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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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이찬수(전 보훈교육연구원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김 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인권연대 주최 이번 교사인권강좌에서 강의를 마친 후 필자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맞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요? 인권교육이라는 것이 말은 그렇지만 과연 실제로 얼마나 실행되고 확산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라도 좀 강하게 맞서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취지의 질문을 받았었다. 그 때 필자는 선뜻, “이대로 가다가 교육은 결국 바닥을 칠 것입니다. 그리고 나면 더 나아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경찰이 쏘아 대는 물대포와는 상대가 안 될 것 같이 보이지만, 언제 젖는지도 모르게 온몸을 젖게 만드는 이슬비, 그런 이슬비가 결국 물대포보다 강하지 않을까요?”라고 답했었다. 이어서,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처럼 담쟁이들은 손에 손을 맞잡고 결국은 그 담을 넘지 않겠어요?”라고도 했다. 그 후 필자는 “그 답이 과연 충분한 답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 “바닥을 치는 것이 희망이기도 한 이유”와 “이슬비가 물대포보다 강한 이치”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싶다. 악화일로의 경제상황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서 우리는 가끔씩 “바닥을 쳤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우리는 그 말을 “이젠 더 나빠질 리는 없으니 조금이라도 좋아질 것”이라는 뜻으로 알아듣는다. 또한 살아오면서 가끔씩 끝 모를 절망이나 실패 혹은 슬럼프에 빠져들게 되면 우리는 “차라리 바닥을 빨리 쳤으면 좋겠다. 바닥을 치면 그땐 올라가는 일만 남지 않겠냐?”라고 생각한다. 정호승 시인은 <바닥에 대하여>라는 시에서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하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하며,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하며 그 시를 끝맺는다. 필자가 여기서 이해하는 ‘바닥까지 내려감’은 곧 ‘희망’이다. 새벽동이 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면, 가장 어두운 순간 바로 다음엔 곧 빛이 터져 나오는 거 아닌가? 역대 정권들이 하나같이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수많은 조치들을 발표하고 시행해오고 있지만 교육을 물속에 점점 깊이 빠뜨려 왔다면, 곧 ‘바닥’을 칠 것이고, 그리고는 수면 위를 향해 올라갈 차례가 아닐까? 인권을 무시하여 교육을 물속에 빠뜨렸다면 인권을 존중하는 방향, 인권이 교문을 넘어 학교 안에 확산되게 하는 방향이 곧 수면 위로의 방향일 것이다. 걸상과 허리가 맞지 않아 걸상에 허리를 맞추다가 수많은 학생들이 걸리게 되는 척추측만증, 학생이 안경 쓰는 것은 이미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게 된 안타까운 시력 희생, 초등학생에게까지도 성적이 떨어진 것을 유서 쓰고 투신할 만큼의 불효로 여기게 만드는 교육풍토와 가정교육, 명문대 합격을 위해 인권을 유보함은 당연하다는 식의 ‘입시독재’ 논리……. 더 이상은 내려갈 곳이 없음이 모두에게 자명해지고 있지 않은가? 하여, 교육은 이제 곧, 드디어, 바닥을 치고 오른다! 이것을 “바닥을 치는 것이 희망이기도 한 이유”라고 보는 것은 좀 궁색한가?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말도 우리는 가끔씩 듣는다. 필자는 문득, “무엇이 약한 것인가? 왜 약하다고 하는가? 약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강하기에 강한 것을 이기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오래 전에 읽었던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그 글을 풀어쓰자면, “사람의 숨은 약하기 짝이 없으나 갈비뼈를 들어올리고 내리는 것은 바로 그 약하기 짝이 없는 숨 아닌가?” 예전에 읽었던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글도 풀어쓰자면, “눈 오는 겨울 산에서 살면 흔히 나무들이 부러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 약하고 약한 눈송이들이 큰 가지들 위에 점점 쌓이면 그 무게를 못 이겨 키 큰 나무들이 통째로 부러진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물대포’와 ‘이슬비’는 어떤가?   지난 7월 29일 오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인근에서 점거 파업 중인 쌍용차 노조원에게 물을 전달하려는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을 경찰이 물대포를 쏘며 해산시키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물대포’로 비유되기엔 약할 만큼 이명박 정부의 공권력 남용 및 과잉진압은 많은 경우에 인명 피해로 이어지곤 한다. 작년의 촛불집회, 올해 초의 용산 참사,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쌍용 자동차 사태에 이르도록, 최루액과 경찰특공대 등을 갖춘 공권력은 이미 허용 정도를 넘어 정당성을 상실한 폭력으로 바뀌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7월 6일 천주교 마산교구 상남동 성당에서 제3차 전국사제시국기도회가 열렸다. 미사에 앞서 행한 연설에서 강기갑 의원(민주노동당)은 “박정희 대통령은 부마사태와 YH사건, 전두환은 박종철의 죽음 등을 겪으면서 무너졌는데, 정의구현사제단이 고문치사 은폐조작사건을 폭로하면서 6월 항쟁이 시작되었듯이, 이명박 정권은 새벽에 6명을 불태워죽이고서 3,000쪽의 조사기록을 밝히지 않으니 말로가 뻔하다.”고 말하면서 용산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은폐와 3,000쪽의 검찰조사기록 은폐가 묘하게 대응된다 싶다. ‘민주주의 회복과 인권·생명수호를 위해’ 봉헌되는 미사, 수많은 사제들과 신자들의 동참, 용산 참사 유가족들이 갖게 되는 정의와 희망의 연대감, 참사 후 반년이 지나도록 장례마저 못 치르고 있는 현실 속에서 신자, 비신자를 떠나 사람 마음 안에 자리 잡게 되는 정부에 대한 실망과 분노,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양심의 가책, 그러면서 서서히 배우지만 절실히 깨닫게 되는 ‘인권’의 소중함과 불가양도성, 민주주의에 대한 상실감과 목마름……. 이런 모든 것들은, 당장의 위력으로는 ‘물대포’에 비견할 수는 없겠지만, 서서히, 결국은 모두를 똑같이 적시는, 흔히 우산까지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만 홀딱 젖게 하는, ‘이슬비’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하여, 우리에게 남게 되는 것은 결국은 ‘희망’이다. ‘바닥’은 끝 모를 끝이 아니다. 시작일 뿐이다. 강하게 차고 오를수록 상승의 탄력이 붙을 것이다. 그리고 ‘이슬비’는 ‘물대포’를 이기리라. 결국에는 ‘물대포’를 쏘는 발사체인 대포도 녹슬게 만들리라. 약한 것은 약하지 않다. 약하게 보일 뿐이다. 지브란의 말처럼 “갈비뼈를 움직이는 것이 숨”이라면, 국가의 갈비뼈를 들어올렸다가 내려놓으면서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것은 국가가 강하게 훈련시킨 근육이 아니라 우리 시민들의 올곧은 ‘숨’, 곧, 혼과 의지와 꿈, 시민의식, 특히 인권의식 아닐까? 이것이 약할까?   김 녕 위원은 현재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358 | 추천: 0
황미선/ 인권연대 운영위원     교직 생활 20년이 넘으면서 매 해 경험하는 일이지만 해마다 담임을 맡게 되는 아이들이 모두 참 다르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같은 학년을 연이어서 담임을 하여도 아이들이 참 다른 것을 보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 속에 미세한 차이가 생활의 또 다른 재미(?)를 주는 것 같다. 올해는 내 교직생활에서 6번째로 2학년을 담임하게 되었다. 28명이라는 다소 경감된 학급 아동수를 내심 반갑게 생각하면서 '올해는 어떤 녀석들일까?' 하는 설렘과 두려움을 가지고 아이들과의 대면을 시작하였다. 사람과의 관계는 서로간의 눈빛에서 오고가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 의도를 가지고 아이들의 눈빛을 살피던 중 유난히 작은 체구에 교사의 눈빛을 갈구하는 아이가 있었다. 궁금한 것도 많고 질문도 많았으며 교사가 지시한 것에 대하여 항상 귀 기울이는 아이로 여느 아이들처럼 교사의 특별한 관심을 좋아했다. 그 아이에 대하여 처음 놀란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은 교사의 과제에 대하여 그 아이가 보인 반응이 나타났을 때였다. 평소 교사가 하는 말에는 집중력 있게 듣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 내용에 대한 이해도는 집중도에 비례하지 않았던 것이다. 수업시간에 교사가 설명을 한 후 그 내용을 이행해보라고 한 것에 대하여 본인이 원한 만큼의 결과가 도출되지 않자 얼굴이 빨갛게 되도록 울고 감정 조절이 안 되어 무릎을 꿇은 상태로 아이들 책상 주변을 빙빙 돌면서 소리를 지르더니 급기야 손톱으로 자신의 목덜미를 할퀴며 자해를 하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 아이를 붙잡고 일단 이상행동을 저지시켰다. 그리고 왜 그러는 지를 물어보았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른 과제 해결에 대하여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나타난 행동에 비해서 그 이유가 너무 단순해서 속으로 놀랐다. 일단 그럴 경우에는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당부하고 달래주었다. 그리고 학부모총회날 그 아이의 학부모로부터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부모는 맞벌이고 취학 전에는 할머니가 키워주셨으며 그때까지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고 학교 들어오고 나서 이상행동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1학년 담임선생님이 이런 이유로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워했다는 것과 그 이후로 놀이치료를 받아 현재에 이르는 중이라고 했다. 면담 후 그 아이에 대하여 좀 더 각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교사가 필요할 때에 언제든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앞자리에 앉도록 하여 세심하게 관찰을 하였으며 개인행동을 일지형태로 기록하였다. 보통의 아이들은 학교에서의 결과물을 통해 성취욕을 가지도록 지도하지만 이 아이는 반대였다. 성취욕이 너무 강하여 결과물에 대한 좌절감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큰 것이 문제였다. 과정에 대하여는 집중하지 못하고 결과에 대하여만 집착하여 원하는 만큼의 결과가 도출되지 않을 시에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감당할 수 없는 좌절감을 느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간다. 다만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결하고 조절해나가느냐가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이제 겨우 9살인 그 아이가 겪을 인생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 내용적으로 어렵지 않은 2학년 과정에 대하여 나타난 좌절감의 표현은 이후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해갈 학습량에 대하여 어떤 식으로 표출될 것인가? 그리고 경쟁만이 학력을 높일 것이라는 믿음아래 펼쳐지는 정책들은 그 아이에게 어떤 무게로 다가올 것인가? 우리는 행복을 인생의 목표로 알고 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과 그 과정은 달라도 누구나 행복을 느끼며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지금의 학교교육은 아이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일까? 교육을 받고 하나씩 깨우쳐가면서 누리는 기쁨은 이미 옛날이야기에 불과한 것일까? 다수의 아이들이 그렇지 않다면 지금의 교육이 지향하는 바를 좀 돌아봐야하지 않을까?   지난 3월 31일에 치러진 '교과학습 진단평가시험' 풍경, 초등학교 학생들이 칸막이를 세운 채 시험을 보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벌써 한학기가 지나 여름방학이다. 다음 학기가 지나면 그 아이는 한 학년 더 올라 갈 것이다. 더 많은 과제를 해결해야하고 한 단계 높은 수준의 학습내용을 감당해야하며 또 더 깊은 좌절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모두 알고 있다. 해마다 특별한 관심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어느 반이랄 것도 없이 모든 반에 그런 아이들이 있다. 다만 몇 명이 있느냐가 관심사이다. 경쟁을 통해서 1등만이 인정을 받고, 친구들을 이겨야만 내가 살며, 최고의 결과를 도출해야만 세상이 알아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렸을 때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 아이들이 소중하다고 말하면서 막상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데에는 과감하지 못하다. 우리 교육이 경쟁과 효율성만을 강조할 때 우리 아이들은 상처받고 좌절하고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잃어간다. 이는 어른들의 책임이다. 그리고 그런 아이는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많다. 비단 그 아이 한사람에 대한 것이라 치부하지말기를 바라며 교육에 대한 가치와 철학을 다시 생각해보고 그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하는가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황미선 위원은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356 | 추천: 0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저는 영혼이 없습니다.” 근래 들어 심심찮게 듣는 소리다. 간간이 들리던 이런 소리는 최근 그 어느 때보다 귓속은 물론 마음마저 심란하게 만든다. 대체로 공직에 있는, 특히나 검찰, 경찰, 국정원 등 힘깨나 쓰거나 목소리가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이 하나같이 자주 쓴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에 있음에도, 그 권력을 자신의 양심이나 원칙에 따라 쓰지 않고 ‘그 자리를 맡긴’ 누군가를 위해, 그 누군가의 ‘의지에 따라’ 쓸 따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의 말투에서는 하나같이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뜻이 언뜻언뜻 비친다. 분명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음에도 책임질 게 없다니…. 그래서 더욱 짜증스럽다. 이른바 공복(公僕)이라 불리는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절대적이든 상대적이든 그 자리를 부여하고 권력을 준 이는 다름 아닌 평범한 시민인 다수 대중인데 그들이 말하는 ‘누구’에서는 ‘주인’이 철저히 배재돼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적지 않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 스스로도 인식하거니와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영혼이 없다’니, 그런 이들을 세운 사람도 아마 ‘영혼’이 없든지 아니면 잠자고 있다는 소리로 들린다. 이러한 모습이 일반인들에게까지 번지다 보니 이른바 ‘높은 분’들을 모시고 있는 이들의 입에서도 “영혼이 없다”는 말이 습관적으로 나오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아니, 이제는 대놓고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형국이다. 한나라당이 지난 22일 전례없는 재표결에 대리투표 논란까지 일으키며 미디어법을 강행처리 하자 야당의원들이 '원천무효'를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이윤성 국회부의장이 산회를 선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신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몸소 당신의 숨까지 불어넣어 사람을 만드셨는데 그 사람들이 영혼이 없다고 스스로 떠들어대니…. 그런 말을 무슨 ‘위세’인 양 해대는 높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기가 찰 노릇이다. 그것도 잘 나가는 모 교회 장로나 집사 등으로 훌륭한 신앙인이라는 평판을 듣고 있는 이들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면 ‘불경죄’를 뛰어넘는 일이 아닌가 싶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Language is the house of Being)’고 했다. 말 속에 그 시대와 현실 삶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한 사람의 말은 그가 어디에 앉아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그런데 누가 우리 사회에 숱한 영혼이 없다는 이들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염치없고 분별력 없는 권력의 아집과 편견이 영혼 없는 이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장로 출신의 최고 위정자마저 국민적 합의보다는 굴종하는 모습을 바라기 때문에 영혼 없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영혼은 저절로 주어진 것이지만 고귀함을 간직한 영혼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혼이 없다고 말하기에 앞서 한 번이라도 자신이 지녔던 영혼의 시원을 돌아본다면 함부로 그런 말을 내뱉지는 못할 것이다. 영혼이 있는 이들을 보고 싶다. 하느님이 불어넣어 주신 숨이 다하기까지 자신의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가는 향기로운 영혼을 지닌 이들을 만나고 싶다.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 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466 | 추천: 0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지하철 6호선 응암역 근처에 작은 공원이 있다. 주 도심처럼 복잡하기야 할까마는 명색이 역세권이라 큰 아파트도 몇 동 있고 높게 지은 상가도 있으니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기엔 부족함이 없는 공간이다. 으레 역 주변이 그렇듯 과일이며 채소를 파는 승합차도 있고 낮술에 취한 노인네들 다투는 소리도 있고 근처에 있는 병원생활이 답답해 밖으로 나온 환자도 있다. 누군가 망해서 나간자리에 새 꿈을 안고 입주한 상가에서는 아치형 풍선 아래서 현란한 몸짓으로 가게를 홍보하는 아가씨들이 있고 앞으로 남학생들이 몇이 킥킥 웃으며 지나간다. 대형마트로 장 보러 가는 엄마는 솜사탕을 먹고 싶어 하는 아이의 손을 거부하지 못하고 리어카 앞에서 잠깐 실랑이를 하기도 한다. 다들 열심히 산다. “별일 없이 산다”고 “내가 이렇게 사는 줄 안다면 너는 깜짝 놀랄”거라고 노래하는 가수와 나를 빼놓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별일 있이 사는 것 같다. 그 공원에 또 별일 있이 사는 사람이 있다. 능글맞은 말투와 표정으로 지나치는 사람들의 행색까지도 살피며 “신문한번 보시라구”라는 말을 간첩 접선 시도하듯 전하는 신문 판촉 요원이 그이다. 내가 좋아하는 신문 이라면야 캔 커피라도 한잔 사주며 수고하신다고 맞장구치겠지만 그 양반 꼭 조중동만 판다. 처음에는 못 봤지만 그의 손에는 봉투가 들려져 있다. 바로 눈앞에서 봉투를 흔들면 가지런히 펼쳐진 배춧잎사귀 몇 장이 부채가 되어 무더운 여름날 그 맞기 힘들다는 돈바람 쐬어준다. 영 달갑지 않으니 시원할 까닭도 없다. 나야 그렇다 치고 동네 아줌마 몇 분 그사이에 홀딱 넘어간다. 이유야 어떻게 되었든 단돈 십 만원 변통하기도 어려운 요즘 세상에 언놈이 그와 같은 돈을 공짜로 하사한단 말인가. 그 정도 돈이면 두어 달 치 아이의 급식비를 낼 수 있고 매일같이 사달라고 졸라대는 아이의 메이커 신발값을 반쯤은 댈 수 있고 매월 말 한숨 쉬는 만큼 빠져나가는 공과금의 몇 분의 일쯤은 담당할 수 있으니 늘 빠듯한 규모의 삶을 사는 아줌마들에게 그 거부하기 어려운 유혹은 아이의 고사리 손에 쥐어준 솜사탕보다 더 달콤한 것이겠다. 그가 나에게 접근해 온다면 나는 단 한마디의 말로 불쾌한 흥정을 거부할 수 있다. “나 한겨레 보는 남자야!” 그러나 그와 나는 단한번의 대화도 하지 않았다. 그가 나의 정체를 알아 봤거나 내가 그를 에둘러 피해갔거나... 백화점 앞에서 한 일간지 판촉사원(모자쓴 이)이 뒤춤에 상품권이 담긴 봉투를 들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한겨레 기획위원인 홍세화 선생은 한겨레, 한겨레 21 구독신청서를 꼭 들고 다닌다. 최근에 새로 맡은 직책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인이니 구독신청 용지가 세장이다. 수없이 다니는 강좌의 말미에는 꼭 그 용지를 들이밀고 구독신청을 받는다. 풍부한 학식과 경험에 나오는 그의 열강에 감동한 사람들은 예의 선한 웃음과 함께 건네는 구독용지를 거부하지 못한다. 얼마 전 모 단체 후원 감사의 밤이 끝난 뒤풀이 자리에서도 그는 용지를 들고 테이블을 돌며 구독신청을 받고 있었다. 누가 봐도 진보적 일간지의 기획위원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잡지사의 편집인이며 더군다나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인 그가 해야 할일은 아니다. 시민사회 단체의 행사에 이름 새겨진 화환 좀 돌리고 열심히 하는 후배들 어깨나 도닥거리고 무슨 무슨 단체의 이사쯤으로 이름 올리고 회의는 바빠서 못가거나 일 년에 한번 얼굴 비추고 가끔씩 생기는 지면에 “요즘 세상이 어째...”류의 칼럼 몇 자 적으면 충분히 어르신 대접 받는 연배임에도 그는 여전히 현역 언론인으로 발품을 팔고 있다. 줄을 세우면 보이지도 않을 새카만 후배 언론인도 하지 못하는 그 험한 일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다. 그에게 구독신청서를 적어서 돌려주는 사람들의 표정도 모두 밝다. 기쁜 일 함께 나눠주어서 고맙다는 표정이다. 나도 그랬다 꽤 비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정기 구독을 신청하면서 나도 저분처럼 나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감사한 마음. “프랑스에 폴리틱스 라는 주간지가 있는데 말이지요. 그 사람들 독자 관리하는 게 우리와는 사뭇 달라요. 아주 질겨요. 자기들 밥줄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명확히 아는 거지요. 근데 질겨도 우리 조중동처럼 돈으로 처바르는 짓은 안 해요” 대학생 인권학교에서 만난 홍세화 선생이 우리 일행에게 잠깐 들려준 프랑스 잡지의 예는 무척 흥미로웠다. “폴리틱스”라는 잡지는 독자가 구독을 끊을 때 6번의 편지를 받는다고 한다. 정기구독 만료 2개월 전. 1개월 전에는“귀하의 구독기간은 언제 까지 입니다” 보름 전에는 “연장을 안 할 시에는 결호가 생깁니다.”구독이 끝나는 시점엔 “귀하에게 폴리틱스 라는 잡지가 더 이상 의미 없는 것입니까?”라는 다소 신파적 메시지가, 구독 만료 이후에도 2달치를 무료 공급하면서 다시 한 번 “아직 생각이 바뀌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동안 구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잡지는 광고를 실지 않는다고 한다. 순수한 독자들의 구독료로만 운영해야하니 독자 한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것이다. 구독료야 말로 잡지를 꾸려가는 사람들의 생계인 것이다. 어줍지만 나도 몇 장의 음반을 만들었다. 대학 강의도 하고 단체를 만들어 모금도 했다. 그러니 나의 밥줄은 음반을 구입해준 청자(廳者)들이고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부족하지 않게 해주니 대학에서 받는 월급의 근원은 학생들이다. 7억여 원이 넘는 모금에 참여해준 사람들 때문에 “에다가와 민족학교 지원모금”이라는 단체는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밥줄인 그 사람들에게 살갑게 다가가지 못했다. 음반 구입방법을 물어오는 이에게는 인터넷에서 대충 검색해 찾아오라는 말밖에 못했고 강의 내용의 새로운 부분들에 대한 학생의 의견을 무시했다. 공연이나 강연을 의뢰하는 이들을 까칠한 요구로 곤란하게 만들었으니 살아야할 인생의 절반을 넘긴 나이에도 나는 아직 내 밥줄에 대한 진정성이 부족한 것이다. 조중동 판촉요원의 불쾌한 유혹을 보면서 “한겨레”나 “경향“은 왜 안 되나? 싶을 때가 있다. 물론 그들이야 만 원짜리 몇 장의 호객행위로 신문시장을 왜곡시키지만 그럼에도 “별일 있이 사는”조중동 판촉요원인 그의 열심을 내가 선호하는 신문에게서 볼 수 없는 것은 무척 아쉬운 부분이다. “한겨레”나 “경향”같은 진보적 일간지의 모든 기자가 호주머니에서 정기구독 신청서를 꺼내는 장면을 상상한다. 이 정권 들어서 생긴 재정악화로 고민하는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의 가방에 수북히 모아둔 회원가입 신청서를 상상한다. 참 좋은 일이다. 나도 이참에 음반 몇 장씩 들고 다니며 여기저기 들이 밀까한다. 물론 홍세화 선생처럼 폼 나지는 않겠지만...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388 | 추천: 0
이재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명박 대통령은 유럽순방 중에 <유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0년간 막대한 돈을 지원했지만 그 돈이 핵무장에 이용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왜 해외언론에 이런 얘길 한 건지, 누구보고 들으라고 한 건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북한 핵실험이 몰고 온 파장이 크지만 그게 누구의 돈으로 한 건지가 핵심인가? 이란이 핵 개발을 하려한다고 해서 우리는 그게 누구 돈으로 했는지가 궁금한가? 아무리 밖에 나가서 한 말이라지만, 나가도 너무 나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핵무장에 이용됐다고 의혹이 일고 있는 그 막대한 돈은 대체 얼마나 될까? 국내 언론보도엔 막대한 돈이라고 전했지만 <유로뉴스> 홈페이지(www.euronews.net)에 실린 인터뷰 전문을 보면, ‘지난 10년간 이전 정부가 43억 유로를 지원했다’고 나와 있다. (현재 환율로 계산하면 7조8천억 원, 60억 달러정도다) 그러나 ‘핵개발에 이용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는 언급은 빠져있다. 단지 ‘북한을 개방하려는 발상이었지만 실패했다. 지금 북한은 핵무기를 갖고 있고 최소한 핵무기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나와 있을 뿐이다. (Previous South Korean administrations provided about 4.3 billion Euros of assistance to North Korea over the last ten years. The idea was to open up North Korea, but that did not work. Now they have nuclear arms – or, at least they are trying to make them.) 논란이 된 부분이 유로뉴스 측에서 뉴스가치가 없다고 판단해서 뺀 것인지, 아니면 청와대측의 요청으로 빠진 것인지는 확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언론 보도에 대해 청와대가 해명을 할 뿐 부정은 하지 않고 있으니 국내 언론이 보도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인 것 같다. 그렇다면 정부가 지원했다는 43억 유로의 실체는 무엇일까. 대통령이 언급한 43억 유로는 일부 언론이 정부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적이 있다. 대북 지원금이 최소 29억 달러이고 쌀 비료 등 현물까지 합치면 최대 69억 달러라고 하는데 이 금액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비용이 핵무장에 이용됐다는 의혹은 타당한 것인가. 69억 달러 가운데 쌀이나 비료를 가지고 핵을 개발할 수는 없는 것이니 빼고, 남는 현금은 29억 달러이다. 이 가운데 정상적인 남북교역 금액은 18억 4천만 달러이다. 무역거래를 한 것 가지고 핵무기 개발을 지원했다곤 할 수 없는 노릇이고 그러면 남는 건 11억 3천만 달러이다. 하지만 이 돈 가운데 9억 3천만 달러는 현대그룹이 대북사업을 독점한 대가로 지불한 금액이고 나머지 2억 달러도 개성공단 임금과 금강산 관광요금 등 민간 상거래 금액이다. 이것저것 다 빼고 ‘정부가 북한에 준 현금’은 3년 전 이산가족 화상상봉 때 컴퓨터 설치를 위해 지원한 40만 달러가 전부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40만 달러라는 막대한 돈을 가지고 핵무장을 했다는 건가? 40만 달러는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후하게 쳐도 5억 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기부한 3백여 억 원에 비하면 60분의 1도 아닌 금액이다. 이런 주장이 사실이라면 북한은 참으로 실용적인, 저비용 고효율의 핵개발을 한 셈이다. 세계 어느 나라가 40만 달러를 가지고 핵무장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계산하면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 핵개발 비용의 60배에 달하는 정말 어마어마한 돈을 사회에 환원한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기부가 다시 한 번 빛을 발하는 지점이다. 하지만 4대강 사업에 들어가는 22조의 돈에 비하면 여전히 ‘새 발의 피’이지만 말이다.       하여튼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그동안 저자거리에서나 돌던 이야기를 공식화 했다는데서 큰 파장을 가져왔다. 햇볕정책의 당사자들은 이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관계부터 잘못된 것이고 북한의 경제구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발언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결국 대통령 자신의 대북정책의 실패를 이전의 정부 탓으로 돌리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얼마든지 의혹을 가질 수 있는 문제’라며 여전히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또 ‘지금 우리가 이렇게 강하게 나오는 것은 결국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고 회담에 나오게 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제재나 견제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던 전략에서 이제 북한을 적극적으로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전략으로 선회했다는 얘긴가? 대통령의 진정성을 십분 이해한다고 해도, 과연 이렇게 강경발언을 쏟아낸다 해서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올지는 잘 모르겠다. 설사 대화의 장에 나온다 한든 어떤 얘길 할 건가. 왜 대북지원금으로 핵무장을 했는지 따질 건가? 아님 ‘가장 폐쇄된 사회의 지도자’를 어떻게 하면 잘 이해할 수 있는지를 놓고 대화할 것인가? 나로선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친분을 과시했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도 북한과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강경발언을 쏟아냈지만 그 강경발언으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진 못했다. 오히려 위기만 증폭시켰을 뿐이다. 부시를 비롯한 네오콘들의 대북강경정책이 이미 실패했고 결과적으로 북한으로 하여금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까지 이르게 했다는 사실에 대해선 왜 외면하려는 걸까. 이전 정부의 햇볕정책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건 자유지만, 지난 10년의 햇볕정책이 환상이었고 실패했다고 주장하고 싶으면 그 근거를 명확히 하고 국민들을 설득하길 바란다. 의혹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최소한의 사실관계는 확인하고 제기해야 할 것 아닌가. 또 대북강경정책이 어떻게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현재의 남북관계를 타파할 수 있는 전략인지 설득력 있는 논거를 내놓고 또 국민을 설득하길 간절히 바란다. 그게 소통의 기본 아닌가. 남북관계는 정확한 사실관계에 입각해서 판단하고 접근해야지 선입견은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이재상 위원은 현재 CBS방송국 PD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379 | 추천: 0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정부가 ‘대한늬우스’를 새로 제작해 극장에서 상영한다고 해 화제다. 우리가 어린 시절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볼 때면 꼭 거쳐야 하는 몇 가지 절차가 있었다. 우선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모두 일어나 국기에 대한 예의를 표해야 했고 그 시간이 끝나면 이어서 바로 그 ‘대한늬우스’가 상영되었다. 월남 파병 군인들을 환송하는 환송식, 반공 궐기대회 장면, 국제기능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에게 표창을 주는 대통령의 모습, 전국적인 쥐잡기 행사 같은 것들이 극장을 찾는 국민이 다 함께 보아야 하는 ‘늬우스’들이었다. 그 시절 곧 시작될 영화 속 환상의 세계를 가슴 터질 듯 기다리던 아이들에게 ‘대한늬우스’는 그저 빨리 지나갔으면 싶은 시간이었을 뿐이다. 영화보기를 좋아해 어지간히 자주 극장을 찾았던 나이지만 그 숱한 ‘대한늬우스’를 관심 있게 보았던 기억은 단 한 번도 없다.     이명박 정부가 새로 기획한 '대한늬우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내가 ‘대한늬우스’를 재미있게 보게 된 것은 오히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최근의 일이다. 요즘도 KTV같은 채널에서 과거의 ‘대한늬우스’ 필름을 더러 볼 수 있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우연찮게 과거에 제작된 ‘대한늬우스’ 필름을 보게 되면서 나는 이 낡은 흑백 필름이 뜻밖에도 꽤 재미있는 볼거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재미란 물론 어린 시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나 향수와 무관하지 않다. 그래, 그 시절엔 저렇게들 살았었지, 뭐 그런 거 말이다. 하지만 그런 아련한 향수보다 더 큰 것은 그 시절의 ‘늬우스’들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코미디였는지를 새삼 반추하는데서 오는 재미다. 생각해 보라. 쥐 잡는 날을 정해 전국적으로 쥐약을 배포하고 집집이 쥐덫을 놓아 쥐를 잡는 광경이나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따위 표어와 함께 가족계획 캠페인을 벌이는 장면, 반공 궐기 대회에 모인 군중 앞에서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며 혈서를 쓰는 아저씨들, 그리고 그 대열의 맨 앞에 서서 어깨띠를 두른 채 무표정하게 서 있는 명 연예인들의 모습이란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코미디인가. 그건 마치 요즘 가끔 TV에서 보여주는 60, 70년대의 한국 영화를 볼 때, 기둥을 붙잡고 우는 배우의 신파 연기를 보면서 낄낄 웃음이 터지는 것과도 비슷하다. 시대의 맥락이 바뀌면서 심각하고 진지한 비극이 배꼽 잡는 희극으로 뒤바뀌는 순간이다. 웃을 일 별로 없는 요즘 웃음이 필요한 분이라면 왕년의 ‘대한늬우스’를 한번 찾아보시라. 강추다. 정부가 새로 기획한 ‘대한늬우스’는 개그콘서트를 패러디한 코미디 형식이라고 한다. 그래도 과거와 같은 ‘진지한’ 뉴스 형식으론 안 먹히리라는 생각은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 대명한 21세기에 극장에서 정부 정책 홍보 영상을 틀겠다는 발상 자체가 기막힌 코미디라는 건 왜 생각을 못했을까. 코미디는 의외의 반전에서 최고의 웃음이 터지는 법이다. 대 놓고 코미디하겠다는 걸 보고 웃어줄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럴 바엔 차라리 수십 년 전의 진짜 ‘대한늬우스’처럼 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쥐잡기 캠페인 같은 거 한번 다시 해 보면 어떨까. 아마 사람들이 엄청 재미있어 할 게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407 | 추천: 0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주지하다시피 한국 내 주류 기독교는 보수적이다. 무언가를 ‘보전하고 지키는(保守)’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행위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무엇을 보전하고 지키느냐’에, 그 ‘보전하고 지키는’ 행위가 어떤 결과를 낳느냐에 있을 것이다. 이른바 ‘보수적’ 한국 기독교가 ‘보전하고 지키려는’ 것, 거기서 문제는 비롯되는 것이다. 일제 때만 하더라도 가톨릭과 개신교를 포함하여 기독교는 소수 종교였다. 어느 사회든 소수 집단이 사회 전체에 도전적이거나 그런 의미의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언가 힘이 생겼을 때, 하나의 권력이 되었을 때, 문제가 되어도 되기 마련인 것이다. 가령 일본의 기독교회도 상당히 보수적이지만, 워낙 소수이기에 사회적으로까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일본 기독교인 자신도 사회에 대한 특별한 목소리를 잘 내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 기독교(특히 개신교)의 경우는 특히 해방 후 미국 군정을 거치면서 힘을 얻어가기 시작했다. 미군정과 이승만의 자유당 시절 기독교적 목소리는 정치권 안에 직·간접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했다. 이승만 정권 당시 내각의 거의 절반가량은 기독교인이었으며, 1948년 5월 제헌의회 때는 이윤영 목사의 기도로 개회를 알렸고, 8월 15일 정부수립 선포식 때는 “하나님과 동포 앞에” 대통령 직무 수행을 선언하는 문서를 낭독하기도 했다. 기독교인이 전 국민의 5%에 못 미치던 1945년 미군정 당시 이미 크리스마스가 국가적 공휴일로 지정되었고, 1951년에는 군종제도도 생겼다. 물론 군종의 대다수는 목사 등 기독교인이었다. 남북 분단 후 ‘반공’으로 무장한 자유당 정권 시절 기독교는 정부의 반공 이념을 종교의 이름으로 뒷받침해주었다. 기독교 신앙과 반공은 거의 동일시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기독교는 반공을 국시로 하는 정부 이념 내지 권력에 가까운 종교가 되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미국은 6.25 전쟁 후 가난에 시달리던 한국인에게 주로 교회를 통해 물자를 지원함으로써, 교회에 나가면 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이미지도 각인시켜 놓았다. 이런 저런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에서 기독교는 권력과 앞선 문명의 ‘기호’처럼 받아들여져온 것이다. 그러다가 1970년대 급속한 경제 성장기에는 상대적으로 근대적이고 문명적인 이미지를 지닌 기독교회로 많은 이들이 몰려들었다. 농어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든, 마음 둘 곳 없던 70년대 도시 노동자들에게 교회는 불가피한 안식처가 되기도 했다. 전 세계에서 단일교회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순복음교회’ 등 대형 기독교회가 주로 이 시기에 대형화의 기초를 닦았다.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기에 적어도 양적 차원에서는 기독교가 한국 종교계의 주류 세력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1992년에는, 기독교인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청와대에서 예배를 보는 일도 생겼다. 청와대라는 공적 장소에서 개인적 종교 행위가 이루어지는 데 대한 문제의식을 갖는 이들도 많았지만, 그렇다고 정말 사회문제가 될 정도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본격적인 문제는 1990년대 후반 이후 기독교의 세력이 하향곡선을 그리면서 다시 생겨났다. 기독교의 성장세가 한풀 꺾이고 사회적으로 반기독교적인 흐름마저 조성되자, 보수 기독교 지도층은 교리적으로, 심리적으로 경직되는 현상을 보여주었다. 사회에 대한 좀 더 공격적인 선교를 통해 기독교의 양적 확장을 도모하려는 분위기가 커졌다. 기독교 장로였던 이명박 서울시장 재임 시절 보수 기독교 지도자들은 서울시장을 이용해 기독교의 세력을 확장하고자 했다.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서울시장이나 ‘포항 성시화’를 도모한 정장식 전 포항시장의 발언 등이 불교계를 자극하고 사회적 비판의 대상이 되었지만, 도리어 보수 기독교 지도자들은 힘을 모았고, 급기야 2007년 대선을 앞두고는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 그리고 이들의 도움으로 출범하게 된 현 정부는 태생적으로 보수 기독교 세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동시에 보수 기독교 지도자들은 현 정부의 출범을 기독교의 확대를 위한 호기로 간주하기도 했다. 대선을 전후해서 기독교인 공직자들에 의한 기독교 중심적, 종교 편향적 발언들이 유례없이 쏟아져 나오게 된 것도, 그동안 기독교가 세속 권력과 누려왔던 밀월 관계가 사회화하면서 드러난 힘을 배경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종교의 이름으로 ‘정치적’ 선택을 하기는 다른 종단들도 마찬가지이다. 사례는 많지만, 가톨릭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정국 와중에 가톨릭교회의 한 유력한 신부가 ‘그는 가톨릭 신앙을 실천한 이가 아니다, 냉담자였다, 더군다나 자살을 했다, 그런 이를 교회가 조문할 수는 없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한다. 가톨릭 신문은 한 때 가톨릭에서 ‘영세’를 하기도 했던 노무현 관련 기사를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1979년 가톨릭교회와 아무런 관계가 없던 박정희의 죽음은 크게 ‘애도’하면서 교회 차원에서 대대적인 추모 미사를 드렸던 전례에 비추어보면 이것도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당시 가톨릭신문 1979년 11월 4일자는 이 시국미사를 1면 톱기사로 보도했다) 결국 가톨릭교회도 시국 사건과 관련해서는 신앙적 판단보다는 정치적 판단에 따른 선택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종교적 선택도 결국 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거나 정치적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다. 힘없어서 고통당하고 아파하는 자, “우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울어주는”(로마서 12,15) 공감의 정신이 종교적 정서의 핵심이라는 사실은 잊어버리고 정치적으로 선별된 냉엄한 문자적 교리에 인간 내면의 양심을 내어 맡기기도 한다. 종교적 언행 속에 숨어있는 정치적 의도가 이럴 때는 상당히 불손하게 느껴진다. 기독교 장로였던 이명박 서울시장 재임 시절인 지난 2004년 5월 31일 새벽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청년·학생 연합기도회'에 참석, '서울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봉헌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출처 - 2004 기독교TV(www.cts.tv) 화면    이러한 현상에는 기본적으로 한국 기독교가 (넓은 의미에서는 가톨릭도 포함하여) 처한 사회적 차원의 위기 상황이 놓여있다. 주지하다시피 세속화한 근대 사회에서 종교는 개인적 자유와 양심의 영역 안에 있는 것이고, 정치 내지 세속 권력과 분리되는 것이었다. 물론 정치와 종교의 분리가 단지 근대적이기만 한 현상이거나 제도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종교의 탈권력화는 종교 본연의 문제이기도 하다. 붓다나 예수가 결코 세속 권력을 추구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겠거니와, 공적인 권력을 이용해 사적인 신앙의 확대를 도모하거나, 직접이든 간접이든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갈등과 충돌로 이어지며, 더 나아가 종교전쟁의 씨앗을 발아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수직적 전제 군주 시절이라면 모를까, 수평적 개인 사회에서 종교가 권력의 힘을 빌어 세를 확장하려는 것은, 그 종교의 내실이 빈곤해져가고 있음을 도리어 드러내는 일일뿐더러,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근대적 상황에서 보자면 자칫 대단히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는 행위인 것이다. 무엇보다 종교의 이름으로 타자를 억압하는 행위야말로 가장 반종교적인 행위라는 점에서 종교의 권력화는 늘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 내부적 차원의 문제에 가까운 것이다. 이른바 권력 내지 공적 영역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종교 편향 현상은 기존의 개인적 선교 방법으로는 더 이상 양적 확장이 어렵다는 것을 기독교도 자신이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선교가 한국 사회에서 한계에 부딪혔으니, 권력을 이용해서라도 양적 성장을 도모해보려는 의도의 반영인 셈이다. 하지만 기독교가 권력과 야합하는 현상은 이미 본대로 한국의 기독교가 내리막길로 들어섰다는 증거이자, 그것을 기독교 지도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그런 자세를 바꾸지 않는다면, 비슷한 상황을 지속해나간다면, 한국 기독교의 미래를 읽어내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기독교인으로 하여금 어떻게 해야 한국에서 기독교의 미래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인지 다시 돌아보게 해주는 사례들이 아닐 수 없다. 기독교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종교 편향 문제야말로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서 급격히 쇠퇴하느냐 한국적 종교로 거듭나는 마지막 기회를 잡을 수 있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음을 알려주는 시금석이 된다. 기독교가 기독교의 세 확장을 위해 권력을 이용하다 보면 마술사가 마술로 만든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게 되는 결과를 낳을 공산이 크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반종교적인 행위로 종교를 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 정부의 탄생에 일조한 기독교가 현 정부를 잡아먹는 호랑이가 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는 것이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종교문화연구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420 | 추천: 0
허윤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태국의 ‘단또’라는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9남매 중 다섯째 딸인 폰피몰은(오빠 3명, 언니 4명, 남동생 1명) 어머니(74세)와 함께 농사일을 도우며 생활했습니다.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외지로 떠난 형제자매들과는 달리 늙으신 어머니를 수발하며 성실히 사는 평범한 시골 아가씨였습니다. 그러다가 결혼중개업소를 통해 한국인 남편을 만났습니다. 잘사는 나라로 알려진 한국으로 시집갈 기회가 생긴 것이기에 가족들도 기뻐해 주었습니다. 결국 2004년 결혼이민자 여성으로서 한국에 왔습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결혼 중개업소를 통해 시집온 많은 외국인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은 많이 있습니다. 언어, 문화, 생활방식, 시댁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온전치 못한 남편과의 생활 등 그 어려움은 다양합니다. 다행히도 폰피몰은 남편과의 사이가 좋았고, 시어머니도 잘 대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폰피몰의 한국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가난을 벗어나고자 온 한국에서도 가난한 생활이 지속되었습니다. 남편이 일하는 양말 공장에서 함께 일하며 매달 겨우 50만 원 정도의 생활비를 받아 반지하방에서 살았습니다. 양말 공장 사장님은 남편의 둘째 형입니다. 제대로 된 월급을 요구할 수 없는 것도 정신연령이 낮은 남편의 능력으로는 단순한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보 같은 동생을 거두어 준 것 만으로도 고마운 형님이었습니다. 어려서 큰 병을 앓았던 남편은 초등학교 저학년의 정신연령밖에 되지 않아 의사소통과 부부관계 조차도 쉽지 않았습니다. 매일 남편의 일을 돕느라 한국말을 배울 기회조차 없었으니, 눈치껏 생활해야 하는 폰피몰의 한국생활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활고, 언어장벽, 남편의 장애 등의 어려움 속에서 결국 폰피몰 혼자서 한국생활을 적응해나가야 했습니다. 그래도 폰피몰은 의지가 강한 여인이었습니다. 한국으로 올 때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이겨내며 살겠다고 어머니에게 다짐도 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에 뼈를 묻을 각오로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착한 남편이 그녀에게 유일한 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부에게 큰 불행이 닥쳤습니다. 2007년 폰피몰이 위암판정을 받고 위의 75%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사실 2006년부터 배가 많이 아팠지만, 남편의 무지와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있었고, 시댁식구들도 음식이 맞지 않아 단순히 체한 것으로 여겨 적절한 치료를 제때에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병을 키워왔던 것입니다. 결국 저희 기관에 도움을 청해 왔을 때는 이미 완치가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당장의 위급함에 위절제술을 받았지만 뼈까지 전이된 암 때문에 결국 더 이상의 치료가 불가능하니 마음을 편하게 해주라는 의사의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폰피몰의 상태가 얼마나 위중한 것인지 남편이 잘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댁식구들도 암이라는 진단에 집안에 우환거리가 들어왔다며 냉대할 뿐이었습니다. 병상에 누워있는 폰피물 사진 출처 - 필자    결국 폰피몰은 2009년 2월 태국의 어머니 집으로 갔습니다.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때 고향의 가족들을 만나보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어쩌면 가족과의 마지막 만남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향에 가서 상태가 더 악화되는 바람에 돌아 올 수 없었습니다. 비행기를 탈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고 이제 걸을 수조차 없게 된 것입니다. 태국의 의사들 역시 이제 가망이 없고 편안히 죽음을 준비하도록 가족들이 배려하는 일만 남았다고 하였습니다. 폰피몰은 가슴 아래까지 마비가 된 상태로 병상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폰피몰이 남편을 보고 싶어 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하지만 시댁식구들은 남편의 태국방문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인지능력이 떨어져 안전상의 이유로 보낼 수 없다고 했지만, 실상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기관이 모든 재정지원을 하고, 저희 직원과 수녀님이 동행하겠다고 설득했습니다. 부부가 이제 마지막일지 모르는데 그래도 마지막으로 만남의 시간을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인간적인 설득을 계속하였습니다. 마침내 2009년 4월 24일에 태국선교사 1명과 다문화가정지원센터의 수녀 1명이 남편과 동행하여 4박 5일 동안 태국을 방문하여 폰피몰과 그의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남편은 이번에 가서 꼭 아내를 데려오겠다고 말합니다. 아내인 폰피몰이 얼마나 위독한지 잘 모르고 그저 다리가 아파 누워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빨리 다리가 나아서 한국으로 오라고 합니다. 폰피몰이 그러겠다고 말했지만, 이것이 이 부부의 마지막 만남이 되었습니다. 서로가 많이 부족하고 가난했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잘 해주었던 남편이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꼭 나아서 한국에서 남편하고 계속 살고 싶답니다. 그렇게 해서 한국에서 죽고 싶다고 눈물짓는 모습이 생생합니다. 그래도 어려움과 아픔보다는 착한 남편과의 좋은 추억만을 이야기해 주는 폰피몰이 고맙게 여겨졌습니다.     남편의 위로를 받는 폰피물 사진 출처 - 필자    그로부터 일주일 후 폰피몰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남편이 함께 하지 못했지만 먼 길을 찾아와준 고마운 남편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안식을 누리길 기원했습니다. 병고만 아니었어도 폰피몰의 의지와 착한 남편의 마음으로 행복하게 사는 다문화가정이 되었을 텐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10여만 명이 넘어가는 결혼이민자 여성이 우리의 이웃으로 살아가며 한국인 엄마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웃으로 함께 하며 살아가는 그들이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허윤진 위원은 현재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506 | 추천: 0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기고 간 숙제를 푸느라 사회 각계에서 말들이 많다. 이 많은 말들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기를 빌며 숟가락 하나 얹어야겠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가장 책임이 큰 집단으로 검찰과 언론이 거론되고 있다. 두 집단의 공통적인 특성이라 할 수 있는 하이에나 근성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고 할까. 스스로 몸담고 있는 업역에 대해 심하게 말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차제에 검찰과 언론이 정명(正名)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주지하다시피 검찰과 언론은 공생 관계다. 검찰은 언론을 이용해 여론을 유리하게 조성하고 언론은 뉴스 소스를 얻는다. 사실 검찰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정부 기관 또는 기업들이 언론을 이용한다. 그렇다면 왜 검찰과의 관계가 유독 문제인가.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언론이 스스로의 가치와 원칙에 따라 통제할 수 없게 된다. 특종 혹은 단독 보도에 대한 욕심, 속보경쟁 때문이다. 누구누구를 무슨 혐의로 소환할 계획이라는 기사는 전체 브리핑 형태보다는 특정 언론의 단독보도로 세상에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 공식 브리핑을 하기에 부담스러운 사안일 경우 검찰은 이런 식으로 특정 언론사에 정보를 흘린다. 낙종한 언론사들은 사실 확인에 바쁘고, 반까이(‘만회’를 뜻하는 언론계 은어)를 하려고 열을 올린다.    언론들이 마차를 끄는 말이라면 검찰은 뒤에 앉아 고삐를 쥐고 있는 마부다. 진행 방향과 속도는 전적으로 검찰이 좌우한다. 검찰이 프레임을 짜는 것이다. 아젠다 세팅을 언론이 아니라 검찰이 하게 된다. 프레임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 한 검찰의 브리핑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및 가족에 대한 수사가 대표적이다. 검찰의 수사망이 노무현 본인을 향해 점점 죄어오고, 언론사들의 경쟁이 이미 시작된 상황에서, 이 수사는 정치적인 수사니까 나는 물먹어도 돼, 라고 생각하는 기자는 이 세상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데스크도 없을 것이다. 지난 주 한겨레신문은 이례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된 자사의 검찰 발 기사를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다. 이런 자기비판은 사실 한겨레신문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언론사 차원에서 원칙과 기준을 세우고 대응해야 하는 문제다. 일개 기자들이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한겨레의 검찰 출입 기자들은 억울할 것이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똑같이 취재하고 기사를 썼을 것이다. 지난 5월 30일 오후 3시 홍만표 대검수사기획관이 대검청사별관에 마련된 임시기자실에서 노무현 전대통령수사와 관련 브리핑을 하고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한겨레는 자기비판과 함께 검찰 위주에서 법원 위주로 보도의 중심을 옮기거나 적어도 검찰의 기소 전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는 내용의 대안 기사를 썼다. 그러면서 한 언론사라도 앞장섰으면 한다고 썼다. 그렇다면 그 언론사는 당연히 한겨레신문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언론계에서 촌지 문화를 뿌리 뽑는데 선봉이 되었던 한겨레가, 모든 언론사가 권력에 굴종하던 시절 과감히 성역을 깨는 보도를 했던 한겨레가 앞장서야 한다. 검찰 발 기사를 두고 언론끼리 벌이는 특종 경쟁은 업계 용어로 이른바 ‘시간차 특종’이다. 몇 시간이나 늦어도 하루가 지나면 모두가 알게 되는 내용이다. 검찰의 입에서 나온 정보이기 때문에 검찰 말고는 검증할 방법도 없다. 이 불안한 특종을 향한 경쟁이 역으로 검찰의 권력을 이렇게 비대하게 만든 일등공신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몇 가지 실무적인 문제들이 남는다. 검찰은 고급 정보가 모이는 곳이다. 기자들은 기사를 매개로 검사와 접촉하고 정보를 얻는다. 때로는 기자가 정보 생산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기사를 포기한다는 것은 정보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런 류의 정보를 고급 정보로 보고 계속 좇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세심한 논의가 필요하다. 난감한 문제가 있기는 하다. 언론의 취재 활동을 감시 활동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다. 이런 측면이 분명히 있다. 만약 검찰이 여당이나 청와대의 비리 혐의에 대해 단서를 잡고도 적극적으로 수사를 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일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개연성 또한 높다. 수사를 하지 않다가도 언론 보도에 따라 마지못해 수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쉽게 결론 낼 성질의 주제는 아니지만, 좀 과격하게 말하면, 그런 정보들은 대개 해당 기관 밖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내가 검찰 출입을 한 적이 없어서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경험상으로 보면, 검찰도 비슷할 것이다. 검찰 발 기사를 포기하는데 장애물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얘기다.    또 하나, 그럼 검찰 출입 기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기자들이 정보를 얻기 위해 검사 방에 드나들기보다는 재판정에 갔으면 한다. 순진한 이야기라고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서민들이 법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하고 주눅이 드는지 기자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서 많은 기사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누구를 (자리에서) 날리거나 하는 특종을 하지 못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사람을 살리고, 잘못된 사회 시스템을 바로 잡는 특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편집국장을 비롯한 책임자들이 나쁜 특종에의 유혹을 떨쳐 버리고, 낙종의 민망함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차별화된 언론을 향한 첫걸음이 될 수도 있다. 모든 특종 경쟁이 나쁘다는 주장이 아니다. 빨리 쓰고 먼저 쓰는 건 언론사의 1차적 존재 이유다. 그러나 검찰 발 기사에 관한 한 과도기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는 인권 보호 차원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이자 우리 사회 권력구조를 정상화하는 첫 단추에 해당하는 과제다. 어떤 국회의원이 몇 천만 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다는 기사가 더 이상 특종이 아니게 될 때(아무도 기사를 베껴 쓰지 않으면 특종이 아니게 된다) 비로소 검찰 중심의 법조 보도는 다른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검찰에 쏠린 과도한 권력도 제자리를 찾으리라고 본다.    이런 주장은 내가 신문사 안에서 몇 년 전부터 해오던 것이다. 공식적으로 글을 발표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꽤 많은 동료들에게 이런 문제의식을 전한 바 있다. 그러나 결정할 수 있는 자리에 계신 분들에겐 미처 말씀드리지 못한 얘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나에게도 용기를 줬나 보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413 | 추천: 1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경찰이 연일 몸개그와 말개그를 쏟아내고 있다. 개그콘서트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추모 민심이 집중되고 있는 대한문 앞 분향소와 서울광장에서다. 제2의 촛불시위를 제일 두려워했을 것이다. 시민들에 의해 차려진 대한문 앞 분향소를 찾는 기나긴 추모 인파 속에서 불법폭력집회시위를 획책하는 시위꾼들을 발본색원하고자 했을 것이 틀림없다. MB식 법치 이후 지난해 촛불시위 강경진압, 지난 1월 용산 철거민 참사, 대전 화물연대 집회시위로 인한 국가브랜드 손상 발언, 집회 원천봉쇄, 도심 집회금지와 같은 사건들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집회시위의 자유를 탄압했다. 제2의 촛불시위를 치르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서울광장 원천봉쇄와 대한문 앞 분향소 차벽설치라고 믿었다. 경찰버스를 동원해 서울광장을 봉쇄하고, 시민분향소가 차려진 대한문 앞 도로에 차벽을 설치하여 시위꾼들의 진입을 막으면, 국민 여론이 MB 경찰의 몸개그를 지지하고 나올 것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지나친 ‘과잉충성’ 몸개그를 선보였나보다. 반응이 썰렁하다 못해 MB식 법치에 도움은커녕 오히려 역효과만 낳았다. 국민들의 크나큰 분노만 샀다. 이때 작렬한 말개그다. “경찰버스가 분향소를 막아주니까 오히려 아늑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부끄러운 체면을 가리는 썰렁 개그다. 2009년 5월 30일 새벽 ‘서울광장 재봉쇄’와 ‘대한문 앞 분향소 강제철거’ 작전에서 보여준 것처럼 전경들의 너무나 지나친 살신성인의 몸개그로 분향소를 부수고 짓밟아버리고 추모객을 잔인하게 강제해산하는 바람에 더욱 수습하기 어려운 후폭풍을 가져다주었다. “작전지역 반경을 조금 벗어난 일부 의경들이 그런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대한문 앞 분향소 강제철거에 대한 서울지방경찰청장의 해명 멘트다. 백주 대낮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거짓말이다. 경찰을 풍자하는 노래 가사 내용에도 정신을 놓아버린 듯 너무나 민감하게 반응해서 체면을 완전히 구겨버렸다. “인도에 서 있다고 연행하는 나라, 경찰이 집창촌을 운영하는 나라, 경찰이 민간인을 폭행하는 나라, 인터넷에 글 썼다고 구속하는 나라, 경찰이 강도질에 살인하는 나라”, "돌아와요 민중의 지팡이로, 국민의 안전과 생명보호, 멋있는 민중의 지팡이 기대해요" 등의 노래 가사 내용이 경찰의 명예를 훼손하고 국가 공권력을 무력화할 우려가 있다고 그 음반 제작 및 유통금지 가처분을 신청하였다가 보기 좋게 법원에 의해 기각 당하였다. 민사 가처분 신청과 함께 노래 가사 내용이 허위사실이라며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경찰이 피해자로 고소를 하고 경찰에서 이를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하니 이쯤 되면 공권력의 횡포가 도가 지나쳐 그로 인한 인권침해가 가혹하기 이를 데 없다. 지난 5월 30일 새벽 5시20분경 경찰이 서울 덕수궁 앞에 마련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분향소를 침탈해 노 전 대통령 영정을 모셨던 천막 등이 짓밟혀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과잉충성’에 경찰의 꼴이 말이 아니다. 명예와 위신을 아예 내던져 버린 듯하다.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는 탓일 게다. 궤변을 늘어놓기 십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민심에 화들짝 놀라 버린 경찰의 모습에서 좀체 공권력의 품위를 찾아볼 수가 없다. “이쯤 되면 막하자는 거지요?”, 민심을 알지 못하는, 체면 없는 경찰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경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서울광장을 재봉쇄했고 분향소 강제철거를 자행하였다. 몰락해가고 있는 식물 정권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 공권력을 틀어쥐고 매달려서 국민들을 위협해 보려고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든지 파탄의 구렁덩이에서 살아남으려는 절망적 몸부림이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최후의 발악에 지나지 않는다. 체면을 헌신짝처럼 내던져 버린 공권력의 국민에 대한 불법적, 강압적 공포조성과 인권침해로 우리의 민주주의 앞길에는 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부당한 공권력의 횡포에 맞서는 게 쉽지는 않다. 설사 핍박을 받더라도 우리 조상들과 우리들이 피땀 흘려 지키고 가꾸어 온 민주주의는 우리들의 단합된 힘으로 더욱 발전되고 완성될 것이다. 민심은 서민을 배반하고 특권층을 대변하는 정권에 대한 불복종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민심의 거듭되는 경고를 외면하고 일방 독주한다면 민심은 촛불이 되어 정권을 철저히 심판할 것이다. 국민주권의 민주국가에서 국민은, 마치 투우사가 미친 듯이 날뛰다 힘이 빠져가는 투우의 숨통을 끊어 놓는 것과 마찬가지로, 날로 체면을 있는 대로 구기다가 겁에 질려 최후의 발악을 시도하는 부당한 공권력을 단숨에 쓰러뜨릴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경찰은 민심에 역행하여 일방 독주하는 정권의 공안탄압과 인권탄압의 하수인으로 전락할 것인가, 민심을 거스르지 않고 국민의 편에 서서 멋있는 민중의 지팡이가 되어 MB식 법치의 미명 아래 추락하고 손상된 공권력의 체면과 위신을 바로 세울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역사는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저항권이야말로 국민을 숨죽이게 만들었던 그 어떤 독재 권력의 칼보다도 더 무섭고 강하다는 것을 똑똑히 증명하여 왔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370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