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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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이찬수(전 보훈교육연구원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서상덕/ 가톨릭신문 기자 “여보세요? 저 교황입니다.” 자신이 받아든 전화기 너머로 교황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어떤 기분일까. 지난 2013년 여름 이탈리아 신문 <라 누오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둘러싼 일화가 실려 화제가 됐다. 베네치아 근교 파도바 시의 한 대학생이 교황에게 보낸 진로상담 편지에 대해 교황이 직접 청년에게 전화를 걸어 자상한 조언을 해준 것이다. 아무 예고도 없이, 다른 이도 아닌 교황이 직접 건 전화를 받은 청년의 심정은 어땠을까. 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진땀깨나 뺐을 법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름 없는 평범한 이들에게 손수 전화를 걸어 깜짝 놀라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을 경청함으로써 그들의 현실을 이해하고 위로해줌으로써 큰 웃음과 위안을 자아내게 한다. 공식석상에서도 고상하게 다듬어진 발표문을 제쳐놓고, 즉석에서 자신의 진심을 담은 연설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교황은 호화로운 관저를 거부하고 자신을 뽑은 추기경단의 비밀선거인 콘클라베가 열리는 동안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인 ‘성 마르타의 집’에 머무는가 하면, 그간의 전례를 깨고 여성 무슬림 죄수의 발을 씻겨주기도 하고, 낡은 차를 직접 몰고 로마 시내를 돌아다닌다. 교회 안에서 금기시 되어온 동성애자에 대해 “내가 어떻게 심판할 수 있겠느냐”고 해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러한 교황의 행보는 그를 슈퍼스타 이상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Fortune)지가 선정한 세계 위대한 지도자(Greatest World Leader) 50인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가 하면, 미국 <타임>지는 그를 2013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교황이 <타임>에 올해의 인물에 선정된 것은 지난 1994년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전 세계 가는 곳마다 ‘프란치스코 효과’를 뿌리며, ‘프란치스코 신드롬’을 낳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기 비결은 소통에 있다. 그는 소통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본질이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도 결국 인간과의 새로운 소통의 길을 열기 위해 이 땅에 왔다고 할 수 있다. 예수와 마찬가지로 교황의 소통은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는 겸손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 교황이 올 8월 한국을 찾는다. 교황의 높은 인기에 따라 한국 방문과 관련된 뉴스도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교황의 방한을 두고 가톨릭교회 안팎에서도 다양한 흐름이 존재하는 듯하다. 1984년과 1989년 두 차례나 방한한 요한 바오로 2세 때처럼 독재정권의 폭압을 누그러뜨리며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장이 열릴 거라는 기대가 한편이라면, 다른 한편에서는 방한의 경제효과를 셈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교황이 누누이 위험성을 경고한 ‘경제논리’가 교황 방한의 효과를 분석하는 데 동원되는 아이러니라니. 이런 속내가 다른 뜨거운 기대 속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일정이 확정됐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진보진영은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기 힘든 모습이다. 역대 가장 진보적인 행보를 보이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지만 방한 일정을 주도하는 것은 보수정권과 교회 내 보수 세력이기 때문에 당연한 귀결인지 모른다. 교황 방한의 표면적인 이유는 아시아청년대회 참석이다. 대전에서 열리는 이 대회 참석 이후 충남 당진의 솔뫼성지와 서산의 해미성지 등 종교적 색채가 짙은 장소를 중심으로 방문하도록 동선이 짜여 있다. 이러한 일정 역시 보수성향이 강한 교구들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가톨릭교회의 최고의결기구라고 할 수 있는 주교회의에서 의결권이 있는 25명의 주교들 가운데 3분의 2 가량이 보수적인 색채가 짙다. 이 때문에 가톨릭의 대외적 이미지와는 다르게 이런 대형 이벤트에서는 거의 보수적이고 과거지향적인 결론이 나올 때가 많다.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남부의 섬 람페두사에서 아프리카 난민 500여명을 실은 배가 뒤집히는 사고가 일어나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각 현장을 찾아 난민들의 고통에 함께했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넘어오는 관문 역할을 하는 람페두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 이후 첫 외부 공식 방문지로, 사고 전인 7월에도 다녀간 바 있다. 가장 낮은 곳을 찾아 가난한 이들, 아픈 이들, 버림받은 이들, 소외된 이들의 친구가 되려는 교황의 행보는 전 세계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교황의 한국 방문 중 이러한 극적인 장면은 기대할 수 없을까. 교황의 진면목을 가까이서 볼 수 있길 바란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388 | 추천: 2
- 指鹿爲馬의 고사에 빗대어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진(秦)나라 승상 조고(趙高)가 진시황의 대를 이은 멍청한 아들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며 말했다 “폐하 말을 바치오니 거두어 주시옵소서” 환관 출신으로 진시황 때 권세를 누렸던 구신(舊臣)들을 척살하고 승상의 자리 까지 오른 인물이니 그의 잔혹성과 권모술수는 정평이 나있는 터. “허~ 승상 사슴을 가지고 말이라 하시니 맛이 가도 꽤 가신 것 같소. 이보시오 대신들, 대신들은 어떻게 생각 하시오?” 멍청한 황제 호해가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대신들에게 되물었다. 이미 조정은 조고의 수하에서 놀아나고 있음을 그리도 몰랐단 말인가. “저~ 저건 ... 사슴이 분명하옵니다.” 눈빛으로야 그렇게 얘기하는 신하들이 많았지만 대놓고 말하는 자들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 아닌가. 조고의 눈 밖에 났다가는 단칼에 목숨이 아작 난다는 사실을 모르는 대신들은 없었으니까. 나라 망하는 거 잠깐이다. 결국 간신의 제국이 된 진나라는 그 유명한 초한지의 항우와 유방을 부르고 당황한 조고는 2대 황제 호해를 죽이고 세운 3대 황제 자영에게 쓸쓸한 죽임을 당하고 마는데. 진시황이 죽은 지 딱 4년 만에 일어난 일. 만리장성과 불로초로 상징되는 영생의 길을 살고자 했던 진 나라는 그렇게 멸망했다. 역사책에 이름을 올린 지 고작 15년 만에. 요즘은 TV 채널 돌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인기(無人機)라는 게 인기(人氣)라. 뉴스를 도배하는 것도 모자라 예능프로의 주요 소재로도 최고의 상종가를 치고 있는데 한눈에 봐도 허접한 장난감 따위를 북한의 비밀병기인양 떠들어 대는 꼴이 하도 우스워서이거니와 삐뚤한 심성에 “그래 니들 어디까지 가나 보자”는 심산이다. 모든 소식의 발원지가 청와대와 국방부라는 것은 다들 잘 아시는 바, 이제 국방부는 30억 이니 50억 이니 하는 송골매나 써처-2 같은 거 안 써도 되겠다. 더욱이 360억을 들여 이스라엘산 헤론 에이탄을 8000억을 들여 미국산 프레데터(MQ-1)를 사네 마네 하는 논의는 아예 꺼내지도 못하게 됐다. “나한테 돈 1500만 원만 주시면 북한제랑 똑같은 거 만들어 드릴게요.” 손 번쩍 드는 RC동호인들이 차고 넘치는 세상인데다가 정보수집의 열정이 차고 넘쳐 검찰총장 뒷조사에 댓글부대까지 운용했던 국정원의 놀라운 실력을 감안하면 북한만 디도스니 뭐니 해서 국내 주요 전산망을 해킹하란 법이 있나. 우리도 놀라운 북한의 기술을 해킹해서 단돈 2000만 원에 무인 정찰기 하나 만들면 예산 아끼고 RC동호인들 일자리 창출되고 이야말로 창조경제 아닌가 말이다. 하여튼 “북한제로 추정하는 무인기는 형편없는 골동품”이라는 미 NBC방송의 논평은 차치하더라도 “참 신기한 나라야. 혹시 남과 북 사이에 다른 나라 하나 있는 거 아냐? 그들의 조악한 공작에 남북이 서로 놀아나는 거 아니냐구.” 했던 친구의 술자리 방담이 이번 ‘무인기(無人機)의 인기(人氣)’ 사태를 조롱하는 현실인데도 여전히 언론은 신이 나 있다. 한때는 “천안함 1번 어뢰” 신교를 만들어 “믿쉽니까 안 믿으면 종북이요” 선언했던 시절이 엊그제인데 이제는 뭐 좋다고 1500만 원짜리 무인기로 권력의 입 노릇을 충실히 해대는지 그거 보면 사람 참 밥 먹고 사는 방법 가지가지다 싶다. 출처 - 경향신문 조고(趙高)가 사슴(鹿)을 내밀었을 때 사슴이 아니라고 말(言)하지 못했던 한심한 대신들은 곧 망했을지언정 조로의 권력을 나눠 쓰며 권세를 누렸다. “서울. 백령도 이제는 강원도까지... 북 뭘 노리나?” 따위의 기사를 타이틀로 올려놓은 명색이 言論人인 저 사람들은 무슨 이익이나 있을까? 권력이 내 놓은 “이게 말(馬)입니다 무조건 믿으세요.”라는 미심쩍은 주장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고개를 끄떡 거리다 못해 앞장서서 휘갈겨 써대는 저들의 호주머니에 뭐 들어오는 동전 몇 푼이라도 있을까. 조고의 지록위마를 지적하며 옳은 소리를 했던 대신 몇몇은 죄다 죽었다. 조정의 벼슬아치들이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그놈의 권력이 염증 나 남명 조식은 벼슬 판에 거의 얼씬도 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어디 목숨 죽고 사는 세상일까. 거기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진짜로 거기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의심나면 살펴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는 언론의 기본정신은 지켜줘야 하는 것 아닌가. 적어도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는 과정에 있다면 슬그머니 궁둥이를 빼거나 침묵하는 예의 정도는 갖춰줘야 하지 않는가. “사슴을 사슴이라 말하지 못하는 불쌍한 중생”은 되지 말아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딱히 생기는 것도 없는데.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460 | 추천: 0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는 대목은 천송이역의 전지현이 집에서 원맨쇼를 할 때였다. 극중 설정으로 당대 최고의 인기 스타가 혼자 집에서 벌이는 ‘생쑈’가 천송이라는 캐릭터에 인간적인 숨결을 불어넣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아무리 돈 많고 인기 많은 사람도 혼자 있을 때는 다 저렇게 외로워하는구나, 결국 사람 사는 건 비슷하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하면서 천송이라는 캐릭터에 정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전지현의 ‘엽기적인’ 사생활을 보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박근혜 대통령을 떠올렸다. (이렇게 재밌는 드라마를 보면서 대통령을 생각하다니, 이건 직업병도 아니고 뭘까, 집착일까) 최고의 자리에 오른 독신 여성으로서 박 대통령의 저녁 생활이 궁금해진 것이다. 혹시 아는가, 박 대통령이 거실 바닥에 침낭을 깔아놓고 ‘어마무시한데?’라며 혼잣말을 할지. 열 받는 일이라도 있는 날이면 소파 위에 올라가 발차기를 할지, 말이다. 박 대통령이 요가를 즐긴다던가 하는 단편적인 정보만을 갖고 있는 나는 그가 퇴근 후 숙소에서 무얼 하는지 상상하기 어렵다. 무슨 책을 읽는지, 좋아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은 무엇인지, 영화는 좋아하는지, 혹시 음악을 듣는지, 전혀 알려진 게 없다. 한 때 그의 입 구실을 했던 전여옥씨가 그의 서재를 둘러본 소감은 ‘기증받은 책밖에 없더라’는 것이었다. 독자적인 독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얘기다. 전여옥씨는 또 그 분이 비를 맞지 않도록 우산을 받치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박 대통령이 자신을 공주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은 이어야할 가업이며, 청와대를 집으로 생각한다고 일갈했다. 굳이 전여옥씨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우린 박 대통령이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박 대통령은 또 주위 사람들에게 곁을 잘 내어주지 않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대신 자신이 믿고 따르는 사람을 과도하게 신뢰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멘토들을 보면, 박 대통령이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20대 때 좋아했다는 고 최태민 목사는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많고, 지금 곁에 두고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은 삼촌 벌의 연상 남성이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지난 8월8일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은 뒤 박근혜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출처 - 청와대 사진기자단 중요한 건 엘렉트라 콤플렉스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퇴행적인 인식을 동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수상한 그녀>의 주인공 오말순은 70대의 정신에 20대의 육체를 갖게 되면서 집을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지만, 박 대통령의 경우 60대의 육체에 20대 때의 인식을 갖고 있는, 심각한 정신지체 현상으로 국민이 집을 나가고 싶게 만들고 있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 때 그의 과거 지향적 성향이 21세기의 변모한 시스템과 부딪치면서 끊임없이 소음을 만들어낼 거라고 예상했는데, 불행하게도 박 대통령은 내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육사출신 군인과 공안검사들로 핵심요직을 채운 건 물론이요, 그들이 만들어낸 채동욱 스캔들로 나라 전체가 떠들썩했다. 아버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흉내 낸 경제혁신 3개년 계획, 공무원노조와 전교조, 철도노조 등에 대한 전방위적 노동탄압과 통합진보당 등에 대한 사상탄압,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예정돼 있던 공식회의조차 취소해버리는 독재적 국정운영 등 아버지를 빼닮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박 대통령의 이런 수구적 인식은 나라의 발전과 진보를 가로막고 있는 중대한 걸림돌이다. 경제는 활력을 잃고 재벌 위주로 재편되고 있고, 전월세 폭등과 공공요금 인상, 질 낮은 비정규직 일자리 증가 등 서민들의 삶은 더욱 고통스러워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인정하지 않고 방치함으로써 국정원을 기고만장하게 했고, 결국 간첩 증거조작이라는 반민주적 폭거를 낳았다.(시기적으로 봐도 서울시공무원 간첩사건은 국정원 사건을 덮으려고 만들어낸 것임을 알 수 있다) 집권 이후 1년이 넘도록 정보기관이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는 작금의 실태는 비정상의 극치다. 보수적인 검사들조차 “이게 나라냐”고 한탄할 정도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특단의 조처가 없는 한 이런 현상이 박근혜 정권 5년 내내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은 천송이와 함께 늙어가기 위해 별에서의 시간을 포기한다. <수상한 그녀>의 오말순은 젊음을 포기하고 원래 육체를 선택함으로써 다시 가족의 품에 돌아올 수 있게 된다. 박 대통령이 성공하는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육체에 걸맞는 정신을 되찾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나는 왜 하나마나한 얘길 늘어놓고 있는 것일까.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396 | 추천: 0
육영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백여 년 전에 좁은 바다 이쪽저쪽에서 ‘올바른 여성의 삶’을 고민하며 살다 죽었던 두 젊은 여성들이 있었다. 두 사람은 ‘여권(女權)’이나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낯설었던 시대와 싸우며 앞서갔던 지식인이며 실천가였다. 또한 이들은 근대서양의 변혁의 씨눈이었던 프랑스혁명의 현장을 지키며 개인문제를 시대문제에 대입하여 성찰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메리 울스톤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 1759-1797)와 올랭프 드 구즈(Olympe de Gouze, 1748-1793)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각각 영국과 프랑스라는 국적의 차이를 넘어 여성문제를 세계사적인 차원의 과제로 우리에게 남겼다. 몰락한 상인의 장녀로 태어난 울스톤크래프트는 어깨 너머로 글을 깨치며 어릴 때부터 가정교사 등의 직업을 전전했다. 여성소설가로 주목을 받으며 성장했던 그녀는 토마스 페인(『인간의 권리』의 저자)과 같은 진보적인 남성 지식인들과 교류하면서 급진적인 사상의 세례를 받았다. 30대 초반인 1792년에는 자유주의가 주창하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잣대로 ‘여성문제’를 분석하고 그 해결을 요구하는 『여권의 옹호』를 발표했고, 이 책이 독일과 프랑스에서 번역됨으로써 근대 페미니즘의 선구자로 이름을 떨쳤다. 동시에 이 책은 ‘보수주의’의 창시자인 에드먼드 버크 같은 영국남성 정치인들이 울스톤크래프트를 엉덩이에 뿔난 못된 과격분자라고 비난하는 위험한 증거물이기도 했다. 메리 울스톤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 1759-1797) 사진 출처 - 구글 남성 비판자들의 위협과 손가락질을 피해 울스톤크래프트는 1792년 12월에 혁명의 도가니인 파리로 망명했다. 기독교를 파괴하고 전통적인 가족질서를 해체했던 프랑스혁명을 반인륜적인 재앙과 동일시했던 반동적인 남성지식인들과 대조적으로, 그녀는 프랑스혁명을 이성의 빛과 진보의 횃불로 사회개혁을 추진하는 큰 도약으로 환영했다. 그러나 울스톤크래프트가 망명했던 시기는 불행히도 루이16세를 처형한 일단의 좌파적 과격주의자(자코뱅파)들이 주도하던 ‘공포정치’의 절정기였다. 여권주의자였던 마당 롤랑도 “자유여 그대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범죄가 저질러졌는가!”라는 탄식을 남기고 기요틴에 목숨을 빼앗기었고, 혁명전쟁의 적인 수상한 외국인들도 추방되었다. 파리 뒷골목에 숨어 미국남성과 연애하던 울스톤크래프트는 ‘사랑에 속고 혁명에 배반당해’ 1795년에 런던으로 되돌아 왔다. 그녀는 상처를 보상받기라고 하듯이 사상적 동지였던 윌리엄 고드윈과 1797년에 결혼했지만 출산 후유증으로 38세에 사망했다. 시골에서 정육점 집 딸로 태어난 구즈는 17세에 고향오빠와 결혼해서 아들을 낳은 ‘10대 맘(Mom)’이었다. 결혼 이듬해에 남편과 사별한 그녀는 1770년에 파리로 상경하여 사교계와 문화계를 왕래하면서 새둥지를 틀었다. 구즈는 계몽주의 철학자이며 여권옹호자인 콩도르세와 같은 남성지식인들과 교류하면서 시골뜨기 어린 과부에서 현실문제에 눈을 뜬 ‘의식화’된 여성으로 거듭났다. 구즈는 문화예술 활동에만 한정되지 않고 여성참정권, 흑인노예폐지, 이혼허용, 사형제도폐지 등 다양한 사회개혁을 요청하는 여성정치인으로 성숙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인간과 시민의 인권선언’(1789년)에 각인된 남성 중심주의를 비판적으로 패러디한 ‘여성과 여성시민의 권리선언’을 1791년에 발표했다. “여성도 단두대에 오를 동등한 기회가 있는 것만큼 연단에 오를 공평한 권리를 부여하라!”는 조항이 반영하듯, 구즈는 남성과 평등한 여성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했다. ‘치마입고’ 건방지게 공적 영역에 도전하려는 구즈는 남성정치인들에게 눈의 가시였다. 그녀는 ‘여성과 여성시민의 권리선언’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헌사 함으로써 입헌군주론자라는 의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당대의 무시무시한 권력자인 로베스피에르를 ‘진리의 이름을 판 과잉애국주의자’라고 비판함으로써 반혁명분자로 찍혔다. 결국 1793년 7월에 체포되어 혁명재판소에 넘겨진 구즈는 애인이며 후원자였던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는 탄원에도 불구하고 45세의 나이에 처형되었다. 그토록 소망했던 연단을 거부당하고 기요틴에 오른 그녀의 마지막 순간을 구경꾼들은 “공화주의 만세!”라는 환호로 응답했다. 당시 혁명군 장교로 지방에서 복무하고 있던 단 하나뿐인 아들마저도 ‘공화주의자가 아닌 괴물 어머니’의 존재를 부정했던 외로운 죽음이었다. 18세기 말의 매우 예외적인 페미니스트였던 이 두 여성은 생전에 파리에서 서로 만났을까? 이들의 조우에 대한 기록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인 구즈와 울스톤크래프트는 여성해방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제시했다. 올랭프 드 구즈(Olympe de Gouze, 1748-1793) 사진 출처 - 구글 울스톤크래프트가 교육과 직업선택을 위한 남녀 균등한 기회제공이라는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을 지향했다면, 구즈는 (남녀)실업자 공공구제, 한쪽 부모 친권인정과 사생아 합법화 등 파격적인 여성의 사회복지권을 요구했다. 그리고 실연과 사생아 출산의 아픈 경험을 공유했던 두 여성은 “가부장권 밑의 결혼은 매춘이며 아내는 남편의 유순한 노리개”(울스톤크래프트)이며 “결혼은 사랑과 신뢰의 무덤”(구즈)이라는 명언을 각각 남겼다. 구즈는 ‘여성과 여성시민의 권리선언’ 끝에 ‘남녀사이의 사회[동거]계약을 위한 서약서’를 덧붙임으로써 프랑스판 계약결혼을 예고했다. 두 여성 모두 진보적인 남성지식인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성취했지만, ‘그대 남성’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여권의 옹호』가 “미인은 머리가 나쁘다”로 요약되는 루소의 반 여성주의를 공박하는 성격으로 저술되었으며, 구즈가 여성정치모임을 탄압하려는 자코뱅에 목숨 걸고 저항했다는 사실을 과소평가 할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구즈와 울스톤크래프트가 2세기 전에 개척했던 여성평등과 여성해방의 길은 아직도 거칠고 아득하다. 많은 사람들은 울스톤크래프트를 그녀의 딸이며 같은 이름을 가진 『프랑켄슈타인』 저자와 혼동하며, 구즈를 프랑스영웅들의 국립묘지인 팡테옹에 모시자는 여권주의자들의 탄원은 여태도 실현되지 않았다. 어디 먼 나라 이야기뿐이랴. 정원의 10%만 입학이 허용되는 사관학교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수석졸업생이 바뀌는 소동이 발생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학벌과 경력을 가진 여성가족부장관이 ‘다음에는 남성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고백하는 부끄러운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말하자면, 여성대통령의 출현은 여성해방-평등 공화국의 완성이 아니라 비틀거렸던 ‘여성/시민의 행진’의 좌표를 재검점하는 또 다른 기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육영수 위원은 현재 중앙대학교 역사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96 | 추천: 0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인간은 먹어야 한다. 먹지 않고 살 길은 없다. 먹는 행위가, 먹히는 음식이 생명의 원리를 구성한다. 제대로 먹어야 한다. 제대로 먹기 위해서라도 음식의 원리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 음식은 어디서 어떻게 오는가. 음식은 생명 유지의 근간이지만, 먹기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긴요하지만,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현대인들 상당수에게 음식은 그저 상품이다. 음식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생산 과정을 모른 채 그저 소비하기만 한다. 자연 또는 생명 원리는 성찰하지 못한 채 음식을 돈으로 바꿀 수 있는 물질로 생각한다. 음식 소비자는 적은 돈으로 많은 음식을 사려하고, 음식 생산자는 적은 돈으로 많은 음식을 팔려 한다. 이런 두 가지 욕망이 만나서 음식의 대량생산 체제가 이루어진다. 음식을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려면 음식을 표준화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원료가 되는 농축산물도 균일해진다. 식물 종자의 다양성도 급격히 사라져간다. 생산성이 높은 감자, 큰 옥수수, 달콤한 토마토를 생산하는 종자만 살아남고,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진화해온 토종 종자들은 사라진다.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 세계인이 비슷한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바뀌면서, 음식이 무기화될 가능성도 커진다. 아니 이미 시작되었다. 음식을 돈으로 치환하기 위해 논밭에서, 목장에서, 공장에서 적은 돈으로 많이 생산하기 위한 각종 조작이 가해진다. 겉보기에는 파릇파릇한 채소도 실상은 유해하게 키워지는 경우가 많다. 속성 재배, 대량 생산을 위해 인체에 치명적인 화학비료와 농약이 사용된다. 식물의 종자 자체를 유전적으로 조작하기도 한다.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유전자조작생명체)가 우리 식탁을 점령한 지 오래되었다. 가령 한국에서는 2002년에 GM 옥수수(NK603)가 식용으로 승인되었고, 2011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소비되는 식용 GM 옥수수의 비율이 49%에 이른다. 게다가 사료용으로 도입된 GM 옥수수의 종자가 운송 과정에 유출되어 우리 땅 곳곳에서 자라면서 자연산 옥수수로 둔갑되는 경우도 이미 여러 군데라고 한다. 2009년도에는 GMO(주로 옥수수, 그리고 면화, 유채 등)가 전국 26곳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GM 식품이 생명체에 유해하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다각도로 연구되어 왔다. 물론 GM 옥수수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문제는 이것이 대체로 권력과 이해관계에 얽힌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라는 사실이다. 정말로 당장은 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수억 년 이상 진화해온 유전적 질서를 강력한 제초제를 견디면서 대량으로 생산될 수 있도록 단박에 조작해낸 식물이 과연 얼마나 생명적일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유전자 조작에 의한 대량 생산이 당장의 배고픔은 해결해주지 않으냐고만 말하기에는 대지에서 나는 식물과 음식조차 기업가의 이익 창출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 현실이 더 슬프고 두렵다. 농가에서 재배되는 옥수수 사진 출처 - 한겨레 어디 채소뿐이던가. 옥수수뿐이던가. 이익을 위해서는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물 사료를 먹이기까지 한다. 속성으로 체중을 키워 더 많이 팔기 위해서다. 소는 자연 상태에서 5년여 성장한 뒤 25년 정도를 살지만, 실제로는 각종 성장촉진제로 인해 1년 안에 ‘성장되고’ 3년 이내에 ‘도축 당한다’. 수유 기간이 긴 젖소는 거의 평생을 우리에 갇혀 강제 임신과 출산을 반복당하면서 오로지 젖을 생산하다가 임신이 불가능한 시기가 오면 도축된다. (그런 사실을 생각하면 우유를 먹기도 정말 미안하고 민망하다.) 자연 수명이 14-15년 정도인 돼지는 5-6개월 정도면 삶을 마감하고, 자연 수명이 20년을 넘는 닭의 실제 수명은 3개월 미만이다. 오로지 인간이 만든 사료를 먹고 알을 생산하고 고기로 키워지기 위해 A4 종이 한 장만도 못한 공간 안에 갇혀 산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돼지와 닭들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다.) 어디선가 AI(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발병했다 싶으면, 주변에 있는 멀쩡한 수백만 마리의 닭과 오리 등이 하다못해 아파볼 권리조차 가지지 못한 채 생매장 형식으로 살처분된다. 2003년 528만 5000마리, 2008년 1020만 4000마리, 2010년 647만 7000마리가 발병하지도 않았는데 살처분 당했다. 2014년 2월 6일 기준으로 실제로 AI에 감염된 가금류는 121마리뿐인데도, AI의 확산을 예방한다며 280여만 마리를 땅 속에 생매장했다. 짐승을 도축하는 도축 과정의 반생명적 폭력은 더 말해 무엇 하랴. 정말 인간에게 그럴 권리가 있기나 한 것일까. 이 모든 일들은 생산자나 소비자나 저비용 고효율의 경제 논리에만 따르다보니 벌어지는 반생명적 폭력들이다. 음식을 이윤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생명 현상을 돈으로 치환하려는 폭력적 욕망에서 반생명적 조작이 가해지는 것이다. 이것은 음식 속에 얼마나 많은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역으로 음식의 사회적 생명성을 회복해내야 하는 개인적 행동과 국가적 정책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도 돌아보게 해준다. 닭과 오리에게는 아플 권리도 없다는 말인가. 생명체의 아플 권리조차 빼앗을 권리가 인간에게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지 근본부터 되돌아볼 일이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399 | 추천: 0
권보드래/ 인권연대 운영위원 선물 금지령, 그런 게 내린다면 인생은 훨씬 초라해질 것 같다. 유난히 선물 주기를 즐기는 편이라 더 그럴 수도 있겠다. 한 달에도 여러 번씩 누군가를 위해 물건을 고르게 된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한 소비보다 선물과 증여를 위한 소비가 훨씬 많지 않나 생각하게 될 정도다. 적어도 실감으론 그렇다. 나 자신을 위해선 균일가 행사 근처를 서성대지만, 선물을 위해서라면 흔히 유명 브랜드의 신상품을 찾는다. 내가 끼니 챙겨먹는 데 큰돈 쓰는 건 주저되지만, 친지나 벗들과 함께라면 번듯하게, 흐뭇하게 먹고 싶을 때가 많다. 거꾸로, 내 물건 중 값나가는 것은 거의 다 선물로 받은 것, 내가 한 식사 중 호화로웠던 것은 누군가 사 줬던 식사다. 나는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유명 화장품 브랜드의 멤버십 포인트가 꽤 쌓여 있는데, 그런 게 나 혼자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선물이란 건 소비를 좋아하면서도 소비에 죄책감을 느끼는 모순된 감정의 소산인가 싶기도 하다. 1960년대 끝물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근검절약, 국산품 애용, 호화사치 풍조 배격 등은 내 의식의 밑바닥에 강력하게 각인돼 있다. 한편 1980년대 말 이후 한국 사회가 경험하기 시작한 과시적 소비 욕구나 일상의 세련화에 대한 갈망 또한 만만찮은 유혹이다. 나라 안 성장과 분배를 포함하여, 해결해야 할 문제는 끝없고, 반면 우아하고 예쁘고 발랄한 상품은 시장에 넘쳐난다. 경제학에 사회의 문제를 되돌리자는 주장을 하는 책을 근자에 몇 권 읽었다. 시장이란 게 본래 주고받는 문제일진대, 그런 ‘함께함’의 감각을 없애고 경제를 개인주의적이고 이윤지상주의적인 분야로 만든 것은 고작 1~2백년 전부터란다. 대체 왜 돈을 버는고 하니, 따져보면 인정받으려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라고도 한다. 경제를 다시 관계의 문제로, 시민과 공동체의 문제로 사유할 수 있다면 우리 사는 꼴이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제안하기도 한다. 사진 출처 - 한겨레21 관계로서의 생산과 소비라. 하긴, 그런 강박이 지나친 선물 애호증으로 남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물건 살 때 선물 받을 사람을 떠올리기보다, 만든 사람, 파는 사람을 떠올리는 일은 훨씬 어렵다. 파는 사람과의 관계가 소비의 핵심을 이룰 때가 많은데도 그렇다. 우울할 때 쇼핑을 하면 기분이 나아지는 건, 물건을 거래하는 과정이 일종의 유사 관계처럼 느껴지는 까닭이 크다. 마치 따끈한 목욕물이 타인의 온기 같은 착각을 전해주듯, 점원과의 문답은 내가 홀로가 아니고, 고립되어 있지 않고, 어엿한 주체로서 남과 마주하는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선물 사기를 즐겨하는 것도, 깔끔한 매장에서 “예, 고객님” 소리를 듣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그 미소가, 상냥한 응대가 나를 위해서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착각은 여전하다. 게다가 한국만큼 ‘고객님’이 갑일 수 있는 나라가 어디 흔한가. 유럽 상점에서 계산을 할 때마다 뭔가 낯설었는데, 계산원이 의자에 앉아 응대를 하는 탓이 크다는 걸 얼마 전에야 깨달았다. 프랑스 어딘가에서 점원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점원이 “대체 어느 나라에서 왔는데?”, 거의 경멸하는 투로 묻는다. 흥, 까르푸라고 근무 조건이 좋은 건 아니잖아. 나도 모르게 발끈해 버렸지만, 유럽인들 시장에 관계의 자취가 얼마나 남아 있을까, 의심스러워했지만, 한국 사회가 더 갈 길이 먼 건 분명해 보인다. 오류의 역사가 짧다는 뜻이기도 할 게다. 소비의 수렁 속에서 허덕거리면서, 그 수렁이 다른 관심을 잡아먹는 것을 보면서, ‘제 3의’ 어떤 길이 필요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는 생각을 한다. 욕망 자체를 부정하지 않되 그것을 정돈하고 조정하고 잘 배치하는― 그런 연습이 두루 필요한 것 같다. 권보드래 위원은 현재 고려대학교 국문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414 | 추천: 0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나온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 그 배경이 자못 궁금하다. 선의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국민들에게 통일의 중요성과 유익함을 널리 각성시켰으니까. 아마도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의 급변사태를 염두에 두고 나오지 않았나 하는 분석이 유력하다. 북한 정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모 당국자는 작년 송년회에서 "2015년 통일 위해 다 죽자"라고까지 했으니. 북한의 급변사태를 노리고 2015년까지 흡수통일을 목표로 대박 통일을 외치고 있는 것이라면, 이것은 오판이고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이 불안정하다는 징후는 사실 없어 보인다. 오히려 북한은 남북관계에서나, 대외관계에서나 더 적극적으로 문호를 확대하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는 취지의 신년사, 중대제안, 공개서신을 잇따라 제안해 오고 있다. 진정성을 의심하지 말 것을 누누이 강조하며. 장성택 처형 이후 정치적 안정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면 취하지 못할 조치로 여겨진다. 북한의 적극적 남북관계 개선 요청에 화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새로운 도발을 위한 위장평화공세로 치부할 까닭도 없다. 유엔에서, 전 세계의 언론이 보는 앞에서 상호 비방 중상하지 말고, 상호 적대행위 중단하자고 말하고 먼저 실천적 조치까지 취하겠다고 하는데 말로라도 호응하는 것이 유익한 일 아닌가. 북한의 불안정 급변 사태를 바라며 이에 대한 군사적 대비 계획에 역량을 쏟아 붇고 있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자칫 기회를 잃고 이명박 정부 5년을 되풀이나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현재 북한은 경제의 비약적 발전을 위한 평화적 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상황이다. 외자유치 없이 민생의 향상이 어렵다는 것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전국에 걸쳐 경제개발구를 설치하여 외자유치를 계획하고 있다. 대외 관광 문호도 폭넓게 확대하고 있다. 외국인 누구나 두려움으로 북한 관광을 꺼리지만 않는다면 언제든지 북한을 관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 최근의 추세로 보인다. "악의 축" 국가로 악마화되고 기괴화되어 혐오스럽고 공포스러운 국가로 각인되어져 있는 이미지를 바꾸고 싶은 강렬한 열망을 읽을 수 있다. 중국은 두만강을 건너 북한을 연결하는 교량을 신설하기로 했다. 이 교량은 지린성 투먼과 북한 나진항을 연결하며 중국에서 나진·선봉경제무역특구를 드나드는 주요 통로가 될 전망이다. 사진 출처 - SBS 북한의 외자유치에 대한 계획을 일방적 희망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세계가 북한의 경제발전을 주시하고 있다. 나진, 선봉 경제특구의 경우 러시아와 중국의 경제 개발 전략과 맞물려 철도, 도로, 항만 등 기반시설이 이미 올해 마무리단계에 들어섰고 향후 더욱 본격적으로 개발과 투자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러시아는 시베리아와 극동 개발로 전기, 가스, 석유, 교통 분야에서 나진 선봉 경제특구를 물류의 중심지로 보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고, 중국은 동북3성의 경제 진흥을 위해 동해 쪽 해양 출구로 나진 선봉 경제 특구로의 투자를 서둘러 왔다. 여러 나라들에서 북한 투자에 대한 계획과 탐색이 이루어지고 있다. 북한은 남북의 교류, 특히 남북 경제 협력이 북한의 경제발전 측면에서는 물론이고 통일을 위한 평화적 환경 조성에도 중요한 토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그렇기에 6.15 남북공동선언이 탄생한 것이 아니겠는가.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이 진정 흡수통일을 가장한 것이 아니라 남북 경제 협력을 통한 공동 발전을 다짐한 것으로 선의로 해석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 없이 5.24 대북제재 조치를 풀어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남한 기업의 북한 경제특구 및 경제개발구에 대한 투자를 허용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만 우물 안 개구리처럼 냉전적 사고를 극복하지 못하고 북한의 경제발전을 위한 변화를 외면한 채 남북경제의 활로와 통일 대박 기회를 날려 버릴 수는 없지 않는가.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457 | 추천: 0
김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지구상에 단 하나의 종교, 단 하나의 철학, 단 하나의 세계관이 자리 잡아 본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정신은 언제나 모든 억압에 맞서서 스스로를 지키는 힘을 배우고, 정해진 틀에 따라 생각하는 것, 천박하고 기력 없게 만드는 것, 모두 똑같이 작게 획일화하려는 것에 대해 저항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에나 어떤 불행한 집단을 선별해서 그들에게 밀린 증오를 집단적으로 분출한다. 종교 때문에, 때로는 피부 빛깔 때문에, 종족 때문에, 출신 때문에, 사회적 이상 때문에, 세계관 때문에 작고 약한 어떤 그룹이 더 크고 강한 그룹에 의해서 인간성에 잠재된 파괴 에너지의 대상으로 선별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생각에 대해, 혹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생각에 대해 너무나도 뚜렷한 확신을 가진 나머지 오만하게 다른 사람을 멸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오만에서 잔인함과 박해가 나온다. 오늘날에는 거의 사람 수 만큼이나 다양한 견해가 있건만, 다른 사람이 자신과 견해가 같지 않다면 조금도 참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추방, 망명, 감금, 화형, 교수형 등 온갖 처형과 고문이 날마다 행해지고 있다. 오직 높으신 분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로 때로는 어떤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런 일들이 행해진다.』 좀 장황하게 인용한 것 같지만, 이글은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라는 저서 내용의 한 부분이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형벌의 역사는 지배자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또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으로 온갖 육체적 고문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며 사건을 조작하고, 고귀한 생명을 앗아가고, 감옥에 던져 넣었던 쓰라린 역사를 갖고 있다. 민주화시대에 이르러 그런 육체적 고문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신적 고문, 사법적 절차를 빙자한 사법적 고문은 여전히 횡횡하고 있다. 지배그룹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로, 주류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단자 취급을 하며 금지! 금지! 를 외치고, 법률로 꽁꽁 엮어 버리는 것이다. 중세 시대의 마녀재판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이 시대를 도도하게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단자 취급을 받아 배척당하며 사랑하는 가족, 친구, 사회로부터도 매장당하지만 대다수는 그런 야만의 배제를 알지 못하고 있다. 김형근 교사는 2006년 <조선일보> 지면 캠페인을 통해 ‘빨치산 교사’로 찍혔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1979년 전두환 신군부의 12·12 군사쿠데타 반대 시위 주동, 1980년 속칭 ‘서울의 봄’에서의 시위 주동 등의 이유로 대학에서 3번을 제적당하고, 3번을 복학한 끝에 졸업한 사람, 1980년 3개월간 헌병대 영창에서 불법 구금 상태로 끔찍한 고문을 받았고, 강제징집으로 녹화사업 대상이 되었던 사람, 1987년 민주 항쟁에 앞장서다가 또다시 감옥에 간 사람, 먹고 살기 위하여 서점을 운영하였으나 금지서적을 판매하였다고 국가보안법으로 엮어 서점도 망해버린 사람, 범민련 운동했다고 다시 감옥, 그리고 김대중 정부 들어 사면 복권으로 교사로 임명되어 가장 행복하였다는 사람, 학생들이 졸고 있으면 찬 물을 길러다가 학생들 발을 씻어 준 사람, 그러다가 조선일보가 벌린 마녀사냥으로 빨치산 교사로 몰려 감옥에 간 사람, 이제는 다른 언론사에서 북한과 관련 보도한 내용을 블로그에 올렸다고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는 사람, 김형근 선생이 그 사람이다. 5·18 광주민주항쟁 보상금도 수령하지 않고, 국가유공자 등록도 거부하고, 나중에 먼 훗날 통일자금으로 위 돈을 사용하라고 거부한 사람이다.(2013. 12. 19.자 오마이뉴스 이털남 493회 방송에 김형근 선생 이야기가 나옵니다.☜ 내용 듣기) 당 시대를 사는 사람이 자신의 시대를 가장 모르는 세대에 속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그렇게 마녀 사냥이 자행되는 소용돌이 속에 있지만, 모르고 있다. 이단자라고 부르기 이전에 이단자로 규정하는 악마의 법이 존재한다. 악마의 법은 법이 아니다. 인간을 사상의 사냥감 대상으로 취급하는 법을 법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건성박수를 쳤다고 숙청, 처형하는 북한과 우리나라가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충성맹세를 하지 않는 자들은 국민도 아닌 이단자로 취급되는 세상에서는 증오의 샘물과 파괴만 가득할 뿐이다. 그곳은 인간세상이라고 부를 수 없는 곳이다. 품격 있는 문명국가에서 살고 싶다. 김희수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421 | 추천: 0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대중문화 연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겐 비교적 익숙한 미국 학자로 로렌스 그로스버그란 사람이 있다. 그에게 누군가 반(反) 신자유주의 운동이 가능할지를 질문했을 때 그로스버그의 답은, “No!" 였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단다. “There is no music!(음악이 없다!)” 다소 엉뚱한 농담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건 대단히 통찰력 있게 정곡을 찌른 대답이란 게 내 생각이다. 나 또한 오래 전부터 그와 비슷한 주장을 해 온 바 있다. 음악이 없다는 말은, 지금 신자유주의에 저항할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역사를 보면, 대중의 집단적이고 저항적인 실천에는 늘 음악이 있었다. 프랑스 혁명기에는 ‘라 마르세이유’를 비롯한 많은 혁명가요들이 있었고, 20세기 서구의 인권운동과 반전운동에는 수많은 록 음악과 모던 포크 음악이 있었다. 지난 2011년 자본가들의 탐욕에 저항해 ‘점령하라’(Occupy)'를 외치며 월스트리트에 모여든 군중 앞에 당시 92세의 노구를 이끌고 나타나 시위대와 함께 노래 부르며 거리를 행진했던 피트 시거(Pete Seeger)는 바로 인권운동과 반전운동을 음악적으로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 외에도 밥 딜런과 존 바에즈, 존 레논, 지미 핸드릭스, 브루스 스프링스틴, 밥 말리 등 60, 70년대 서구의 인권 평화 운동의 맥을 수놓은 뮤지션의 이름은 수 없이 많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 70, 80년대 군사 독재에 저항했던 한국의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통일운동의 거대한 물결도 수많은 민중가요들과 함께 했다. 운동이 있는 곳엔 노래가 있었다. Occupy 운동에 참가한 피트 시거 사진 출처 - The New York Times 그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어느 시대에나 사회적 진보를 향한 집단적 운동의 가장 중요한 주체는 젊은 청년 세대일 수밖에 없고 그 청년세대가 스스로 정체성을 확인하고 공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은 바로 노래, 즉 음악인 것이다. “음악이 없다”는 그로스버그의 일갈은 바로 그런 저항운동의 중심이 되어줄 주체로서 청년집단의 부재, 청년문화의 부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21세기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현상 가운데 하나가 청년세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임은 여러 사람들이 지적해 온 바다. 대학 진학률이 80%가 넘으니 사실 이 말은 한국사회에서 대학생 집단이 유의미한 세력으로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와 크게 다르지 않고, 내가 오래 동안 써 온 표현으로 말하면 대학 문화와 청년문화가 부재하다는 얘기다. 그로스버그의 표현을 빌자면, 대학생이 함께 부르는 ‘노래가 없다’는 말이다. 지난 세밑을 뜨겁게 달군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은 이제 젊은 대학생들이 서서히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여겨진다. 시청 앞에서 끊임없이 열리는 크고 작은 집회에도 젊은 청년들의 참여가 부쩍 늘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함께 부를 노래를 가지고 있지 않다. 아직 그들이 주체로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이제 그들이 함께 부를 노래가 필요한 시점이다. 역사의 퇴행이 완연해지면서 80, 90년대 민중가요의 역사 속에서 활동했던 일군의 민중가수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열심히 활동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들의 노래가 지금의 젊은 세대와 전폭적으로 소통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당연히 세월의 변화만큼이나 공유할 수 있는 감성의 폭이 줄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대와 함께 할 새로운 음악이 필요하다.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어떤 것이건 젊은이들 스스로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과거의 민중가요가 그랬듯이 말이다. 함께 부를 노래가 많아지면 청년들의 주체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그만큼 사회 변혁의 길이 앞당겨질까? 내 대답은, “그렇다” 이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518 | 추천: 0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밥그릇에서 돌을 발견하고서는 전국의 바위란 바위는 죄다 읊어대는 호들갑스러운 <바우타령>이 있다. 필자도 그런 타령을 한번 해야겠다. 지난 연말에 영화 <변호인>을 보고 차일피일하다가 오늘에야 가까운 벗들과 돼지국밥을 먹으며 영화를 놓고 해장을 하였다. 최근 5년 사이에 가곡 수선화처럼 죽었다가 살아났다 또 다시 죽는 것을 거듭하는 그 양반이 영화 속에서 팔팔한 청춘으로 나타났다. 영화는 약간은 으스대고 헐렁하고 껄렁한 사내에서 조류와 맞서며 대의를 추구하는 인간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잘 그려놓았다. 떠난 사람이야 또 보내야 하겠지만 사회적 대의를 향한 집념은 온전히 우리와 함께 머물기 바라며 법비(法匪) 타령으로 들어가겠다. 일본제국의 위성국가인 만주국에서 민중을 억압하는 일본 관리를 민중들이 가장 무서운 도적 떼라 하여 법비라고 불렀다 한다(참조. 한홍구, 법 주무르며 누린 ‘기춘대원군’의 40년 권력,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17380.html). 영화 <변호인>은 사건을 만화처럼 간결하게 처리하면서도 국가폭력의 양상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세상사를 일련의 권력범죄라고 이해하는 필자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변호인이 아니라 살아남아 영달하는 수사관, 검사, 판사라고 생각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금도 육법당--유신시대부터 할거하였던 육군사관학교와 서울법대 출신의 검사들의 권력 지향적 집단--으로 공직을 시작하여 시대의 흐름을 타다가 역풍을 피하다가 권력의 정상에 이른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니 이제 귀밝은 감독은 <변호인>의 2탄으로 <검찰>이나 <법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변호인> 속의 검사님은 안녕하시는지 파악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국회의원도 역임한 그 분은 부림사건의 피해자들에게 사죄할 뜻이 없다는 점을 어느 일간지가 전한다. ‘사죄할 뜻이 없다’는 말이 당황해서 튀어나온 말인지 오래전에 준비한 말인지 궁금하다. 그들은 과연 법의 수호자라고 믿는 것일까?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씨네21 야스퍼스는 <독일인의 책임>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끔찍한 만행에 대하여 독일은 어떤 책임을 지는지에 대하여 자세하게 논의하였다. 그는 법적 책임이나 정치적 책임 못지않게 내면에서의 깨달음이나 전향을 강조하였다. 그는 또한 악이 근본적이거나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고 평범한 것이며 우리의 노력으로 악인을 개선하고 정화할 수 있으며 그래서 타인을 용서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악은 정말로 이 정도로 평범할까? 근본악이 없다거나 근본적인 악인이 없다는 견해는 일종의 종교적 가정이 아닐까? 실제로 사람들은 ‘악의 평범성’의 예로서 특별한 출세동기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행하는 말단 공무원이나 관료제하의 인간을 지목한다. 아렌트가 유대인의 집단살해 프로그램을 완성한 아이히만에게 이 개념을 적용하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아이히만에 대한 아렌트의 진단과 이론화는 여러 가지로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집단살해를 기획하고 자행한 자가 아무런 가책 없이 그러한 만행을 실행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악 자체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또는 악 자체를 정당화하려는 기제가 마음 속에 완성되어 있지 않다면 말 그대로 ‘아무런 생각없이’ 타자를 죽이거나 고문하는 행동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예루살렘의 법정에 선 아이히만은 조직이나 관료제, 법에서 구실을 찾고 자신을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위장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책임이 없는 자인 것처럼, 근본적으로 악인이 아닌 것처럼. 한 마디로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농간에 낚인 것이다. 그래서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은 다른 유형의 악인에게는 설명력을 가질지 모르지만 적어도 아이히만에게는 맞지 않다. 다시 <법비전>으로 돌아가자. 한국에서 정치적 조작사건들에서 많은 고문이 자행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고문사건의 배후에 있던 검사들이나 불법감금과 고문을 뻔히 알면서도 유죄판결을 내린 판사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별 탈이 없다. 다만 이근안씨가 경관으로서 유달리 출중한 고문 성과를 올렸기 때문에, 경관이었기 때문에 유죄판결을 받았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경찰이 아니라 법복을 입고 법을 유린한 법조인을 상대로 법의 투쟁을 전개할 필요를 느낀다. 제2차세계대전이 종결된 후에 미군은 뉘른베르크에서 나치독일의 고위법조인을 상대로 전쟁범죄와 인도에 반한 범죄의 책임을 물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법조인소송이고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은 이 소송을 <뉘른베르크의 재판 Judgement at Neremberg>으로 영화화하였다. 전범 처벌이라는 폭풍 속에서 연합국이 이러한 재판을 관철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평시에 자국의 법원이 자국의 검사와 판사를 처벌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법조동일체와 법조특권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문을 묵인하고 사주하고 그 결과를 인수한 법조인들을 고발해야 한다. 특히 지난 노무현 정부 이래로 활동하였던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에 따라 재심을 거쳐 무죄판결을 받았던 간첩사건이나 정치적 조작사건중에서 불법성이 분명한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피고인을 기소한 검사나 유죄판결을 내린 판사를 상대로 고발운동을 전개하고 손해배상청구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변명은 그들의 몫이고, 우리는 변명을 위한 굿판을 만들어야 한다. 악법을 즐비하게 양산하고 인권을 억압하는 체제에서 법대로 한다는 법비들은 항상 법을 명백하게 위반하면서 만행을 저지르기 때문에 고발하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이래로 무엇이든 시키면 행하는 용역이나 법비로 전락하는 공직자들이 점증하고 있다. 지금 또 한건의 사건에서 법비가 탄생하는 것 같다. 이른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에서 검찰이 조작된 증거로 유죄판결을 구했다는 민변의 고발이 오늘 터져 나왔다. (http://media.daum.net/society/newsview?newsid=20140107120707199) 그들은 법비인가 법의 수호자인가?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589 | 추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