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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법이 되었다: 대통령과 헌법(이찬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11-23 11:01
조회
540

이찬수 / 인권연대 운영위원


 

인간은 자연 내 존재이다. 인간이 자연 안에서 생겼고 자연법칙에 따라 살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법칙을 대상화할 줄도 안다. 가령 고대인이 마른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키는 방법을 알았을 때, 그 고대인은 불이 붙는 자연의 법칙을 대상화하며 아는 것이다. 법칙을 대상화할 줄 아는 인간은 그 법칙을 하나의 ‘방법’으로 정리해 다른 이에게 전수한다. 이렇게 전수되는 자연법칙이 ‘기술’이다. 그 기술로 인해 ‘문명’이 발생한다.


 

인간은 전수된 자연법칙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통제한다. 불도 인간의 목적에 맞추어진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 불을 지피고, 고기를 굽고 집을 데우기 위해 불을 일으킨다. 인간이 자연법칙을 자신의 의도에 어울리도록 조작하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은 자신을 자연에 대한 통제자나 조절자로 인식한다.


 

나아가 인간이 추상화한 기계적 법칙이 본래의 자연 속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럴수록 인간의 문명은 더 복잡하고 정교해진다. 인간은 다시 자연을 대체한 기계적 자연법칙에 욕망과 환상을 투사한다. 욕망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이다. 그럴수록 욕망과 환상이 투사된 자연법칙이 본래의 자연법칙을 통제한다. 인간은 다시 그 통제된 자연법칙, 즉 기술에 스스로를 밀어 넣는다. 그래야 자신을 위한 효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간이 자신을 위해 조작해낸 자연법칙에 종속되는 방식으로 스스로 자연이 되어 간다.


 

여기서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신조어도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인류세는 “인간의 활동이 지구상에 축적되어 자연의 존재 방식을 바꾸고 이 바뀐 자연에 의해 인간이 영향을 받게 된 상황”을 의미한다.(시노하라 마사타케, 『인류세의 철학』) 지구의 지질학적 구조 안에서 살던 인간이 힘을 키워 지구의 지질 구조를 바꾸는 존재로까지 ‘발전’해 간 것이다. 지구온난화, 가뭄, 홍수 등은 인간이 바꾼 기계적 자연법칙의 효과들, 인간이 원하지 않았던 효과들이다.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를 자연처럼 여길 정도로 자연을 수단화하는 중에도, 본래의 자연은 숨죽이고만 있지 않았다. 본래의 자연은 인간의 수단에 갇히지 않고, 인간과의 경계를 뚫고 인간세계에 침입하여 인간의 지반을 뒤흔들고 때로는 붕괴시키기도 한다. 인간이 대상화시킨 자연법칙을 통해 자연 본연의 위력을 드러낸다. 지구온난화, 가뭄, 홍수는 물론 심지어 지진과 쓰나미도 인간이 자연을 객체화시키면서 벌어지는 현상이자, 인간에 대한 본래적 자연의 역공이기도 하다.


출처 : 기업의 png에서 .pngtree.com/


 

희한하게도 똑같은 현상이 법과 정치에서 벌어지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근대 국민국가는 국민과 영토와 주권으로 구성된다. 주권이란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이다. 원칙적으로 이 권력은 국민 전체에게 평등하게 속해 있다. 그 국민적 평등성을 유지하는 상태가 정의이다. 정의는 본래적 의미에서의 질서이기도 하다. 정의와 질서를 위해서는 사법(司法)과 정치가 필요하다. 사법과 정치는 국가 운영의 근간이다.


 

그런데 인간이 스스로 자연이 될 정도로 자연을 수단화하며 살아왔듯이, 이때 사법과 정치가 자신에게 더욱 유리한 것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일종의 인지상정이기도 하다.


문제는 권력의 정점에서 법을 운용하는 세력일수록 법을 자신의 수단으로 삼을 가능성도 크다는 데 있다. 법의 운용 세력도 본래는 법의 영역 안에 있는 ‘법 내부적 존재’이지만, 법의 운용을 빌미로, 법의 이름으로, 법의 상위에 오른다는 데 있다. 인간에 의해 객체화된 자연법칙이 기술이듯이, 법 기술에 능한 이가 법의 이름으로 법을 통제하며 그들만의 법 세계를 이룬다. 본래의 법은 자연환경처럼 인간을 둘러싸고 있고, 모든 이가 같은 법의 통제와 견제 하에 있어야 하지만, 법 기술자들은 법 안에서 법의 이름으로 법을 통제하며 넘어선다. 법을 이용해 자신을 정당화하고 유지하고 영향력을 확장한다.


 

수단화한 법으로 법의 이름으로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할 법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 식으로 법과 하나가 된다. 자연 내 존재인 인간이 지질학적 행위자가 되어 자연의 질서를 무너뜨리듯이, 특정세력에 유리한 법이 법의 이름으로 법 안으로 들어가 법의 주체자가 된다. 그러면서 법 본연의 평등성을 해친다.


 

어떤 사건의 위법성을 판단하는 주체인 검찰은 사법 권력의 정점에 있는 세력이다. 검찰 자신은 법질서 안에 있으되, 법을 운용하는 주체로서의 의식이 훨씬 강하다. 자신이 사법의 대상이라는 생각을 별반 하지 않는다. 법의 원리를 활용해 법을 수단화하면서 법의 효과를 누리다가 급기야 법과 하나가 된다.


 

검찰 수장 출신인 대통령이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대표적인 언론인 MBC의 취재를 제한하고 제재까지 추진하려 하고 있다. 해외 순방을 위한 대통령 전용기에 MBC 기자를 배제한 이유에 대해 “헌법수호를 위한 조치”라고 강하게 성토한 바 있다. 수호해야 하는 헌법과 그 헌법을 수호하는 주체를 동일시하면서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정치적 시도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헌법의 이름으로 스스로 헌법의 자리에 오르려 한다. 대통령이 된 이후 수도 없이 ‘자유’를 외쳤지만, 막상 자신에게 불리한 자유는 배제한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을 내세워 언론의 자유를 부정하는 행태에서 헌법의 이름으로 헌법을 부정하는 모순을 국민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대다수가 안다. 인간이 스스로 자연이 되어버릴 정도로 키운 힘이 사실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대통령이 수호하려는 헌법은 사실상 법을 앞세운 자신의 권력이라는 것을 말이다. 인간을 위한 수단인 줄 알았던 자연이 기후위기의 형태로 인간의 지반을 공격하듯이, 자신을 위해 수단화한 법의 효과가 실질적 주권자인 국민 안에서 다양하게 파생되고 재이용되면서 더 큰 쓰나미로 변하리라는 것을 말이다. 자연의 질서는 물론, 사법과 정치 본연의 질서를 그 어떤 것보다 두려워해야 할 일이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레페스포럼 대표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