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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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이찬수(전 보훈교육연구원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선거가 끝났다. 개인적으로 이른바 멘붕이란 게 어떤 건지 실감해 본 며칠이었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을 토로한다. 기대가 컸고 결과적으로 좌절과 배신감이 컸던 때문이다. 선거 결과를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경상도 지역의 여전한 패권주의와 보수성, 세대 간의 투표율 차이, 50대의 반란, 언론의 불공정성, 민주당의 전략적 실패와 한계 등등 패배의 요인들이 거론된다. 다들 그럴 듯한 얘기들이지만 어떤 것도 이 답답함을 속 시원히 해소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아무려나 특정한 지역이나 세대, 집단이나 개인에 패배의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가 잘못임은 분명하다. 이번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는 지금까지의 어떤 민주 진영 후보보다 많은 득표를 했다. 그 정도면 가히 한국 사회 진보 개혁 역량의 총합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결국 이번 선거는 한국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수구 보수의 강고한 벽이 얼마나 두터운 것인지를 확인하게 한 선거라 할 수 있다. 방송사 출구 조사를 보며 패배를 예감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모처럼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했던 젊은 세대나 일말의 희망으로 선거를 지켜보았을 거리의 노동자와 언론인들이 겪게 될 좌절감이 얼마나 클까 하는 것이었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이틀 후 158억에 이르는 손배가압류 횡포와 노조탄압에 시달리던 한진중공업 노동조합 최강서 조직차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또 하루 만에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였던 이운남 씨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 모든 절망의 행렬은 그만큼 이번 선거를 통해 뭔가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고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새 세상이 조금은 더 가까워질 것이라는 희망이 컸고 또 절박했다는 의미이다. 절망의 또 다른 표현은 냉소와 무관심이다. 선거가 끝난 후 트위터 계정을 없애고 사라져 버린 트위터리안들이 적지 않다. 그런가 하면 서로 공격하고 조롱하고 비아냥거리면서 상처를 주는 언사들도 SNS 상에 적지 않게 넘쳐난다. 이 역시 높은 기대와 희망이 어처구니없이 꺾인 데서 오는 좌절의 양상들일 게다. 지난 12월 19일 밤 11시쯤 대학로 벙커원에 모인 2030 유권자들이 선거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 출처 - 주간경향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은 절망할 때가 아니다. 생각해 보면 지난 수십 년간의 현대사에서 민주개혁 진영이 대선에서 이긴 것은 1997년과 2002년 두 번 뿐이며 집권 기간이라야 고작 10년뿐이다. 그 두 번의 승리도 DJP연합이나 행정수도 이전 같은 이슈를 통해 보수 세가 분열됨으로써 가까스로 가능했을 뿐이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기껏 60여년에 지나지 않는 우리 사회에 왕조 시대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도 많고 냉전 시대의 관점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허다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여전히 근대의 문턱을 충분히 넘어서지 못한 사회를 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온전히 민주진보 세력의 힘으로 범 수구보수 세력과 대결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인 셈이고 그 속에서 48%가 넘는 지지를 얻은 것은 생각해 보면 대단한 일이다. 그 오랜 억압의 역사 속에서도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인구의 절반이나 만들어졌다는 뜻 아닌가. 나는 이번 선거의 결과를 보며 50대의 욕망 투표에서 절망을 찾는 것보다 20-30대의 각성 투표가 보여준 희망에 주목하는 것이 더 의미 있고 마땅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 어느 선거보다 많은 수의 20,30대 젊은 세대가 투표에 참여했다는 사실 자체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들의 에너지는 여전히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요소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의 경험이 허무와 냉소로 전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좁은 의미의 정치나 권력의 자장이 아니라 시민사회와 일상의 영역에 남겨진 과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SNS를 기반으로 대안언론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기존 진보 미디어와 시민 단체에 대한 후원이 늘고 있는 건 정말 다행스럽고 고무적인 일이다. 선거가 닥쳐서 벌어지는 싸움 속에서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하루하루 속에서 서로 위로하고 소통하고 힘을 모아가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 단체를 후원하고 대안 미디어에 힘을 보태고 SNS에서나 오프라인 공간에서 공유와 소통의 폭을 넓혀가는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정권보다 더 소중하다. 다시 신발 끈을 조여매고 미래를 준비하는 그 몸짓에서 희망은 시작된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320 | 추천: 0
위대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악몽과 같은 밤이었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리다 새벽에야 잠에 들 수 있었다. 원망. 제일 먼저 내게 다가온 감정이다. 원망. 왜 그와 같은 선택밖에 할 수 없는 것일까? 그토록 많은 시간 보여주고 또 보여주었는데, 그토록 오랜 시간 속고, 짓밟히고, 고통 속에 신음해왔는데 도대체 왜 그와 같은 선택밖에 할 수 없는 것일까? 불쌍해서? 어차피 똑같으니까? 아니면 이젠 스스로를 살필 수 없을 만큼 세뇌되어 조금도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어쩌면 조금도 바뀌지 않는단 말인가. 미련하고, 천박하고, 멍청하다. 내가 사는 세상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세상이라니. 절망. 두 번째로 내게 온 감정이다. 희망은 정녕 없는 것일까? 강고한 벽에 부딪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과 외침이 있지만 그것은 소수의 목소리에 불과했다. 그 소수는 조금은 더 많지만 여전히 소수의 사람들에게 공명되었을 뿐 다수의 웅성거림 속에 커다란 울림통으로 소리 내지 못했다. 다수는 이미 움직일 수 없는 강고한 바위, 목을 치켜들고 올려다봐야 할 높은 벽 위에 있었다. 희미하게 보이는 그들의 입가에는 이죽거리는 듯한 웃음이 스쳐간다. 어디 감히 여길 쳐다보냐는 듯 경멸의 눈빛으로 내려 깔아 보는 이도 있는 것 같지만 이내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희망은 사라진 것일까? 불안. 세 번째로 내게 온 감정이다. 나의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눈이 보이지 않도록, 귀에 들리지 않도록 세상을 온통 암흑으로 만들어 버린 시간이었다. 충분히 어둠이 짙어 졌으니 새벽이 가까이 왔으리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어둠은 걷히지 않고 걷히지 않을 것만 같다. 겨울이 지날 시기가 되었는데 피어야 할 매화가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있어도 되는 걸까?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해가 뜨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해가 뜨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하나, 뭘 할 수 있는 게 남아 있기는 하나? 공포. 이제 해는 떠오르지 않을 것이고, 차갑고 어두우며 고통스런 시간이 흐를 것이다.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새벽의 한기가 떠오른다. 바람이라도 스치면 사시나무 떨리듯 온몸이 떨린다. 조금만 더 지나면 손끝부터 마비가 되어 마침내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몸부림치는 것도 순간, 더 깊어 가는 어둠과 함께 뼛속으로 스며드는 한기를 막아낼 방도가 없다. 이를 악물어 보지만 갈수록 비정상적인 고통만 남는다. 담담함. 꼭 앞으로만 가야하나?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보니 꼭 앞으로 나가야 할 필요가 없고, 있는 그대로를 직시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에 이른 후 찾아온 감정. 아침도 맞지 못하고 해가 져버린 때도 있었고, 해가 뜨지 않고 비가 내리고 바람만 불던 날도 있었다. 짐승과 같은 울부짖음으로 깊은 어둠을 헤매던 때도 있지 않았던가. 우매함이라 치부해버렸던 나의 우매함이란. 사실 소수의 목소리를 잠재운 다수의 웅성거림이란 또한 여러 소수의 목소리들이었을 것인데 그 소리들까지도 진지하게 들으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소리란 본시 하나이지 않는 이상 웅성거림일 뿐인데. 저 위에서 쳐다보고 있는 이들이 웃고 있었던 것은 뒤를 돌아본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웃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앞으로 나갈 길만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들의 웅성거림도 실은 절벽에 막혀 아우성치는 비명소린 아니었을까? 믿음. 돌아본 그 길에는 나와 같은 이들이 함께 서서 웅성거리고 있다. 원망의 소리와 절망에 빠진 비탄의 소리. 불안과 공포에서 비롯된 비명소리. 하지만 이내 이들도 함께 주위를 둘러보고 있고, 생각에 잠긴다. 더 이상 움직일 틈이 없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꼭 앞으로만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누군가 알려준다. 저 위에 있는 사람들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함께 있노라고. 일단 뒤로 조금 돌아가면 길고, 좁지만 샛길이 있으니 서로를 믿고 조금씩 몸을 틀자고. 손을 놓지 않고 한 사람씩 빠져나가면 이 어둠이 걷힐 무렵에는 모두 앞으로 나갈 새 길에 당도할 수 있노라고. 꿈과 뒤섞여 버린 나의 생각의 끝은 여기까지다. 위대영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345 | 추천: 0
김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저는 대통령이 되면 온몸을 던져서 국민을 위해서, 서민을 위해서 일하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누구의 말일까. 현재 청와대 주인 노릇을 하는 MB의 말이었다.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이며, 주권자라는 말은 법전에나 있는 뜬 구름처럼 느껴지는 MB정권의 시간은 참으로 길고 길었다. 지난 5년간 우리는 주인임에도 심부름꾼에 불과한 MB정부한테 핍박을 받으면서 살았다. 그런데 주인인데도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눈치보고 살았던 그 시간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불길함과 답답함에 머리가 휘청거린다. 왜 주변인으로 구경꾼처럼 살아가는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고달픈 삶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포기해 버린 것인가. 정말 시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와 정의가 강물처럼 도도히 흐르는 아름다운 국가를 만들 수 없고, 그렇게 바꿀 수 없는가. 인간의 존엄성이 살아 숨 쉬는 세상, 사람답게 사는 세상, 그런 혁명을 꿈꾼 사실은 있는가. 우리는 그런 꿈을 이루기 위해 과연 주인답게 현명하게 판단하고 선택하였는가. 여전히 더러운 새끼들이라고 욕설이나 하면서 구경만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가. 오히려 가장 절실하게 부르짖어야 할 우리 사회의 하층계급 시민은 왜 적극적으로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대변하고 이익을 옹호해줄 사람을 찾고 행동하지 않는가. 오히려 하층 계급 시민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와는 정 반대되는 꼴통정당을 지지하는 역설적 현상을 우리는 그저 허탈한 마음으로 바라만 보아야 하는가. 청춘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들은 왜 자신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대한 선택의 순간에 잠만 자고, 무관심한가. 당신들이 조국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외면할 건가. 한 대학생이 오는 12월 19일 대통령선거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만든 포스터 사진 출처 - 헤럴드생생뉴스 인류가 지구에 출현하고, 살아오면서 인간이 평등하게 취급받고, 국민이 주권자로 인정된 것은 100년도 되지 않는다. 선거권이 주워진 것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에서 남녀가 동등하게 선거권을 회득하는 과정은 100년간의 탄압을 견뎌낸 투쟁의 결과였다. 투쟁을 통해 선거권을 획득하였다면 적극적으로 선거를 통해 사회를 바꾸는 방법을 더 잘 알게 되었을지 모른다. 나아가 선거권을 행사한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행사하느냐가 우리 미래와 삶을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혁명의 숭고한 이념을 좌절시킨 나폴레옹 3세 황제도 국민이 선거로 뽑아주어서 가능했고, 인류의 가장 사악한 범죄자로 불리는 히틀러 역시 선거로 선출되었다. 그렇게 역사의 비극을 선택하고 반복하였다. 우리 역사도 예외는 아니다. 박정희가 3선 개헌을 통해 영구집권 음모를 할 수 있게 동의해 준 것도 국민이었고, 유신 독재정권에 대해서도 99%라는 경이적인 찬성을 해준 것도 우리 국민이다. 국민을 총칼로 학살한 전두환과 노태우까지 대통령으로 뽑아주었다. MB를 대통령으로 선출해서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된 민생 파탄, 평화가 실종되어 버린 남북관계, 말 한마디에도 구속당하는 자유의 침해와 핍박을 자초한 것도 국민의 선택이었다. 지난 헌정사에서의 어리석은 선택은 이 땅에 굴절되고 왜곡된 역사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권력자의 탐욕과 패악스런 짓거리는 조국의 산하를 신음소리와 울부짖음으로 채웠고, 소중한 생명과 자유의 상실로 응어리 진 사실도 기억하자. 그래서 이제 선거라는 총을 들어야 한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선거라는 총구에서 나온다. 총을 들어 민주주의 심장을 향해 정확히 조준 발사하자. 고동치는 민주주의 가슴으로 살기 위하여.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 나는 선거 없이 민주주의가 성숙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는 천당 없는 종교를 역설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김희수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402 | 추천: 0
육영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대선을 앞둔 요즘 투표시간을 둘러싼 정치투쟁의 플래카드가 초겨울 바람에 을씨년스럽게 거리에서 휘날린다. ‘투표일을 공휴일로 정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주제로 투표시간 연장의 정당성을 따지는 여야 간의 공박이다. 근대 시민의 특권이자 의무인 참정권의 제한과 확장에 관한 논의를 기회삼아 12월 19일에 내가 행사할 투표권의 세계사적 의의를 곰곰이 따져보자. 흔히 서구 민주주의 발전의 ‘폭발적’ 시발점으로 기록되는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에도 참정권은 ‘일정한 재산을 소유한 성인남자’에게만 매우 제한적으로 부여되었다. 사유재산의 많고 적음을 공민권의 전제조건으로 당연시하는 당시의 시대정신은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에서 법 앞에서의 자유와 평등을 내세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유재산권을 신성불가침한 인간의 권리로 확인하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의회민주주의의 원산지로 기억되는 영국에서도 성인남성이 ‘보통선거권’을 쟁취하게 된 것은 놀랍게도 제1차 세계대전 이후였다. 또한, 1776년에 해방된 신생국가이자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미국에서도 투표권은 목의 가시처럼 불편한 진실이었다. 미국헌법에서 ‘3/5인분 잉여 인간’으로 취급되었던 흑인(혹은 아프리카-아메리칸)에게는 남북전쟁 이후인 1870년에야 시민권이 주어졌고, 애초부터 그 땅에 살고 있던 ‘아메리카 인디언’(혹은 원주민)은 1921년에야 시민권을 얻으며 정치적 투명 인간 신세를 벗었다. (필자의 지식 한계로) 서양 사례에 초점을 맞췄지만, 주목할 점은 유무산자와 남녀성별에 따른 불평등한 투표권에 항의하여 많은 사람들이 희생과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영국 노동자와 중산층은 “평등한 대표권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구호 속에 단결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1819년/피털루 사건]. 이들은 집요하게 항의하여 제1차(1832년/성인남자 1/7 참정권 획득), 제2차(1867년/성인남자 1/3 참정권 획득), 제3차(1884/성인남자 2/3 참정권 획득) 등 일련의 선거법개혁을 쟁취했다. 영국 여성들도 뒷짐만지고 있지는 않았다. 여성참정권 문제에 대한 여론 환기와 자극을 위해 그들은 국회의사당 유리창을 깨며 남성들의 무관심을 깨우쳤고, 경마경기장에서 손살처럼 달리는 말발굽 속으로 뛰어들기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덧붙이자면, 프랑스혁명이 발명한 ‘바리케이드’ 뒤에서 함께 싸웠던 프랑스 여성들은 무려 150여년이 지난 1945년에야 참정권을 겨우 획득했다. “서양인들이 오랫동안 싸워서 따낸 피 묻은 선거권을 거저 얻은 우리들은 그 권리를 소중하고도 고맙게 행사해야 한다!” 따위의 지당하고도 지겨운 역사수업이라고 손사래를 치는 독자들도 있으리라. 그렇다. 우리가 배우고 익혀야 할 역사교훈은 낡은 상식처럼 당연하고 교장 선생님 훈화처럼 반복적이며 까칠하다. 1848년 혁명 직후 프랑스 유권자들은 국민투표를 통해 나폴레옹 3세를 제2공화국 대통령과 제2제정 황제로 선출했으며, 나치즘과 인종 학살로 대변되는 병영국가를 총지휘했던 히틀러도 전폭적인 국민지지에 기반을 둔 합법적인 정권이었다. 그들과 우리, 과거와 현재, 역사와 정치 사이의 아득한 시공간적 거리를 가늠하면서 그 깊이와 넓이의 중첩되고 긴장된 의미를 되새김질하는데 ‘역사적으로 생각하기’의 어려움이 있다. 주지하듯이, 1945년 해방과 함께 우리는 남녀보통선거권을 덤처럼 선물 받았다. 서양식 근대화의 선두주자였던 일본에서도 1889년에 “상당한 재산을 가진 남성들”(전체 인구의 1%)에게만 투표권이 부여되었고 1925년에 성인남자에게만 보통선거법이 주어졌다. 말하자면, 우리 품에 덥석 안긴 투표권은 정치적 훈련과 시련이 압축·생략된 유혹의 산물이었다. 고무신/막걸리 투표, 단풍놀이 투표, 연예인 공연과 여론조사 빙자 투표운동 등으로 진화하는 ‘투표문화’에 정비례하여 우리의 정치 감각과 역사의식은 성숙했는가? 군사독재시절 간접투표를 통해 ‘체육관 대통령’을 뽑던 아픔을 청산하고 내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찍었던’ 지난 20여 년 동안 당신의 일상과 노동과 복지는 건강하였는가? 냉전체제와 세계화시대의 소용돌이에서 그대의 ‘손 맛’으로 작성했던 우리 현대사는 어떤 빛나는 혹은 일그러진 모습이었는가? 식민의 땅과 전쟁과 분단의 황무지에서 ‘압축 근대화’로 꽃피운 우리 현대사는 이제 새로운 과제에 직면했다. ‘개발도상국/제3세계’에서 ‘G20/주변-중심국가’로 발돋움한 우리에게 생산과 분배, 노동과 복지, 혁명과 개혁, 평등과 자유 사이에서 팽팽하게 밀고 당기며 균형점을 찾는 숙제가 부과된 것이다. 성장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아니면 소멸할 것인가? 국가와 대통령이라는 이름의 ‘정치사회’가 ‘시민사회’를 여전히 압도하고 겁박하는 이 땅에서는 ‘깃발 뺏기’라는 기동전의 중요함과 유효함을 과소평가 할 수는 없다. 시대착오적인 세계관에 거주하는 권력의 우두머리를 바꾸지 못한다면, 그 보호막 아래 기생하는 언론권력, 검찰권력, 학문권력 등이 구축한 견고한 진지를 결코 함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파렴치하고 야만적인 재벌(총수/2세-3세)권력에 대한 시민 권력의 정당한 감시와 처벌을 ‘국가신용도 하락’과 ‘수출과 취업전선의 위기’라는 가소로운 수작으로 농탕질 하는 두더지들이 기회주의적으로 고개를 내밀지 못하도록 뿅망치를 내려쳐야 하리라. 생애 처음으로 2011년에 투표권을 얻은 만19세를 포함해 ‘맘이 아픈’ 청춘들, 예비실업자와 비정규직 틈바구니에 낀 2·30대, 보육과 높은 전세·물가의 삼중파고에 허리를 꺾인 여성들, ‘운동’의 상흔과 낭만을 간직한 7080 세대들, 가난의 잿더미에서 선진조국을 건설하는데 불쏘시개가 되었던 60대 이상 어르신들 여러분 ― 오는 2012년 12월 19일은 그대들의 폭풍 같은 분노, 깨알 같은 힘, 강철처럼 견뎌온 희망을 보여주는 날이다. 단순히 특정 대선후보를 선택하는 공휴일이 아니라, 나의 삶과 세계관이 주체적으로 ‘내 손아귀’에 있음을 실존적으로 실천하는 엄숙한 세계사적인 순간이다. 노예해방과 인권선언서, (탈)식민주의와 서구중심주의 등이 상징하는 (대항) 헤게모니들이 경쟁하며 승리하는 숭고한 새벽부터 해거름까지의 그날이다! 육영수 위원은 현재 중앙대학교 역사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480 | 추천: 0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동백 아가씨란 노래 있지 않습니까. 거기 마지막구절이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꽃잎이 빨갛게 물이 들은 것이 아니라 멍이 들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보통은 물이 들었다고 표현하지요 그게 일상입니다. 나의 눈으로 보고 내 머리로 생각하며 내 가슴으로 느끼고 내 발로 걷는 일종의 습관. 따로 연습하거나 반성할 필요도 없이 너무도 익숙해서 눈 감고도 해댈 수 있는 단조로운 실천. 일탈(日脫)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꿈 꿔보고 싶은 말, 그러나 막상 일탈의 문에 발 디딜라 치면 불안하고 불결하고 금기사항이 많은 10대의 치기로 돌아가는 듯 한 단어. 하지만 단지 일상으로 부터의 벗어남일 뿐입니다. 안보던 영화를 보거나 못듣던 얘기를 듣거나 켜켜이 쌓아두었던 책중에 한권을 뽑거나 아니면 여행을 가거나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것들이 일탈 이지요. 타인의 눈으로 보고 타인의 사고로 생각하고 또는 타인의 가슴을 내 가슴에 이식하고 타인의 발걸음을 내 발로 옮겨 보는 일. 그래서 모든 일탈은 성찰에 가깝습니다. 동백꽃이 빠알갛게 “물”이 들지 않고 “멍”이 들었다는 글자 하나를 바꾼 단 한 가지 이유 만으로도 동백 아가씨는 훌륭한 일탈이 되지요. 뜬금없이 시를 하나 읽겠습니다. 안도현 시인의 가을 엽서인데요. “한잎 두잎 나뭇잎이 자꾸 낮은 곳으로 내려 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누어 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한때 낙엽 지거든 물어 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시인은 사랑을 낮은 곳에 있다고 얘기합니다. 은행잎은 애초에 노랗지 않았습니다. 봄볕이 무르익을 때 쯤 아주 여린 연두색 이파리로 태어납니다. 한여름의 뙤약볕. 심지어는 아파트 창문까지 날리는 태풍까지 다 받아냅니다. 그리고 나무가 열매를 맺을 때 까지 그러니까 일생을 나무에게 필요한 엽록소를 공급하기 위해 제 할일을 다합니다. 그런데 어떤가요. 기온의 변화가 심해지고 날이 추워지면 나무는 이제 겨울날 걱정을 합니다.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정리하기위해 나뭇잎에 빼앗기는 양분들도 아낄려고 하지요. 그래서 나뭇잎이 나무 본체로 들어오는 통로인 떨켜를 콱 막아 버립니다. 나무 본체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이 추운겨울 내가 살아야겠으니 너는 이만 내 인생에서 사라져” 마치 아침드라마에서 나오는 아주 못된 배우자의 대사 같은 것이지요. 매정한 이별통보 혹은 절교 선언입니다. 그 신호를 받은 나뭇잎은 그제서야 이별을 준비합니다. 더이상 나무본체를 위해서 광합성을 해야 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사랑의 대상을 잃은 나뭇잎은 서서히 말라갑니다. 제 몸속에 남겨두었던 엽록소 파란색이 점점 옅어지고 노란색으로 변합니다. 그런데 참 놀랄만한 것은 은행잎은 애초에 노란색이 맞다는 겁니다. 봄날 태어날 때부터 카르티노이드라고 하는 노란색 색소를 가지고 있다는 거지요. 단 한 번도 나무의 일원이 되어서 나무를 사랑하고 나무를 위해서 노동했던 그 순간에는 자기 색깔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나무와 이별하고 난 뒤의 단 몇일 혹은 2주? 3주 그제서야 자기 색깔을 드러냅니다. 그게 당신들의 책갈피에 곱게 모셔둔 노란 은행잎입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안도현 시인이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낙엽에게 물어보라고 했는데 “자기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온힘을 다해 희생하는 것” 그게 사랑이란 걸 부끄럽게도 올가을에야 알았습니다. 시를 통해서 얻은 저의 자그마한 일탈의 성과입니다. 머리를 잘 쓰는걸 사리판단이 빠르다하고 가슴이 뜨거우면 정이 많다고들 합니다. 손이 여러 군데 걸쳐져 있는걸 나눔이라한다면 은행잎의 희생, 온힘을 다해 자신을 내 던지는 일은 발이 합니다. 하여 희생의 유일한 도구는 부지런히 발걸음 하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잎이 떨어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지구가 가지고 있는 중력이란 것 때문이지요. 지구의 가장 깊은 곳의 중심에서 모든 사물들을 낮아지라고 잡아끄는 힘입니다. 그 중력 때문에 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사람들은 땅위를 걷습니다. 우리가 일상을 사는 모든 행위들은 모두 이 중력의 힘에 의존합니다. 너무도 당연해서 일상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힘이 바로 중력입니다. 당연히 낙엽의 고단한 희생은 중력에 의해 낮은 곳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다시 내일을 기약 합니다. 누구나 다 아는 너무 뻔 한 얘기를 한다고 핀잔주실 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과문한 탓인지“민중과 함께 민중을 위해” 사는 능력자들은 많이 만나봤습니다. 그러나 “和光同塵”-빛을 감추고 티끌이 되어 섞인다- 스스로 민중이 되어 티끌 같은 삶을 사는 지식인을 많이 만나진 못했습니다. 나무로 굳게 서고자 하는 사람은 좀 있으되 나뭇잎이 되어 바닥을 뒹구는 사람은 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태껏 빨간색 볼펜으로 자기이름 석자도 크게 쓰지 못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2017-07-14 | hrights | 조회: 546 | 추천: 0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지난 11월 2일부터 4일까지 서울지방변호사회 당직변호사 운영위원들과 함께 후쿠오카 변호사회 당번변호사 제도를 견학하였다. 후쿠오카 변호사회가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운영하는 법테라스(일본사법지원센터) 후쿠오카 지방사무소, 변호사회가 시민들의 왕래가 잦은 곳에 설립한 수많은 법률상담센터 중 하나로 텐진 지구에 설립한 텐진 법률상담센터 및 후쿠오카 경찰본부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후쿠오카 변호사회 2층 회의실에서 당번변호사제도와 형사법률구조제도의 운영 현장에서 활동하는 후쿠오카 변호사들과 한일 양국의 체포, 구속된 피의자 및 피고인을 위한 형사변호제도에 관한 상호 궁금증에 대하여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지난 2002년 오사카 변호사회 당번변호사제도의 견학 이후 다시 10년 만에 일본의 형사변호사제도의 변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후쿠오카 변호사회가 최초로 시행한 이래 전국으로 확산되어 운영 중인 일본의 당번변호사제도는 체포, 구속된 피의자들에게 1회 무료 상담의 기회를 제공하여 주는 제도이다. 일본의 당번변호사제도는 영국의 의무변호사(duty solicitor)제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의무변호사는 시민들이 필요해서 부르면 달려가야 하는 변호사라는 의미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1993년부터 일본의 당번변호사제도를 수용하여 당직변호사제도로 운영 중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체포 구속자에게 범죄 혐의 사실 요지, 체포 이유, 진술거부권, 변호인 선임권을 고지하여 주는 장면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이것이 미란다 원칙이다. 의무변호사, 당번변호사, 당직변호사와 같은 제도는 변호인을 선임할 자력이 부족한 체포 구속자에게도 체포 즉시 미란다 원칙을 활용하여 실질적으로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 준다는 점에서 그 의의와 가치가 매우 큰 중요한 제도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운영 중에 있는 당직변호사제도는 그 의의와 가치에도 불구하고 활성화가 되어 있지 않다. 2001년에는 순회 당직변호사제도를 실시하여 시민들의 연락을 기다리지 않고도 당직변호사가 직접 서울지역 경찰서 유치장을 찾아가 체포 구속자에게 무료 상담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나 여전히 시민들 속에서 당직변호사제도에 대한 인식과 지지가 낮아 제대로 활용되고 있지 않는 실정이다. 한국에 비해 일본의 경우 시민들 스스로 체포, 구속되었을 때 당번변호사의 출동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매일 신문 광고란에 홍보되는 당번변호사 연락 전화번호로 당번변호사의 파견을 요청하는 것이다. 당번변호사제도를 잘 알지 못하는 체포, 구속자에게 사선 변호인이 없는 경우에는 경찰서, 법원 영장부에서도 당번변호사제도의 이용을 적극적으로 권고하며 당번변호사에게 연락을 취해주고 있다. 당번변호사제도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과 신뢰가 높은 일본에서는 변호사 입장에서도 체포 구속자를 위한 무료 법률상담이라는 공익적 측면에서나, 형사사건 수임의 측면에서나 당번변호사로 활동하는 것에 대한 참여도가 높다. 한국에서는 당직변호사로 출동하더라도 형사사건 수임구조의 왜곡(전관예우 등 연고 변호사 선호)으로 인하여 번외 상담 이상의 수임의 기회가 되지 않는 탓으로 당직변호사 제도가 정체 내지 답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체포 구속자의 처지에서 체포, 구속 즉시 출동을 요청하면 그 부름을 받고 즉시 달려가 무료 법률상담을 해주는 변호사 이상으로 형사 사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변호사가 존재할 수 있을까, 거의 없다고 자문자답해 본다. 후쿠오카현변호사회와의 간담회 모습 사진 출처 - 서울지방변호사회 일본에 비해 한국의 경우 구속전피의자심문제도(영장실질심사)를 피의자 국선변호제도와 잘 결합하여 사선변호인이 선임되지 않은 구속영장 청구 피의자에게 국선변호인을 의무적으로 선임하여 국선변호인으로 하여금 무료 법률상담과 영장실질심사 시 법정에 참여하여 변론케 하고 있다. 일본에는 영장심사 시 변호인이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이번 방문에서 듣고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서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영장실질심사 단계에서 피의자를 위한 국선변호사 선임이 가능해지면서 당직변호사제도의 중요성이 예전에 비해 줄어든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포 이후 구속영장이 청구되기 전까지의 단계에서의 당직변호사제도의 이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자력이 없는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필수불가결한 중요성을 지닌다. 어떠한 제도이든 시민들이 그 의의를 알고 찾고 지켜주어야 가치를 온전히 실현하게 된다. 변호사 집단에 대한 불신으로 당직변호사제도를 폄하하거나 무리하게 변호사의 헌신을 요구하며 변호사 집단을 매도하는데 당직변호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당직변호사를 숙직변호사로 왜곡하여 야간에 출동 요청을 하였는데 그 다음날 오전에야 출동하였다고 야박하게 왜곡하는 보도행태는 지양되어야 한다. 한국의 당직변호사제도는 시민들의 호응을 받아야 할 당위성이 높은 제도이다. 그 발전을 위해서라도 시민들이 당직변호사제도의 가치를 알고 자주 찾는 가운데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제도 정비를 위한 조언과 비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피의자신문 시 변호인 참여 제도와 결합하여 당직변호사제도가 자력이 부족한 피의자를 위한 피의자 신문 시 참여변호사제도로 발전하는 방안에 대하여 시민들과 함께 토론하고 싶다. 일본의 경우 영장실질심사 시 변호인 참여, 영장실질심사 시 피의자 국선변호제도, 피의자 신문 시 변호인 참여제도가 없다. 2006년 구속된 피의자에게 일정 요건(중한 사건, 자력 부족) 하에 피의자 국선제도가 도입되었다. 일본의 당번변호사제도는 피의자 국선제도가 전혀 기능하지 못하는 오랜 기간 동안, 피의자 국선제도가 도입된 이후에는 피의자 국선제도를 이용할 수 없는 시민들을 상대로, 사선을 선임할 자력이 부족한 시민들을 위한 법률구조제도까지 준비하여 이를 결합, 운영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제도의 준비와 운영을 변호사회가 창설하고 주도하였다. 당번변호사가 출동하여 1회 무료상담을 하였으나 자력이 부족한 체포 구속자가 법률구조를 요청할 경우 변호사회가 만든 재단법인 법률부조협회의 법률구조를 요청할 수 있고 이를 누구나 매우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자력이 부족한 피의자는 당번변호사의 1회 무료 법률상담 이후 국선대상 사건의 경우 법테라스의 피의자 국선제도를 이용하거나 법률부조협회의 법률구조제도를 이용할 수 있고 당번변호사로 접견한 변호사가 법테라스의 국선변호인이 되거나 법률부조협회의 법률구조변호사로 사건을 수임할 수 있게 연결되어 있다. 더욱이 법률부조협회에서 당번변호사에게 지급하는 변호원조비용이 사선 변호사의 선임료에 크게 격차가 나지 않는다. 일본의 경우 피의자 국선변호비용 또한 마찬가지로 사선 변호사의 선임료와 비교하여 현실화되어 있다. 한국의 경우 국선변호료가 사선변호에 비해 너무나 큰 격차가 나는 것과 비교할 때 천양지차다. 법률구조제도를 담당하는 법테라스를 변호사회가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일본에 비해 한국의 경우 법무부가 주도하는 법률구조공단이 법률구조의 중심이다. 현재 한국의 법률구조공단이 가지는 인력과 재정을 변호사회가 주관하여 법률구조제도를 정비, 운영한다면 적어도 형사법률구조제도에 있어서는 시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법률구조제도를 정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현장의 변호사들이 한국의 법률구조제도의 허와 실에 대하여 많은 의견을 갖고 있으나 변호사회가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여 이를 정책과 제도의 변화로 연결하고 있지 못하는 실정이다. 시민들과 직접 접촉하며 법률구조의 필요성을 가장 절감하고 있는 현장 변호사들이 일본의 경우와 같이 법률구조의 중심에서 법률구조제도를 운영하는 경우 시민에게 다가가는 법률구조제도를 정비해 나가는 장점이 있다. 당직변호사제도 또한 그 의의와 가치에 맞게 법률구조제도와 결합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후쿠오카 변호사회 견학은, 피의자신문시 변호인 참여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한국에서 당직변호사제도 등 체포 구속자를 위한 법률구조제도가 제대로 정비되는 그날을 향해 분투하리라 다짐하는 좋은 기회였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513 | 추천: 0
황미선/ 인권연대 운영위원 며칠 전에 ‘광해-왕이 된 남자’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의 부제는 ‘왕이 된 남자’인데, 뜻을 분석해 보자면 처음에는 왕이 아니었다가 나중에 왕이 되었다는 뜻임을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앞에 있는 ‘왕’의 의미는 직책상의 왕이고 뒤에 나온 ‘왕’은 왕으로서 왕이 갖추어야할 덕목 내지는 자격, 역할을 다 한....의 의미의 말이 된다. 광해의 역할을 한 자가 왕이 된 이유는 공인 된 왕이라는 직책이 아니라 자신을 왕이라 여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진정한 왕으로서의 존경과 권위, 그리고 사랑을 얻었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그는 생전 보지 못한 기름진 음식으로 차려진 수랏상을 보고 걸신들린 듯이 먹어치워 상을 깨끗이 비우다가, 나인들이 왕이 남긴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한다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 음식을 고스란히 남겨 마치 어버이와 같은 행동을 하였다. 또한 당시 사대적인 생각으로 똘똘 뭉친 대신들이 명나라가 군사를 요청하니 조선 백성을 보내야한다고 하였으나 그는 백성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함을 강조하여 민초들의 생명을 구제하여 주어 백성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는 대신들에게 조선의 주체성을 강하게 각인시켜 왕으로서의 강한 면모와 품격을 보여 주었다. 그저 돈 몇 푼을 벌기 위해 왕노릇을 하려던 자가 시간이 지나면서 진정한 왕의 모습으로 거듭나 있는 모습이 참으로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 영화를 홍보하거나 영화 관람 후기를 쓰려는 게 아니라 영화가 말하고자하는 어떤 부분이 내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인데, 그것은 그가 비로소 왕이 된 그 이유이다. 요즘 1000만 관객이 관람했다고 하는 좋은 소식에도 이런저런 잡음으로 대놓고 기뻐하지 못하는 분위기인 듯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중요한 가치를 지녔고 이 영화를 보고 좋은 느낌을 받은 사람이라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졌을 거라 짐작한다. 영화 '광해-왕이 된 남자'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씨네21 정치란, ‘통치자나 정치가가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고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시키는 일,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고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되어있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국민이고 모든 국민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하는 역할을 하는 게 정치인이지만 그간 보여 온 그들의 행보는 사회구성원 중 특권층의 이해관계에 비중을 두고 정치행위가 이루어져 왔다고 생각한다. 이런 불평등한 정책으로 그 동안 이룬 경제성장의 단 열매가 고르게 분배되지 않아 소외계층의 불만이 팽배해있고 사회 계층의 빈부차는 더욱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판단된다. 옛말에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개인이 가난하게 사는 것은 그 사람이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개인적으로 이 말은 경제정책의 잘못을 변명하는 사람들이 핑계거리로 사용하는 비겁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부지런히 일을 하고 많은 시간을 노동에 바쳐도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는 사회가 구조적으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사람들이 영화 ‘광해-왕이 된 남자’를 보고 먹먹해하고 마음 따뜻해 하는 것은 이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왕으로서의 측은지심, 정치적 권력을 가진 자가 보여주는 약자에 대한 공감이라고 본다. 그리고 올 12월에 대통령선거가 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정치적인 성향이 있고 나름대로의 판단과 선택의 기준이 있지만 국민들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고 우리나라에서 어떤 정치가 이루어지게 해야하나를 깊이 고민하는 선택이기를 바란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본인 명의로 사저부지를 매입했다는 황태자(?)의 특검에서의 진술은 우리나라 정치의 현실과 정치인들이 가진 관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아픈 현실이 아닌가 생각된다. 국고에 대하여 가져야 할 올바른 가치를 가진 지도자를 꿈꾸는 것이 과연 분에 넘치는 과분한 바람인 것인가? 아래 글은 광해라는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의 후기이다 ‘올바른 정치인을 기다리는 시기에 딱 어울리는 영화....’ ‘그 뻔한 이야기가 사실은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진실이기 때문에 감동이 돼 버린다.’ ‘감동적이고 이상적인 지도자의 인간적인 모습.....’ ‘영화를 보고 여운이 계속 남았다. 저런 정치인이 많이 나오길......’ 황미선 위원은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540 | 추천: 0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개인카드 번호 : 169  성명 문정현  개인특성  ※외고집, 타인과 타협할 줄 모르는 성격, 매사에 도전적, 반항적이다. 신도로부터 존경받음. 금전에 관심 없고 곧은 성격, 저돌적 성격으로 ‘깡패신부’라 불리움. 3, 4공화국시 반정부 활동타 실형 수형 경험. 인혁당 사건은 정부의 조작이다 주장.  개인카드 번호 283  성명 김대중  개인특성  ※사상이 불투명하며 권모술수와 기만으로 정치생활 30년을 일관한 신뢰성이 전혀 없는 위험인물. 1990년 당시 윤석양 이병이 폭로했던 ‘보안사 민간인 사찰 컴퓨터 디스켓’에 담겨 있던 문정현 신부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찰 기록 일부다. 편견으로 가득찬 보안사 요원들의 주관적 서술을 보노라면 세월이 한참 흐른 오늘날까지 새삼 격분하게 된다. 1303명의 사찰 기록을 담고 있던 이 개인별 파일은 인적사항과 가족, 학력과 경력, 전과, 자격면허, 해외여행, 정당 및 사회단체 활동, 교우 및 배후인물, 개인특성과 주요동향으로 이뤄져 있다. 당시 보안사의 위세는 대단했다. 군 안팎의 정보를 틀어쥐고 대통령을 독대하니 얼마든지 왜곡과 조작, 보복이 가능했다. 전두환이 12·12 쿠데타를 통해 쉽게 집권할 수 있었던 이유도 당시 그가 보안사령관이었기 때문이다. 평소의 정보활동을 바탕으로 쿠데타 기도시 누가 반대세력이 될지 미리 간파하고 있었다. 쿠데타와 동시에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해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서 고문한 뒤 내란방조미수죄로 걸어 구속하는 등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대통령까지 배출한 보안사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고,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까지 일삼다가 윤 이병의 폭로로 추락하고 만다. 이름을 국군기무사령부로 바꾸고 원래 설립 목표인 군대 내 방첩활동에 전념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보안사의 이런 약속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보안사의 전신이었던 육군특무부대 역시 비슷한 일을 겪고 이름을 육군방첩부대로 바꾼 바 있다. 1960년 6월29일치 <동아일보>는 이렇게 전한다. “육군특무부대의 명칭이 오는 7월1일을 기해 육군방첩부대로 개칭된다. 특무부대는 본래 군방첩과 대공사찰을 위해 발족되었으며 또한 지금까지 많은 업적을 남겼으나 그 반면에 정치사찰 등으로 항간에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이에 따라 육군 당국은 사일구 이후 동부대의 인사개편을 비롯한 제조치로서 순수한 군방첩부대로서의 군사보안업무와 간첩오열색출에만 전염토록 노력하던 중 이번에 동명칭을 개칭케된 것이다.” 한마디로,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로 물의를 일으키자 4·19 혁명 뒤 본래의 목적인 군대 내 간첩 수사에 전념하도록 이름을 바꾸고 기능을 재정립한 것이다. 기무사가 제버릇 남 못주고 본색을 드러낸 것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다. 지난 2011년 10월 광주·전남 기무부대 요원 2명이 조선대 ㄱ교수의 전자우편을 해킹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이게 무슨 일인가 했다. 특정 지역부대의 과욕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 <한겨레>는 서울에서의 추가 해킹 시도까지 확인됐다며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청와대마저 민간인 불법사찰에 개입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 다음이어서였을까. 신문의 예측과 달리 “기무사령부의 민간인 사찰 의혹 파문이(은) 일파만파 커”지지 않았다. 기무사의 불법 사찰에 다시 한 번 관심이 생긴 계기는 엄윤섭(45)씨의 자살이었다. 기무사의 민간인 불법사찰로 인해 우울증과 불안 증세가 악화한 것이 자살의 원인으로 드러났다. 지난 2009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파업 관련 집회를 녹화하던 기무사 수사관이 집회 참가자들에게 붙잡혔는데, 당시 그는 민주노동당 당원과 시민단체 회원들의 일상생활이 기록된 영상 테이프와 수첩 등을 갖고 있었다. 2008년 총 당시 민주노동당 서울 관악을 후보로 출마했던 엄씨는 물론 아내 안아무개(44)씨의 일상생활을 찍은 테이프도 있었다. 불법사찰 폭로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사찰 영상이 담긴 파일이 플레이되는 동안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긴 엄씨의 눈이 슬퍼보였다. 2009년 8월 국회 민주노동당 의정지원단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 엄윤섭씨가 자신의 일상을 몰래 촬영한 동영상 화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엄씨 등 민간인들의 행적이 담겨 있는 이 동영상은 당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소속 신아무개 대위가 갖고 있던 것이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김봉규 최근에는 기무사 간부들의 미성년자 성매매 등 각종 불법·탈법 행위가 적발됐는데도 상급기관인 국방부에 보고하지 않고 은폐한 사실이 <한겨레> 단독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군 관계자들은 기무사의 잇단 불법·탈법 행위의 배경에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기무사령관을 정기적으로 독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약 독대설이 사실이라면, 앞에 열거한, 이 정부 들어 툭툭 불거져 나온 민간인 불법사찰 부활, 그리고 군의 위계마저 무시하는 기무사의 안하무인적 태도의 비밀이 한꺼번에 풀린다. 이 대통령은 정말 기무사령관을 독대하는 것일까. 독대한다면 왜 하는 것일까. 청와대와 총리실이 자행한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해 한 여권 관계자가 <한겨레21>(2012.4.16)에 밝힌 비밀이 실마리를 제공한다. “좀 과장하면 이 대통령은 불법사찰 보고서를 밤을 새우다시피 읽을 정도로 좋아했다.” 새누리당 한 의원의 얘기는 좀 더 구체적이다. “‘찌라시’ 수준의 보고서라 해도 이 대통령으로선 난생 처음 보는 것이라 매우 좋아했다.” 경찰과 검찰, 국정원의 정보로도 성에 차지 않아, 총리실과 청와대, 기무사까지 사찰에 나서게 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공식적인 정보 및 여론 전달 창구인 언론사들이 이명박 정부 들어 무력해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KBS와 MBC, YTN 등 방송사에 말 잘 듣는 낙하산들을 내려보내 통제하고, 자신은 비밀리에 사적인 채널을 통해 정보와 여론을 청취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성향 자체도 음지를 지향하는 그의 별명과 잘 어울리는지 모르겠다.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을 지켜야할 대통령이 불법 사찰로 취득한 개인정보를 키득거리며 밤을 새워 읽는 모습을 상상하는 건 정말 불쾌한 일이다. 전직 대통령들과 달리, 이 대통령은 여름휴가 때 독서 목록을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는데, 혹시 못 다 읽은 사찰 보고서를 싸들고 가서 읽는 건 아닐까. 한 가지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은 불법 사찰 사건에 대한 여론의 분노가 잘 결집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윤 이병이 보안사 민간인 사찰을 폭로했던 1990년대보다도 민도가 떨어진 것일까. 청와대와 총리실이 민간인을 불법 사찰하고, 증거까지 인멸했는데도, 그리고 그 몸통이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대통령은 이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트라우마 때문일까, 당연히 탄핵 사유인데도 민주당은 탄핵의 ㅌ자도 꺼내지 않았다. 그러니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에 비판 여론이 모이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명박이라는 괴물(이명박이란 사람은 개발독재 시대가 낳은 괴물, 즉 압축적 경제성장 속에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졸부의 대명사다)이 대통령이 된 이후 온 나라가 도덕 불감증에 빠져버렸듯이, 인권과 자유에 대한 국민들의 감수성도 현저히 떨어졌다. 지금 대한민국은 사찰 공화국이다. 경찰과 국정원 요원들은 버젓이 언론사와 민간회사, 공공기관을 드나들며 정보를 수집한다. 기무사는 몰래 그 일을 한다. 그렇게 수집한 정보는 일일보고 형태로 취합돼 청와대에 보고된다.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은 국정원장 독대를 하지 않는 것으로 구시대와의 단절을 꾀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이 거대한 판옵티콘을 해체하는 유일한 길은 해당 기관들이 그런 일을 못하게 하는 것이다. 먼저 경찰의 정보, 보안 조직을 철폐해야 한다. 그 인원을 민생치안에 돌리면 전투경찰 제도를 폐지해도 될 만큼 충분한 인력이 확보될 것이다. 전경 제도를 폐지하면 집회 및 시위의 자유는 더욱 더 잘 보장되고 국민들은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리고 국정원 요원의 기관, 언론사 출입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출입 제도를 그대로 두고 민간인 사찰이 없기를 바라는 건 이율배반적이다. 마지막으로 기무사의 불법 민간인 사찰에 대한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가 이뤄지기를 바란다. 기왕에 국정조사가 예정돼 있는 청와대 및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과 더불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다. 국군정보사령부와의 기능 중복 등을 면밀히 검토해 과감히 통폐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모든 게 정권이 교체돼야 가능할 것이다. 2013년 체제 같은 애매한 용어를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알고 있다. 내년에는 기필코 ‘사탄의 맷돌’을 걷어치우는 ‘거대한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470 | 추천: 0
서상덕/ 가톨릭신문 기자 때는 새나라 왕 그네가 천하통일을 꿈꾸던 민국(民國) 시대, 저마다 ‘내가 왕’이라 참칭하는 이들이 여기저기서 들고일어나 천하 제패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한심하기 그지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지칠 대로 지친 백성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가장 강력한 우익군대를 보유한 그네 왕은 이미 나라를 절반 넘게 평정해 다른 맞수들의 표적이 된지 오래. 전설적인 무예를 지닌 세 명의 검객 합규, 도관, 사균도 자신들의 앞날을 위협하는 그네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이에 그네는 자신의 백 보 안에 그 누구도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는 백 보 금지령을 내리고 엄청난 지위와 명예를 현상금으로 내걸어 그들을 사냥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들의 목을 친 자에게는 십 보 안에서 알현할 영광이 주어졌다. 어느 날 지방의 한 미천한 장수인 재인이 전설적인 세 검객을 처치했다며 그 증거물들을 들고 새나라 왕궁을 찾아왔다. 자신 또한 멸문지화를 당할 뻔한 폐족 출신이었던 재인은 그 공으로 그네 왕 가까이 십 보 안에 들어가게 되지만 결국 그네를 처치하지 못하고…. ‘황제’라는 칭호를 쓴 최초의 왕 진시황제를 둘러싼 역사를 다룬 장이모우 감독의 무협영화 ‘영웅(2003)’을 우리 정치상황에 비틀어 보았다. 이연걸이 주연한 이 영화는 천하의 이름으로 진나라 왕 영정을 암살하고자 나선 영웅들이 천하를 위해 영정을 죽이지 않고 스스로를 희생한 서사 구조를 지니고 있다. 평론가들이나 영화 마니아들은 다양한 이론과 논리로 영화가 지닌 미학을 얘기하고 작품성을 평하지만, 몇 번이나 같은 영화를 본 필자에게는 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자신의 조국을 멸망시키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 원수를 죽이기 위해 ‘정의’라는 대의 아래 모인 이들이 왜 끝내 그 ‘정의’를 실현하지 않고 ‘정의’의 깃발을 내려야 했을까. 영화는 결국 중국이라는 대국적 견지에서 보는 ‘더 큰 정의’ 앞에 ‘작은 정의’를 희생하는 일이 당연한 것인 양 보여주고 있다. 알려진 대로 시황제는 중국대륙을 통일한 뒤 만리장성 축조를 비롯해 아방궁·병마용 건설 등 무리한 토목공사를 일으켜 수많은 백성들을 희생시켰을 뿐 아니라 분서갱유 등을 통해 사상을 탄압함으로써 그가 죽은 뒤 20년도 채 못 가 제국이 멸망하도록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결국 영웅들이 내린 정의의 깃발이 더 큰 악을 부르는 결과를 낳은 셈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정의가 또 다른 정의와 부닥치는 상황 앞에 놓일 때가 종종 있다. 의심 없이 정의라고, 진리라고 믿었던 것을 압도하는 또 다른 정의와 진리가 등장할 때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바로 제주 강정마을에서 이뤄지고 있는 해군기지 건설 사업이나 핵발전소 건설 사업과 같은 일들이 그러한 예다. 하지만 ‘국가적 사업’이 ‘마을의 평화’나 ‘사람의 인권’보다 과연 높은 가치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런 가치의 혼란에는 늘 오해가 자리하고 있다. 정의는 정의이고 진리는 진리다. 정의가 훼절당하고 진리가 훼손당하는 현실 속에 이미 파국적 결과의 씨앗이 뿌려져 있음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장이모우 감독의 무협영화 ‘영웅(2003)’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다음 다시 영화로 돌아가 무림 절대고수 무명(이연걸 분)의 정의에 대한 오해는 그래서 뼈아프기까지 하다. 그의 오해가 결국 오래지 않아 수많은 이들의 피로 가시화됐을 뿐 아니라 더 큰 역사의 왜곡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의협심에 넘치는 이연걸이 될 수는 없다. 더구나 그의 초절정 무예는 꿈에도 꿀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삶 속에서 늘 자신에게 적잖은 무게로 다가오는 성전(聖戰)에 직면한다, 인간다운 삶이라는. 매일 비슷한 무게로 다가오는 성전을 포기할 때 우리는 자신과 주위의 많은 이들을 비인간적인 삶으로 추락시키고 만다. 몇 년 만에 대회전(會戰)을 마주하고 있다, 비기(秘器)를 지닌 무림 고수가 아니라 한 장의 투표권을 지닌 국민으로. 무명의 일이 아니어도 단 하나의 오해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자신에게 닥치는 무수한 결단의 순간에 쾌감과 함께 두려움을 느낀다. 솔직히 역사적 순간에 서 있다는 쾌감보다는 진리를 오해해 잘못된 길을 걷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훨씬 크다. 이 두려움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방법은 좋은 뜻을 나눌 수 있는 이들과 함께 걷는 길뿐이다. 다만 지금도 진리에 다가서길 망설이는 이들을 위해 이 한마디는 전하고 싶다. “오해하면 아니, 아니, 아니 되오!”
2017-07-14 | hrights | 조회: 499 | 추천: 2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최근 한 방송에서 ‘무방비 도시’라는 제목으로 한 시사 방송이 있었다. 그것은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칼부림, 살인, 집 안방까지 쳐들어온 성폭력 등 범행의 이유나 대상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제어 불가능한 ‘괴물’들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다. 지난 8월 22일 저녁 서울 여의도 대로변에서 발생한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되었을 때 우리학교의 교사들은 재학 중인 여러 학생들을 떠올렸다. 화가 나면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맨손으로 창문을 깨고 의자를 집어던져 다른 학생들이 다치게 되는 사고를 일삼는 갑이(가명), 학급의 학생들이 자기를 괴롭게 한다며 갑자기 화가 나서 지나가던 학생에게 주먹을 날려서 코뼈를 부러트리고도, 지나가던 아이의 잘못이라며 우겨대는 을이, 1학년 때는 친구들이 자기를 괴롭히는데, 교사들이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다고 분노를 내뿜다가 음란물에 빠져들고서는 작고 약한 동성의 친구들에게 성적 행동을 강요하는 정이 등 이들에 대한 가정, 학교, 사회모두의 돌봄이 없는 한 ‘괴물’은 계속 나타날 것이다. 학교는 학생들이 날마다 함께 지내면서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 곳이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배우고 이해하는 공감능력을 키워야 하는데,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가기 바쁜 학생들과 많은 행정업무로 피곤을 느끼는 교사와의 관계는 더욱 멀어지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교사들은 학생이 교문을 나서야 행복하고, 부모는 학생이 집을 나서야 행복하고, 학생은 이들이 없어야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현실이다. 뒤늦게 교육과학기술부는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성교육 비전 선포식, 장관과 직원들의 출근길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밥상머리 교육 캠페인, 민간 기업체와의 밥상머리 교육 협약식등 각종 행사로 요란하지만 학교는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또한 학교폭력 관련 자살사건에 대한 대책의 일환으로 내놓는 교육부의 졸속적인 교육정책은 교사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그 예로 현재 운영하는 “위(Wee) 프로젝트”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많다. 위 프로젝트란 정서·행동발달에 문제가 있는 학생들을 상담을 통해서 단계적으로 치유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1차 세이프넷(Safe-net)으로 학교에 위 클래스, 2차는 지역교육지원청의 위 센터, 3차는 시도교육청 차원의 위 스쿨이 있다. 우선 학교에 설치된 위 클래스는 그 학생이 졸업할 때까지 상담을 할 수 있는 연속성이 중요한데 현재 정규직 전문상담교사는 학교 수 대비 3%로 배치 비율이 낮아 상담자가 주로 계약직으로 연속성이 없고, 학교의 환경을 경험해 본적 없는 상담교사는 학생, 교사, 학부모 사이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그리고 문제가 심각해서 2차기관인 지역교육지원청의 위 센터로 보낸 학생 중 부모가 학생과 같은 정신적인 문제가 있을 때는 학생과 부모가 함께 치료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치료 거부 혹은 여타의 이유로 부모의 정신적인 문제와 함께 학생의 문제도 해결되지 못하고 아무런 대책 없이 학교에 되돌아오고 있다. 교육부가 학교폭력 관련 자살사건에 대한 대책의 일환으로 내놓은 위(Wee) 프로젝트. 위 프로젝트란 정서·행동발달에 문제가 있는 학생들을 상담을 통해서 단계적으로 치유하는 시스템이다. 사진 출처 - KTV 학교에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중 가정에서 조차도 보살핌을 받지 못한 학생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발생시킨다. 때문에 선진국들은 가정에서 보호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한 여러 정책을 만들어놓고 있다. 독일의 경우 한 부모·맞벌이 가정 아동, 고립 아동, 이상행동 아동 등 부모가 돌보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1992년부터 ‘호르트’(Hort)라는 공공 방과 후 교육제도를 운영 중이고, 미국은 2002년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하며 ‘21세기 지역사회학습센터’라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 아이들의 개별 학습 지원부터 약물·폭력 방지, 기술교육, 미술·음악·레크리에이션 등 광범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한혜정(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지역 주민자치센터나 공공 회관에 부모들이 모여 사랑방을 마련하고 동네 아이들을 함께 돌본다면 끔찍한 일들을 많이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방법은 스스로를 살리고 서로를 돕는 주민들이 주도하는 마을에서는 약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성범죄나 세상에 복수를 하겠다는 ‘묻지마 살인’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우리 개개인이 자기 동네를 돌봄의 공간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부모와 친구들로부터 소외되는 학생의 외로움과 고통을 들어줄 수 있다면 세상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괴물’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김영미 위원은 현재 신연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389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