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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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오항녕 /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유튜브 채널 ‘겸손은힘들다’에 나와 몇 가지 우연이 겹쳐 작년 12월 3일 계엄을 막을 수 있었다고 했다. 정말 그렇구나 싶었다. 또 김어준 씨가 헬기가 늦게 뜨도록 만든 날씨, 개인 방송이 시민을 국회에 모이도록 독려한 것, 국회의원들이 봉쇄를 뚫고 담 넘어 들어간 것 등등 계엄의 그날 아슬아슬했던 순간을 이야기할 때는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날 밤 증가했던 엔트로피가 다시 느껴졌다. 맞다. 이처럼 기억은 몸에 새겨져 있다. 이번 내란 사태는 우연히 저지된 것이 아니다. 이미 눈이 높아진 시민의식이라는 디폴트 값이, 계엄령 해제와 관련된 법령 제도가 역할을 해냈다. 상황을 주시하고 국회까지 모여든 시민, 계엄령 해제를 결의한 국회의원, 그리고 계엄군의 가슴에 작동했던 선한 의지가 있었다. 물론 헬기를 뜨지 못하게 했던 날씨 같은 우연이 겹쳤다. 이렇게 모든 사태에는 구조, 의지, 그리고 우연이 함께 작동한다. [사진 : 국회에 모인 시민들. 명심하라! 우리는 언제든지 일어설 것이다.]   글을 쓰는 지금 2월 13일(수), MBC 저녁 뉴스가 심상치 않다. 계엄 세력이 ‘수거’해서 ‘수집소’로 보내 제거하려던 사람이 5백 명이 넘는단다. 연평도, 제주도, 실미도, 전방 GOP 등에서 사고로 위장하거나, 원격 제어 폭탄으로, 심지어 음식에 화학약품을 타서 ‘처리’하려고 했다. 전 국민의 출국 금지, 3선 개헌을 통해 장기 집권의 계획까지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계엄 세력의 중심인물로 지목되고 있는 민간인 노상원 전 방첩사령관의 수첩에 적힌 내용이다. 불법 계엄으로 시작된 내란, 초기 진압은 성공했으나 여전히 내전은 지속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이 땅의 냉정한 현실이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을 비롯하여 김용현, 노상원 등이 체포되었고, 윤석열은 대통령직 파면이 예상되는 등 고비를 넘고 있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서부법원을 침탈한 폭도들 주변의 극우들이 여전히 준동하고 있고, 최상목의 특검 발목잡기도 계속되는 중이며, 국무위원들에 대한 수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검찰의 개입에 대해서는 손도 못대로 있으며, 심지어 내란 혐의자가 서울경찰청장으로 임명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반동을 막지 못하면 모든 혁명은 비극이 된다. 혁명이 빈틈을 보이는 때가 있다. 시민들이 ‘지겹다’ ‘힘들다’ ‘버겁다’ 생각하는 때이다. 왜 빨리 끝났으면 하는 조바심이 생기는가? 혁명은 시민들 일상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식료품 조달이 원활하지 못하고, 때론 전기, 수도까지 끊어진다.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간단히 말하면 혁명의 과정에는 생활 리듬이 깨지고 피로감이 몰려온다. 지금 우리도 경험하고 있다. 식품, 전기, 수도까지 끊어지지는 않았지만, 환율이 불안하고 사람들은 회식도 꺼리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언제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판결이 나나, 웬 재판이 이리 긴가, 말 같지 않은 계엄 세력들의 저런 변명과 거짓말도 듣고 있어야 하나…. 잠도 설치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게 짜증 나고 스트레스 지수를 올리면서 싸이토카인(cytokine 염증을 일으키는 단백질)을 늘리고 있다. 면역력이 떨어져서 체력이 고갈되어 예민해진 상태가 되면 자주 다투게 된다. 술에 의지하거나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도 있다. 인권연대 회원들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내란의 깊이와 폭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역사학도로서 나는 이렇게 본다. 식민지 강점기 이후 백 년 이상의 구체제(Ancient Regime)를 넘어서는 중이라고. 식민지 시대 이래 기득권층이 이승만의 민간 파시즘, 박정희~전두환의 군사 파시즘을 거치면서 기업, 문화, 법률, 언론의 탈을 쓰고 온존하던 세력들이 드러나고 있다고. 나라를 이끌 실력이나 비전도, 남을 설득할 지적 능력도, 동시대 사람들을 안고 갈 덕성이나 휴머니즘도 없다. 그들은 사사로운 이익만을 서슴없이 주장하며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1789년 프랑스 시민들만 앙샹 레짐과 맞선 게 아니다. 우리도 구체제를 전복시키는 한복판에 서 있다. 간단한 추정을 통해 희망 하나를 제시하고자 한다. 독립기념관장, 국사편찬위원장,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등을 매판적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로 채웠다. 역사관은 현실에 대한 관점의 반영이다. 근데 그 자리에 임명된 인물들이 학계에서 거의 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인사들이라는 점에서 다행이고, 이 세력들의 끝자락이라고 생각한다. 매판 세력에게 이제 역량 있는 인재가 더 이상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최근 청문회, 국정조사, 국정질의 등을 통해 드러난 국무위원들의 불쌍할 정도로 저열한 수준도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계엄 초기에 이루어진 ‘즉각 해제’는 이런 인적 조건이 낳은 또 다른 결과이다. 내란 주범인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은 또 다른 내란 주범 노상원에게 중과부적(衆寡不敵)이라고 토로했다고 한다. 중과부적은 12월 3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총체적으로 극우-매판 세력은 중과부적의 시대에 들어섰다. 나는 우리가 겪는 이번 구체제 타도 과정이 ‘치열하지만 조용히 진행되는’ 연성(軟性) 혁명이라고 본다. 조용한 내전(A Soft Civil War)! 이 과정에서는 혁명의 심성이라고나 부를 ‘공포와 기대’조차 부드러워진다. 말할 것도 없이 이번 내전이 연성으로 진행되는 데는 12월 3일 밤부터 4일 새벽까지 내란을 초기에 진압한 사실에 힘입고 있다. 그리하여 이후의 전개가 법률적 쟁투로 들어가면서 법치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법치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폭압체제에 대한 대안으로써 법치의 역할과 순기능이 엄연함을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국회, 정당, 법원이 중요한 이유, 그래서 더 잘 가꾸어야 할 이유가 된다. 형용모순이 분명한 ‘부드러운 내전’이라는 이상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도대체 이 높은 민도(民度), 집단지성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어떻게 혁명 세력의 중심인 시민들은 이토록 평화롭게 앙샹 레짐을 무너뜨리고 있는가? 눈 속의 ‘키세스’가 보여준 창의력과 간절함의 도저함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나는 지금 이를 설명할 수 없다. 다행으로 느끼고, 고마울 뿐이다. 이처럼 평화로운 혁명의 페이스를 지키고 싶을 뿐이다. [사진 : ‘키세스’들의 힘. 이번 내전과 혁명의 상징이다.] ‘근본적인 혁명’ 같은 것은 없다. 근본적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거기에 붙잡힌다. ‘공포와 기대라는 혁명적 심성’이 ‘피곤하고 짜증난 시민들의 마음을 점령할 때’ 그 근본주의는 악마적 폭력성을 드러낸다. 프랑스 혁명기의 공포정치는 그렇게 탄생했을 것이다. 따라서 혁명은 그저 그런대로 살만한, 좀 더 편안한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계엄 해제 이후 두 달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내란범들을 처벌하지 못하고 있다고 화를 내는 분들이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 습격 이후로 3년 이상이나 지난 뒤에야 루이 16세와 마리 앙뜨와네뜨가 처형되었다고. 그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파리 시민들 속이 어땠을지 짐작해보자고. 이 땅에서도 1980년 5월 광주 학살의 주범이 대통령 노릇을 하고, 그 후계자가 또 대통령이 되고, 제죽음하는 것을 보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고. [마리 앙뚜아네트의 처형 : 프랑스 시민들은 3년이 넘게 걸렸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처형 못한 학살 주범 전두환을 겪었다. 이제 갓 두 달 지났다. 조금만 길게 보자.]   이 연성 내전, 조용한 내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에게 스스로 하는 말이기도 하다. 첫째, 일상생활의 리듬을 유지하자. 인간은 조그마한 노력으로도 감정과 생각을 능동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 뉴스나 SNS, 유튜브 등은 시간을 정해놓고 보자. 잘 때는 잠만 자자. 밥도 잘 먹자. 둘째, 우리가 쉽게 피로하고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 있는 상태라고 인정하자. 그러니까 술은 자제하고 스트레칭, 걷기 등 몸을 편안하게 해주는 운동을 하자. 내 마음이 화가 나기 쉬운 상태라는 것고 인정하자. 운전 하다 옆 차가 끼어들어도, 보험료나 짜장면 값이 올라도, 당분간은 그러려니 하자. 시민들끼리는 짜증을 적게 내도록 마음 쓰자. 셋째, 수도권 시민들에게 고마운데, 계속 토요일 집회를 유지해주시기 바란다. 적어도 대통령 파면이 선고될 때까지. 만일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바로 서울로 올라가 함께 할 것을 굳게 약속한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5-02-19 | hrights | 조회: 148 | 추천: 10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계엄령인지 개염병인지 모를 불면의 밤이 지나고, 두 달 가까이 속터지고 화나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어린 시절 고향엔 제대로 된 포장도로가 전혀 없어서 겨울이 끝날 무렵 눈이 녹으면 길바닥이 온통 진흙탕이 되기 일쑤였는데, 그런 길을 걷다보면 차갑기 짝이 없는 얼음물이 신발 안으로 스며들곤 했다. 일단 괴롭고 상당히 짜증도 난다. 지난 두 달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이 계엄령을 선포하던 날 읽던 책은 하필 ‘헨리 키신저 리더십’이었다. 헨리 키신저라는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어쨌든 거장인 건 틀림없는 인물이 쓴 책이다. 세계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정치지도자 6명이 등장하는데, 독일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 싱가포르 총리 리콴유, 영국 총리 마가릿 대처 등이다. 키신저는 1923년생 아니랄까봐 이들과 나눴던 대화를 비롯한 뒷이야기까지 소개해서 꽤 흥미롭다.  키신저가 사망한 게 2023년이고 이 책이 국내에 번역된 것도 2023년이다. 그리고 나는 2024년 연말 이 책을 읽고 있었다. 엉터리 지도자가 나라를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만들 수 있는지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사례가 또 있을까 싶다. 물론 나는 윤석열한테 단 한 번도 실망해 본 적이 없다는 걸 분명히 밝히고 싶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이다.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진지하게 지도자의 자격과 자질, 지도력이란 주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지도자의 자질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건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했다는 한마디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명령하겠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불쌍한 아이크.” 1952년 대통령 선거에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후임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직전에 했다는 이 말은 훗날 아이크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아이젠하워 임기 8년을 상징하는 말이 돼 버렸다.  트루먼은 “나는 온종일 여기 앉아서 굳이 설득하지 않아도 알아서 일해야 할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시간을 다 보낸다…대통령이 가진 권력이란 그게 전부다”라는 말도 했다고 하는데, ‘대통령 리더십’의 본질에 대한 촌철살인이 아닐까 싶다. 트루먼이 했다는 아이크 이야기는 한국식 농담으로 바꿔보면 대대장은 유실수 심어라, 연대장은 무실수 심어라, 사단장은 잔디 깔아라 하는 군필자들의 오래된 농담이 생각나기도 한다. 아이젠하워 역시 미군 역사에 길이 남을 장군이었고, 또 그런만큼 명령하고 그 명령이 수행이 되는 데 익숙할 터. 하지만 대통령이란 그런 자리가 아니다.  하물며 군인 출신 대통령도 그런데 검사 출신 대통령이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한국에서 검사란 수사하고 기소하는 권력을 가진 유일한 집단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령유일체제라면 대한민국은 검사유일체제다. 윤석열 역시 검사 영감에 검찰총장까지 했으니 세상 무서울 게 없이 수십년을 살았을 터.  마오쩌둥은 생전에 참새를 가리키며 “해로운 짐승”이라고 하자 중국 인민들이 모두 나서서 참새를 잡아 족쳤다고 하는데, 한국에선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들이밀며 “범죄자”라고 하면 그 순간 범죄자 딱지를 벗을 길이 없다. 하지만 그런 자세로 대통령 일을 하면 나라꼴이 어찌 되는지 우리는 지난 몇 년간 뼈에 사무치게 배워야 했다.  윤석열은 시종일관 ‘강력한 지도자’를 지향했다. 물론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들은 ‘강력한 지도자’를 바라마지 않았다. 하지만 역사를 되짚어 보면 강력한 지도자가 실제로는 취약한 지도자였던 사례가 부지기수다. 모든 의사결정이 V1 혹은 V0에게 몰리면 정부조직이 제대로 작동할 수가 없고, 모두가 V1 혹은 V0만 쳐다보며 복지부동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빈틈을 메꾸는 ‘문고리 권력’이 호가호위를 한다. 우리가 구속된 현직 대통령을 보면서 배워야 할 진짜 중요한 교훈이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백마 탄 왕자님은 필요없다’는 한마디 아닐까. 
2025-02-04 | hrights | 조회: 91 | 추천: 12
김희교 / 인권연대 운영위원  약 1년쯤 전에 미국 샌디에고에서 몇 달을 머문 적이 있다. 샌디에고는 미국인들이 가장 살고 싶은 도시로 늘 꼽히는 안전하고 깨끗한 도시였다. 약 10년전쯤 연구년을 계기로 그 근처에서 잠깐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 기억이 너무 좋아 그곳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는 이미 10년전의 그런 샌디에고가 아니었다. 평온했던 도심은 노숙자들이 완전히 점거하여 대낮에도 보행조차 자유롭지 않았다. 마약을 한 것으로 보이는 행인을 목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주 총기 사고가 나서 밤에는 나 다닐 수 없는 도시가 되어 있었다. 밤에는 여기 저기서 총성이 들리곤 한다.  국민의 힘 의원들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정녕 당신들은 그런 나라에 살고 싶은가? 생각이 다르다고 백주대낮에 백색테러가 자행하고, 자신의 뜻대로 하기위해 법조차 무시하고 상대 방에게 총기를 들이대고 복종을 강요하고,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서스럼없이 폭력을 사용하는 그런 나라를 당신들은 정말 만들고 싶은가?  지금 서울 거리에는 수많은 외국인이 활보하고 있다. 그들에게 한국은 가보고 싶은 나라, 박수 쳐 주고 싶은 나라, 친절한 나라, 안전한 나라이다. 세계인들에게 한국은 가보고 싶은 나라이다.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피 땀 눈물을 흘리며 고생해 K-pop의 나라를 만들었다. 이미 문화제국이 된 대한민국은 전세계인에게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나라가 되어 있다. 전쟁을 극복하고 단기간에 민주주의를 완성한 한국은 박수쳐주고 싶은 나라이기도 하다. 와보면 사람이 사람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조상으로부터 물러받은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친절한 나라임을 느끼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것은 24시간 안전하게 어디든지 갈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나라라는 점이다. 전세계적으로 이런 나라는 많지 않다. 우리는 짧은 기간에 그런 매력적인 나라를 만들어 놓았다.  응원봉을 들고 거리를 나선 2030 청년들은 이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선 것이다. 당신들이 싫어서 나선 것도 아니고, 좌파가 되서 우파를 청산하기 위해 나선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들이 누리는 그런 자랑스러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나선 것이다. 그들은 자랑스러운 K-pop의 나라를 키워고, K-culture의 구성원이었다. 그들이 지금의 민주주의를 만든 주역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민주주의가 자신들의 일상을 얼마나 평화롭고 안전하게 만들어주는 지를 체험한 세대이다. 같은 아티스트를 응원하기 위해 한국에 온 이방인들에게 아무 댓가없이 도움을 준 연대를 경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홍대와성수동, 그리고 용산은 이방인들이 모여 공생하고 연대하는 그들의 새로운 세계였다. 그런 새로운 세계를 살아 본 경험이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당신들이 무슨 자격으로 그들이 피 땀 눈물로 만들어 놓은 그런 자랑스러운 나라를 파괴하려하는가? 대통령을 지킨답시고 국회에 총기를 들고 난입하고, 당신들이 원하는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고 법원을 때려부수는 당신들은 이미 그런 나라를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다. 당신들은 유럽 어느 골목에서 한국인이 당했던 인종주의 폭력을 한국의 대로를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탱크가 거리에 나다니고, 백색테러가 자행되는 한국은 K-culture의 나라가 아니다. 각국의 대사관들은 이미 한국 여행 주의보를 내렸다.  묻고 또 묻고 싶다. 당신들이 “반국가세력”을 소탕한답시고 총을 들고 국회에 난입하여 국회를 진압하는데 성공했다면, 한남동 공관을 방어한다고 영장을 들고 온 공수처에게 총기를 사용했다면, 서부 지법을 침탈해서 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붙잡았다면 당신들은 당신들의 나라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 믿는가? 총은 당신들만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서울의 봄을 보라.당신들이 총으로 국회 장악에 성공했다면 당신들에게 저항하고 시민을 대변하는 또 다른 무장세력이 당신들에게 총을 겨누었을 것이다. 당신들이 국회를 장악했다고 하더라도 당신들의 나라가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란으로 쑥대밭이 되는 나라만 남을 뿐이다.  서부지법 판사가 당신들의 우두머리를 석방했다고 해서 당신들의 나라는 건설되지 않는다. 김용현이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던가? 당신들의 힘은 이미 ‘중과부적’이다. 역사는 쉽게 거꾸로 가지 않는다. 총기와 장갑차를 손으로 막은 시민들이 있고, 국회를 총으로 진압하는 것이 불법임을 알고 비폭력 저항을 선택하는 군인이 있고, 지켜야 할 것은 윤석열이 아니라 이나라 대통령임을 아는 경호처 직원들이 있다. 그들이 이미 대세이다. 검사들을 동원하여 반국가 세력을 소탕하려다가 실패하자 군인을 손을 잡았고, 그것마저 실패하자 법원을 테러하는 일을 자행해 권력을 잡을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권력이 유지될 성 싶은가? 부디 역사의 대세를 읽어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고 싶다. 만약 어쩌다 성공하여 반국가 세력이 없는 당신들의 나라를 세우면 그런 나라에서 당신들은 행복할 것이라 믿는가? 그렇다면 미국을 한번 가보라. 트럼프대통령 만나러 가서 얼굴도 한번 못보고 텔레비젼 화면이나 쳐다보고 있다가 오지 말고 비버리힐스나 한번 가보라. 한 때 미국의 천당이었던 부자동네 비버리힐스는 이제 노숙자들의 주거지로 변했다. 부자들이 몇 겹의 바리케이트를 치고 성을 쌓아도 밀려들어오는 노숙자를 막는데는 한계가 있다. 그런 나라에서는 아무리 잘나가도 1000평짜리 감옥에 평생을 사는 것이다. 당신들은 지금 그런 나라를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런 나라에서는 당신들도 감옥살이를 할 수 밖에 없다.  당신들에게도 권력이 있고, 총이 있고, 동원할 수 있는 세력이 있기에 내란과 폭동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반동의 시대로 끌고 갈 수는 있다. 그러나 결코 당신들이 원하는 ‘반국가 세력’이 없는 그런 나라를 세울 수는 없다. 이미 광장의 시민들은 당신들과 다른 꿈을 꾸고, 다른 세계를 그리며, 그런 세계의 달콤함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한번도 등장하지 않은 전혀 새로운 주체이다. 언제든지 당신들이 부러뜨릴 수 있는 단 하나의 깃발 아래 있지 않다. 수백 수천개의 깃발 아래 뭉쳐 있어 권력으로 통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세력이다. 당신들이 그들에게 반국가 세력이라 딱지 붙이고 그들과 싸우는 이상 당신들은 어디에서 나오는 지도 모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도 모르는 전혀 새로운 저항세력을 만나게 될 것이다. 당신들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가? 그들에게 항복하라. 그리고 대세에 추종하라. 그런 나라가 당신들에게도 빛이 될 것이다. 부디 이제 항복하라. 김희교 위원은 현재 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5-01-31 | hrights | 조회: 295 | 추천: 8
정범구/장발장은행장   현직 대통령에 의한 내란 시도는 12. 3 계엄선포 47일만에 윤석열을 구속함으로써 일단 한 고비를 넘기게 되었다. 그러나 영장 발부 이후 벌어졌던 서울 서부지방법원에서의 난동과 폭력 등은 한국 민주주의에 깊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2016년 촛불혁명 이래 우리 시민사회가 자랑으로 여겨왔던 평화적 시위 전통이 위협받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 극우의 행태가 도를 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내란 수괴” 윤석열의 체포영장 집행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련의 사태들을 통해 우리나라 기득권 층의 가려진 민낯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평생 “법치”를 입에 달고 살았을 뿐 아니라 그걸로 밥줄을 삼고, 입신출세하고, 끝내는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른 자가, 더구나 쿠데타 실패 이후 “대국민 담화”를 통해서는 당당히 수사에 임하겠다고 큰소리 쳤던 자가, 체포영장 집행과정에서 보여줬던 추태는 그 어떤 막장 드라마 보다 더 역겨웠다. 더구나 자신의 체포를 피하기 위해 극우 시위대의 저항을 부추기고, 국민을 분열시키려 한 행위 등은 어떤 말로도 용서가 안된다. 그런데 그 막장 드라마의 주연 뿐 아니라 조연들의 면면도 역겹고 추하기는 마찬가지다. 체포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한남동 관저 앞으로 달려간 44명의 국힘 의원들. 그들의 충성 대상은 결국 국민이 아니고 헌정을 파괴하려 했던 “내란 수괴”였던 것인가? 이런 의심은 국회의원을 다섯 번 째인가 한다는 윤상현 의원이 극우 선동가 전광훈 앞에 90도로 엎드려 절을 하는 모습에서 더욱 확실해진다. 이들의 충성 대상은 결코 국민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제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이 무색해지는 장면들이다. 12. 3 내란 시도 과정에서 “내란의 조연”으로 동원되었던 경찰은 윤석열 체포 과정에서 일정 부분 명예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대행의 대행” 신분으로, 국회가 선출한 헌재 재판관 3명 중 두 명만을 선별적으로 임명하고, 국회가 송부한 법안에 대해서는 다시 거부권을 행사한 최상목 대행의 처신은 여전히 의구심을 자아낸다. 특히 윤의 체포 과정에서 보여 준 그의 행태는 단순히 그 한 개인의 성향 뿐 아니라 관료 사회 전반의 성향까지를 의문시하게 된다. 이른바 “영혼 없는 관료 집단”에 대한 오래 된 의문이다. “주권 재민”과 “삼권 분립”이 뼈대를 이루는 헌정 질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보다는 개인의 출세와 입신양명이 인생의 주요 목표였을 고시생 시절의 모습들도 오버랩된다. 12. 3 쿠데타와 그로 인한 내란 위협은 윤석열과 쿠데타 가담 세력들의 체포와 구속으로 일단 안정되는 것 같지만 내란을 지지, 엄호했던 ‘국민의 힘’에 대한 지지율이 다시 회복되고 있다는 소식은 많은 우려를 자아낸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국힘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역전됐다는 결과도 나온다. 탄핵심판 절차가 진행되면서 사람들 관심이 대선 국면으로 옮아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고, 여론조사에 응하는 보수 세력들이 과표집(過標集) 되고 있다는 분석들도 있지만 나 같은 사람 입장에서는 그저 황당하게 느껴질 뿐이다. 아니 모든 것을 다 양보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내란 비호 세력을 지지할 수 있다는 것인지, 민주주의를 공짜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이 대목에서 문득 옛날 생각이 난다. 과거 박정희 유신 시절을 겪은 사람들이라면 그 시절 상투적으로 듣던 말이 있다. 유신 체제에 반대하는 학생들과 반독재운동 세력을 향해 독재 정권이 각종 긴급조치와 계엄령들을 남발할 때 마다 써먹던 말이다. “이 조치로 인해 생업에 성실히 종사하는 대다수 선량한 국민들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없다. 일부 극소수 극렬분자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반유신독재 투쟁에 동조하거나 지지하려는 주변 세력을 차단하기 위한 독재 정권의 통치 수법이었지만 사실상 “대다수 선량한 국민”들은 이 간판 뒤에 숨었다. 그리하여 “데모하는 것들과 선량한 자신들”을 분리하며 18년 유신 통치의 지지자 노릇을 했던 것이다. “까라면 깐다”라든가, “주면 주는 대로 먹고,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는다”라는 군대식 구호가 아무런 사회적 저항 없이 직장과 학교, 심지어 가정 내에서까지 공공연히 통용되었던 시절이다. 이후 박정희는 사라졌지만 독재자가 사라진 그 자리를 민주주의 교육이 메우지는 못했다. 민주주의가 공짜가 아니라는 것은 이후 1980년 광주에서의 엄청난 희생, 전두환 독재 7년간의 각종 공안 사건, “삼청 교육”, “녹화 사업”등의 국가 테러, 수 많은 학생, 노동자들의 투쟁과 희생을 통해 비싼 값을 치르고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교훈 역시 모든 국민이 배웠던 것은 아닌 듯 하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이 시민적 자유와 민주주의가 공짜인 것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위와 같은 여론 조사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그러다 또 한편 생각해 본다. 오늘날 그나마 개선된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이나 환경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노동 운동의 산물이다.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래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어쨌든 노동조합을 통해 이루어지고 대변되었다. 그러나 한국 노총과 민주 노총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노동운동 조직율(전체 노동자의 조합 가입율)은 여전히 10% 대에 머물러 있다.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획득된 혜택은 모든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지만 그 획득을 위해 노력하고 분투한 것은 온전히 10% 노동자들의 몫이었던 것이다. 노동운동의 기초가 연대(Solidarity)라면, 한국 노동운동은 다수의 무임승차에 의해 매우 가냘픈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여전히 내란 엄호세력을 지지한다고 하는 3-40%의 국민을 생각한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기초도 노동운동의 그것처럼 그리 튼튼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내란 수괴 피의자는 이제 “안전한 곳”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이후 재판 과정에서 또 얼마나 황당한 논리와 궤변으로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피곤하게 만들지, 법 기술자로 평생을 살아온 그의 “진면목”을 두고두고 보아야 하는 국민들로서는 미리 짜증이 난다. 그러나 짜증보다 더 큰 걱정은 민주주의에 기생해 온 수 많은 무임 승차자들의 선동과 부화뇌동이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고도의 통치행위이다. 고로 사법 판단 대상이 아니다” 박정희가 지하에서 관 뚜껑을 열고 박수 치면서 나올 것 같은 이런 시대착오적 발언을 공공연히 내뱉는 정치인이나 법 기술자들, 그리고 그런 말 같지 않은 소리들을 앵무새처럼 읊조리는 소위 “논객”들을 보면서 한숨이 나온다. 그런데 또한 이런 시대착오적인 선동에 부화뇌동하는 세력이 의외로 많다는데서 우리의 고민은 깊어진다. 민주주의는 공짜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잘 가꾸어 나가기 위해서는 시민적 각성과 실천이 중요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 민주주의라는 기차에 꾸역꾸역 올라타고 있는 이 공짜 손님들을 과연 어찌해야 할 것인가?  
2025-01-21 | hrights | 조회: 107 | 추천: 5
서보학 / 인권연대 운영위원   윤석열은 내란죄의 수괴 검찰 특수본은 최근 김용현 전 국방장관을 필두로 내란에 가담했던 군장성들과 경찰청장 등을 내란중요임무종사죄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구속 기소하면서 공소장에 윤석열을 내란죄의 수괴로 적시하였다. 한편 법원이 공수처의 신청으로 발부한 체포영장에도 윤석열은 내란죄의 수괴로 적시되어 있다. 윤석열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40-50년 후퇴시켜 유신시대의 부활과 장기 집권ㆍ독재를 꿈꾸었던 망상가이다. 유신시대가 어떤 시대였던가? 민주주의, 법치주의, 인권이 압살되고 공포정치가 지배했던 시대였다. 군인들이 법기술자였던 검사ㆍ판사들과 합작하여 국민들의 생명ㆍ인권을 유린한 시대였다. 자신의 정치적 무능ㆍ실정, 부인 김건희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유신시대의 부활을 꿈꾸며 내란을 획책한 윤석열은 박정희ㆍ전두환의 계보를 잇는 최악의 미치광이 독재자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전시계엄령을 선포하기 위해 북한을 자극해서 전쟁 발발을 유도하였다는 정황 앞에서는 치미는 분노를 감출 수가 없다.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외환유치를 시도한 윤석열은 매국노 이상의 국민배신자라고 욕해도 무색하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은 만고의 역적이다. 이번 내란을 막아 내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것은 국민들의 위대한 승리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재판소에서는 늦어도 2월 안으로는 윤석열을 대통령에서 파면한다는 결정이 내려질 것이다. 윤석열의 파면으로 내란 사태가 진압되어야 나라도 안정되고 대한민국도 제2의 번영과 발전을 위한 새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과는 별개로 내란죄 수괴 윤석열 및 내란 참여 세력에 대해서는 철저한 수사가 이루어져서 이들 모두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 특히 내란죄의 수괴인 윤석열은 사형 또는 무기형에 처해 다시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국민통합을 명분으로 윤석열에 대한 사면을 언급하는 자나 정치세력은 결코 국민들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내란 가담 군장성에게 군사반란죄를 적용해야 한다 검찰 특수본은 12․3 내란 가담자인 군장성들을 형법상 내란중요임무종사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구속 기소 하였지만 이들에게 군형법상 반란죄(군형법 제5조)를 적용하지는 않았다. 대통령이 주도하는 친위 군사쿠데타에 가담한 군인에게 군사반란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군사반란은 다수의 군인이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여 국권 내지 국가기관에 반항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다. 국권에는 ‘군의 통수권 및 지휘권’이 포함된다. 현재 대한민국 법령은 군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육ㆍ해ㆍ공군의 군사작전 및 군령 작용을 ‘합참의장’이 지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국군조직법 및 합동참모본부 직제(대통령령) 등은 합참의장이 계엄의 시행과 업무를 담당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계엄의 시행은 군부대의 이동과 병력 투입이 필수적 요소이다. 이는 북한과 대적하고 있는 상황에서 빈틈없는 전투준비태세를 유지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계엄 관계 법령이 합참의장으로 하여금 계엄업무를 통제하도록 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실제로 매년 실시하는 을지훈련(UFS 훈련)에서도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이 되고 합참에 계엄처를 설치하는 방법으로 계엄 시행 연습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계엄법은 국군조직법에 대한 특별법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대통령도 군병력을 이용한 계엄을 시행할 때에는 기본법령에 따른 군의 조직체계, 임무체계, 지휘체계를 준수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3 내란 당시 군장성들은 대통령 및 국방장관과 공모하여 그들의 위법한 명령에 따라 무장병력을 지휘ㆍ투입하여 헌법기관인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무력화를 시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군장성들은 군내 작전(군령) 및 계엄업무의 최고책임자이자 현역 군 최고서열자인 ‘합참의장’에게 계엄이나 작전병력의 투입 등 관련한 사전 보고를 하지 않았고 지휘도 받지 않았다. 군장성들이 법령이 정한 군의 조직ㆍ보고ㆍ지휘체계를 따르지 않고 비선 조직으로 군병력을 동원해 헌법기관의 전복을 꾀한 것이다. 전형적인 군사반란에 해당한다. 이번 내란 사건은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지휘하고 군장성들이 이에 따른 것으로 군사반란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지난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신군부 계엄군의 행위가 군의 최고통수권자인 당시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나 승인 혹은 묵인하에 이루어진 것으로 반란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대법원 96도3376 판결)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번 12․3 내란 및 군사반란사건에 위 판결의 논리가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다. 당시 최규하 대통령은 전두환의 강요에 의해 하자 있는 의사표시를 한 것이지만 스스로는 내란범이 아닌 정상적인 대통령으로서 적법한 승인 등 행위를 한 것이었고 또한 당시 계엄사령관인 육군참모총장(대장 이희성)은 군정권과 군령권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는 점 등에서 사실관계가 서로 다르다. 대통령의 군통수권은 초법적인 제왕적 권한이 아니다. 대한민국 군대도 대통령의 사병집단(私兵集團)이 아니다. 대한민국 군대는 국민의 군대이다. 대통령이 군의 최고통수권자이기 때문에 위헌ㆍ위법한 명령이라도 그의 명령을 따른 군인에게는 군사반란이 성립할 수 없다는 주장은 민주주의ㆍ법치주의 국가에서는 성립되기 어려운 반헌법적 주장이다. 대통령 개인과 육군사관학교 선배에게 충성하는 소수의 장성이 군의 정상적인 지휘체계를 무시하고 최고 지휘관인 합참의장 모르게 전투준비태세에 임하고 있는 군작전 병력을 움직여 헌법기관의 전복을 시도하고 안보태세에 구멍을 낸 행위가 군사반란이 아니라는 논리는 용납되기 어렵다. 이들의 행위는 누구의 명령에 따랐는지에 상관없이 군의 지휘통수체계를 침해한 것으로서 군사반란으로 평가해야 한다. 위헌적ㆍ위법적인 명령을 내리는 대통령ㆍ국방장관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하는 것은 군인정신도 아니고 면책될 수도 없다. 이번 내란 및 군사반란은 법령에 정하여진 정상적인 군의 조직체계와 지휘체계가 유지되었다면 절대 발생할 수 없었다. 내란 가담 군장성들을 군사반란죄로 처벌하는 일은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군사쿠데타라는 불행한 사건의 재발을 원천 차단하는 동시에 군사반란이 무엇인지를 규명하고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는 일로서 대한민국의 헌법수호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군형법의 군사반란죄는 형법의 내란죄 보다 더 중하게 처벌된다. 내란에 가담해 불법적으로 군을 동원한 군장성들은 군형법상 군사반란죄의 수괴에 해당한다. 군사반란죄의 수괴는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다(군형법 제5조 1호). 군장성들의 지휘를 받아 군사반란에 가담한 간부들 군사반란죄의 중요임무종사로서 사형ㆍ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진다(군형법 제5조 2호). 군사반란에 부화뇌동하여 참여하거나 폭동에 관여한 자도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군형법 제5조 3호). 형법상의 내란죄 보다 훨씬 형이 중하다. 또한 군사반란죄는 내란죄 보다 가담자의 처벌 범위를 보다 넓게 인정한다. 예컨대 군사반란죄가 성립하는 경우 이에 적극적ㆍ소극적으로 가담한 군인들뿐만 아니라, 이를 알고도 묵인 군인까지 처벌할 수 있게 된다. 군형법 제9조는 반란불보고죄를 규정하여 군사반란을 알고도 이를 상관이나 관계관에게 지체없이 보고하지 않은 사람까지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란 가담 군장성들을 군사반란죄로 처벌해야 군사반란의 성사에 기여한 숨은 세력들도 식별하여 처벌할 수 있고 향후 군사반란 재발 가능성도 원천 차단할 수 있다. 군사반란를 주도한 윤석열의 책임은 어떻게 되는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의 군통수권은 적법하게 행사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대통령도 내란의 목적으로 위헌․위법한 군통수권을 행사한다면, 그 스스로 해당 군장성들과 함께 법령이 정한 군의 지휘통수체계를 침해하는 군사반란범이 되는 것이다. 윤석열도 군사반란죄의 공동정범이 되거나 최소한 교사범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윤석열에게는 사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크다. 검찰 특수본은 조속히 내란 가담 군장성들을 군사반란죄의 수괴로 추가 기소해야 한다. 내란 사태가 남긴 군개혁의 과제 외적의 침입을 막고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군인들이 국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냥한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국민들에 대한 배신행위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진전과 더불어 군지휘관들도 민주화의 수준에 맞게 의식의 진보를 이루었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군인의 정치개입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지는 끔찍한 악몽이다. 철저한 단죄만이 군에 의한 제3, 제4의 쿠테타를 예방할 수 있다. 12.12 군사반란 이틀 후인 79년 12월 14일 서울 보안사령부 구내에서 기념촬영한 12.12 군사반란 반란군 가담자들 이번 내란 사태는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국방장관에 민간인을 임명하여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많은 선진외국에서 민간인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하여 군에 대한 민간 통제를 철저히 하고 있는데 선진화된 우리나라에서 군출신만을 장관으로 고집할 이유가 전혀 없다. 또한 이번 내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군인들이 모두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라는 점에서 육군사관학교의 존재 이유 및 역할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육군사관학교가 민주화 시대에 걸맞는 군지휘관을 길러내는 데 실패하고 군내 특권계급을 양성하는데 그치고 있다면 더이상 존립할 이유가 없다. 하나회 폐지로 군내 정치군인 및 특권적 사조직이 없어진 것으로 생각했던 국민들은 이번에 육사 출신 간부들의 내란 획책으로 큰 충격을 받은 상태이다. 육군사관학교의 폐지까지 포함해 군간부 양성제도의 획기적인 개혁이 있어야 한다. 나아가 군의 중요 보직 인사ㆍ승진에 있어서도 사관학교 출신들이 특혜를 받고 상하ㆍ좌우로 연결되어 사조직 결성의 폐단이 발생하지 않도록 군인사제도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번 내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군방첩사는 과감하게 폐지해야 한다. 군의 수사ㆍ정보기관인 방첩사는 과거 악명을 떨쳤던 보안사ㆍ기무사의 악습을 아직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도 계엄의 구체적 계획을 수립했던 곳이 바로 기무사였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암덩어리가 되어버린 방첩사는 즉시 폐지하는 것이 맞다. 아울러 이번 기회에 군사법개혁에도 적극 나서서 평시 군사법원과 군검찰을 폐지해야 한다. 전시가 아닌 평시에는 모든 군범죄도 – 사망사건과 성범죄 사건뿐만 아니라 – 일반 경찰이 수사하고 검찰이 기소하며 법원이 재판하도록 해야 한다. 평시 군사법원과 군검찰의 존재는 군의 폐쇄적 속성과 맞물려 군지휘관의 권한 남용과 군내 부패ㆍ비리를 은폐하는데 일조할 뿐이다. 이러한 폐단은 해병대 채상병 사건 은폐 외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서보학 위원은 현재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5-01-14 | hrights | 조회: 246 | 추천: 6
장경욱 / 인권연대 운영위원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긴급 담화문에 담긴 내용은 딱 한 가지로 요약된다.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고,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탄핵, 특검, 예산 폭거, 입법 독재 등등 ‘패악질을 임상은 만국의 원흉 반국가세력’, 즉 국회를 척결하고 국가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하였다고 한다. 국회에 대한 적개심만이 부각되다보니, 그가 내세운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한 비상계엄의 명분은 지나가는 말처럼 묻혀버렸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를 앞둔 대국민담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비상계엄의 명분으로 추가로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북한의 해킹 공격, 민주노총 간첩 사건, GPS 교란과 오물풍선, 국정원 대공수사권 박탈, 국가보안법 폐지 시도 등을 언급하며 또다시 거대 야당과 국회가 북한 편을 들어 정부를 흠집내기만 했다고 강변하였다. 기실 거대야당과 국회를 종북 반국가세력으로 보는 것은 반공의식이 강한 국민에게도 전혀 근거 없고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포장하여 비상계엄의 명분으로 삼을만한 단 한 개의 카드조차 남아있지 않은 막다른 정권의 위기 상황에서 저지른 내란범죄가 이번 친위 쿠데타의 실상이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윤석열 정권이 스스로 자멸을 초래하며 이 지경에 이른 구조적 문제를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바로 보는 것이다. 먼저, 임기 초부터 친미극우 반공적 입장에서 북과의 평화통일을 위한 타협과 협상을 전면 거부하며 미국을 추종하여 노골적인 대북적대정책에 몰두한 탓이다. 그렇기에 남북관계의 전면적 단절과 군사적 긴장격화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를 기화로 미국의 국익에 철저히 부합하는 한미일 군사동맹 구축과 한미일 대북핵전쟁연습의 강화가 정권이 내세울만한 바람직한 치적으로 선전되었다.  다음으로, 임기 초 국민의 신뢰를 상실하고 정권의 위기에 처하자마자 바로 정권의 위기에서 벗어나 권력의 강화를 위해, 국민 억압의 통치수단으로 국가보안법을 휘둘러 진보민중운동에 대한 끊임없는 종북몰이 공안탄압을 자행한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이번 비상계엄 군사쿠데타는 윤석열 극우보수정권의 ‘주적으로서의 북’과 ‘선제타격론’의 대북강경 적대정책과 국가보안법에 의한 지속적 공안탄압이 누적되어 그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일이다. 실제로 군사쿠데타 실패 과정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내란주동자들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위한 명분으로 북과의 전쟁을 유발하기 위해 평양에 무인기를 침투시켰는가 하면, 북의 오물 풍선 원점 타격을 지시했고, 서해 북방한계선 인근에서 포사격훈련을 강화하는 등으로 국지전을 시도하였다. 심지어 비상계엄 후 국군을 인민군으로 위장한 암살 작전까지 준비하였다고 한다. 끊임없이 북의 위협을 이야기하고 이를 구실로 진보민중운동을 비롯한 정치적 반대자들을 종북세력, 반국가세력으로 몰아 국가보안법으로 탄압하며 급기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전쟁을 조장하여 비상계엄을 조작함으로써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위태롭게 하며 민주주의를 파괴하여 군사독재시절로 회귀를 시도한 장본인이 친미극우 반공주의 정권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한반도 및 지역의 불안정과 군사적 긴장의 모든 원인을 북의 위협으로 몰아 북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것이 대북적대정책이고 이를 국내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국가보안법이다. 극우파시스트 정권을 산생, 유지, 온존시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극우파시스트 정권의 국가보안법에 의한 공안탄압과 군사쿠데타 및 전쟁 도발 책동이 끝간데 없이 벌어지는 곳이 우리가 살아가는 외국군 주둔의 대북적대 분단냉전체제의 한반도 현실이다. 이를 극복하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든지 친미극우 반공주의 정권의 비상계엄 군사쿠데타의 망령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악순환의 연속, 도돌이표를 그리는 세월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25-01-02 | hrights | 조회: 648 | 추천: 7
오항녕 / 인권연대 운영위원 1. 아침 세수를 하면서 ‘언흐흐흐흐 언흐흐흐흐, 기다리던 으흐 아파트’ 흥얼거리는 나를 알아챘다. 그러다 또 알게 된 건 ‘아파트, 아파트, 어흐흐흐 …’도 섞어가면서 불렀다는 거다. 이게 뭐지? 뒤범벅인데! 어디서 왔지? 1. 2024년 12월은 다음의 실제 겸 표상으로 구현된다. 응원봉, ‘다시만난세계’, ‘아파트’, 깃발, 남태령-우금치, 열어라-차빼라!, 난방 버스, 핫팩, 떡볶이-김밥, 선결제 … 거기에 ‘님을위한행진곡’, ‘상록수’ …. [사진1: 젊은이들의 응원봉, 깃발…, 그리고 누군가 보낸 보온 버스. 이런 힘을 역사에서 본 적이 있는가!] 1. 난 소녀시대는 알았지만 ‘다시만난세계’는 첨 알았다. 여타 아이돌이나 심지어 BTS에 대해서도 아는 게 거의 없다. BTS 멤버는 물론 노래도 제대로 아는 게 없다. 학교 동료가 ‘정국’이를 좋아한다며 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줄 때 난 ‘기생 오래비’ 운운하며 코웃음을 쳤다. 물론 그때 곁에 있던 학생의 싸늘한 눈길을 모를 정도로 둔감하지는 않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무튼 다이너마이튼지 뭔지 하는 노래는 ‘다이너마이트’라는 말밖에 아는 가사가 없다. 특별히 알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젊은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냐고? 공감과 학습이 가능하겠냐는 우려다. 그럴 듯한 걱정이지만 실은 바보 같은 질문이다. 세상에 얼마나 배우고 가르칠 게 많으며, 다르면서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얼마나 많은데! 1. 세월이 흐르면 사람도 세상도 변한다. 예순 넘은 내가 20대 학생들과 취미 또는 생각이 같거나 비슷하다면, 그리고 1979년과 2024년의 비상계엄이 같다면, 그건 나나 한국 사회가 내내 변치 않고 같다는 말이 된다. 허나 우주에 그런 일은 없다. 모든 게 변한다. 즉 달라진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말한다. “내 생각과 여러분 생각이 대부분 다른 것은 당연하다. 만일 같다면 그건 특수한 사건에 국한되거나, 나 또는 여러분이 뭔가에 갇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진2: 남태령을 넘은 새로운 역사. 달리 표현하기 어려운 새로운 힘, 역사를 만들어가는 힘!] 1. 이 칼럼을 쓰던 중, ‘남태령 대첩(大捷)’이 일어났다. 대첩이란, 한산대첩, 행주대첩의 예에서 보듯 ‘싸워서 크게 이겼다’는 말이다. 농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과 구속을 요구하면서 트랙터를 몰고 서울로 올라왔는데, 전국농민회 총연맹 소속 농민들이었다. 이를 경찰이 사당동 넘어오는 남태령에서 막았다고 한다. 경찰은 경찰차로 차벽을 쳐서 농민들의 서울 진입을 막았다. 또 트랙터 유리창을 부수고 농민들을 연행하려 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들이 달려가 농민을 보호하고 응원했다. 남태령에 1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였다고 한다. 아다시피 그날 밤은 매우 추웠다. 체감온도 영하 10도. 그곳에서 28시간을 버티며 결국 한남동 윤씨의 집으로 가는 길을 텄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걱정만 했다. ‘많이 추울 텐데 … , 경찰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1. 나는 추워서 그 시간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동상 핑계만이 아니라, 여의도공원 4시간도 버거운 체력 때문이다. 늙은 거다. 그래서 밤새 저렇게 못하는 거다. 그 의미는? 그렇다, 역사를 만드는 데 기여할 힘이 적다는 거다. 객사 집회를 다녀온 작은 아이는 ‘서로 교대도 해요’라며 문자도 보여주었다. 새벽에 알아서 서로 교대도 했단다. 거기에는 ‘난방 버스’라는 거침없는 후원 방식도 큰 도움이 되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나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실천적이다. 1. 모든 미래가 그렇듯이 12.3 내란의 처리가 어떻게 흘러갈지 누구도 예언할 수 없다. 어떤 시나리오도 그대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불의와 정의를 말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달성을 위해 노력할 뿐이다. 응원봉을 들고 아파트를 부르고 댓글을 쓰고 걱정하거나 분노할 뿐이다. 그렇지만 이 거대한 혁명적 상황이 가져올 결과, 그 세상에 대해서는 조금은 희망을 가지고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국회의사당 앞 광장 바닥에서, 광화문, 한남동, 용산, 그리고 남태령 아스팔트 바닥에서 밤을 새는 저 젊은이들이 만들어갈 세상에 덜 방해가 되는 삶을 찾아보는 것이다. 혹시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물어보고 했으면 한다. 젊은이들이 권하지 않는 행동은 대개 나이 든 이들의 간섭이거나 자기만족을 벗어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 이참에 다시 상기해본다. 그래도 이 난국을 이겨내고 새 세상을 만드는 데 끼어주면 좋겠다. 1. 아울러 미래를 위해 이렇게 실천할 것을 제안한다. 어머니/아버지, 할머니/할아버지께서 극우 또는 불의의 늪에 빠지셨는지 확인하고, ①단톡방 ‘나가기’를 해드리고, ②건강과 지성을 키울 단톡방이나 사이트를 안내하면 좋겠다. [사진3: 겸재의 〈비 개인 인왕산〉. 12월 14일, 여의도공원에서 곁에 있거나 스쳤던 젊은이들에게서 저 그림이 떠올랐다. 1991년 지곡서당 유학 시절, 유홍준 선생이 특강 중 저 그림을 슬라이드로 보여주었다. 그림을 보던 나는 ‘자신만만하군…’이라고 중얼거렸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4-12-23 | hrights | 조회: 240 | 추천: 6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어릴 때 학교에서 상대성이론을 배울 때 선생님은 이런 비유를 들었다. “즐거울 때는 시간이 후딱 지나가고, 괴로울 때는 시간이 겁나게 늦게 간다.” 글쎄 그게 정말 상대성이론을 설명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우리는 지금 무척이나 괴롭고 고통스런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아직도 그 분 임기가 절반밖에 안 지나갔다. 다음 대통령 선거까진 3년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 진짜 욕 나온다. 무능한 정부, 할 줄 아는 것은 압수수색뿐 2022년 3월 대통령선거 직후 블로그에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착한척하고 무능력한 정부에 너무나도 실망한 끝에 안착하고 능력 있는 체하는 차기 정부를 선택했다.” 지금도 이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한 가지는 수정해야겠다. 위선을 너무나 싫어한 나머지 능력 있는 척 하지도 않는다. 능력 없는 게 뭐가 문제냐고 당당하다. 할 줄 아는 거라곤 압수수색 뿐이다. 국정목표는 ‘이재명 감옥 보내주기’가 전부다. 물론 그마저도 제대로 못한다. 주변에 대통령에게 실망했다는 얘길 하는 분들이 가끔 있다. 이렇게 일을 못할 줄 몰랐다느니, 이 정도일 줄 몰랐다느니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이 정부에 전혀 실망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해주곤 한다. 애초에 기대가 없었으니 실망할 것도 없다. 어쨌든 덕분에 검찰이 능력 있는 집단이라는 환상은 확실하게 박살 났다. 김영삼이 통일 기반 마련을 위해 남북한 경제력 격차를 확실하게 줄여놓은 것 못지않은 업적으로 역사에 길이 남지 않을까 싶다. 군대에서 제대한 게 1998년이었다. ‘부산 앞바다에 손가락이 둥둥 떠다닌다’는 썰렁한 농담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외환위기 충격이 너무 고통스러워 김영삼 찍었던 자기 손가락을 잘라서 바다에 버렸다나 뭐라나. 그 뒤로도 대통령 선거를 여러 번 했는데 우리 국민들 손가락이 남아날까 걱정이 살짝 되는 게 사실이다. 공중목욕탕에서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칠냉팔온은 건강에 좋기라도 하지, 왜 우리는 5년마다 열광과 절망을 되풀이해야 하는 것일까. 대통령선거, 정도령 찾기 게임 이쯤에서 우리가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기던 상식을 다시 살펴봐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문제는 대통령을 잘못 뽑은 게 아니다. 애꿎은 손가락 탓할 게 아니다. 대통령 선거 자체가 문제인 건 아닐까. 현재 한국이 시행하는 5년 단임 대통령제는 비유하자면, 정도령 찾기 게임이다. 대한민국은 5년 내내 <정감록>에서 예언했던 바로 그 ‘정도령’을 찾아 헤맨다. 그리고 5년에 한 번씩 ‘이 분이 그 분이다’ 하며 정도령을 추대한다. 수백만 수천만 신도들이 구름처럼 정도령 주위에 몰려들어 열광한다. 정도령이 대통령이 되면 국격도 올라가고, 도로도 깔아주고 지역에 예산도 내려주실 거라 기대한다. 그렇게 5년마다 한 판 큰 굿이 벌어진다. 정도령은 임금님이 되기도 하고 ‘아름다운 패배’를 하기도 하는데, 물론 전혀 중요하지 않다. 5년 뒤 재림할 새로운 정도령을 기다리는 게 중요하다. 구중궁궐에 숨어있는 임금님을 잘근잘근 씹어주는 건 정도령을 맞기 위한 준비운동 되시겠다. 정도령에게 중요한 자질은 뭐니 뭐니 해도 기득권 정치권을 저주하며 국민들 막힌 속을 뚫어주는 사이다 발언이다. 그냥 열심히 떠들어주고, 가끔 신도들 앞에서 어퍼컷이라도 날려주면 그걸로 족하다. 정도령을 찾아 헤매는 중생들에게 중요한 건 정치를 바꾸고 나라를 개혁하는 게 아니라 그저 현실 정치를 욕하며, ‘나는 너희 같은 더러운 족속이 아니야’는 믿음에 부합하는 증거를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승리한 정도령은 더 이상 정도령이 아니다. 타파해야 할 기득권 정치인일 뿐이다. 어쩌면 정도령이란 프레이저가 쓴 신화연구의 고전 ‘황금가지’에 등장하는, 황금가지를 지키며 존경과 칭송을 누리지만 결국은 살해당할 운명인 신관(神官)일지도 모르겠다. 신도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신관을 죽인 사람을 새 신관으로 영접한다. 신도들에겐 그냥 신관이 있다는 게 중요할 뿐 누가 신관인지는 관심 밖이니까. ‘로미오는 죽어야 한다.’ 새로운 상상력의 세계로 우리는 그렇게 수많은 정도령을 5년짜리 임금님으로 세우고, 5년 동안 우리가 뽑은 정도령을 욕하며 다음 정도령을 기다렸다. 그렇게 우리는 1987년 이후 열광과 절망, 열정과 냉소를 되풀이하며 5년 주기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롤러코스터마저 제대로 작동을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내 질문은 이런 것이다. 오천만의 열망을 단 한 사람에게 투영하는 방식, 오천만의 꿈과 희망을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건 승률이 너무 낮은 도박 아닐까? 정도령을 제대로 찾는 건 해답이 아니다. 소녀들에게 백마 탄 왕자님이 필요 없듯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도령이 아니다.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건 정도령을 죽여버리고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상상력 아닐까.
2024-12-04 | hrights | 조회: 283 | 추천: 13
정범구/장발장은행장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다. 세계는 ‘돌아온 장고’ 트럼프의 컴백으로 뒤숭숭한데, 이런 난국에 대처해야 할 우리는 하필이면 지지율 20%를 오르내리는, 역대 가장 형편없는 대통령을 보유하고 있는 중이다. 유력한 대선주자인 야당 대표는 선거법 1심 판결에서 예상치 못한 중형으로 휘청거리면서, 이른바 ‘사법 리스크’라는 게 현실화하고 있다. 당장 김건희 리스크 등으로 코너에 몰려있던 윤석열 정권은 물 만났다는 듯 국면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나라 안팎으로 밀려오는 쓰나미에 관계없이 그 알량한 ‘정권’을 지키자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정말 뭣이 중한디? 이순신을 다시 떠 올리다. 이런 어려운 때를 맞이할 때마다 옛날 일들을 떠올려 본다. 분명 옛날엔 이보다 더 힘든 때가 있었을텐데, 그 때는 그 위기들을 어떻게 넘겼었을까? 어려운 고비마다 싸움의 맨 앞장을 섰던 수많은 열사, 의사, 의병장, 영웅들의 면면을 떠올리다가, 그러다가 다시 이순신을 생각한다. 광화문 매연 속에 오늘도 서 계시는 그 분이 아니라, 명량(울돌목) 해전을 앞두고 온 밤을 하얗게 지새웠을, 마지막을 건 노량의 결전장으로 나가며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을, 그 고독한 이순신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다. 원균이 다 말아먹은 조선해군. 거북선 3척을 포함해 판옥선 140여 척 등 조선해군이 보유한 모든 선단을 2만 병사와 함께 칠천량 앞바다에 수장시킨 원균은 육지로 올라와 도망치다 적군에 잡혀 죽었다. 칠천량 패전 후 다급해진 선조가 백의종군 중이던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했지만, 돌아온 이순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폐허 속에 남은 달랑 열 두 척의 배였다. 그나마 이 배들은 경상우수사 배설이 칠천량 해전에서 끌고 도망쳐 살아남았던 것들이다. 조선 해군이 사실상 궤멸된 것은 선조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순신더러 수군을 해체하고 권율 휘하의 육군에 합류하라고 하였다. 그때 이순신이 그 유명한 장계를 올린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臣常有十二隻)” 이 대목에서 잠깐 생각한다. 이순신은 바보인가? 아니 이순신이 바보일 리 없다. 자신의 의지에 대한 지극한 신뢰요, 자신이 기반하고 있는 백성에 대한 믿음이며, 죽기를 각오한 자의 단호함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는 대목이다. 누구보다 먼저 백성을 버리고, 궁을 버리고 도망치기에 바뻤던, 그러면서도 이순신의 의기와 용맹을 시기했던 용렬한 군주 선조 따위가 가늠해 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세상을 살면서 가장 억울한 일을 꼽으라면 아마 누명을 쓰는 일일 것이다. 자기가 하지도 않은 일로 모함받고 죄를 뒤집어쓰는 일, 자기가 책임질 일이 아닌데도 그 죄를 덮어쓰는 일. 이렇게 따지면 아마 인류역사상 가장 억울했던 이는 예수 아니었을까? 자기 죄가 아닌, 뭇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 덮어쓰고 십자가에 오르신.... 이순신도 자신의 생애에서 두 번씩이나 이런 일을 겪는다. 서른 두 살, 당시로서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무과에 합격하고 발령받아 간 곳이 함경도 북단 녹둔도란 곳이다. 오늘날은 러시아 영토로 되어 있는, 두만강 상의 섬인 녹둔도 둔전 관리 책임자로 있다가 여진족의 기습을 받는다. 격퇴했지만 조선군의 피해도 컸다. 당시 함경북병사 이일은 이 피해 책임을 하급 장교인 이순신에게 덮어씌우고 서울로 압송한다. 국경수비 장교에서 졸지에 사형수가 됐으나 선조는 파직시키고 백의종군하는 것으로 형을 감면한다. 그런데 이 패전은 애초에 이순신이 책임질 일이 아니었다. 국경 방어를 위해 꾸준히 병력증강을 요청했던 이순신의 요구를 무시했던 이일이 책임져야 할 일이었다. 어쨌든 이 일로 계급장 떼이고 백의종군해야 했던 이순신은 다음 해 여진족과의 전투에서 적장을 사로잡는 등의 공을 세워 다시 관직에 복귀한다. 두 번째 백의종군은 다 아는 바와 같이 원균 등의 모함에 의한 것이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왜군은 부산포 주변의 남해안에 진을 치고 명나라와의 협상을 이어간다. 조정에서는 남해안 일대 왜군을 적극적으로 소탕하라고 이순신에게 명을 내리지만, 병력의 열세, 지형상 불리함 등 여러 가지 여건으로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그를 원균 등이 끝없이 비방, 모함한다. 싸우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이순신에게 피아의 대비, 지형, 기후 등 승전에 필요한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투에 나가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그러나 의심 많고 속 좁은 선조는 이런 이순신을 항명죄로 몰아 삭탈관직하고 한양으로 압송한다.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바보 이순신을 원망 해 본다. 그런 임금, 그런 군주에게 끝까지 목숨 바쳐 순종할게 뭐람.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본다. 그가 목숨 바쳐 충성을 바쳤던 것은, 아무리 왕조시대 윤리에 젖은 이순신일지라도, 왕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를 믿고 따르던 백성들, 무능한 임금과 지배층 때문에 전쟁의 참화에 휘말려야 했던 무고한 백성들과 산하 때문 아니었을까? 그가 아니면 조선은 1910년이 아니라 1592년에 진작 망했을지도 모른다. 임진왜란의 진행과정을 보면 이런 내 생각은 더욱 분명해진다. 파죽지세의 일본을 막아섰던 이순신 1592년 5월 23일 (음력 4월 13일) 부산포에 상륙한 일본군 20만은 19일만인 6월 11일(음 5월 2일) 한양에 도달한다. 그 사이에 상주 전투도 치르고, 신립 장군과의 충주 탄금대 전투도 치렀는데 말이다. 그냥 걸어와도 2주일이면 오는 거리를 20만 대군이, 전투까지 치르며 올라왔는데도 19일 밖에 안 걸렸다면 유의미한 조선의 군사적 저항은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한다. 그냥 무풍지대를 일본군이 치고 올라온 것이다. 이런 무풍가도에 시원한 일격을 가한 것이 바로 이순신이다. 1592년 6월 16일, 일본군이 텅 빈 경복궁을 함락시킨 나흘 후, 이순신의 첫 전투인 옥포해전이 벌어진다. 여기서 일본군 배 26척을 침몰시킨다. 전쟁 발발 후 조선군 최초의 승리인 것이다. 같은 날 오후 합포 해전에서 적선 5척 격파, 다음날인 6월 17일 적진포 해전에서 왜선 11척을 침몰시키면서 파죽지세로 진격하던 일본군을 바다에서 멈춰 세웠다. 20여일 후 사천 해전에서 일본 배 13척 격침. 이 전투에 처음으로 거북선을 투입한다. 이틀 후인 7월 10일 당포 해전에서 왜선 21척을 격침, 한 달 뒤인 8월 14일 그 유명한 한산도 해전에서는 적선 47척을 침몰시키고 12척을 나포한다. 임진왜란 3대 대첩의 첫머리를 연 이 한산도 대첩으로 일본은 바다에서는 완전히 우리 수군에 무릎을 꿇고, 이후 서해안을 통해 한양으로 북상하여 보급로를 확보하려던 계획이 완전히 무산된다. 한편 이 전투는 육지에서 연전연패하던 육군에게 승리의 용기를 주고, 각처에서 일어난 의병들에게도 승리의 희망을 안겨주었다. 이런 점에서 한산도 대첩은 임진왜란의 물줄기를 튼 중요한 전투였는데 이것은 오로지 이순신에 의해서만 가능한 승리였다. 그러나 삼도수군통제사직에서 쫓겨나고, 결국 원균의 칠천량 해전 패배 후 처참하게 궤멸된 조선 수군을 다시 물려받아야 했던 그의 심사는 어떠했을까? 특히 칠천량 패전 후, 아무것도 없는 맨손으로, 일본 대군과 다시 일전을 벌여야 했던 그의 속은 어땠을까? 1597년 8월 27일 칠천량 해전 후 꼭 두 달만인 10월 26일, 이순신은 13척의 배로 330척 일본 수군과 명량(울돌목)에서 맞선다. 경상우수사 배설이 칠천량에서 도망가는 바람에 남겨진 배 12척에 한 척이 더 추가된 것이다. 이 전투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 덕에 결국 적선 133 척을 격파하는 대승을 거두었지만, 전투를 앞둔 그는 얼마나 애간장이 타고 번민했을 것인가? 엄청난 열세에 싸우기를 두려워하는 휘하 장졸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이며, 어떤 전술을 써야 화력과 병력의 열세를 만회할 수 있을 것인지 등등 고민으로 그는 아마 밤을 하얗게 지새웠을 것이다. 그의 고민은 그의 일기에도 잘 나타나 있다. 명량해전 하루 전인 10월 25일(음 9월 15일) ‘난중일기(이석호 옮김)’에 그는 이렇게 썼다. “적은 수의 수군으로 명량을 등지고 진을 치는 것이 불가하므로 진을 우수영 앞바다로 옮겨 여러 장수들을 모으고 약속하여 가로되, ‘병법에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하였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사람을 두렵게 한다 했음은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여러 장병들은 살 생각을 하지 말라.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길 때는 군법에 의하여 처벌할 것이다’.” 이른바 필사즉생(必死卽生)이요, 필생즉사(必生卽死)의 각오를 밝힌 것이다. 이순신의 절대고독이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자기를 믿고 따르는 부하들에게 ‘살 생각을 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지휘관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 시대의 이순신을 기다리며 총체적 난국이다. 위기는 겹겹이 쌓여 있고, 나라 안팎으로는 높은 파도가 몰아칠 것이 예상된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에 대응하고 풀어가야 할 리더십은 최악의 상태에 있다. 책임 있는 사람들 중에 이순신처럼 절박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쥐고 있는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면서 끝까지 꿀만 빨아먹겠다는 자들만 도처에 득실거린다. 그리하여 더욱 총체적 난국이다. 시대가 영웅을 낳는다고 했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도 했다. 이순신도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이 없었다면 그 존재를 미처 드러내지 못했을 수 있다. 이 사회 어딘가에서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을 이순신들이 있기를 빌어본다.
2024-11-19 | hrights | 조회: 486 | 추천: 25
서보학 / 경희대법학전문대학원 11월에 두 개의 중요한 법원 판결 선고가 예정되어 있다. 11월 15일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공표죄) 사건 1심 선고가, 25일에는 위증교사 사건 1심 선고가 내려질 예정이다. 정부와 여당은 이재명 대표에게 유죄판결이 선고되어 여론의 흐름이 바뀌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 7일 대국민담화에서 하나 마나 한 사과를 하고 김건희씨에 대한 변명으로 일관한 것도 법원의 유죄판결을 믿기 때문이리라. 법원의 유죄판결에 기대고 싶은 윤석열 정권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기차게 이재명 대표를 죽이기 위한 표적수사에 몰두해 왔다. 지난 2년 6개월간 각 검찰청에서 차출되어 투입된 검사만 70여 명, 압수ㆍ수색만 376회로 집계되었고 구속영장 청구도 2회 있었다. 그 결과 이재명 대표는 대장동 배임ㆍ성남FC 뇌물ㆍ백현동 특혜개발ㆍ공직선거법 위반ㆍ위증교사ㆍ대북 송금 대납 건 등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우리 정치사에서 협치의 대상인 야당 대표를 죽이기 위해 검찰이 이렇게까지 집요하고도 무차별적으로 수사ㆍ기소에 나섰던 때가 있었던가? 기억에 없다. 우리 헌정사에 유례없는 검찰공화국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반면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어떠한가?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는 4년 6개월을 끌다가 지난 10월 17일 불기소처분으로 막을 내렸다. 김건희씨가 단순 공범을 넘어 적극적으로 주가조작에 가담했었다는 증거가 다수 드러났고 다른 공범들은 모두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음에도 검찰은 시간만 끌다가 무혐의로 종결했다. 선진 외국에서는 주가조작이 시장경제질서의 기반인 사회적 신뢰와 공동체 다수의 경제적 이익을 해친다는 이유로 살인죄 이상의 중한 범죄로 다루고 있는데 한국 검찰은 ‘콜검’이라는 비아냥을 들은 굴욕적인 출장 조사 – 이때 검사들은 스마트폰도 압수당했다 - 끝에 김건희씨에게 무릎 꿇고 두 손으로 면죄부를 상납하였다. 그전에 이미 검찰은 김건희씨가 명품 가방을 받는 장면이 온 국민에게 영상으로 공개되었음에도 불기소처분을 내린 바 있다. 그 밖에도 김건희씨는 양평-서울 고속도로 비리, 양평 공흥지구 비리, 국민의힘 공천 개입 등 다양한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데 이런 혐의에 대해서 검찰은 어떤 수사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재명 대표 부인 김혜경씨의 법인카드 10만4천 원 사용 의혹에 대해서는 130여 차례 압수수색을 하였던 검찰이 김건희씨의 비리에 대해서는 두 눈 감고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 바보가 되어 있다. 비겁함도 이런 비겁함이 없고 후안무치도 이런 후안무치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외쳤던 ‘공정과 상식’은 쓰레기통에 버려진 지 오래다. 압도적 국민 여론은 ‘용산의 개’가 되어 버린 검찰에 대해 사망을 선고하였다. 야당 대표 죽이기에 혈안이 된 검찰 한국 검찰은 수사권, 강제수사를 독점하는 영장청구권, 기소독점권을 한 손에 쥐고 있다. 수사권과 기소권은 각각이 막강한 권한이다. 잘못 사용할 경우 한 사람의 삶을 억울하게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고 반대로 거악(巨惡)에 눈을 감을 경우에는 사회 전체를 위기로 몰아갈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선진 외국은 수사기관과 기소기관을 분리하여 상호 감시ㆍ견제하게 함으로써 권력의 남용과 부패를 방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 손에 쥐고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사건을 조작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갖고 있다. 지난 2년 6개월간 지속된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ㆍ기소는 진짜 범죄의 실체가 있어서 수사ㆍ기소한 것인지 아니면 아무 실체가 없는데 수사 과정에서 사건을 조작하고 가짜 시나리오에 근거해 기소한 것인지 외부에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수사와 기소를 검사가 독점하고 있고 외부에서는 구체적인 경과와 내부 정보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2013년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 간첩조작 사건에서 검찰이 조작된 증거를 법정에서 사용한 범죄가 드러난 바 있고, 지난 2015년 정치자금법 위반에 대한 유죄가 확정되어 옥살이를 한 한명숙 前 총리에 대해서는 검사가 허위 증언을 교사하는 등 조작에 가까운 검찰 수사가 이루어졌다는 정황이 언론보도로 드러난 바 있다. 지난 제17대 이명박 대선 후보의 BBK 의혹에서는 온 국민이 검사들의 거짓말 농단에 놀아나지 않았던가. 일단 기소가 되면 재판을 통해 진실이 밝혀지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뿐만 아니라 최종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더라도 검찰은 법원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라며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권력에 아부하여 청부 수사ㆍ사건 조작을 한 검사는 승진으로 보답받고 억울한 피해자에게는 악전고투 끝에 상처뿐인 승리가 남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승리는 항상 검찰의 몫이다.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 손에 쥐고 있는 한 모든 시민, 모든 단체, 모든 기관은 언제든지 검사들의 사건 조작에 희생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억지 기소와 증거 조작을 통한 사건 만들기 검찰의 사건 조작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분류할 수 있다. ‘억지 기소’와 ‘증거조작을 통한 사건 만들기’이다. 11월 판결선고가 예정된 이재명 대표 두 개의 사건도 이에 해당한다. 첫째, 이재명 지사를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공표죄)로 기소한 것은 전형적인 억지 기소에 해당한다. 공직선거법 제250조 1항 허위사실공표죄의 허위공표 금지대상은 ‘출생지, 가족관계, 신분, 직업, 경력 등. 재산, 행위, 지지 여부’이다. 다수의 법률전문가들이 지적하였듯이 이재명 대표의 발언인 ‘시장 재직 시절에는 김문기를 몰랐다’라는 것은 ‘인식’ ‘의식’ ‘기억’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위 법문이 금지하고 있는 허위공표 대상에 속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검찰은 “시장 재직시에는 김문기를 몰랐다”고 한 말은 “김문기와 교유(交遊)행위가 없었다”라고 해석해야 하고 이것은 법문에 명시된 ‘행위’에 해당한다면서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 인식ㆍ의식ㆍ기억의 영역에 속하는 것을 억지로 ‘행위’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피고인의 유죄를 주장하는 것은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유추해석에 해당한다. 이점을 법률전문가인 검사들도 명확히 알고 있음에도 억지 기소를 감행한 것이다. 검찰의 억지 기소가 낯선 일은 아니다. 예컨대 이명박 정부 때 검찰의 억지 기소로 사장직에서 쫓겨난 정연주 前 KBS 사장. 당시 정연주 사장은 국세청에 대한 1심 소송에서 승소한 후 법원의 조정 권고를 수용해 항소심을 취하하였다는 이유로 검찰에 의해 배임죄로 기소되었다. 검찰 내부에서도 '법원의 권고에 따른 것이 죄가 될 수 있나'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지만 검찰은 기소를 감행했다. 이후 정연주 사장은 당연히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렇지만 이명박 정부의 의도대로 정연주는 KBS 사장직에서 물러나야 했고 그에 대한 검찰기소는 언론장악의 시발점이 되었다. 정권의 언론장악에 검찰이 총대를 맨 전형적인 억지기소였다. 둘째, 검찰이 이재명 대표를 위증교사로 기소한 사건은 억지 기소에도 해당하지만 증거 조작(증인의 진술조작)을 통한 사건 만들기에 해당한다. 이재명 대표가 김진성에게 “기억을 되살려 사실대로만 진실을 이야기해달라”고 이야기한 것은 형법 이론적으로 위증교사에 해당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증인이 자기의 기억에 반하는 진술을 하는 경우에만 위증죄가 성립하고 기억나는 대로 진술하는 것은 위증이 아니라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따라서 “기억을 되살려 기억나는대로 진술해 달라”라는 부탁은 명백히 위증교사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 점을 잘 아는 검찰이 기소한 것은 전형적인 억지기소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지점은 위증을 했다고 자백한 피교사자 김진성의 진술이 검찰의 조사가 진행되면서 계속 바뀌었다는 점이다. 당초 김진성은 사실대로 증언했다면서 위증한 사실을 부인했다가 추후 검찰의 주장과 동일하게 위증을 시인하는 방향으로 진술을 바꾸었다. 그런데 김진성은 사기ㆍ알선수재 등 3건의 범죄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거나 기소되어 있다. 한 건은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음에도 검찰은 조사 한번 하지 않고 무혐의로 처리했고, 백현동 알선수재 범죄는 다른 공범은 2심 재판이 끝났는데도 아직도 기소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 이재명 대표를 피고인에 묶어 두고 정치적 타격을 입히려는 검찰 위증죄에 대해서는 진즉 변론이 종결되었음에도 아직 검찰이 구형을 하지 않고 있다. 자신의 범죄로 검찰의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는 김진성은 ‘정치검찰의 거미줄에 걸린 나비’ 신세나 다름없는 처지이다. 검찰이 김진성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해 협박ㆍ공갈ㆍ형량 거래를 하고 그에게 허위진술을 교사했을 것이라는 강한 의심이 드는 지점이다. 검사가 유죄판결을 받아내기 위해 사건관계인에게 허위진술을 종용하는 것은 사건조작이라는 중죄를 범하는 것이다. 최근에도 쌍방울그룹의 ‘대북송금’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화영 前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검찰에 의한 위증교사가 있었다는 의혹을 폭로하여 파장이 크게 일었다. 수원지검이 이화영과 쌍방울의 김성태ㆍ안부수 등 공범들을 모두 한 자리에 불러 모아 연어회를 곁들인 술파티를 열어주고 이재명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진술을 서로 맞추도록 했다는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그동안 검찰의 행태를 생각하면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사실이다. 그 외에도 대장동의 유동규, 백현동의 정바울 등 이재명을 겨냥한 검찰의 수사ㆍ기소에는 어김없이 회유ㆍ협박, 기소 및 형량 거래 의혹이 불거져 있다. 게다가 2022년 개정된 검찰청법에 의하면 위증교사는 검찰의 수사개시권 범위에서 제외되어 있다. 그럼에도 검찰은 하위법령인 시행령을 근거로 수사하고 기소했다. 그런데 법률의 위임범위를 넘어 검찰의 수사권을 확대한 시행령은 명백히 무효이기 때문에 무효인 시행령에 근거해 이루어진 검찰의 수사ㆍ기소는 헌법ㆍ법률에 위반한 기소로서 무효에 해당한다. 검찰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 검찰이 이재명 대표에 대해 사건조작 및 억지기소를 일삼고 있는 이유는 몇 년간 이재명 대표를 피고인의 지위에 묶어 두고 정치적 타격을 입히려는 데 목적이 있다. 정확하게는 차기 대선출마를 원천 봉쇄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이다. 몇 년 후에 재판 결과가 유ㆍ무죄 어떻게 나오든 현재 검사들에게는 관심 사항이 아니다. 그때쯤이면 이미 정치적 목적은 달성되어 있을 것이고 자신들은 승진과 좋은 보직으로 보답을 받아 개인의 영달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의 개가 되어 온갖 악행을 일삼고 있는 검찰의 수명은 이제 다하였다. 더이상 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검찰을 고쳐 쓰려 해서는 안 된다. 일단 검찰에 사망선고를 내려야 한다. 시급히 검찰청을 폐지하여야 한다. 기소청을 새로 설립하여 엄격한 재임용 절차를 거쳐 손이 깨끗한 검사들을 채용한 뒤 기소 업무만을 전담하도록 해야 한다. 이제 검찰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검찰을 죽여야 한다. 공직 선거법 위반, 위증 교사 사건 모두 당연히 무죄이다. 이제는 법원의 시간이다. 법리적으로 두 사건은 당연히 무죄이다. 법원이 올바른 판단으로 무죄를 선고하여 검찰의 사건조작과 기소권 남용에 대해 철퇴를 내려 주기를 기대한다. 설혹 1심 재판부가 권력과 검찰의 압력에 굴복해 유죄를 선고하더라도 현명한 국민들의 판단과 지지가 흔들릴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정의의 여신 디케의 정신을 가진 판사들이 법원에 남아 있음을, 법원이 인권과 정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음을 이번 판결로써 증명해 주기를 희망한다.
2024-11-11 | hrights | 조회: 1014 | 추천: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