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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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임아연(주간함양 편집국 부국장),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장경욱 / 인권연대 운영위원 용산 대통령 관저를 나온 내란수괴가 머물고 있는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와 내란수괴의 형사재판이 열리고 있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이 바로 인근에 있다. 내란수괴가 사저로 복귀하는 순간부터 서초동 일대가 시끌벅적하다. 곳곳에 수많은 경찰차량과 경찰력이 배치된 가운데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들며 “윤 어게인(YOON AGAIN)" 손 피켓을 든 내란수괴의 지지자들이 인도를 점령하고 있다. 내란수괴의 형사재판이 끝날 때까지 서초동의 일상이 될 전망이다. 내란수괴는 지지자가 건네준 “Make Korea Great Again(한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문구가 적힌 빨간 모자를 넙쭉 받아쓰고 환호작약한다. 헌법재판관들의 전원일치 의견으로 탄핵파면이 되었건만, 내란수괴에게 여전히 반성과 사죄, 자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나라와 국민을 위한 새로운 길을 찾겠다”며 한술 더 뜨는 모양새다. 아니나 다를까 내란수괴는 형사재판 법정에서 “평화적인 대국민 메시지 계엄”이었다고 변명하며 내란죄를 부인하고 있다. 내란수괴와 그를 지지하는 내란동조세력이 보여주는 정신세계는 오늘을 살아가는 지구촌 문명인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풍경이다. 전 세계적으로 이곳 한반도 남단을 제외하고는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의 특성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성조기를 흔들어야만 한다. 중국, 북한 등 공산세력과 반국가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소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는 만병통치 수호신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체질적, 맹목적 빨갱이 반공반북 종북몰이 타령이다. 분단냉전체제를 극복하지 못한 87년 체제에서 한국의 민주주의의 진전은 국가보안법이라는 갑옷을 입은 극우반공세력의 색깔론, 종북몰이에 끊임없이 훼손당하고 정체와 후퇴를 반복하고 있다. 또한, 증오와 혐오, 비방에 미쳐 날뛰며 상식, 이성, 지성, 양심,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존중을 내팽개치고 파쇼독재로, 그 행동대로 전락한다. 친미사대 반북동족대결에 온 정신이 세뇌당한 채 살아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깊숙이 도사린, 도저히 헤어나지 못할 분단정신병에 지배당한다. 끝으로, 그 어떤 다양한 위장술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무엇보다도 우선시하는 이기주의자, 기회주의자로서 권력과 지위, 자본과 돈을 탐내는 거짓과 위선의 존재들이다. 분단냉전체제에서 대북적대의 한길로써 분단유지의 기득권을 누리며 민중을 기만해온 반민족, 반민중세력이다. 성조기를 흔들며 강자에게는 굴종하고 비상계엄 쿠데타로 국민을 상대로 폭거를 자행한 유치한 양아치 수준의 내란수괴와 그 동조자들을 우리사회에서 영구히 퇴출시킬 일이 언제나 그랬듯 한국사회의 근본적이고 시급한 과제로 다시금 제기되고 있다. 내란세력의 청산을 위해서는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정권의 안위를 위해 대북 전쟁 도발을 획책하고, 내란 범죄를 일으키며, 국가보안법으로 국가정보원과 검찰 등 공안수사기관을 이용해 진보민중 운동가들을 표적 삼아 끊임없이 간첩으로 내몰아 진보민중운동의 성장을 가로막아온 장본인이 내란수괴를 비롯한 내란세력이고 이들의 본질적 특성은 친미극우반공에 있다. 이들의 특성에서 보듯, 이들이 기득권을 누리며 살아왔기에 절대로 벗어나 내려놓을 수 없고, 급기야 대명천지에 내란의 모태산실이 된 분단냉전체제라는 친미극우반공세력이 서식하는 조건과 환경을 발본색원하여야 한다. 세계질서의 다극화 시대의 발전추세에 맞게 몰락, 쇠퇴해 가는 패권국의 국기를 흔드는 망동의 근원을 없애야 한다. 대북적대의 종속적 한미동맹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조기 추종의 덫에서 해방되어 반공과 반북이 아닌 국익과 민중의 이익을 중심으로 자주적이고 중립적인 새로운 대외관계를 수립해 나가야 한다. 상시적으로 전략 핵 자산이 전개되고 한미일 연합훈련이 일상화됨에 따라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불안정과 군사적 긴장을 초래하며 제3차 핵전쟁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한미 핵 동맹과 한미일 군사동맹의 강화가 찬양되는 속에 내란수괴의 강대강, 북한 주적론, 선제 타격론, 원점 타격론, 즉강끝 등을 내용으로 하는 대북적대정책에 말미암은 치적인 양 뇌까리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 성조기를 흔들며 빨갱이 종북 타령을 일삼는 친미극우반공세력에게 ‘반국가세력’, ‘북 간첩’, ‘종북세력’의 척결이라는 거짓 명분을 제공하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시대착오적 악법을 폐지하고 국가보안법의 즉각적인 폐지로써 현재 진행 중에 있는 모든 국가보안법 사건의 수사와 재판을 중단시키고 구속된 양심수들을 석방해야 한다. 내란수괴의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사건에서 봤듯 형사재판에서까지 내란수괴와 그 변호인들이 각종 간첩단 조작 사건을 들먹이며 감히 양심수들에 대한 부당한 공안탄압을 정당화하며 비상계엄의 구실과 명분으로 삼는 자가당착의 궤변을 일삼케 해서는 안 된다. 오늘 내란세력의 청산은 내란수괴 등에 대한 준엄한 형사처벌의 수위를 뛰어넘는 이 시대 근본적 과제이다. 한국 민중의 단결된 힘이 외세와 국가보안법을 기반으로 서식하는 친미극우반공세력을 퇴장시킬 정도로 비약적으로 커져나갈 때만이 분단냉전체제를 극복할 수 있기에 결코 쉽게 이뤄질 수 없다. 12.3 내란수괴의 망동 이후 내란수괴의 탄핵파면에도 불구하고 내란세력의 준동은 그치지 않고 있다. 내란세력의 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걸머지고 나선 한국 민중들은 이 역사적 격변기를 기회로 삼아 한국사회가 분단냉전체제를 극복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강력한 추진력을 만들어야 한다. 항쟁의 파고를 이어온 한국 민중의 역사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한국 민중에게 있어 87년 체제를 넘어 분단냉전체제의 파열구를 내는 전면적인 한국사회 대변혁을 위한 단결총력투쟁이 필수적이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25-04-15 | hrights | 조회: 533 | 추천: 5
오항녕 / 인권연대 운영위원 ※ 이 원고를 보낸 것이 8일 새벽이었다. 그리고 아침, ‘내란공범’이자 권한대행 한덕수는 이완규와 함상훈을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했다. 역시 한덕수는 상상을 초월하는 간신(奸臣)이며, 지금 과제가 왜 내란 세력의 발본색원인지 유감없이 보여준다. 본 칼럼의 내용이나 논지에 전혀 수정할 게 없다는 점이 큰 다행이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개나리와 벚꽃이 눈에 환하게 들어오고, 매화 향기는 그윽하게 코 끝에 닿아 미소를 불러왔다. 가슴 속 막혔던 체증도 사라졌다. 친구들과 나누는 한 잔이 다시 달콤해졌고, 밤에 잠도 푹 자기 시작했다. 평범한 일상을 정말 소중하였다. 함께 한 시민들에게 고맙다. 맘만 졸였든 열심히 광장에 나갔든 점잖게 걱정만 했든 상관없다. 그 많은 노심초사와 행동이 모여 만든 변혁이다. 한껏 기뻐하자! [사진1 :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시민이 이룬 성과이다.] “피청구인의 국회 통제 등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으므로, 결과적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었다는 이유로 피청구인의 법 위반이 중대하지 않다고 볼 수는 없다.”(2024헌나8 대통령(윤석열) 탄핵 결정문 78쪽) 그렇다.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은 시민들의 저항으로 보호받을 수 있었던 국회의원들의 노력으로 가능했다. 거기에 불의 앞에 주저했던 군경의 소극적인 태도가 덧붙여졌다. 4일, 나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제4악장, ‘환희의 찬가’를 기쁘게 들었다. 여기서 제안 하나 하고 싶다. 시민들의 기억을 잘 적어놓자. 기록으로 역사를 남겨두자. 나는 29세의 청년 J를 인터뷰했다. J는 인천에서 할머니와 산다. 2024년 12월 3일 밤, 잠자리에 들려고 준비하던 중, 계엄령 뉴스를 보았다. 이재명 대표의 라이브 방송을 듣고 11시쯤 택시를 잡아타고 국회의사당으로 갔다. 아끼는 카메라와 보조배터리를 들고. 택시 안에서 포고령을 읽고, 트위터 친구들과 연락했다. 택시기사는 최대한 의사당 정문 가까이 차를 대주었다. 트위터 라이브 방송도 했다. 나중에 자신이 BBC 뉴스에 등장한 것도 알게 되었다. 곧 헬기, 장갑차를 보았다. 기말고사 마다하고 나온 학생들도 만났다. 그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밤새 집회에 참여했다가 새벽녘에 인천행 첫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할머니는 아직 주무시고 계셨다. 이런 J들이 모여 역사를 만들었다. 그러나 반드시 짚고 넘어갈 일이 있다. 헌재는 ‘공포와 기대’를 오가며 시민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인색했다. 이 인색함이 무엇인가? 헌재의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 부족이다. 4월 4일 선고가 예고되기까지 민심은 헌재의 답답함에 폭발 직전이었다는 점을 기억하라. 내란을 완전히 진압하기 위해서든, ‘빛의 혁명’을 완성하기 위해서든, 세 방향에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60일 이후에 대선을 치르는 만큼 지금 바로 정치세력의 교체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체, 중첩, 혼선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이를 틈타서 사안별 해결과 극복을 저해하는 책동이 개입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기본적인 세 방향을 함께 확인하고자 한다. 첫째, 내란 세력의 준동을 즉각 멈춰 세워야 한다. 이 멈춤에는 내란 세력에 대한 수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최상목 대행 체제에서 서울경찰청장 등을 임명하여 ‘알박기 인사’를 자행했다. 그리고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당장 대통령 기록관 관장으로 대통령실 행정관 출신이 내정되었다. 파면된 내란 수괴 윤석열 정부 때 만들어진 기록이 내란 공범으로 의심되는 한덕수 권한대행의 관할 아래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얼마나 많은 기록이 파기되고, 30년 이상 봉인될지 알 수 없다. 가능한 내란 세력이 당장 국정에서 손을 떼도록 조치해야 할 이유 중 하나이다. 둘째, 리듬이 깨진 시민의 삶이 일상을 회복하고, 나라의 재정과 관료제 운영 등이 정해진 제도에 따라 작동해야 한다. 내가 윤석열 정권에서 본 가장 심각한 파탄은 ‘정치의 부재’였다. 대통령은 물론, 국무위원, 감사원 등 헌법 기관, 비서실, 안보실, 심지어 현역 장성들까지 모두 협의, 대화, 논의, 책임이 아니라, 고집, 경멸, 회피, 궤변으로 일관했다. 종신 집권을 꿈꾸는 ‘계엄’이라는 다른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거’해서 ‘처리’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불법 산수로 윤석열의 구속을 풀어준 지귀연 판사, 심우정 검찰총장, 여전히 헌법 위반 중인 한덕수, 최상묵 등은 엄격히 수사하여 처벌하고, 2차 계엄이 의심되는 법무장관 박성재 등을 수사하고, 관련 제도 운영에 필요한 민주적 보완이 필요하다. 탄핵소추되었던 감사원장, 내란범 윤석열의 인권 운운하며 국제적 망신을 샀던 국가인권위원장 안창호, 셀프민원 혐의가 짙은 방송심의위원장 류희림, 횡령 혐의가 짙은 방송통신위원장 이진숙 등도 잊으면 안 된다. [사진2: 예사롭지 않았던 방첩사 사령관 여인형의 국회 답변 모습. 2024년 10월 8일. 국방부장관 김용현 등 ‘충암파’ 내란 세력은 국정감사 중에도 책임 있는 답변 대신 국회의원들과 싸우고 대들었다. 물론 그랬던 이유가 있었다. 국회의원들은 그들이 ‘학살’할 대상이었던 것이다.] 셋째, 폭정이나 혼정으로 미루어진 사회의 재편, 즉 개혁을 수행해야 한다. 이는 미래의 삶을 준비하는 비전과 정책이므로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한 가지 예를 보자.동네 음식점을 가본 사람이라면 시민의 삶이 위기라는 것을 안다. 상후하박(上厚下薄), 많이 버는 개인이나 기업에서 세금을 많이 거두고, 소득이 적은 사람에게는 세금을 적게 걷는 것이 동서고금의 민생 안정책이다. 이 나라 기획재정부는 반대로 하고 있다. 부동산세 등 문재인 정부 때 우왕좌왕했던 정책도 바로 잡자. 검찰과 언론 개혁을 활기차게 추진하자. 넉 달 넘는 기간 동안 보여준 시민들의 격조와 안목에 부응하기에는 저들의 현재는 너무도 비루하다. 올해는 을사년이다. 두 갑자(甲子), 120년 전 1905년에 이 땅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흔히 외교권의 박탈, 곧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획기가 되었던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있었던 해이다. 동료 역사학자들과 을사늑약의 성격을 탐구하는 모임을 진행하던 중에, 우리는 12.3 계엄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맞았다. 그렇지 않아도 윤석열 정권의 굴욕적인 대 일본 외교, 뉴라이트라고 부르는 매판 친일 세력의 준동으로 이 땅의 민중, 시민들이 쌓아올린 자존심이 상처를 입고 곤두박질치던 상황이었다. 허나 우리는 120년 전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다. [사진3: 민주주의가 승리했다.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또 넘어설 것이다. 이렇게 웃으며 유쾌하게!] 내란을 진압하는 동안 우리는 민주주의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드러내는 힘’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 힘에 의해 감추어졌던 권력, 카르텔이 드러났다. 민낯을 드러냈다는 말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 천박함도 비전 없음도, 역사의식 없음도, 함께 드러났다. 새로운 공화국을 만들어야 할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일제 강제점령기 이래 100년을 끌어온 기득권이기에 그걸 걷어내는 데 난관도 있을 것이다. 허나 이 땅의 사람들은 충분히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지난 겨울부터 봄까지, 세계사에서 전례 없던 역사의 터널을 아주 지혜롭게, 평화롭게 넘어섰듯이!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5-04-08 | hrights | 조회: 449 | 추천: 9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그럴듯한 주말 계획을 갖고 있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 선고를 하지 않기 전까지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속터져서 밥이 목에 넘어가질 않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 분들은 오늘도 법이 목에 잘 넘어가는지 알 길이 없다.  혹시 모를 일이다. 8명이 모여서 짬뽕을 시킬지 짜장면을 시킬지 결정을 못하며 머리를 쥐어뜯을수도 있겠고, 짬뽕이든 짜장면이든 하나로 통일을 해야 한다며 서로 서로 설득하고 있을수도 있겠다. 어떤 분은 탕수육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고 반대쪽에선 나라가 어려운데 그냥 라면이나 먹자고 우기는 분도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분명 누군가는 단무지 나눠 먹기로 했던 한 명이 없는 걸 아쉬워할테고, 또 누군가는 나머지 한 명까지 있었으면 자기가 먹고 싶은 짬뽕 못 먹었을수도 있었겠다며 혼자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이쯤 되면 분명히 누군가는 냉소가 지나치지 않느냐, 아무려면 내란 수괴 파면 문제를 짜장면 짬뽕에 빗대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냐 쌍심지를 켤 것이다. 짜장면 짬뽕 같은 사소한 문제로 나라를 혼란에 빠트린 이재명을 구속시키라는, 문해력 따위는 밥말아먹은 사람도 분명히 있겠다. 하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헌법재판소를 우스갯거리로 만든 건 헌법재판관들이지 내가 아니다. 윤석열과 그의 무리들을 논외로 친다면, 국민들 열받아 뒷목잡게 만든 건 법만 잘 알고 법으로 정치하는 높으신 분들이지 우리처럼 법조항만 읽으면 수면제가 필요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윤석열 구속 취소해주고 김성훈 구속 안 시킨 건 검사와 판사들이다. 입만 열면 거짓부렁이었던 사람은 선거 이겼다고 죄다 무혐의인데, 선거 패배한 사람은 자고 일어나면 압수수색에 법원 셔틀 다니도록 한 건 검사들이다. 800원 횡령으로 해고하는 건 정당하다고 할 만큼 준엄하고, 헌법을 위배해도 파면시킬 정도로 심각한 건 아니라며 관대한 건 법관들이다. 이쯤되면 대한민국 헌법 제1조도 다시 읽힌다. “대한민국은 사시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검사 등으로부터 나온다.”  그렇게 법이라는 면류관을 쓰고 법전이라는 옥좌에 앉아 대한민국을 령도하는 사시들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다스렸나. 검찰총장 하다 대통령까지 했던 분이 다스리는 나라에선 ‘복지부동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게 정부 핵심가치였다. 그리고는 하던대로 일했고 잘하는 걸 더 잘했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교정시설(교도소와 구치소) 수용인원이 6만 2981명이다. 정원(5만 250명)에 비해 수용률이 125%다. 수용률은 2016년(121.2%) 이후 꾸준히 줄어서 2022년 104%까지 줄었는데 2년 사이에 이렇게나 늘었다. 정작 판사 출신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는데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돌아다닌다. 많은 분들이 헌법재판관들의 양심과 양식을 믿자고 한다. 그게 사실의 영역을 말하는건지 당위를 말하는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희망 혹은 촉구인건지 알 길은 없지만, 애초에 법이라는 게 정치를 거세하고 존재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한덕수가 헌법재판관 임명을 하지 않은 건 명백하게 위헌이지만 ‘파면할 정도로 중대하진 않다’고 한다. 나처럼 법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헌법을 어긴 것만큼 중대한 게 어디있나’ 싶은데 헌법의 수호자들 눈엔 ‘중대한 헌법 위반’과 ‘중대하지 않은 헌법위반’ 그러니까 모른 척 뭉개도 되는 헌법 위반이 따로 있는 듯 하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기 위해서 꼭 필요한 건 헌법재판관들의 양심과 이성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정치를 하는데 눈감아 주는 게 더 우습지 않나? 가령 2004년에 헌법재판소는 난데없이 경국대전까지 가져다가 행정수도 위헌 판결을 내렸는데 법해석이 적절한지 백날 육법전서 들여다봐야 무슨 소용인가. 그러므로 우리가 헌법재판관들에게 해줘야 할 진정어린 충고는 이 말일지도 모르겠다.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영감.”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5-03-26 | hrights | 조회: 484 | 추천: 24
정범구/장발장은행장 지난 해 12월 3일 이후, 시간의 흐름에 예민해진다. 하도 말 같지 않은 상황들을 연이어 겪다 보니 한 시간, 한 시간이 노심초사의 연속인 경우가 많아 어떤 때는 하루가 그리 길 수가 없었다. 계엄의 밤이 그랬고, 내란 수괴의 체포를 둘러싼 대치가 그랬으며, 구치소에 들어가서까지 조사를 거부하고 몽니를 부리던 날들은 왜 그리 시간이 더디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겪게 된 헌법재판소에서의 소위 '공방(攻防)'. 증인신문을 빙자한 윤석열 변호인단의 '공세'를 보면서 새삼 우리가 저런 인간들과 함께 2020년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살고 있었구나 하는 '현타'가 온다. 변호인단의 이름을 걸고 그 자리에 섰던 자들이야말로 대한민국 헌법 체제하에서 온갖 혜택과 대접을 받아 온 자들이었는데, 그들이 헌법파괴에 앞장 선 내란수괴 변호를 위해 온갖 요설을 쏟아내는 것을 보고 있어야 했던 시간들은 참으로 더디게 흘러갔다. 그런데 2월 하순 들어서면서 여러 가지 국내외 사건들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2월 23일 독일 총선이 있었고, 24일에는 우크라이나 전 발발 3주년을 맞았다. 그리고 25일에는 헌재에서 탄핵 '피청구인' 윤석열의 최후변론이 있었다. 연이은 이 3일 동안 일어난 이 사건들은 장소는 각각 다르지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점차 '정글'로 변해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한다. 먼저 2월 23일에 있었던 독일 총선부터 보자. 최대 관심사는 독일 극우정당인 '독일 대안당(AfD)'이 과연 얼마나 득표할 것인가였다. 총선 이전부터 이미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제2당으로의 부상이 점쳐지고 있었지만 실제 선거결과로 이것이 확정됐을 때 느꼈던 충격은 컸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범죄를 부인하고, 외국 난민에 대한 폭력을 선동하는 세력들이 의회 내 제2당이 된 것이다. 보수당인 기독민주당(CDU)과 늘 1,2위 자리를 다투어 왔던 사회민주당(SPD)은 제3당으로 주저앉았다. 빌리 브란트, 헬무트 슈미트, 게르하르트 슈뢰더 등의 걸출한 정치지도자를 배출하고 160여년의 역사를 갖는 대중정당이 창당된지 10여년 밖에 안되는, 그것도 독일의 헌법 체제를 위협하는 극우정당에 패배한 것이다. (630석 독일연방의회 의석중 AfD가 152석, SPD가 120석 차지)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았을 때, 그것은 쿠데타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선거를 통한 것이었다. 그런 경험때문에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이 건립된 이후 실시된 선거에서는 어떤 정당도 절대 과반수를 득표하지 못했다. 나치에 의한 일당독재를 경험한 독일 국민들이 절대로 한 정당에 몰표를 몰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연방공화국 건국 이래 역대 정부는 모두 다른 정당들과의 연정(Koalition)을 통해 성립되었다. 극우적 주장을 하는 독일대안당은 아직 어느 정당으로부터도 연정 파트너로 인정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방의회, 기초자치단체 등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이미 어떤 소도시들에서는 독일대안당 소속 시장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독일대안당이 어느날 집권정당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커져가고 있는 것이다. 토론과 협의를 중시하는 독일정치 현장에서 이제는 토론과 설득보다는 선동과, 상대를 향한 혐오발언들이 난무하게 될지 모른다. 소수자에 대한 증오와 배제가 공공연해 질지 모른다. '사회적 시장경제'를 국민적 합의로 채택하고, 사회적 연대가 오랜 전통으로 자리잡은 이 나라에서 말이다. 독일 사회도 점차 약육강식의 정글로 변해가는지 모른다. 독일 뿐 아니라 프랑스, 스웨덴. 이탈리아, 헝가리 등에서 맹위를 떨치는 극우의 등장 배경에는 난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고물가, 기후위기와 에너지 난, 양극화 심화 등 다양한 요인이 있다. 그러나 이들 극우 세력에게 공통되는 것이 하나 있다. '설득'이 아니라 '선동'을 통해 지지자들을 모으고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위의 당면한 문제들 – 난민, 고물가 등등 –은 구조적인 문제들이라 하루 아침에 해결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기존정당들도 이 문제에 대한 속 시원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자리에 극우정당들이 끼어든다. 그들이 대중 앞에 내놓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선동'이다. 그리고 여기에 희생양을 끌고 나온다. 바로 난민이다. 독일의 많은 사람들이 못사는 것, 치안이 불안한 것은 다 난민 탓이다. 그리고 이런 난민문제는 바로 기민당이나 사민당, 녹색당 등 기존정당들의 무책임한 정책 탓이라고 한다. 자신의 헌법파괴행위까지도 그 원인과 책임을 야당과 비판세력에게 돌리는 윤석열과 국민의 힘 세력은 이런 점에서 유럽 극우와 많이 닮아있다. 2월 24일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3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트럼프 말대로 서방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2주 안에 끝났을' 전쟁인지도 모른다. 전쟁 책임을 둘러싸고는 진영의 입장에 따라 여러 논란이 있지만 어쨌든 이 전쟁을 계기로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진행돼 왔던 '세계화'에는 브레이크가 걸렸다. 전쟁 진행을 둘러싸고 다시 '진영화'가 시작되고, 또 트럼프 등장 이후 보여주는 것처럼 서방 진영 내부에도 분열이 시작되는 듯 보인다. 2월 28일 젤렌스키를 백악관으로 불러들여 보여준 트럼프의 막가파식 외교는 세계가 다시 벌거벗은 힘과 힘이 마주치는 정글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전세계 사람들 앞에  보여주었다. 저항하는 듯 했던 젤렌스키는 이내 꼬리를 내리고 트럼프의 환심을 사기 위한 제안들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힘' 앞에 명분이라든가 도덕은 힘이 없다. 세계가 이렇게 돌아가는 동안 2월 25일 국내에서는 탄핵 '피청구인' 윤석열의 '최후변론'이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망상과 자기연민 내지 자기도취에 빠진 변론이었다. 헌법을 수호하기로 선서하고 대통령 자리에 오른 자가 그 헌법을 파괴한 데에 대한 반성은 언감생심이요, 자신의 잘못된 명령을 따라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내란임무 수행자들에 대한 어떤 책임감도 보여주지 않았다.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인간임을 극명하게 보여준 자리였다. 그런데 여기서 조심스러운 의문이 하나 떠오른다. 자신의 생존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그런 인성을 갖고 있는 자가 국가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면, 그런 자를 선거로 우리가 뽑았다면, 그렇다면 우리 사회도 이미 오래 전 부터 내부적 정글화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도덕이나 규범, 사회적 연대, 상식과 이성, 이런 것들 보다 힘과 욕망이 우선시되는 그런 약육강식의 정글이? 각자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정글 속에서 전광훈, 전한길 류의 온갖 혹세무민과 광기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 통제되지 않는 폭력과 증오에 매혹된 젊은이들이 서부 지원에서 벌였던 광란의 장처럼. 그러나 정글, 또는 사막처럼 변해가는 듯한 세상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내 손 안에 여전히 남아있는 따스한 온기를 느낀다. 거리거리에서 촛불과 응원봉을 들고 만났던 수 많은 시민들, 특히 젊은이들의 그 열기와 온기가 아직 고스란히 살아있다. 추운 거리에서 계엄을 걱정하고, 나라를 걱정하면서 탄핵의 바다를 함께 넘던 그 시민들, 백만여 인파가 몰린 가운데에서도 한 사람의 사고도 없이 묵묵히 한강다리를 넘나들고, 다른 이들을 배려하면서 여의도로 몰려오고 또 빠져나가던 그 수많은 시민들, 내게 사탕과 응원봉을 넘겨주던 어린 소녀들의 그 해맑은 미소를 잊지 못한다. 남태령의 밤을 함께 지킨 그 수많은 시민들, 쏟아지는 폭설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서로의 온기에 의지해 밤을 지새우며 새벽을 불러온 키세스 전사들은 여전히 우리들이다. 어떤 겨울도 두렵지 않게 하였던 서로의 온기, 그 따뜻함에 기대어 우리가 정글을 걷어낼 것이다.
2025-03-11 | hrights | 조회: 338 | 추천: 13
서보학 / 인권연대 운영위원 비상계엄으로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장기 독재를 꿈꿨던 윤석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변론절차가 모두 마무리 되었다. 이제 온 국민이 헌재의 파면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지난 11차례의 변론과정에서 윤석열이 보여준 것은 참으로 비겁하고 찌질한 지도자의 모습이었다. 당초 윤석열은 비상계엄에 따른 정치적·법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공언하였지만 실제 변론절차에서는 줄 곳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면서 부하들과 야당에게 책임을 전가하기에 급급했다. 내란을 가리키는 명백한 물적 증거 및 부하들의 증언 앞에서도 ‘호수에 비친 달그림자’ 운운하며 뻔뻔하게 범죄를 부인하였다. 어리석은 국민을 계몽하기 위해 계엄을 선포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다수의 국민들은 윤석열이 위헌적 비상계엄을 선포해 민주 체제의 전복을 시도한 내란죄의 수괴라는 사실에 대해 일말의 의문을 품지 않고 있다. 이제 윤석열은 3월 중순이 채 되기도 전에 대통령직에서 파면될 것이다. 헌재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파면 결정이 내려질 것에 대해서는 추호의 의문을 갖지 않는다. 윤석열의 파면 후 내란 사태의 전모를 밝히기 위한 본격적인 노력이 시작될 것이다. 현재는 윤석열과 일부 국무위원, 일부 장성들만이 내란죄로 기소되어 있다. 앞으로 내란죄 특검법을 도입해 내란의 전모를 밝혀내고 내란에 가담한 자들에게 응분의 형사책임을 묻는 것이 필요하다. 표면적으로는 군과 경찰만이 직접적으로 동원되었다. 반면 윤석열의 충실한 수하인 검사들과 대통령실의 관여ㆍ역할에 대해서는 아직 드러난 것이 없다. 윤석열 검찰공화국의 한 축인 검찰과 권력의 핵심부처인 대통령실이 사전에 교감이 없었다거나 아무런 역할을 부여받지 못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내란 사태를 수사ㆍ기소하고 있는 대검 특수본도 검찰과 대통령실의 관여 의혹에 대해서는 전혀 수사를 하지 않고 있다. 자기 식구들과 권력 핵심부에 대해서는 일정한 선을 그어놓고 수사를 하고 있다는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많은 비밀이 내장된 비화폰 서버를 관리하는 대통령 경호처가 이 시간에도 계속 증거인멸을 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윤 정부에서 실질적으로 상왕 역할을 하고 있는 김건희가 내란의 실제 배후라는 세간의 의혹도 꼭 풀어야 한다. 국회가 하루빨리 특검법을 도입하여 철저한 수사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윤석열이 파면되면 대선 전에 국회가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이 또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것이다. 지난 3년간 무도(無道)한 윤석열 정권의 든든한 행동대장은 검찰이었다. 예전 정부들에서 집권 세력의 하수인에 머물렀던 검찰은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의 대통령 즉위와 동시에 지배세력의 핵으로 자리 잡았다. 검사 출신들이 정ㆍ관ㆍ경제계의 중요 자리를 차지하면서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고 수사권ㆍ기소권을 앞세운 검찰이 돌격대장으로 나서서 정권에 비판적인 세력의 소탕에 앞장섰다. 지난 3년간 검찰이 조직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행한 일은 야당 대표 이재명을 수사, 기소한 것이었다. 각 검찰청에서 차출되어 투입된 검사만 70여 명, 압수ㆍ수색만 376회로 집계되었고 구속영장 청구도 2회 있었다. 현재 이재명 대표는 대장동 배임, 성남FC 뇌물, 백현동 특혜, 위증교사 의혹, 대북송금 대납의혹,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전 정권 인사들이 기소되어 법정에 서 있다. 노조ㆍ시민세력도 전방위 탄압에 나선 검찰의 칼날에 베여 깊은 상처를 입었다. 사법부ㆍ언론ㆍ경제계ㆍ학계 등 온 사회가 검찰의 위세 앞에 숨을 죽이고 엎드려있다. 반면 검찰은 집권세력의 부패와 치부를 감추는 일에는 견마지로(犬馬之勞)의 충성을 아끼지 않았다. ‘이ㆍ채ㆍ양ㆍ명ㆍ주ㆍ공’(이태원 참사, 채수근 상병 사건, 양평고속도로 비리, 명품백 비리, 주가조작, 공천개입)으로 대표되는 윤석열과 김건희의 정책 실패ㆍ비리는 조직의 사활을 걸고 감추고 덮었다. ‘권력의 개’라는 세간의 비판과 조롱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윤석열이 그토록 방약무인(傍若無人)하게 법과 국민 위에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검찰의 전적인 충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12ㆍ3 비상계엄으로 내란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도 총ㆍ칼을 동원할 수 있는 군대뿐만 아니라 법을 장악한 검찰을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윤석열과 검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공동체이다. 따라서 헌재의 윤석열 파면 결정은 동시에 검찰에 대한 파면 결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검찰은 설립 이래 지난 70여 년간 수없이 많은 잘못을 저질러 왔다. 사건조작과 억울한 기소는 일상사였다. 같은 편의 부패 앞에 눈을 감는 것도 일상사였다.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한 검찰, 같은 편에 대해서는 무한정 관대하고 반대편에 대해서는 무한정 잔인한 것이 검찰이었다. 헌재의 윤석열 파면 결정은 이런 검찰에게도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할 것은 명령하는 준엄한 결정인 것이다. 검찰의 퇴장은 지난 70여 년간 악행을 저질러 온 검찰청을 폐지하고 기소권만을 행사하는 공소청을 새로 설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검찰에서 수사권을 완전히 분리해 내는 것이 검찰개혁의 완성이다. 그런데 검찰개혁을 완성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는 새 정부 출범 직후가 아니다. 바로 지금이다. 즉 헌재에 의해 윤석열이 파면되고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 두 달이다. 이미 국회에는 조국혁신당이 발의한 검찰청 폐지 법안 및 공소청 설립을 위한 법안이 제출되어 있다. 민주당도 이에 상응하는 법안을 준비해 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 헌재의 윤석열 파면 결정 직후 국회는 즉시 이 법안들을 통과시켜 검찰청을 폐지하여 한다. 공소청을 설치하여 수사기관과 공소기관을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 이것이 검찰개혁의 완성이다. 또한 검찰을 통한 정치보복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길이다. 새 정부가 검찰개혁의 부담을 덜고 민생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이 법안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5월에 치러질 벚꽃 대선에서는 정권교체가 확실하다. 정권이 교체되면 검찰의 칼날이 자신들을 향할 것임을 뻔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의 수사권을 제거하는 것은 정치보복의 위험성을 차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다수 국민의힘 의원들도 검찰청 폐지 법안에 대해서는 찬성표를 던질 것이다. 민주당과 야당은 검찰개혁을 완성할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검찰은 차기 정부에서도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생존을 이어갈 것이고 3-4년 후에는 다시 진보정권의 대통령과 정치인을 물어뜯을 것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 손에 쥔 현재의 검찰이 존속하는 한 최후의 승자는 항상 검찰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검사들은 정권은 유한하지만 검찰 조직은 영원하다는 믿음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점을 잊으면 반드시 검사들에 의해 다시 보복을 당하게 된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기를 기대한다. 서보학 위원은 현재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5-03-04 | hrights | 조회: 414 | 추천: 21
장경욱 / 인권연대 운영위원 적대국 사이의 평화적 공존이 실현되는 냉전의 종말로 다가가는 격동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국제정세를 예리하게 추적해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에 차단된 허위의 세계에 주눅 든 노예들에게는 180도 다른 반전의 드라마 같은 하수상한 느낌 밖에 안 들 것 같다. 트럼프 집권 2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첫 고위급 회담이 열렸다. 그 순간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대로 3년간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군사적 분쟁이 평화적으로 해결의 길로 접어들었다. 젤렌스키 정권과 EU의 반발에도 아랑곳없이 미국의 러시아에 대한 적대정책은 한순간에 허물어져 버린 듯하다. 정곡을 찌르는 트럼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입이 터지자 숨겨진 진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젤렌스키 정권은 궁지에 몰린 채 대세를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에 처해 지금 제 살 길을 찾고 있다. 미 트럼프 정권이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정권에 퍼붓는 속사포 같은 비판은 그동안 서방의 주류 미디어에서 유통되던 정보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당신은 3년 동안이나 그곳에 있었다. 3년이 지났으면 전쟁을 끝냈어야 했다.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고, 협상을 했어야 했다”, “계엄령이 선포된 우크라이나에서는 선거가 치러지지 않았다”, “그는 선거를 거부하고 우크라이나 여론조사에서 매우 낮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으며, 그가 유일하게 잘 하는 것은 바이든을 갖고 노는 것뿐”, “선거를 치르지 않은 독재자 젤렌스키는 서둘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를 잃게 될 것”,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고, 시작할 필요가 없었지만 미국과 트럼프가 없었다면 결코 해결할 수 없었다”, “게다가 젤렌스키는 우리가 보낸 돈의 절반이 없어졌다고 인정한다”, “바이든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유럽은 평화를 가져오는 데 실패했으며, 젤렌스키는 아마 ‘수월한 돈벌이’를 유지하고 싶어할 것”, “나는 우크라이나를 사랑하지만, 젤렌스키는 끔찍한 일을 저질렀고, 그의 나라는 산산조각이 났으며 수백만 명이 불필요하게 죽었다. 그리고 이는 계속되고 있다” 한마디로 지난 3년 동안 협상은 외면한 채 아무런 대책 없이 전쟁을 지속하며 국민을 사지로 몰아넣고 선거는 하지 않고 미국이 지원한 돈의 절반을 횡령한 부패한 독재정권이 젤렌스키 정권이고 그렇기에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을 계속할 것이 아니라 선거부터 하고 평화협상에 참가하라는 것이다. 트럼프 집권 2기의 대러시아 적대정책전환은 극적이다. 바야흐로 미국은 그동안 미국이 추진해왔고 유럽연합과 젤렌스키 정권이 추종해 왔던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화를 중단할 것을 천명하였다. 미국의 대 러시아 제재도 해제할 것이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도 더는 없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나치(NAZI)화, 나토(NATO)화는 우크라이나 정권의 러시아계 주민에 대한 혐오, 차별, 탄압을 가져왔고, 러시아와의 대결을 심화시키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심각한 안보 갈등의 위기를 초래하며 결국 러시아와의 직접적 군사적 분쟁을 야기하였다. 우크라이나의 나치화, 나토화의 배후는 미국이었기에 갈등과 분쟁의 중요한 책임당사자인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적대정책을 전환하는 것이 바로 분쟁의 평화적 해결의 지름길이 되기에 이른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현재 양국 고위급 회담을 통해 양국 사이의 적대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미·러 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허위 정보와 악마화로 적국을 만들어 전쟁을 일으키고 군대를 파견, 주둔시키는 냉전의 악순환을 끝내는 평화적 분쟁 해결의 서막이 열렸다. 소련 붕괴 후 미국 패권 중심의 일극체제로 나아간 무늬만의 냉전 종식이 아니라 미국 패권의 몰락과 함께 상호 공존, 상호협력의 다극화시대로 나아가는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진정한 냉전종식을 맞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세계가 제대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구도와 분위기를 바탕으로 한반도의 정치군사적 분쟁의 실질적 당사자인 미국은 대북적대정책을 완전히 종식시키고 북미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조건과 환경을 구축하는 길로 신속히 나아가야 한다. 당장 북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해온 핵 전략자산을 동원하는 한미 군사훈련 및 한미일 군사훈련을 중단하고 실효성 없는 대북제재를 해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며 북미고위급 회담을 추진하기를 바란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25-02-25 | hrights | 조회: 942 | 추천: 16
오항녕 /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유튜브 채널 ‘겸손은힘들다’에 나와 몇 가지 우연이 겹쳐 작년 12월 3일 계엄을 막을 수 있었다고 했다. 정말 그렇구나 싶었다. 또 김어준 씨가 헬기가 늦게 뜨도록 만든 날씨, 개인 방송이 시민을 국회에 모이도록 독려한 것, 국회의원들이 봉쇄를 뚫고 담 넘어 들어간 것 등등 계엄의 그날 아슬아슬했던 순간을 이야기할 때는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날 밤 증가했던 엔트로피가 다시 느껴졌다. 맞다. 이처럼 기억은 몸에 새겨져 있다. 이번 내란 사태는 우연히 저지된 것이 아니다. 이미 눈이 높아진 시민의식이라는 디폴트 값이, 계엄령 해제와 관련된 법령 제도가 역할을 해냈다. 상황을 주시하고 국회까지 모여든 시민, 계엄령 해제를 결의한 국회의원, 그리고 계엄군의 가슴에 작동했던 선한 의지가 있었다. 물론 헬기를 뜨지 못하게 했던 날씨 같은 우연이 겹쳤다. 이렇게 모든 사태에는 구조, 의지, 그리고 우연이 함께 작동한다. [사진 : 국회에 모인 시민들. 명심하라! 우리는 언제든지 일어설 것이다.] 글을 쓰는 지금 2월 13일(수), MBC 저녁 뉴스가 심상치 않다. 계엄 세력이 ‘수거’해서 ‘수집소’로 보내 제거하려던 사람이 5백 명이 넘는단다. 연평도, 제주도, 실미도, 전방 GOP 등에서 사고로 위장하거나, 원격 제어 폭탄으로, 심지어 음식에 화학약품을 타서 ‘처리’하려고 했다. 전 국민의 출국 금지, 3선 개헌을 통해 장기 집권의 계획까지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계엄 세력의 중심인물로 지목되고 있는 민간인 노상원 전 방첩사령관의 수첩에 적힌 내용이다. 불법 계엄으로 시작된 내란, 초기 진압은 성공했으나 여전히 내전은 지속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이 땅의 냉정한 현실이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을 비롯하여 김용현, 노상원 등이 체포되었고, 윤석열은 대통령직 파면이 예상되는 등 고비를 넘고 있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서부법원을 침탈한 폭도들 주변의 극우들이 여전히 준동하고 있고, 최상목의 특검 발목잡기도 계속되는 중이며, 국무위원들에 대한 수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검찰의 개입에 대해서는 손도 못대로 있으며, 심지어 내란 혐의자가 서울경찰청장으로 임명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반동을 막지 못하면 모든 혁명은 비극이 된다. 혁명이 빈틈을 보이는 때가 있다. 시민들이 ‘지겹다’ ‘힘들다’ ‘버겁다’ 생각하는 때이다. 왜 빨리 끝났으면 하는 조바심이 생기는가? 혁명은 시민들 일상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식료품 조달이 원활하지 못하고, 때론 전기, 수도까지 끊어진다.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간단히 말하면 혁명의 과정에는 생활 리듬이 깨지고 피로감이 몰려온다. 지금 우리도 경험하고 있다. 식품, 전기, 수도까지 끊어지지는 않았지만, 환율이 불안하고 사람들은 회식도 꺼리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언제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판결이 나나, 웬 재판이 이리 긴가, 말 같지 않은 계엄 세력들의 저런 변명과 거짓말도 듣고 있어야 하나…. 잠도 설치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게 짜증 나고 스트레스 지수를 올리면서 싸이토카인(cytokine 염증을 일으키는 단백질)을 늘리고 있다. 면역력이 떨어져서 체력이 고갈되어 예민해진 상태가 되면 자주 다투게 된다. 술에 의지하거나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도 있다. 인권연대 회원들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내란의 깊이와 폭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역사학도로서 나는 이렇게 본다. 식민지 강점기 이후 백 년 이상의 구체제(Ancient Regime)를 넘어서는 중이라고. 식민지 시대 이래 기득권층이 이승만의 민간 파시즘, 박정희~전두환의 군사 파시즘을 거치면서 기업, 문화, 법률, 언론의 탈을 쓰고 온존하던 세력들이 드러나고 있다고. 나라를 이끌 실력이나 비전도, 남을 설득할 지적 능력도, 동시대 사람들을 안고 갈 덕성이나 휴머니즘도 없다. 그들은 사사로운 이익만을 서슴없이 주장하며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1789년 프랑스 시민들만 앙샹 레짐과 맞선 게 아니다. 우리도 구체제를 전복시키는 한복판에 서 있다. 간단한 추정을 통해 희망 하나를 제시하고자 한다. 독립기념관장, 국사편찬위원장,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등을 매판적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로 채웠다. 역사관은 현실에 대한 관점의 반영이다. 근데 그 자리에 임명된 인물들이 학계에서 거의 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인사들이라는 점에서 다행이고, 이 세력들의 끝자락이라고 생각한다. 매판 세력에게 이제 역량 있는 인재가 더 이상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최근 청문회, 국정조사, 국정질의 등을 통해 드러난 국무위원들의 불쌍할 정도로 저열한 수준도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계엄 초기에 이루어진 ‘즉각 해제’는 이런 인적 조건이 낳은 또 다른 결과이다. 내란 주범인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은 또 다른 내란 주범 노상원에게 중과부적(衆寡不敵)이라고 토로했다고 한다. 중과부적은 12월 3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총체적으로 극우-매판 세력은 중과부적의 시대에 들어섰다. 나는 우리가 겪는 이번 구체제 타도 과정이 ‘치열하지만 조용히 진행되는’ 연성(軟性) 혁명이라고 본다. 조용한 내전(A Soft Civil War)! 이 과정에서는 혁명의 심성이라고나 부를 ‘공포와 기대’조차 부드러워진다. 말할 것도 없이 이번 내전이 연성으로 진행되는 데는 12월 3일 밤부터 4일 새벽까지 내란을 초기에 진압한 사실에 힘입고 있다. 그리하여 이후의 전개가 법률적 쟁투로 들어가면서 법치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법치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폭압체제에 대한 대안으로써 법치의 역할과 순기능이 엄연함을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국회, 정당, 법원이 중요한 이유, 그래서 더 잘 가꾸어야 할 이유가 된다. 형용모순이 분명한 ‘부드러운 내전’이라는 이상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도대체 이 높은 민도(民度), 집단지성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어떻게 혁명 세력의 중심인 시민들은 이토록 평화롭게 앙샹 레짐을 무너뜨리고 있는가? 눈 속의 ‘키세스’가 보여준 창의력과 간절함의 도저함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나는 지금 이를 설명할 수 없다. 다행으로 느끼고, 고마울 뿐이다. 이처럼 평화로운 혁명의 페이스를 지키고 싶을 뿐이다. [사진 : ‘키세스’들의 힘. 이번 내전과 혁명의 상징이다.] ‘근본적인 혁명’ 같은 것은 없다. 근본적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거기에 붙잡힌다. ‘공포와 기대라는 혁명적 심성’이 ‘피곤하고 짜증난 시민들의 마음을 점령할 때’ 그 근본주의는 악마적 폭력성을 드러낸다. 프랑스 혁명기의 공포정치는 그렇게 탄생했을 것이다. 따라서 혁명은 그저 그런대로 살만한, 좀 더 편안한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계엄 해제 이후 두 달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내란범들을 처벌하지 못하고 있다고 화를 내는 분들이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 습격 이후로 3년 이상이나 지난 뒤에야 루이 16세와 마리 앙뜨와네뜨가 처형되었다고. 그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파리 시민들 속이 어땠을지 짐작해보자고. 이 땅에서도 1980년 5월 광주 학살의 주범이 대통령 노릇을 하고, 그 후계자가 또 대통령이 되고, 제죽음하는 것을 보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고. [마리 앙뚜아네트의 처형 : 프랑스 시민들은 3년이 넘게 걸렸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처형 못한 학살 주범 전두환을 겪었다. 이제 갓 두 달 지났다. 조금만 길게 보자.] 이 연성 내전, 조용한 내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에게 스스로 하는 말이기도 하다. 첫째, 일상생활의 리듬을 유지하자. 인간은 조그마한 노력으로도 감정과 생각을 능동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 뉴스나 SNS, 유튜브 등은 시간을 정해놓고 보자. 잘 때는 잠만 자자. 밥도 잘 먹자. 둘째, 우리가 쉽게 피로하고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 있는 상태라고 인정하자. 그러니까 술은 자제하고 스트레칭, 걷기 등 몸을 편안하게 해주는 운동을 하자. 내 마음이 화가 나기 쉬운 상태라는 것고 인정하자. 운전 하다 옆 차가 끼어들어도, 보험료나 짜장면 값이 올라도, 당분간은 그러려니 하자. 시민들끼리는 짜증을 적게 내도록 마음 쓰자. 셋째, 수도권 시민들에게 고마운데, 계속 토요일 집회를 유지해주시기 바란다. 적어도 대통령 파면이 선고될 때까지. 만일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바로 서울로 올라가 함께 할 것을 굳게 약속한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5-02-19 | hrights | 조회: 813 | 추천: 20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계엄령인지 개염병인지 모를 불면의 밤이 지나고, 두 달 가까이 속터지고 화나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어린 시절 고향엔 제대로 된 포장도로가 전혀 없어서 겨울이 끝날 무렵 눈이 녹으면 길바닥이 온통 진흙탕이 되기 일쑤였는데, 그런 길을 걷다보면 차갑기 짝이 없는 얼음물이 신발 안으로 스며들곤 했다. 일단 괴롭고 상당히 짜증도 난다. 지난 두 달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이 계엄령을 선포하던 날 읽던 책은 하필 ‘헨리 키신저 리더십’이었다. 헨리 키신저라는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어쨌든 거장인 건 틀림없는 인물이 쓴 책이다. 세계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정치지도자 6명이 등장하는데, 독일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 싱가포르 총리 리콴유, 영국 총리 마가릿 대처 등이다. 키신저는 1923년생 아니랄까봐 이들과 나눴던 대화를 비롯한 뒷이야기까지 소개해서 꽤 흥미롭다.  키신저가 사망한 게 2023년이고 이 책이 국내에 번역된 것도 2023년이다. 그리고 나는 2024년 연말 이 책을 읽고 있었다. 엉터리 지도자가 나라를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만들 수 있는지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사례가 또 있을까 싶다. 물론 나는 윤석열한테 단 한 번도 실망해 본 적이 없다는 걸 분명히 밝히고 싶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이다.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진지하게 지도자의 자격과 자질, 지도력이란 주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지도자의 자질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건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했다는 한마디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명령하겠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불쌍한 아이크.” 1952년 대통령 선거에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후임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직전에 했다는 이 말은 훗날 아이크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아이젠하워 임기 8년을 상징하는 말이 돼 버렸다.  트루먼은 “나는 온종일 여기 앉아서 굳이 설득하지 않아도 알아서 일해야 할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시간을 다 보낸다…대통령이 가진 권력이란 그게 전부다”라는 말도 했다고 하는데, ‘대통령 리더십’의 본질에 대한 촌철살인이 아닐까 싶다. 트루먼이 했다는 아이크 이야기는 한국식 농담으로 바꿔보면 대대장은 유실수 심어라, 연대장은 무실수 심어라, 사단장은 잔디 깔아라 하는 군필자들의 오래된 농담이 생각나기도 한다. 아이젠하워 역시 미군 역사에 길이 남을 장군이었고, 또 그런만큼 명령하고 그 명령이 수행이 되는 데 익숙할 터. 하지만 대통령이란 그런 자리가 아니다.  하물며 군인 출신 대통령도 그런데 검사 출신 대통령이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한국에서 검사란 수사하고 기소하는 권력을 가진 유일한 집단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령유일체제라면 대한민국은 검사유일체제다. 윤석열 역시 검사 영감에 검찰총장까지 했으니 세상 무서울 게 없이 수십년을 살았을 터.  마오쩌둥은 생전에 참새를 가리키며 “해로운 짐승”이라고 하자 중국 인민들이 모두 나서서 참새를 잡아 족쳤다고 하는데, 한국에선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들이밀며 “범죄자”라고 하면 그 순간 범죄자 딱지를 벗을 길이 없다. 하지만 그런 자세로 대통령 일을 하면 나라꼴이 어찌 되는지 우리는 지난 몇 년간 뼈에 사무치게 배워야 했다.  윤석열은 시종일관 ‘강력한 지도자’를 지향했다. 물론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들은 ‘강력한 지도자’를 바라마지 않았다. 하지만 역사를 되짚어 보면 강력한 지도자가 실제로는 취약한 지도자였던 사례가 부지기수다. 모든 의사결정이 V1 혹은 V0에게 몰리면 정부조직이 제대로 작동할 수가 없고, 모두가 V1 혹은 V0만 쳐다보며 복지부동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빈틈을 메꾸는 ‘문고리 권력’이 호가호위를 한다. 우리가 구속된 현직 대통령을 보면서 배워야 할 진짜 중요한 교훈이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백마 탄 왕자님은 필요없다’는 한마디 아닐까. 
2025-02-04 | hrights | 조회: 184 | 추천: 15
김희교 / 인권연대 운영위원  약 1년쯤 전에 미국 샌디에고에서 몇 달을 머문 적이 있다. 샌디에고는 미국인들이 가장 살고 싶은 도시로 늘 꼽히는 안전하고 깨끗한 도시였다. 약 10년전쯤 연구년을 계기로 그 근처에서 잠깐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 기억이 너무 좋아 그곳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는 이미 10년전의 그런 샌디에고가 아니었다. 평온했던 도심은 노숙자들이 완전히 점거하여 대낮에도 보행조차 자유롭지 않았다. 마약을 한 것으로 보이는 행인을 목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주 총기 사고가 나서 밤에는 나 다닐 수 없는 도시가 되어 있었다. 밤에는 여기 저기서 총성이 들리곤 한다.  국민의 힘 의원들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정녕 당신들은 그런 나라에 살고 싶은가? 생각이 다르다고 백주대낮에 백색테러가 자행하고, 자신의 뜻대로 하기위해 법조차 무시하고 상대 방에게 총기를 들이대고 복종을 강요하고,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서스럼없이 폭력을 사용하는 그런 나라를 당신들은 정말 만들고 싶은가?  지금 서울 거리에는 수많은 외국인이 활보하고 있다. 그들에게 한국은 가보고 싶은 나라, 박수 쳐 주고 싶은 나라, 친절한 나라, 안전한 나라이다. 세계인들에게 한국은 가보고 싶은 나라이다.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피 땀 눈물을 흘리며 고생해 K-pop의 나라를 만들었다. 이미 문화제국이 된 대한민국은 전세계인에게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나라가 되어 있다. 전쟁을 극복하고 단기간에 민주주의를 완성한 한국은 박수쳐주고 싶은 나라이기도 하다. 와보면 사람이 사람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조상으로부터 물러받은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친절한 나라임을 느끼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것은 24시간 안전하게 어디든지 갈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나라라는 점이다. 전세계적으로 이런 나라는 많지 않다. 우리는 짧은 기간에 그런 매력적인 나라를 만들어 놓았다.  응원봉을 들고 거리를 나선 2030 청년들은 이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선 것이다. 당신들이 싫어서 나선 것도 아니고, 좌파가 되서 우파를 청산하기 위해 나선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들이 누리는 그런 자랑스러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나선 것이다. 그들은 자랑스러운 K-pop의 나라를 키워고, K-culture의 구성원이었다. 그들이 지금의 민주주의를 만든 주역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민주주의가 자신들의 일상을 얼마나 평화롭고 안전하게 만들어주는 지를 체험한 세대이다. 같은 아티스트를 응원하기 위해 한국에 온 이방인들에게 아무 댓가없이 도움을 준 연대를 경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홍대와성수동, 그리고 용산은 이방인들이 모여 공생하고 연대하는 그들의 새로운 세계였다. 그런 새로운 세계를 살아 본 경험이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당신들이 무슨 자격으로 그들이 피 땀 눈물로 만들어 놓은 그런 자랑스러운 나라를 파괴하려하는가? 대통령을 지킨답시고 국회에 총기를 들고 난입하고, 당신들이 원하는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고 법원을 때려부수는 당신들은 이미 그런 나라를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다. 당신들은 유럽 어느 골목에서 한국인이 당했던 인종주의 폭력을 한국의 대로를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탱크가 거리에 나다니고, 백색테러가 자행되는 한국은 K-culture의 나라가 아니다. 각국의 대사관들은 이미 한국 여행 주의보를 내렸다.  묻고 또 묻고 싶다. 당신들이 “반국가세력”을 소탕한답시고 총을 들고 국회에 난입하여 국회를 진압하는데 성공했다면, 한남동 공관을 방어한다고 영장을 들고 온 공수처에게 총기를 사용했다면, 서부 지법을 침탈해서 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붙잡았다면 당신들은 당신들의 나라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 믿는가? 총은 당신들만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서울의 봄을 보라.당신들이 총으로 국회 장악에 성공했다면 당신들에게 저항하고 시민을 대변하는 또 다른 무장세력이 당신들에게 총을 겨누었을 것이다. 당신들이 국회를 장악했다고 하더라도 당신들의 나라가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란으로 쑥대밭이 되는 나라만 남을 뿐이다.  서부지법 판사가 당신들의 우두머리를 석방했다고 해서 당신들의 나라는 건설되지 않는다. 김용현이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던가? 당신들의 힘은 이미 ‘중과부적’이다. 역사는 쉽게 거꾸로 가지 않는다. 총기와 장갑차를 손으로 막은 시민들이 있고, 국회를 총으로 진압하는 것이 불법임을 알고 비폭력 저항을 선택하는 군인이 있고, 지켜야 할 것은 윤석열이 아니라 이나라 대통령임을 아는 경호처 직원들이 있다. 그들이 이미 대세이다. 검사들을 동원하여 반국가 세력을 소탕하려다가 실패하자 군인을 손을 잡았고, 그것마저 실패하자 법원을 테러하는 일을 자행해 권력을 잡을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권력이 유지될 성 싶은가? 부디 역사의 대세를 읽어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고 싶다. 만약 어쩌다 성공하여 반국가 세력이 없는 당신들의 나라를 세우면 그런 나라에서 당신들은 행복할 것이라 믿는가? 그렇다면 미국을 한번 가보라. 트럼프대통령 만나러 가서 얼굴도 한번 못보고 텔레비젼 화면이나 쳐다보고 있다가 오지 말고 비버리힐스나 한번 가보라. 한 때 미국의 천당이었던 부자동네 비버리힐스는 이제 노숙자들의 주거지로 변했다. 부자들이 몇 겹의 바리케이트를 치고 성을 쌓아도 밀려들어오는 노숙자를 막는데는 한계가 있다. 그런 나라에서는 아무리 잘나가도 1000평짜리 감옥에 평생을 사는 것이다. 당신들은 지금 그런 나라를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런 나라에서는 당신들도 감옥살이를 할 수 밖에 없다.  당신들에게도 권력이 있고, 총이 있고, 동원할 수 있는 세력이 있기에 내란과 폭동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반동의 시대로 끌고 갈 수는 있다. 그러나 결코 당신들이 원하는 ‘반국가 세력’이 없는 그런 나라를 세울 수는 없다. 이미 광장의 시민들은 당신들과 다른 꿈을 꾸고, 다른 세계를 그리며, 그런 세계의 달콤함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한번도 등장하지 않은 전혀 새로운 주체이다. 언제든지 당신들이 부러뜨릴 수 있는 단 하나의 깃발 아래 있지 않다. 수백 수천개의 깃발 아래 뭉쳐 있어 권력으로 통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세력이다. 당신들이 그들에게 반국가 세력이라 딱지 붙이고 그들과 싸우는 이상 당신들은 어디에서 나오는 지도 모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도 모르는 전혀 새로운 저항세력을 만나게 될 것이다. 당신들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가? 그들에게 항복하라. 그리고 대세에 추종하라. 그런 나라가 당신들에게도 빛이 될 것이다. 부디 이제 항복하라. 김희교 위원은 현재 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5-01-31 | hrights | 조회: 409 | 추천: 10
정범구/장발장은행장   현직 대통령에 의한 내란 시도는 12. 3 계엄선포 47일만에 윤석열을 구속함으로써 일단 한 고비를 넘기게 되었다. 그러나 영장 발부 이후 벌어졌던 서울 서부지방법원에서의 난동과 폭력 등은 한국 민주주의에 깊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2016년 촛불혁명 이래 우리 시민사회가 자랑으로 여겨왔던 평화적 시위 전통이 위협받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 극우의 행태가 도를 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내란 수괴” 윤석열의 체포영장 집행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련의 사태들을 통해 우리나라 기득권 층의 가려진 민낯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평생 “법치”를 입에 달고 살았을 뿐 아니라 그걸로 밥줄을 삼고, 입신출세하고, 끝내는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른 자가, 더구나 쿠데타 실패 이후 “대국민 담화”를 통해서는 당당히 수사에 임하겠다고 큰소리 쳤던 자가, 체포영장 집행과정에서 보여줬던 추태는 그 어떤 막장 드라마 보다 더 역겨웠다. 더구나 자신의 체포를 피하기 위해 극우 시위대의 저항을 부추기고, 국민을 분열시키려 한 행위 등은 어떤 말로도 용서가 안된다. 그런데 그 막장 드라마의 주연 뿐 아니라 조연들의 면면도 역겹고 추하기는 마찬가지다. 체포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한남동 관저 앞으로 달려간 44명의 국힘 의원들. 그들의 충성 대상은 결국 국민이 아니고 헌정을 파괴하려 했던 “내란 수괴”였던 것인가? 이런 의심은 국회의원을 다섯 번 째인가 한다는 윤상현 의원이 극우 선동가 전광훈 앞에 90도로 엎드려 절을 하는 모습에서 더욱 확실해진다. 이들의 충성 대상은 결코 국민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제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이 무색해지는 장면들이다. 12. 3 내란 시도 과정에서 “내란의 조연”으로 동원되었던 경찰은 윤석열 체포 과정에서 일정 부분 명예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대행의 대행” 신분으로, 국회가 선출한 헌재 재판관 3명 중 두 명만을 선별적으로 임명하고, 국회가 송부한 법안에 대해서는 다시 거부권을 행사한 최상목 대행의 처신은 여전히 의구심을 자아낸다. 특히 윤의 체포 과정에서 보여 준 그의 행태는 단순히 그 한 개인의 성향 뿐 아니라 관료 사회 전반의 성향까지를 의문시하게 된다. 이른바 “영혼 없는 관료 집단”에 대한 오래 된 의문이다. “주권 재민”과 “삼권 분립”이 뼈대를 이루는 헌정 질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보다는 개인의 출세와 입신양명이 인생의 주요 목표였을 고시생 시절의 모습들도 오버랩된다. 12. 3 쿠데타와 그로 인한 내란 위협은 윤석열과 쿠데타 가담 세력들의 체포와 구속으로 일단 안정되는 것 같지만 내란을 지지, 엄호했던 ‘국민의 힘’에 대한 지지율이 다시 회복되고 있다는 소식은 많은 우려를 자아낸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국힘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역전됐다는 결과도 나온다. 탄핵심판 절차가 진행되면서 사람들 관심이 대선 국면으로 옮아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고, 여론조사에 응하는 보수 세력들이 과표집(過標集) 되고 있다는 분석들도 있지만 나 같은 사람 입장에서는 그저 황당하게 느껴질 뿐이다. 아니 모든 것을 다 양보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내란 비호 세력을 지지할 수 있다는 것인지, 민주주의를 공짜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이 대목에서 문득 옛날 생각이 난다. 과거 박정희 유신 시절을 겪은 사람들이라면 그 시절 상투적으로 듣던 말이 있다. 유신 체제에 반대하는 학생들과 반독재운동 세력을 향해 독재 정권이 각종 긴급조치와 계엄령들을 남발할 때 마다 써먹던 말이다. “이 조치로 인해 생업에 성실히 종사하는 대다수 선량한 국민들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없다. 일부 극소수 극렬분자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반유신독재 투쟁에 동조하거나 지지하려는 주변 세력을 차단하기 위한 독재 정권의 통치 수법이었지만 사실상 “대다수 선량한 국민”들은 이 간판 뒤에 숨었다. 그리하여 “데모하는 것들과 선량한 자신들”을 분리하며 18년 유신 통치의 지지자 노릇을 했던 것이다. “까라면 깐다”라든가, “주면 주는 대로 먹고,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는다”라는 군대식 구호가 아무런 사회적 저항 없이 직장과 학교, 심지어 가정 내에서까지 공공연히 통용되었던 시절이다. 이후 박정희는 사라졌지만 독재자가 사라진 그 자리를 민주주의 교육이 메우지는 못했다. 민주주의가 공짜가 아니라는 것은 이후 1980년 광주에서의 엄청난 희생, 전두환 독재 7년간의 각종 공안 사건, “삼청 교육”, “녹화 사업”등의 국가 테러, 수 많은 학생, 노동자들의 투쟁과 희생을 통해 비싼 값을 치르고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교훈 역시 모든 국민이 배웠던 것은 아닌 듯 하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이 시민적 자유와 민주주의가 공짜인 것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위와 같은 여론 조사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그러다 또 한편 생각해 본다. 오늘날 그나마 개선된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이나 환경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노동 운동의 산물이다.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래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어쨌든 노동조합을 통해 이루어지고 대변되었다. 그러나 한국 노총과 민주 노총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노동운동 조직율(전체 노동자의 조합 가입율)은 여전히 10% 대에 머물러 있다.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획득된 혜택은 모든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지만 그 획득을 위해 노력하고 분투한 것은 온전히 10% 노동자들의 몫이었던 것이다. 노동운동의 기초가 연대(Solidarity)라면, 한국 노동운동은 다수의 무임승차에 의해 매우 가냘픈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여전히 내란 엄호세력을 지지한다고 하는 3-40%의 국민을 생각한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기초도 노동운동의 그것처럼 그리 튼튼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내란 수괴 피의자는 이제 “안전한 곳”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이후 재판 과정에서 또 얼마나 황당한 논리와 궤변으로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피곤하게 만들지, 법 기술자로 평생을 살아온 그의 “진면목”을 두고두고 보아야 하는 국민들로서는 미리 짜증이 난다. 그러나 짜증보다 더 큰 걱정은 민주주의에 기생해 온 수 많은 무임 승차자들의 선동과 부화뇌동이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고도의 통치행위이다. 고로 사법 판단 대상이 아니다” 박정희가 지하에서 관 뚜껑을 열고 박수 치면서 나올 것 같은 이런 시대착오적 발언을 공공연히 내뱉는 정치인이나 법 기술자들, 그리고 그런 말 같지 않은 소리들을 앵무새처럼 읊조리는 소위 “논객”들을 보면서 한숨이 나온다. 그런데 또한 이런 시대착오적인 선동에 부화뇌동하는 세력이 의외로 많다는데서 우리의 고민은 깊어진다. 민주주의는 공짜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잘 가꾸어 나가기 위해서는 시민적 각성과 실천이 중요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 민주주의라는 기차에 꾸역꾸역 올라타고 있는 이 공짜 손님들을 과연 어찌해야 할 것인가?  
2025-01-21 | hrights | 조회: 185 | 추천: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