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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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이찬수(전 보훈교육연구원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내쳐 한달음이면 닿을 거리를 그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뛰어갑니다. 잘 펴지지 않는 팔을 흔들고 가누기 힘든 머리를 곧추 세우다 마음이 앞서 넘어지기도 합니다. 먼저 굴러가는 공을 차지하기 위해 뛰다가 몸을 세워줄 두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상대방과 심하게 부딪히고 깨져서 피가 흐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언제나 웃음 입니다. 부상을 당해 그라운드 위에 몇 분을 누웠다가도 다시 벌떡 일어나면 상대방의 골문을 향해 돌진 합니다. 효율의 최대치를 인간의 가치로 보는 세상에서 그들은 늘 찬밥 입니다. 능력이라는 듣기 좋은 언어로 포장된 효율이라는 잣대는 알을 많이 얻기 위해 좋은 사료를 공급받는 양계장의 닭과 똑같은 방식의 삶을 인간에게 요구 합니다. 한계를 가지지 않은 경쟁체제의 또 다른 말인 효율성 중심의 세계에서 그 안에 갇힌 모든 것 들은 벼슬의 색깔이 점점 시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알 낳기에 열심인 양계장의 닭처럼 자신의 생산력에 감탄하며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자랑스레 설파합니다. 한국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대회때의 모습 나는 그들의 뜀박질보다 훨씬 빠르게 공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단 한번도 내가 뛰는 걸음의 소리를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보여준 혼신의 힘을 다한 한 걸음의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나는 1분에 책 몇 페이지를 읽을 수 있지만 어느 누구에게 진정한 삶의 언어 단 한마디를 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온몸을 비틀며 전하고자 하는 그 단 한마디의 진정성이 나에게는 없습니다. 효율이 인간의 기준인 세상이 아니라 삶의 진정성이 기준인 세상이라면 장애우……. 그들의 삶은 시대의 큰 울림 입니다. 지난해 말 한국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대회가 파주 트레이닝 센터에서 있었습니다. 일본의 뇌성마비장애인 축구단도 참여를 했구요. 그 행사에 초대받아 축구도 하고 응원도 했습니다. 덕분에 축구마니아로써는 무척 영광스러운 이름들……. 홍명보, 조영증, 김진국, 김재한, 김호곤 또 정몽준과 친선경기도 했습니다. 애초에는 이 경기를 위해 갔지만 그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이 있었습니다. 더디 걷는 사람들의 눈빛이 더 맑은 이유를 보고 왔습니다. 축구대회때의 모습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01 | hrights | 조회: 602 | 추천: 0
며칠 전 나눔의집에서 빈민과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선교하시는 한 신부님이 외국인 가족 중 두 사람이 난민 인정을 받았다며 자랑하셨습니다. 신부님이 이태원의 모스크 지도자들의 협조로 외국인 이주노동자 상담사업을 진행하여 오던 중에 만나게 된 미얀마 사람들인데, 2년간 애태운 끝에 얻은 쾌거였습니다. 그 두 사람은 미얀마의 로힝야(Rohingya) 부족입니다. 로힝야 부족은 1962년 미얀마의 군사 쿠데타 이후 단지 무슬림이란 이유로 온갖 박해와 차별을 당해 왔습니다. 사유제산을 몰수당하고 거주제한과 강제노동에 시달렸으며 심지어는 무슬림인 그들에게 돼지고기를 강제로 먹이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1970년 이후로는 시민권조차 얻지 못하여 현재 200만이 넘는 사람들이 무국적 상태에 있다고 합니다. 결국은 그 박해를 피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는데, 특히 방글라데시 국경 지역에만 25만 명에 이르는 난민들이 모여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방글라데시에서마저 본국으로 송환될 처지에 놓이자 그 위기를 피해 지난 2003년 11월 한국으로 왔습니다. 난민신청을 하고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을 졸이다가 다행히 지난 해 12월과 올 1월 6일 법무부로부터 정치적 난민으로 인정되어 추방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당연히 기뻐할 일이었지요. 그러나 아직도 수백 명이 난민인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 기회에 우리나라의 난민정책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나라는 1992년 국제난민협약에 가입했지만 그 뒤로도 난민을 인정하지 않아 국제 사회의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8년만인 2000년 1월에 처음으로 한 명을 난민으로 인정하였고, 2003년에 12명, 2004년 12월에 17명을 인정하는 등 현재까지 40여명이 난민으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난민허용에 관한 국제적인 책임을 충분히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1951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Convention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에 따르면,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견해, 특정 사회 단체 참여 등의 이유로 인한 박해의 공포를 피해 조국을 떠난 후, 귀환하지 못하거나 귀환하려 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사진 출처- 유엔고등난민판무관실(UNHCR) 서울사무소   우리나라 난민정책의 첫 번째 문제는 난민인정 절차의 후진성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문적인 기관이나 담당 공무원이 아니라 출입국관리국의 불법 체류를 단속하는 부서에서 난민인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수백 건의 사건을 1, 2명의 비전문 공무원이 담당하고 있으니 신청인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이뤄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난민신청인을 불법 체류자라고 보는 경향이 농후한 것입니다. 난민신청인이 법무부 심사를 받기 위해 1, 2년 이상 대기하고 있는데 이들이 적정한 심사 아래 난민으로 판정 받는 것은 사실상 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난민인정 절차에 하루빨리 전문성과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난민에 대한 처우의 문제입니다. 난민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체류 자격을 주는 것일 뿐 아니라, 그들이 이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난민들의 사회 정착과정에 정부는 무관심하기만 합니다. 현재 난민 보호의 내용은 대한민국에서 쫓아내지 않는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난민들은 외국인에게 더 척박한 노동현실과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힘들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난민들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보장제도가 확립되어야 합니다. 사진 출처- 유엔고등난민판무관실(UNHCR) 서울사무소  난민문제를 남의 나라 일로만 치부할 수 없습니다. 멀게는 조국 독립을 위해 만주나 미국 및 유럽 등에서 활동을 하던 선조들이 바로 난민이었습니다. 가깝게는 군사독재 시절 민주인사들이 외국 망명을 통해 난민으로 인정되어 이국에서 조국 민주화를 위해 투쟁을 계속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아니더라도 이 땅에서 추방되어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 목숨이 위태로울 게 뻔한 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창피한 일입니다. 이제는 갚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 땅에 와서 외롭게 투쟁하는 망명객들과 민주화운동의 소중한 경험을 나누고 그들이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기여할 수 있도록 도울 때가 왔다는 말입니다.   김대원 위원은 성공회 서울교구 사회사목담당 신부입니다.
2017-06-01 | hrights | 조회: 576 | 추천: 0
황빠’ 바람이 한창 기세를 부리고 있던 당시 필자는 필자가 속한 신문사 덕분에(?) 예기치 못한 눈초리에 시달려야 했다. 이른바 “너 ‘황까’ 아냐?”하는 시선이 그것이다. 물론 그런 의심을 받을 수 있는 소지는 다분했다. 세상이 다 ‘배아줄기세포’의 유용성에 대해 확신을 넘어선 신앙으로 한 방향으로 쏠려 가고 있을 때 필자가 몸담은 신문사는 일찌감치부터 ‘배아도 생명이다!’는 깃발을 내걸고 싸움도 되지 않을 법한 전장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1년여 전까지만 하더라도 황우석 교수나 그의 오른팔이라는 안규리 교수를 웃으면서 만나던 처지였으니 그 곤혹스러움은 이루 말로 다하기 힘든 것이었다. 신문사 사옥에 ‘황우석 교수님, 힘내세요!’라고 쓰인 대문짝만한 플래카드마저 내건 타 종단 신문 기자를 만나도 웃음을 주고받기가 서로 머쓱해서 인사 한 마디 없이 지나치는 일도 없지 않았다. 그런 ‘황빠’ 바람이 태풍이 되어 온 세상을 휩쓸고 있는 동안에도 필자의 뇌리에는 희미하게 보일망정 결코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스러졌다 생겨나길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것은 막연한 희망이라기보다 다른 의미의 ‘의지’였던 것 같다. 과학적 지식이나 여론의 흐름 등을 감안할 때 필자는 그런 대세에 영향을 줄만한 어떤 힘도 없었다. 가깝던 지인마저도 당신 생각이 잘못될 수 있다며 조금만 더 멀리 내다보라고 충고 아닌 충고를 해올 땐 비참한 생각마저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필자가 속한 신문사는 속칭 ‘황까’ 논리가 분명한 내용을 담은 신문을 찍어내는 걸 무슨 사명감으로까지 여기고 있었다. 당연히 신문사 홈페이지나 관련 사이트들은 ‘너희들 ○○○와 한 통속 아니냐?’는 투의 댓글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이런 흐름은 하루 이틀 새 ‘두고 보자’식의 협박성(?) 말투로 바뀌기 십상이다. 무수한 말과 다분히 주관적인 판단이 난무하는 속에서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지니고 하루하루를 넘긴다는 건 무척이나 짜증스러운 일이었다. 그 짜증은 익명을 대하는 데서 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가 보인 전반적인 가벼움, 나아가 타인의 인권이라고는 차분히 생각해볼 대상도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것이었다. 이러니 이른바 ‘황우석 신화’가 어처구니없는 거짓임이 드러났음에도 “너 처음부터 ‘황까’였지?”하는 반인권적이고 이분법적인 재단이 여전히 기세를 올리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다행히도 우리 사회 구성원들 스스로의 자정 능력을 통해 거짓으로 가득 찬 ‘신화’가 미망임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또 다른 희망의 실마리를 찾게 되는지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이런 희망에 더해 이제는 이 거짓된 신화가 준 교훈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배워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는 대세에 휩쓸려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하지는 않았나’ ‘진실에 애써 눈감으려 하지 않았나’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 하고 있는지 않나’…. 이번 사태를 통해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홍역을 치르고도 면역력을 갖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애초부터 ‘황까’는 아니었던 필자가 보기에 ‘황우석 사태’는 객관적인 검증과 평가 시스템의 필요성 등 많은 교훈들을 일깨워주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생명에 대한 경시와 인권에 대한 무지에 있다고 본다. 배아 연구에 대한 맹목적인 신봉으로 인해 인간 배아의 생명권은 아예 고려의 축에도 들지 못했고, 우려되는 부작용들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은 채 무지막지하게 난자를 채취함으로써 여성 인권을 묵살했는가 하면, 연구 성과를 부풀려 난치병 환자들에게 허망한 기대를 갖게 함으로써 다시 한번 인권을 유린했다. 이 모든 것들은 인간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무시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이런 모습은 결코 황우석 교수를 비롯한 소수 과학자들만의 작품이 아니라는 점에서 모두 깊은 성찰을 해야 한다. 동조한 정부와 언론,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침묵한 과학자들, 비판적 성찰 없이 국익과 경제적 논리에 눈이 멀어 무조건적 지지를 보낸 모두가 공동 책임자가 아닐 수 없다.   사진 출처 - 쿠키뉴스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 사태가 우리 사회가 지닌 가벼움을 돌아보고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그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은 인간 생명을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착각을 착각인지도 모르고 있던 적잖은 이들을 깨어나게 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비록 배아라 할지라도 그것이 인간이란 사실만은 착각해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왜냐면 우리 모두가 한때는 배아였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 때문에 종국엔 필자도 의도하지 않게 ‘황까’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 신문사 기자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1 | hrights | 조회: 580 | 추천: 0
디지털과 아날로그라는 말은 이제 시대의 키워드가 되었다. 그렇다보니 아날로그 세대는 물러가야 할 세대이며, 디지털 세대만이 미래를 창조하고 바꾸어갈 위대한 힘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대학교 조사위원회는 황우석이 그동안 전 세계, 온 국민, 과학계, 대한민국을 기만하면서 사기극을 연출하였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한동안 이 땅을 들끓게 했던 황우석과 그의 찬란한 연구 성과들이 사회적·윤리적 측면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과학적 측면에서도 거짓이며, 결국 황우석은 희대의 사기꾼에 불과했다는 내용이다. 거짓이냐 참이냐라는 단순 편리한 이분법으로 한국 사회와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나온 발표를 들으면서, 나의 머릿속에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라는 말이 빙빙 돌아다닌다.   ▲ 황우석 파문 최종 발표. 서울대학교 조사위원회 정명희 위원장이 10일 서울대 문화관에서 황우석교수의 연구에 대한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백승렬/사회/과학/ 2006.1.10 (서울=연합뉴스) srbaek@yna.co.kr   디지털 시대가 인류의 현실에 펼쳐진 것은 분명하다. 인터넷상에서 무수한 사람들의 만남이 이어지고 의견을 개진하는 시대가 되었기에 황우석의 문제를 두고도 수많은 네티즌들이 서로 입장을 달리하면서 물고 물리는 사이버 소리 전쟁이 가능하였다. ‘아이러브 황우석’이라는 카페에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회원으로 가입하고, 진실을 국익의 이름으로 호도하며 황우석을 옹호하는데 앞장 설 수 있었던 것도 디지털 시대를 증명하는 현상이다. 다른 한편, 그동안 수없이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은폐된 진실을 추구하였던 소중한 프로그램이었던 MBC 방송의 PD 수첩을 초토화시키고, 광고 중단과 방송 중단이라는 참으로 어이없는 사태를 불러일으킨 것도 역시 디지털 시대의 엄청난 힘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인간 사회에서 이중적인 위상을 지닌다는 것, 즉 누가 무슨 목적으로 과학기술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과학기술에 대한 평가가 좋고 나쁨의 극단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것은 이번 사태에서도 또 한번 분명하게 제시되었다. 인간 줄기세포 논문 조작 여부에 대하여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던 것도 어찌 보면 디지털 시대이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젊은 과학자들의 인터넷 공간인 BRIC이란 온라인 모임에 논문 조작 사진과 DNA 지문 데이터 내용이 올라왔기 때문에 맹목적인 황우석 신화가 덮고 있던 ‘단순한 사실’이 밝혀질 수 있었다. 결국 황우석 사태를 통하여 우리는 다시 한번 디지털의 어둠과 밝음의 양면을 동시에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황우석 사태와 디지털 세대를 화두로 좀더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해보자. 황우석의 난자 매매, 연구원 난자 제공의 강제성 문제도 어떻게 보면 황우석이라는 정신피폐아가 빚어낸, 속도를 중시하고 속도를 생명으로 아는 디지털 사고방식으로부터 빚어진 일은 아니었을까. 단순히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빠른 속도로 무엇을 전달할 것이며, 빠른 속도로 도달하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가라는 것이 인간에게 보다 중요한 문제 아닌가. 나는 인간이 숨쉬고, 냄새 맡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서로 사랑을 나누는 위대한 감성과 힘은 아날로그 방식으로만 가능하며, 그런 위대한 힘을 나눌 수 있는 원천은 바로 생명의 소중함이고, 인간의 소중함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이런 아날로그의 소중함을 잊어버린 황우석의 디지털 사고방식 때문에 아날로그적 인간성과 동떨어진 일련의 사태들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조지 오웰이 소설의 힘을 빌려 상상한 ‘1984년’이 이미 손에 잡히는 현실로 되고, 온갖 다양한 명분을 들이대며 인간의 기본적 자유를 제한하는데 이용하는 감시 체제인 CC-TV와 첨단의 기술을 이용한 도청 등이 가능한 것도 디지털 시대에서 우리들의 소중한 ‘아날로그’를 무시하기에 가능한 처사이다. 인권을 외치고, 인권의 소중함을 말하면서도 막상 우리 주위에 수없이 늘어선 CC-TV의 문제점을 제기하면 사람들이 외면하거나, 별다른 반응이나 지지를 보이지 않는 것도 어찌 보면 과학 제일주의의 가치를 필두로 하는 디지털 만능의 사고방식이 뇌를 지배하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고, 소중한 아날로그의 감수성을 무시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싶다. 내가 자라고 성장했던 시대는 분명히 아날로그 시대였다. 그러다 부지불식간에 사회의 구조와 문화가 디지털로 돌입하면서 우리 세대들은 분명히 커다란 충격을 받았고, 정체성마저도 흔들렸었다. 그러나 이제 디지털의 명암을 보면서 나는 어느 정도 안도를 하게 됐다. 디지털의 홍수에도 불구하고 아날로그는 영원하다는 믿음도 갖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날로그가 디지털보다 더 위대하다는 생각을 한다. 분명히 카세트테이프의 음질보다 CD의 음질이 뛰어나고, 디지털 TV가 아날로그 TV보다 선명한 화질을 제공해주는 과학의 시대, 디지털 우수성의 시대가 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기계와 문명 속에 담겨있는 내용은 여전히 우리 인간의 문제이고, 인간의 감수성에 자리 잡은 소리와 빛, 맛, 감정 등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문제를 디지털이라는 외형이 전적으로 결정하거나 조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그래서도 안된다. 디지털의 세계 속에서 아날로그의 위대함을 발견하고, 아날로그의 내용을 구현하는 것이 어찌 보면 현 디지털 세대를 자임하는 세대들이 완수해야 할 미래상으로 보인다.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자그마한 인터넷 신문인 코리아포커스 역시 디지털 시대이기에 가능한 언론 매체이다. 하지만 그 내용물은 철저하게 아날로그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며, 어떻게 아날로그 감성을 디지털 속에서 구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남아 있는 과제이다. 디지털이 결코 만능일 수 없는 세상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날로그여 이제 힘을 내라. 아자! 아자!   김희수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01 | hrights | 조회: 611 | 추천: 1
얼마 전 초등학교(1학년)에 다니고 있는, 셋째인 딸내미가 함께 나란히 티브이를 보다가 질문을 합니다.        “아빠, 학교는 왜 가야 되는 거야?”   갑작스런 질문이기도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기에 얼결에 그냥      “.... , 응~ 그건 어린아이들이 아직 배워야 할 게 많기 때문이지.”   하고 대답했습니다. 딸은 쉴 틈을 주지 않고 바로 말을 잇습니다.        “엄마 아빠가 집에서 가르쳐주면 되잖아.”     “.... 엄마 아빠는 돈을 벌어야 하잖아.”     “그럼 아빠가 돈 벌어오고 엄마가 집에서 가르쳐 주면 되잖아.”     “....................”   잠시의 당황스러운 순간을 묵묵부답으로 지나고서야 딸내미는 다른 데로 관심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오지 못하는 자괴감도 잠시였고 어느새 1학년에 불과한 이 아이가 학교라는 대형 교육시스템에 만족을 못한달지, 적응을 못한달지, 하여튼 문제제기를 하는 셈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 간디 마을 학교 현판식. 2005년 3월 6일 ⓒ2005 이정민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엊그제 보도를 보니 교육부에서 초등학교를 포함한 대안학교의 학력인정 및 지원정책을 발표했다고 하는 것을 보고 교육의 다양성이 보다 확대될 것 같아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대안학교라는 것도 부모가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질만한 여건(경제적이든 교육환경이든)이 되어야 생각을 해볼 수 있는 형편이고 보면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홈스쿨은커녕 대안학교를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의 많은 서민들은 좋고 싫은 것을 따질 겨를도 없이 일단 공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관내(은평구)의 한 초등학교와 더불어 전국에서 제일 높은 과밀학급을 자랑(?)하고 있는 학교입니다. 1학년 아이들은 한 학급에 40명 정도이고 5,6학년쯤 되면 한 학급에 48명 내외가 됩니다. 게다가 한 학년에 열두 반이 편성되어 있어 이 학교의 전체 학생 수는 3천 명을 훌쩍 넘어 섭니다. 급식 환경(이 학교는 현재 2학년부터 급식이 시행되고 있는데 2006년부터는 3학년부터 급식이 시행될 거라는 괴소문이 나돌고 있는 형편)이나 체육시간 등의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고생이나 그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결국 방임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끔찍하기 짝이 없습니다. 언젠가 티브이에서는 모 지역의 학교 교육환경을 소개하면서 한 반에 20여 명 되는 아이들이 훌륭한 시설에서 교육받고 있는 모습을 보도한 적이 있었는데 남의 나라 일처럼 느껴졌더랬습니다. 한 담임선생이 맡아 잘 지도할 수 있는 학생 수의 한계가 20명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 규모를 넘게 되면 교육의 질을 따지기가 어려운 형편이 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 기존의 틀에 억지로 구겨 넣을 수밖에 없고 아이들은 거의 숨막힐 듯한 환경에서 이런저런 주입식 교육을 받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인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2006년에는 국방예산을 대폭 교육예산으로 이관시켜 아이들이 티없이 맑고 밝게,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좋은 교육환경을 만드는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의 미래가 나라의 미래 아니겠습니까? 국익을 외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요?   홍승권 위원은 현재 삼인출판사 부사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1 | hrights | 조회: 598 | 추천: 0
요즘 신문이나 방송을 보다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너무 많다. 연일 각종 언론 매체의 헤드라인을 차지하는 줄기세포 논란은 전문적인 용어들이 마구 넘쳐나서 그렇다고 하자. 아무리 살펴봐도 이렇다할 전문적인 용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역시 사학법이란 놈이다. ‘우리아이들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다’ ‘아이들을 전교조에 맡길 수 없다’라며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회를 박차고 차디찬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거룩한 성직자들도 더 이상을 참을 수 없다고 떨쳐 일어섰다. ‘범교단적으로 비상대책위를 구성해야’ 한단다. 그동안 보였던 교파간의 질시와 반목, 분열은 이 사학법 개정안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다. 좀더 나아가 교파간의 단순 연합을 넘어 종교적 배타성도 버릴 태세다. ‘기독교를 중심으로 사학을 설치하고 있는 타 종교 및 사학 관련 기관과 연대투쟁을 하여야 한다’라며 성전(聖戰)의 기세도 보인다. ‘순교의 각오로 거룩한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 한다. 이왕 하는 것 ‘이런 만행을 국내외에도 호소’해야 한단다. 세상에 이런 악법은 없단다. 도대체 뭣 때문에 한나라당이나 사학교단들은 이렇게 떨쳐 일어난 걸까. “만일 이번에 불의한 방법으로 강행처리 된 이 법이 시행된다면...” (호흡을 가다듬고 다음 문장들을 읽는다) “사유재산권 침해, 법인 이사회의 무력화, 건학이념 및 신앙교육 말살, 교육현장의 불온사상 도구화,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대립 등 상상을 초월한 불행이 한국 교육계에 닥칠 것이다.” 진짜 안 좋을 것 같은 건 다 들어있다. 큰일이다. 이 사람들 말마따나 ‘상상을 초월하는 가공할만한’ 결과다. 이게 사실이라면(!) 말이다. 그래서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서 우리는 기필코 이 법의 시행을 막아야” 한단다. 그동안 이라크 파병문제나 쌀 개방으로 인한 농민들의 시위, 그리고 시위과정에서 경찰의 폭력으로 농민들이 죽어나가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불행한 사태에도 입을 꾹 다물고 있던 한국의 기득권 교단이나 사학재단들이 이렇게 분연히 떨쳐 일어서는걸 보면 뭔가 큰일은 큰일인가 보다.   사진출처 - 노컷뉴스 나도 학부모 1년차로서 갑자기 걱정되기 시작한다. 아니 마구 걱정된다. 나도 촛불집회에 나가야 하는 건 아닐까. 그네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사실이라면 당연이 동참해야 하는데, 날이 추워서 귀챠니즘이 발동하니까 좀 미안한 생각은 든다. 그래도 그토록 중차대한 일이라니까 그냥 모른 척 하기엔 좀 꺼름직하다. 머리 쓰는 거 진짜 싫어하지만 좀 따져보자. 지난 9일 국회를 통과한 사학법 개정안은 사학재단 이사진에 교사, 학부모 등 학교 구성원이 추천하는 이사를 선임하는 개방형 이사제 도입이 핵심이라고 한다. 사립학교 이사진 7명중 이 개방형이사를 4분의 1이상 채울 수 있고, 학교운영위 등에서 2배수의 개방형이사를 추천하면 이사회가 최종 선임하는 식이다. 절반도 아니고 기껏해야 반의 반인데 이것으로 사학의 자율권이 훼손되고 전교조의 손아귀에 학교가 넘어가는 걸까? 이 때문에 건학이념이 훼손되고 학교에 갈등이 심해진다고? 도대체 어떤 산수이길래 이런 계산이 나오는 걸까. 남의 손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이제 내줘야 할 반의 반이 1보다 더 크다고 생각하는 걸까. 안 그래도 잘 안돌아가는 내 머리에 자꾸 과부하가 걸린다. 근데 난데없이 사유재산권의 침해는 또 무슨 소리인가. 학교가 자기 재산이란 말인가. 그럼 그동안 학교를 가지고 장사해왔다는 말밖에 안되는데... 그럼 그동안 건학이념이니 하는 건 장사를 위한 선전문구에 불과했다는 얘긴데...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우리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덕망 높으신 분들이 학교를 가지고 사유재산권을 주장하다니, 이런 정말 불온한 생각을 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이해가 안 된다. 걱정이다. 내년부터 신입생도 안받고 정부 지원도 거부한다는데 이 사태를 어디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 진짜 걱정이다. 날은 추워지는데 그 자체로 준엄한 국가기관인 의원들과 이 나라의 교육을 자기 손아귀에만 짊어진 어르신들이 밖으로만 나다니니 참 안쓰럽다. 그래도 어쩌랴.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라는데...!   이재상 위원은 현재 CBS방송국 PD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1 | hrights | 조회: 652 | 추천: 0
  30년 전의 인혁당 사건이 박정희 정권에 의해 조작되고 박정희 자신에 의해 지시된 사법 살인이라는 사실이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에 의해 공식 발표되었다. 이 발표를 통해 30년의 금기로 남아 있던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드러난 셈이지만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을 비롯한 정당한 조치가 취해지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박정희 자신의 딸이 야당의 당수로 있고 당시의 권력자들 상당수가 아직 살아있을 뿐 아니라 박정희 시대의 향수를 못 잊어 하는 세력이 곳곳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과거사를 들추는 일체의 시도에 친북좌파 따위의 딱지를 붙이고 싶어 하는 천박한 논리도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과거사위의 발표 내용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던 것을 그저 공식 확인한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나마 이 정도의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그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는 사실이 새삼 치떨리고 우울하게 실감될 뿐이다. 더욱 우울한 것은 지금 많은 사람들에게 인혁당 사건의 진실 따위는 그다지 관심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긴 당장 눈앞의 거리에서 농민이 맞아 죽어 가도 아무런 관심도 없는 판에 30년 전의 죽음에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언제 그 성과가 나올지조차 알 수 없는 유전 공학이 가져다준다는 ‘국익’에만 눈이 멀어 그 과정의 진실성에 대한 질문조차도 ‘매국’이라며 몰매를 던지는 세상에서 30년전의 진실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인혁당 사건 발표조차 MBC살리기이며 노빠들의 불끄기 전략이란 식의 주장조차 나오는 모양이다. 기가 막힌 일이다. 나는 그런 맹목의 논리에서 30년전 박정희가 뿌려 놓은 차가운 권력의 의지와 물신의 논리를 읽게 된다. 진실과 정의보다는 권력과 눈앞의 이익을 더 중요시하고 이를 위해 폭력조차 정당화하는 그런 논리 말이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소수 권력자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권력 의지에 의해 죄 없는 사람들이 희생되는 일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다. 정당성과 합리성을 갖추지 못한 권력일수록 바로 그 권력의 보전을 위해 늘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 거기에는 언제나 일말의 인간적 회의조차 찾기 어려운 물신화된 폭력, 가공하리만큼 차가운 폭력이 개입한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연민조차도 아주 쉽게 내던져 버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희생쯤은 아무렇지 않게 눈감아 버리는 물신화된 권력의 논리를 깔고 있다.  박정희 시대와 전두환 시대를 되짚어보는 다큐멘터리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그 가공할 폭력의 시대가 지금 여기로부터 불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에 새삼 전율한다. 아니 그 시절을 관통하던 그 비인간의 증오와 물신화된 권력의 논리를 여전히 미신처럼 떠받들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아니 그런 증오와 권력의 논리는 알게 모르게 우리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하나의 문화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사를 이야기하는 것을 퇴행이라고 못 박는다. 과거는 그만 덮어 두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거의 명백한 잘못이 가려지지 않고 인간의 인간에 대한 야만이 역사의 이름으로 단죄되지 않을 때 도대체 미래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결국 ‘죽은 자만 억울한 것’이고 그래서 ‘지금 내 손의 권력과 내 앞의 밥그릇을 챙기는 일이 최선’이라는 논리만이 남게 될 때 미래는 훨씬 더 끔찍한 악몽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1975년 4월9일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 관련자 8명에게 대법원이 사형 확정판결을 내리자 가족들이 법원 앞길에 주저앉아 오열하고 있다.     인혁당 사건을 비롯한 과거의 여러 사건들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피해자들을 복권시키며 가해자들에게 정당한 역사적 평가를 받게 하는 것은 따라서 바로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그것은 역사가 결국 정당한 자의 몫이란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며 그렇기에 한번 잡은 권력과 기득권 위에서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자들이 결코 거기 그대로 있지만은 못할 것임을 알게 하는 일이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미래란 없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6-01 | hrights | 조회: 594 | 추천: 0
대학에서 인권을 가르치며 나는 강좌내용에 되도록 많은 주제를 담으려 한다. 인권에 대한 오해, 인권의 개념과 역사, 세계인권선언 및 국제인권규약의 이해, 유엔의 인권보호제도와 절차, 인권개념의 보편성과 아시아적 가치, 인권과 민주화, 국가보안법에 담긴 이데올로기 및 법과 인권의 문제 등을 이론적 접근에서 다루며, 각론에서는 한국 사회에서의 생명 및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 사법과 인권, 노동기본권, 신자유주의와 사회권의 문제, 교육권과 청소년 인권, 환경과 건강권, 보건의료권, 장애인 인권, 여성 및 아동의 인권, 문화권, 과학기술과 인권, 사형문제, 북한 인권과 세계의 인권문제와 인권운동,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 이해 등을 조별 발표 및 토론을 위주로 하여 다룬다. 그리고 결론에서는 실천의 문제로서 인권운동 및 인권교육의 현황과 과제, 각자가 할 수 있는 인권실천 방안 등을 논하며 실천을 독려한다. 이러한 한학기의 수업과 시험 등이 학생들에게 인권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할 좋은 기회인 것임은 분명하겠고 학기말시험을 채점할 때 그런 생각은 확실해진다. 그러면서도, 부족한 부분이 있을 것이기에 학기말에 근접하여 추가로 과제를 내는데, 주로 내는 세 가지 문제는 이번 강좌에서 다루지 않은 중요한 인권 현안들을 제시해보라는 문제, 세계인권선언 30개 조항을 어떻게 보완해야할지 31조부터 33조를 추가해보라는 문제, 그리고 가정인권헌장 10개항을 작성해보라는 문제이다. 우선, 첫 문제를 풀면서 학생들이 제시한 인권 현안 중에서 예리한 감수성이 보여지는 것들을 몇 가지만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노숙자 문제 중에서도 여성 노숙자의 성폭력 문제, 인터넷 마녀사냥 문제, 에이즈 및 한센병 환자들의 인권문제, 찜질방 탈의실의 CCTV 문제, 문맹 혹은 난독증인 이들을 위해 가급적이면 영화자막 대신 더빙을 해야 한다는 주장, 입사지원서를 쓰면서 재산, 주거형태, 부모의 학력 등까지 적도록 요구되는 현실, 흡연자 및 비흡연자 각각의 정당한 권리, 채식주의자들의 음식선택 기회의 평등문제, 개인생체정보 자기 결정권, 이슬람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는 편견과 불관용의 문제, 자발적 성매매여성의 성매매 문제, 기업의 비윤리적 경영, 학교에서의 특정종교 강요 문제, 난민인정문제, 미군기지화로 인한 대추리 주민들의 인권문제, TV와 인터넷 등에 벌어지는 특정계층 및 집단의 희화화 문제, 농촌 총각의 결혼할 권리, 여학생들의 생리결석 인정 문제, 간통죄 폐지 논란, 미국 뉴올리언즈에서 드러난 흑인 차별에서의 교훈, 다른 어느나라에도 없는 소년소녀가장문제, 뚱뚱한 이들에 대한 차별 및 외모지상주의의 문제, 공개입양에 대한 찬반론 등이 제기된다.    "나는 학생들이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주제들도 제시하는 것을 보며 이들이 인권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인권감수성도 키워가고 있음을 본다" 사진출처 - 한겨레, 연합뉴스, 주간한국, 프로메테우스   더 나아가, 화장실 청소부 아줌마들이 당할 수 있는 수모, 출산 직후 아기가 거꾸로 들려 엉덩이부터 맞지 않을 권리, 직장여성이 해고의 걱정 없이 임신할 권리, 장애인 여성이 사회복지의 혜택을 받으며 임신 및 출산할 권리, 동물의 권리, 죽은 자의 인권(예를 들어, 쯔나미 사태에서처럼 시신이 길거리에 방치되지 않고 장례 치러질 권리, 무덤이 여러 가지 이유로 훼손되지 않을 권리, 죽은 이의 신원 및 사인이 밝혀질 권리, 의문사의 경우 진상 규명, 그리고 명예회복의 권리, 죽은 자의 초상권) 등도 제기된다. 세계인권선언의 보완으로는 성적(性的) 정체성 권리, 양심적 병역거부 및 대체복무의 권리, 사이버 공간에서의 인권, 환경권, 불치병 환자의 치료약 접근권의 국제적 보장, 전쟁 및 테러로부터의 보호와 평화권, 유전자조작 금지 및 자신의 생체정보보호권과 자기결정권, 의학기술과 인권, 정보에 대한 평등한 접근권, 약소국가에 대한 차별 금지, 다국적기업의 윤리 문제, 인간 및 모든 종(species)의 보호의무, 중대한 인권범죄의 경우 공소시효배제, 그리고 인권교육을 받을 권리와 국가의 인권교육을 행할 의무를 별도의 조항으로 추가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가정인권헌장에서는 세계인권선언에서 열거한 각종 인권들을 가정 내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묘안들이 속출하는 데, 예를 들면, 가족 모두는 평등하기에 상호 존중해야 한다,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동등한 발언권과 의사표현의 자유를 가진다. 개인의 수입 및 용돈을 자신의 임의대로 사용할 수 있다. 자신이 받고자 하는 교육, 일하고자 하는 직업, 그리고 결혼할 상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모두 건강할 권리가 있으며 서로 보살펴야 한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에 앞서 가족으로서의 의무 이행이 앞서야 한다 등이다. 그리고. 가족 모두가 참여하는 가족회의를 정기적으로 열어야 하며 이때 술에 취한 상태로 참석하는 것은 금한다 등의 단서조항도 제시된다. 이렇게 각자가 작성한 가정인권헌장을 지금부터라도 거실 벽에 가훈처럼 붙여놓고 실천해보라는 취지를 학생들은 십분 공감하는 것 같다. 이러한 과제물을 읽으면서 나는 학생들이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주제들도 제시하는 것을 보며 이들이 인권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인권감수성도 키워가고 있음을 본다. 아직도 대학에서 인권을 정규수업으로 강의하는 대학이 손에 꼽을 정도밖에 안되는 게 현실임을 감안할 때 이러한 발견은 인권을 꾸준히 가르치는 선생에게 소신과 사명감에 더하여 보람을 키워주는 것이라 하겠다. 인권교육을 받을 권리는 그 자체가 인권에 속한다. 세계인권선언 제26조에서 언급하듯, “사람은 누구나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 . 교육은 인격을 충분히 발전시키고, 또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경을 강화하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 그렇다면, 입시위주의 정규 교과 속에서 인권교육을 못 받고 자란 한국 사회 구성원 거의 모두는 이러한 인권을 구조적으로 만성적으로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권교육이 필요한 이유이며, 인권교육의 활성화가 인권운동의 주요 과제 중의 하나인 이유이며, 아울러, 인권교육이 하나의 운동, 즉 인권교육운동이어야 하는 이유이다. 대학에서 인권을 가르치며 나는 오늘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느끼며 다짐을 새로이 한다. 그러한 다짐에서 시작하는 인권교육은 늘 보람과 희망을 준다. 인권을 배우고 감수성을 키우는 젊은이들이 많아질수록 이 시대의 희망은 커진다.   김 녕 위원은 현재 서강대학교 교양학부에 재직 중입니다.
2017-06-01 | hrights | 조회: 642 | 추천: 0
얼마 전 북한을 다녀왔다. 학술교류 행사를 취재하는 일이었다. 그래봤자 개성공업지구 근처에서 한나절 머문 게 전부였다. 비슷한 일로 금강산에 다녀온 걸 포함해 두 번째 ‘방북’이었다. 이젠 평양 다녀온 것도 특별한 ‘자랑’이 되지 못하는 시절이다. 금강산은 초등학생 수학여행 코스다. 개성은 남한 기업인과 노동자들의 삶터가 되고 있다. 여기서 중뿔나게 무슨 방북기를 쓸 염치는 없다. 다만 내 직업적 특성 때문에 겪은 일들이 있다. 어디서 누구를 만나건 남북 사람들의 첫 인사는 서먹하기 마련이다. 마음의 장벽을 허는 데 시간이 적잖이 걸린다. <한겨레> 기자는 예외다. 소속을 밝히는 순간, 그들의 입가에 미소가 나타난다. 그들이 <한겨레>를 구독하고 있을 리 없다. <로동신문> 등에서 인용한 <한겨레>의 ‘이미지’를 각인하고 있을 터이다. “우리 민족이 하는 일을 열성으로 후원하는 신문사로 알고 있습네다.” 그리곤 다른 기자들에게 말한다. “**일보는 왜 온겁네까?” 그런데 그게 반갑지만은 않다. ‘호의’는 거의 언제나 ‘동류의식’에 기반 한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는 믿음은 스스럼없이 하고 싶은 말을 내뱉게 만든다. 내 소속을 확인한 뒤, 그들은 거의 곧장 ‘정치토론’을 벌이려 한다. 만남의 주인공인 학자들이나 당국자들끼리도 어지간해선 나누지 않는 주제를 도마에 올린다. 대부분은 직설적이다.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이번 개성 방문 때는 도청 수사가 첫 주제였다. 점심 식사 자리에서 서로 인사를 나눈 직후 밥술도 뜨기 전에 나는 예의 그 정치토론의 상대자로 ‘간택’됐다. 날씨가 좋다는 둥, 많이 드시라는 둥, 다른 테이블에서 오가는 의례적인 대화조차 생략됐다. 그들은 <한겨레> 기자를 너무 ‘특별하게’ 대한다. “6.15 세력에 대한 수구반동들의 대대적 공세 아닙네까. 그동안 쌓아올린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면, 이 땅에서 참화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신건, 임동원 등을 구속한 일이 6.15 선언을 정면으로 막아서는 ‘도발’이라고 보고 있었다. 인권이라는 가치가 남쪽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민주화 세력이라 할지라도 이를 침범하는 일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참화’라는 말도 신경이 거슬렸지만, 마구 대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자들의 ‘돌출행동’ 탓에 남북교류 행사가 파행을 빚은 일이 적지 않다. “참화가 일어나서는 안 되죠. 그런 일이 없도록 다같이 노력해야죠.” 문제의 핵심은 피하고, 속절없이 화합을 권유하며 술잔을 내밀었다.   사진 출처- 한겨레  유엔 총회는 11월 17일(현지시각) 유럽연합(EU)과 미국이 공동 제출한 ‘북한 인권상황에 대한 결의안’을 찬성 84, 반대 22, 기권 62표로 가결했다. 그런데 ‘인권’을 먼저 꺼내든 건 북쪽 인사였다. “우리끼리 잘 살겠다는데, 부시가 자꾸 못살게 굴면, 방법이 없잖습네까.” 얼마 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북한인권 결의안에 대한 이야기였다. “핵 문제가 더 이상 안 통하니까 인권을 걸고넘어지는 것 같은데, 우린 충분히 인권적으로 살고 있습네다. 자기들 인권이나 생각하라고 하시라요.” 곧이어 일본 이야기도 했다. “인권을 말하자면, 그 사람들이 (일제시대에) 저지른 참상부터 따져야지요.” 나는 다시 피해갔다. “서울에 오신 적은 있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 용케도 다시 주제를 이었다. “그 경찰인가 뭔가 하는 사람들이 온통 우리를 둘러싸가지고는 제대로 보지도 못했지요.” 은근히 남한 인권을 말하려는 눈치다. 그 대화가 오간 식당 밖으로 50m도 나가지 못해 북쪽 군인들에게 제지당한 내 처지가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지만, 역시 토를 달지 못했다. 뭐, 이런 식이다. 그러니 북쪽 음식을 맛보는 자리가 나로선 언제나 불편하다. 언젠가 한번 ‘제대로’ 토론해야겠다는 결심만 거듭할 뿐이다. 그런데,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점심때의 대화가 자꾸 ‘변조 증폭’됐다. 도청, 북한 인권, 미국, 대북제재, 진보-보수 세력, 북한 정부…. 이런 것들이 하나의 연관과 맥락 속에 자리하고 있는 듯 했다. 그 매개는 ‘인권’이었다. 어떤 면에서 그 북쪽 인사는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꿰고 있었다. 인권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때, 그것은 거의 언제나 ‘권력’의 문제다. 인권을 보장하거나 억압하는 일 모두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조건을 변형시키는 ‘힘’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더구나 특정 집단이 인권을 문제 삼는 상황은 필연적으로 ‘정치적’이다. 인권은 단순히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조건과 환경의 문제이며 이를 변화시킬 물리적 힘에 대한 사안이다. 하물며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에서 인권이 화두가 될 때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문제는 인권을 매개로 권력이 작동할 때, 사람들이 이를 서로 다른 관점으로 대한다는 점이다. 위에서 거론된 사안만 따져 봐도, 노무현 정부, 김대중 전 대통령, 한나라당, 부시 행정부, 북한 정부 등의 시선이 복잡하게 엇갈리고 있다. 인권의 가치를 중심으로 정치이력을 개척해온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막상 재임시절의 ‘도청’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얼버무렸다. 전 세계 민중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는 미국은 분명 북한의 인권 문제를 ‘정치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반면 서울 경찰의 ‘경호’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북한 사람들은 군대의 물리력이 결정적 구실을 하고 있는 북쪽 사회의 현실에는 둔감하다. 흔히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논리가 ‘이중 잣대’다. 뭐 묻은 놈이 겨 묻은 놈 나무라느냐는 반박은 적어도 인권을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반박의 논리다. 그리고 거의 예외 없이 그 반박이 ‘옳다.’ 모든 권력은 기본적으로 특정한 누군가에 대해서는 인권침해적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인권에 대해선 모든 권력이 자신의 몸에 뭔가 구린 것을 묻히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이중 잣대의 논리가 횡행하는 와중에 정작 인권의 실체는 실종돼 버린다. 특정한 인권침해 상황을 문제 삼는 손가락질의 ‘음험한 정치적 의도’를 손가락질하고 나면, 남는 것은 정치토론 밖에 없다. 부시 행정부가 망하기 전까지, 세상의 누구도 북한의 인권에 대해 말해선 안 된다는 환원론적인 논리만 남는다. 남쪽에 극렬반북인사들이 모두 사라지기 전까진, 북쪽 사람들의 경호는 언제까지나 철통같아야 한다는 단순함만 남는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런 앙상한 정치 논리 사이로 다시 인권의 문제가 작동한다. ‘인권적 상황’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으니, 정치적 쟁투가 끝난 뒤에도 이 문제는 여전히 잔존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국정원은 도청을 한다는 건지 안한다는 건지, 어떤 경우에 해도 좋다고 허락해야 되는 건지, 이에 대한 국민적 감시는 어떻게 가능한 건지에 대해선, ‘오리무중’이다. 잡아간 사람의 정치적 의도와 잡혀간 사람의 정치적 반박만 남아있을 뿐이다. 특별히 이 글에서 다루고 싶은 것은 북한 인권이다. 특징적이었던 것은 이번 방북 때, 핵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선 북쪽 사람들이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6자 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가 대화 체계 안으로 녹아들었음을 방증하는 일이었다고 믿는다. 그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이는 중요한 변화다. 핵을 거론하는 미국의 ‘의도’를 문제 삼고 핵외교를 펼칠 수밖에 없는 북한의 ‘처지’를 이해하는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구체적 해결을 모색하는 자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원천인 핵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5차 6자회담 개막 모습 북한 인권도 비슷하지 않을까. 이를 문제 삼는 미국의 의도는 분명하다. 북쪽 인민들의 탈북을 ‘기획-조직-선전’하는 일부 보수 세력의 속내도 뻔하다. 북 인권을 빌미로 진보개혁진영을 비난하는 그 목소리도 가소롭다. 그들 모두는 지금 인권이 아니라, 인권의 탈을 쓴 정치권력에 대해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정치의 인권’이 아니라 진정한 ‘인권의 정치’를 작동시킬 책임이 남쪽 인권단체에게도 있는 것은 아닐까. 북쪽의 인권 문제를 그저 정치적으로 비토하기만하고 팔짱을 낄 게 아니라, 이를 제대로 된 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실질의 문제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6자 회담 등이 탄생했듯이, 적어도 북한 인권의 문제를 어떤 식으로건 다룰 수 있는 건강한 마당을 형성하는 게 옳지 않을까. 길게 보자면, 북핵 문제가 일정한 매듭을 짓게 되더라도, 북한 인권을 둘러싼 논란은 다시 등장할 것이다. 남북 교류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가동했던 ‘화해의 정치’가 끝내 수구보수 세력의 중상비방을 잠재우고 있듯이, ‘인권의 정치’는 북 인권에 대한 터무니없는 정치도구화의 시도를 넘어설 유일한 방법이다. 엄밀히 보자면 인권에 국경은 없다. 그래서 세계의 모든 인민은 미국 관타나모 기지에 수감된 ‘테러용의자로 추정되는 이슬람인’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인권침해를 문제 삼을 수 있다. 여기서 세계 인민은 미국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게 아니다. 해당 정부의 물리력이 허용하는 공간에 인권의 자리를 보장하라고 촉구할 뿐이다. 국가가 주체가 되는 외교의 무대에 인권을 올리는 것은 인권의 문제를 오히려 은폐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지만, 시민사회가 인권을 문제 삼는 것은 국가의 오류를 스스로 바로 잡게 하는 토양이 된다. 미국과 유엔이 북한 인권을 함부로 말하게 내버려두지 말고, 한국 시민사회가 이를 담담하고도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을까. 미국 중앙정보국의 ‘믿지 못할’ 정보에 기반한 편견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고리를 끊어낼 힘이 사실은 바로 한국 시민사회단체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을 말하자면 이렇다. 도대체 북한 인권 문제라는 것의 ‘정체’는 무엇인가.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그 일은 인권의 보편원리에 비춰 어느 정도의 사안인가. 북 인권에 신경 쓸 필요 없이 남쪽 인권 문제나 집중해도 되는 건가 아닌가. 만일 북쪽 사람들과 이 문제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대화의 성과는 어떤 것인가. 이에 대해 말해줄 사람이 진보개혁진영에겐 필요하다. 아직도 우리는 북한을 너무 모르거나 인권을 너무 모른다.   안수찬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7-06-01 | hrights | 조회: 576 | 추천: 0
여섯 달 전 아들이 태어났다. 서른일곱에 첫 아이를 본 것이다. 장가를 늦게 간 데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다보니 출산이 늦어졌다. 1억2천만분의 1의 경쟁률을 뚫고, 아니 몇 조는 족히 넘을 ‘형’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인간의 얼굴을 하고 태어난 아이가 대견스러웠다. 원래 여자를 좋아해서, 딸이길 바랐지만, 아들 딸 구별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냥 좋았다. 그런데 막상 아이를 낳고 나니 출산을 늦췄던 이런저런 이유보다 더 많은 문제들이 생겨났다. 생후 2주도 안된 녀석이 세균감염으로 열흘 동안 병원신세를 지지 않나, 무슨 감기는 또 그렇게 달고 사는지, 기침이 끊일 날이 없다. 기관지염으로 입원한 적도 있다. 그런데 가장 큰 난관은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아내가 석 달의 출산휴가를 마치고 출근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직장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일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직업 특성상, 그것도 지금 맡고 있는 일의 특성상, 집에 일찍 들어가는 날이 하루도 없다는 것이다. 단 하루도 말이다. 주말은 주말대로 쉴 수가 없다. 기사 마감이 월요일과 화요일 오전이기 때문이다. ‘자고로 사람은 게을러야 창의력이 생긴다’는 내 지론과는 정반대의 생활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칼’ 퇴근해서 아이를 찾아오는 아내-아내는 조선의 9급 공무원이다-의 스트레스는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 밤늦게라도 젖병을 씻어대는 등 ‘면피’를 획책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한겨레문화센터 기자학교 학생들과 술을 마시고 늦게-새벽이니 일찍인가?-들어간 날 급기야 사단이 벌어졌다. 아내는 문화센터고 뭐고 다 때려치우라며, 취해서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나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다음 날, 나는 결심했다. ‘아이가 새벽에 깨서 울면 전적으로 내가 책임진다. 잠이 좀 모자라도 정신력으로 버티자.’ 그런데 결심은 채 이틀을 못 갔다. 아내는 화를 내서 미안했던지 “잠이 모자랄 텐데, 어서 자라”며 따뜻한 말을 해줘 내 차가운 결심을 무너뜨렸다. 이젠 아이가 여간 울어서는 알아채지도 못 하게 됐다. 우리 회사에도 육아휴직 제도가 있다. 남자든 여자든 누구나 쓸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육아휴직을 한 남자 기자는 단 두 명,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선진적으로 남자 육아휴직 제도를 도입할 때였다. 그러나 두 사람 다 한달만에 불려나왔다.(규정상 석 달을 쉴 수 있다)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 이후 아무도 육아휴직을 신청하지 않는다. 게다가 지금은 사정이 더 좋지 않다. 지난해 80여명의 동료들이 회사를 떠났기 때문이다. 남아있는 사람들이, 몇 안 되는 인력으로 더 질 높은 신문을 만들기 위해 그야말로 ‘눈썹이 휘날리도록’ 일하고 있다. 문제는 공무원 조직을 비롯한 ‘여유있는 직장’에서도 육아휴직을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는 것이다. 승진 등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육아휴직을 감행하는 용기 있는 사람은 드물다.   사진출처- 한겨레 맞벌이가 생활의 기본이 되면서, 친정 엄마들의 수난시대가 시작됐다고 한다. 시집 간 딸이 시어머니보다는 마음편한 친정 엄마들에게 아이를 맡기기 때문이다. 손자도 가끔 봐야 귀엽지, 근력도 예전 같지 않은 노인네들이 하루 종일 한 생명을 건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편히 쉬어야할 인생의 제2막을 보모로 저당 잡힌 노인들의 처지가 안쓰럽다. 아이를 낳으면 몇 십 만원을 주겠다는 식의 발상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30년 뒤면 이 사회에 온통 할아버지 할머니만 득실거릴 거라고 협박해도 문제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잠시 쉬었다 오려다 영원히 집에서 쉬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IMF 직후의 후일담만이 아니다. 갈수록 수위를 높여가며 득세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쟁논리와 정부의 출산장려 운동은 애초부터 양립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덕분에 이제 ‘둘째’ 생각은 싹 없어졌다. “애를 위해서라도 둘은 있어야지”라고 말하던 우리 부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됐다. “몇 년 지나면 달라질 거”라는 주변의 조언이 제발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도 육아휴직을 하고 싶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2017-05-31 | hrights | 조회: 603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