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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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이찬수(전 보훈교육연구원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정 원/ 인권연대 운영위원 굴곡 많은 우리 역사는 법관에게 힘겨운 과제를 부여해 왔다. 위헌적인 실정법은 법관에게 합헌적인 판결이 성립할 수 있는 재량의 여지를 박탈했다. 1950년 6월 25일 이승만 대통령은 피난 중에 우리 헌법상 최초의 대통령 긴급명령 제1호를 발한다. “비상사태하의범죄처벌에관한특별조치령”이 그것이다. 전쟁이라는 극도의 비상사태(“비상사태라함은 단기4283년6월25일 배한괴뢰집단의 침구에 인하여 발생한 사태를 칭한다. 특별조치령 제2조)를 감안하더라도 엄청난 중형(重刑)이 규정되어 있다. 절도나 손괴(損壞) 행위만 저질러도 사형,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며, “정보제공, 안내, 기타의 방법”으로 위와 같은 행위를 도우면 마찬가지로 처벌된다. 더욱이 재판은 한 번으로 종결되며(單審制), 판결을 하면서 증거설명을 생략할 수 있다. 위헌적인 법령이었다. 더 큰 문제는 위 긴급명령이 자의적으로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서울을 수복한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군을 격파하고 있다는 대통령 담화를 신뢰한 채 피난 시기를 놓친 국민들을 ‘부역행위자’로 매도하며 특별조치령에 따라 처단하였다. 그러나 모든 법관이 실정법에 따라 재판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서울지방법원 판사였던 유병진은 여러 가지 구실을 달아 무죄를 선고한다. “부역을 하여서는 안 된다고 하기보다는 부역을 할 환경을 만들어주지 말라. 일단 후퇴할 때라도 국민을 속이지 말고 피난할 여유를 주라” 유병진 판사가 그의 저서 ‘재판관의 고민’에서 밝힌 생각이다. 위헌적인 실정법을 적용해야 하는 상황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유신시대 박정희 대통령은 ‘긴급조치’라는 초헌법적 위헌 조치를 쏟아냈고 다수의 법관은 실정법에 따라 재판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사실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악법도 법이다”를 권위주의 정부가 ‘도덕’과 ‘윤리’시간에 지속적으로 교육해 온 배경이 여기에 있다. 최근 법원은 일련의 사건들에서 실정법을 준수한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도 검찰(‘일부 검찰’이겠지만 검사동일체 원칙상 ‘검찰’이라고만 한다)과 일부 세력은 색깔론을 제기하며 법원의 좌경화를 성토하고 있다. 그러나 미네르바 사건, KBS 정연주 사장 사건, PD수첩 사건들에 관한 법원의 판단은 지극히 정상적일 뿐 반대진영이 주장하는 좌경이나 진보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가 롤모델(role model)로 삼는 ‘선진국’ 법원은 동일한 판단을 내릴 것이 확실하다(다만 선진국 판사들은 우리 같이 대단한 검찰 동료가 없기에 이런 사건들을 해 볼 기회가 없을 것이다).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에 관하여 우리사회가 1987년 이후 20년 이상 묵묵히 이룩한 성과이다. 법원 모습 사진 출처 - 노컷뉴스 하지만 정말 주목해야 할 것은 강기갑 의원에 대한 공무집행방해 사건의 판결이다. 변호사 단체까지 나서 판결의 법리적 오류를 지적하고 있으나, 이러한 주장은 과거 긴급조치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던 때의 사고방식에서 조금도 전진하고 있지 못하다. 담당판사가 어떠한 고민의 결과 무죄라는 결론에 이르렀는지에 대하여 제대로 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 검찰이 법리를 무시한 엉터리 판결이라고 엄청난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것을 보면 기소 자체의 정당성에 대하여는 추호의 의심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사건이 과연 이른바 ‘선진국’에서는 기소될 수 있는 것이었을까. 다수의 정상적인 국가들은 우리처럼 검찰에 무제한의 기소재량을 주지 않는다. 대배심(grand jury)과 같이 시민이 기소 여부를 판단하도록 보장하기도 하고, 사전에 판사의 예비심사를 거치도록 하기도 한다. 이러한 제도가 없는 우리의 경우 검찰은 기소 재량을 신중히 행사해야 함이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 검찰은 그러하지 못하였다. 자신의 재량을 강자(强者)의 논리에 충실하게 행사했다. 권력자의 범죄에 대하여 ‘성공한 내란은 처벌할 수 없다’며 칼을 거둔 것이 대표적이다. 강기갑 의원 사건의 경우 국회의 자율권을 고려해 가능한 공소권을 발동하지 않는 방향으로 검찰권을 행사할 재량이 충분히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검찰의 불기소가 국회의 문제는 국회의 자율로 해결하도록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공무집행방해’라는 지극히 협소한 측면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행위에 이르게 된 파행적인 국회 운영을 방지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었던 것이다. 우리 법원은 전통적인 기본권 분야에 있어서는 상당히 성숙한 판결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용산 사태에서 극명히 드러난 것처럼 생존권이라든지, 난민(難民) 지위 인정과 같은 사회적 기본권 분야에 대하여는 아직까지 기본적인 실정법 차원의 고민에서 맴돌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대기업 총수 등 경제적 강자에 대한 관대한 판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최근 두드러지는 법원의 ‘부경화’(富傾化)’ 현상이다. 2010년 법관이 고민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정 원 위원은 변호사로 활동중입니다.
2017-07-13 | hrights | 조회: 415 | 추천: 0
홍승권/ 인권연대 운영위원 1년 가까이 장례도 치르지 못하던 억울한 원혼들의, 시커멓게 그을리고 뒤틀린 육신을 마침내 땅속에 안장시키는 장례가 지난 주말에 있었습니다. 이미 떠난 지 오랜 그 몸을 비로소 땅에 뉘었으니, 비록 뒤늦은 일이지만, 원혼들과 유족들을 위해서는 그나마 다행입니다. 장례식 날, 서울역에서부터 용산 남일당 앞까지 무장한 경찰들이 잔뜩 진을 치고 있어 과연 이 장례가 소위 정부와의 합의 아래 치러지는 것인지 의문스러웠습니다. 저들이 이건희 단독 사면이나 세종시 원안 수정 강행 등을 위해, 마음에도 없는 ‘합의’니 ‘타결’ 뉴스로 여론을 어르려고 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돌아가신 분들이며 상주의 처지를 생각할 때 해도해도 너무한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희 사면의 예에서 보듯이 가진 자들에게는 한없이 ‘프렌들리’한 이명박 정부는 정말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끝끝내 가혹하군요. 저들이 진정 국민을 섬기며 국가를 경영하겠다고 나선 무리인지, 또 다시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찰의 진압 교본에도 없는 상식 이하의 ‘대국민 전투’로 국민을 살상하고서도 아직까지 경찰 간부 중에서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는 이가 없는 채로, 또 진상 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 피해자들인 철거민들이 거꾸로 감옥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 뒤집어지지 않는 한, 그리고 이런 식의 재개발로 이 같은 비극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게 제도를 보완하지 않는 한, 이번 장례로 용산참사(백기완 선생께서는 참사가 아니라 ‘학살’이라고 하셨지요!)가 일단락되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이제 유족들은 오랜, 길에서의 생활을 접고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집안 살림을 돌보아야 하겠지만, 우리에겐 원혼들의 피맺힌 바람을 기필코 이루어내야 할 책무가 새삼 지워진 셈입니다. 돌이켜보면, 남일당 그 자리에 나와 내 형제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억울한 상황과 죽음을 내 일처럼 관심을 가지고 함께한 사람은 그야말로 소수였습니다. 문정현 신부님을 비롯한 천주교 사제들과 송경동 시인을 필두로 한 문화예술인들, 그리고 이름 없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들…. 참사 355일 만에 열린 ‘용산참사 장례식’을 마친 유족과 시민 3000여명이 지난 1월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앞에서 노제를 열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율법사가 ‘내 이웃’이 누구냐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다들 강도를 만난 이를 못 본 척 피해 가는데, 사회로부터 따돌림 당하던 한 사마리아 사람이 곤경에 처한 그 사람을 기꺼운 마음으로 돌보아 주었고 곧 이러한 사람이 이웃이라고 예수는 가르쳐 줍니다. 이웃 사랑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모르는 체하는 것이 아니라 아는 체하는 것이라고, 이렇게 분명하게 성경에 나와 있건만, 한국 사회에서 이천만 명이나 된다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도대체 예수님 말씀을 어디에다 감춰놓고 교회를 다니는 걸까요? 하기사 그 예수님을 따른다는 교회에서도 웃어른인 장로라는 자가 전과 14범의 몸으로 파렴치한 거짓을 일삼으며 거뜬히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또 대통령 자리에 오르고 나서는 입으로는 법치와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서민을 위한다고 강조하면서 하는 일마다 그와 정반대이니, 새삼 더 할 말이 있겠습니까. 요즘 이 정권이 하는 짓을 보면,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래 이처럼 우리 말과 글이 본디의 뜻과 완전히 다른 뜻으로 쓰인 예가 또 언제 있었을까 싶습니다. 어쨌거나 용산참사의 원인을 되짚어보면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 모두가 자유롭지 못한 것이 분명합니다. 국민들이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것에서부터, 왠만한 정치인이나 언론 할 것 없이 끊임없는 성장과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고 되뇌는 현실을 보면 우리 모두 경제발전과 돈 되는 것에 환장한 속물이고 그런 연유로 오늘날과 같은 비극이 벌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라도 돈이 주인행세 하는 지금의 세상 이치나 논리를 무시해 버리고 좀더 자유롭게 살 여지는 없는 걸까요? 2010년 올해는 지방선거와 교육감선거 등 굵직한 현안들이 있습니다. 그동안의 이명박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가 될 이 소중한 선거를 통해, 국정 운영에 대해 개념도 없고 거짓말투성이에 몰상식한 저들에게서 권력을 되돌려 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하여 이 정권이 오로지 가진 자들의 편에 서서 국정을 농단하는 일이 더는 없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사는 동네에선 5년 전부터 지역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은평시민신문’이라는 인터넷판 지역신문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동안 이 신문을 통해 구청과 구의회가 얼마나 전근대적이고 형편없이 돌아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귀한 지역신문이 드디어 지난 연말부터 종이 신문을 발행하기 시작해, 앞으로는 더욱 많은 지역 구민들에게 구의 소식들을 좀더 상세히 잘 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작은 일들이 우리의 일상과 환경을 조금씩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얼마쯤 낙관하는 전망을 펴 봅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힘을 내 열심히 살아 볼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홍승권 위원은 현재 삼인출판사 부사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13 | hrights | 조회: 329 | 추천: 0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개인적으로 술을 푸는 날이 많았던 해다. 올 초 새해 계획부터가 영 글러먹었다. 올 한해만 마무리하면 10년 변호사 생활을 꽉 채웠기에 무작정 변호사 일을 쉬겠다고 결심했다. 아무런 구체적 대안도 없었다. 변화도 발전도 없는 사무실의 답보상태에 스스로 지쳐버렸다. 정체를 극복할 힘도, 자신감도 원천적으로 샘솟지 않는 데 자신을 가두어 두는 것이 참으로 답답했다. 10년을 꽉 채울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그런데 변한 게 하나도 없다. 타성이 극복하기 어려운 중병이라는 차가운 현실이 거대한 벽처럼 서 있다. 술을 풀 수밖에 없는 무서운 세상, 더러운 세상이다. 술 푸는 내 귀에 들리는 세상의 민심이다. 술에 취해 세상을 뒤집어야 속이 후련해진다. 시국이 10년을 훌쩍 되돌아 퇴보하고 곳곳에 정체만 난무할 뿐 진전이 없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는 구호소리가 사뭇 진지하게 다가온다. 얻은 적도 없어 잃어버릴 것도 없는 입장에서는 시답잖게 들렸었다. 타령을 늘어놔 봤자 설거지, 청소나 할 신세에 불과할 뿐이라고 얕본 게 화근이었나 보다. 곳곳에서 패퇴할 뿐 승전보가 그닥 없다. 타올랐던 촛불은 어느새 원점이 되고 말았다. 시대를 초월하여 다시 피아를 구분케 하고 있다. 영 돌파구도 마뜩찮다. 되돌이표 노래를 불러야 할 참이다. 깔보았던 역량에 당하고 보니 자책과 타박만이 남았다. 스스로 진로에 대해 어떻게 나아갈지 고민이 부족했다. 가야 할 머나먼 길에 대한 청사진 없이 무대포로 질렀다. 한참이나 걸어 나와 보니 빈 수레만 요란하다. 아무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누군가 끝까지 버티면 된다는 일리 있는 소리도 했지만 언 발에 오줌누기식이다. 무대포 정신으로 뚫고 나갈 국면이 아니다. 세상의 변화는 희망을 준다. 변화를 풀어낸 이들이 마냥 부럽다. 노쇠한 줄로만 알았던 오키나와 변호사들 사이에 몇 년 사이에 순식간에 젊은 변호사들이 바통을 이어받는다. 무기력한 모습을 보며 핀잔주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역전이 되었다. 변변찮은 사무실 하나 제대로 꾸려나가지 못하고 지쳐나가는 동안 그들은 묵묵히 사람들을 모았나 보다. 장기 침체의 나락에서 작은 변화를 위해 몸부림치며 우리를 놀라워하던 그들이 대국에 맞장을 뜨며 최전선에 후배들을 앞장세워 나가고 있다. 뜨뜻미지근했던 모습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비등점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형국이다. 아뿔싸, 거기에 해답이 있었다. 침체와 나락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작은 변화를 소중히 하며 거기에 인생을 걸어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자신과 똑같은 이상을 지향하는 후배들에게 길을 밝혀주고 있는 오키나와의 할아버지 변호사들을 닮고 싶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오키나와 주민들과 함께 한 그들의 모습이 큰 위안이 된다. 아무런 준비도 계획도 없이 더 이상 소진하지 말아야겠다. 무기력에서 벗어나 일상의 작은 변화부터 만들어 나가고 싶다. 신명나는 세상을 향한 지름길이 분명하다. 새해 희망을 다듬어본다. 지난 9월 27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와 자유법조단 오키나와지부의 평화교류회 사진 출처 - 민변 블로그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13 | hrights | 조회: 367 | 추천: 0
김 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대학 시절부터 지금껏 가슴에 담고 사는 책 중에 리처드 바크의「갈매기의 꿈」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에 들었었지만 참 좋은 이야기여서인지 여기저기서 다시 듣게 되는 이야기 중에 ‘독수리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새 이야기’는 늘 우리가 지녀야 할 꿈과 삶에 대해 성찰하도록 하는 것 같아 올해의 끝자락에 여러분과 성찰을 나누고 싶습니다.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이라는 갈매기가 있었는데 그 갈매기는 다른 갈매기들이 깊은 잠에 빠져있을 때 혼자 일어나 깊은 밤바다 높은 상공에서 수직 하강을 연습합니다. 몇 백 번을 반복 연습하다가 실수도 자주하여 날개가 찢기기도 하지만, ‘조나단’은 다친 곳이 아물기만 하면 다시금 깜깜한 바다 위로 날아가 연습에 몰두합니다. 높이 날아오르는 것뿐 아니라 멀리 나는 것도 좋아해서 먼 바다에 홀로 갔다 오기도 합니다. 갈매기는 큰 바다를 날아다니는 새 중의 새여야 한다고 믿는 ‘조나난’은 부두의 쓰레기 더미에 떼로 몰려 음식 쓰레기를 골라 배를 채우는 숱한 갈매기들에게 먼 바다 얘기를 해주고 갈매기답게 높이 날아다니는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곤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갈매기 마을에 회의가 열리고 ‘조나단’은 위험한 존재로 낙인이 찍혀 추방당하고 맙니다. ‘조나단’이 추방당한 곳으로 그의 친구 갈매기가 찾아와 함께 하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끝납니다.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라는 말이 오래오래 가슴에 남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 세상도 부두의 쓰레기 더미에서 먹을 것을 쉽게 찾으며 바다 위를 날아 용맹스럽고 치열하게 물고기를 사냥하는 갈매기다움을 잊고 또 잃고 사는 부류와 ‘조나단’과 같은 훨씬 적은 수의 부류로 구성되어 있지 않나요? ‘높이 날기 싫은 갈매기들’과 ‘높이, 가장 높이, 날고 싶어 하는 갈매기들’ 중에 여러분은 어느 쪽이신지요? 혹은 이제라도 선택을 다시하고 싶지는 않으신지요? 이젠 ‘독수리 이야기’ 차례입니다. 독수리는 70년까지 살 수 있답니다. 그러나 70년을 살려면 40살 정도 이르렀을 때엔 신중하고도 어려운 결정을 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왜냐 하면 이즈음이 되면 발톱이 안으로 굽어진 채 굳어져 먹이를 잡기조차 어려워지고, 길고 휘어진 부리는 독수리의 가슴 쪽으로 구부러졌으며, 날개는 약해지고 무거워지고 깃털들은 두꺼워져서 날아다니기조차 어렵게 되기 때문이라 합니다. 이제 독수리는 그대로 몇 년 더 살다 죽든지, 아니면, 고통스러운 혁신의 과정을 통하여 완전히 새롭게 거듭나든지, 그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합니다. 그대로 죽지 않고 환골탈태 하려면 그 독수리는 무려 5개월 동안 산꼭대기 절벽 끝에 둥지를 틀고 전혀 날지 않고 둥지 안에 머물러 있어야만 합니다. 이 기간 동안 독수리는 자신의 부리가 없어질 때까지 바위에 대고 사정없이 내리치고, 새로운 부리가 나올 때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 부리가 새로 자라게 되면, 이번에는 그 부리를 가지고 발톱을 하나하나 뽑아낸다고 합니다. 발톱이 새로 나서 다 자라나면 이번에는 낡은 깃털을 다 뽑아낸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5개월이 지나면 그 독수리는 새로운 부리, 새로운 발톱, 새로운 깃털을 갖고 새로이 비행하며, 이후 생명을 30년 연장할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이 두 가지의 ‘새 이야기’는 (정치권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시민들을 위한 성찰 자료이기도 합니다. 1948년 제1공화국부터 약 40년 후인 1987년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시민사회는 독수리처럼 “그대로 죽든지, 아니면, 고통스러운 혁신의 과정을 통하여 완전히 새롭게 거듭나든지, 그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고 그 선택의 결과가 ‘6월 항쟁’이자 민주화였다면, 그 1987년부터 20년이 좀 넘는 지금 우리는 다시금 그러한 선택을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세월이 워낙 빠르고 세상이 워낙 빨리 변하니까 40년 주기가 이젠 절반인 20년 주기로 단축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구요. 돌이켜보건대, 1987년 당시 우리 시민사회는 독수리처럼 절벽 끝 둥지 안에 오랜 동안 머물며 수행하는 환골탈태의 고통을 이미 오랫동안, 그 오랜 독재정권 시기 동안, 지내온 직후였으며 ‘민주화’라는 극적인 변화에 대한 ‘타는 목마름’과 범국민적인 공감대가 있었지만, 그 이후 ‘6월 항쟁’ 20주년을 이미 몇 년 지나온 현재의 우리는 어떤지요?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며 고난의 시절을 함께 싸워 이겨내자던 70년대, 80년대 당시의 반독재투쟁의 외침이 지금에 와서도 다시 울려 퍼져야 하지 않나 싶은데도 말입니다. 그냥 이대로 살다 죽지 않고 독수리처럼 다시금 태어나려는 결심을 우리 스스로 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 아닌가 싶습니다. 허나, 혹시 우리는 새로이 거듭 사는 것을 벌써 잊고 귀챠니즘, 매너리즘, 무사안일주의, 혹은 패배주의에 깊이 빠져 제2의 인생을 아예 포기하는 독수리들은 아닌지요? 이빨과 발톱으로 잔뜩 무장한 사자는 스스로 ‘동물의 왕’으로 자처하지만, 몸에 작은 상처라도 패이면 그보다 약한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잘 낫지 않고 상처가 속으로 깊이 곪아 들어간다 합니다. ‘용산 참사’ 현장에서는 내년에도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유가족들과 함께 하는 작은 미사가 매일 저녁 이어질 것이며, ‘사유화’한 공권력과 ‘법치주의’라는 허무맹랑한 명분으로 중무장한 정부는 그 질긴 외면을 햇수로 2년째 거듭할 것입니다. 속으로 들어가 곪아가는 그 상처는 겉에선 아문 것 같지만 예후는 점점 더 안 좋아질 것입니다. 똑같은 시간이 주어져도 어떤 것은 그 시간 동안 ‘부패’하고 있을 뿐이지만, 어떤 것은 그 시간을 ‘발효’하려고 쓴다지요. 사자의 상처가 점점 곪아 들어가는 그 시간을 우리는 스스로 독수리로서 환골탈태의 힘든 노력을 하는 시간으로 맞대응하자고 외치고 싶습니다. 스스로 갈매기처럼 높이 날아 수직 강하하는 호된 훈련의 기간으로 삼자고 권하고 싶습니다. 새해에는 이 세상이 점점 아픔과 어두움으로 ‘부패’되어 간다고 느끼는 절망을 참 세상이 여러분에 의해서 ‘발효’되어 간다는 희망으로 여러분 스스로가 바꾸어 내고야마는 그런 새해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높이 날아오르려는 갈매기들과 환골탈태하여 새로이 거듭 사는 독수리들인 여러분! 저 역시도 여러분 가운데의 하나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리라 다짐합니다. 김 녕 위원은 현재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13 | hrights | 조회: 420 | 추천: 0
김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백성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면 백성의 원성도 줄어들 것이다. 위엄과 사나움만 가지고는 원망을 막을 수 없다, 위엄만 앞세워서도 안 되고 법이 너무 가혹해서도 안 된다. 사납게 정치해서는 백성의 원성을 막을 수 없다. 마치 넘치는 홍수를 막으려는 것과 같다. 홍수로 인한 피해는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하니 어찌할 길이 없다. 제방을 터 물길을 다른 곳으로 흐르게 하는 일만 못하다.” 춘추전국시대인 기원전 6세기에 정나라 재상을 지낸 자산의 말이다. 까마득한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치하는 자들의 행태는 비슷하고, 문제점도 비슷하며 힘없는 백성이 겪는 고초도 비슷하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다. 이 정부는 법치주의 생떼를 부리며 수많은 촛불 시위자 처벌(위헌결정),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무죄), KBS 정연주 사장 해임과 기소(무죄) 등을 자행한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국민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나움이 그 정도를 넘치자 원망도 같이 넘쳐흐른다. 더하여 정부의 4대강 사업 강행처리는 사나움을 넘어서 광기까지 번득인다. 국회에서의 예산자료 요청을 묵살하고, 국가재정법을 탈법적으로 우회하여 국회 예산심사를 회피하면서 경제적 타당성조차 검증받지 않고, 환경영향평가는 졸속으로 추진하며 안중에도 없고, 앞으로 생태계 파괴와 문화재 훼손 등으로 이어질 미래의 모습까지 상상해 보면 흡사 ‘막가파’ 수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오만한 행정 권력 행사에 백성의 의사가 깃들 자리는 없다. 그래서 국민은 정말로 피곤하다. 백성이 피곤해서 스스로 떨어져 나가는 것을 정부는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국민의 대다수가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자, 4대강 사업이라는 허울 좋은 가면을 쓰고 말잔치를 벌린다. 그래도 국민의 70%는 4대강 사업을 반대한다. 그래도 정부는 물길을 다른 곳으로 흐르게 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국민은 더욱 피곤해지고 있다. 4대강 물줄기를 막겠다고 백성도, 절차 및 과정도 무시하고, 그저 몰아붙이는 현 정부의 짓은 여론을 가로막는 제방을 쌓는 것과 동일하게 보인다. 국민과 소통하고 대화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지나가는 소도 웃을 짓’이다. 소통은 나와 다른 자, 집단들과의 대화이다. 지난 12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4대강 예산 삭감을 위한 비상행동 선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4대강 사업 중단을 외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 소 수입을 계기로 촉발된 민중들의 자발적인 촛불시위가 온 들녘에 울려 퍼지자 정부는 서둘러 컨테이너 명박산성을 쌓았다. 컨테이너 명박산성이 국민과의 소통을 막는 1차 산성이었다면, 4대강 사업 강행은 국민과의 소통을 만천하에 거부․선언한 2차 명박산성이다. 명박산성을 높이 쌓을수록, 4대강 제방을 높이 쌓을수록 국민과의 소통은 단절되고, 백성의 원성은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그 모든 제방과 산성을 무너뜨리는 홍수가 발생할 것이다. 국민의 힘에 의한 홍수는 역사상으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현 정권이 4대강을 막는 행위는 마치 홍수를 부르는 짓처럼 보인다. 갈등과 분열, 강행의 대가는 그대로 힘없는 백성이 고스란히 짊어져야 할 몫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슬플 뿐이다. 어찌되건 현 집권자들은 역사 앞에 명박산성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라의 주인인 백성은 힘들다. 김희수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둥중입니다.
2017-07-13 | hrights | 조회: 346 | 추천: 0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한대수는 ‘호치민’이라는 제목의 노래에서 사회주의 베트남 건국의 지도자 호치민(胡志明)을 이렇게 소개한다.(랩이니까 그냥 소리 내어 읽으면 된다. 단, 한대수 식의 경상남도 사투리로. 이 노래에서 멜로디는 후렴구-‘호치민 호치민 호치민’-가 전부이며, 괄호 안의 ‘아 그래요’는 표준어를 구사하는 20대 여성의 평어체 대사다. ) “호치민에 대해서 말하자면 참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은 학자의 집안이고 불란서 점령 당시에  왜 서양세력이 자기 나라를 이렇게 장기간 동안 점령하느냐  거기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또 워낙 문학가 집안이니까 여러 책을 보면서  연구를 하게 되죠    호치민 호치민 호치민    그래서 적을, 적을 이기려면 적을 알아라라는  요런 명언이 있으니까 불어를 열심히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아 그래요)  그런데 불란서를 가야 되겠는데 유람선의 요리사 조수로 취직하게 됩니다  불란서에서 불란서 공산주의자들과 접촉이 이루어지고  또 거기에서 맑시즘을 배웠고  드디어 어떠한 계기에서 모스크바를 방문합니다 (아 그래요)  모스크바에서 공산주의 대학교에 입학해서  과연, 제국주의, 자본주의 요런 데 대해서 공부를 하게 됩니다   여기에다가 러시아의 힘을 얻고 중국에 또 이사를 갑니다  여러가지 민중의 고통, 민중의 핍박, 또 프롤레타리아  거기에 대해서 배우고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옵니다  호치민 호치민  미국이 이젠 등장하는데 그 부패된 고딘디엠 정부를 지원하면서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아주 지속된 전쟁의 끝없는 폭격  약 3200일의 끝없는 폭격을 밤낮으로 당하면서  미국의 강력한 군사력을 이겨낸 유일한 사람입니다 (아 그래요)” 부정확한 서술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한대수 특유의 직관이 십분 발휘된 드라마틱한 설명이다. 부정확한 서술이 있는 곳은 마지막 부분이다. 마치 10년 전쟁 전체를 호치민이 지휘한 것처럼 한대수는 노래했지만, 호치민은 전쟁이 끝나기 6년 전인 1969년 베트남 독립기념일에 세상을 떠났다. 호치민이 주로 활약했던 건 프랑스와의 전쟁이었고, 미국과의 전쟁을 주도한 것은 남베트남 출신의 레 두안이었다. 이미 1960년께 권력의 상당부분은 호전적이었던 레 두안에게 넘어가 있었고, 호치민은 당의 상징적인 얼굴로서, 외교적 대표로서만 활동하고 있었다. 실용주의자였던 호치민은 인민들의 고통만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이유로 미국과의 전면전을 망설였다. 나는 평소, 북한의 사회주의가 왜 유난히 교조적이고 전투적인지, 왜 수많은 사회주의 국가 중에 유일하게 북한에서만 부자 승계가 이뤄지는지 궁금했다. 한때는 모든 걸 기후 탓으로 돌리며 비과학적 결론에 이른 적도 있었다. 호치민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쿠바나 베트남 같은 사회주의 나라들이 북한보다 훨씬 유연하고, 부자 승계도 없는 이유를, 날씨가 따뜻해서 먹을 것이 풍부하니까 사람들이 욕심이 적기 때문인 것으로 마구잡이로 재단했다. 하지만 베트남을 좀 더 들여다보면서, 사회과학에서 이런 식의 ‘기후 결정론’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됐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레 두안이라는 인물은 갑자기 죽지만 않았다면 거의 김일성처럼 됐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짐작하다시피, 호치민의 권력 행사는 대단히 민주적이었다. 주석의 이름으로 강제하는 일이 거의 없었고, 모든 결정을 토론에 의존했다. 호치민은 반대했으나 강경파들에 의해 강행된 토지개혁이 민심의 반발에 부닥쳐 결국 호치민이 나서 사과를 해야했던 것도 좋은 사례다. 호치민의 생애 중 나를 가장 감동시키는 대목은 한대수의 노래에 나와 있지 않다.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고 독립에 성공한 뒤, 호치민은 으리으리한 총독궁을 놔두고 그 옆의 정원사(우리로 치면 마당쇠) 오두막에서 살았다. 적어도 주거 면에서는 “일찍이 우리 독립 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했”던 백범 김구의 소원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이런 겸손함과 청빈함으로 민중들의 마음을 얻었다. 호치민은 여러가지 면에서 김구와 닮았다. 어릴 때부터 독립 운동에 매진했고, 사심이 적었다. 유교적인 가치관을 가슴 밑바닥에 깔고 있었다는 점도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호치민이 제국주의를 몰아낼 수단으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데 반해, 김구는 사회주의 역시 외세의 일종으로 보아 배격했다는 점이다. 프랑스와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세계를 떠돌며 국제감각을 익힌 호치민이 실용주의적 관점으로 사회주의를 채택한 반면, 한국과 중국에 시야가 국한돼 있던 김구는 일체의 외세를 배제하고 우리 민족만의 독립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이상주의자에 가까웠다. 호치민이 한 때 미국을 이용해 프랑스를 몰아내려고까지 했을 정도로 국제정치에 민감했던 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역할을 한 사람이 이승만이었다는 것은 통탄할 일이다. 이승만은 신탁통치안을 교묘하게 비틀어 ‘찬탁=공산주의’라는 프레임을 만들어내고, 이를 반공 세력의 결집 기회로 활용한다. 이어 반공의 깃발아래 미국과 친일파, 지주들을 등에 업고 남쪽에서 권력을 잡았다. 백범 김구 사진 출처 - 백범 김구 기념관 이 때 형성된 극우 헤게모니는 군부독재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지나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김구 선생을 존경하지만, 해방 공간만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 나는 지금 김구가 사회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을 아쉬워하는 게 아니다. 호치민의 실용주의와 국제감각을 말하는 것이다. 생전의 노무현은 이렇게 썼다. “김구 선생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존경할 만한 사람은 왜 패배자밖에 없는가?’ 하는 의문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왜 패배했는가? 역사에서 올바른 뜻을 가진 사람은 왜 패배하게 되는가? 이런 질문은 ‘우리 역사에서는 정의가 패배한다’는 역설적 당위로 귀착되었고, 나는 그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노무현이 만난 링컨>에서) 노무현 스스로도 ‘패배하는 정의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견처럼 보여 슬픈 대목이다. 노무현은 도덕적 수단(당정분리, 권력기관의 자율화)으로 우리 사회의 부도덕(지역주의, 수구언론)을 이기려고 했던 반(反)마키아벨리주의자였다. 그 불가능해 보이던 실험은 예상대로 패배했다. 노무현이 미처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김구는 단지 정의의 편이기 때문에 패배한 것이 아니다. 아까 말한 대로, 숨가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를 잘 몰랐거나 일부러 무시한 채 어떤 진공 상태의 이상만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상주의자로서 노무현의 패배는 민중들의 삶의 조건에 대한 실체적 관심보다는 일종의 당위로서의 정치투쟁(수구언론과의 싸움을 포함하여)에 치중함으로써 민중들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역사적 안목에 남달리 예민했던 노무현은 현실의 민중들이 원하는 것을 포착하는데 상대적으로 서툴었다. 이명박은 노무현의 전도된(뒤집힌) 형태다. 역사에 무감하고 도덕에 무관심하다. 역사적으로 부도덕한 자들은 도덕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부도덕을 증명한다. 식언은 예사다. 그리고 자신이 특정 계급의 대표라는 사실을 기술적으로 숨기고 있다. 지지율이 떨어질만 하면 재래시장에 나가 떡볶이를 먹으며 서민 경제를 걱정한다.(이런 정치 쇼야말로 노무현이 가장 혐오했던 것이다) 그리고 신혼부부 보금자리 아파트 같은 기만적인(언발에 오줌누기라는 의미에서!) 술책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있다. 위장 전술은 지금까지 잘 먹히고 있다. 한 편으론 정부 기관이 앞장서서 직장 폐쇄를 강행하고, 파업권 등 각종 헌법적 권리를 짓밟고 있다. 리영희 선생이 예견한 대로, 이 정권 하에서 서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질 것이고(실제로 그렇지 아니한가), 범죄는 늘어날 것이며, 계급 갈등이 격화되는 투쟁 사회로 나아갈 것이다. 방송을 장악해 정권을 연장한다면 그 갈등은 더욱 커져 폭발 직전에 이를 것이다. 이 정권에 조금이라도 합리적인 사람이 남아 있다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명박의 감동적인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는 (사담 후세인이 주도한) 이라크 혁명 정부의 청렴성과 과단성, 비전을 상찬하는 대목이 나온다.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정부의 평등의식(준공기념식을 준비하는 현대건설에게 차양을 치려면 수상이 앉아있는 단상과 객석에 똑같이 치던지, 아니면 걷어버리라는 지시가 내려졌다)에 놀라며, 말레이시아가 무서운 속도로 우리를 따라잡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한다. 이 때(1995)까지만 해도 인간 이명박에게는 역사의식과 평등의식이 남아 있었다. 이제 와서 그때를 돌이켜보라는 것은 정녕 부질없는 권유일까.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전문)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2017-07-13 | hrights | 조회: 364 | 추천: 1
위대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어느 날 아침 출근을 위해 지하철 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려 한다. 평소 몸이 기억하고 있는 대로 발걸음이 내디뎌졌고, 순간 앞사람과 충돌할 뻔 했다. 어제와 달리 에스컬레이터는 하행이 상행으로, 상행이 하행으로 바뀌어 있었고, 우측보행이라는 표어 같은 것이 바닥에 붙어 있다. 한동안 주로 다니는 지하철역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에스컬레이터를 타려할 때마다 발이 꼬이는 황당한 경험을 해야 했다. “아차~. 에이 씨~.” 우측보행이라니....... 그리고 나서 얼마 후 밥 먹으며 TV를 보는데 우측보행을 생활화하자는 내용의 공익광고 같은 것이 화면에 흐른다. 선진국에서는 우측보행이 생활화되어 있다는 둥, 어떤 아이가 아빠로 보이는 사람의 손을 잡고 가고 있고, 맞은편에서는 유럽인쯤으로 보이는 백인이 뭔가를 보면서 아이의 정면으로 걸어오고 있는데, 아이는 어느 쪽으로 걸어가야 하느냐고 아빠로 보이는 사람에게 묻고, 아빠로 보이는 사람은 아이에게 서로 부딪히지 않고 길을 가기 위해서는 우측보행을 해야 한다는 식의 뜬금없는 얘기를 한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사촌 형이 대학교 앞 차도에서 뒤에 오던 무보험 차량에 치어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칠순을 앞에 둔 나의 어머니는 일방통행로에 서 있다가 뒤에서 오던 차에 발목을 치어 지금도 원활한 보행에 지장을 느끼신다. 내가 아는 대학생 한명은 이면도로에서 뒤에 오던 차가 왼쪽 무릎을 치어 평생 등산하기 어렵게 됐다. 난 어려서부터 좌측보행, 정확히는 좌측통행을 해야 한다고 교육을 받으면서도 좌측통행을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 누군가에 의해 주입된 행동을 하기 싫은 것이다. 그런데 나이 먹고 나서 정부가 우측통행 아니 우측보행을 하라고 하니 더 하기 싫다. 더군다나 우측보행을 하는 것이 마치 선진국민, 문명인의 보행방식이라는 식의 얘기를 들으니 하기 싫은 기분을 넘어 역겹게 느껴진다. 난 지금 화가 나있다. 왜 내가 걸어가는 방향을 정부가 일률적으로 정하려고 하는가? 좌측통행도 자연인의 보행방향을 획일화 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전체주의적 관점이라는 거부감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평생을 몸에 익혀 살아온 통행방식을 자기들 입맛대로 바꾸고 또 다시 이를 획일화 시키려 한다. 게다가 그것에 선진국형, 문명국형이라는 식의 수식어까지 붙여 한순간에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을 후진국형, 야만국형 인간으로 만들었으니 화가 안 날 수 없다. 사람의 의식과 행동은 자연스럽게 조화되어야 한다. 설령 아무리 우측보행이 보행방식에 있어서 우수하더라도 그것으로 인간의 행동을 강제하려는 순간, 우측보행은 그 자체로 최소한의 가치도 갖지 못한다. 차량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최선의 통행방식이 무엇인지, 사람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최선의 보행방법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것, 그것을 넘어 우측보행을 일률적인 인간의 보행방법으로 반드시 지켜야 할 어떤 문화적 규범, 법률로 만들고(실제로 한나라당 박대해 의원은 이를 입법추진중이다), 인간의 의식에 주입하려는 것은 규범, 법률을 가장한 인간에 대한 폭력이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심지어 어떤 교통문화 단체에서는 이와 같은 우측보행을 파쇼적인 발상이라거나, 레드 콤플렉스의 반영이라고 아주 강하게 비판한다. 난 현재 진행 중인 우측보행 계도 광고가 정부가 강제력(예산, 광고 내용, 실제 생활에서의 에스컬레이터 등의 배치 변경 등)을 통해 인간의 행동유형을 획일화 시키려는 발상에 연결된 것이라는 점에서 전체주의적인 시도라고 비판하고 싶다. 더구나 이번 정부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에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붓는 것은 자신의 존재 근거인 국민을 기만하고 또 무시하고 있는 증거라고 비판하고 싶다. 복지예산 증액은커녕 이를 줄이기 급급하면서도 이처럼 근거 없고,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정책으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정부(물론 이보다 4대강 공사에 쓰일 천문학적인 액수의 예산을 생각하면 목구멍으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에 대하여 능력이 없으면 차라리 잠자코 있으라고 비판하고 싶다. 현재의 보행문화, 통행문화에 문제가 있더라도, 정부로서는 이로 인한 손실을 줄이기 위한 노력에 앞서 차도와 인도(보도)가 구분되지 않은 전국에 산재한 많은 보차비구분도로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한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지방에 가보면 갓길을 걷는 사람들이 빠르게 곁을 지나쳐가는 차량으로 인하여 느끼는 위협이 과연 어느 정도 될 것인지, 그로 인한 생활상의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일지 감히 가늠하기 힘든 도로들이 무수히 많다. 이런 위험스런 상황이 정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장님 정부고, 무능력하며 무책임한데다 낭비벽 심한 정부다. 더 위험한 것은 이런 정부가 전체주의적, 파쇼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위대영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13 | hrights | 조회: 332 | 추천: 0
황미선/ 인권연대 운영위원 지난 11월 13일 민주노총 김** 성폭력 사건의 항소심에 대한 판결이 있었다. 피해자에 대한 지지모임을 꾸리고 그 회원이기도 한 나는 판결 내용도 궁금하지만 재판에서의 생생한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10시에 시작하는 재판을 방청하였다. 지지모임 회원 4-5명이 이미 와있었고 우리가 관심이 있는 본 사건은 6번째로 판결이 잡혀있었다. 그날의 판결은 성추행이나 성폭력, 강간미수 등의 사건이 대부분이었고 판사가 판결의 이유로 댄 것들이 서로 충돌하기도 하여 본 사건의 판결이 어떻게 날 것인지 긴장되었다. 드디어 6번째 판결... 피고인 5명이 나란히 서있는 가운데 판사의 판결이 낭독되기 시작하였다. 그 사건의 항소심에서 성폭력 사건 가해자인 김** 만 항소하였고, 범인도피에 관하여는 검사측과 피고인측이 모두 항소하였다는 말을 시작으로 하여 한 5분여간 낭독된 판결문은 여성주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세 가지 부분에서 환영할 만한 내용이었다. 첫 번째는 운동사회 내에서 상실된 피해자 중심주의를 채택한 것이다. 판사는 성폭력이 매우 중한 죄로 피해자의 입장이 명백한 이상 피해자의 의견을 중요 기준으로 삼아야 함을 강하게 피력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동안 법조계의 가해자 중심주의적인 판결을 꼬집기도 했는데 이는 피해자가 그토록 헌신적으로 활동해온 조직에서조차 채택되지 못한 것이었다. 이와 유사한 사건의 판결에서 피해자의 의지와 의견이 매우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할 근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피해를 당한 약자의 입장을 우선시 한 점에서 한사람의 생존자로서 살아가야하는 피해자의 인권이 지켜진 것이라 생각된다. 두 번째는 술에 취하여 심신미약의 상태로 저지른 우발적인 행위였다고 판시한 원심의 내용을 뒤집은 것이다. 즉, 술이 이유가 되어 양형이유에 있어 감경요소가 되지 않음을 분명히 하며 원심판결에 항소한 가해자에게 반성하지 않는 태도라며 질책하였다. 그리고 심신미약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심신미약과 범행에 대한 책임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그동안 술에 대하여 유독 관대했던 우리 사회에서 법정이 나서서 경종을 울린 것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이런 사건에 대한 공탁에 대한 의미를 분명히 한 점이다. 공탁이란 유가증권 기타의 물품을 변제·담보·보관 등의 목적으로 공탁소에 임치하는 것인데 이번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합의 의사를 공탁으로 변제하려 한 가해자의 의도를 법정이 인정하지 않은 점이다. 2000만원이라는 거금을 공탁함으로써 합의를 거부한 피해자의 뜻을 약화시키려 한 행위에 대하여 그 의미를 분명히 한 점에서 이 또한 환영할 만한 판결이다. 즉, 공탁이 가해자의 사회에 대한 사죄의 의미는 있으나 근본적 해결은 아니며 양형사항에 있어 감경요소가 아님을 적시하였다. 그 동안 돈 있는 사람들의 이런 공탁에 대하여 피해자의 합의의사와 상관없이 인정되고 합의한 사례는 수두룩하다. 이번 판시로 공탁 또한 피해자의 의사를 기준으로 해야함을 분명히 한 점에서 이 또한 반갑다 할 것이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조두순 사건이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넓혔지만 그에 따른 법의 판단은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판사는 “범행이 중하므로 감형은 책임지는 모습이 아니며 형량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책임지는 모습이다”라는 말을 이유로 항소를 기각하였고 이 마지막 말은 성폭력 사건에 대한 책임을 엄중하고 진심으로 받아들일 것을 가해자에게 주문하였다. 어찌보면 당연하게 귀결지어져야할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사회나 법조계에서는 그렇게 되지 못하였던 것이 사실이고 이번 판결이 동종의 사건에 중요한 판례로 작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쁘다. 여성의 옷차림이나 언행이 판단의 중요 기준이 되었고, 여성에 대하여 사회가 부여한 역할 수행이 또한 중요기제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남성의 시각이 판결의 기준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라도 법정이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인지하고 위에 언급한 세 가지 관점에서 판결을 내린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지만, 만약 발생한다면 피해를 당한 약자의 입장에 사회가 또는 법조계가 나서서 그들을 대변하고 책임을 지우는 사회적 실천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지난 11월 13일 민주노총 김** 성폭력 사건의 항소심 판결은 매우 중요한 선례를 남겼고 진심으로 환영한다. 황미선 위원은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13 | hrights | 조회: 337 | 추천: 0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키가 180센티미터가 안 되는 남자는 루저”라는 발언으로 시끄럽다. ‘미녀들의 수다’(이하 미수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여대생의 이 발언은 인터넷을 통해 엄청난 비난을 샀고 급기야 다급해진 KBS가 제작진을 교체함으로써 논란을 잠재우려 하지만 네티즌들은 아예 프로그램을 폐지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단 그 여대생의 어이없는 발언에 대해 비판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졸지에 루저라는 낙인을 받게 된 수많은 남성들이 분노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은 그런 발언이 논란을 낳으리라는 예상을 제작진과 그 여대생은 정말 하지 못했을까 하는 점이다. 그동안 방송에서의 발언으로 엄청난 비난을 샀던 연예인, 방송인들의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지 않은가. ‘대본에 따랐을 뿐’이라는 여대생의 해명이나 ‘대본은 강제적인 게 아니라’는 제작진의 변명은 더욱 무책임하다. 그런 식의 대본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시청률 경쟁을 위해 일부러 노이즈 마케팅을 하고자 한 게 아니라면, 이 프로그램 제작진의 한심한 ‘수준’을 폭로하는 일일 뿐이다. 이 발언이 나오게 한, ‘키 작은 남자와 사귈 수 있냐’는 질문부터 양식을 의심하게 하는 내용이 아닌가. 사실 이 ‘미수다’란 프로그램은 오래 전부터 교묘하게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면서 출연한 여성들을 관음적 시선의 대상으로 만들어온 혐의가 짙다. 외국 여성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과 한국 문화의 모습을 짚어본다는 취지로 가끔 의미 있는 담론을 들려주었던 예가 없지는 않았지만 전반적으로는 외국 여성들의 외모와 성적 매력을 강조하면서 남성적 시선의 눈요깃감으로 만들어왔다. 제목부터 ‘미녀’를 내세우고 있지 않나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작진을 교체하면서까지 이 프로그램을 지속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키가 180이 안되면 루저”라는 여대생의 말은 그녀가 남달리 특별한 가치관이나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어서 나온 말이 아니다. 사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이미 만연해 있는 어떤 ‘상식’을 정확히 보여준다. 남녀를 불문하고 키 크고 잘 생긴 사람과 키 작고 못 생긴 사람에 대한 사회적 대접은 이미 우리 누구나 알다시피 분명히 차이가 있다. 말하자면 키와 외모는 우리 사회에서 사람의 상품 가치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 있다. 육체적 매력으로 평가되는 인간의 상품 가치를 편의상 육체 자본이라 불러 보자. 주목할 점은 육체 자본이 중요하다는 건 남녀를 불문하고 같지만 그 내용에서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이다. 남자의 경우, 육체 자본은 다른 사회적 가치(돈이나 지위, 권력 등)와 결부되는 경우가 많지만 여자의 경우, 그것은 온전히 육체 자체가 가진 가치로 측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의 상품화, 요컨대 성적 가치의 결정성이 더 중요해 지는 것은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 쪽이다. ‘미수다’의 여대생이 한 발언은 이제 남성의 성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압박도 여성 못지않게 강화되고 있음을 은연중 암시한다. 사진 출처 - KBS 홈페이지 육체 자본은 대체로 타고난 유전적 특성에 의해 우선적으로 형성될 가능성이 크지만 현대 사회에서 그게 결정적인 것은 물론 아니다. 성형 수술, 피부 관리, 체형 관리, 헬스 센터, 다이어트 등 다양한 타이틀을 가진 육체 산업들은 사람들의 육체적 매력을 키워주는 것으로 돈을 벌어들인다.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타고나지 않은 사람이 육체 자본을 높이려면 그만큼 돈이 든다는 말인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돈을 들여가며 육체 자본을 높이려는 것에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 육체 자본이 클수록 더 많은 경제 자본을 얻어낼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육체 자본을 많이 가진 사람(육체적 매력이 높은 사람)이 이를 통해 돈을 벌거나 돈 많은 배우자를 만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는 말이다. 물론 그 역도 가능하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더 많은 육체 자본의 소유자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육체 자본과 경제 자본은 상호 교환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경제 가치, 요컨대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모든 다른 가치를 압도하는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육체 자본을 높이기 위해 애쓰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 특히 돈 이외의 다른 가치들은 언제든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로 가득한 천민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의 상품화는 피할 수 없는 일상이며 삶의 조건이다. 그 속에서 시시각각 육체 자본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스트레스는 당연히 엄청나다. 한국 사회에 사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스트레스 지수는 아마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뒤 떨어지지 않을 게다. 그런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 가운데 하나가 TV이다. 우리나라 TV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미인이고 미남이다. 그리고 물론 섹시하다. 언제부터인가 TV에서 공개적으로 섹시하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전혀 어색하거나 수치스럽지 않게 되어 버렸다. TV에 출연한 연예인들이 서슴없이 ‘섹시하시네요’ 같은 표현을 쓰고 그 말을 들은 사람은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고맙다’고 말을 한다.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데 대한 분노보다 자신의 육체 자본을 높이 평가해 주는 데 대한 고마움이 앞선다는 말이다. 연예인들은 가능한 한 자신의 섹시함을 과시하고 남들로부터 섹시하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애쓴다. 그만큼 성에 대한 사고가 자유롭고 개방적으로 변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이제 육체 자본이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확고하게 사회의 지배 가치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수다’에 나온 문제의 여대생의 발언은 그와 같은 사회적 가치와 문화에 젖어 있는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하나의 ‘상식’을 보여준다. 다만 그것이 ‘키 큰 사람이 더 좋다’는 수준이 아니라 180이라는 구체적 수치와 루저라는 자극적 표현을 통해 표현됨으로써 공분을 자아낸 것일 뿐이다. 자신의 감정과 상식에 충실할 줄은 알았지만 자신의 발언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 사고할 만한 지성은 가지지 못했던 한 여대생을 두고 욕하고 돌팔매질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란 얘기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13 | hrights | 조회: 325 | 추천: 0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서울 명동성당 맞은편에는 세칭 ‘판넬골목’이라 불리는 좁은 골목이 있다. 차 한대가 근근이 드나들 수 있는 100미터 남짓한 길이의 골목인데, 한때 이 골목 초입에서 끝이 나는 지점까지 대부분의 담벼락에는 마이클 잭슨, 제임스 딘, 오드리 헵번, 올리비아 핫세, 소피 마르소 등 내로라하는 월드스타 사진부터 그리스도교 성화, 이발소에나 걸림직한 풍경 사진 등 다양한 그림들이 액자에 담겨 걸려 소박하지만 인상적인 풍경을 연출해냈다. 지금은 표구하는 가게는 모조리 사라지고 술집과 밥집들만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이름은 여전히 판넬골목이다. 이강서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를 처음 만난 곳도 판넬골목에 위치한 한 허름한 주점에서였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술이 몇 순배 돈 후 군종장교 전역을 앞둔 그가 풀어낸 교회에 대한 비전이나 삶에 대한 진지함이 꽤나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이 신부를 다시 만난 것은 몇 년인가 지난 후 당시 출입처로 드나들던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에서였다. 속으로 ‘그럼 그렇지’ 하는 탄성을 질렀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빈민사목위원회는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 함께하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공식 조직이다. 몇 년이나 알고 지내왔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이 신부의 활동이 늘 열성적이면서도 인간적으로 다가왔던 기억만은 뚜렷하다. 그런 그를 용산 참사 현장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가 그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한 번 무릎을 쳤다. ‘그럼 그렇지.’ 알려진 대로 이제 용산은 대표적인 ‘국민’ 전자상가로서의 이미지를 비롯해 미군기지, 호남선 기점, 쪽방촌, 국립박물관 등 수많은 이미지 속에 ‘참사 현장’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더하게 됐다. 입동을 지내며 겨울의 초입을 넘어선 어느 날 바람이 숭숭 통하는 용산거리 한쪽에 친 천막에서 만난 이 신부는 생각대로 따뜻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경찰들에 밀려 찢기고 쓰러졌을 때도 그 특유의 따뜻함으로 냉정을 잃지 않았던 그였다. 그런 그에게 내 물음은 조금은 당혹스러울 수도 있는 것이었는데 결국은 오히려 내가 당황하고 말았다. “왜 다른 사람도 아닌 신부들이 꼭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가?” 신부들이 용산을 지키고 있는 현재의 핵심을 찌르면서도 교회 안팎에서 적잖이 들리는 질문들의 요지였다. 이 신부는 “순교를 해야만 할 상황이라면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보고, 누구의 허락을 받고 할 것이냐”는 답을 돌려주었다. 속이 뚫리는 듯 한 느낌이 가슴을 뿌듯하게 만들었다. 이강서 신부는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300일이 되도록 누구 하나 나서서 책임 있는 사과 한마디 없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사진 출처 - 가톨릭신문 “어떤 삶을 선택하는가 하는 것은 어떤 종교, 어떤 지위에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양심에 따라 실존적 결단을 하는 문제입니다.” 4, 50년 넘게 신앙생활을 했다는 신자들이나 타 종교인들이 내게 자주 하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왜 하필 ‘또’ 신부들이냐?”는 거였다. 이러한 물음에 이 신부는 “얼마만큼 하면 충분히 기도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얼마나 신앙생활을 하면 충분히 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하는 물음을 되돌려 주었다. 200일 넘게 용산 현장에서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나까지 38번째 언론 인터뷰를 한다는 이 신부, ‘시간의 무게’를 누구 못지않게 무겁게 느낄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그였지만 시간에 대한 기준은 달랐다. “믿음에도 다양한 편차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신자와 세례를 준비하는 예비신자로 곧잘 나눕니다. 그러나 ‘신자’와 ‘예비신자’는 세례로 구분되는 게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계명을 하느님의 기준에 따라 사느냐 아니냐가 기준입니다. 하느님 이름으로 모였지만 하느님의 기준이 아니라 세속적 시선만을 유지한 채 충분히 영글지 못한 신앙을 지닌 채 살아간다면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한다 해도 그것이 신앙 성숙의 지표가 될 수 없습니다.” 속이 후련해졌다. 대화가 깊어지면서 이 신부의 목소리에 조금씩 떨림이 실렸다. 눌러 왔던 생각들이 조금씩 고개를 드는 모양이었다. “이제 곧 참사가 일어난 지 300일이 되고 계절이 네 번 바뀌는데, 누구 하나 나서 책임 있는 사과 한마디 없는 이 모습이 과연 이성적이고 올바른 것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런 커다란 부조리는 바라보지 못하고 남의 티끌만 눈에 띈다면 그 또한 잘못된 것이 아닐까요.” 한 번이라도 용산 참사 현장에 발걸음을 한 1000명이 넘는 신부들, 그들은 우리 시대 헐벗고 굶주리며 병들고 나그네 된 이들을 찾고 있음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 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13 | hrights | 조회: 321 | 추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