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발자국통신

‘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미운놈 떡하나 더 준다 (이지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9 00:42
조회
317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1. 밤참을 먹으려고 라면 물을 올려놓고 파를 썹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잘게 썰어지는 비취색의 파뿌리가 참 곱습니다.
칼질이 서툴러서일까요 가끔씩 싱크대 수챗구멍으로 튕겨져 나가는 놈들이 있습니다.
저걸 건질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칼질을 멈추고 수챗구멍에 떨어진 파 조각 몇 개를 건져 올립니다. 세상 어느 것 하나 가치없는 것 없다고. 눈앞의 먼지 하나, 매일 빠지고 또 생겨나는 머리카락 하나에도 그 의미가 있을 거라는 사소한 자연의 이치를 그냥 한번 흉내 내어 보는 겁니다. 내가 끓이는 라면 그릇에도 섞이지 못한다면 파 한 조각이 지녀왔을 존재의미를 산산조각 내버리는 거라는 숨은 자책이 조금은 깔려 있습니다. 사실 내가 보내고 있는 짧은 시간 시간의 조각이. 또 늘 나의 발뒤꿈치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나를 따라오는 발자국 한걸음 한걸음이 내가 버린 파 조각처럼 쓸데없는 존재가 되어버리는건 아닌가 하는 작은 애정이 내가 건져 올리는 파 조각 속에 있습니다.

작은 것 하나를 허투로 다루지 않는 일. 그래서 아주 작은 나로 그냥 머물러있는것도 꽤나 의미 있는 일임을 깨닫는 일, 가끔씩 라면을 끓이면서 느끼는 나의 소중한 교훈입니다. 그래서 도마 위에서 튕겨져 나간 파를 주섬주섬 주워 끓인 라면은 더 맛있습니다.

 
2. 조안나 메이시라는 심층 생태학자이자 작가인 분이 티벳에서 겪은 어느 여름날의 이야기입니다.

메이시는 현지 불교신자들과 회의를 하면서 공예품 조합을 만들기 위한 계획을 통과시키는 데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파리 한 마리가 찻잔에 빠졌는데 메이시는 대수롭지 않게 건져내어 버리면 된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도 겉으로 무슨 반응을 보였던 모양입니다. 초에걀 린포체라는 열여덟 살의 라마승이 동정 어린 눈빛으로 메이시 쪽으로 몸을 구부리며 무슨 일이냐고 물어왔습니다. 메이시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그저 찻잔에 파리가 빠졌다고 대답했지요. 린포체가 여전히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자 메이시는 스님이 자기가 걱정되어서 그러는 줄 알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거듭 말하며 찻잔을 옆으로 치웠습니다. 하지만 라마승은 계속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던 끝에 메이시의 찻잔에 손을 넣어 조심스럽게 파리를 건져내더니 방을 나갔습니다.

회의는 다시 진행되었고 메이시는 회의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얼마 후 다시 방에 들어선 필포체의 얼굴은 웃음으로 가득했습니다. 스님은 메이시에 다가가더니 파리가 괜찮을 거라고 조용히 말해주었습니다. 찻물에 흠뻑 젖은 파리를 문밖에 있는 잎사귀 무성한 나뭇가지에 내려놓고 파리가 날갯짓을 할 때까지 지켜보았다고 설명하고 이제 곧 파리가 날아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며 메이시를 안심시켰답니다.

 

-조안 엘리자베스 록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 중에서




080924web01.jpg종부세 무력화로 수혜가 예상되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등 고층아파트 밀집지역.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3. 백 명 중에 가장 재산을 많이 가진 1명에게 1000원을 주고 나누라고 한다면 가장 가난한 1명이 가질 수 있는 돈은 얼마가 될까요?

계산이 안 되지만 0.00............1원쯤 될 겁니다. 백 명 중 가장 가난한 1명에게 1원을 준다면 나머지 99명은 최소한 1원 이상씩은 다 가지게 될 겁니다.

요즘 들어 한명의 천재가 수천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재벌이 돈을 더 많이 벌어야 중소기업 서민 경제의 선순환이 일어난다는 이른바 “트리클 다운”이론을 빗대어서 하는 말이겠지만 반재벌 정책을 폈다던 참여정부기간동안에도 기업 실질 소득증가율이 38%에 이른 반면, 물가 상승률(3.6%)에도 현저히 못 미치는 자영업자 소득율(2.6%)이나 상승하는 청년 실업율(7.9%) 같은 수치를 보면서 “트리클 다운”효과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2005년 기준-한겨레)

최대 이슈가 되고 있는 정부여당에서 시행하려는 각종 세제 개혁안 하나만 보더라도(종부세, 양도소득세, 법인세 등의 감면) “만 명의 환자에게 약을 썼는데 서너 명에게만 효과가 있다면 그것을 약이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탄했던 춘추전국시대의 묵자(墨子)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는 속담에서 미운 놈은 자신에게 피해를 준 나쁜 사람을 뜻한다기 보다는 공동체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수자(minority)를 의미한다고 봐야 합니다. 백 명 중 가진 게 많아 시기 받는 몇 명이 아니라 가장 가진 게 없어 피 눈물 흘리는 몇 명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누구의 이해와 도움이 없이는 정상적 활동을 할 수 없는 이들에게 떡 하나 더 얹어주어 그 사회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는 공동체적 인식과 합의가 이 속담에 배어있습니다.

수챗구멍에 빠진 파 한 조각을 건지는, 찻잔에 빠진 파리의 생명을 걱정하는 사람의 손길에서 우리는 선조들이 남겨놓은 속담의 참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