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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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이찬수(전 보훈교육연구원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재성 / 인권연대 운영위원 하나의 유령이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법치라는 유령이. 법치가 법복귀족(noblesse de robe)의 인치(人治)로 전락한 지 오래인데도 한국사회는 법치라는 유령에 홀려, 출구 없는 반동의 터널을 헤매고 있다. 언론은 검찰의 포로가 되었고, 사법부는 검찰의 시녀가 되었다. 진보논객은 역진영논리라는 병에 걸려 제 발등 찍기에 바쁘고, 민주당과 정의당은 검찰이 놓은 덫에 빠져 정치 언어를 잃은 채 오리무중이다. 바야흐로 검찰의 전성시대다. 출처 - 경향신문 법치의 계급적 본질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탄압은 검사정권이 말하는 법치의 계급적 본질을 폭로한다. 검찰 집단이 한 번도 반노동자적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전혀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파업에 강경대응 했다고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가는 현상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진영이 여론전에서 패배하고 있는 현실을 가감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헌법이나 ILO 규정까지 거론할 필요도 없다. 특정 회사에 소속된 정규직 노동자도 아니고 화물차를 소유한 차주로서 임의의 계약관계에 있는 (투쟁의 결과 간신히 4대보험 임의가입 대상이 된) 특수고용직 노동자에게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내린다는 건 그 자체로 모순이다. 고용할 땐 책임지기 싫어서 자영업자로 만들어놓고 뭉쳐서 싸우면 자영업자에게 강제노동 명령을 내린다? 이 자명한 억지에도 맞서지 못할 만큼 진보진영의 여론 형성 능력은 바닥에 떨어져 있다. 적반하장 정치가 가능한 이유 유례없이 낮은 지지율과 무책임한 불통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이 우격다짐-적반하장 정치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단지 자기가 검찰 출신이어서 기소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윤석열과 졸개들이 현대 민주사회의 핵심 작동 원리인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권한과 메커니즘을 장악했다고 믿기에 저렇게 당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믿음은 상당부분 타당하다. 대통령 후보로 등극하게 된 계기였던 조국 일가 수사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윤석열은 오불관언의 돌쇠형 리더십으로 일관해 왔다. 비판이 없지 않았으나 법 집행이라는 명분으로 쉽게 제압했다. 법은 자신의 모든 허물과 모순과 자가당착을 파묻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법 해석투쟁 포기한 대가 법은 사회적 약속이지만 갈등과 타협의 산물이어서 해석과 적용에서도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법 집행의 적정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법치를 부인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생겨 버렸다. 법은 끊임없이 재해석해서 새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정의 실현의 일시적 도구에 불과한데도, 마치 불변의 진실인 것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게 되었다. 법 집행의 생명은 공정성인데, 살권수라는 거짓 명분에 속아 유검무죄 무검유죄의 편파성을 용인해 버렸다. 검찰 수사의 편파성과 자의성을 지적하면 민주당 편을 든다고 눈을 흘겼다. 진보진영이 법 해석투쟁에서 스스로 백기투항한 결과가 검사정권의 수립이요,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전방위적 반동의 물결이다. 검찰의 포로가 된 언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민은 현명해서 여론의 3분의 2가량이 윤석열 정부의 일방통행에 비판적이다. 하지만 분노는 한줄기로 모이지 않는다. 언론의 역할 또는 책임 방기가 큰 몫을 차지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신들이 진영주의 언론이라고 낙인 찍은 매체의 보도는 아예 무시한다. <더탐사>가 보도한 ‘윤석열-한동훈-김앤장 술자리 의혹’ 사건이 그런 경우다. 만약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법의 이름으로 나라를 주무르는 법복귀족 카르텔의 실체를 드러내는 중대한 국기문란 사건이지만 팩트 취재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법무부 장관이 <더탐사> 기자들을 고발하고 잇달아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는데도 모른척한다. 수사기관을 완벽히 장악한 검찰 출신 장관이 법을 동원해 비판 보도에 재갈을 물리는데도 별일 아니라는 듯 무시하고 있다. 진영주의 매체는 언론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설사 이들이 진영주의 매체라 해도 언론탄압에는 함께 맞서 싸워야 하는 것 아닌가. 주류언론이 단순히 정보가 부족해서 검찰 비판 보도에 소극적인 것만은 아니다. 유검무죄의 흔한 케이스 중 하나인 이른바 고발사주 사건을 보자. 검찰이 핵심 피의자인 김웅을 불기소 처분하기 위해 수사보고서를 허위작성했다는 검찰수사관의 폭로를 거의 지나가는 뉴스처럼 다루거나 무시했다. 공항에서 도망가려는 김학의 긴급체포를 위해 허위공문서를 작성했다고 검찰이 수사를 벌일 때는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따라가기 바빴던 언론은 대체 어느 나라 언론이었나? 역진영논리에 빠진 진보논객들 국민 일반의 상식과 주류언론 또는 지식인들 사이에 점점 더 괴리가 커지는 현상은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강준만은 최근 한 칼럼에서 윤석열과 이재명이 마주 보며 달리는 기차라며, 이걸 세우는 게 자신의 사명인 것처럼 말했다. 내가 보기에 이재명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윤석열과 검찰 부하들이고, 이재명은 피하고 싶은데 피할 데가 없어서 그냥 서 있는 것 같은데, 대체 무슨 근거로 마주 보며 달리는 기차라는 것인지, 칼럼을 봐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최근 검찰이 소환조사를 받으라고 이재명에게 통보한 성남FC 수사처럼 없는 죄도 만들어내려는 검찰의 필사적인 노력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 못 본 척하는 것인지 역시 알 수가 없다. 진영논리라는 비판이 두려운 나머지 역진영논리에 빠져 사리판단조차 흐려진 사례라고 생각한다. 어떤 진보논객은 이재명의 측근이 모두 구속되었으니 최소한 유감표명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몰아부친다. 그런데 구속된 본인들은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특히 정진상의 경우, 돈을 줬다는 전언의 전언을 근거로 기소와 영장 발부가 이뤄진 것이다. (부패방지법 위반 혐의는 사안 자체도 별 게 아니고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주장이 있다) 진보논객조차 검찰 기소와 영장 발부를 유죄 판결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런 안이한 자세가 검찰 권력을 무소불위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정녕 모르는 것일까. 정권이 바뀌어 검찰이 재수사에 착수하자 기존 진술을 뒤집어가며 검찰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주는 피의자들만 혐의를 덜어주고 편의를 봐주는 게 보이지 않는 것일까. 증언 조작의 낌새를 느끼는 건 지나친 의심일까. 검찰의 시녀가 된 사법부 영장 발부 또한 유죄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여기서 세부 사항을 따질 여유는 없지만, 서해 피격 사건과 관련하여 서훈 전 국정원장의 영장이 발부된 것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 구속과 함께 사법부의 방대한 자료와 정보가 검찰에 넘어간 이후 사법부의 보수화 경향이 눈에 띄게 강화됐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검찰에 영혼을 털린 사법부가 검찰의 눈치를 보는 시녀로 전락한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물론 그렇지 않은 판사도 있겠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대법원이 윤석열 장모의 요양급여 편취 사건에 무죄를 선고한 것은 그저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스스로 무릎 꿇은 민주당 검찰권력 앞에 스스로 무릎 꿇는 건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지난여름 민주당은 기소와 동시에 직무를 정지하는 당헌을 결국 유지하기로 결정했는데, 이재명 방탄용이라는 내외부 비판 때문이었다. 나는 민주당의 당헌 개정이 기소가 본래 갖고 있는 사전적 의미-법원에 심판을 요구한다-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했는데, 내부 정치투쟁으로 전락해 수포가 되어버렸다. 이것이 오늘날 사분오열되어 눈치만 보면서 거의 아무런 존재감도 느껴지지 않는 거대야당 민주당의 모습이다. 민주당마저 이렇게 기소에 힘을 실어주니 검찰이 죄수까지 동원해서 증언을 연습시켜 진술을 바꾸고 기록을 조작하며 기소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특히 윗분들이 싫어하는 대상의 경우 일단 기소만 하면 해당 검사는 출세길이 보장된다. 재판에서 무죄가 나오더라도 대법원 판결까지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판결은 무의미하다. 기소 대상에 대한 여론재판은 이미 오래전에 끝난 상태고, 해당 검사의 화려한 경력을 물릴 수도 없다. 이 상태로라면 오히려 물불 가리지 않고 기소에 올인하지 않는 검사가 비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제도적 유인책이 강력하다. 이성윤, 박은정 등 문재인 정부에 협조적이었던 검사들이 죄다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 따른 것이다. 조직의 배신자는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보복하는 게 한국 검찰의 조폭적 규율이다. 무너진 상식의 인계철선 윤석열과 검찰이 정권 탈취의 수단으로 사용했던 수사와 기소는 이제 정적제거와 정치보복의 무기로 활용되고 있다. 제 식구(ex: 김건희, 김웅)는 뻔뻔할 정도로 대놓고 봐준다. 공정하게 보이려는 최소한의 성의도 없다. 형식적인 외관조차 갖추기 귀찮을 만큼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정의와 상식의 인계철선이 무너진 것이다. 그런데도 검찰의 불공정성에 대한 비판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 당시 공정성 논란의 주요 펌프였던 검찰과 보수언론이 기능을 멈춰서 사회적 원동력이 사라진 탓이 크다. 진보진영의 경우 앞서 언급한 각자의 사정으로 주눅이 들어 있다. 무엇보다 법 집행 자체, 법치라는 허울의 위력에 눌려 감히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군사정권의 물리적 폭압과 달리 검사정권의 법리적 폭압은 알아차리기도 쉽지 않고 분노를 모으기는 더욱 어렵다. 일종의 저강도 독재인 셈인데, 그래서 언론과 지식인의 책무가 더욱 중요해진다. 적어도 진보언론과 논객들은 문재인 정부 당시 공정성 문제를 제기했던 열정의 절반이라도 할애해 검찰의 불공정성을 비판해야 한다. 검찰개혁은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이자 정의의 문제이며, 무너진 상식의 인계철선을 복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2-12-28 | hrights | 조회: 765 | 추천: 17
최낙영 /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49일째인 지난 16일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16일 오후 6시부터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를 열었다. (...) 유가족과 시민들은 정부와 여당을 향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했다. (...) 49재가 진행되는 이태원 거리는 눈물로 뒤덮였지만 유가족과 시민의 절절한 절규를 들어야 할 정부와 여당은 찾아볼 수 없었다. 또 총리도, 행정안전부 장관도 얼굴조차 비치지 않았다. 비슷한 시각 윤석열 대통령은 부인 김건희 여사와 ‘윈·윈터’ 페스티벌 개막식에 참석해 술잔을 사고 트리를 점등했다. (...) -세계일보, 2022. 12. 20. 인권연대 회원이 된 덕에, 2022년 ‘올해의 인권책’으로 선정된 <학교 가는 길>을 비롯, 몇 권의 책을 더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책들 중, <민낯들>(오찬호 지음, 북트리거 발행)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졌던,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고 다짐했던 12가지 사건들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진실이 인양되지 않고 있는 세월호 참사, 변희수 하사를 죽음으로 몰고 간 후에도 여전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노동자 김용균의 산재 사망 사고 이후에도 바뀐 것이 거의 없는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 등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가 어떻게 무너졌으며, 혐오와 증오가 어떻게 일상화되었는지를 살핍니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인간 존엄이 보장되지 않았기에 발생한 안타까운 사건들과, 한국 사회는 원래 그렇기에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야기한 괴상한 일들 속에 질문은 숨겨져 있다.”며 제대로 된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질 것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들에 대해 ‘일단 화들짝 놀라고, 아직도 이런 일이 있냐고 탄식하고, 피해자를 추모하고, 재발 방지를 모색하는 고민의 연속만이 사회를 움직인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출처 - 셔터스톡> 복철지계(覆轍之戒)는 먼저 간 수레가 엎어진 것을 보고 뒤에 오는 수레가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과거의 잘못을 거울삼아 같은 과오를 저지르게 되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이태원 참사는 세월호의 아픈 기억을 다시 떠오르게 합니다. 유족들 앞에서 벌어졌던 소위 ‘폭식투쟁’이라는, 그 끔찍했던 장면은 언제나 저를 몸서리치게 만듭니다. <민낯들>에서 세월호 참사에 관한 장(‘우리는 끝없이 먹먹할 것이다-기억과 책임 그리고 약속, 세월호 참사’)의 끝 문장들을 옮깁니다. “우리의 추모에는 이 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경고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먹먹해질 것이다. 지나간 일을 왜 그렇게 붙들고 있냐는 그 생각, 추모가 밥 먹여 주냐는 그 생각, 이왕이면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는 그 생각이야말로 엉터리 시스템이 가장 원하는 결과라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이태원 참사 특조위가 구성된 지 27일 만에야 첫 현장조사에 나섰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정말 춥고 가슴 먹먹한 연말입니다. 최낙영 위원은 도서출판 밭 주간에 재직 중입니다.
2022-12-22 | hrights | 조회: 514 | 추천: 4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알렉산더’라는 영화가 있다. 흥행이 썩 잘되진 않았고 다소 지루한 것도 사실이지만 영화 초반부 가우가멜라 전투 장면만큼은 언제봐도 흥미롭다. 알렉산더대왕이 이끄는 마케도니아와 다리우스3세가 이끄는 페르시아가 기원전 331년 오늘날 이라크 아르빌 인근 가우가멜라라는 곳에서 맞붙었던 전투에서 알렉산더는 우익에 배치한 기병대를 이끌고 페르시아 쪽 좌익 기병대를 유인한 뒤 페르시아 본진과 좌익 사이에 벌어진 틈을 놓치지 않고 다리우스3세 바로 앞까지 쇄도했다. 예상치 못한 일격에 전열이 무너지면서 페르시아는 결정적인 패배를 당한다. 대오가 흐트러지는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은 덕분에 그토록 기세등등했던 페르시아가 무너졌다. 군대에 가면 가장 먼저 배우는 게 제식훈련이다. 조교들은 끊임없이 “오와 열을 맞추라”며 어그적거리는 훈련병들을 닦달한다. 줄이 조금 안맞는다고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일어날까 싶은 생각이 들기 마련이지만 지나놓고 보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줄을 맞춰서 움직이지 못하는 군대는 군대로서 기능을 할 수가 없다. 평소에도 줄이 안 맞는데 위기상황에서 한 몸처럼 움직인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줄이 무너져서 몰살당하는 얘기는 동서고금 흔하디 흔하다. 데모할 때 생각해보자. 가투(가두투쟁)에서 전경들이 최루탄을 쏘고 시위대가 화염병을 던지는 건 기본적으로 상대 진영을 붕괴시키기 위해서다. 축구도 크게 다르지 않다. 4-4-2나 4-3-3 같은 이른바 포메이션이라는 것도 따지고보면 전투진형과 다르지 않다. 수비가 무너져서 실점을 했다는 건 수비 대오가 무너져 방어가 안되는 구멍이 뚫렸다는 의미다. 강한 압박과 속도, 패스를 통해 우리 공격대형은 제대로 작동하게 하면 승리할 수 있다. 한국과 포르투갈 경기 막판 역전골은 포르투갈 선수 7명이 손흥민 막느라 정신이 팔려서 수비대형이 무너진 게 원인이었다. 대오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짧은 군대 경험을 통해 생각해보면 내 옆에 있는 전우, 내 뒤에 있는 전우가 나를 지켜준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적군이 우리를 향해 돌진해오면 무섭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럴 때 한두명이 자리를 이탈해 버리면 공포가 전염병처럼 순식간에 퍼지기 마련이다. 그럼 전투는 하나 마나다. 반대로, 내 옆자리를 맡은 사람이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면 그 용기 또한 퍼져나간다. 대오를 유지해야 내 목숨도 살릴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결국 믿음직한 전우만큼 든든한 게 없다. 출처 - 천주교인권위원회 한 군인이 있었다. 세상은 남자라 여겼지만 자신은 여자이고 싶었다. 믿음직한 전우로서 나라를 지키는 군인, 하사 변희수로 남고 싶었다. 하지만 육군에선 하사 변희수가 성전환수술을 한 것을 ‘심신장애’로 규정했다. 강제전역시켰다. 육군의 논리는 이런 것일까. 하사 변희수는 남성의 상징인 ‘거시기’를 떼어냈다. 그는 이제 ‘생물학적 남성’이 아니고, 믿음직한 전우도 될 수 없다. 성전환 수술 이후에도 계속 군복무를 하고 싶어했던 하사 변희수는 결국 스스로 세상을 버렸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것 투성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듬직했던 전우가 어떻게 성전환 수술을 하고 나면 전우들의 목숨을 믿고 맡길 수 없는 믿음직하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육군이 생각하는 믿음직한 전우는 ‘생물학적 남성’이어야만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오늘도 군대에서 성실하게 복무하는 여성 장교와 부사관들은 뭐란 말인가. 법원에서도 강제전역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런데도 최근 육군은 고(故) 변희수 육군 하사가 ‘순직’이 아니라 ‘일반 사망’이라고 결론내렸다. 육군에선 “공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하는데, 군인사법에선 “고도의 위험을 무릅쓴 직무 수행 중 사망”한 사례 뿐 아니라 “국가의 수호·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도 순직 대상에 포함한다는 것과도 맞지 않는다. 인권침해나 관리소홀로 인한 자살을 순직으로 인용하는 최근 추세에 비춰보더라도 납득이 안된다. 육군은 여전히 하사 변희수를 전우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리라. 전우가 내 뒤에서 나를 지켜주고 나 또한 전우를 지킨다. '여자'냐 '남자'냐 하는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그런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오직 내 옆 내 뒤에 있을 때 든든한, 목숨을 빚질 수 있는 믿음을 주는 ‘사람’이면 된 것 아닐까. 나를 지켜주는 건 '전우'로 충분하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2-12-14 | hrights | 조회: 692 | 추천: 6
장경욱 / 인권연대 운영위원   윤석열 정부의 무차별 종북몰이, 공안몰이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권과 집권여당의 낮은 지지율에 따른 위기 탈출을 노린 사활을 건 종북몰이는 급기야 민중운동과 진보통일운동 진영에 대한 공안몰이 국가보안법 수사로 이어지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극우보수정권은 통치 위기 국면에서 언제나 종북몰이, 공안몰이 카드를 꺼내 사이비 안보문제를 내세워 공안정국을 조성하며 여론의 반전을 꾀해 왔다. 아무데나 시도 때도 없이 ‘전가의 보도’로 사용 중이다. 늘 봐왔던 시대착오적 코믹 저질 수법이긴 한데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스릴러 공포 영화를 보는 오싹한 느낌이다. 느닷없이 전직 대통령조차 신영복 선생을 존경한다는 이유로 김일성주의자로 간주한다. 대통령이 여당 행사에서 종북 주사파와는 협치가 불가능하다는 발언으로 야당을 향한 종북몰이 공세의 앞장에 나선다. 심지어 안전 운행을 위해 안전운임제의 적용 확대를 요구하는 화물연대의 정당한 생존권 투쟁을 불법파업으로 매도하며 북한의 핵 위협과 마찬가지로 규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민주노총의 국가보안법 폐지 성명에 이때다 하고 ‘민노총’이 하라는 노동자 대변은 하지 않고 북한을 대변하는 ‘조선로동당 2중대’라고 나무라며 ‘민로총’으로 이름을 바꾸라는 여당의 논평은 노동자를 위한다는 그 가식이 역겹기는 하지만 차라리 애교스럽기까지 하다. 작금의 종북몰이 공세는 거의 실성한 수준의 황당무계하기 그지없고, 막무가내식 무식과 만용, 오만과 독선으로 점철된 것으로 최악으로 꼽힐 것이다. 출처 - Rev. Timothy's 묵상일기 중 윤석열 정부는 재벌 대기업 중심의 불평등 심화로 인한 민생 위기의 해소에는 아무런 관심조차 두지 않고 그 어떠한 대책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임기 시작 고작 6개월 만에 정권의 무능함이 탄로 날까 두려워 오로지 종북몰이 공세로 정쟁을 불러오고 노동자 때려잡기에 혈안 돼 노동기본권을 침해하며 생존권을 위협하는 반민중적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극우보수정권의 재집권을 기다렸다는 듯이 공안수사기관들은 전방위적 국가보안법 수사를 노골화하고 있다. 늘 그래왔듯이 민중운동과 진보통일운동 진영에 대한 공안몰이가 확대일로를 걷고 있다. 민중운동과 진보통일운동 진영은 극우보수정권의 종북몰이, 공안몰이의 희생양이 되어 국가보안법의 위협과 처벌에 직면해 있다. 국가정보원, 경찰청 안보수사대, 검찰 등 공안수사기관은 그동안 오래도록 썩혀두었던 음습한 지하 저장창고에서 공안몰이 창고 대방출을 본격화하며 희생양을 취사, 선택하여 공안탄압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국가정보원 안보수사국 및 국가정보원 대변인실은 향후 극우보수언론과 짬짜미가 되어 정권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국면전환용 언론공작을 통해 반국가단체요, 북한 연계요 하며 온갖 종북몰이 보도로 국민의 눈과 귀를 어지럽힐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겪어왔건만 종북몰이, 공안몰이에 기댄 극우보수정권의 역사적 운명이 또다시 궁금해진다. 뻔하다. 자멸이다. 당장은 상책일 듯 보일지 몰라도 종북 공안몰이에 기대어 정권의 수명을 이어가는 것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자초했던 역사가 되풀이 될 것이다. 과거의 실패한 정책을 오늘에 되살리는 것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한반도 전쟁 위기 고조 및 10. 29. 이태원 참사에 대한 추모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적대 강경 정책과 종북몰이 공세는 공안탄압의 부활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말입니다! 더 이상은 분단냉전체제의 적대관계를 배경으로 종북몰이, 공안몰이를 하기도 예전과 같지 않다. 더는 용납되지도 통하지도 않는다. 시대착오적 종북몰이, 공안몰이에 대응하여 그 근간이 되는 분단냉전체제를 청산하기 위한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이 점점 더 활성화되고 있다. 분단냉전체제에 길들여진 나머지 종북몰이, 공안몰이에 취약해져 무기력한 상태로 적응해 살아온 어제의 한국 민중이 아니다. 바야흐로 종북몰이, 공안몰이가 기승을 부리고 반복되는 분단냉전체제 유지의 압도적 힘의 실체에 대한 본질적 문제인식에 기초해 무기력에서 벗어나 이에 대응할 역량을 키우며 그 극복의 대안과 힘을 갖추어 나가고 있다. 한국 민중 스스로의 힘으로 분단냉전체제의 청산을 위한 핵심적 장애물인 국가보안법이라는 거대한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저항력을 키워나갈 수 있어야 비로소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극우보수세력의 종북몰이, 공안몰이 공세에 맞서 능동적 힘으로 제동을 걸고 우리사회에서 종북몰이, 공안몰이 시도 자체를 뿌리 뽑을 수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분단냉전체제의 청산과 함께 이뤄질 근본적 과제이기에 한국 민중을 억압하는 분단 악법에 맞서 그 폐지를 위한 민중의 역량을 축적해 나갈 때 비로소 한국사회는 보수와 진보가 대등한 균형을 이루며 공존할 수 있고, 민중운동과 진보통일운동 진영이 더는 종북몰이, 공안몰이의 희생양이 되지 않고 정상적으로 활동을 펼칠 수 있게 되며, 국민의 일상은 물론 선거 등 정치적 공간에서 국민 누구나 정치사상의 표현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는 민주사회로 발전할 것이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22-12-07 | hrights | 조회: 734 | 추천: 5
이찬수 / 인권연대 운영위원   인간은 자연 내 존재이다. 인간이 자연 안에서 생겼고 자연법칙에 따라 살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법칙을 대상화할 줄도 안다. 가령 고대인이 마른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키는 방법을 알았을 때, 그 고대인은 불이 붙는 자연의 법칙을 대상화하며 아는 것이다. 법칙을 대상화할 줄 아는 인간은 그 법칙을 하나의 ‘방법’으로 정리해 다른 이에게 전수한다. 이렇게 전수되는 자연법칙이 ‘기술’이다. 그 기술로 인해 ‘문명’이 발생한다.   인간은 전수된 자연법칙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통제한다. 불도 인간의 목적에 맞추어진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 불을 지피고, 고기를 굽고 집을 데우기 위해 불을 일으킨다. 인간이 자연법칙을 자신의 의도에 어울리도록 조작하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은 자신을 자연에 대한 통제자나 조절자로 인식한다.   나아가 인간이 추상화한 기계적 법칙이 본래의 자연 속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럴수록 인간의 문명은 더 복잡하고 정교해진다. 인간은 다시 자연을 대체한 기계적 자연법칙에 욕망과 환상을 투사한다. 욕망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이다. 그럴수록 욕망과 환상이 투사된 자연법칙이 본래의 자연법칙을 통제한다. 인간은 다시 그 통제된 자연법칙, 즉 기술에 스스로를 밀어 넣는다. 그래야 자신을 위한 효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간이 자신을 위해 조작해낸 자연법칙에 종속되는 방식으로 스스로 자연이 되어 간다.   여기서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신조어도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인류세는 “인간의 활동이 지구상에 축적되어 자연의 존재 방식을 바꾸고 이 바뀐 자연에 의해 인간이 영향을 받게 된 상황”을 의미한다.(시노하라 마사타케, 『인류세의 철학』) 지구의 지질학적 구조 안에서 살던 인간이 힘을 키워 지구의 지질 구조를 바꾸는 존재로까지 ‘발전’해 간 것이다. 지구온난화, 가뭄, 홍수 등은 인간이 바꾼 기계적 자연법칙의 효과들, 인간이 원하지 않았던 효과들이다.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를 자연처럼 여길 정도로 자연을 수단화하는 중에도, 본래의 자연은 숨죽이고만 있지 않았다. 본래의 자연은 인간의 수단에 갇히지 않고, 인간과의 경계를 뚫고 인간세계에 침입하여 인간의 지반을 뒤흔들고 때로는 붕괴시키기도 한다. 인간이 대상화시킨 자연법칙을 통해 자연 본연의 위력을 드러낸다. 지구온난화, 가뭄, 홍수는 물론 심지어 지진과 쓰나미도 인간이 자연을 객체화시키면서 벌어지는 현상이자, 인간에 대한 본래적 자연의 역공이기도 하다. 출처 : 기업의 png에서 .pngtree.com/   희한하게도 똑같은 현상이 법과 정치에서 벌어지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근대 국민국가는 국민과 영토와 주권으로 구성된다. 주권이란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이다. 원칙적으로 이 권력은 국민 전체에게 평등하게 속해 있다. 그 국민적 평등성을 유지하는 상태가 정의이다. 정의는 본래적 의미에서의 질서이기도 하다. 정의와 질서를 위해서는 사법(司法)과 정치가 필요하다. 사법과 정치는 국가 운영의 근간이다.   그런데 인간이 스스로 자연이 될 정도로 자연을 수단화하며 살아왔듯이, 이때 사법과 정치가 자신에게 더욱 유리한 것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일종의 인지상정이기도 하다. 문제는 권력의 정점에서 법을 운용하는 세력일수록 법을 자신의 수단으로 삼을 가능성도 크다는 데 있다. 법의 운용 세력도 본래는 법의 영역 안에 있는 ‘법 내부적 존재’이지만, 법의 운용을 빌미로, 법의 이름으로, 법의 상위에 오른다는 데 있다. 인간에 의해 객체화된 자연법칙이 기술이듯이, 법 기술에 능한 이가 법의 이름으로 법을 통제하며 그들만의 법 세계를 이룬다. 본래의 법은 자연환경처럼 인간을 둘러싸고 있고, 모든 이가 같은 법의 통제와 견제 하에 있어야 하지만, 법 기술자들은 법 안에서 법의 이름으로 법을 통제하며 넘어선다. 법을 이용해 자신을 정당화하고 유지하고 영향력을 확장한다.   수단화한 법으로 법의 이름으로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할 법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 식으로 법과 하나가 된다. 자연 내 존재인 인간이 지질학적 행위자가 되어 자연의 질서를 무너뜨리듯이, 특정세력에 유리한 법이 법의 이름으로 법 안으로 들어가 법의 주체자가 된다. 그러면서 법 본연의 평등성을 해친다.   어떤 사건의 위법성을 판단하는 주체인 검찰은 사법 권력의 정점에 있는 세력이다. 검찰 자신은 법질서 안에 있으되, 법을 운용하는 주체로서의 의식이 훨씬 강하다. 자신이 사법의 대상이라는 생각을 별반 하지 않는다. 법의 원리를 활용해 법을 수단화하면서 법의 효과를 누리다가 급기야 법과 하나가 된다.   검찰 수장 출신인 대통령이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대표적인 언론인 MBC의 취재를 제한하고 제재까지 추진하려 하고 있다. 해외 순방을 위한 대통령 전용기에 MBC 기자를 배제한 이유에 대해 “헌법수호를 위한 조치”라고 강하게 성토한 바 있다. 수호해야 하는 헌법과 그 헌법을 수호하는 주체를 동일시하면서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정치적 시도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헌법의 이름으로 스스로 헌법의 자리에 오르려 한다. 대통령이 된 이후 수도 없이 ‘자유’를 외쳤지만, 막상 자신에게 불리한 자유는 배제한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을 내세워 언론의 자유를 부정하는 행태에서 헌법의 이름으로 헌법을 부정하는 모순을 국민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대다수가 안다. 인간이 스스로 자연이 되어버릴 정도로 키운 힘이 사실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대통령이 수호하려는 헌법은 사실상 법을 앞세운 자신의 권력이라는 것을 말이다. 인간을 위한 수단인 줄 알았던 자연이 기후위기의 형태로 인간의 지반을 공격하듯이, 자신을 위해 수단화한 법의 효과가 실질적 주권자인 국민 안에서 다양하게 파생되고 재이용되면서 더 큰 쓰나미로 변하리라는 것을 말이다. 자연의 질서는 물론, 사법과 정치 본연의 질서를 그 어떤 것보다 두려워해야 할 일이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레페스포럼 대표로 재직 중입니다.
2022-11-23 | hrights | 조회: 783 | 추천: 9
  최낙영 / 인권연대 운영위원 얼마 전, 법무부 국정감사에 관한 뉴스를 보았습니다. 일개 임명직 국무위원이 "저는 다 걸겠다. 장관직을 포함해 앞으로 어떤 공직이든 다 걸겠다. 의원님은 무엇을 걸 것인가" 했다는 기가 막힌 기사를 보았습니다. “나는 몽땅 올인! 쫄리면 뒤지시든가” 하는 어떤 영화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국정감사장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이 무슨 화투판의 끗발을 확인하는 일과 같은 것일까요? 관련 동영상을 찾아봤더니 자신에게 뭔가 불리하다 싶으면 무조건 발끈하며 떼를 쓰는 철부지 같기도 해서 조금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그 기사와 동영상을 보고 나니 문득 30여 년 전에 시시비비를 가렸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오래전에 있었던, 갑자기 떠오른 기억이기에 이야기가 분명하고 확실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대강의 줄거리는 이러했습니다. 대학 1학년, 여름방학이었습니다. 실향민의 자식으로 서울 변두리에서 나고 자란 저는 ‘고향’이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읽은 듯한 A라는 친구가 자기 집으로 며칠 놀러 오라고 했습니다. 친구의 집은 경북의 P라는 시 근교였습니다. 지금도 비슷하겠지만, 당시 지방은 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거의 시골과 같았습니다. 친구의 기꺼운 초대로 P시의 시골 같은 근교에서 이틀 정도 고향의 맛을 느끼고 있을 때였습니다. A가 자신의 고교동창 B를 만나기로 했으니 P시에 나가 같이 술을 한잔하자고 했습니다. B는 우리와는 달리 전교 1, 2등을 다퉜으며 S대 법학과에 재학 중이라고 했습니다. A는 자신이 B 같은 대단한 친구와 친하다는 것을 은근 자랑하는 눈치였습니다. 저녁 무렵 시내에서 처음 만난 B는 그야말로 자신감이 몸에 배어 있는 듯했습니다. 웃는 얼굴로 A와 저를 번갈아 보는 B의 눈빛과 표정은 뭔가 당당해 보였습니다. 간단한 수인사를 마친 후, 점잖게 말을 아끼던 B는 술 몇 잔을 마신 후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술도 잘 못하고, 말도 잘 못하지만...”이라고 시작된 그의 말은 곧 연설처럼 길어졌습니다. “이 사회라는 게 말야... 정의라는 게 말야...” 1차, 2차를 마치고 자정이 넘어 들어온 여인숙에서까지 B의 말은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피곤했던 친구 A가 B에게 “그래, 니는 똑똑하니까... 알았다. 니 말이 다 맞다. 이제 그만 자자” 하고 말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A의 얼굴을 쳐다보던 B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졌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큰소리로 호통치듯 말했습니다. “알아? 니가 뭘 알아?” 갑작스런 B의 태도에 잠시 놀랐던 A가 내 얼굴을 한번 보더니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그래, 내가 뭘 알겠나, 됐으니까 그만 자자.” “되긴 뭐가 돼? 우리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인데 지금 잠이 오냐?” B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여인숙 유리창에 재떨이를 던졌습니다. 유리창이 깨지고 A와 B의 말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여인숙 주인이 올라왔습니다. 여인숙 주인을 보고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A와 달리 B는 더 흥분한 듯 보였습니다. B가 여인숙 주인에게 삿대질을 하며 퍼붓듯이 소리쳤습니다. “아저씨가 뭔데, 남의 방문을 함부로 열고 들어오는 건데?” A와 B의 말다툼이 이제 B와 여인숙 주인의 싸움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여인숙 주인이 막무가내의 B를 감당하기는 어려워 보였습니다. 여인숙 주인의 속이 썩어들어갈 때쯤 다 필요없다는 듯이 대뜸 B가 말했습니다. 출처 : wallpaperbetter “아저씨, 우리 경찰에 가서 시시비비를 따져볼까?” 황당하기 짝이 없는 B의 말에 A는 깜짝 놀라 여인숙 주인에게 용서를 구하기도 했으나 결국 우리는 파출소에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파출소장쯤 되어 보이는 사람이 저희를 불렀습니다. “니들 뭐 하는 쉐끼들이고?” 잔뜩 졸아 있던 저와 A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저희는 OO대학 OO과 1학년 학생입니다” “학생? 이 쉐끼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무서운 얼굴로 우리를 노려보던 그 경찰관은 고개를 돌려 우리와 달리 빳빳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B에게 물었습니다. “니는? 니는, 어느 학교 다니는데 그래 꼴값을 떨고 있나?” “지는 S대 법대 다니는데예.” B의 대답에 그 경찰관은 깜짝 놀란 듯한 표정으로 A와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경찰관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여인숙 주인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 사장님, 혈기왕성한 젊은 학생들이 술을 마시고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경찰관의 S대 사법고시... 수재... 크게 될... 어쩌구 하며 이어지는 말에 여인숙 주인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 일 없이 파출소를 나왔습니다. 그때 소장쯤 되어 보이는 경찰관은 B에게는 어색한 미소와 격려의 말을, A와 저에게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파출소 문을 나서면서 A와 저를 쳐다보는 그 때 B의 표정은 “시시비비 확실히 가렸지?” 하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해 가을에 자퇴했던 A는 바람대로 한의사가 되어 있는지, S대 법학과를 다녔던 B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따지고 있을까... 새삼 궁금해집니다. 30여 년 전 일을 곱씹어보자니 정말 시간은 쏜살같이 빠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지 불과 6개월여... 시간은 마치 멈춰 있는 듯이 더디게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남은 4년 반이라니! 시간은 시간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시비비(時時非非)라고 하면 엉터리 말장난이겠지요? 최낙영 위원은 도서출판 밭 주간에 재직 중입니다.
2022-11-10 | hrights | 조회: 712 | 추천: 9
이재성 / 인권연대 운영위원  10.29 이태원 압사 참사는 (일방통행 안내 같은) 간단한 조처만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라는 점에서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참사보다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이 압도적으로 명백한 인재다. 나는 세월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사태라고 생각한다. 관리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최자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사실상 일부러 방치했다.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 뻔한 상황에서 자율적으로 질서를 책임지는 주최 쪽이 없다면 안전사고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주최자가 없다는 건 방치의 사유가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 개입의 사유로 삼아야 했다. 개입의 법적 근거가 없다는 변명 역시 해괴하기는 마찬가지다. 법적 근거가 있어야만 국민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다고 말하는 정부가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법적 근거가 없으면 이번처럼 국민이 죽어가도록 내팽개쳐도 좋다는 말인가. 정치에 악용하지 말라는 정치적 주장 도처에서 세월호 데자뷔가 감지된다.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버티다가 비난 여론이 일자 축소와 왜곡에 나서는 것도 동일한 패턴이다. 이태원 참사를 축소왜곡하려는 준동은 이미 시작되었다. 세월호 참사가 단순 해상 교통사고라며 축소하는데 급급했던 바로 그들이 참사가 아니라 사고이고, 희생자 대신 사망자라고 부르라며 추모 글씨 없는 근조 리본을 강요하고 있다. 경찰력으로 막을 수 없었던 사고라는 이상민의 발언은 세월호 당시 청와대는 콘트롤타워가 아니라던 반응을 떠올리게 한다. 11월 1일 경찰청장의 국회 답변을 보면, 아마도 경찰은 112 신고를 무시한 하급 직원들을 제물로 바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또한 참사 현장의 ‘토끼머리띠 청년’을 세월호 사건의 유병언처럼 국면전환 카드로 삼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면피와 떠넘기기에만 열중하는 자들이 희생자 유족의 세금과 통신요금 감면, 외국인 주검 이송비용 지원 등 정부 돈을 쓰는 데는 열심이다. 정부는 책임이 없다면서 돈은 지원하겠다는 건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책임은 지기 싫지만 푼돈은 줄 수 있다는 것인가. 국민을 돈 몇 푼에 매수하려는 얄팍한 속임수요 국민 무시 발상이다. 사후 수습과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사고 원인과 책임자 규명은 필수적이다. 진정한 애도는 철저한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질 때 가능한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골든타임이 있듯이 원인 규명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지금이 바로 그 시간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세월호 때 그랬던 것처럼 정쟁을 그만두고 애도에 전념하자는 탈정치 주문이 쏟아진다. 이례적으로 서둘러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한 것도 그 때문이리라. 지금은 애도할 때이니 책임을 따지지 말라는 것이다. 정작 자신들은 정치적 책임을 모면하려 온갖 술수와 국민 무시 발언을 일삼으면서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말라니, 적반하장의 달인들답다. 이념투쟁 하지 말자는 자들이 가장 이념적이듯, 정쟁하지 말자는 자들이 가장 정치적이다. 이태원 참사를 가장 정치적으로 대하는 집단은 참사에 정치를 끌어들이지 말라고 주장하는 바로 그들이다. 바뀐 것은 행정권력 뿐 다중안전사고는 손에 쥔 물처럼 빈틈을 찾아 흘러내린다. 다리와 백화점이 무너지는 하드웨어 참사를 지나, 유치원생과 중고생이 집중적으로 희생당한 씨랜드와 인천 호프집 화재를 겪었고, 무엇보다 악몽같은 세월호 대참사를 당하고 나서는,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인간이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하는 대형 참사는 없을 줄 알았다. 참사의 아픔 만큼 우리 사회가 성숙해져서 더는 빈틈이 없을 줄 알았다. 아니, 사람 사는 세상에 빈틈은 없을 수 없겠지만 행정력으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동안 그 믿음이 사실인 줄 착각하고 살았다.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보수정권과 대형참사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주변에 꽤 있다. 특히 이태원 핼러윈 축제의 경우 해마다 열렸던 것이고, 수십만이 다녀간 것도 올해만 그런 것이 아니어서 관계당국의 대응에서 문제점을 찾는 건 논리적인 귀결로 보인다. 코로나 거리두기 해제라는 변수가 있긴 하지만, 코로나 이전에도 많은 인파가 모였던 점을 고려해 볼 때, 대통령부터 구청장까지 모든 기관장이 국민의힘 계열로 바뀐 데서 원인을 찾는 것이다. 바뀐 것은 행정권력 뿐이라는 문제의식이다. 나는 이것이 터무니없는 음모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검사정부의 약탈적 관점 참사 당일 경찰은 이태원에 137명을 배치했지만 정복경찰은 58명에 불과했고, 대부분 마약 등을 단속하는 사복경찰이었다고 한다. 경찰봉을 들고 질서유지를 하는 교통이나 경비 경찰은 아예 없었다. 10만명 이상 모일 것이라는 걸 경찰도 알았지만 범죄단속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안전은 뒷전이었다. 이 사실은 이번 사태의 본질을 폭로한다. 국민을 단속의 대상으로 보는 약탈적 관점이 참사의 배후에 존재하는 것이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건 아무리 잘해도 인사고과에 반영되지 않지만, 범죄를 단속하면 건수가 올라간다.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고 실적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은 경찰만이 아니라 이 정부의 타고난 유전자다. 정적 수사에 편파적으로 올인하고 있는 검찰을 보라. 대통령이 된 검찰 선배에게 잘 보이기 위해, 조직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단위마다 치열한 실적경쟁을 벌이고 있다. 행정의 본질은 서비스인데 이 정부는 처벌과 단속이라 생각한다. 위임받은 권력으로 봉사할 생각은 않고 군림하려고 한다. 자영업자들이 자기 장사하는데 우리가 왜 돕느냐는 용산구청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안전무시 발언 이태원 참사는 윤석열 정부의 출범과 함께 잉태된 것이다.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인 사고는 버려야 한다”는 대통령 발언의 파장은 원전업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파리바게뜨 빵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무참하게 죽어나가도 이 정부는 특별연장근로시간을 늘리는데 열중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에 가려졌지만, 봉화 아연광산 매몰 사고 현장 구조작업은 헛되이 골든타임을 허비하는 중이다. 대통령의 안전무시 철학은 공무원 사회와 기업 전체에 바이러스처럼 퍼져, 이제 대한민국은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장전 상태가 되었다. 이 정부는 참사를 참사로 덮고 있다. 국제 외교무대에서의 욕설 파문으로 국가 이미지를 추락시켜 놓고도 사과 한마디 없이 오히려 화를 내더니 김진태가 쏘아올린 채권시장 경색으로 덮었다. 그 위를 이태원 참사가 덮었고, 이제 이태원 참사 위에 북한발 미사일이 쌓이고 있다. 시대착오적인 외눈박이 외교로 북한을 도발하고 일본과 밀착하여 전쟁 위험을 키우고 있다.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채로 임계점을 향해 밀도를 높이고 있다. 공급망 붕괴와 에너지 위기에 이어 유례없이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인해 실물경제의 경착륙이 이미 진행 중인데, 이 정부 인사들의 위기의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번호표를 뽑고 대기 중인 경제와 안보 참사 앞에서 불안에 떨고 있는 건 국민뿐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사진출처 - 넷플릭스 <서부전선 이상없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리더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제1차 세계대전 휴전협상 발효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해당 부대의 독일 장군은 비겁한 사민주의자들의 타협에 굴복할 수 없다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나가서 싸우라고 병사들을 사지로 내몬다. 몇 시간만 지나면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던 병사들은 차디찬 주검으로 돌아온다. 20세기 초반의 독일 군대와 21세기 초반의 한국 사회는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리더가 미쳤어도 바로 잡을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2-11-03 | hrights | 조회: 1140 | 추천: 22
강국진 / 인권연대 운영위원  북측에서 연달아 미사일을 쏘니 남측 국방부가 본때를 ‘살짝’ 보여주려고 내놓은 게 현무 미사일 발사였다. 하지만 현무 미사일은 뒤로 날아가 버렸다. ‘빽도’를 한 것도 동네 창피한데 하필 파편이 민가 근처에 떨어졌다. 공교롭게도 북측이 쏜 탄도미사일은 4500km를 날아가 태평양에 떨어졌다. 창피도 이런 창피가 없다. 그게 끝일까. 사진 출처 - 한국경제  ‘현무-2C’ 낙탄 사고가 발생한 건 4일 밤이었다. 당시 현무 발사를 하느라 강원도 강릉시 제18전투비행단에선 강한 불꽃과 소음, 섬광이 발생했다. 강릉 시민들로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현무 낙탄 사고로 화재까지 발생해 불길이 치솟았다. 소방서나 시청에서도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119상황실에는 4일 밤 11시쯤부터 ‘비행장에서 폭탄 소리가 난다’, ‘비행기가 추락한 것 같다’ 같은 신고가 접수되기 시작했다. 강릉 시민들은 밤새 공포에 떨어야 했다.  군에서는 당초 예정했던 ‘오전 7시 엠바고(보도 유예)’를 이유로 7시까지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혼란이 극심할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강릉시가 지역구인 국민의힘 의원 권성동까지 나서서 페이스북에 “재난 문자 하나 없이 무작정 엠바고를 취한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며 군의 경직된 태도를 꼬집었을까. 군에서는 나중에야 “사전에 주민 통보나 안전 점검 등을 철저하게 했지만 실시간대 우발 상황에 대해 주민들이 이렇게 많이 놀라고 불안해한 점은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사과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12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현장을 찾았다. 동행취재했다. 합동참모본부에선 당초 “영내 골프장 페어웨이에 떨어졌다”고 했지만 실상은 많이 달랐다. 분명 탄두는 골프장에 떨어진 게 맞다. 하지만 추진체 파편은 공군기지 유류저장시설로 떨어졌다. 파편이 떨어졌던 영향으로 유류저장탱크로 올라가는 계단 철제 난간은 산산조각나 있었고, 파편 흔적 바로 옆에는 유류 주입구와 송유관, 폐드럼통 보관 창고, 가스 배출구가 자리잡고 있었다.  합참에 따르면 탄두는 발사지점에서 후방 1㎞, 미사일 추진체는 여기서 400m가량 더 후방에 떨어졌다. 탄두가 발견된 곳에서 남쪽으로 약 700m 지점에 민가가 있었다. 당시 민간인 피해 우려 얘기가 많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살펴본 사고 위험성은 민간인 피해보다도 오히려 기지 내부 유류저장시설이 훨씬 더 심각했던 셈이다. 현장에서 만난 공군 관계자조차 “천운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민주당 의원들을 안내한 공군 장성은 “현무가 뒤로 날아가는 방향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면서 “전속력으로 뛰어서 1분 30초 만에 유류저장시설로 달려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군은 비밀이 많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해한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면 비공개할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게 한두 개가 아니다. 네이버와 다음 지도를 통해 현무 낙탄 현장을 살펴보면 어떤 결론을 낼 수 있을까.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제18전투비행단 구역 전체가 거대한 빈 칸이다. 위성사진으로 살펴보면 커다란 숲 모양으로 덮어 버렸다. 군사기밀이니까 그렇단다. 부대 영내에 있는 골프장도 군사기밀인가? 골프장 모습을 위성사진으로 확인하면 적화통일될 위험성이라도 있나?  미국이 영국과 호주 등 일부 동맹국들과 함께 전세계를 감청하는 '애셜론' 프로젝트를 운영중이라고 해서 큰 논란이 됐다가 언제나 그렇듯이, 좀 시끄럽다 잊혀진 적이 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봤다. 감청기지 이름을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구글어스로 해당 기지를 검색해봤다. 호주 한가운데 사막지역에 있는 기지가 보인다. 위성안테나와 건물까지 어찌나 세세하게 확인할 수 있는지 비밀기지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다. 어떤 면에선 그래서 더 무서웠다.  몇 달 전만 해도 네이버와 다음 지도에선 청와대 구역이 거대한 빈터같았다. 이제 청와대에 어떤 건물이 있고 길이 어떻게 있는지 모두가 확인할 수 있다. 용산 국방부와 주한미군지역은 여전히 거대한 빈공간이다. 하지만 알려고 하면 금방 알 수 있다. 구글지도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서비스하는 위성사진은 차고도 넘친다. 실제 찾아서 위치를 확인해보면 겨우 이것때문에 숨겼나 우습기만 하다. 게다가 윤석열 사는 집을 빈공간으로 남겨놓지 않은 걸 보면 일관성도 없다. 모든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홈페이지에는 조직도는 물론이고 각 부서 관계자들 이름을 공개한다. 이름은 물론 맡은 업무와 사무실 전화번호도 확인할 수 있다. 국방부는 그렇지 않다. 국방부 홈페이지에선 이름을 찾을 길 없다. 장관과 차관을 빼고는 누가 누구인지 모르도록 해놨다. 그렇다고 해서 알 길이 없는 것도 아니다. 관보도 있고 신문을 조금만 뒤져보면 인사 관련 정보를 얻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군사보안으로서 효과는 없이 그저 어제 했으니까 오늘도 한다는 편의주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한번 물어보고 싶다. “이런 거 숨겨놓으면 재미있나요?”   강국진 위원은 현재 기자로 재직 중입니다.
2022-10-26 | hrights | 조회: 646 | 추천: 8
장경욱 / 인권연대 운영위원    우리사회는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나는 선, 너는 악’이라는 식의 풍조가 강하다. 흑백의 논리구조에 익숙하다. 개인 간이든 집단 간이든 가리지 않고 말이다. ‘내로남불 사회’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내로남불’이 습벽이 된 우리사회에서 동일한 잣대의 적용이 없다. 보편타당한 잣대가 아니라 이중, 삼중의 잣대로 자기 합리화와 자기 정당화에 익숙하다. 나와 내편에 대한 점검과 반성은 설 자리가 없다. 남과 다른 편의 잘못에 대한 비난이 난무하고 나와 내편을 정당하게 비판하는 그 누구도 악으로 규정하기 십상이다.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자기편향을 극복하고 서로 다른 상대에 대한 존중과 관용의 정신으로 이성과 논리에 기반한 대화와 협력으로 보편타당한 상식이 통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 ‘내로남불’ 사회의 잘못된 풍조를 극복하는 길이다.  ‘내로남불’ 사회를 조장하고, 이를 극복하는데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장애물 중의 하나가 한반도 분단냉전체제이고 국가보안법이다. 분단냉전체제에서 비롯된 외세와의 군사동맹의 논리가 ‘내로남불’의 극치다. 이에 혹여 토를 달았다가는 적으로 간주되어 종북몰이를 당하거나 국가보안법의 위협과 처벌에 직면하게 된다.  외세가 남쪽 땅에 배치하였던 핵무기나 연합훈련을 위해 수시로 전개하는 핵 전략자산은 방어용이고 북의 핵무기나 미사일은 언제나 적화통일의 수단으로 치부되거나 국제평화를 위협하는 도발로 간주된다. 한미동맹은 아무리 종속적이어도 북의 위협을 빌미로 불가피한 것으로 수용된다. 그 누구든, 심지어 대통령이라도 감히 북 핵과 미사일의 자위적 성격을 입에 뻥끗했다가는 사회정치적으로 생매장을 당할 수 있다. 북보다 수백 수천 배 더 많은 핵(미사일) 실험과 핵 (미사일) 보유 및 핵(미사일) 전력을 동원한 군사훈련을 하는 나라가 동맹을 앞세워 76년째 주둔하는 현실이 합리화되고 정당화되고 있다.  급기야 을사늑약 이후 40년 동안 조선을 식민지배한 전범국가의 전범기를 앞세운 연합 군사훈련마저 불가피한 선택으로 용인될 지경에 이르렀다. 동족 악마화의 논리는 교전권과 전력보유를 금지하는 평화헌법을 부정하며 군국주의의 부활로 치닫는 일본과의 군사안보협력을 정당화하며 한미일 군사훈련의 상시적 전면화를 통해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치달을 기세다.  동족을 악마화하는 외세의 편에서 외세에 의존하는 자기 합리화와 자기 정당화의 궤변은 우리사회의 역사 왜곡과 현실 인식 결여 및 윤리의 실종을 초래하였다. ‘내로남불’의 억지 주장이 상식으로 둔갑되고 진실인 양 행세하며 온 사회를 뒤덮게 되었다. 친미사대 동족대결의 논리는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내로남불병’이다. 가히 치유 불능의 분단정신병이다.  ‘내로남불 분단정신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역발상이 필요하다. 한반도 분단냉전체제에 대한 기존의 잘못된 인식에 대한 반성과 인식의 대전환만이 ‘내로남불’의 습벽을 고칠 수 있다. 역사를 바로 잡고 한반도의 분단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상식과 진리와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다. 친미사대 동족대결의 자기 합리화, 자기 정당화의 기만에서 벗어나 한반도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고 동족을 존중하며 화해하고 포용하는 한국사회로 거듭나야 우리민족이 상생 번영하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친미사대 동족대결의 ‘내로남불 분단정신병’을 치유하기 위한 역발상은 어떻게 가능한가. 철저한 점검과 반성이 필요하다. 거꾸로 하면 된다. 동족의 의견과 제안을 존중하고 수용하며 동족과 화해하고 협력하는 것이다. 외세의존에서 탈피해야 한다. 당장은 동족과 외세 사이에서 중립적 위치에서 공정한 중재자가 되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은 동족을 반국가단체로 매도하며 동족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유사한 주장을 하여도 국민 모두를 처벌할 수 있는 악법 중의 악법이다. 온 국민을 상대로 동족을 악마화하며 동족대결의 흑백논리를 강요하고 세뇌시킨다. 동족의 모든 것을 부인하고 비난하는 것만이 용인되는 흑백 논리의 압도적 힘 앞에서 이를 거부하고 저항하기가 매우 어렵다. 국가보안법은 ‘내로남불’의 역발상을 결코 용인하지 않는다. 국가보안법에 저항할 용기가 없는 식민의 노예들에게 차려지는 것은 ‘내로남불’의 자기 합리화와 정당화 외에는 달리 선택할 길을 찾을 수 없다.  작금의 한반도 핵전쟁 위기의 도래를 맞아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는 우리사회의 지배적 풍조로 자리잡은 ‘내로남불’의 반이성적 악순환의 논리에서 벗어나 역발상을 통한 인식의 대전환이 절실하다. 한반도기(출처- 위키백과)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22-10-19 | hrights | 조회: 1332 | 추천: 5
오인영 / 인권연대 운영위원  박태순의 소설 〈어느 사학도의 젊은 시절〉(1980)에 나오는 “이 새로운 시대는 분명 잘못되어진 시대였고 진보가 아니라 퇴보로 뒷걸음질 치는 그러한 새로운 출발점을 이루었다”는 구절에 ‘감전’되어 그가 '역사 서당'에서 풍월을 배우고 익힌 지도 어언 40년이 다 되어간다. 하지만 말이 좋아 역사의 풍월이지, 사실 그가 주로 읊조린 건 풍월의 지엽말단(枝葉末端)에 불과했다. 그가 간신히 흉내라도 낼 수 있는 가락이라는 것도 서양사⊃(=중에서도)사상사⊃서양근대사상⊃자유주의⊃19세기 말 영국의 신자유주의 정도였다. 하여 그는 역사 풍월을 익힌 거의 모든 동무나 성님-아우님들이 그러하듯, 다른 갈래의 역사 풍월이나 역사 풍월 전반에 대해서는 함부로 입을 놀리길 삼갔다. 출처- 알라딘 중고서적  불조심하듯이 말조심을 한다는 경계의 마음이 있어서 그리했다기보다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역사 풍월이라는 게 넓기가 한량(限量)이 없고, 갈래가 수십, 수백인지라 일언지하로 그 전모를 언술하기란 썩 어렵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가락을 하는 소리꾼이라고 해서 죄다 명창도 아니고, 명창이라 해도 '대문자로서의 역사'를 논할 식견을 겸비한 사람은 동서고금을 통해서도 매우 드물었다.  사정이 그러했음에도 그는 ‘역사 서당’의 언저리를 쉬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2가지 이유가 있었다. 유명한 소리꾼이 되겠다는 꿈, 그에게는 그런 명창의 꿈 같은 건 애당초 없었다. 다만 역사의 가락 가운데 한 대목이나마 자기 색깔의 소리로 불러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을 뿐이었다.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은 많지만, 행여라도 자기처럼 노래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러나 그에게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소년은 늙기 쉬우나 학문을 이루기는 어렵다)은 있을법한 시구(詩句)가 아니라 틀림없는 사실(事實)이었다.  또 다른 이유로는, 그가 초로(初老)의 사학도가 되면서 역사 풍월을 생계의 수단보다는 생각의 길잡이로 여기게 되었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다. 현대 한국 사회는 점점 더 많은 것들이 돈에 의해 재단되고 있다. 돈이 되는 것만이 쓸모가 있고, 돈이 되지 않는 것은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단지 쓸모만이 아니라 가치 있음/없음 자체가 경제적 유용성에 의해서 평가된다. 사람의 노동만이 그런 게 아니다. 사람 자체를 ‘돈이 되는 사람/돈이 안 되는 사람’으로 나누는 게 당연시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사랑의 윤리(倫理)보다는 교환의 이윤(利潤)에 좌우되고 있다.  경제 영역만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경제적 유용성이 판단의 기준으로 작동하는 “시장전체주의”(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의 표현)의 세상에서, 그에게 역사 풍월을 읊조리는 일은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이것은 홍세화 선생의 표현)을 배우는 일이기도 했다. 얼핏 본 역사 세계지만, 거기에서 <그저 배부르게 사는 삶과는 다른 삶도 있다; 사회적 금기를 깨려는 시도는 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경제적 치부나 정치적 출세에는 무용한 일에 젊은 날(의 한 시절)을-나아가 일생을- 걸기도 한다>는, 한 마디로 의미 추구의 삶도 가치 있는 삶이라는 생각의 가락을 얻기도 했다.  대다수 국민과 마찬가지로 그도, 현재의 정권은 검사 생활로 잔뼈가 굵은 대통령과 이런저런 인연이 얽힌 검찰 출신들로 짜여 있다고 생각한다. 검찰 출신이 아닌 사람들도 출세한다고 하나 그들은 그저 속칭 ‘바지사장’이거나 이런저런 허드렛일을 하청받아서 하는 일꾼처럼 보일 뿐이고, 국정의 요직은 검찰 출신들이 꿰차고 있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떠오르는 대로 적어봐도, 법무부 장관과 차관, 통일부 장관, 법제처장, 보훈처장, 금융감독원장,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국무총리실 비서실장이 검사 출신이고, 대통령실의 인사, 법률, 공직기강, 총무 관련 업무도 검찰 출신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다. 검찰 출신들이 독식하고 있는, 대단히 이례적인 인사편중 현상이야말로, ‘지금 여기(here and now)’가 ‘검찰 공화국’이라고 칭하기도 어려운 ‘검찰 독재’의 상태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가 아닐까, 라고 그는 생각한다.  ‘열흘 붉은 꽃은 없고(화무십일홍, 花無十日紅)’, ‘권력은 십 년 못 간다(권불십년, 權不十年)’라는 옛사람들의 말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역사 풍월을 읊조리다 보면, 아무리 막강하고 끝없이 계속될 것 같은 권력에도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한다. 역사상 모든 형태의 독재가 그러했듯이, 작금의 검찰 독재는 끝날 수밖에 없단다. 무오류의 교황권(Ultramontanism)을 내세웠던 서양 중세의 가톨릭 단일 신앙 체제이든; 신의 이름으로 왕의 권력을 정당화했던 절대주의의 독재이든; 공산당 독재와 같은 ‘일당독재’이든; 히틀러처럼 (돌격대, 친위대, 비밀경찰 등의) 준군사조직을 동원한 독재이든; 군부독재와 같은 ‘(한) 조직의 독재’이든 간에, 예외 없이 무너졌다. 끝나지 않는 잔치도 없고, 끝나지 않는 독재도 없다! 이 주장은, 그에 의하면, 주관적 소망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의 표현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 끝이 좋으냐, 나쁘냐이겠다. 인간의 지혜가 모자랐던 옛날에는 (가뭄, 홍수, 화산폭발과 같은) 자연의 힘, 운명(의 장난)이나 신탁, 초월적인 존재의 섭리나 영웅적 개인의 의지에 따라 비극으로 끝날지, 희극으로 끝날지가 결정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보통 사람들의 집합적 의지와 힘이 역사를 좌우한다는 게 역사적 상식이 되었다. 따라서 지록위마-아니, ‘지(指)바이든위(爲)날리면’으로 표상되는 저 무도한 검찰 정권에게 어떤 결말을 지어줄지는, 눈과 귀가 멀쩡한 우리네 시민에게 달린 일이 되었다. 역사는 우리가 일하기 나름이다. 오인영 위원은 현재 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2-10-12 | hrights | 조회: 862 | 추천: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