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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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이찬수(전 보훈교육연구원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어제 네가 보여준 미소가 눈에 선하다. 집합 장소로 들어가다가 나를 돌아보며 씨익 웃더구나. “걱정 마세요. 잘 할 테니까.” 그 순간 이 녀석이 그새 어른이 되었구나... 싶었다. 불과 며칠 전만해도 남들 다 가는 군대 가는 게 뭐 그리 대수일까 싶었는데 막상 네가 군문을 들어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 한 것이 착잡한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아들 둔 이 땅의 부모들이 모두 한번씩은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되겠지.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얼마 전부터 그럴 수도 있겠다 어느 정도는 예상도 했던 일이건만 하필이면 아들 군대 보낸 날 그런 뉴스를 듣게 되니 이래저래 기분이 더 착잡해 지더구나. 문득 20년 전 네 첫 돌잔치 때 광경이 떠올랐다. 엄마 아빠의 친구들이 모여 축하를 해 주고 함께 술잔을 나누었지. 너도 대강 알겠지만 그 당시는 너희 세대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수시로 벌어지던 살벌한 시기였다. 멀쩡한 젊은이가 군대에 끌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도 하고 대학생이 경찰에 고문을 당해 죽기도 하던 그런 때였다. 그날 아빠와 우리 친구들은 네 돌잔치를 핑계로 오래 만에 마음껏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때 아빠 친구 하나가 마치 약속이라도 하는 듯이 너를 보며 이야기 했었다. “그래, 네가 이 담에 어른이 됐을 때는 더 이상 전쟁도 없고 강제로 군대 끌려가는 일도 없고, 더 이상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필요도 없는 세상이 와 있을 거다. 꼭 그렇게 만들어 주마.” 말귀를 알아들을 리 없는 돌배기 어린 아기에게 자못 진지한 어조로 이렇게 이야기하는 그 친구를 보고 모두 웃었지만 적어도 그 약속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단다. 우리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으니까.     사진 출처 - 2006 육군훈련소 국방화보 그로부터 정말 눈 깜짝할 새에 20년이 흘렀다. 그 사이 넌 대학생이 되었고 우리 사회도, 나 자신도, 아빠의 친구들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우리가 네게 약속했던 세상은 아직 오지 않은 것 같구나. 전쟁의 위협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가까이 있고 여전히 젊은이들은 원하건 원치 않건 군대를 가야만 한다. 대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며 죽어가고 운동이냐 취업이냐를 놓고 고민하던 시대는 지나간 것으로 보이지만 그게 ‘더 이상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필요가 없는 세상’이 왔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또 다른 민주주의를 외치며 지금도 길거리에서 싸우고 있고 여전히 젊은이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미래를 고민한다. 도대체 지난 20년간 우리는 무엇을 이루어 놓은 걸까. 새삼 이런 질문이 아프게 고개를 내민다. 그래, 우리가 네 돌잔치 한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는 못한 것 같다. 미안하구나. 어쩌면 다시 너와 네 친구들이 너희의 아들들에게 똑 같은 약속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꼭 그래주길 바란다. 어쨌든 세상은 그런 약속들로 인해 조금씩 좋아지지 않겠니? 너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심정이라고 했지만, 난 네가 좀 다르게 생각하면 좋겠다. 내가 늘 하던 이야기 있지 않니?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즐겁게 하자.’ 이거 말이다. 생각해 보면 군대 생활은 네가 밖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여러 가지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군대가 아니라면 만나기 어려웠을 사람들을 만나 서로를 겪어내는 것도 어쩌면 너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2년 남짓의 기간 동안 졸병에서 고참까지를 압축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도 군대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지. 그렇게 생각하면 나중에라도 네 인생의 그 2년이 결코 헛된 시간이 되지는 않을 것 같구나. 너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니 네가 보낸 이메일이 와 있더구나. 어제 밤 잠들기 전에 보내 놓은 모양이지? 걱정 말라는 이야기, 내 건강 걱정, 그리고 맨 마지막에 써 있는 한 마디, ‘사랑합니다. 아버지.’ 순간 울컥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단다. 이 녀석이 이제 다 컸구나. 자식,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킬 줄도 아네... 그래. 나도 사랑한다. 너도 잘 지내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보자꾸나. 아빠가.(넌 이제 아버지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난 여전히 아빠란 호칭이 좋단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6-08 | hrights | 조회: 741 | 추천: 0
‘인권 감수성’이란 말을 우리는 종종 접하며 인권 감수성의 개발은 인권교육의 기본이자 목표로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자극을 쉽게 받아들이고, 이로 인해서 흥분하기 쉬운 상태 또는 성질”을 ‘감수성’ 혹은 ‘민감성’이라 할 때, ‘인권 감수성’은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다양한 자극이나 사건에 대하여 매우 작은 요소에서도 인권적인 요소를 발견하고, 적용하면서, 인권을 고려하는 것”을 말한다. 부연하자면, ‘인권 감수성’이란 “인권문제가 재개되어 있는 특정상황에서 그 상황을 인권관련 상황으로 지각하고 해석하며, 그 상황에서 가능한 행동이 다른 관련된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를 알며,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인식하는 심리과정,” 즉, “상황을 인권관련 상황으로 지각하고 해석하는 과정”이며, 이것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바로 인권을 옹호하는 행동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과정”이기 때문이다.(국가인권위원회 사이버인권배움터 참조). 대학에서 인권교육을 하는 필자 역시 학생들에게 ‘인권 감수성’을 일깨워주고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어떠한 것을 예로 들면 좋을지를 늘 생각하는데, 다음의  세 가지를 자주 원용하곤 한다. 첫째는, 주부 내지 어머니의 인권이다. 세계인권선언 제24조에서 언급되듯, “모든 인간은 합리적인 노동시간의 제한과 정기적인 유급휴가를 포함한 휴식과 여가의 권리를 갖는다.” 주부습진과 함께 유달리 우리나라의 주부들에게 많은 병이 울화병이라 한다. 백과사전을 보면, 화병(火病) 또는 울화병(鬱火病)은 장년의 여성에게 주로 나타나는 정신 질환이며, 화를 참는 일이 반복되어 스트레스성 장애를 일으키는데, 가슴이 답답하며, 불면증, 거식증, 성기능 장애 등의 증상을 동반한다. 아울러, 화병은 한국인만의 독특한 질환이다. 미국 정신과 협회에는 1996년에 화병을 문화관련 증후군의 하나로 등록했는데, 이 질환을 영어로 'hwa-byung'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한국의 주부들은 곧 아내이자 어머니이다. 이들에게도 행복추구권과 휴식의 권리가 있음은 당연하다. 아마도, “나도 주말엔 쉬고 싶다. 친구들과 영화 한편이라도 보고 싶고, 책방에도 가보고 싶고, 부엌도 한주에 한번이라도 휴업하고 싶다. 방 한 칸을 따로 갖진 못한다면 마음속에라도 방 한 칸 갖고 싶다. 주부이기 전에 나도 인권이 있는 한 명의 존엄한 인간이다”라고 아주 조용하게라도 때로는 절규하고 싶진 않을까? 둘째는, 정신지체장애를 포함한 모든 장애인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성(性)에 대한 권리이다. 강의 시간에 “그들의 사랑할 권리--정신지체인의 성(性)과 결혼”이라는 다큐스페셜을 학생들에게 보여줄 때, 필자는 학생들의 얼굴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가 가져다주는 미소와 함께 인권 의식이 생겨남을 읽는다. 그 TV 프로는, 그에 대한 소개 기사대로, “흔히 정신지체 장애인들은 결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상인도 잘 살기 힘든 세상에, 정신지체인 끼리 결혼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심한다. 일반이 장애인에 지니는 편견과 무관심이 그들의 삶을 얼마나 황폐하게 했는지 살펴본다. 행복하게 사는 정신지체 부부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사랑과 인간답게 살 권리를 생각한다.” “성년에 이른 남녀는 인종, 국적 또는 종교를 이유로 한 그 어떤 제한도 받지 않고 결혼하여 가정을 이룰 권리를 갖는다”(세계인권선언 제16조 1항)는 것은 이들에게도 당연히 해당된다. 그러나, 이들의 그러한 인권은 혹여 금기시 되거나 논외로 여겨지지는 않는가?     장애인의 성을 본격적으로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핑크팰리스’ 사진 출처 - 네이버  그런데,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인권도 비슷한 같은 맥락 아닐까? 이들 역시도 행복추구권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에 의해 홀대 당하거나 방치되기 일쑤이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욕구는 일생을 간다 한다. 사랑을 느끼는 마지막 순간은 병상에서 접하는 위로와 미소, 더 나아가 임종의 순간에 눈을 감겨주는 손끝까지 아닐까? 외로운 노년, 특히 홀로 남은 노인들의 경우 그들이 얼마나 사랑받고 싶고 더 나아가 사랑하고 싶은지 우리는 헤아려 보았는가? 홀로 남겨진 노인들은 홀로 살다가야만 하는가? 그들에게 이러한 인권은 시효가 이미 지났는가? 셋째로, 몇 년 전에 TV에서 ‘태조 왕건’을 보면서 철원에서 나주로 왔다 갔다 하는 왕건을 보면서, 더욱이 말을 탄 왕건이 발이 불편할 군화와 녹슨 창 하나 들고 마라톤을 해야 하는 수많은 보병들을 이끌고 가면서 “빨리 가자”고 외치며 말을 달릴 때, 필자는 그 보병들에게 눈을 돌리곤 했다. 그들에게 과연 그 전쟁은 무슨 커다란 의미가 있을까? 곧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떠나온 고향의 가족들을 생각하며 배 굶으며 죽음의 공포에도 사로잡힌 채 왕건을 위해 목숨 바치겠다며 달리는 가엾은 그 병사들도 왕건과 똑같이 존엄한 인간들 아닌가? 칼과 화살을 맞아 쓰러지는 무명의 병사들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 그 약속과 기다림과 절망도 우리는 드라마 속에서 함께 읽어야하진 않을까? 이렇게 본다면, TV 드라마는 우리에게 참으로 좋은 텍스트라 하겠다. 주인공에게만 주목하는 우리들은 이젠 장군이나 미남, 미녀가 아닌 주변의 등장인물의 처지에서 드라마를 거꾸로 읽을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수많은 영화와 아이들의 동화 역시도 속속들이 인권교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공주와 왕자가 아닌, 임금과 장군이 아닌, 게다가 선남선녀가 아닌 이들까지 모두가 전 인류에 보편적인 인권의 주인공들이다. 이렇듯, 인권 감수성은 중심에서 주변으로의 여행,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의 여행, 그리고,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을 가능케 한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의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는 선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변과 낮은 곳에 눈을 돌리는 데 익숙하지 않다. 감수성이 있는 이들은 남들이 ‘작은 것’이라고 여기는 것들에서 자주 슬퍼하고 자주 기뻐한다. 그러나, 그 ‘작은 것’은 결코 작은 게 아니다. ‘인권 감수성’이라는 기차는 우리를 기다린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짧은 거리이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은 못해보는 여행인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이 우리를 초대한다. 여행을 떠나고 싶은 계절인 가을에 이런 기차여행은 어떨까?   김 녕 위원은 현재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8 | hrights | 조회: 1084 | 추천: 0
1.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6개월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을 따라 외국에서의 6개월을 보내고 얼마 전 돌아왔다. 30년 넘게 살던 땅이지만 공항을 나서는 순간 나는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았다. 후텁지근한 공기, 빼곡히 들어선 건물들, 숨이 막히는 매캐한 먼지, 거칠게 질주하는 차들 그리고 무엇보다 무표정한 얼굴들. 6개월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는, 내게는 너무나 익숙했던 일상과 풍경들이 너무나 낯설었다. 6개월 동안의 떠남이 아니었으면 그저 지금도 계속 이어지는 일상이었을 것이 갑자기 낯선 현실로 다가오는 바로 그 순간이란….(인간의 마음은 이리도 간사한 것이었을까?)   2. 낯선 또는 낯설어진 현실에 직면한 인간이 대처하는 방식은 두 가지인 것 같다. 도망치거나 혹은 다시 적응하거나. 나도 공항에 내리는 그 순간 다시 비행기를 타고 떠나고픈 충동을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그럴 수 없는 것이 또 현실이니 적응하는 수밖에…. 하긴 가만 생각해보면 이 현실에 다시 적응하는 것이 그리 고역은 아니었다. 다시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에 매몰되고 나니 지난 6개월은 한 이틀 휴가정도의 기억으로 압축되어버렸다.(아 나의 우둔함이여, 나란 놈은 애당초 생겨먹길 이것밖에 안되나니. 난 역시 쳇바퀴 체질이야!)   3.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한 일 가운데 하나는 자전거를 사는 일이었다. 외국으로 나갈 때 차를 폐차시켰기 때문에 뭔가 이동수단이 필요했다. 회사야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면 되지만 어정쩡한 거리에 있는 할인매장에 다닐 때나 동네 가까운데 일보러 다닐 때가 제일 애매했다. 당장은 차를 살 형편도 안 되고 요즘 자전거 타는 사람도 많다고 하니 나도 운동 삼아서 자전거를 타 볼 요량이었다.(운동도 되고 환경도 생각하고 좋지 뭐. 아! 친환경 친생태적인 내 삶의 자세여…. 역쉬!)   4. 발품을 팔아 동네 자전거포 네 다섯 곳을 돌고 인터넷도 여기저기 기웃거려 요리 따지고 저리 따져서 00모델로 최종결정했다. 한 인터넷 공동구매 사이트에서 이 모델을 제일 싼 값에 팔고 있었고, 며칠씩 배송을 기다릴 필요 없이 직접 매장에 들러서 바로 제품을 수령할 수도 있었다. 그리 먼 거리도 아니고 해서 내친 김에 바로 매장으로 달려갔다. “아저씨, 00자전거 주세요.” 그런데 직원 왈, “아, 그거요. 괜찮은 자전거죠, 많이 팔리구요. 근데 요런 점은 좀 안 좋고 저런 점도 좀 안 좋아요. 나쁘다는 건 아녜요. 그런대로 탈만해요.(도대체 사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근데 옆에 있는 요 모델은 조금 비싸긴 한데, 뭐도 좋고 뭐도 좋고 다~좋아요.”(오호! 이놈을 사라는 얘기군) “그래요? 그럼 그거 주세요.” (아, 나의 여린 귀여, 얇아진 지갑이여!)     사진 출처 - ⓒ2006 김대홍 오마이뉴스   5. 그렇게 새로 산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나는 바로 후회하기 시작했다. 자전거는 맘에 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도대체 숨을 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차들이야 피해서 조심해서 다니면 되고, 운전자들도 알아서 피해주니까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지만 배기가스는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광합성을 하는 식물도 아닌데 그 이산화탄소, 일산화탄소, 질산화물에 미세먼지까지 다 들이마시면서 어떻게 살아남기를 바란단 말인가. 자전거가 유산소 운동이라고? 운동은 무슨 개뿔! 이러다간 제 명에 못살지. 이렇게 사서 고생하느니 예전처럼 차를 타고 창문 꼭꼭 닫고 에어콘 빵빵하게 틀고 쌩쌩 달리는 게 제 맛이지.(그래서 다음날 바로 자동차 대리점으로 달려가 신차 카달로그를 받았다. 오~ 멋진데…. 근데 차 값은 왜 이리 비싼겨! 젠장)   6. 여전히 고역이긴 해도 자동차 배기가스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요즘은 일주일에 서 너 번씩 자전거를 탄다. 그럴 때마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문득 낯설어졌던, 그리고 그 이후 점점 희미해져가는 기억을 문득 문득 되살리려고 애쓴다. 무감각해져가는 코와 귀와 눈을 깨워 그때 그 매캐한 냄새와 눈을 따끔거리게 하던 뿌연 하늘과 귀에 거슬리던 자동차들의 소음을 더 또렷이 기억하고 싶다. 사실 덜덜거리며 배기가스를 내뿜는 그 수많은 차들 가운데엔 귀찮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이유로 별 생각 없이 살아가던 나 자신도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차는 언제 사지?)   사진 출처 - ⓒ2006 김대홍 오마이뉴스   이재상 위원은 현재 CBS방송국 PD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8 | hrights | 조회: 578 | 추천: 0
2005년 9월 11일 노사정 대표자들은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의 핵심 쟁점인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을 3년간 유예하기로 합의하였다. 이 소식이 알려진 후 민주노총은 이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진행하겠다고 하고, 참여연대는 “국제노동기준과 노동기본권 외면한 노·사·정 상층부의 담합”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노사문제에 관심이 없는 시민들로서는 민주노총이나 참여연대가 반발하는 이유나 복수노조 허용에 관한 3년 유예의 심각성에 관하여 잘 모를 수 있을 것이다. 약간의 설명을 해 보겠다. 한국 노동법은 원칙적으로 1개의 기업에 1개 노동조합의 설립만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기업에 노동조합이 설립되어 있다면, 그 이후 다른 노동조합을 설립하는 것은 금지된다. 이를 ‘복수노조금지제도’라고 줄여 말한다. 이 정도의 설명만 들으면, 이 제도에 별다른 문제점이 없다고 느껴질 수 있다. 왜냐하면 어쨌든 근로자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그 설립되어 있는 노동조합이 특정 근로자들만의 이익을 중시하고 있다면, 이 복수노조금지제도는 심각한 폐해를 낳게 된다. 복수노조금지제도로 인하여 노조에서 소외된 근로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옹호할 수 있는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복수노조금지제도는 근로자들의 단결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로 인식되고 있다. ILO 역시 수차례 그 폐지를 권고하였다. 결국 1997년 노사정은 5년간의 유예기간을 둔 후 이를 폐지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그 준비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유예기간을 5년 더 연장하였고, 9월 11일 이를 다시 3년간 유예한 것이다.  노사관계 법ㆍ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 협상 타결과 관련, 9월 12일 오후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민노총 조합원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노사관계 로드맵은 노동부, 경총, 한국노총의 야합'이라며 로드맵 입법 중단과 복수노조 즉각 시행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이 제도 때문에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근로자들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의 노동조합은 정규직·생산직 남성 근로자들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는데,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정규직 근로자들 중심으로 조직된 노동조합에서 배제되어 왔다. 이를 타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은 정규직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자신의 조직범위로 포함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방법을 택하는 정규직 노동조합은 흔하지 않다. 우리는 이러한 정규직 노동조합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로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하여 하는 조치들을 무조건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노동조합이란 제도의 임무가 근로자들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좋은 방법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정규직 노조와는 별도로, 스스로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자신의 권리를 지킬 의사를 가진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자신들의 조직을 만들어 그 이익을 지킬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는 시혜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헌법이 기본권으로 확인하고 있는 바이다. 그런데 복수노조금지제도는 이와 같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기본권 행사를 원천적으로 막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이 높은 임금을 받도록 하거나 부당하게 직장으로부터 축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솔직하게 얘기한다면,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무시하기에는 그 수가 너무 많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지 그들을 법제도 내로 포섭하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전체 근로자 중 60%에 해당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무시하고선 한국 사회의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흔히 우리는 내수 경기의 불황과 ‘바다이야기’와 같은 사행산업의 활황, 그리고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증가 현상을 분리하여 바라본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들은 연결되어 있다. 예컨대 공무원들의 급여 수준은 민간기업의 근로자들에 비하여 낮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은행은 공무원들의 대출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우대조치를 취하고 있고, 젊은이들은 저임금의 공무원이 되려고 몇 년 동안 준비를 한다. 그 이유는 공무원의 신분이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자신의 10년 후의 모습을 예측할 수 있고, 거기에 맞춰 저축을 하고 소비를 할 수 있다. 이에 반하여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1년 후의 미래를 알 수 없다. 내일 이 직장에 나올 수 있는지조차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것은 자신의 성실함이나 능력과는 무관하다. 따라서 성실한 비정규직이라면 당연히 미래의 불확실성을 대비하기 위하여 저축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실망한 비정규직이라면, 조금 허망해 보이기는 하지만, ‘바다이야기’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즉 지나친 저축과 요행심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한국에서 건전한 내수 시장이 활성화될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사진 출처 - 쿠키뉴스  민주주의와 관련한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 헌법은 모든 근로자들에게 단결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한국의 근로자들 중 60%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단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의 일자리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응하기 위하여, 법의 보호를 기대하지 아니한 채, 초조하게 일을 하고 있거나 어느 성인오락실 구석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다. 이런 처지에 있는 그들에게 한국 사회의 미래나 민주주의에 대하여 고민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단결권과 근로권을 보호해 주지 못하는 국가가 그들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요청하고 민주주의체제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가 아닐까? 9월 11일 정부와 경영계는, 전체 근로자들 중 채 10%도 되지 않는 근로자들을 대표하는, 한국노총과 합의를 하고 이를 노사정 합의라고 얘기한다. 나는 궁금하다. 9월 11일 노사정 대표자들은 나머지 90%의 근로자들이 그들을 어떻게 바라볼지, 10년 한국 사회가 그들을 어떻게 평가할지 고민하였을까?   도재형 위원은 현재 강원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8 | hrights | 조회: 604 | 추천: 0
평소에 경제면은 읽지도 않던 내가 경제부로 발령 난 것은 이른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1997년 10월이었다. 나라가 거덜 난 상황에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고, 지역등권론과 수평적 정권교체를 앞세운 김대중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텔레비전 개그프로부터 시작해 밥집에 이르기까지 특정 지역의 사투리가 부쩍 많이 들리던 때였다. 경제부에 가서 처음 맡게 된 분야가 부동산이었다. 담당부처인 건설교통부도 함께 출입하게 됐다. 건설교통부 차관을 지낸 ㄱ씨는 당시 공보관이었다. 공보관 자리는 막 국장으로 승진한 사람이 맡는 관행 같은 게 있었는데, 그도 그런 케이스였다. 첫 눈에 그는 엘리트 공무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매사가 똑 부러졌고, 호방한 성격이었다. 기자들에게도 할 말을 다 하면서 기분 나쁘지 않게 하는 특유의 화법을 구사했다. 동기 중에 가장 승진이 빠른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술만 먹으면 입바른 소리를 곧잘 했고, 기자들과 말싸움을 하기도 했다. 공무원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렇게 그는 당당했다. 어느 날 그가 저녁을 함께 하자고 했다. 청계산 기슭의 한 고기 집이었는데, 매우 고급스런 느낌이었다. 방에 들어서자 중년의 남자 두 명이 앉아있었다. 특정 지역의 사투리를 많이 쓰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평소에 존경하는 분들이라고 소개했다. 명함을 받아보니 건교부 산하 기관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태도가 특이했다. 산하 기관보다는 본부가 힘이 세니(당시만 해도 본부에서 산하기관 예산편성권을 쥐고 있었다) 머리를 조아리는 게 옳을 것 같은데, 이 사람들은 오히려 상전이라는 느낌이었다. 그 사람들이 바로 말로만 듣던 낙하산이었던 것이다. 사람 관리에 탁월한 능력을 지닌 그가 정치권에서 내려온 낙하산들을 접대하는 자리에 나를 끼워 넣은 것이었다. 그는 그 뒤 승승장구를 거듭하며 중책을 맡았다. 그는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그런 자리에 오를 만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평소의 사람 관리, 정치권과의 관계와도 무관하지 않을 터였다. 아주 나중에 그는 정권의 핵심이라고 거론되는 사람들이 연루된 어떤 프로젝트의 몸통처럼 돼서 공무원을 그만 두게 됐다. 개인비리가 드러난 것이 아니었는데도 구속까지 당했다. 나는 그 사건의 진상을 자세히 모르지만, 상식적으로 보면 추진해서는 안 되는 사업이었는데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정치권의 압력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또 한명의 공무원이 있다. 바로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이다. 그 역시 매사에 똑 부러지는, 소신 있고 당당한 공무원이었다. ㄱ씨처럼 기자들에게 할 말을 다 하면서도 기분 나쁘지 않게 하는 특유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도 공무원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을 자주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와 저녁 식사 한 번 해본 적이 없어서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런 그의 발언을 그가 공무원으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그는 차관이 된 지 6개월 만에 물러났다. 그는 청와대의 인사 청탁을 거부해서 경질됐다고 주장했다. 경질 사유에 대한 청와대의 해명은 시시각각 변해 왔다. 처음엔 신문유통원 업무를 해태한 것이 이유라고 하더니, 나중에는 부적절한 발언이 결정적인 사유라고 말을 바꿨다. 공무원이 자신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청와대의 협조 부탁 혹은 명령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유 전 차관은 그렇게 했고, 결국 경질됐다.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 사진 출처- 한겨레    그의 해명은 이렇다. 아리랑티브이 부사장으로 청와대가 추천한 정치권 인사가 아리랑티브이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먼저 만나자고 했단다. 부사장으로 가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전화를 걸어왔다는 것이다. 그를 만나본 아리랑티브이 사장은 “정말 깜이 아니다”라며 문화관광부가 제발 좀 막아달라고 부탁했다.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이 유 전 차관에게 전화를 걸어 문제의 정치권 인사를 추천한 것은 그 다음이다. 유 전 차관은 이 수석에게 그 사람이 그 자리에 꼭 앉아야 하는 이유를 3가지만 말해보라고 했는데, 이 수석은 대답하지 못했고, 그래서 설득이 됐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주일도 채 안 돼 청와대에서 공직기강 조사를 나왔고, 인사 청탁 거부를 집중적으로 캐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공직기강 조사를 나온 청와대 사람에게 “인사 청탁을 하는 게 공직기강에 어긋나는 겁니까, 그걸 거부한 게 공직기강에 어긋나는 겁니까” 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그 와중에서 청와대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앞으로 이런 일(인사 청탁)을 그만 두지 않으면 내가 그만두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내 생각엔 그런 말이 청와대에 보고 되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인사권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한 것으로 와전되지 않았나 싶다. 그게 청와대가 말하는 ‘부적절한 발언’이었던 것 같다. 낙하산 인사들을 접대했던 ㄱ씨와 아예 낙하산 인사를 거부했던 유 전 차관을 비교한 것은 누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 시절에는 낙하산 인사라는 게 그만큼 비일비재했다. 언론에서 낙하산 인사를 비판하는 기사가 나와도 그냥 일회성으로 지나가곤 했다. 사실 낙하산 인사의 양으로 치면 현 정권이 기존 정권들보다 훨씬 덜 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현 정권 들어 낙하산 인사가 유독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른바 조중동의 집요한 물어뜯기가 큰 공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회성이 아니라 날마다 문제를 제기하니 그것이 여론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청와대의 도덕성에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구언론과의 싸움을 자처했다면 꼬투리 잡힐 일을 애초에 만들면 안 되는 것이다. 임기가 끝나기 전에 자리 하나 차지하려고 애를 쓰는 대통령 주변의 사람들이 결국 레임덕을 부추기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뜻대로 정책을 펴려면 코드 인사가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아리랑티브이 부사장이 코드 인사를 필요로 하는 중요한 자리인가? 그렇게 자잘한 인사까지 챙기다보니 보은인사니 뭐니 하는 비아냥을 듣게 되고, 총리나 장관 같은 중요한 인사도 마음대로 못하게 되는 것이다. 현 정권의 인사 난맥상은 스스로 만들어낸 무덤인 셈이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2017-06-08 | hrights | 조회: 611 | 추천: 0
나의 부모님은 두 분 다 함경남도 홍원에서 나신 분들이다. 8.15 전 해에 결혼하셨고 일본의 패망 직후 남한으로 월남하셨다. 유년 시절, 두 분의 정치적 경향을 알기는 어려웠으나 71년 대통령 선거 때 김대중 씨를 찍었던 것을 알고 있고, 내가 중학교 무렵 오랜 동아일보 독자로서 70년대의 광고탄압(백지 광고 사태) 때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하셨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내가 대학생일 무렵에는 어느날 아버님과의 대화 중에 일제시대(당신이 청년이셨을 때) 일본의 어느 사회주의 사상가(이름은 기억 못하셨지만)의 책을 감명 깊게 읽으셨던 기억을 언급하셨던 적도 있었다. 특별히 정치적 성향이 두드러지신 것도 아니었고 그저 분주한 일상을 살아가는, 상식에 기초한 평범한 ‘국민’이셨던 두 분이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그러다가 어느 무렵부턴가 가끔씩 집안의 식탁에서 언성이 높아지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87년 대선 때는 그저 YS냐 DJ냐로 지지 대상이 갈리는 정도로 알았었다. 92년 대선 때부터는 소박한 서민의 집안에서 정치적 격론이 벌어지는 일이 자주 발생하게 되었다. 총선, 지방자치선거, 대선... 선거 때마다 부모와 자식 간에는 강도 높은 논쟁이 벌어지는 것이 마땅한 일이 되었다. 요즘은 아버님께서 연로하셔서 어머님과 예의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어머님께서는 뭘 모르는 자식이라고 답답해하시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양순하신 분들이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그 자신들이 가난한 서민이면서도 한나라당 의원 못지않고 조선, 동아일보 기자 못지않은 투사가 되신다. 고집불통도 이만저만 아니시다. 소위 ‘빨갱이’나 이북 문제, 심지어 DJ에 대해서까지도 거의 진저리를 치거나 뿌리 깊은 증오심을 숨기지 않으신다. 적어도 부모님과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내게는, 무언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았던 어떤 기제가 있어 보인다. 혹독한 군사독재 시절, 대부분이 숨죽여 가며 살 무렵, 이승만과 박정희의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아셨던 두 분이 자유를 만끽하며 사는 지금 이 마당에는, 박정희를 두둔하고 그 딸이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도대체 이유가 무얼까? 무엇이 나의 부모님에게 이런 변화를 불러온 것일까? 나는 나름의 답을 구해 보았다. 크게는 언론의 몰 역사적이고 무책임한 보도 탓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두 분께 분단의 상처를 제대로 치유할 기회가 없었고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그 상처가 깊어져만 갔다는 결론이다. 80년 전두환의 등장 이후 ‘땡전뉴스’를 비롯하여 군부독재 집단을 찬양해 마지않았던 언론의 오랜 보도를 접했던 두 분은 정치적 문제에서만큼은 서서히 합리적 이성이 마비되어 가셨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분단구조를 최대한 활용해 선정적으로 대북 적개심을 더욱 강하게 불러일으켜 왔던 언론의 폐해는 우리 부모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더해 준 셈이다. 몇 해 전, 주간지 한겨레21에서 베트남에 구수정 특파원을 파견하여 기획특집을 엮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기사를 보면서 나는 꽤 충격을 받았었다. 베트남전 당시의 격전지였던 한 마을을 방문했는데 그 마을의 어떤 할머니(전쟁 때문에 한 눈을 실명하셨고 한 다리도 부상으로 불구가 된)의 말씀이 ‘지난 일은 다 잊었어, 와서 사과하면 다 용서할 수 있어’라는 요지의 이야기였다. 오랜 전쟁으로 국토가 온통 쑥밭이 되었을 뿐 아니라 가족을 비롯하여 수많은 인명이 숨져간,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도 가해자를 아무 조건 없이 다 용서할 수 있는 그 ‘힘’이 도대체 어디서 나올까 하는 생각이 좀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당시에 나는 그 ‘힘’의 원천이 불교적 심성(베트남은 거의 전 국민이 불교도인 국가)에서 비롯되기도 하겠지만  ‘통일’이 가져다 준 자연스러운 치유의 기능에서 비롯한다고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실정은 분단된 구조로 계속 살아야 했고 이 상황을 이용하는 세력들에 의해서 ‘화해와 치유’를 사회적, 국가적 의제로 삼아 보지도 못하고 대결과 반목만을 거듭하면서 살아와야 했다. 사람이 ‘사랑’이나 ‘평화’라는 좋은 생각을 갖고 사는 것과, ‘대결’이나 ‘저주’, ‘증오’ 따위를 마음속에 지니고 사는 것은 개인에게 있어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데 아주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언론을 비롯한 소위 기득권층들은 사람들에게 ‘저주’와 ‘증오’를 몸에 지니고 살라고 매일 주술을 불어넣고 있으니 이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적어도 우리 사회의 대부분 언론은 언론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도 감당할 역량이 안 되는 것으로 보인다. 몇 해 전 남북통일이 될 경우 북한의 토지소유권 문제가 언론에 불거졌던 적이 있었다. 그때 월남할 때 가지고 온 땅문서를 아직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둥 이런저런 보도가 있었는데 당시 나의 아버님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대노하시면서 지금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은 어쩌라고 저런 생각들을 하느냐며 혀를 끌끌 차셨다. 할아버지께서 꽤 상당한 토지를 소유하셨던, 소위 지주 출신이셨던 아버님의 입에서 예상 외의 말씀이 나왔던 것이다. 그처럼 합리적인 생각을 하시기도 하는 나의 아버님과 어머님이 언제나 이 뿌리 깊은 상처로부터 치유될 날이 올 수 있을는지, 얼마나 더 손꼽아 기다려야 할까나.   홍승권 위원은 현재 삼인출판사 부사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8 | hrights | 조회: 550 | 추천: 0
이제 방학이 며칠 남지 않았다. 개학을 하면 다시 아이들과의 생기 넘치는 교류(?)가 시작될 것이다. 기대이상 커져있을 아이들의 까무잡잡한 모습이 떠오르며 다가올 만남의 시간이 설레임으로 다가온다. 동시에 방학식날의 웃지 못 할 해프닝을 떠올리며 2학기에는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기대 반 걱정 반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본다. 다른 학교는 지난달 21일이 방학이었으나 본인이 소속된 학교(초등학교임)는 하루 앞당겨 20일에 방학을 시작했다. 이유는 개교기념일이 휴일과 겹쳐서 미리 부여된 휴일 중 하루가 남아 방학을 하루 앞당기게 된 것이다. 하루라는 시간은 사실 그리 긴 시간이 아니지만 남들보다 하루 일찍 시작된다는 것에 아이들도 괜스레 들뜬 분위기였고, 교사들은 그만큼의 업무를 서둘러 마쳐야하는 바쁜 시간이었다. 방학에 대한 안내와 성적표 배부, 담임교사가 어린이 하나하나에게 부여하는 특화된 과제 등 짧은 시간이지만 여러 가지의 업무로 교실 안은 그야말로 정신없이 북적대었다. 그러던 중 잠깐 모이라는 부장교사의 지시로 동학년 교사들끼리 모였다. 모인 자리에서의 이야기인즉, 수재민들을 위한 모금을 서울시 전체 교원, 학생들이 하는데 다른 학교는 내일이 방학이어서 오늘 예고하고 내일 모금하면 되는데 우리학교는 오늘이 방학이라 예고는 어려우니 그냥 현재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돈으로 모금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1반부터 시작해 마지막반까지 아이들을 줄을 세워 방송실로 내려오도록 해 모금운동에 참가하라는 것이었다.   ▲ 평창군 진부면 일대 가오교. 끊어진 다리가 복구되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있다. ⓒ2006 생태지평 오마이뉴스  어려움에 처한 수재민을 돕는다는 좋은 취지에는 당연히 공감했다. 그렇지만 방식에 대하여 몇 가지 문제제기를 하였다. 우선, 이것은 그동안 행한 교육의 일관성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학생들이 돈을 가지고 다니게 되면 간혹 발생하는 금품갈취 사건의 표적이 되기도 하고, 불량식품이나 사행성 게임에 사용하기 때문에 교사들은 평소에 학생들에게 돈을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꾸준히 지도해왔다. 그런데 갑자기 모금을 하겠다는 것은 교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학생들만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어서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모금하는 장면을 학교 방송을 통해 내보내는 것은 모금을 많이 하도록 독촉하는 것이고, 또 모금에 동참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학교의 여건상 어렵다면 비록 교육청의 협조 공문이 있다 하여도 학교장이 자율적 판단에 의해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도록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를 들어 교감선생님께 문제제기를 하였고, 더불어 좋은 취지를 살려 방학 중 학생들에게 수재민 돕기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하는 선에서 마치자고 했다. 그렇지만 이런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우리반은 이런 모금방식은 잘못된 것이라며 방송실에 내려가지 않았고 많은 교사들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행하였다는 후문을 들을 수 있었다. 학생들을 집으로 보내고 열린 교무회의에서 교장선생님의 발언은 다시 한 번 내게 실망을 안겨 주었다. 앞서 행해진 모금운동은 서울시 교육청에서 보낸 수재민 돕기 협조공문에 의한 것이고, 하루 앞당겨 방학에 들어가는 우리 학교로서는 비록 60여만 원의 성금을 내게 되었지만 모금운동 참여명단에 빠지지 않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라는 것이다. 서울의 1,200여개의 초중등학교의 학생들이 이 공문에 따라 움직였을 것이다. 물론 수재민을 돕기 위한 운동은 매우 훌륭한 것이고 될 수 있으면 모든 시민들이 함께 동참해야 할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이 모든 운동의 기본은 자발성이다. 그러나 이를 무시하고 어거지로 이행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도 않고 원칙에도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칫 누군가의 이름을 빛내기 위한 웃지 못 할 코미디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 멀지 않은 날, 거의 모든 학교들이 방학에 들어간 21일 저녁 뉴스 시간에 확인되었다. “수재의연금을 내주신 분들입니다. …… 000 서울시 교육감과 교사, 학생 1억원. (000 교육감의 커다란 사진과 이름, 또 모금액. 그에 반해 아주 작은 글씨의 교사, 학생이라는 글씨) …… 성금을 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아! 어제의 그것은 바로 오늘의 이것을 위한 해프닝이었구나!   황미선 위원은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8 | hrights | 조회: 571 | 추천: 0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이 자신의 악습을 버리고 새사람이 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얘기지요. 그런 반면에 자신의 죽음 앞에서 대부분 진실한 모습을 보입니다. 비밀스런 자신의 부끄러움도 드러내고, 인색한 마음을 버리고 나눔의 아름다움도 실천하고, 타인에게 상처 준 모든 잘못에 대해 용서를 청하기도 하며, 죄를 고백하고 세상과 화해를 이루어 나갑니다. 그래서 세상의 온갖 비밀도 다 알려지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내면의 변화입니다. 악에서 선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미움에서 사랑으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자존심과 체면, 욕심 때문에 자신의 악습을 잘 고치지 못하는 사람도, 타인의 진실한 모습 앞에서는 행복한 마음을 얻게 됩니다. 자신의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봉사와 나눔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접하면서 우리도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변하면 죽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변하면 세상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성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옳게 살던 자라도 그 옳은 길을 버리고 악하게 살다가 죽는다면 그것은 자기가 악하게 산 탓으로 죽는 것이다. 못된 행실을 하다가도 그 못된 행실을 털어버리고 돌아와서 바로 살면 그는 자기 목숨을 건지는 것이다. 두려운 생각으로, 거역하며 저지르던 모든 죄악을 버리고 돌아오기만 하면 죽지 않고 살리라.”(에제키엘 18, 26-28)  수레 가득 싣고 왔던 채소를 장에 내다 팔고 집으로 향하는 할머니들의 모습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이 땅에는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다양한 종교를 막론하고 인구보다 많은 것이 신앙인들입니다. 절대자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사랑의 실천과 나눔의 정신을 구현하여 공동선을 이루는 것이 거의 모든 종교의 공통된 신념입니다. 그래서 각 신앙인은 개인의 사리사욕을 없애고 세상의 불의와 맞서며, 약한 이들을 돌보고, 세상의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 땅의 정치, 경제, 사회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이들 중 7-80%이상이 신앙인들이기에 기대가 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는  당리당략,  집단 이기주의, 부정축재,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사람들의 희망을 앗아가고 상처를 주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남을 탓하기 전에 신앙인들이 먼저 변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나눔의 아름다움은 종교 행사에 참여할 때뿐이고 일상의 삶에서는 개인적인 욕심에만 사로잡혀 사는 어리석은 신앙인들 때문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없고 유치한 신앙인들만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도 부처님의 가르침도 세상에는 메아리로 사라져 갈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타인의 잘못을 비난하거나 흠집을 잡는 일에는 뒤지지 않은 것이 또한 믿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이 땅의 신앙인들에게 호소합니다. 당신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어떤 위치와 지위에서든, 어떤 갈등과 대립에서든, 정치 경제적 활동에서든) 진정 신앙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행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신 앞에 부끄럽지 않습니까? 진정 공동선에 이바지하고 있습니까? 거듭거듭 되묻고 성찰하면서 신앙인으로서 정체성을 지키지 못한다면 당신은 종교의 탈을 쓴 사기꾼입니다. 신앙인 정치인들에게 호소합니다. 민생법안이 더 이상 당리당략을 위한 협상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하늘 두려운 줄 알고 사람 귀한 줄 모르는 정치인은 권력에 눈먼 어리석은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 당신들은 말끝마다 ‘국민을 위한 일이고, 국민이 원한다고’ 말하지만, 누가 봐도 권력 유지를 위안 안아 무인한 모습뿐입니다. 그러니 신앙인인 당신부터 돌아서서 그러한 불의한 일에 동참하지 말고, 약하고 어려운 이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법을 만들고 사회의 공공복지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 주십시오. 신앙인 경제인들에게 호소합니다. 당신이 누리는 부는 당신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고의 결실임을 늘 감사하게 생각하십시오. 그래서 모두 내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어야 할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당신을 믿고 함께 일하는 근로자들에게 분배의 정의를 지키십시오.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삶의 개선을 위해 투자하십시오. 그래서 세상이 당신을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하게 하십시오. 그것이 신앙인 부자가 지녀야 할 참된 자세입니다.     사진출처 - 한겨레 노동운동을 이끌어가는 신앙인 지도자들에게 호소합니다. 당신들의 이기심 때문에 이 땅에 ‘노동귀족’이라는 말이 생기고 가난한 노동자들이 상처받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신념을 갖고 하는 일에 작은 기업의 노동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을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깊이 성찰하십시오. 뜻은 좋았는데 이제 욕심에 눈이 멀어 작은이들이 보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신앙에 눈이 먼 어리석은 신앙인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지 찾기 전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할 때입니다.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하늘 두려운 줄 알고 사람 귀한 줄 알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변화입니다. 수많은 신앙인들이 자신이 처한 다양한 삶 속에서 신앙인으로서 정체성인 사랑의 정신을 잃지 않고 산다면 진정한 변화의 삶을 사는 것이고, 그것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는 힘인 것입니다.   허윤진 위원은 현재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8 | hrights | 조회: 1589 | 추천: 0
“너 잘 할 수 있지?”, “예 할 수 있습니다”. 오사카도립체육관의 매트에서 일어나면서 코치님에게 대답했다.  한일전 아닌가? 나는 반드시 상대 선수를 이겨야 했다.  매트에 쓰러지면서 접질린 왼쪽 손목이 욱신거렸지만 일본선수에게 기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무언가 울컥하면서 저 녀석을 반드시 쓰러뜨리겠다는 생각이 솟아났다.  “하지메(시작)”라는 심판의 구호를 듣자마자 기합을 외치면서 맹렬히 상대방에게 돌진했다.  그러나 상대 선수의 도복깃을 잡자마자 왼쪽 손목의 통증이 느껴졌고, 나도 모르게 “악”하고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경기장에 대기중이던 의사선생님은 왼쪽 손목이 부러졌다는 진단을 내렸고, 경기는 중단되었다.  창피하고 분했다.  기권패였다.  관중석 한 쪽에서는 한복을 입은 조총련 누나들이 인공기를 흔들면서 “작살내라”는 응원구호를 열심히 외치고 있었다(민단에서도 응원을 나왔는데 다소 온건한 응원구호를 외쳤던 것 같다).  1987년 7월의 일이다. 그 때 나와 싸웠던 선수는 체중이 나보다 2배 가량 더 나가는 선수였다.  아무리 친선경기라고 하지만 불공정한 시합이었다.  역시 일본 사람들은 “야비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볼 때 그들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일본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우리 역시 불공정한 시합을 했던 것이다.  사정은 이렇다. 당시 한국과 일본이 친선유도경기를 하면 대부분 한국이 이겼다.  친선경기는 양쪽에서 20명씩 나와 시합을 하는 방식이 많았는데, 한국은 초등부에서는 17~18승, 중등부에서는 13~14승, 고등부에서는 11~12승 정도의 승리를 거두었다.  올림픽에서는 일본이 메달을 더 많이 따지만 학생들끼리의 친선시합에서는 한국이 이기는, 그것도 초등부에서는 압도적으로 승리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하지만 경기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 한국이 승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한국선수들의 기술이 훨씬 무시무시하기 때문이다.  체육특기자 위주로 스포츠계가 돌아가는 우리나라에서 어린 선수들은 기본기를 제대로 갖추기도 전에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한 이른바 ‘필살기’를 습득한다.  어린 선수들이 시합에서 “가위치기”(이름 그대로 가위질을 연상하면 된다.  도복깃을 옆으로 잡은 상태에서 한쪽 발은 상대방의 뒷발축을 다른 쪽 발은 상대방의 무릎 위를 거는 기술로서 부상이 자주 발생하므로 현재는 금지되었다)나 “태클”(축구의 태클과는 다르다.  고개를 숙여 상대방의 하복부를 파고 들면서 두 손으로 상대방의 오금을 잡아 당기는 기술이다)을 구사하는 것이다.  반면 일본 초등학교 선수들은 이러한 기술 자체를 모르는 듯했다.  그냥 서있다가 우리 선수들의 기술에 그대로 당하고 마는 것이다.  사정을 알고 보니 일본에서는 기본기 습득이 중요하다고 보아 가위치기나 태클과 같은 변칙기술은 초등학교 때는 전혀 가르치지 않았다.  더욱이 이러한 기술들은 너무나 위험하기 때문에 선수보호차원에서도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선수들이 위험한 기술을 구사하면서 대승을 거두자 일본에서는 체중 차이가 많이 나는 선수들끼리 대진표를 작성하는 꼼수를 썼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국 선수들의 화려한 가위치기도 일본의 꼼수도 아니다.  친선경기의 결과다.  우리 선수들은 초등학교 때는 일본을 압도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격차는 줄어든다.  초등학교 때는 그렇게 잘하던 우리 선수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일본을 겨우 이기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답은 여러분들이 아는 그대로다.  일본선수들은 기본에 충실하게 실력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FTA만이 우리가 살 길이라면서 의욕적으로 이를 추진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절박한 문제라고 한다.  FTA에 관한 전문지식이 없는 필자로서는 찬반양론 모두 일리는 있기에 뭐라 의견을 덧붙이기 어렵다.  다만 우리에게 한미FTA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아니 적어도 현 정부가 그만큼의 절박성을 갖고 추진해야 할 정책은 우리의 기본역량을 키우는 것 아닐까.  김민웅 교수가 한 인터넷언론의 칼럼에 기고한 것처럼 우리나라는 변변한 ‘외교사’책 하나 제대로 없는 나라이다.  요즘은 조금 사정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필자가 업으로 삼고 있는 법률분야 역시 아직도 많은 부분을 일본책에서 그대로 차용(우리나라에서는 ‘도용’의 순화된 표현이다)하는 경우가 많다.  노무현 정부가 남은 임기동안 정말 절박하게 추진해야 할 것은 주택시장의 공공성 확보, 교육의 공공성 강화, 인문학 등 기초학문 지원 등 너무나 기본적이라서 상투적으로 들리기 쉽지만 우리가 아직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이런 문제들 아닐까. p.s. 한일전에서 패한 후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손목이 부러진 상황에서도 일본 선수를 반드시 이기겠다고 투혼을 불태운 선수”라는 이야기가 펴져 나갔다.  그래서 많은 분들의 칭찬과 사랑을 듬뿍 받고 남은 일정을 마칠 수 있었다.  한일전의 매력은 바로 이런 것이다.   정 원 위원은 법무법인 지평 소속의 변호사로 활동중입니다.
2017-06-08 | hrights | 조회: 523 | 추천: 0
많은 사람에게 ‘행복한 삶’이란 매우 중요한 일이다. 2006년 자살률 세계 1위, 이혼율 세계 3위에 오른 대한민국. 구조조정으로 인한 고용불안과 소득격차 심화에 따른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는 현재 우리의 모습에서는 더욱 그렇다. 며칠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행복의 실체를 찾아가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모두들 경제력, 학업성적과 외모가 행복을 좌우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 40대 후반의 부유한 경제인과 그의 초등학교 동창들의 33년 전 졸업앨범, 생활기록부를 검토하고 현재 생활 만족도와 소득 등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를 분석한 결과 그들의 행복을 예언하는 중요한 자료를 발견할 수 있었다. 행복한 사람의 현재를 만들어낸 것은 과거 그들의 성적도, 외모도, IQ도 아닌 ‘정서적 안정성’이었다. 정서적 안정성은 일반적으로 화나 짜증을 자주 내지 않게 하고 행복감을 느끼게 만든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어린 시절 정서적 안정성이 높은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성인이 된 후 느끼게 되는 행복이 훨씬 더 크다고 한다. 그리고 유치원생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는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이해력, 업무수행력, 창의력 등이 훨씬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출처 - 동화작가 존 버닝햄의 작품, 헤럴드 생생뉴스 그러나 정작 정서적 안정성이 중요한 학창 시절의 ‘학교’에서는 학생들 모두에게 1등만을 강요하고 있다. 변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며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자식교육에 많은 부모들이 ‘올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모들이 자식교육에 모든 것을 거는 이유는 아마도 교육이 이 땅에서 신분상승과 행복을 얻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출세의 지름길이고 인생은 성적순, 출세는 대학순이며, 부정과 범죄를 통한 성취가 아닌 다음에야 이 사회에서 행복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사회의 모든 문제는 구조적인 모순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어서 교육문제 또한 부모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사실 모든 부모들, 아니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조금씩 변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들은 아이들이 유치원에 들어가기도 전에 공부의 늪 속에 아이들을 빠트린다. 2-3개가 넘는 학원인생이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된다. 대학 진학을 위한 10여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계절이 바뀌어 꽃이 피고 눈도 오건만 그런 것은 아랑곳할 여유조차 없다. ‘계절이 흐르는 게 공부와 무슨 관계란 말인가. 학생에게 있어 나아갈 바는 오로지 공부밖에 없다’는 시각만을 강요할 뿐이다. 부모들의 이런 강요에 아이들은 ‘친구들을 누르고 일류대학에 가는 것, 그것만이 나의 행복을 가능하게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부모들은 곧잘 교육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교육의 목표가 ‘인간’이 아닌 단지 ‘일류대학 입학’이라는데 문제가 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돌아서서 하는 행동은 너무도 다르다. 아이를 어떤 학원에 보낼지, 어떤 공부를 시킬지, 당장 학교에서 몇 등을 했는지만 관심을 갖는다.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이의 즐거움은 어디에 있는지는 관심도 없다(물론 전인교육을 실천하는 부모들도 많다). 자식 교육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속내의 흉물스러움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그런 자신을 드러내기 싫어서 이런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책임진다는 생각은 그만 버려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아이들 자신의 인생이 있다. 공부도 할 만큼 하면 되고, 되지 않는 것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지켜보는 미덕을 배우자. 사실 공부가 어디 쉬운 일인가? 오히려 공부만을 강요하는 부모들에게 자신은 학교 다닐 때 얼마나 공부를 잘 했는지 되묻고 싶다. 비록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래도 지금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잘 살고 있지 않은가. ‘공부하라’고만 닦달하지 말고 아이들의 성적을 독촉하지 말자. 잘되면 좋고 설사 안 되어도 또 다른 인생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 또한 충분히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작은 사회인 학교에서 아이들이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며, 친구들과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자기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게 하자. 그 것이 아이의 정서적 안정성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일이다. 부모의 욕심을 버리면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불광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8 | hrights | 조회: 541 | 추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