇보다 이용자들의 의식과 가치관 형성이 절실하다. 하지만 이로썬 충분치 않다. 인터넷 전반의 문제 또한 개선돼야 할 것이다. 미디어는 하나의 중요한 권력이다. 이를 이용해 ‘개인 대 집단’의 구도에 놓일 땐 폭력이 될 수 있다. SNS를 통해 개인용 마이크를 하나씩 갖게 되었다. SNS는 자신만의 일기장이 아닌 것이다. 의사표현을 지나치게 축소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 글로 인한 파급효과에 대해 고려해봐야 한다. SNS의 발전 배경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우리는 기성언론의 ‘색깔사냥’, ‘마녀사냥’을 수없이 봐왔다. 그러면서 그들의 ‘여론 사냥’에 염증을 느껴왔다. SNS는 이를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였다. 우리가 비판해 온 기성언론의 행보를 따라가선 아니 된다. ‘신상 털기’에 이은 인신공격은 ‘여론 사냥’과 다를 바가 없다. 양자 모두 ‘무차별, 무책임 공격의 오류’를 저지르게 된다.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제주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벌인 전국 트위터 강정당 회원들이 지난 7월 2일 제주시청 앞에 모여 강정마을 “절대보존지역해제” 취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처럼 최근 사회적 이슈에 대중이 참여를 유도하는 힘으로 SNS가 활약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최근 포털사이트의 신상정보유출이 문제가 되었다. 더 이상 개인정보가 개인의 것이 아니 게 된 것이다. 이는 무분별한 ‘신상 털기’에 힘을 보탠다. SNS의 빠른 정보 교류는 이에 날개를 달아준다. ‘신상 털기’는 한 개인을 사회적으로 매장한다. 이 과정에서 법의 심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허위 정보일 경우의 구제수단도 없다. 포털 사이트들의 레이아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포털사이트들은 SNS의 글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글의 위치는 뉴스와 인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SNS의 글은 뉴스와는 성격이 다르다. 한 개인의 주관적 생각이 더해져 있다. 필터링도 전혀 되지 않았다. 자칫하면 공공 혹은 전문가의 의견으로 잘못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인터넷 신문의 기자들도 주의해야 할 상황이 있다. SNS에서 드러난 사실이나 주장을 기사화할 때이다. 해당 주장이 극히 일부분일 때는 문제가 발생한다. 여론을 잘못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SNS를 접하는 시간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신문이나 이메일을 접하는 시간보다 많다고 한다. SNS 신뢰도 조사의 결과도 주목해볼만하다. SNS의 정보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40%나 되었다.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12.3%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였다(출처 - 에스코토스 컨설팅 '2011년 소셜미디어 참여 연구'). 기성언론을 신뢰하지 않는 이들의 수는 상당하다. 이들에게 SNS는 ‘개인 언론’이 되었다. 기성언론이 무관심한 영역에 대한 ‘대안 언론’이기도 하다. 기성 언론의 권력자들은 SNS에 무차별 공격을 가한다. SNS의 심각한 부작용을 이유로 든다. 우리 스스로가 정화하여 방패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어렵사리 만든 ‘민주주의의 통로’를 확고히 할 수 있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443 | 추천: 0
유혜진/ 객원 칼럼니스트 지난 학기,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중앙도서관에서 전철역까지 운행하는 학교 셔틀버스를 탔다. 버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지 5분 남짓.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곳이 한국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 귀를 의심했다. 이어폰 사이로 오고가는 수많은 중국어의 행방이 궁금했던 것이다. 고개를 돌려 버스 뒤편을 바라봤다. 버스 한 쪽에는 10여 명의 중국인 유학생들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중국의 대학교인가' 착각을 할 정도였다. 다시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 옆에 앉아 있던 히잡을 두른 여학생이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나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순간 나는 2년 전 지도 교수님과 함께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을 준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후배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3일만 시간을 내달라는 교수님의 부탁에 나는 흔쾌히 응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오리엔테이션은 교수님이 사적인 시간과 비용을 들여 기획한 프로그램이었다. 해마다 대학 당국이 뽑는 외국인 유학생의 수는 급증하지만, 제대로 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점을 안타깝게 여겨 교수님이 직접 팔을 걷어 부치신 것이었다. 한류의 바람을 타고, 지인을 따라 혹은 자국에서 입시에 실패한 외국인 유학생이 대학 입학을 앞둔 시점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여느 유학생처럼 서툰 외국어(한국어) 실력에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한국 문화와 대학 생활에 대한 이야기로 빠르게 3일이 지나갔다. 그 이후로 2년 동안 통 연락이 없던 이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동안의 한국 생활이 어땠는지 무척이나 궁금한 나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쉴 새 없이 유학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언어 장벽이나 문화의 차이로 인한 어려움은 유학생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초라며 한 발짝 물러나는 듯했다. 하지만 대학 당국과 한국 학생에 대한 비판은 그칠 줄 몰랐다. 해외에 지사까지 두고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할 때 대우와 한국에서의 현실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 서울의 Y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하는 중국인 장OO씨(25)는 "각 대학별로 유학생 지원 담당자가 있긴 하지만 증가하는 유학생의 수에 비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강의 수강이나 언어, 학교생활 등에 대한 사후 관리가 부족하다" 고 털어놓으며 맥주잔을 기울였다. 유학생에게 친절한 교수님도 있지만, 외국인 학생을 한국 학생과 함께 수업에 참여하는 동등한 구성원으로 보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는 정OO씨(23,여)는 "일부 유학생이 대리출석을 하거나 학기 내내 결석을 하고 시험만 보는 경우도 있어 우려가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2010년 Y대를 졸업하고 취업한 중국인 루OO씨(26)는 "미국이나 일본 등의 대학 진학을 위해서는 엄격한 외국어(영어나 일본어) 실력이 요구되지만 일부 지방 사립대를 중심으로 한국의 대학 입학에 있어서는 그 기준이 낮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때문에 유학생들 사이에서 한국 대학 입학 기준에 의문을 갖기도 한다"는 후문을 들려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유학생들은 자신들에 대한 한국 학생들의 이중적인 시각에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백인 유학생들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 비롯되는 인종차별적 대우는 대부분의 학생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바였다. 대다수 한국 학생이 자신의 학교가 외국인 학생이 많은 '글로벌' 캠퍼스임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정작 강의실에서는 유학생을 외면하기 십상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특히 학점 경쟁이 심한 오늘날, 함께 팀 프로젝트를 진행해야하는 경우라면 함께 과제를 풀어나가는 기쁨을 얻기보다 다른 팀원에게 폐가 되는 것은 아닌지 눈치를 살펴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실제로 서울의 S 사립대를 다니는 한국인 유란희(23,여)씨는 "중국어나 일본어 강의가 개설되면 한국 학생의 상당수가 자신들의 강의 선택권이 줄어들었다는 피해의식을 느낀다"는 경험담도 털어놨다. 일부 동아리나 언어교환 프로그램, 몇몇 이벤트성 행사가 아니라면 대다수 유학생들이 한국 학생과 어울리기는 사적으로도, 구조적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외국인 유학생의 수가 급증하고 있지만 캠퍼스 내에는 그 어떤 제도적, 인식적 차원의 개선도 일어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이처럼 최근 몇 년 사이 대학 캠퍼스 내 외국인 유학생의 수는 급격히 늘어났다. 학과 단위의 자치 모임이나 동아리 모임에서 어눌한 말투를 가진 외국인 유학생의 자기소개를 듣는 일은 이제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강의실에서도 팀별 과제를 위해 팀을 짜다보면 외국인 학생 한두 명쯤은 함께 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교육과학기술부의 통계에 따르면 2000년 3700여 명에 불과했던 외국인 유학생의 수는 2003년 1만 명을 넘어서더니 2010년에는 8만 3000여명으로 빠르게 늘었다. 전체 대학생 중 0.1%에 불과하던 외국인 유학생 비율은 이제 2.3%까지 증가하게 된 것이다. 양적인 캠퍼스 글로벌화는 빠르게 이뤄지고 있지만, 그 내실은 어떠한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차적인 성찰은 외국인 유학생의 학생 수를 늘리는 데만 급급한 대학 당국에게 필요하다. 대학 당국이 내세우는 명분은 대학의 '글로벌화'다. 세계화 시대에 맞춰 많은 외국인 학생을 유치해 한국 학생과 유학생 모두의 학업과 연구에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 유학생 수만을 늘려 각종 대학 평가의 국제화 지수에서 높은 점수를 얻겠다는 의도가 가장 크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일부 지방 사립대는 부족한 대학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정원 외 선발이 가능한 외국인 유학생을 무분별하게 선발해왔다. 이 과정에서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를 방관한 채 쉽게 입학 승인을 해주었다. 유학생의 양적 증가에만 몰두한 나머지 학생 관리 서비스가 부실함은 물론 한국 학생들의 인식 개선도 이뤄지지 못해 사회적 문제로까지 빚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얼마 전 외국인 유학생의 중도탈락이나 불법취업이나 불법체류 등이 사회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세계화' '다문화'가 오늘날 우리사회의 화두다. 대학도 앞장서서 이 트렌드에 맞추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수적인 증가와는 반대로 질적인 차원의 '글로벌화'에 대한 의문을 감출 수가 없다. 적절한 제도와 인프라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다수가 소수를 배려하는 자세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면 이는 사실상의 '폭력'과도 같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나오는 길, 이슬람 문화권에서 온 한 친구가 자신은 언제쯤 교내에서 마음 놓고 밥을 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또다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405 | 추천: 0
김종천/ 객원 칼럼니스트 “이 유니폼이 좋은 점이 뭔지 알아요? 우리를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준다는 거예요.”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에 나오는 대사의 한 구절이다. 우리에게 ‘청소 아줌마’들은 투명인간이다.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분들이지만 언제나 ‘없는 듯 있는’ 분들이다. 남자화장실에 젊은 아가씨가 들어왔다면 난리가 났겠지만 유니폼을 입은 ‘청소 아줌마’들이 매일같이 남자화장실을 돌아다녀도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유니폼을 입는 순간, 그 분들은 투명인간이 된다.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 밖에서 묵묵히 일한다. 연초부터 이 ‘투명인간’에 관한 문제로 나라가 떠들썩했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는 노조를 결성했다는 이유로 새해 첫 날 미화노동자 전원을 해고했다. 해고당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에 나섰고 수많은 시민들이 이를 지지했다. 이들은 함께 더불어 싸웠다. 그리고 이겼다. 해고는 철회됐고 임금이 인상됐으며 노조가 인정됐다. 주 5일근무로 여가생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대학 청소노동자에 대한 처우 문제가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내가 다니고 있는 대학에서도 마침내 미화원 어머님들의 노동조합이 결성됐다. 3년 전부터 뜻있는 학생들이 모여서 미화원 어머님들을 꾸준히 설득하고, 학교와 용역회사가 모르게 비밀리에 준비한 끝에 이뤄낸 결실이다. 학교와 사측에 발각돼 고초를 겪기도 했다. 노천극장에서 열린 노조 출범식에서 어머님들은 눈물을 흘리셨다. 한 어머님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난 정말 내 인생에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 라고 대답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출범식이 끝난 후 뒤풀이에서 열 명 남짓한 학생들은 어머님들과 막걸리 잔을 주고받으며 안치환과 자유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불러드렸다. 빵과 장미를 향한 어머님들의 투쟁에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투쟁은 얼마 못가 큰 시련에 부딪혔다. 함께 싸워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 측은 논란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모든 책임을 용역회사에 전가했고, 용역회사는 필사적으로 노조를 탄압했다. 욕설 등 인격모독적인 말은 기본이고, “허튼 짓 하면 자른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이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많은 분들이 노조에서 탈퇴했다. 지금 노조엔 스무 명이 조금 넘는 분들만 남아 힘겨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결국 어머님들의 편에서 함께 싸워줄 수 있는 건 학생뿐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학내 노동자분들의 투쟁에 마음으로는 공감하면서도 쉽사리 연대의 손을 내밀지 못하고 있다. 어머님들의 노동조합 설립을 도왔던 학생이 강제휴학을 당했던 까닭이기도하고 학점과 토익, 취업에 대한 걱정으로 공부 이외의 활동에 쉽사리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화여대·연세대·고려대 학생대표들이 지난 3월 15일 이화여대 정문 앞에서 청소노동자 투쟁을 지지 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故김대중 대통령이 6. 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 강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여러분께 간곡히 피맺힌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벽 5시에 출근해 화장실 구석에 쭈그려 앉아 식사를 해결해가며 일해도 75만원 밖에 벌지 못하는 청소노동자들의 현실에 분노할 줄 아는 양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정작 불의를 정의로 고치려고 행동하는 것에는 소극적이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 부당한 현실을 목도하고도 침묵하는 것 또한 악의 편이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뜨거운 가슴으로 함께 연대하고 함께 싸워나가야 한다. 책으로 나온 <빵과 장미>의 내용 중에서 노인이 가슴을 치며 한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런 유의 싸움은 총으로는 못 이기지. 가슴으로 이기는 거야. 이안에 있는 강한 가슴으로." *빵과 장미 : 빵은 생존에 필요한 합리적 임금을, 장미는 노동자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상징한다. ‘빵과 장미’는 제임스 오펜하임이 시카고 여성 노동운동가들을 위하여 쓴 시의 제목이다. 191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로렌스 직물공장 파업에서 일부 여성 노동자들이 그 시의 한 구절인 “우리는 빵을 원한다. 그러나 장미도 원한다”라는 피켓을 들고 나온 것이 효시가 되어 노동운동의 슬로건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421 | 추천: 0
김미영/ 객원 칼럼니스트 나는 약 세 달 전 다리를 다쳤다. 순간 넘어지면서 인대가 늘어난 것이다. 인대가 늘어난 것은 뼈가 부러지는 것보다 더욱 오래 아플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설마 그럴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몇 주면 나을 것 같았던 다리는 한 달이 넘고 두 달, 세 달이 넘어도 완치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다리가 다쳤으면 집에서 가만히 쉬어야 하지만, 참 무던히도 움직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아프면 쉬지 뭐 하러 밖에 나와”라고 말한다. 하지만 매일 학교에 가고, 아르바이트와 과외를 하는 내게 집에서 가만히 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나를 목적지까지 에스코트해 줄 백마 탄 왕자님이나 순간이동 초능력이 없는 한 뚜벅뚜벅 걸어야 한다. 어쨌든 일단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다리 한 쪽을 다쳐 걷는 것조차 힘든 나에게 서울 곳곳은 공포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자취집 바로 앞에 있는 학교에 가는 것도 고역이다. 매일 다녔던 길이지만 아침마다 차가 많이 지나가는 줄 몰랐다. 길을 가다 내 주위로 차가 오면 잠시 긴장한다. 예전 같으면 차를 피해 길 가장자리로 빨리 움직일 수 있었지만, 절뚝거리고 느릿느릿한 걸음으로는 차를 제 때 피할 수가 없다. 횡단보도 신호등은 너무 일찍 빨간 불로 바뀐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횡단보도를 건넜을 때 나는 반도 건너지 못하다가, 내 바로 앞에서 우회전하는 차에 깜짝 놀란 적도 많다. 특히 내가 다니는 학교는 경사가 심하다. 2년 전부터 학교 초입에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했지만, 등교하는 것은 여전히 괴롭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왔어도 수많은 계단과 비탈을 지나야 한다. 더욱이 요새는 캠퍼스 내에 공사장이 많아졌다. 공사장 때문에 길이 막혀 우회해야 하거나, 좁고 안전하지 못한 길을 택해야 한다. 평소에 학교 다닐 때에는 그저 작은 불편함이었지만, 다리를 다친 나에겐 불편함을 넘어선 공포였다. 지하철을 타는 것은 더욱 문제였다. 지하철은 버스처럼 오르막, 내리막길을 지나거나 커브를 돌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편안하다. 하지만 너무 계단이 많다. 물론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수 있지만 그 수가 너무 적고 찾기도 힘들다. 하차한 후 엘리베이터가 내가 내린 승강장에서 불과 20m 안에 있는 경우는 행운 중의 행운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50m, 70m, 심지어 100m 이상 걸어야 할 때도 있다. 출구로 나가기 위한 엘리베이터도 턱없이 부족하다. 승강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개찰구를 나오면, 또 다른 엘리베이터를 찾아야 한다. 나같이 다리가 아픈 사람들에게는 약 올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찾아도 문제다. 예를 들어, 5번 출구로 가기 원했으나 엘리베이터가 10번 출구 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엘리베이터로 올라가서 다시 원하는 출구까지 걸어가든지, 아니면 계단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에스컬레이터를 더 선호하게 된다. 하지만 속도가 너무 빠르다. 에스컬레이터의 시동이 꺼져 있는 경우도 많다. 물론 에너지를 아끼기 위한 것임을 안다. 하지만 다리를 다쳐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계단은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힘들다. 많은 곳에서 에스컬레이터의 한 쪽만 시동을 꺼놓는 경우 내려가는 쪽을 꺼놓는다. 사람이 많은 환승구간의 계단 역시 공포의 대상이다. 난간을 잡지 않으면 위태롭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사람들에게 밀리고 치이기 전에 계단 가장자리로 빨리 이동해야 안전하다.   교통약자들의 이동을 위해 저상버스, 지하철 계단에 휠체어 리프트 등의 제도들이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어려움도 막상 내 일로 닥쳐야 안다고 했던가. 다리를 다치고 나서야 매일 다녔던 길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든 길인지 알았다. 횡단보도의 너비와 신호등 시간, 엘리베이터의 수, 에스컬레이터의 속도 등등 이전에는 관심조차 없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직접 불편을 경험하지 않는 한 몰랐을 것들이다. 이전에는 ‘저상버스’의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 했다. 계단 높이만 낮을 뿐 다른 버스들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그러나 내가 불편을 겪고 나서야 저상버스가 얼마나 절실한지 알 수 있었다. ‘교통약자’라는 말이 있다. 고령자, 장애인, 어린이 등 생활하면서 이동하는데 불편함을 겪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교통약자는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4분의 1이라고 한다. 교통약자들에게는 이동하는 장소마다 사고의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다. 저상버스가 확충되고 지하철 계단에 휠체어 리프트를 설치하는 등 많은 제도들이 도입이 되고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에게 진정 어떤 도움이 되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서울시는 지난 4월부터 ‘2011년도 교통안전 종합대책’을 수립해 순차적으로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현재 1385개인 어린이보호구역을 1505개로 확대, 노인보호구역 13개소를 지정, 보행교통 불편지점에 대한 횡단보도 총 20개소를 개선하는 등 교통약자 우선의 도로환경을 조성해 나갈 계획이라 한다. 이런 대책이 교통약자들의 입장에서 서서 올바로 시행이 되길 바란다. 인대가 늘어나서 나는 석 달이라는 시간 동안 불편을 겪고 있다. 발목보호대 정도만 하고 다니는 것도 이렇고 불편한데 그동안 장애인과 노인, 임산부들은 얼마나 큰 불편을 겪고 있었을지 새삼 느낀다. 조심스럽게 느릿느릿 걷다 보면 하루에 몇 번씩은 사람들에게 툭툭 치인다. 계단 하나하나, 작은 비탈 하나하나가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다리를 다쳤다는 이유로 이런 불편을 감수하기엔 너무 가혹하다. 불편하고 위험하면 나오지 말라는 말은 더더욱 가혹하다. 교통약자는 누구나, 언제든, 어디에서든 될 수 있다. 교통약자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길이라면 모든 이들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길이다. 우리나라에는 지난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이 있다. 이 법의 제3조는 ‘이동권’에 대해서 말한다. “장애인 등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장애인 등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결국 경험하고서야 알았다. 원하는 곳으로 안전하게 이동하는 것도 우리가 가진 중요한 권리라는 것을.
2017-06-27 | hrights | 조회: 369 | 추천: 0
김새봄/ 객원 칼럼니스트 그가 애써 말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에서 쉽게 ‘가난’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아름다운 청춘의 시기를 보내고 있을 젊은이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 여길 뿐이다. 그런 그의 입에서 ‘넬라판타지아’ 노래가 시작됐다. 카메라는 청중들의 경이에 가득 찬 표정을 클로즈업 했다. 심사위원석과 객석은 눈물바다가 됐다. 한국판 폴포츠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tvN <코리아 갓 탤런트>에 성악을 불러 사람들을 감동시킨 그는 껌팔이 인생, 22살의 청춘이다. 한 개인의 세상분투기 덕분에 그의 노래에는 사연이 실렸다. 다섯 살부터 길거리 생활을 해왔다는 그는 우연히 나이트클럽에서 성악공연을 보고 음악에 매료됐다. 길거리 음반가게에 앉아 홀로 음악을 배웠다. 그의 삶의 역사의 혹독함과 고난 그리고 시련을, 재능경연 오디션에서 노래로 극복한 그는 주목받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씁쓸했다. 그와 함께 거리에서 청춘을 보내는 가난한 껌팔이 소년들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주목받은 그에겐 타고난 목소리와 노래실력이 있었다. 그러나 길거리의 대다수 껌팔이들 중 재능오디션에 나와 승리를 거머쥐어 감동적인 인생역전 스토리를 선사할 이, 얼마나 될까. 99%는 그처럼 가난을 극복할 수 없다. 없을 것이다. 세대와 시대, 사회의 문제들이 개인의 문제로 축소돼 버린다. 개인이 속한 집단, 개인이 속한 세대와 시대, 개인이 속한 사회라는 큰 맥락을 삭제시킨다. 그것이 지금 한국사회 광풍이 부는 오디션의 속성이다. 오디션의 캐치프레이즈는 당신도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수천만 명 중에 단 한 사람, 단 하나의 승리를 위한 긴 경쟁이 시작된다.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혈연도 학연도 지연도 필요 없다. 실제 사회가 혈연과 학연, 지연을 기반으로 경쟁의 우위를 다퉈왔던 것과 차별화하려는 오디션의 의도다. 실제 껌팔이 소년은 아무리 탁월한 능력과 치열한 노력으로 갈고닦은 성악실력을 갖고 있었더라도 실제 성악가가 되기 위한 사회의 문턱을 넘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최소한의 학력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디션에서는 그것이 가능했다. 능력만 봐주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현실세계의 진입과는 다르다. 당신의 능력만 봐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는 달랐다. 그의 처절한 사연을 시청률의 담보로 잡아챘다. 끔찍한 삶의 비극을 그가 부른 노래의 감동의 밑바탕으로 깔아줬다. 그의 노래는 그냥 노래가 아니라 껌팔이의 노래였다. 그렇기에 감동을 선사한다고 방송은 떠들어댔다. 그것은 진짜 승리였을까. 아니면 그저 오디션의 ‘당신도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캐치프레이즈의 희생양이 되었던 것일까. 이제 무대는 끝났다. 지독한 현실로 뚜벅뚜벅 걸어 나간 그의 행로가 이의 답을 마련해줄 터이다. tvN <코리아 갓 탤런트>에 성악을 불러 사람들을 감동시킨 최성봉씨 사진 출처 - 서울신문 다만 우려되는 것이다. 결국 껌팔이 소년의 한여름 밤의 꿈이 되었을지도 모를 무대가 일회성에 그치게 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그의 승리는 오디션 무대 진행 중에서만 빛을 지닌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오디션이 끝나면 그의 노래도 끝이 난다. 오디션이 사회와 절연된 처절한 개인의 사연만을 무대에 올리면서 벌어진 일이다. 오디션에 울려 퍼진 감동의 노래는 그저 꿈이었을 뿐, 현실세계에서 그는 앞으로도 줄곧 껌을 팔아야 할지도 모른다. 사회와 유리된 오디션 무대는 공정사회가 구현되지 못한 이 세계에 달콤한 유혹이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오디션이 끝난 뒤에 현실사회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오디션은 그저 환상과 꿈의 세계일 뿐 결코 현실의 세계마저 당신도 승리자가 될 수 있다고 약속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사회 한 켠에서는 청춘의 문제가 시대와 세대, 그리고 사회의 문제임을 외치는 대학생들이 있다. 포털 사이트에는 연이어 청춘 개인의 승리자인 백청강과 껌팔이 소년이 뜨고 뉴스와 신문이 소리 높여 이를 보도한다. 그러나 수일간 계속되는 대학생들의 외침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대학생이 거리로 나와 등록금 문제 해결을 외치고 있다. 청년실업을 사회의 문제로 인식하고 일자리 창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 학교 청소부 아주머니의 최저임금 보상을 위해 지지하는 손길도 있다. 대학생들의 이런 외침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청춘의 시련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외친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외친다. 그렇기에 손을 맞잡고 연대하며 문제를 제기한다. 따라서 청춘의 가난과 시련 또한 개인의 극복만으로 가능하다는 오디션의 캐치프레이즈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청춘은 오디션이 아니다. 청춘은 단 한 번의 승리와 무한경쟁의 게임이 아니다. 청춘은 진짜 삶이다. 청춘은 모두가 함께 숨 쉬고 먹고 뛰는, 살아있는 행위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383 | 추천: 0
조재희/ 객원 칼럼니스트 친구들과의 약속에 늦었다.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도로가 붐볐다. 버스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내리기가 무섭게 약속장소로 뛰기 시작했다. 금요일 밤 홍대 앞은 북적인다. 사람들을 헤치며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그 순간 한 여자가 나를 붙잡았다. 일행으로 보이는 두 여자도 보였다. 그들은 한 남자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나에게 이 남자를 잠시만 붙잡고 있어 달라고 했다. 곧 경찰이 올 거라고도 했다. 사정은 이러했다. 북적이는 거리를 여자들 일행이 걷고 있었다. 그 뒤로 한 남자가 다가왔다. 일행 중 한 여자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봤다. 그 여자의 치마 밑에 무언가가 있었다. 바로 남자의 휴대폰 카메라였다. 남자는 황급히 도망치려 했다. 여자들은 필사적으로 붙잡으려 했다. 주변에 도움을 청해도 소용이 없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었다. 괜히 나에게도 피해가 오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나는 경찰이 도착 할 때까지 도움을 줬다. 그러나 나 또한 확신할 수 없었다. 만약 그 여자가 나를 붙잡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내가 그저 무수한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면, 나서서 도움을 줬을까? 아마 나 또한 ‘간접적 방조범’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간접적 방조범’은 성 추행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어느 정도 범죄 발생에 일조한다. 이들에게도 일정한 책임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비단 ‘간접적 방조범’뿐만이 아니다. 범행 현장에 없었어도 ‘침묵의 공범’은 될 수 있다. ‘침묵’이라는 부작위도 사회의식을 형성한다. 범죄의 심각성을 축소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침묵의 공범’이 된다. 얼마 전 의대생 집단 성추행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에도 다양한 ‘침묵의 공범’들이 존재한다. 15일 오전 고려대 정문 앞에서 한 졸업생이 고대 의대생 성추행자들을 출교조치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성추행 사건의 ‘침묵의 공범’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진 출처 - 뉴시스 대학생들은 MT를 떠났다. 그곳에서 집단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일반 성추행 사건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들은 사람의 몸을 치료할 예비 의사들이다. 명문대에 재학 중인 수재들이기도 하다. 또한, 피해자는 바로 같은 학교 학생이다. 그들은 6년간 같이 수업을 들었다. 심지어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한 동기였다. 단순한 성추행에 그치지 않았다. 성추행 장면을 휴대폰으로 촬영하였다. 참으로 파렴치한 행동이다. 피해 학생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가해 학생들 중 한명은 대학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피해 학생에게도 잘못이 있다 한다. 그래서 사과할 수 없다고 한다. 해당 대학은 미온적 대처로 일관한다. 심지어 같은 교실에서 시험을 쳤다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피해자는 다시 한 번 정신적 충격에 빠졌을 것이다. 이 사건의 ‘침묵의 공범’은 누구일까? 해당 의대생들이 재학 중인 대학교가 그러하다. 출교 조치를 요구하는 여론은 거세져 갔다. 그러나 아직 가해 학생들에게 징계조차 내리지 않았다. 마치 여론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듯하다. 대학의 정문 앞에서는 릴레이 시위가 벌어졌다. 웹상에서는 인권위 제소 페이스북 모임이 만들어졌다. 성추행 의대생들을 규탄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이들은 재학생들이 아니다. 트위터를 통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다. 재학생들 또한 대학과 다르지 않다. 그들도 ‘침묵의 공범’에 해당한다. ‘침묵의 공범’은 ‘간접적 방조범’과는 다르다. 이들은 피해가 두려워서 침묵하는 것이 아니다. 해당 대학은 이미지 실추를 걱정할 것이다. 재학생들에게는 울타리 의식이 작용한다. 가해자가 내 선배이거나 후배 혹은 동기이다. 이 때문에 감싸주고 있는 것이다. 사건은 대학생들의 성 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의 의식을 되돌아보자. 개개인의 스펙은 어느 때보다 뛰어나다. 이에 비해 성의식은 미성숙한 것이 사실이다. 성의 개방화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로 야기되는 성의 문란이 문제이다. 대학생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러한 책임에 의해 자유를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사건의 가해자들은 그러지 못하였다. 같은 대학생으로서 비판을 가해 마땅하다. 그러나 타 대학의 학생들조차 생각보다 조용하다. 사건 내용은 같은 대학생으로서 분개할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방관적인 태도이다.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침묵의 공범’인 셈이다. 하루에도 이 사건과 관련된 수많은 기사가 쏟아진다. 이를 모르는 대학생은 거의 없다. 물론 비판을 가하는 학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천적 행동으로 옮기는 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부끄럽지만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나도 ‘침묵이 공범’이 된 셈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달라져보자. ‘성추행’은 어느 중범죄보다도 가볍다 할 수 없다. 특히나 대학생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가치관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대학과 재학생들부터 움직여야 한다. 이미지도, 울타리의식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존재한다. 바로 올바른 성가치관과 피해자의 인권이다. 다른 대학생들도 ‘침묵의 공범’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자신과 무관하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당한 비판과 실천적 행동은 많은 작용을 한다. 자신의 의식을 성숙시킬 수 있다. 또한 사회의 의식을 바르게 변화시킨다. 이제 능력뿐만 아니라 성 의식도 압축 성장시킬 때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434 | 추천: 0
김인아/ 객원 칼럼니스트 “콘돔 쓰면 안전하다고? 이거 말도 안 된다. 자궁 내 루프 이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4월6일) 16년간 지속된 인기 강의의 한 대목이다. 서울의 한 명문대에서 이번 1학기에만 400명의 학생이 이 강의를 수강했다. 인기는 높지만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문제 강의다. 바로 한양대 ‘성의 이해’다. 강사의 말은 교재에 견주면 애교 수준이다. 교재는 <성 과학의 이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아주 그냥 가관이다. “성폭력은 남성에게 내재하고 있는 고유한 본능이다. 만일 미개한 곳에서 억제되지 않고 산다면 성적인 욕구가 만족되지 못할 때는 언제나 강간을 저지르게 될 것이다.”(p.234) “완전한 질외사정인 경우는 정자의 존재가 부정되므로 원칙적으로 임신이 될 수 없다.”(p.88) 이 수업은 남학생만 듣는 게 아니다. 그런데 남성 중심의 시각만 일방적으로 전달한다. 과학적 근거도 부족하다. 설사 남학생만 듣더라도 여성을 이렇게 비하해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 ‘성의 이해’는 단순한 음담패설을 넘어 잘못된 성 지식을 제공하고 여성에 대한 성적 편견을 확산시킨다. 서울의 명문대에서 지금껏 이 강의가 16년째 계속됐다는 것 자체가 뉴스다.   성의 이해 수업이 진행된 강의실 앞에 붙여진 대자보 이런 돌출적 강의는 사실 대학 일상의 성차별이 배경으로 자리하기 때문에 지속될 수 있다. 이 대학에 다니는 여성 오모(21)씨는 축제 때 경험을 털어놨다. 동아리 주점을 하면 거리에서 손님을 끌어오거나 테이블을 돌며 술을 나르는 일은 모두 여학생에게 떨어진다는 내용이다. “여자들이 해야 손님들이 많이 온다고 선배들이 시켜요.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하는 게 낫다고. 억지로 할 수 밖에 없죠. 삐끼짓 할 때 예쁜 애들이 많다고 해야 주점 인기도 올라간대요. 짧은 치마나 핫팬츠를 입고 오라고 말하기도 하죠.” 오 씨는 결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그냥 남학생들 틈바구니에서 아주 조금 문제의식을 느끼는 공대생일 뿐이다. 축제는 축제니까 참고 넘어가려 했지만, 강의 시간에 이런 말을 들으면 눈이 뒤집힌다고 말했다. “전공 수업이었죠. 교수가 학생들끼리 서로 질문과 답변을 해보라고 했어요. 근데 여학생이 나서면 1점씩 더 가산점을 준다고 하더군요. 여자들은 이렇게 해서라도 점수를 따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서. 불쾌했죠. 점수 더 준다는 건 여학생들한테 더 이익을 주겠다는 게 아니었어요. 말 그대로 여성을 깔 본 거죠. 여자란 이유 그 하나로.” 오 씨가 불만을 얘기하는 건 쉽지 않다. 괜히 말꼬투리 잡는다. 넌 왜 이렇게 예민하냐. 그 정도도 못 받아주면서 사회생활은 하겠니. 심지어 ‘꼴페미’라고 조롱받는다. 꼴통 페미니스트의 줄임말이란다. 함께 고민해 보자고 작은 목소리를 낸 건데, 너그럽지 못한 개인의 성격 탓으로 몰아간다. 이건 성차별에 이은 두 번째 폭력이다. 친구들은 그나마 낫다. 이야기라도 해볼 수 있으니까. 교수 선배로부터 “넌 왜 이렇게 예민하니” 이런 말을 들어보라. 불만은 곧 반항으로, 그 대가는 불이익으로 나타난다. 권력을 잡고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자꾸 이러니 문제를 제기하기 보다는 참고 감춘다. 괴롭고 또 무서우니까. ‘성의 이해’ 강의에 대한 문제제기는 일찍부터 있었다. 하지만 학교 당국은 “학생들의 강의 평가가 B+~A다. 우수 강의란 뜻이다. 제재를 가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이 대학의 양성평등센터라는 곳이 내놓은 대답은 더 웃긴다.    교재 <성 과학의 이해> 중에서 성폭력에 대한 언급 부분 “현재 사안은 강의 내용이나 강사 스타일에 관련된 것이어서, 센터에서 구체적인 도움을 드릴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명백한 성희롱 언행이라고 판단된 경우가 아니면 센터에서 개입하기 어렵습니다.” 이 강의를 진행하는 강사에게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바쁘다”였다. 반론을 듣고 싶었지만 그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먼저 나선 건 학생들이다. 지난 4월 인터넷에는 ‘한양대 성의 이해 수업에 문제 제기하는 사람들’이란 카페가 개설됐다. 이들은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강의 내용과 교재에 대해 반박했다.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으로 나와 함께 대자보를 쓰고 학교 곳곳에 게재하기도 했다. 언니네트워크,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단체들도 성명서를 발표하며 힘을 보탰다. 7월에는 해당 강사에게 질의서를 보내는 것은 물론 총장과 학장에게 서한을 보내는 등의 활동도 전개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들의 작은 노력은 다시 한 번 짓밟혔다. 강의의 잘못을 지적한 대자보는 강제로 철거됐다. 일부는 대자보를 붙이는 학생들의 사진을 무단으로 찍기도 했다. 이들은 강의 반대 활동과 그에 따른 언론 보도가 학교 망신을 불러왔다고 했다. 묻자. 잘못된 성지식을 주입시키고 성차별을 당연시 여기는 태도. 그걸 가르치는 수업이 버젓이 이뤄지는 망신보다 더한 망신이 있을까. 1학기가 끝났다. 이번 학기 한양대 ‘성의 이해’는 학생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한양대뿐 아니라 다른 대학들도 과연 성 지식과 성 차별 항목에서 낙제를 면할 수 있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성의 이해’가 또다시 6월 28일부터 진행되는 여름계절학기 과목으로 개설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는 정말 누가 좀 말려야 하지 않을까.   * 사진 및 내용 출처는 한양대 <성의 이해 >수업에 문제제기하는 사람들 모임인 cafe.daum.net/realsex와 해당 카페 운영자와의 인터뷰입니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428 | 추천: 0
유혜진/ 객원 칼럼니스트 5년 전, 처음 대학에 입학하고 모든 것이 새로워 눈이 휘둥그레진 나. 그 중에서도 교양 영어 시간은 유독 즐거웠다. 영문법을 기계적으로 외우고 몇 가지 문제유형에 맞추어 답을 골라내는 연습이 전부였던 고등학교 영어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내게 영어는 그저 대학 입시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학은 달랐다. 친구들이나 교수님과 직접 영어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주어졌다. 매주 A4 반쪽 분량의 영어 에세이도 썼다. '어젯밤 내가 꾼 꿈'과 같은 사소한 주제부터 '이랜드 파업, 대선, 탈레반에 대한 생각'까지. 한국말로도 쉽게 쓰지 않던 글을 영어로 꾹꾹 눌러 썼다. 주어와 동사 목적어가 전부인 꽤나 단출한 문장이었지만 열심히 썼다. 글을 쓰고 나면 교수님은 내 생각에 동의를 하거나 반박하는 내용을 담아 코멘트를 달아주었다. 점점 재밌어졌다. 내 생각을 좀 더 정교하게 표현하고 싶었고, 더 정확한 단어를 쓰고 싶었다. 열심히 사전을 뒤지고 교수님께 질문했다. 하루는 교수님께서 좋아하는 언어가 무엇인지 물으셨다.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프랑스어가 좋아 꾸준히 공부해왔던 나였다. 프랑스어를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교수님께서는 자신도 프랑스어를 잘 할 줄 안다고 반가워했다. 프랑스어로 번역된 한국 문학 작품들도 읽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내게 제안했다. 함께 언어를 공부하자는 것이었다. 내가 교수님께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나는 교수님께 프랑스어를 배우는 방식이었다. 공통언어는 영어였다. 그렇게 나는 매주 교수님의 사무실을 찾았다. 두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영어와 한국어, 프랑스어가 튀어나왔다. 우리의 공부는 자유로웠다. 교수님은 나를 위해 헌 책방에서 시몬 보부아르의 '제2의 성' 원본을 구해왔다. 하루 한 페이지 남짓이었지만 함께 책을 읽고 질문을 주고받다. 가끔은 샹송을 듣기도 했다. 한국의 노동운동에 관심이 많으셨던 교수님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자료들에 대해 물어왔다. 내가 미처 몰랐던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해 말씀하실 때면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또박또박 한국어 단어들을 MP3 파일로 녹음하는 긴장의 순간도 찾아왔다. 즐거웠다. 비록 나의 영어 실력과 프랑스어 실력은 교수님의 한국어 실력에 비해 더디게 늘었지만, 매 순간이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1년 간 함께 하며 '아, 대학에서는 이렇게 공부하는 구나' 싶었다. '영어'를 매개로 새로운 세상을 보고 또 다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기쁨을 맛 봤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 후로 내가 만난 또 다른 대학의 영어는 '영어 강의'가 주는 스트레스로 똘똘 뭉쳐있었다. 그 곳에는 제대로 된 '영어'도, 제대로 된 '배움'도 없었다. 수업의 80% 가량만을 영어로 설명하고 한국말로 설명하는 교수님의 수업이 있었다. 학생들은 수업의 80%는 딴 짓을 하다가 마지막 20% 시간에만 집중을 했다. 원서 내용을 그대로 파워포인트에 옮겨 수업시간 내내 읽는 것이 한 학기 강의의 전부인 수업도 있었다. 어쨌든 강의실에선 영어가 흘러나왔다. 시험도 파워포인트 그대로였다. 영어강의가 절대평가임을 감안했을 때, 학생들에겐 최고의 인기 과목일 수밖에 없었다. 일부는 수학문제풀이가 많은 경제학 수업으로 몰려갔다. 한 학기 동안 필요한 영어는 제한된 경제학 용어와 필수 동사들뿐이었기 때문이다. 칠판에 적힌 교수님의 풀이와 교과서만 있다면 한 학기는 웬만큼 버틸 수 있었다. 영어 실력과 전공 실력, 어느 하나 향상되지 않았다. 학생들은 '비싼 등록금을 내고 뭐하는 짓이냐'며 푸념할 수밖에 없었다. 영어라는 형식에 치우쳐, 교육의 내용과 본질은 잊혀진지 오래였다. 제대로 영어를 배우기도 전 강의실에서 영어는 하나의 콤플렉스요, 스트레스일 뿐인 것이었다.   올해 초 카이스트에서는 4명의 학생이 자살해 큰 논란이 됐다. 징벌적 등록금제와 함께 100% 영어강의는 카이스트 학생들에게 큰 부담이 됐다는 분석이 많았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사실상 대부분의 4년제 대학에서는 영어강의를 실시하고 있다. 대학 영어 강의의 명분은 '글로벌 캠퍼스'의 실현이다. 전공을 영어로 설명하며 영어 원서 책을 보는 것이 대학의 경쟁력과 학생의 경쟁력 모두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의문이다. 몇몇 대학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 실질적인 경쟁력의 강화일까. 이해하기 힘든 영어 강의 내용으로 학생들에게 부담감만을 가중시키는 것이 경쟁력의 향상인지 말이다. 실제로 내가 들었던 영어 강의들도 대학 당국이 주장하는 '경쟁력'과는 사뭇 거리가 멀었다. 고등학교 영어교육과 대학 교양영어 강의와 연계되지 않은 영어강의의 무리한 도입은 학생들의 좌절감만을 키웠다. 수능과 내신에서 고득점을 했던 친구들도 강의내용을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다며 매번 고민을 늘어놓았다. 고액의 영어회화 학원을 다니거나 영어 과외를 받았던 친구들은 조금 수월한 눈치였다. 그리고 수업의 흐름은 아버지의 직장에 따라 혹은 조기 유학으로 해외 연수의 기회가 있었던 친구들 위주로 돌아갔다. 교육 불평등의 한 양상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강의실을 벗어난다고 해서 영어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취업을 위한 스펙의 또 한 축엔 '토익 점수'가 버티고 있다. 대학생들 사이에선 이미 '토익 점수=영어 실력'이라는 공식이 깨진지 오래지만 우리는 또다시 수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할 수밖에 없다. 사회가 요구하기 때문이다. YMCA의 한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10명 중 7명이 영어시험 응시료와 강좌 수강료를 위해 연 평균 65만원에 육박하는 비용을 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학생의 절반가량이 영어를 위해 해외연수를 떠나는 것을 감안하면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영어 사교육에 쓰고 있는 것이다. 등록금 1000만원 시대, 대학생과 학부모들의 어깨는 더욱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학에서 '영어 교육'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대학평가를 위한 '영어강의'와 토익점수를 위한 '영어와의 사투'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대학은 '글로벌 캠퍼스'를 주창하며 영어강의는 대폭 늘려놓았지만 강의 내용과 운용은 부실했다. 사회에서는 '글로벌 인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지만 누구 하나 영어를 가르쳐주는 이 없었다. 또다시 고등학교 시절처럼 스타강사와 족집게 강의를 따라 사설 학원으로 내몰릴 뿐이었다. 더 이상 나에게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즐거움이란 없었다. 오늘날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영어는 더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한 경쟁, 취업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의 장과 같은 것이다. 맹목적으로 영어를 권하는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함께 올바른 영어교육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이제 막 시작된 대학가의 여름방학. 즐거움이 사라진지 오래다. 해외연수를 위해 비행기에 몸을 태우고, 토익학원으로 향하는 청춘들의 발걸음이 또다시 무거워지는 계절이 시작됐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557 | 추천: 0
손정원/ 객원 칼럼니스트 ‘베이비붐 세대’, ‘386 세대’ 등 특정 세대를 지칭하는 닉네임이 있다. 필자처럼 청년실업 100만 시대의 청년들은 ‘88만원 세대’로 불린다. 미취업 또는 저임금 비정규직이 지금의 젊은 세대를 표현하는 핵심어인 셈이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내놓은 대책 가운데 하나가 ‘청년인턴제’이다. 미취업 청년에게 현장 경험과 취업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단다. 2009년 3월, 정부 산하 청소년 활동기관에서 일을 시작했다. 10개월 계약직인 줄 알고 일을 시작했는데 공식 명칭은 ‘청년인턴’이었다. 당시 채용 담당자는 “부처에서 일반 계약직 T/O를 주지 않는다”며 “신분만 청년인턴일 뿐 급여는 일반 계약직과 다를 바 없다”는 친절한 설명을 해줬다. 기관 전체 직원 40명 중 절반인 20명이 비정규직이었는데, 청년인턴은 그 중 일부였던 셈이다. 10개월짜리 비정규직 ‘청년인턴’ 애초 ‘청소년 해외봉사단 코디네이터’라는 업무를 보고 지원했기에, 신분 명칭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열심히 하면 될 것’이란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열심히 일할수록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도 명확하게 다가왔다. 어느새 연말이 왔다. 계약직에게 12월이란 마치 ‘선고일’과도 같다. 그 해 겨울, 비정규직 20명 가운데 정규직을 선고 받은 이는 단 1명도 없었다. 12개월 단위로 계약한 보통의 비정규직들은 계약기간을 12개월 더 연장했고, 이미 24개월 동안 계약직으로 일한 이들은 하는 수 없이 다른 둥지를 찾아 떠나야 했다. 계약기간이 10개월이던 청년인턴은 딱 한 달 만 연장이 가능했다. 한 달의 추가계약 기간이 지난 뒤 담당 직원이 조용히 불렀다. “더 이상 계약 연장이 안 된다.” 이어지는 설명. “11개월 경력으로는 어딜 가도 쓸모가 없으니, 한 달 만 쉬었다 나오면 돼.” 다시 청년인턴 채용공고가 날 것이니 그때 지원하면 재고용이 된다는 얘기였다. 반드시 1달 간의 공백을 거친 뒤 다시 10개월짜리 계약을 새로 맺어야 하는 이유는, 12개월 이상 근무하면 퇴직금을 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만약 두 번째 계약만이라도 12개월을 단위로 했다면, 그 제안을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청년인턴으로서는 퇴직금도 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 경력단절 없이 일할 수 있는 1년 단위 계약직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일선 현장에서 청년인턴은 ‘더욱 질 나쁜 비정규직’에 다름 아니었다. 결국 다시 구직자의 신분으로 돌아왔다. 지난 2009년 5월 1일 119주년 노동절을 맞아 울산대공원 동문에서 지역 노동단체와 시민단체 등이 '민생민주 살리기 울산대회'를 연 가운데 대회 관계자들이 피켓을 설치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예산은 예산대로 낭비, 청년은 청년대로 불만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동안 취업시장의 문은 더욱 좁아져 있었다. 전 직장의 직원 말처럼 11개월짜리 청년인턴 경력은 어디에도 쓸모가 없었다. ‘T/O가 없어 청년인턴이라는 이름만 빌렸다’는 설명을 누가 들어주겠는가. 당장 생계부터 문제였고, 시간을 갖고 ‘제 자리’를 찾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헤매길 두 달, 결국 다시 청년인턴이 됐다. 이번엔 금융 관련 공기업에서 사회공헌 업무를 봤다. 여기서의 청년인턴은 정말 잉여 인간에 가까웠다. 초기 몇 달은 일이 거의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년인턴 동기 몇몇이 모이면 하나같이 ‘일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책상에 앉아 다른 일을 하자니 민망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결국, 대부분 청년인턴 기간 동안 다른 구직활동을 했다. 기관에서도 면접 등에 대비하라며 3일 간 무급휴가도 줬다. 부서 직원과 점심을 먹을 때였다. 그는 청년인턴에게 정을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언제 떠날지 몰라 일을 가르쳐 주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평생직장의 개념으로 일하는 공기업 직원에게 청년인턴은 왔다가 사라지는 바람과 같은 존재였다. 결국 정은 못 주되 업무시간에 취업 공부를 하거나 이력서를 작성하는 등 ‘딴짓’을 해도 눈감아주었다. ‘공부’가 아니라 ‘일’을 하고 싶어 찾아왔건만, 그리고 여기서 잘 배워 정규직이 되기를 희망했건만, 현실은 이와 달랐다. 다시 연말이 되었다. 이번엔 청년인턴 90명 중 4명이 정규직이 됐다. 나머지는 각자 제 갈 길을 준비했다. 담당한 직원이 조용히 불렀다. “사회공헌 업무에 사회복지사가 있으면 좋겠다. 파견직으로 전환해 일해 보는 것은 어떠냐”는 얘기를 했다. ‘한 달 쉬었다 나오라’는 제안보다는 인간적이긴 했다. 그러나 파견직은 파견업체 소속으로 월급도 더 박했다. 청년인턴으로 일하면서 세금을 포함해 120만원 가량 받았는데, 파견직이 되면 파견업체에서 떼는 몫이 있어 급여가 100만원에도 못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2년 뒤엔 또다시 갈 곳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청년인턴 하지마! 다쳐! 조심해! 결국 두 번째 청년인턴직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공언한대로 청년인턴이 취업의 기회를 준 것은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이었으며, 되레 다른 구직 활동에 손해가 됐다. 어떤 곳에서도 1년 미만의 경력은 인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소수의 성공사례가 있다. 정부는 이들을 가리키며 청년인턴이 돼보라고 권유한다. 일단 채용인원을 늘려 취업률을 높이고자하는 심산일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에게 청년인턴은 ‘잠깐 일자리’였으며, 되레 직업 선택의 폭을 좁게 하는 효과만 가져왔다. 청년인턴을 염두에 둔 청년에게, 또 청년인턴제를 확대, 재생산하는 정부에 말하고 싶다. ‘청년인턴 하지마! 다쳐! 조심해!
2017-06-27 | hrights | 조회: 491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