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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희망을 만드는 노력(도재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9 15:50
조회
338
지난 몇 년 동안 서울은 많이 변하였습니다.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생겼고, 거기에는 높은 건물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거리에는 외제 차들이 많이 다니고, 시내버스는 깔끔해졌습니다. 시내 곳곳이 잘 관리되고 있다는 인상도 받습니다. 마치 20년 전 처음 도착했을 때처럼, 요즈음 저에게 서울은 조금은 신기한 도시입니다.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많이 지쳐 있습니다. 그리고 옛날보다 조금 더 공격적이고 신경질적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퇴근 무렵 전철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런 불쾌함을 겪고 싶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굳이 자가용 승용차를 이용하여 이동하고, 그래서 서울 시내의 거리는 그렇게 붐비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거리의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더 친절해졌습니다. 사람들도 도시의 여러 규칙들을 좀 더 잘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특히 가게에서 겪는 친절함 중에는 과잉된 것도 있습니다. 마치 친절함 역시 그들이 지켜야 하는 규칙 중 하나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떤 때에는 낯선 사람에 대한 무례함이 좀 더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친절이 불편한 이유는 그 친절함 안에 있는 그들의 삶의 고단함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의 친절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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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의 민주화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오늘날의 한국 사회가 그 때보다 더 발전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국민들이 대통령을 직접 뽑고, 근로자들은 스스로 노동조합을 조직할 수 있고, 사회보장제도는 더 확대되었지만, 그런 사정을 들어 한국 사회를 좋게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빠르게 진행된 사회 양극화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특히 많은 이들은 민주화의 중심 세력이었던 근로자들의 삶이 더 피폐해졌고, 그들의 지지로 2명의 대통령이 집권했음에도 그 현상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절망하곤 합니다. 자신들이 지지한 정당이 지지자들을 위한 정책조차 만들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그들을 절망하게 합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칩니다. 많은 돈을 들여 아이들에게 사교육의 기회를 주려고 노력합니다. 20년의 경험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은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들을 배려하려는 노력을 공공연하게 비웃습니다. 20년 전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희망, 즉 좋은 사회를 함께 노력하여 만들자는 바람은 웃음거리에 불과합니다. 정부나 정당은 현재의 처지를 벗어나기 위한 처방으로서 단순한 정책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간혹 그것이 정책인지 아니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협잡인지 불분명한 경우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문제들은 복잡한 원인들로부터 나오는데 그에 대한 정책은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원인에 대해 단순하게 대응하는 것은, 그것이 이론적인 것이 아닌 이상, 거짓말이거나 정답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말을 믿어달라고 얘기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들은 무지하거나 거짓말쟁이에 불과합니다.

희망이 없다는 점 혹은 자신들이 선택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 많은 사람들을 절망에 빠지게 하곤 합니다. 그러나 지금 희망이 없으므로 앞으로도 희망을 가질 수 없다고 결론짓는 것은 지나치게 비관적인 생각입니다. 사회에 대한 희망은 저절로 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시장 질서에 순응하면 저절로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닙니다. 시장에는 ‘질서’란 말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원래 질서란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질서’는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할 때입니다. 이 질서는 모든 사람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에 관한 것입니다. 그에 관한 정책과 대안은 복잡하고 어수선한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필요합니다.

희망이 없는 오늘 보다 10년 후에도 우리 사회에 희망이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은 더 힘듭니다. 이제 스스로 생각하여 대안을 만들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이것은 조금은 용기가 필요하거나 귀찮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도재형 위원은 현재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