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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KBS의 추억, 그리고 민심 -수군수군의 정치학-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12-04 15:35
조회
275

오항녕 / 인권연대 운영위원


오랜만에 역사학계 동료 한 분에게 전화가 왔었다. KBS ‘역사저널 그날’이 살아있다고, 출연해달라고. 줄곧 진행을 맡고 있던 프로그램이 중단되었다가 다시 재개된다고 하였다. 일기에서 확인한 날짜는 2017년(정유년) 9월 어느 날이었다.


2016년 가을,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드러났고 우리는 언 손을 녹이며 겨울내내 촛불을 들었다. 2017년 3월에는 박근혜를 파면하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있었고, 5월에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이런 일들이 KBS ‘역사저널 그날’을 되살렸으리라. 희망, 그렇다, 약간은 흥분된 희망이 사회에 넘실댔다.


다시 시작하는 ‘그날’의 주제는 ‘조선의 언론’으로, 2회에 걸쳐 방영하기로 했다. 진행자는 “제대로 된 공영방송을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인사드리지 못했습니다”라는 인사말로 시작했다. 자막에는 ‘목숨을 걸고 외친 한 마디’라고 적혀 있었다. 그 한 마디는, ‘아니되옵니다’였다. 국왕에게 목숨을 대놓고 직언하고 비판할 수 있었던 경험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대간(臺諫), 즉 사간원과 사헌부를 포함한 조정의 신하가 언론을 담당했던 역사를 조명하면서, KBS가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하고자 했던 다짐이었으리라.


탄핵 때 언론의 힘이 컸다는 패널의 말도 이어졌다. 나라와 사회가 어려울 때 언론이 했던 역할도 강조되었다. 진행자는 “그런 전통을 KBS가 이어가야 하는데요!”라고 말을 받았다. 그때 내가 대본에 없는 말을 했다.


“앞으로 잘하셔야죠!”


<내가 캡쳐한 게 아니라, KBS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이 광고로 내보낸 컷이다. 그들의 다짐이자 포부였을 것이다.>


6년이 지난 지금, 공영방송 KBS는 이상한 과정을 거쳐 임명된 박민 사장은 난데없이 ‘편파방송 사과’를 하고, 1980년대 ‘땡전뉴스’를 생각나게 하는 ‘땡윤뉴스’를 내보내고 있다. 몇몇 기자는 퇴사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기자들은 뭐하느냐는 기대 섞인 원망도 나오나보다. 그럴만도 하다. 나부터 한참 지난 KBS의 추억을 떠올리지 않는가!


그래선지 친구가 말했다. 왜 이렇게 잠잠하지? 사람들이 말이야. 왜 조용한지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하도 어처구니가 없다 보니 시민들이 좀 멍한 거 아닌가 싶다. 윤석열 정부는 참으로 다채롭게 보여준다. 총독부가 부활한 듯한 대일 굴욕 외교, 법인세 인하로 인한 세수 펑크, 그에 이은 복지 및 연구 예산 삭감, 검찰 권한의 오용과 남용부터, 언론을 시녀로 만들거나 사유화하려는 시도, 용산이나 오송 참사에 대한 부실 대응, 인터넷 최강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행정정보망 먹통, 휴전선 지역의 충돌을 예방했던 9.19군사합의 효력 정지 …….


지난주만 해도 근거 없는 엑스포 유치 예상에 대한 허탈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대통령 부인 김건희가 고가의 가방을 받고 인사에 간여하는 보도가 나오는 판국이다. 확실히 역대 어떤 정부도 못하던 파노라마를 보여주는 건 틀림없는 듯하다. 그러니 국민들이 정신을 차리기 어렵다.


폭정이나 억압에 대해 민심이 조용할 때 그 이유를 설명하는 두 이론이 있다고 한다. ‘두꺼운 분석’과 ‘얇은 분석’. 앞의 것은 폭정의 논리를 내면화해서 기꺼이 동조하는 것으로 흔히 헤게모니론이라고 한다. 뒤의 것은 ‘어쩌겠나, 그래도 살아야지’ 하면서 동의하지는 않지만 순응하는 것이라고 한다. 두껍고 얇다는 말은 뼛속까지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의 차이를 말하는 것 같다. 이런 설명 역시 상황을 더 뜯어보기는 했지만, 죽창 드는 농민, 파업에 나서는 노동자, 촛불 드는 시민을 설명하지 못한다.


<시민의 정치 공간, 선술집. 저기서 무슨 말이 오고 가는지는 저 사람들만 안다.>


<드라마 촬영 중. 저들은 중전마마 또는 PD의 욕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특히 ‘무슨 말을 하고 있어?’ 하고 물었을 때, ‘아무것도 아니예요’라고 대답한다면 100%!>


그래서 나는 동조와 순응의 밖에 존재하는 무수한 정치공간에 주목한다. 모바일 소통방에서, 인터넷 카페에서, 버스 안에서, 점심 밥 먹으며, 퇴근 후 한 잔 하며 친구나 동료들과 나누는 작금 정치 행위에 대한 농담, 경멸, 불평, 불만, 불안, 비웃음……. 때론 맘 맞는 사람들끼리라면 술김에 세상을 엎어버릴 듯이 호언을 해도 좋다. 푸념, 호언처럼 들리는 그 두런두런, 수군수군 속에 시민의 정치의식은 보존된다. 그 속에서 피어나는 위로, 가능성, 희망이 있다.


PS.


1) 나라꼴이 이런데도 아직 30%나 지지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화내는 분들이 있다. 그릇된 현실에도 그걸 초래한 자신의 행위를 인정하지 못하는 게 인간이다. 이 인지부조화는 초래한 자신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므로 화낼 에너지는 내 속에는 인지부조화가 없는지 돌아보는 데로 돌리는 편이 좋겠다.


2) 앞으로 5년을 어떻게 눈 뜨고 보느냐고 하는 분들도 있다. 난 우선 3년 반이라고 고쳐준다. 그리고 연산군 15년, 광해군 15년, 식민지 40년을 살았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위로 안 되는 사료를 알려준다. 당시는 텔레비전, 라디오가 없어서 그 꼴을 매일 듣고 볼 일이 없었으므로 나의 위로는 시대착오적이기까지 하다.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3) 1980년 전두환 쿠데타를 다룬 ‘서울의 봄’이 흥행이란다. 특히 MZ 젊은이들이 많이 본다고 한다. 다행이다. 나는 이번에 보지 않을 생각이다. 1980년대보다 더 1980년 같은 지금, 그 기억을 소환하기엔 아직 버겁기 때문이다. 좀 더 세상이 좋아지면,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나면 그때 볼 생각이다. 감독, 배우, 스텝들께 역사학자로서 고맙고, 관객으로서는 미안하다는 인사 전하고 싶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