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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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이찬수(전 보훈교육연구원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세상은 자연 법칙에 따라 돌아간다. 인간이든 생물이든 자연법칙에 따라 살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인간은 그 법칙을 지적으로 ‘대상화’할 줄 안다. 여기에는 중요한 사실이 들어있다. 가령 고대인이 돌을 쪼개거나 날카롭게 갈면 좋은 무기나 사냥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또는 마른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키는 방법을 알았을 때, 그 고대인은 돌이 날카로워지고 불이 붙는 자연의 법칙을 ‘대상화하며’ 아는 것이다. 법칙을 대상화할 줄 아는 인간은 그 법칙을 하나의 ‘방법’으로 정리해 다른 이에게 전수한다. 이렇게 전수되는 자연법칙이 ‘기술’이다. 불을 피우는 기술 안에는 자연법칙이 들어있다. 그러나 그 기술은 단순히 자연법칙이 드러난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통제’되고 ‘조작’된 것이다. 번개에 의해 불이 나든, 인간이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키든, 모두 자연법칙에 따르는 것이고, 그 자연법칙의 생생한 구체화이다. 그렇지만 벼락을 맞아 산불이 일어나는 경우보다 인간이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킬 때, 자연법칙은 인간 안에 한층 더 분명하게 스스로를 드러낸다. 자연 법칙이 인간 안에 하나의 지식으로 갇히는 것이다. 인간은 지식이 된 자연법칙, 전수된 자연법칙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통제한다. 불도 인간의 목적에 맞추어진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 불을 지피고, 고기를 굽기 위해 불을 피우고, 집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불을 일으킨다. 인간이 자연법칙을 하나의 대상으로 삼아 자신의 목적에 어울리도록 조작하는 것이다. 물론 나무에 벼락이 떨어져 불이 붙든, 인간이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키든, 그것은 자연법칙의 반영이다. 인간이 땅 위를 걷는 단순한 행동 속에도 자연법칙이 들어있다. 그럴 때의 자연법칙은 나무 안에, 인간 안에 그만큼 내면화되어 있으며, 따라서 별도로 떼어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때 인간은 자연법칙과 철저하게 하나 되어 있다. 하지만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만든 불은 인간에 의해 객체화되어 이용당한 불이다. 인간은 불을 이용하면서, 자신이 일으킨 불의 힘을 더 강하게 느끼고, 스스로를 자연의 통제자나 조절자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인간의 문명이라는 것은 이런 방법과 기술의 산물이다. 자연을 이용하는 방법과 기술을 체득할 때 인간은 자연법칙에 따르면서 동시에 그 법칙으로부터 벗어난다. 자연법칙으로부터 벗어난다는 말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객체화한 자연법칙에 따를 때에만 그 자연의 효용성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이 찾아내고 만든 자연법칙이 다시 인간에게 자신의 법칙에 따르라며 요구하는 셈이다. 인간이 자연에 대한 통제 방법과 관리 기술의 주체로 스스로를 간주하는 사이 어느 틈에, 자신도 모르게 그 방법과 기술에 종속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것은 자연법칙에 의해 인간이 다시 대상화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간이 만들어낸 온갖 물질문명이 인간을 소외시킨다는 말이기도 하다. 자연법칙을 추상화해서 기술과 기계를 만들어냈으나, 이제는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과 기계에 따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기계는 인간으로 하여금 기계 법칙에 맞출 것을 강요한다.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 기계를 만들었지만, 물건을 생산하려면 그 기계 법칙에 따라야 한다. 인간에 의해 조작되고 탄생되었으면서도 인간에 의해 속박되지 않는 ‘추상화한 자연법칙’ 앞에서 인간이 다시 객체화되는 것이다. 그 법칙 자체가 주체가 되어서 인간에게 자신의 법칙에 따르라며 요구한다. 지배하는 자가 지배되는 상황으로 역전된 것이다. 2013년 3월 11일, 일본 대다수의 언론에서는 정확히 2년 전에 있었던 동일본 대지진과 그에 따른 후쿠시마 원전(原電) 폭발 사고의 아픔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방송과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대지진과 그에 따른 쓰나미는 어디까지나 자연 재난이었던 데 비해, 그로 인한 원전 폭발 사고는 인위적인 재난이었다는 데에 두 재앙의 근본적인 차이와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인간은 자연법칙을 대상화하면서 핵분열에 따른 에너지 발생 방식도 통제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핵분열 원리에 따라 만든 원자력 발전도 인간이 그 핵분열의 수준과 원리에 맞출 때에만 예상되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문명사적으로 보건대 인간은 역설적이게도 문명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문명의 법칙에 종속될 때에만 문명은 인간에게 효용성을 내어줄 뿐이다. 문명은 인간의 편의대로 생겨난 것 같지만, 인간이 그 법칙에 맞출 때에만 문명은 인간 편을 든다. 원전 역시 인간이 핵분열에 의한 열에너지의 발생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을 때에만 인간에게 유용한 에너지가 된다. 그렇다면 원전 관련 산업이 인간에 의한 완벽한 통제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전문가와 그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답을 낼 수 있겠지만, 이 글에서 말하려는 것은 원전 기술이 인간에 의해 통제된 자연법칙 치고는 그 법칙의 농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다. 자연법칙을 급격하게 객체화시킬수록 인간의 통제 기술에도 한계가 커지기 마련이다. 더욱이 원전 기술이 모든 이의 손에 맡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소수 전문 기술자의 손에 맡겨져 있다는 점도 걱정스럽다. 인류의 미래가 달린 일을 과연 극소수에게 전문가의 손에 맡겨두어도 되는 것일까. 원자력발전은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에 대응하면서 화력발전이나 수력발전보다 경제성이 높다고 보았기에 시작된 산업이다. 하지만 원전 산업은 인간이 자연을 객체화하는 수준과 농도가 지나치게 높은 만큼 인간이 다시 자연에 의해 급격히 객체화될 가능성도 높다. 그래서 위험하다. 그리고 반자연적이다. 자연법칙에 대한 완벽한 조절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아무리 해도 인간의 힘보다 자연의 힘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크기 때문이다. 자연법칙에 따를 수밖에 없는 인간이 자연법칙을 지배하다가 그 극한에 이르러 자연법칙이 다시 인간의 목을 죄어오고 있는 지경에 처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도 문제의식이 크지 않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이명박 정부가 원자력을 수출한다면서 자랑스러워하던 모습을 보면서 어찌 저렇게 근시안적일까 하는 우려로 속을 태웠었다. 상업적 논리에 따라 단기적으로 돈을 벌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자연을 억지로 통제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원전의 안전을 강화하면서 유지하겠다’며 두루뭉수리로 슬쩍 지나려는 느낌이다. 하지만 자연법칙을 통제하며 인위적으로 가두는 방식이 지나치게 위험한 만큼, 원자력 분야 산업은 연착륙시키며 폐기해야 한다. 물론 2012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쓰는 에너지의 31.2% 가량을 원전에서 충당하고 있는 데다, 많은 사람이 원전 분야 산업을 직업으로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원전을 내일 당장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하는 비용에 비해 원자력 발전의 경제적 효율성이 높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그렇더라도 자연법칙을 급격히 통제해가며 얻은 효용성은 당대는 아닐지언정 어떤 형식으로든 그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이른바 원전의 경제적 효용성에는 이러한 후대 비용은 계산되지 않았을 것이 뻔하다. 지난 9일 도쿄에서 열린 원전반대 집회(AFP.연합뉴스)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첫줄 가운데) 등이 시위에 참가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2년 전 동일본 대지진으로 사망 내지 실종된 이가 20,852명고, 이재민이 31만5천명이 넘는다. 그것 자체는 자연 재해라 하더라도, 대지진으로 인한 원전 폭발로 누출된 방사능은 일본은 물론 주변국, 나아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중에 789명 정도가 원전 폭발로 인한 사망자로 확인되고 있다. 전 세계 모든 원전에서 이런 정도의 위험성은 상존하고 있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투자되는 비용까지 포함한다면, 정말 원전이 경제적인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불과 이 년 여 만에 원전의 위험성, 반자연성에 대해 둔감해져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원자력은 효율성만으로 수용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원자력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통제가 지나치게 급격하고 농도도 짙어서 재앙의 가능성이 잠복해 있는 분야이다. 인류의 미래를 내다보면, 더 유지해서는 안 될 분야이다. 자연을 통제하는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안전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겠지만, 논리적으로 인간은 어디까지나 자연의 일부이다. 인간은 애당초 자연 안에 속해 있는 존재이지, 자연 너머에 있는 존재가 아니다. 자연을 완벽히 통제하는 주체가 결코 되지 못한다. 자연을 객체화하면 할수록 위험한 것은 자연 자체보다도 도리어 자연에 의해 다시 객체화되는 인간이다. 박근혜 정부는 머뭇거리지 말고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은 점차 폐기하되, 비용이 더 들더라도 신재생에너지, 자연친화적 에너지 확보에 힘을 쏟아야 한다. 한시바삐 원자력 폐기를 위한 로드맵을 내어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 전 국민이 에너지를 줄이는 일에 동참하도록 요청할 도리밖에 없다. 앤서니 기든스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개발과 국제적 공조를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듯이, 원전 폐기를 위한 국제적 공조에 한국이 나설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것이 결국 인류가 사는 길이겠기 때문이다. 과연 이번 정부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2013년 3월 11일, 일본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추모 행사를 동경에서 보고 들으면서 원전 폐기가 그저 희망만은 아니길 바라며 소회를 적어보았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345 | 추천: 1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사퇴하기 얼마 전, 그에 대한 제보가 신문사로 접수됐다. 주로 밤 생활이 문란하다는 내용이었다. 특파원을 통해 미국에 사는 제보자와 접촉했다. 그런데 제보자의 태도가 좀 이상했다. 취재는 하더라도 자신의 허락 없이는 기사를 싣지 못한다는 둥 자신이 참전용사 출신인 점을 강조하며, 자기 말을 안 들으면 보복하겠다는 둥 이상한 소리를 했다. 제보자를 통한 취재를 포기하고 다른 루트를 찾아보려고 노력하던 중 김 후보자가 사퇴했다. 알고 보니 우리에게 접수된 제보와 비슷한 내용이 한 재미교포의 블로그에 떠 있었고, 트위터를 통해 이 글이 퍼지고 있었다. 김 후보자가 사퇴한 진짜 이유가 이중국적이나 미 중앙정보국(CIA)과의 깊은 관계 때문이 아니며, 부동산 때문도 아닌, 바로 이 글 때문이라는 보도까지 나왔다. 글을 올린 재미교포는 자신을 박근혜 지지자라고 소개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람은 장관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용기를 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김종훈이 자신을 고소해서 미국 법정에서 진실이 가려지길 바란다고도 썼다. 그런데 김종훈 씨는 장관 후보자직을 사퇴하면서 야당을 비난하고 한국을 저주했을 뿐, 이 사람을 제소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퇴를 발표한 지 하루 만에 미국으로 떠났다.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며 미국 국적을 포기하겠다던 사람이 부리나케 미국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허탈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장관 자리를 주지 않는 나라는 조국이 아니란 말인가. 그의 진짜 조국은 어디란 말인가. 김종훈은 미 해군이 발행하는 잡지 <프로시딩(Proceedings)> 2011년 12월호에 ‘군 복무는 완전한 미국인이 되는 통과의례였다’는 제목의 자필 기고문을 실었다. “내가 해군에 들어간 21살 때만 해도 미국 시민권도 있고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우수한 학생이었으나 미진한 감이 있었다. 군 복무를 통해 나는 모두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이곳이 진정 나의 조국이며, 나는 정말로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게 됐다. 이것이야말로 군 복무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적었다. 대한민국 장관으로 내정되기 불과 1년여 전, 자신의 진정한 조국은 미국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사진 출처 - 한겨레 이에 앞서 1998년 미 일간지 <볼티모어 선>과의 인터뷰에서는 한국을 비하하는 듯 한 발언을 했다. 한국에 대해 “닳아버린(frayed-신경을 소모시키는 이라는 뜻도 있다) 국가, 온통 가난만 지배하던 국가라는 기억만 갖고 있다.”라고 말한 것이다. 가난했지만 나를 낳아준 고마운 나라다, 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1998년은 마침 한국이 외환위기라는 초 의 사태를 맞아 부동산과 주식 값이 5분의 1 수준으로 폭락하고 실업자가 쏟아지던 준전시 상황이었다. 미국 시민권자 김종훈은 이때 강남 부동산을 집중적으로 사들인다. 한국을 자랑스러워하지는 않았지만, 투자하면 돈이 될만한 땅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도 그에 대한 여론은 그닥 나쁘지 않았다. 조금만 더 버티면 그는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룡 부처 장관이 될 수 있을 터였다. 나는 이 상황이 참으로 괴이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이돌그룹 2PM의 멤버였던 박재범이 한국을 비하했을 때 한국인들이 보였던 히스테리컬한 반응과 김종훈에 대한 반응의 격차가 너무 커서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였다. 한국 비하 발언 당시 18살에 불과했던 교포 3세 박재범과 38살의 교포 1.5세 김종훈 가운데 누가 더 비난받아야 할까, 라고 물을 생각은 없다. 대신 이렇게 물을 수는 있겠다. 둘 중에 애국심이 더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더구나 김종훈은 CIA와의 특수 관계가 의심되는 사람이었다. 정보통신과 과학기술 등 우리나라의 미래가 걸린 첨단산업을 총괄하는 부처의 장관이 국가관이 불분명한 사람이라면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될까. 미국과 한국의 국익이 엇갈리는 미묘한 상황에서 김종훈은 어느 조국을 선택할 것인가. 김씨가 사퇴해버리면서 이런 질문들이 충분히 제기되지 않았고, 토론되지 않은 채 묻혀버렸다. 이런 사람을 무슨 대단한 인재인양 삼고초려를 했다는 박근혜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탈세범과 부동산 투기꾼, 공금 횡령범 등 온갖 잡범들을 고위 공직자로 추천한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다만, 대한민국 보수의 뿌리가 친일파인 점을 고려하면 박 대통령의 선택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일본이 조국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일제 강점기 친일파들 아닌가. 대한민국의 보수는 지금 그들을 변호하기에 급급하다. 먹고 살려다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티브이 토론회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에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고 애국가도 부르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 대통령으로 출마할 자격이 있는지 물었다. 너희 조국은 어디냐를 물은 것이다. 내가 알기로, 통합진보당을 비롯한 엔엘 진영 운동가들은 누구보다 태극기를 사랑하고 애국가를 사랑했던 사람들이다. 1980년대 후반 태극기를 온몸에 휘감고 휴전선을 넘으려 했던 게 바로 이들이다. 이들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민족주의에 기반하고 있어 국수주의적이라는 비난까지 들어야 했다. 국가관에 관한 질문은 오히려 박 대통령을 비롯한 이 땅의 보수라는 사람들에게 돌려야 한다. 당신들의 조국은 미국인가, 일본인가, 한국인가. 주한미군 범죄에 대해선 쉬쉬하면서 미국의 이익이 곧 한국의 이익이라고 주장하는 당신들의 조국은 어디인가. 일본이 극우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고립화를 재촉하는 한일군사협정 체결을 주장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된 덕분에 경제가 발전했다고 주장하는 당신들의 조국은 어디인가.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353 | 추천: 0
김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노회찬 ‘안기부 X - 파일’ 사건 판결을 접하면서 법은 정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또다시 확인해야 했다. 순수한 법 논리로도 도저히 수긍하기 어려운 부끄러운 ‘XX - 판결’이다. 노회찬 의원은 재벌가 두 사람의 여야 대선 후보 자금지원과 검찰 간부들에 대한 떡값 전달 대화 내용이 들어 있는 속칭 ‘안기부 X- 파일’을 공개하였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하였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선고하였고, 결국 노회찬은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게 되었다. 어느 언론의 지적처럼 통신비밀보호법이 아니라 뇌물검사보호법으로 둔갑하였다. 뇌물을 전달하며 권력부패의 중심에 서있던 삼성 재벌가 사람들은 면죄부를 받았고, 오히려 정의를 부르짖은 노회찬은 범죄자가 되었다. 며칠 후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MB정권은 ‘떼법’이라는 듣보잡의 해괴한 용어를 창출해냈다. 그들이 말하는 떼법이란 ‘법이 있으면 지켜야지 떼를 쓰면 되느냐’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고상틱하게 말하자면 법치주의를 확립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MB정권 5년 동안 법치주의는 줄곧 후퇴를 거듭하였다는 사실에 대해 대다수 법률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나마 미네르바 사건, PD 수첩 사건, KBS 정연주 사장 사건 등에서 보는 것처럼 법원이 나름대로 중심을 잡아 주면서 그래도 법치주의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통신비밀보호법을 법의 취지 및 정의와는 동떨어지게 MB정권의 떼법처럼 해석 적용하는 놀라운 용기를 보여주었다. 법이 정의를 지켜주지 않으며, 법이 정의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사례는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이승만 정권이 영구집권을 위해 자행한 사사오입 개헌사건,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를 비롯한 군부세력이 엄연히 존재하던 민주정부와 헌법을 뒤집어엎고, 자기들끼리 국가재건최고회의를 만들어 비상조치법을 만들어 공포 시행하고, 헌법을 개정한 일, 박정희 대통령 3선을 위한 헌법 개정과 영구집권을 위해 유신헌법을 만든 일, 전두환 등 신군부가 집권을 위해 12·12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헌법을 개정한 일 등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다. 유신헌법 국민투표 유신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가 실시된 1972년 11월21일 박정희 전 대통령과 딸 박근혜 당선인, 육영수 여사(오른쪽부터)가 투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다시 말해 우리의 헌정사 자체가 법이란 정의가 아니라 권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독재자의 만능키로서 작동하였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러한 경우 법은 법이라는 형식만 뒤집어 쓴 것이고, 실제로는 폭력과 전혀 다름없는 것에 불과하다. 법의 두 얼굴이고, 폭력과 법률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대법원 판결 역시 법치가 아닌 정의를 저주하는 폭력과 동일한 선상에 놓여 있다. MB정권에서도 법률을 개악하는 일은 수없이 자행되었다. 한편으로는 검찰을 비롯한 법률기능공들을 이용하여 자의적인 법률 해석을 일삼고, 자기 입맛에 맞게 편파적으로 법률을 적용하며 법치주의를 후퇴시켰다. 그리고 MB는 대통령 임기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편에 서 있다고 보이는 사람들을 용감하게 사면시켜 주면서 법치주의를 무력화시켰다. 이제 향후 5년간은 박근혜 정권이 지배 권력을 행사할 것이다. 박근혜가 말하는 법치주의 모습은 어떨까. 떼법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을 것 같다. 용어 자체가 너무 천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법이 있으면 지켜야지요. 법을 어기는 사람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할 것입니다.” 즉 실질적으로 떼법 논리와 동일한 논리를 적용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정의를 위하여 법률이 만들어지고,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존재해야 할 법이 정의를 짓밟는 악마의 성전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은 역사의 경험칙이다. 형식적으로는 법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법이라고 말할 수 없고, 법의 지배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 과거와 현재의 법치주의 모습이다. 그래서 법치주의에는 정의를 지키는 일에 시민의 참여와 힘이 필요하다. 특히 정치(政治)가 법치(法治)와 만났을 때 법치는 정치의 희생양으로 바뀌었고, 법치는 왜곡되었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정의의 파수꾼으로서 법치주의가 실행되기를 어렵겠지만 기대해본다. 김희수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351 | 추천: 0
육영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2013년 설 연휴를 가족과 함께 즐겁고 평화롭게 잘 보내셨는지요? 명절과 국경일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드는 원동력은 오늘 우리가 다시 돌아가야 할 일상생활입니다. 말하자면, 개인이 하루하루 노동하고 생각하며 욕망하는 하찮은 삶들이 연대하여 또 다른 중요한 역사적인 기념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2013년 계사년을 맞아 우리가 뱀같이 차갑고도 매끄럽게 일상생활정치의 숲을 헤쳐 갈 몇 가지 말씀을 새해인사 삼아 모아보았습니다. Ⅰ 모든 혁명은 하나의 지배집단을 다른 지배집단으로 대치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었다. 그러나 모든 혁명은 목표를 넘어서는 힘, 지배와 착취의 근절(根絶)을 향하여 노력하는 힘을 풀어 놓았다. 그러한 힘들이 쉽사리 패배하고 말았다는 사실이 설명을 요구한다. 권력의 상태도, 생산력의 미숙성도, 계급의식의 부재도 적절한 해답을 제공하지 못한다. 모든 혁명에는 지배에 대한 투쟁이 승리할 만한 역사적 계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계기는 언제나 헛되이 지나가 버렸다. 세력의 미숙이나 불균형이라는 이유의 타당성과는 무관하게, 자기패배의 요소가 혁명의 역할 속에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혁명은 배반당한 혁명이다. - 마르쿠제 1968년 혁명의 아이콘이며 신좌파의 대표 사상가였던 허버트 마르쿠제는 모든 혁명은 본질적으로 ‘배반당한 혁명’이라고 설명합니다. 혁명이 숙명적으로 실패하는 것은 계급(계층)의식의 미성숙이나 지배집단의 억압 때문이 아니라, 민중 혹은 다중(多衆)이 자발적으로 지배층의 세계관을 수용·모방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보통사람들은 교사, 기업주, 정치선동가가 외치는 “하면 [입학, 승진, 선진국] 된다!”는 ‘수행원칙’(performance principle)의 구호를 묻고 따지지도 않으며 합창합니다. 또한, 사용할 물건이 아니라 신분의 상징물인 외제가방이나 첨단전자제품 구입에 목을 매는 ‘과잉 욕구’(surplus desire)의 포로로 전락합니다. 마르쿠제의 분석에 따르면, 열심히 하면 ‘나도 그들처럼’ 될 수 있다는 자유경쟁적인 시대정신과 내가 소비하는 것은 ‘침대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탈 산업사회의 이데올로기에 등 떠밀려 우리는 혁명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거나 배반합니다. ‘지배에 대한 투쟁이 승리할 만한 역사적 계기’가 바람처럼 날아갔습니다. 프랑스 68혁명 당시 구호. "금지하는 것은 금지된다" 사진 출처 - 프레시안   II 망각이란 천박한 사람들이 믿고 있듯이 그렇게 단속한 타성력(vis inertiae)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일종의 능동적인, 엄밀한 의미에서의 적극적인 저지 능력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원자료들이나 사료들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자료나 사료들은 단순히 존재하고 안하고가 아니라, 다양한 종류와 정도로 언급되기도 하고 침묵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총포의 소음장치가 총소리를 침묵시키듯이 사람은 어떤 사실이나 한 개인을 ‘침묵시킨다.’ - 미셸 롤프-트루요 ‘배반당한 혁명’은 과거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망각의 바다에서도 싹을 틉니다. 불편한 진실에 대한 과거 기억을 강제적으로 삭제하거나, 권력의 희생자들을 사탕과 채찍으로 침묵시키면서, 이긴 자들의 역사교과서에서 혁명은 늘 지연되고 실패합니다. 4.19와 5.16의 다른 기억들, 장준하가 베었던 돌베개의 고행과 구로공장에서의 각혈하는 노동의 새벽에 대한 기억은 근대화의 불쏘시기로 산화하였습니까? 국가권력의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방해로 증언과 저항의 기억들이 탈색되지 않도록, 승자들의 달뜬 아우성에 우리들의 낮은 목소리가 침묵당하지 않도록, 역사의 기억투쟁은 머뭇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III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 이 헛소리처럼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 이다 …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광기―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김수영, 〈그 방을 생각하며〉 혁명은 가고 다시 오지 않을지라도, 그 거리에서 함께 부르던 노래와 연대감은 오롯이 남습니다. 안 되는 혁명에 쫓겨 낯선 방에 갇힌 나는 또 다시 녹슨 펜에 침을 묻혀 자유와 평등의 이름을 낙서합니다. 나의 ‘역사를 걱정하는’ 마음이 어리석은 농담처럼 경박할지라도, 우리가 맞이하는 새해는 촛불처럼 밝고 풍성합니다. 너와 내가 간직한 저항의 기억과 혁명의 추억은 봄날처럼 다시 꽃피고 지저귈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혁명은 고독해야 하는 것’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합니다. 까마득한 망루에 올라 허공 속을 걷는 당신의 고독과 그 아래에서 마중하며 숨찬 나의 고독은 만나서 악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혁명은 배반당하거나 승패가 있는 경주가 아니라, 일상적인 저항의 가벼움으로 비누거품처럼 번지고 서로 포옹하는 그 무엇인 것입니다. 육영수 위원은 현재 중앙대학교 역사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354 | 추천: 0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대개 부족한 것이 귀합니다. 귀한 것이 부족한건 아니구요. 부족 하다는 것은 자연의 객관적 실체이고 귀하다는 것은 사회가 부여한 가치기준일 뿐입니다. 하여 미리부터 귀한 존재는 없는 것이지요. 내 부모 내 아이가 귀한 이유는 핏줄 이라는 것 때문 이겠는데 세종대왕 이도는 부인이 여섯에 자식이 스물 둘입니다. 그의 아버지 태종 이방원은 부인이 무려 열둘에 자식이 스물아홉. 이 양반들도 핏줄이라는 것 때문에 가족들이 귀했을까요? 가장 많이 살 부비고 가장 많이 입 맞추고 가장 많이 혼나고 또 가장 많이 역정 내며 살았던 세월의 흔적 그것만이 가족을 귀하게 만듭니다. “천 번이고 다시 태어난대도 그런 사람 또 없는”이유는 한 인간의 삶에서 가족과 같은 존재는 다시없기 때문, 즉 부족하기 때문 아닌가요? 금쪽같다고 그러기도 하고 금보다 귀하다고 그러기도 하던데 만약 금보다 흑연이 현재의 비율과 반대로 부족했다면 아마 인종차별이라는 말은 없었을 거라고 상상해 봐요. 금은 녹여서 지붕의 철판으로 쓰거나 자동차 바퀴의 휠 정도로 쓰일 것이지만 세상의 가치 있는 모든 것들은 흑연으로 도배가 되었을 테니까요. 화폐의 가치도 흑연 본위로 매겨졌을지도 모르고 흑연과 닮은 검은색이 화려함의 기준이 되어서 무색인종에게 가장 각광받는 화장품도 검은색이었을 수도 있지요. 수도가 없었던 시절 한 마을에서 가장 귀한 것이 우물 이었습니다. 당연히 물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몽골 초원에서나 사막에서도 가장 귀한 것이 오아시스입니다. 그 물로 나그네는 목을 축이고 짐승들도 갈증을 해소 합니다.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형성하지요. 자연의 것 중에서 부족한 것은 모두 귀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귀한 것은 독점하지 않습니다. 그게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방식입니다. 사람을 대하는 사람들의 방식은 이와는 좀 다릅니다. 스스로에게는 “부족한 사람” 이라고 낮추며 겸손을 떨지만 자기보다 부족한 타인을 대할 땐 “부족함” 대신에 “모자라다”라는 표현을 더 많이 씁니다. 지능이 부족하거나 학벌이 부족하거나 벌이가 부족하거나 죄다 모자란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그 “모자람”은 차별의 기준이 됩니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모자란 사람은 점점 더 많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 “모자란 사람”의 노동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넉넉해진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부족한 것을 모자라게 인식하는 사람들이 “모자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혹독하기만 합니다. 하여 모자란 사람들은 한강대교의 난간 위를 오르기도 하고 칼바람 부는 송전탑위에서 농성을 하기도 하고 군사기지 반대를 외치며 5년 넘게 거리에서 싸우기도 합니다. 교육기업 재능교육의 해고자 여민희(39), 오수영(38)씨가 6일 오전 8시30분께 재능교육 본사 앞에 있는 서울 종로구 혜화동성당의 약 15m 높이의 종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부족한 것을 귀하게 여기는 자연의 방식이 그리운 날입니다. 그대로 적용을 한다면 신체적 자유가 부족한 장애인이 귀해지고 배움이 부족한 막노동꾼이 귀해지고 생존의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이 귀해지고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분단이라는 것도 귀해지고 분단을 극복하려는 노력도 귀해 집니다. 오늘도 혜화동 성당의 15미터 첨탑위에 해고 노동자 두 분이 올라갔습니다. 그런 사람 또 없이 귀한 분들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395 | 추천: 0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아, 나이를 먹는다. 불혹을 넘어 지천명으로 가는 인생의 여정이 보인다. 나이가 심하게 나를 흔드는 것을 보니 갱년기인가 보다. 당뇨에도 흔들리지 않고 술과 인정에 취해 휩쓸렸건만 세월에 장사가 없다더니 허리 병의 고통에 지친 몸이 지난날의 객기를 통탄하누나. 젊은 시절부터 허리 병이 도져도 조금만 각성하고 몸을 관리하면 금세 원기회복이 되기를 수십년. 구부정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걷는 폼이 노인이 따로 없다. 채 몇 초를 걷지 못해 주저앉고 누워서 꼼짝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내 입에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의 한숨과 함께 저절로 터져 나온 맹세가 있다. ‘남은 여생, 다시는 제 육신을 괴롭히고 학대하지 않겠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간혹 나이를 의식하게 된 계기들이 있다. 스물 여섯 살에 늦깎이 방위로 용산의 군 복지시설에서 웨이터를 했었다. 당시 나이어린 고참들이 ‘나이값 못한다’고 얼마나 갈구 던지... 양식당 웨이터 고참들이 제일 무서웠다. 그때까지 가난하게 자라고 연애 한 번 못해 양식을 먹어봤어야 양식 세팅이 수월했거늘 - 와, 양식에는 숟가락, 나이프, 포크, 빵에 바르는 것 등 가짓수도 많고 수프, 야채, 빵, 주메뉴 등 차례대로 격식을 차려 내놓고 주메뉴는 커다란 쟁반에 들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양손에 희안하게 껴서 서빙하라는 것이다. 정말 외우기도 어려웠다. 야채 나갈 때 빵 나갔다고 구르고, 수프를 너무 많이 떠서 줬다고 야단치고 주 메뉴는 격식대로 제대로 들고 나가지 못한다고 원산폭격 당하곤 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나이값 하고 상관이 있겠는가, 이 어린 고참 녀석들은 항상 학력과 나이값 타령하며 심하게 갈궜다. 모욕적이었다. 암기에 능한 범생이로 자라나 개인 과외 외에는 사회적 경험도 고생도 전혀 몰랐던 자신을 돌아보며 자책도 하고 다짐도 했었다. ‘나이값’하며 살자고. 고참들의 말이 영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양식당 웨이터에서 영원히 배제된 후 한식당에서 만큼은 된장찌개, 설렁탕 등 부지런히 서빙을 하는 가운데 국방의 소임을 무난히 완수했다. 다시 ‘나이값’에 대해 새삼 실감하게 되는 갱년기가 찾아왔다. 신체의 건전한 발달을 도모하지 못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며 인생의 중반전을 훌쩍 넘긴 줄도 몰랐던 어느 날 갑자기 건강의 적신호 하나로 육신과 정신의 변증법적 통일을 지향해 나갈 수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했다. 거울로 자신을 찬찬히 훑어보는 귀중한 경험의 시간을 가졌다. 왜 이리 나이 먹어 가는 줄을 몰랐을까 하는 회한이 든다. 골병이 들 때까지 제 때 추스르지 못하고 ‘인생은 짧고 굵게’라는 객기로 세월을 거역하며 내 인생에 큰 불경죄를 저질렀다. 건강하게 살며 자신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삶의 여정이다. 그 가운데 시행착오를 반복할 수도 있겠지만 불혹을 넘겨 지천명으로 가는 내 인생의 여정은 솔직히 너무 멀리 왔다는 대오각성이 일었다. 육신의 쇠퇴를 경험하는 순간, 스스로의 경험과 학습의 부족을 느끼고 내 인생의 수많은 빈 구석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쳇바퀴 돌 듯 바쁜 직업의 일상에 안주하며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신도 쇠잔해져 가고 있었다. 초심은 과거일 뿐이고 현재를 채찍질하는 초심이 없다. 관성의 법칙에 따라 제 몸 하나 관리하지 못하는 그 모습 그대로 인생을 허투루이 소비만 하였을 뿐 채워 나가지를 못하고 있다. 일상이 스트레스로만 느껴졌기에 술과 함께 일상의 탈출을 꿈꾸었던 것이 아닐까, 정신과 육체에 작은 것 하나라도 생산적으로 채워나가는 그 소중함을 망각하였던 것이 아닐까, 무엇 하나 제대로 채워 넣은 것 없는데 무엇에 안주하여 불혹을 넘어 지천명으로 가는 길을 이토록 방치하였단 말인가. 지천명이 다가오는 소리가 저만치 들린다. 이제 회한을 거두고 초심을 다시 만들어 ‘여생’에 대한 알찬 설계도를 그리자. 허리 병을 앓는 새해의 참회록이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379 | 추천: 0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학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학생들이 “편하지 않은 집”, “창틀 안에 갇혀있는 느낌”이란 답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다큐멘터리 <학교의 눈물>과 드라마 <학교2013>은 지금의 학교가 어른들이 만들어낸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것과 가해자와 피해자를 이분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보여주었다. 중학교 입학 때 왕따를 경험한 정순이(가명)는 2학년이 되어서는 왕따를 시키는 아이가 되어서 학생폭력위원회에 회부되어 강제전학을 가고, 항상 학생들이 자기를 때리고 괴롭힌다는 혁이(가명)는 2학년 때 신체가 커지면서 자기보다 작은 아이들을 찾아 괴롭히고 협박을 하고, 폭력에 시달리던 정근이가 폭력서클에 스스로 가입해서 폭력을 일삼는 아이로 둔갑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던 교사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무기력함을 어쩌지 못하는게 사실이었다. 학교폭력의 피해자와 가해학생 모두 심리분석 결과 높은 우울감과 낮은 자존감이 발견된다. 피해 학생들은 용기를 내 신고해도 그 증거를 입증해야 하고, 가해자가 처벌된 뒤에도 남아있는 아이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가해학생의 경우에는 징벌을 완수한 뒤 자신의 행동을 후회는 해도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모습이 적어, 같은 폭력이 되풀이 된다. 교사들이 보아왔던 폭력사건에 관련된 가해학생들의 대부분이 지독한 가난으로 인해 부모로부터 방치되어 올바른 생활습관도 배우지 못한 아이들, 병든 조부모 곁에서 버티며 사는 아이들, 정신과적으로 문제 있는 부모들(피해망상, 심각한 불안증, 대인관계 회피증)에게 습관화된 아이들, 가족들의 폭력이 일상화 되었던 아이들이었다. <학교의 눈물>의 담당피디는 “가해자를 지켜보고 있으면 의외로 순수하고 착합니다. 왜 그런 짓을 할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요. 처음부터 큰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나쁜 길로 빠져요. 아이들이니까 그렇게 둔해지는 거죠. 어른들이 사건 발생시 최초에 개입하게 된다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했다. 사진 출처 - SBS 이런 학생들에게 학교와 사회는 소통과 치유로 다가 가야 한다.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소통할 수 있도록 감수성을 기르고, 교사와의 소통이 어려운 학생들은 ‘또래 상담’(상담활동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 도와주는 것)을 통해서 학교폭력이든, 왕따든 부모나 교사에게도 할 수 없는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건 친구를 통해서 할 수 있도록 하고, 학교에서는 학생들과의 소통과 학생들의 치유를 위한 여러 가지 노력들을 계속 해야 한다. 사회적으로도 '사회의 빈부격차가 클수록 학교폭력 지수도 높다'는 캐나다의 한 연구팀 논문에서 지적 되었듯이 소득불평등과 빈부격차를 줄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학교의 눈물>은 학교폭력을,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영혼의 패자로 남는 잔혹한 게임’이라 말한다. 그런데 거꾸로 사회는 부산스럽게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각 지방 경찰청과 교육청 협력으로 스쿨폴리스를 발족하며, 가해 학생의 징계가 더욱 강화되는 모순만 되풀이 하고 있다. <학교의 눈물>에서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에게 판결을 내리던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학교폭력의 일차적 책임은 아이가 아닙니다. 사회가 만든 겁니다. 이 아이들 전부 대한민국의 아이들 아닙니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저지른 아이들을 벼랑 끝까지 내몬 것은 결국 어른들이다. 학교가 아이들의 꿈이 되지 못하고, 아이들을 경쟁이라는 매질로 학대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학교의 눈물은 그칠 수 없을 것이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신연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396 | 추천: 0
- '찌질함'에 대한 짧은 생각 서상덕/ 가톨릭신문 기자 그날(!) 이후 한 달 남짓한 시간이 흐르고 있을 때였다. 책상을 정리하다 문득 이중섭이 떠올랐다. 책상 위를 나뒹굴던 종이쪽들 때문이었을까. 나도 기가 찼다. 지금 왜 이 사람을…. 그놈의 ‘왜?’를 파먹고 살아온 사람인지라 순간 프랑스 상징시인 폴 발레리의 말처럼 이 또한 무슨 ‘계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보통 사람들이 이중섭하면 빈센트 반 고흐처럼 강렬한 인상을 던져주는 그의 ‘소’ 연작을 떠올릴 때 나는 그의 ‘찌질함’이 먼저 떠오른다. 고흐처럼 생전 가난과 인연이 많았던 이중섭은 6.25 때문에 제주도로 피난을 가서도 그림에 대한 갈망은 누를 수 없었든지 담뱃갑을 벗긴 은박지쪼가리나 눈에 띄는 어디에라도 자신의 빛나는 재능을 남겼다. 하찮은 사물들도 그의 천재성의 세례를 받으면 새로운 생명을 얻어 빛을 발하기 일쑤였다. 담배 은박지를 이용해 그린 <게와 가족>, <아이들> 등의 작품도 그의 찌질한 구석, 그의 가난한 삶에서 나온 셈이다. 그는 생전에 그린 500여 점의 작품 중 200여 점의 유화보다 더 많은 작품을 은지화로 남겼을 정도로 찌질한 삶을 살았다. 갑작스레 이중섭의 찌질함이 떠올랐던 건 우리 삶이 그 못지않게 찌질하다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이중섭 <아이들> 1950년대 사진 출처 - 국립현대미술관 ‘무엇 하나 가슴 뛰게 하는 일을 품고 있는가!’ 이 물음에 쉬 긍정의 대답을 내놓지 못하는 현재에 대한 슬픔이 찌질함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중섭은 뭔가 달랐던 모양이다.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찌질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마음을 품고 살았던 게 틀림없다. 그는 아내 마사코, 3살, 5살 되는 어린 두 아들과 1.4평의 코딱지만 한 방에서 살았던 1년 남짓한 서귀포에서의 시간을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되뇌고 있다. 제주 4.3사건과 6.25전쟁 등으로 변변한 영정사진 하나 없이 졸지에 변을 당한 이웃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초상화를 그려 건네던 화가 이중섭은 겉으로 드러나는 찌질함에 비해 마음만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더욱 빛나는 천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문학도라는 자부심이 조금은 남아있었던 시절, 이중섭을 흉내 내 신문지 여백이나 종이쪽 귀퉁이 등에 몇 자 끼적여 놓고는 통쾌하게 바라보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건 또 왜일까. 이문열이나 김지하의 훼절 또는 배신을 보며 가슴을 할퀴어대던 기억이 몽롱하다. 그들이 그 길로 걸음을 옮겼을 때 나는 그들을 내 가슴에서 죽였다. 육당이나 춘원을 보지 않았더란 말인가. 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글 빚을 넘어서 스스로를 노예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 모습이라니…. 이중섭처럼 일찍 죽지 않은 것이 한스럽다. 스스로는 자신들의 처지가 찌질하다는 생각조차 못하는 군상들이니 더 그렇다. 한화갑, 한광옥, 김경재…. 인터넷에서 이들의 이름을 치면 '변절'이라는 말이 함께 뜬다. 이들은 도대체 무엇의 노예가 되었길래 스스로 찌질이의 길을 택한 것인가. 권력, 그리고 시대의 노예가 수없이 양산되고 있는 이때. 우리는 이중섭처럼 잠시나마 행복의 기억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인가. 다시 묻고 싶어진다. ‘가슴 뛰게 하는 일을 품고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해 답하지 않고는 목구멍 끝까지 차오르는 답답함과 찌질함에 대한 기억을 지우기 힘들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 마음은 영원히 풀지 못하고 안고가야 할 숙제인지도 모른다. 무엇이 됐건 가슴을 뛰게 할 무언가를 지니고 살아가지 못한다면 살아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음을 본다. 문득 심장이 뛰는 모습이 보고 싶어진다. 찌질함 속에서도 열정을, 사랑을 불살랐던 이중섭이 보고 싶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462 | 추천: 2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법조권력의 정상을 구가했음에도 최근 들어 정당정치와 정부권력에 들어가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 공직자의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고 공무원노조나 교사의 정치적 표현에 대해서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정치성을 두들기더니 그들의 돌진적 정치성의 정체가 궁금하다. 삼성과 김앤장에 취업하는 법조인만 문제가 되겠는가? 나는 그들의 정치성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들이 타인에게 요구하는 위선적 비정치성과 고위법조인으로서 자신의 은폐된 정치성을 비난할뿐이다. 헌법재판소의 장래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헌법재판소는 자체적으로 바뀔 수 있는 기구가 아니다. 외과적인 수술, 헌법을 고쳐야만 바꿀 수 있는 기구이다. 그래도 바꾸어야 한다. 제도로서는 완전히 미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수명이 다한 기구는 해체해야지 마냥 숭배할 일이 아니다. 때마침 헌법재판소장의 인준청문절차를 앞두고 후보자의 재판전력이 도마에 올랐다. 정의진보당 노회찬 의원은 후보자가 반역사적이고 반사회적 견해를 가졌다고 질타하였다.(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68865) 지금 정부여당의 기세로 봐서는 헌법의 부재증명을 하던 인물이 소장의 반열에 오를 것도 같다. 그러한 분이 헌법재판소장이 된다면 유감스럽지만 헌재의 앞날은 말하기 더욱 쉽겠다. 헌법재판소는 무엇인가? 사회적 갈등에서 자원배분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정치적 공간이다. 사실 이런 일을 하지 않는 공공기관이 어디 있겠는가! 헌법재판소는 다만 이 작업을 특별히 헌법과 기본권의 이름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인권의 마지막 보루라는 명성도 덤으로 얻고 있다. 그러나 현재 헌법재판소는 이 이름에 어울리는가?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편향 속에서 악법을 두둔하며 사회갈등을 지속시키고 있다. 용산참사, 노동자의 자살사건의 배후에 무엇이 있는가? 기업가의 탐욕, 이를 정당화하는 악법, 그 법을 그대로 적용하는 법원, 그 법을 정상화하는 헌법재판소가 있다. 팬을 관리하는 연예인처럼 헌법재판소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품고 있는 환상을 관리해 주어야 한다. 가끔씩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정의의 환상을 재생산해야 한다. 그래야 법에 대한 국민의 충성심을 빨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환상 관리에 실패하고 있다. 저차원의 폭력기구들 위에서 헌법의 개념을 구사하는 고비용의 기구일 뿐이다. 헌법재판소는 흔히 말하는 87년체제의 부산물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87년 헌법의 장식품이자 법조인들에게는 망외의 불로소득이었다. 헌법재판은 법조인들이 소화하기에는 너무나 큰 빵이었다. 물론 87년 직후 얼마동안 헌법재판소는 과거 억압적 유신체제와 5공의 유산을 법치주의적으로 정비하는 데에 일조하였다. 그러나 지금 헌법재판소가 다양한 정책적 법제에 대하여 그러한 통제역할을 수행할 만큼 국회보다 전문적이고 진보적인가? 아니다. 더구나 헌법재판소가 구사하는 코드는 합헌위헌 하나뿐이고, 이것도 대부분 합헌으로 귀결되고 있으므로 헌재는 더 이상 효과적인 통제장치가 아니다. 이러한 허구적인 통제장치는 도리어 의회의 부실입법을 조장할 우려마저 있다. 사진 출처 - SBS 헌법재판소를 어떻게 혁신해서 활성화해야 하는가? 첫째로, 근본적인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데에 법률가식 합법불법 코드로 충분하지 않다. 법률가보다는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이 재판관으로 참여하여 국제적인 기준과 현장의 체험에 기초하여 합리적이고 종합적인 해결책을 권고하는 정책적 포럼을 만들어야 한다. 위헌성여부가 법적으로 과중한 의미를 갖는 한 위헌심사는 효과적이고 일상적인 개혁수단으로 작동할 수 없다. 인권 침해적 법률에 대해서도 다양한 결정방식을 마련하여 권고의견을 시간표에 따라 이행하도록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로, 갈등당사자들은 갈등해결기구에서 적절한 대표성을 가져야 하는데, 현재와 같이 옹골차게 보수적인 노신사가 9인중 6~7인에 이른다면 헌법재판소는 기능부전상태에 이른다. 헌법재판소에서 변호인들이 인권에 대해 아무리 훌륭한 경연을 펼치더라도 결과는 쇠귀에 경읽기다. 재판관(패널)이 최소한 정치적 견해의 점유율에 부합하면서 다양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더 정의롭게 말한다면 의회와 행정부를 차지한 정치세력은 이미 과도하게 대표되고 있으므로 정치적 반대파와 사회적 소수파의 정치적 점유율을 할증해 주는 방식으로 구성해야 한다. 상설적인 기구로 만들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많은 다수가 결정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앞의 두 방안은 현재의 헌법재판소를 땜질하여 일종의 다수의 전문가위원회의 정책권고기구라고 할 수 있다면, 마지막 방안은 상설적인 헌법재판소를 폐지하고 헌법배심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법률의 위헌성여부는 크게 보아 법률의 공익성과 합리성의 문제이다. 일반형사사건의 배심제와 유사하게 공익판단을 위한 헌법적 배심제를 구상해보는 것이다. 전국적 수준에서 성인남녀의 신청을 받아 배심원명부를 작성하고 무작위로 추첨하여 재판부(200명)를 구성하고 해당갈등에 대하여 주말 워크샵 방식을 통해 전문가의 설명과 난상토론을 지켜보도록 하고 다시 일정한 시간을 가진 후에 공식적인 법정에서 투표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의 운명에 대한 결정권을 법조엘리트에서 찾아 보통사람들에게 되돌리는 일이다. 아무튼 사회일각에서 87년 헌법체제의 수명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현재와 같은 헌법재판소는 반드시 해체하고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391 | 추천: 0
홍승권/ 인권연대 운영위원 전 지구적으로 만성적 경제위기가 계속되면서 서민들의 가계 주름도 날로 더욱 깊어만 가고 있다. 이러한 경제위기는 좀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그러니 취업이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다니던 직장에서 구조조정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가뜩이나 사회적 안전망이 다른 OECD 국가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아직 정년이 한참 남은 나이에 이런 상황에 처하면 그 절박감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그래도 한 가지 ‘비빌 언덕’이 있다면 ‘실업급여’ 제도이다. 그 수령기간이나 수령액이 얼마 되지 않아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지만 그나마라도 있는 것이 다행이라 할 수 밖에 없다. 사진 출처 - KBS 주위에서 실업급여를 과거에 탔거나 현재 타고 있는 사람들, 또는 타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적잖게 대하게 되는 요즘 현실이다. 그런데 이 실업급여를 타기 위해서는 꾸준한 구직활동을 해야 하고 이를 입증하는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아주 오래 전(십여 년 전쯤)에 주위 사람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저 건성으로 ‘좀 이해가 안 가는데?’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그 사이에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구직활동의 알리바이를 위해 면담이나 명함 등을 요청하는 경험을 하게 되곤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게 되었다. 누군들 얼른 재취업하여 하루라도 빨리 경제적 안정을 도모하고 싶은 마음이 없겠는가? 그런데 말처럼 취업이 쉬운 게 아니고, 또 사람에 따라서는 한두 달 정도 쉬고서 재취업한다든가 여러 가지 사정이 있을 텐데 실업급여를 타는 조건을 이처럼 까다롭게 하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취업 상태에서 실업급여를 수령하는 부정수급자라면 엄정하게 가려내고 법적인 책임도 물을 일이겠지만 취업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실업급여를 주지 않겠다는 발상은 국민들의 생존권적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러한 연유로 많은 사람들이 정상적인 구직활동이 아닌, 아는 사람을 통하여 면담을 보았다고 해달라든지 명함 좀 달라든지 하는 식으로 본의 아닌 거짓말을 통해 실업급여를 받고 있다고 들었다. 실제 구직활동을 정상적으로 하려면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경력사원을 뽑는 구인공고가 폭넓게 있어야 이력서도 내고 면접도 볼 수 있을 텐데 요즘 같은 불경기에 구인 광고 조차 보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꾸준한 구직활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실효성이 없는 까다로운 조건으로 인하여 국민들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는 이런 제도는 한시바삐 대폭 개선해야 한다고 본다. 실업급여가 종신까지 무기한으로 지급되는 것이라면 몰라도 불과 최장 6개월간 지급되는 실정을 고려한다면, 실업급여의 수령조건은 다니던 직장에서 본의 아니게 그만 두게 되는 경우에는 구직활동에 대한 입증 여부와 관계없이 무조건 지급하는 것으로 하루빨리 제도가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홍승권 위원은 현재 삼인출판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375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