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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권혁용(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태중(병원장),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임아연(주간함양 편집국 부국장),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 글을 씁니다.

정범구/ 장발장은행장   1980년대 독일 유학 시절, 알고 지내던 팔레스타인 친구가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점령군 이스라엘에 대항하여 자신들만의 독립 국가를 수립하려고 염원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은 국내적으로는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의 철권통치 아래 남북관계도 늘 일촉즉발의 아슬아슬한 대립상태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 친구와 무슨 이야기인가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때 그 친구가 그랬다. “우리는 나라가 한 개도 없어 그 나라를 세우려고 이 고생인데, 너희는 어쨌든 나라가 두 개씩이나 있잖아!” 당시에는 그걸 농담이라고 받아들였는데, 요새는 다시 그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게 과연 농담만이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지난 9월 22일 자 조선 중앙통신은 20~21일 평양에서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했던 김정은의 연설 내용을 전하고 있다. 올해로 조선노동당 창당 80주년, 해방 80주년을 맞아 할 이야기가 많았을 텐데 연설의 상당 부분을 대남, 대미 문제에 할애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북은 얼마 전부터 남쪽을 “대한민국”이라는 공식 호칭으로 부르면서 한반도에서의 두 개 국가 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이번 김정은 연설에서는 이것을 보다 확실히 못 박고 있다. “이 기회에 한국과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보다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우리와 대한민국은 지난 몇십 년 동안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두 개 국가로 존재해 왔습니다. 조선반도에 지구상 가장 적대적인 두 국가, 전쟁중인 두 교전국이 철저하게 대치해 온 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1991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이 유엔에 각각 독립적으로 가입함으로써 국제적으로 완전히 두 개 국가로 고착되게 되었”고 남북은 “철저히 이질화되었을 뿐 아니라 완전히 상극인 두 실체의 통일이란 하나가 없어지지 않고서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기에 “결단코 통일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김정은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어느 하나가 없어지지 않으면 안 될 통일을 우리가 왜 하겠습니까?” 흡수 통일에 대한 저들의 뿌리 깊은 불안감과 의심은 연설문 곳곳에서 나타난다. “올해에 미국과 한국에 새로 들어선 정권들이 우리와의 대화에 열려있다, 관계 개선을 추구한다는 추파를 던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힘을 약화하고, 우리 제도를 무너뜨리려는 그들의 본색은 절대로 달라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미국, 일본과의 관계를 표현할 때 흔히 한미, 한미일이라고 호칭하는 데 반해 김정은 연설에서는 일관되게 미한, 미일한이라고 하는 것도 눈에 띈다. 어쨌든 김정은의 이 연설을 보면서 불현듯 몇십 년 전 팔레스타인 친구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한 민족에게 나라가 두 개씩이나 있는 것”은 과연 좋은 일일까? 유례 없이 긴 연휴에 개천절도 묻혀 지나갔지만 10월 3일은 독일 국경일이기도 했다. 통일기념일인 것이다. 올해로 35주년을 맞는 독일 통일은 이제 역사가 되었다. 통일 당시 태어난 아이들이 이제는 30대 중반의 시민이 되어 과거 분단 시대는 옛날이야기로만 기억하고 있다. 독일 통일로 동독과 서독, 두 개의 나라가 합쳐 하나로 되었지만, 이외에도 독일 민족이 사는 나라는 더 있다. 오스트리아가 있고, 스위스에서는 독일어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와 함께 공용어이다. 취리히와 베른 등 독일어권 스위스 지역에 가면 모든 도로 표지판이나 공용어는 독일어이다. 비스마르크에 의해 독일이 역사상 최초의 통일을 이룬 1871년, 독일제국에 통합된 나라들 수는 25개였다. 바이에른, 작센, 프로이센 등의 왕국, 바덴, 헤센 등의 대공국, 함부르크, 브레멘 등 자유시들이 합쳐져 독일제국(Deutsches Reich)을 건설한 것이다. 독일어권에서는 1990년 동서독 통일을 1871년 통일과 비교하여 재통일(Wiedervereinigung)이라고 한다. 독일 역사를 보면 국가란 것은 매우 다원적이고, 다층적인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떤 특정한 시대, 특정한 조건 아래 생겨난 국가들이 왕국, 제후국, 자유시, 공화국 등의 형태로 병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 출처   동서독 통일 과정의 분수령이 되었던 것은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Ostpolitik)이었다. 동방정책의 핵심 철학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라는 데 있다. 새로운 동서독 관계는 독일 동쪽에 동독이라는 실체적 국가가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접근을 통한 변화”라는 정책 기조 아래 먼저 동독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국들, 소련,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과의 관계 정상화를 이루고 동독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다. 1972년 12월 21일 동서독 간 관계를 규정한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하고 이듬해인 1973년 9월 양독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였다. 동서독은 서로 상호체제를 인정하고 상호 내정불간섭 원칙을 따랐다. 상호 간에 대표부 형식의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국제무대에서 어느 한 나라가 독일을 대표한다는 ‘단독 대표권’을 포기하였다. 다만 서독 연방법원의 판결을 통해 동서독 간 법적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잠정적 특수관계’임을 판시하였다. 잠정적 특수관계의 사례로는 민족 내부거래(동서독 간 물자 교류에 대한 무관세 절차)와 상주대표부(대사관이 아닌) 설치가 대표적이다. 우리가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전문에서 남북한의 법적 관계를 ‘잠정적 특수관계’로 규정한 것은 동서독 간 협상의 경험에서 배운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을 목 놓아 부른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남북이 휴전선에서 대치하고 있는 현실은 1mm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남북 간에는 ‘7.4 공동선언’,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10.4 선언’ 등 무수히 많은 선언과 합의가 있었지만, 오늘날 현실은 도로 제자리이다. 통일의 다른 상대방인 북한은 “하나가 없어지지 않고는 성립될 수 없는 통일‘은 안 하겠다고 한다. 이제 유엔에도 각각 가입한, 독립한 별개의 국가들이니 각자 알아서 잘살자는 이야기이다. 통일에는 어떤 정답이나 정해진 방정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독일 통일도 ‘기획된’ 것이 아니라 어느 날 정말 행운처럼 찾아온 것이었다. 동서독 간 교류협력을 통한 평화 공존을 이어 오다가 소련 붕괴, 동구권 해체 등의 국제 정세 변화에 힘입어, 그리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 등으로 성사된 것이었다. 비스마르크의 표현처럼 “스쳐 지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잡았던 것이다. “정치는 바로 가능성의 예술(Die Politik ist die Kunst des Möglichen)”이기 때문이다. 독일 통일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그들은 동서독 접촉 과정에서 ‘통일’을 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로를 향해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평화공존’ 원칙과 그를 위한 교류, 협력의 확대가 그들의 일관된 메시지였다. 밤낮으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목놓아 부르기보다는 교류, 협력이라는 구체적 실천의 한 걸음 한 걸음을 통해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국가라는 것은 특정한 역사적 시기의 산물이고, 가변적이다. 1948년 이후 우리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만, 우리 조상들은 대한제국, 또는 조선왕조의 신민이었지 않은가? 더 올라가면 우리 조상들은 누구는 신라, 누구는 백제, 그리고 또 누군가는 고구려 백성이었을 것이다. 또 이와 별개로 오늘날 전 세계 180여 개 나라에는 800만 가까운 코리안 디아스포라, 재외교포들이 흩어져 살고 있다. 그들이 가진 국적, 여권의 색깔은 무척 다양하다. 통일 문제와 별개로 ‘국가’를 바라보는 시각은 유연해 질 필요가 있다. 오늘의 독일이 탄생하기 전 독일 땅에는 25개 ‘나라’들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독일 통일을 앞두고 있던 때 브란트가 한 말이 우리에게 위안이 될까? “같은 뿌리에 속한 것은 이제 함께 성장하게 될 것이다.”
2025-10-14 | hrights | 조회: 81 | 추천: 8
서보학/ 인권연대 운영위원   대한민국에서 판사·검사들의 위세는 대단하다. 고시신화에 힘입어 오랜 세월 과분한 특권을 누려왔다. 정치적 논의와 타협을 통해 해결되어야 할 일들이 수사·기소·재판으로 해결되는 것이 비일비재하다. 현실적으로 정치 위에 법원, 검찰이 존재한다. 지난 9월 26일 검찰청 폐지를 담은 정부조직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법조 특권계급의 한 축인 검사들의 위세는 꺾이기 시작했다. 1948년 8월 미 군정기 검찰청법의 제정과 함께 탄생한 검찰은 78년간 정치권력에 아부하면서 특권을 키워 왔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인권신장에는 손톱만큼도 이바지한 바 없지만, 역설적으로 검찰은 민주화의 과실을 오롯이 따먹었다.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군인·정보기관의 위세가 수그러들자, 검찰은 합법적 권력을 한 손에 쥔 최고의 권력기관으로 부상했다. 수사권, 영장청구권,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의 위세 앞에 모든 권력이 머리를 조아렸고 종국에는 대통령을 배출하는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3년 윤석열의 통치 아래 시민들은 검찰공화국의 공포를 톡톡히 경험하였다. 검사들이 나라의 주요 요직을 차지하며 국정을 좌지우지하였다. 김건희로 대표되는 집권세력의 부패에는 철저히 눈을 감는 대신 야당과 민주세력은 집요하게 탄압하였다. 이에 더 나아가 윤석열은 유신 시절 박정희의 장기독재를 꿈꾸며 정치군인들과 법비(法匪) 검사들을 믿고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을 발동해 내란을 일으켰다.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많은 시민들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한 폭동이었다. 다행히 시민들의 단합된 힘과 국회의 발 빠른 저항으로 내란은 진압되었다. 현재는 내란 세력을 단죄하기 위한 사법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이제 그 후과(後果) 중의 하나로 검찰청은 1년 후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을 선고받았다. 만시지탄이고 사필귀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법원이 남았다. 조희대의 대법원은 지난 5월 1일 사법쿠데타를 감행했다. 대선을 불과 30여 일 앞둔 시점에서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는 유력 대선후보를 제거하기 위해 조 대법원장과 9명의 대법관이 발 벗고 나섰다. 조 대법원장은 소부에 배정되었던 사건을 직권으로 전원합의체에 회부하였고 2번 심리를 한 끝에 2심 무죄였던 야당 대선후보 이재명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취지로 파기하였다. 대법원에 상고된 지 불과 9일만의 초고속 판결이었다. 명백히 야당 후보 이재명을 제거하기 위한 선거 개입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조치였다. 대법원의 갑작스러운 선거 개입은 조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의 오만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주권자인 국민의 선택권을 박탈하고 그들이 스스로 대권후보를 정하고자 나섰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때의 시도가 성공했다면 지난 대선에서 우리는 야당 후보가 없는 대선을 치를뻔하였다. 민주주의 및 시민들의 인권을 지켜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사법부의 수장인 조 대법원장은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의 내란이 발생하였을 때도 위헌적, 위법적 비상계엄에 대해 아무런 논평을 하지 않았다. 또한 조 대법원장은 지귀연 판사가 법문언과 관행을 벗어난 법해석을 통해 내란 수괴 윤석열을 구속취소로 풀어준 때에도 침묵하였고, 지귀연 판사가 술집에서 향응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지금까지 국민 앞에 명확한 조사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나아가 지귀연 판사가 내란사건 재판을 질질 끌고 많은 공판을 비공개 깜깜이 재판으로 일관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이는 나라를 존망의 위기로 몰아 넣었던 내란세력을 신속하고 철저하게 단죄할 의지가 전혀 없음을 보여주는 행태인 것이다. 오히려 조 대법원장은 여권이 내란전담재판부를 설치해 내란재판을 신속, 공정하게 진행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사법권 독립, 재판 독립을 내세우며 강하게 저항하고 있다. 국민 위에 존재한다는 특권의식에 찌들어 있지 않다면 결코 보일 수 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 결과 조희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완전히 땅에 떨어져 있다. 사법부 독립, 재판의 독립은 헌법의 최고 가치가 아니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주권재민의 원칙이 헌법의 최고 가치이다. 사법부는 결코 주권자인 국민 위에 설 수 없고 국민의 감시와 통제를 벗어난 독립공화국이 될 수 없다. 그리고 헌법의 삼권분립 원칙에 의해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는 서로를 감시하고 권한 남용을 견제한다. 행정부, 입법부가 사법부에 의해 견제(재판)를 받듯이 사법부도 행정부, 입법부에 의해 감시와 견제를 받는다.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할 때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거나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대법원장을 탄핵할 수 있도록 한 것도 그것 때문이다. 나아가 국회법 제121조는 국회 본회의·위원회가 대법원장을 불러 특정한 사안에 대해 질문하고 해명을 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회의 부름이 있을 때 조 대법원장은 마땅히 국회에 출석하여 대선개입 의혹, 내란죄 연루 의혹, 내란재판 방기 의혹, 사법부 신뢰 회복 방안 등에 대해 국민이 이해할 만한 설명을 해야 한다. 이것은 법적 의무이자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예의이다. 사법부의 독립, 재판의 독립을 핑계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 대법원장이 이러한 법적 의무를 회피하려는 것은 오만 때문이다. 대통령도, 국회도, 주권자인 국민도 자신의 발아래 있다는 오만 때문이다. 스스로는 누구든 심판할 수 있지만 자신은 누구로부터도 추궁을 당하지 않는 존재라고 인식하는 오만 때문이다. 헌법이 언제 대법원장을 그토록 오만해도 되는 자리에 앉혀 주었는가? 결코 그런 적이 없다. 조 대법원장과 사법부 판사들은 스스로 쌓아 올린 특권의 성에 갇혀 살고 있을 뿐이다. 이제는 조 대법원장과 판사들을 오만의 자리에서 끌어 내려야 한다.   사진 출처   우리나라 판사, 검사들에게 주권자인 국민이 주인임을 알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헌법 개정을 통해 각인시키는 것이다. 국민은 헌법의 제정권력자이자 개정권력자이다. 최고 규범인 헌법은 국민에 의해 만들어졌고, 헌법개정도 국민의 승인이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국민주권 정부의 제1호 국정과제는 개헌이다. 이르면 내년 지방선거, 그렇지 않으면 3년 후 총선 때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개헌과 관련하여 판사, 검사들에게 국민이 주인임을 알게 해주는 구체적인 조치를 살펴보자. 첫째, 개헌을 통해 대법원의 최고법원 지위를 박탈하는 것이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중 어느 곳이 최고법원인지는 다툼이 있지만 저울의 추는 점차 헌법재판소로 기울어지고 있다. 수도 이전 위헌 결정, 대통령 탄핵심판 등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결정들이 헌법재판소에서 내려지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최고법원의 지위와 존엄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솔직히 전망은 밝지 않다. 앞으로 개헌이 된다면 헌법에서 확실하게 서열을 정리해 줄 필요가 있다. 참고로 독일 헌법(기본법 제92조)은 "사법권은 연방헌법재판소와 연방법원들에 의해 행사된다"고 규정하여 사실상 헌법재판소가 최고법원임을 선언하고 있다. 독일의 연방법원들은 민·형사, 행정, 사회, 노동 등 분야별 최고법원으로 각각 설치되어 있다. 연방법원들은 인사·감독 등 사법행정과 관련하여 연방행정부의 통제를 받지만 연방헌법재판소는 연방행정부로부터 독립한 자율적인 사무권, 인사권, 예산권을 가지고 있다. 연방헌법재판관들은 연방 상·하원에서 선출하지만 연방최고법원 재판관들은 연방정부와 연방의회의 협의체에 의해 선출된다. 연방헌법재판관은 16명이지만 연방법원 재판관들은 약 320명에 달한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연방최고법원들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도 담당한다(4심제). 이러한 제도하에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최고 정책법원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나라의 운명과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관한 중요한 사항들을 결정한다. 반면 각 분야별로 설치된 연방최고법원들은 신속하고 전문적인 판결을 통해 사건해결에 집중하는 권리구제형 법원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향후 개헌을 한다면 우리나라도 이러한 모델을 따를 필요가 있다. 헌법에 헌법재판소를 최고법원으로 규정하는 대신에 – 물론 헌법재판소도 재판관의 구성, 선출방식, 권한 등에서 개혁이 필요하다 -, 대법원은 분야별 여러 개의 전문법원으로 분할 설치하거나 또는 대법원에 전문 분야별로 여러 개의 부를 둘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현재와 같이 소수의 대법관이 연 4만 건이 넘는 사건들을 끌어안고 끙끙대는 시스템이 아니라 신속하게 보다 전문적인 최종심 판결을 내리는 체제로 변경하는 것이다. 나아가 대법원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국회, 행정부, 언론계, 시민 대표가 참여하는 독립적 사법행정위원회를 설치하여 사법부의 인사, 예산, 감독 등의 임무를 맡김으로써 대법원장 1인의 제왕적 지배체제를 해소하여야 한다. 둘째, 가장 혁명적인 조치는 헌법 부칙을 손보는 것이다. 현행 헌법 부칙 제4조는 헌법이 새롭게 시행될 때, 기존에 임명된 공무원·대법원장·대법관·판사·검사·정부 임명 기업체 임원 등의 신분과 임기 계속, 그리고 임기·중임제한 특칙 등을 규정하고 있다. 부칙 제4조는 헌법개정 시, 기존에 임명된 공무원 등의 신분과 임기를 보장함으로써 헌정 질서 전환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둔 '경과조치'적 규정이다. 역대 헌법 개정 때마다 부칙 규정에 따라 공무원, 판사, 검사, 정부 임명 공기업 임원 등의 신분과 임기 문제, 신분 연속 등이 처리되어 헌정 질서의 안정에 기여해 왔다. 향후 개헌 시, 부칙에 개정 헌법의 시행과 동시에 대법원장·대법관은 면직된다는 규정을 두게 되면 이들은 자동으로 그 직에서 해임된다. 또한 새 헌법에 의해 임용이 계승되는 공무원 중에서 판사와 검사를 제외하면 개정 헌법의 시행과 동시에 모든 판사와 검사도 자동으로 해임된다. 국민이 개헌을 통해 판사, 검사들에 대한 인사권을 직접 행사하게 되는 셈이다. 이후 엄격한 심사를 통해 깨끗한 손, 국민에게 봉사하는 마음을 가진 대법원장, 대법관, 판사, 검사를 다시 채용하면 된다. 과거 독일은 1990년 통일 이후 구동독 출신 판사와 검사에 대해 대대적인 ‘재임용 심사’를 실시하였고, 이를 통해 상당수 법조인을 선별적으로 재임용한 사례가 있다. 이 심사에서는 법적 자질, 직업윤리, 민주주의·법치주의 원칙 수용 여부, 그리고 과거 정치적 행적(구동독 사회주의통일당의 당적·활동, 정치범 재판 가담 등)이 주요 평가 항목이었다. 심사 결과, 전체 구동독 출신 판·검사 2,896명 중 약 1/3(총 1094명. 판사 701명, 검사 393명)만이 재임용되었으며, 나머지는 퇴직 또는 임용 탈락 처리되었다. 독일 사례는 사법적 과거 청산과 민주주의 원칙 정착, 인재의 신중한 선별을 통한 사법 신뢰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 현재 한국의 판사, 검사들을 과거 구동독의 법조인들과 비교하는 것에 무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조계가 전 세계에 유래가 없는 전관비리 및 향응과 같은 부패에 물들어 있고 특권의식에 깊이 찌들어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보여주고 있는 오만한 언행, 최근 국회 청문회에 불려 나온 관봉권 띠지 분실 책임이 있는 검사들이 국회에서 보여 준 거만한 언행 등을 보면 우리나라 판사, 검사들도 철저한 재검증·재임용이 필요한 시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개정 시 이점을 꼭 명심할 것을 제안한다. 판사, 검사들에게 그들의 주인이 국민임을 확실하게 인식시켜 줄 방법이기 때문이다. 셋째, 몇 가지 첨언 한다면 헌법개정 시 검사의 영장청구권 조항(제12조 및 제16조)을 삭제하여야 한다. 검사에게 영장청구권을 독점시킬지 여부는 입법사항이라는데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헌법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 기관에 두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도 필요하다. 향후 법률로 한 기관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나아가 판사, 검사의 전관비리를 막기 위해서는 판사, 검사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규정을 헌법에 두어야 한다. 판사, 검사가 중간에 사표를 내고 변호사 개업하는 것을 금지할 수 있는 근거규정을 헌법에 마련하자는 취지이다. 이 모든 헌법규정은 나라의 주인이자 헌법개정권자인 국민이 정할 수 있는 것이다.   서보학 위원은 현재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5-09-29 | hrights | 조회: 459 | 추천: 14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스라엘의 ‘자위권’이라는 명목으로 팔레스타인 민간 시설과 민간인 공격을 정당화하며 벌이는 끔찍한 대량학살이 지금 이 순간에도 지속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폭격으로 황폐화하며 휴전을 방해하는 제2의 히틀러, 이스라엘의 전쟁광들이 노골적으로 국제법을 위반 중이다. 인류의 면전에서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 집단학살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스라엘은 타국의 주권 및 영토보전을 침해하며 레바논, 시리아, 이란, 예멘, 이라크, 튀니지에서 팔레스타인 점령과 학살에 반대하여 저항하는 세력의 지도자들을 공습하고, 드론 등으로 암살하고 있다. 최근에는 새로운 휴전 제안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하마스 평화협상 대표들을 표적으로 삼아 카타르 도하에 폭격을 가했다. 국제정의가 참혹하게 유린되는 모욕적 현실은 이스라엘에 대량학살극의 면허를 허용한 나라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의 패권 유지를 위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학살 범죄를 온갖 궤변으로 옹호하고 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가자지구 휴전 결의안 채택 역시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되기 일쑤다. 팔레스타인 민중을 상대로 자행하는 지속적인 대량학살에 연루된 미국은, 사실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전 세계 곳곳에서 무력 침공과 위협에 나서고 있다. 자위권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이란 핵시설에 대한 불법적인 군사공격을 감행한 데 이어, 9월 초 ‘국방부’를 ‘전쟁부’로 개칭하자마자 마약 밀매 근절을 명목 삼아,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에 대한 현상금을 걸고 해군 타격단을 베네수엘라 해안에 배치하여 소형 어선을 폭격하여 민간인을 살해했다.   미 전쟁부(국방부)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미 트럼프 대통령이 국방부 명칭을 ‘전쟁부Department of War’로 변경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직후, 미 국방부는 신속하게 새로운 명칭을 사용하고, 홈페이지 주소 역시 www.defense.gov에서 www.war.gov로 변경함.   베네수엘라는 미국의 전면적인 침공 및 공격, 정권 교체의 위협적 상황에 놓였다.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석유와 천연가스 등 자원을 약탈하기 위해 온갖 허위 선전을 유포하며 무력 도발을 일삼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주권과 정치적 독립을 침해하며 카리브해 지역 전체의 생명과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미국은 23년 넘게 베네수엘라에서 쿠데타와 쿠데타 시도에 직접 개입하고, 베네수엘라 선거에 일상적으로 개입하며, 베네수엘라 민중을 빈곤하게 만들기 위한 불법적이고 일방적인 강압적 경제제재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또한 베네수엘라 외교관들을 체포 및 구금하고, 외국 은행에 있는 베네수엘라 자산을 불법적으로 몰수하는 등 베네수엘라의 독립적인 경제 발전과 자원 거래를 방해하거나 통제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개입해 왔다. 한반도 상황도 예외는 아니다.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북중러에 대한 적대적 대결정책에 기반한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을 구축‧강화하며, 각종 핵 전쟁 연습을 상시로 실시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의 패권전략에 편승한 나토의 무력까지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결집하여 긴장과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미국의 일방적이고 도발적인 군사 패권주의 때문에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서의 군사적 충돌 발발 시 핵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는 위험한 상태에 놓인 것이다. 가자지구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량학살과 인종청소, 베네수엘라에 대한 일방적 경제제재와 임박한 군사적 침공,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서의 핵 강국 사이의 군사적 충돌로 인한 핵전쟁 발발의 위험 상황. 미국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이 전쟁 종식과 국제정의의 수호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먼저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자결권, 자위권을 인정하는 한편,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범죄에 책임을 지워야 한다. 주권과 영토보전을 침해하는 침략전쟁과 내정간섭, 무력행사의 위협으로 중동, 카리브해,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지역 및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유린하는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에 맞서야 한다. 바야흐로 미 제국의 국익과 패권 유지를 위해 전 세계에서 펼치고 있는 자주적 국가들에 대한 봉쇄와 침략전쟁, 군사동맹 강화에 맞서 주권, 평화, 국제정의를 수호하기 위한 국제적 대중운동을 비약적으로 성장‧확산해야 한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25-09-24 | hrights | 조회: 334 | 추천: 5
오항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칼럼을 쓰는 오늘 코스피 지수가 사상 첫 3400을 넘었다고 한다. 주식은 기업이 투자 자금을 조달하는 유력한 방법이고, 주가는 기업의 규모와 실적과 비례한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주식에 투자하는 시민도 늘어났다고 하니, 시민들의 경영 참여나, 원활한 기업 활동의 결과로 얻어진 이윤을 주식 보유자들이 나눌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보아도 긍정적인 일이다. 이는 경제 상황의 개선과 정치적 안정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지표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 시절 한때 지수 3000을 넘겼으나 부동산 광풍으로 곧 내리막을 걸었다. 게다가 윤석열 정권 내내 부동산 대출로 부추긴 투기와 중산층 이하의 소득 저하로 주식시장은 2500 전후로 침체되어 있었다. 그 위에 12.3 내란으로 야기된 정치적 불확실성이 얹혔다.   [캡션 : 내란 대통령의 탄핵과 새 대통령의 취임으로 몇 달만에 코스피 지수는 3,400을 넘어섰다. 그런데 이게 다 일까?]   그림에서 보다시피 주식시장의 침체는 윤석열이 탄핵되고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달라졌다. 역시 경제 안정은 정치 안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이재명 정부가 부동산의 불로소득을 노리는 투기성 자금의 흐름을 주식시장으로 돌리겠다고 천명한 것이 주가 상승의 동인이 되었다고 한다. 6.27 부동산 대책으로 나온 대출규제 한도를 6억원으로 정한 것도 같은 맥락의 조치였을 것이다. 현 추세대로라면 몇 차례 조정은 있겠지만 ‘코스피5000’은 달성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전쟁, 관세 등 국내외 여건에 따라 출렁이는 것이 주식시장이라니까, 확언할 수는 없다. 그래도 부동산 투기보다는 훨씬 건강한 방향이라는 점에서 정부 구상대로 간다면 다행스러울 것이다. 기업과 가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두 가지 점에서 ‘코스피5000’ 슬로건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첫째, 박근혜의 ‘코스피3000’, 이명박의 ‘코스피5000’이나 737 구호가 떠오른다. 당시 이 구호는 시민들의 돈에 대한 욕망만을 자극하였고, 정작 코스피 지수는 2000대에 머물렀다. 뿐만 아니라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 빈부의 격차는 더 가혹하게 벌어졌다. 주식시장을 통한 기업의 성장은커녕 맹목적인 돈에 대한 욕망만 한껏 들쑤셔 놓았던 것이다. 물론 이재명 정부가 이명박 정부처럼 근본 없는 정치를 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재명 정부가 노동의 조건, 자영업자의 생존, 일반 시민의 안전에 대해 지난 석 달 남짓 보여준 태도의 일관성에서 얻은 추론이다. 또한 국무회의와 대변인 브리핑의 공개에서 보여주듯이, 적어도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국민들에게 가능하면 알리려는 열린 태도를 가지고 있기에 갖는 신뢰이다. 보여줄 뿐 아니라 실제로 성의 있게 국정을 이끌어가고 있는 듯해서인지, 모처럼 국민들이 대통령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농담도 나온다.   [캡션 : 노동자 추락 사고 관련해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깨지는 정성호 법무장관 동영상들. 국무회의를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진전이다. 이재명 정부의 ‘코스피5000’은 단순한 구호가 아닌 정책의 결과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이재명 정부의 정책이 사람들의 마음에 욕망을 자극하여 인기를 얻는 천박한 정치를 하지 않으리라는 추정은 과하지 않다고 본다. 즉 ‘코스피5000’이 욕망에 영합하는 구호가 아니라, 하나의 정책 방향을 보여주는 지표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헌데 나의 두 번째 걱정을 떠올리면 마냥 정부가 알아서 하겠지 하는 마음만 가질 수가 없다. 바로 국정기획위원회에서 국민들에게 보고한 국정과제 때문이다. 거기에는 ‘코스피5000’의 욕망을 다스릴 메커니즘이 약하거나 발견되지 않는다. 물론 ‘공존동생(共存同生)’을 대원칙으로 삼고, ‘균형 있게’ ‘튼튼한 사회’를 만들어가려는 비전을 제시하였다. 성장을 얘기하지만 ‘공정한 성장’, ‘모두의 성장’을 중시하였다. 무엇보다 안전, 건강을 기저로 깐 것이 고맙다.   [캡션 : 그러나…… 국정기획위원회의 123대 국정과제를 보면 대통령의 의욕과 진정성이 뿌리 깊은 백데이터에 기반하여 ‘인간다운 삶’을 실현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든다.]   하지만 이런 비전을 궁극적으로 뒷받침할 교육, 연구, 문화에 대한 내용과 정책은 약하다기보다는 빈곤하다. 교육은 공교육 강화, 교육 거버넌스에 ‘서울대10개만들기’ 같은 슬픈 대책이 제시되었을 뿐이다. 문화는 K-컬처가 유일한데 이는 산업 육성의 일환이지, 즉 이미 만들어진 것을 쓰겠다는 숟가락 얹기식 소비이지, 문화의 창출이나 생산 기반에 포인트가 있는 걸로 보이지 않는다. 특히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역에 대한 고민은 아예 없다.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실패를 거듭하는 실험을 반복하듯이, 어떤 학자들은 인간과 사회, 역사와 철학에 대해 답이 없을 수 있는 질문을 계속한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관, 정의, 자유, 사랑, 민주주의, 공존 등에 대한 인식과 습성을 강화한다. 이런 시민과 학자들이 경박해진 우리 사회에서 성찰, 숙의, 경청, 존중, 겸손 등의 덕목을 되살리고 쉽게 타락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게 된다. 과거 조선시대에 집현전, 성균관, 향교를 나라에서 만들고 서원을 나라에서 지원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탐구, 연구 활동은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의심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여 과학자들의 실험실이 때론 외면받고 고독하듯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답 없는 질문은 곧잘 ‘돈 되지 않는 일’로 치부된다. 정작 나라살림연구소에서 공개한 정부의 지출 구조조정액, 즉 절약할 수 있는 부비(浮費)만도 23조원 안팎인 대한민국이다. 이 나라는 돈이 없는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도 실험실과 연구실은 폐쇄되고 적막에 휩싸여 있다. 후속세대? 어디 있는지 모른다. 관련 학과? 사라지는 중이다. 그에 비례하여 우리 사회는 한없이 가벼워진다. 경제, 군사, 인구 어느 면으로 보나 한국은 세계 10위권에 드는 ‘큰 나라’이다. 게다가 지난 2017년에 이어 다시 2024~2025 ‘촛불 혁명’을 통해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시민 역량을 보여줌으로써 정치사적으로도 모범적인 지위를 갖게 되었다. 아직 내란 세력은 처벌되지 않았고 극우 세력이 곳곳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지만, 우리는 하나하나 정리하고 안전하고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그 원기(元氣)를 키우고 유지하는 일은 세심하게 살피고 가꾸어야 한다. 원기가 사라진 세상의 모습을 멀리서 찾을 것 없다. 특검이 10개라도 모자랄 내란 공범들의 행태에서 병폐가 드러난다. 정치보다 술에 쩔어 있던 윤석열, 뇌물과 매관매직을 일삼은 걸로 보이는 김건희, 반(反)-인권을 온몸으로 보여준 안창호 등의 국가인권위원회, 1만 명 이상은 학살할 계책이었음을 보여주는 노상원 수첩, 그걸 믿었는지 국회에서 교만하던 김용현, 여인형 등의 태도에 단적으로 드러나 있다. 계속 이런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정치가는 은미(隱微)할 때 살필 수 있어야 한다. 난세의 고통은 가혹하다. 은미한 조짐들을 살피지 못하면 난세는 언제나 급습할 수 있다. 그러나 기미를 알면 막을 수 있다. 가래가 아니라 호미만으로도 막을 수 있다. 그 힘을 키워야 한다. 이런 접근이 안전할 뿐 아니라 효율적이기도 하다. 이는 정치가의 안목에 달려 있다. 안목 있는 정치가는 시민의 지지를 받는다. 변치 않는 진리이다.   [캡션 : 《맹자》 번역서들. 왜 맹자는 이익을 앞세우지 않고 존중[仁]과 올바름[義]에 대한 질문을 앞세웠을까. 내가 보기에 이는 도덕적 명제가 아니다. 사회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인 견해이다.]   2,500년 전 맹자(孟子)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천 리 먼 길 찾아온 맹자에게 양나라 혜왕이 기대에 차서 물었다. “선생께서 멀리서 오셨으니, 우리나라에 이익[利]이 있겠지요?” 맹자가 대답했다. “임금께서는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인의(仁義)를 먼저 말씀하셔야지요! 이익만 따지다보면 왕부터 일반 백성까지 서로 이익만 다투다가 나라가 위기에 빠질 겁니다. 사리사욕만 앞세우고, 사회는 뒷전이고, 어버이나 형제도 나몰라라 하겠지요.” 《맹자》의 편찬자는 왜 이 말을 맨 앞에 편집했을까? 아니, 그보다 이 뻔한 말을, 이 상식적인 생각을 우리는 잊는 것일까? 분명 인간은 어리석은 데가 있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5-09-16 | hrights | 조회: 218 | 추천: 11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정권교체를 통한 효능감으로 꼽을 수 있는 건 차고도 넘치겠지만, 빼놓지 않고 말하고 싶은 건 역시 조용해진 주말 광화문이 아닐까 싶다. 광화문 주변에선 몇 년 동안 주말마다 사랑제일교회 목사 겸 알뜰폰 사업자가 주최하는 예배 겸 기부금품 모집 행사가 열리곤 했다. 직업 특성상 일요일 광화문 주변으로 출근해야 하는 처지에서 보자면 머리가 빠개지고 귀가 지끈지끈 아프니 고문이 따로 없다. 나도 모르게 오만상을 찌푸리게 되는데 영화 ‘28일후’에 등장하는 분노 바이러스가 공상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그런데 최근 일요일 광화문역에 내리니 예배 겸 기부금품 모집 행사가 또 열리고 있었다. 정권교체 이후에도 갈 길이 멀구나 싶다. 최선을 다해 빨리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만이 하늘엔 평화 땅엔 축복일 뿐이다. 그렇게 종종걸음으로 청계광장을 지나치는데, 듣고야 말았다. 하긴 워낙 큰소리로 떠드는 데다 한영동시통역까지 하고 있으니 듣기 싫어도 듣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전광훈이 했던 말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내가 목사를 수백 명을 키웠어. 그런데 그 새끼들이 여기에 한 놈도 오질 않아(그 새끼라고 말했는지, 개새끼라고 말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래도 여기 모인 수백 명은 하나님이 축복을 해주실 거야. 여기 온 사람들은 죽어서 아무도 지옥에 안 가. 내가 하나님한테 그렇게 얘길 했어(기도했다고 했는지 시켰다고 했는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 믿습니까?’ 확신에 찬 말씀을 듣고 보니 느끼는 게 적지 않다. ‘하나님의 뜻’이란 게 참 편리하다. 누군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얘기하면 그걸 검증할 방법이 없다. 창조주 체면에 하늘나라 직인을 찍은 각서를 줄 것도 아니다. 자기가 그렇게 들었다는데 따로 증인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독대했다는 사람이 난청이 있다거나 문해력이 떨어져서 하나님 말씀을 오해하거나 왜곡해도 바로잡을 방법도 없다. 예전에 행정안전부에는 경북 사투리를 너무 심하게 쓰는 데다 목소리도 약간 웅얼웅얼하는 국장이 한 분 있었는데 회의만 끝나면 참석자들이 모두 모여서 그분이 무슨 말을 했는지 서로서로 해독하고 해석하느라 난리법석이 벌어지곤 했다. 전광훈 집회는 그나마 그냥 “아멘”이라고 하거나 귀를 물로 씻으면 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사진 출처   성경에 다 나온다고 할 수도 있겠는데, 나처럼 세상을 주재하시는 존귀하신 분에게 아무 관심이 없는(그러면서도 누가 사주관상 봐준다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귀를 쫑긋 세우는) 평범한 무신론자로선 성경 아무리 읽어봐야 하나님의 뜻이 더 혼란스러울 뿐이다. 열왕기에서 임금이 필요하다고 하는 백성들에게 경고하는 얘기만 보면 아나키스트가 따로 없고, 지상에 재물을 쌓지 말라는 마태복음을 읽어보면 사회주의자들 보기에 좋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가 하면 창세기에선 믿음을 시험한답시고 늦둥이 외아들을 죽여보라며 가스라이팅과 살인교사를 하질 않나, 말 안 듣는다고 출애굽 동지들을 수천 명씩 대량학살하는 게 전범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삼손이 찰랑거리는 머릿결에서 힘이 솟고, 선지자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놀리는 동네 꼬마 42명을 곰 두 마리로 남김없이 찢어죽인 걸 보면 역시 하나님은 탈모 스트레스에 마음 깊이 공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틀림없다(하긴 ‘어머니 하나님’이있으면 외아들이 죽어가는데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었을 리가 없다). 신이라는 존재가 세상만물을 창조하시고 전지전능하다면, 그러니까 세상 모든 것을 아시고 세상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존귀한 분이고 그분의 존재를 의식하고 명상한다면 오히려 동네방네 ‘하나님의 뜻’을 떠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오히려 천문학이나 식물학, 동물학 같은 책을 더 열심히 읽으며 그분께서 창조한 이 세상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것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지 않을까. 또한 이해도 되지 않고 썩 마음에 들지도 않는 동성애자들을 보더라도, 그 또한 존귀하신 그분께서 만드신 아들딸이라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민간인 학살한다는 뉴스를 보며 은근히 흐뭇해하는 대신 하나님의 아들딸이자 같은 신을 모시는 이들을 인종청소하는 것에 분노해야 하지 않을까. 일제강점기가 하나님의 뜻이라느니, 식민지가 된 게 다 하나님이 우릴 시험한 거라느니 하는 외람된 흰소리를 지껄이는 대신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이 어찌 그분의 깊은 뜻을 알 수 있겠느냐 하는 마음으로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며 겸손해져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경건한 안식일에 고성방가로 하나님의 쉴 권리를 침해하면 안 된다는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지 않을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해본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5-09-03 | hrights | 조회: 271 | 추천: 10
권혁용/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재명 대통령은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많은 시민은 이를 “아직 추진 의사가 없다”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사회적 합의는 어느 주체가 어떻게 형성해야 하는가? 또 그 합의는 언제 완성되었음을 인정받는가? 이렇게 모호한 말로 입법을 미루는 사이, 우리는 인권의 가장 기초적인 기준조차 갖추지 못한 사회로 남았다. 차별금지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첫째, 글로벌 기준 때문이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 대부분은 ‘평등법(The Law of Equality)’을 제정해 성별, 나이, 장애, 인종, 국적, 성적 지향, 종교, 출신 지역 등으로 인한 차별을 명시적으로 금지한다. 고용, 교육, 서비스, 주거 등 사회 전반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와 동등하게 대우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가장 기본적인 법률이다. OECD 국가 중 한국과 일본만 이 법이 없다. 그나마 일본은 LGBTQ에 대한 차별금지법을 제정한 상태다. 반면 우리나라는 2007년부터 수차례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었지만, 보수 종교계의 반대와 정치권의 외면 속에 아직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2007년에 태어난 이들은 이제 성년이 되었는데, 그 시간 동안 국가는 시민들의 동등한 권리에 대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진 출처    둘째, 민주당의 정체성과 직결된 문제다. ‘잘사니즘’과 실용주의가 민주당의 정체성이 될 수는 없다. 민주당의 비전과 정체성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그들은 과연 무엇이라 답할 것인가? 정치적 균열의 축은 수평축에서 경제 이슈(증세 vs 감세, 복지 확대 vs 축소, 정부 개입 vs 시장지상주의)로 구분된다. 이에 교차하는 수직축의 균열은 현재 한국 맥락에서는 사회문화적 균열이 적실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개인의 자유와 개성 표현을 보장하는 보편적 자유냐, 아니면 전통적 위계 규범(성별, 나이 등)에 기반한 가치냐의 대립이다. 차별금지법 제정 의지가 없다는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의 태도는 후자, 즉 위계적 질서 수호를 정체성으로 삼겠다는 선언일 뿐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보수 정당임을 자임하는 셈이다. 이것이 민주당의 정체성인가? 민주당은 ‘자유’, ‘인권’, ‘민주주의’를 내세워 온 정당이다.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그에 걸맞은 입법과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차별금지법(‘평등법’으로의 제정을 촉구한다)은 시민 모두가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기본 입법이다. 이는 최소한의 기회균등을 마련하는 일이며, 민주당의 자유, 인권, 민주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입법이 될 것이다. 셋째, ‘빛의 혁명’의 계승을 말하려면, 그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빛의 혁명’을 계승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순간에 거리에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 그중에서도 여성, 청년 등 소수자들이야말로 그 대열의 제1열에 있었다.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권리보장 조치도 없이 ‘혁명 계승’을 이야기하는 것은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키세스시위대를 떠올려보라. 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률 제정을 하지 않고 할 생각도 없으면서, 빛의 혁명 운운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제1열에서 자리를 지켰던 사람들이 지난 대통령 궐위선거에서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럴까.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로 비롯된 한국 민주주의의 전복 위기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한 민주대연합을 굳건히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학의 ‘당파적 경기순환론’에 따르면, 대통령 임기 초반에는 당파적 아젠다를 추진하고, 임기 후반에 다음 선거가 다가오면서 중도로 수렴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지금 이재명 정부의 행보는 정반대이다. 우상호 정무수석은 최근 “갈등 사안, 찬반이 나눠지는 사안에서 가능한 한 빠져나와서 민생, 경제, 정상회담 등 국가적 국익을 위한 행보들, 또 국민의 삶을 돌보는 일로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는 오히려 임기 말에나 어울리는 전략이다. 지금 민주당은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을 모두 갖고 있다. 지금이 민주당의 비전과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당파적 아젠다를 추진할 시기다. 입법의지와 결단만 있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은 가능하다. 모든 시민이 차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나라, 그것이야말로 민주공화국의 최소한의 조건이다. 차별금지법 없이 ‘빛의 혁명’을 말할 수는 없다.   권혁용 위원은 현재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5-08-25 | hrights | 조회: 260 | 추천: 13
김태중/ 인권연대 운영위원   1980년 5월, 저는 전라남도 광산군 송정리(현 광주 광산구 송정)에서 초등학교 2학년 때 5·18을 경험했습니다. 학교에 가지 않아 좋다는 생각밖에 없던 나이였지만, 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시민군을 처음 본 곳은 광산경찰서 앞마당이었습니다. 이미 경찰은 자취를 감춘 채, 동네 꼬마들이 놀이터처럼 뛰놀던 공간이었지요. 그때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삼촌들’이 경찰 트럭과 무기를 들고 구호를 외치며 나섰습니다. 동네 어른들은 그들을 향해 환호하며 빵과 음료를 나눠주었습니다. 무섭기도 했지만, 가슴이 벅차고 신기했던 그 장면은 제 어린 시절의 깊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1991년 5월, 운암 나들목 부근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다시 마주했습니다. 고(故) 강경대 열사의 운구행렬이 광주로 들어오던 날, 운암동 주공아파트 부녀회 어머니들이 학생과 시민들에게 김밥과 음료를 퍼 나르고, 이불솜까지 내어주셨습니다. 아저씨들은 초코파이와 담배를 던져주며 학생들을 격려했습니다. 그날 밤 강경대 열사는 시민들의 품에 안겨 도청 앞에서 노제를 마친 뒤 망월동에 잠들었습니다.     <출처> 오월걸상 블로그  6호 오월걸상(2023.05, 제주 서귀포시청, 김영훈 작가)  제주의 사월이 광주의 오월을 품어, 서귀포시에 여섯 개의 걸상이 둥글게 자리했습니다. 하얀 배경 위로 다섯 번째 오월걸상에 나서주신 홍성담 화백의 판화 작품 '촛불행진'의 주먹밥을 나누는 여인과 제주 4.3의 상징 동백꽃이 어우러집니다. 걸상 앞 늠름한 상수리나무 사이로 해가 비추면, 정말 평화의 햇살이 머무는 듯합니다.   이 두 장면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5·18의 주먹밥이나 91년의 김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남도민들의 연대와 공동체 정신의 상징이었음을 말입니다. 동학농민혁명, 구한말 의병, 여순항쟁, 암태도 소작쟁의 등 굳이 멀리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근현대사 속에서 남도민은 언제나 불의에 맞서고 공동체적 연대를 실천해 왔습니다. 그러한 힘이 이어져 우리는 5.18민주화항쟁, 6월항쟁,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첫 정권교체, 그리고 윤석열의 12.3내란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광주의 모습은 어떤가요? 세계인권도시포럼을 개최하고, 민주화의 성지임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치권과 관가, 시민사회가 보여주는 모습이 그 명성에 걸맞은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매년 5월, 성지순례의 마음으로 광주를 찾는 이들에게 보여줄 평화·연대·공동체 정신이 여전히 살아 있는가 하는 의문도 남습니다. 복합쇼핑몰 유치가 대선 공약으로 오르내리고, 지역 정치는 건설·토호 세력에 얽혀 요동칩니다. 최근 8.18자 뉴스를 보셨나요? 민주당 권리당원 신규 신청 30만 건이 접수됐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지역민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명부 거래, 매표 행위일 뿐이라는 것을. 이처럼 광주는 지금 리더십과 시대정신을 잃어버린 도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문제의 해법이 의외로 단순한 곳에 있다고 봅니다. 광주·전남이 잠시나마 변화를 경험했던 시기는 2010년대 초반, 민주노동당이 선전하며 기존 정치 지형에 균열을 냈던 때였습니다. 기초·광역의회에서 토호 세력을 견제하며 작지만 확실한 변화를 보여주었을 때, 시민들은 “정치가 변할 수 있구나”라는 희망을 품었니다. 지금 필요한 것도 그와 같은 변화입니다. 민주당은 광주·전남을 무공천 지역으로 선언해야 합니다. 그 속에서 지역 청년, 여성, 평화·인권·진보 세력이 전면에 나서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광주 정치 변화를 위한 첫 단추이자, 시대정신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변화의 첫 단추입니다.      
2025-08-20 | hrights | 조회: 319 | 추천: 10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 글은 2024년 국회 질의응답 과정에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과 민주당 최민희 의원 간에 ‘식민강점기에 한국인의 국적이 일본인가?’를 둘러싸고 오간 설전에 대한 단상이다. 이 설전의 학술적 성토장으로서 2025년 6월 20일 <광복 80주년 일제강점기 한국인 국적- 국회 학술토론회>가 개최되었다. 필자는 토론회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교리문답으로 단순화된 국적 문제에 대해 ‘종합판단’의 필요성을 시사한 이철우 교수의 견해에 동조하면서 하나의 접근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제국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영국 국제법학자 오펜하임의 100여 년 전의 주장부터 살펴보자.1) 그는 당시 국적에 관한 조약법이나 국제관습법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병합된 나라의 국민이 병합국의 국적을 ‘사실상’ 취득한다고 전제하였다. 오펜하임은 병합 시점을 전후하여 그 나라를 떠나 외국에 머무는 사람의 지위와 관련해서 두 가지 상반된 견해를 거론하였다. 하나는 병합국의 국민이라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병합국의 국민이 아니라는 견해이다. 이 두 가지 입장 사이에서 오펜하임은 병합 시점을 기준으로 병합 전에 떠난 사람은 병합국의 국민이 아닌 반면, 병합 후에 떠난 사람은 병합국의 국민이라는 중간적 견해를 제시하였다. 오펜하임은 병합된 나라의 국민이 병합국의 국적을 원치 않는 경우 병합국이 그에게 이탈권을 부여할 수 있지만, 그러한 권리를 보장해야 할 국제법상의 의무는 없다고 지적하였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이민권에 대한 단초들은 적지 않다.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에서 아테네가 성인이 된 시점의 시민에게 이 나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떠날 권리를 인정하였는데 자신은 그러한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아테네의 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발생한다고 말하고는 탈출 권유를 뿌리쳤다. 이 얘기는 식민지 강점기와는 상관이 없으나 이민권이 고대 도시국가에도 인정되었다는 사정을 알 수 있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아우구스부르크 종교화의(1555)는 통치자와 다른 신앙을 믿는 신민에게 자신과 동일한 신앙을 가진 통치자의 영토로 떠날 권리, 즉 이민권(ius emigrandi)을 부여하였다. 1581년 네덜란드 독립선언(Plakkaat van Verlatinghe 결별선언)은 명칭에서 보듯이 스페인으로부터 떠날 권리의 집단적 선언이다. 미국의 독립선언 기초자들이 이를 참조했다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물론 망명권과 나라를 떠날 권리를 규정한 국제법(세계인권선언, 자유권 규약)은 제국주의 시대가 끝난 후에 탄생하였다. 오펜하임은 예민한 쟁점을 언급하였다. 그는 병합된 나라에 거주하는 사람이 병합국의 국민이 되는 문제와 병합국 안에서 그 국민이 어떤 지위를 누리는가의 문제를 구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국적(nationality)과 시민권(citizenshiup)은 다른 것이고, 전자만이 국제법의 사안이고, 후자는 국내법 사안이라고 하였다. 당시 국제법의 관점에 따르면 망명자로서 외국의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조선인은 일본 제국의 국적자가 되었다. 그런데 일본 당국은 헌법과 국적법을 다른 식민지인들에게는 적용하면서도 조선인들에게는 적용을 배제하였다.2) 일본 국적법(1899년) 제20조는 다른 나라의 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일본 국적을 상실한다는 조항을 두고 있었는데, 일본 제국은 병합 과정에서 일본에 끈질기게 저항한 조선인들을 통제해야 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에 국적이탈 조항의 적용을 정책적으로 배제하였다. 일본은 해외로 이주한 조선인들에 대해서도 감시와 통제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일본 제국은 조선인들이 외국의 국적을 취득한 경우에도 국적 이탈을 허용하지 않았다. 중국 국적을 취득하고 독립운동을 하던 안창호 선생은 일본 국적자라는 이유로 국내 송환을 피하지 못했다. 3) 조선인은 일본 국적이라는 족쇄를 끌고 세계를 유랑하는 국가 노예였다. 유대인이 독일 국적을 박탈당하는 것이 제노사이드의 시작이었다고 통찰한 아렌트에게 근본적 인권이 국적을 가질 권리였던 반면, 조선인 안창호에게는 국적을 이탈할 권리가 바로 근본적인 인권이었다. 국제법학자 웨스트레이크는 인도인의 국적에 관한 관행을 제국적 원리로 해명하였다.4) 국제법적 차원에서 영국 식민지 인도인은 영국인이지만 헌법적 차원에서는 인도인이라는 논리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시카와 켄지는 조선을 국제법상 일본 영토 안에 헌법상의 외국으로 해명하였다.5)  국제법적인 상위국적(supra-nationality)은 일본 제국의 신민이지만 국내적 차원(호적법)의 하위국적(sub-nationality)에서는 조선인이다. 하위국적에서 내지인(일본인)은 최상위 시민권자이고, 조선인은 하급의 외지인이다. 조선인은 고대 스파르타의 신분제도에서 정복자인 스파르타 시민과는 다른 정복당한 메세니아 원주민(헤일로타이)과 같다. 여기서 메세니아 사람들은 다른 폴리스들과의 국제적인 관계에서는 스파르타인이지만 국내법적으로는 시민이 아니라 국가 농노였다. 이들은 토지에 매여 주인에게 소출을 상납해야 했고 정치적 권리나 이동의 자유를 박탈당했다. 이들은 잠재적 반란 세력으로 간주되어 항상 감시받았으며, 전쟁 시에는 스파르타를 위해 동원되어야 했고, 그중 일부는 전쟁에서 공을 세워 국가 노예 신분을 벗었다.     사진 출처     국회 설전에서 김문수 장관은 제국적 원리에 따른 조선인의 지위를 불변적인 순수 사실로 퉁명스럽게 간주했던 것 같다. 설혹 국적 문제가 사실의 문제라 하더라도 이는 순수한 사실이 아니라 제국주의적 질서 아래 강요된 법적 사실이다. 어떠한 사실도 재해석과 재평가를 거부할 수 없다는 점도 법의 세계에서는 엄연한 사실이다. 법의 세계에서는 기성 상태를 인정하는 논리 이외에 교정하는 논리도 존재한다. 무효라는 제도가 그것이다. 혼인의 무효, 입양의 무효, 병합의 무효도 존재한다. 병합이 무효가 되고 원래의 국적이 회복된 사례들도 존재한다. 무효는 사실 자체의 물리적 제거가 아니라 법적 의미의 원천적 제거에 관한 제도이다. 재심은 죽은 자를 살려내지는 못하지만, 부당한 사형 판결을 소급하여 제거하고 죽은 자에게 정명을 부여하는 빼어난 제도이다. 한국 정부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 제2조6)의 해석과 관련하여 을사늑약과 병합조약을 원천적으로 무효라고 천명하였고, 2012년 대법원은 강제동원 판결에서 일제의 식민 지배를 불법 지배로 규정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연합국은 나치독일의 수권법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악법을 무효로 했으며 독일법원은 1952년 레머 재판(Remer-Prozess)에서 나치 체제를 불법국가라고 판결하였다. 이러한 판결은 나치 체제의 존재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체제를 불법화하고 정치적 정당성을 박탈하는 조치는 후속국가나 후속 체제의 고유한 권한사항이다. 유대인의 국적을 박탈한 독일국적법이 ‘정의와의 모순이 참을 수 없을 정도에 이르러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1968년 독일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주목할 만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병합조약이 원천무효이고 식민 지배가 불법 지배라는 한국정부와 대법원의 입장을 구체화하는 법적 조치이다. 국적에 대한 문답은 순전한 일차원적인 사실의 확인이 아닌, 배후의 오염원에 대한 평가와 총체적 진실에 기초한 정명(正名)의 문제이다. 식민 지배가 불법이라는 판단에 기초하여 조선인에게 강요된 일본 국적을 당연히 무효로 하고 소급하여 관철할 수 있다.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개정된 재외동포법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조선을 떠난 사람으로서 외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을 재외동포로 간주하고 이들에게 국적회복의 기회를 부여하였다. 이제 이 원칙을 국적법에 관철한다면, 국회는 대한제국의 국적 관행을 고려하여 원한국인(protokorean)을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혼란스러운 공백을 해결할 수 있다. 필자는 식민강점기의 국적 문제가 사실학의 영역이 아닌 법철학적 근본 물음에 해당한다고 본다.   Lassa Francis Lawrence Oppenheim, International Law. A Treatise, 3rd ed., vol. 1(Peace), Longmans, 1920, pp. 397-399. 한일 관계에 대한 오펜하임의 여타 기사 중 한국인에게 우호적인 내용은 전혀 찾을 수 없다. 2025년 6월 20일 <광복 80주년 일제강점기 한국인 국적- 국회 학술토론회>에 제출한 김창록과 호사카 유지 교수의 발제문 참조. 武井義和, “戦前上海における朝鮮人の国籍問題,” 中国研究月報 60[1], 2006/01, pp. 7-21. John Westlake, Chapters on Principles International Law, Cambridge U.P., 1894, p. 42. 石川健治、“憲法のなかの「外国」”、日本法の中の外国法-基本法の比較法的考察, 早稲田大学 比較法研究所(編)、2014. 한일기본조약 제2조: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간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5-08-11 | hrights | 조회: 547 | 추천: 8
  정범구/ 장발장은행장 처음 인권연대로부터 강의 제안을 받았을 때, 다소 당황스러웠다. 인권연대가 올 6월부터 9월까지 서울 남부구치소, 안양교도소, 의정부교도소, 인천구치소, 화성 직업훈련교도소 5개 교정기관에서 진행하는, “교정기관 수용자를 위한 평화인문학” 과정에 강의를 요청받았기 때문이다. “아니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한테 무슨 강의를 해?” 평소 이런저런 강의를 하러 다니기는 했지만 그건 대개 대학이나 대학원 학생들 대상 강의, 또는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강연이 대부분이었다. 수강자들 성격이 대략 동질적이었기 때문에 수강 대상자들 성격에 맞추어 강의를 준비하기가 수월했다. 그런데 “죄를 짓고 갇혀 있는” 사람들을 위한 강의라니.... 연령대도 제각각이고, 아마 관심사도 다 다른 사람들,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행동의 자유를 잃고 같은 곳에 갇혀 있을 뿐인 사람들. 더군다나 이 찌는 듯한 한여름 무더위에 곱징역을 살고 있을 재소자들에게 “한가한” 인문학 이야기가 귀에나 들어올 것인가? 이런저런 걱정을 하면서 강의를 준비하고 강의실(?)에 들어섰다. 내가 맡은 강의 제목은 “통일이 되면 뭐가 달라질까?-독일 통일의 교훈”이었다. “이 사람들에게 통일 이야기며 독일 통일 이야기가 먹힐까?” 하는 질문을 여전히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들어선 강의실이었다. 지금까지 모두 세 차례 교도소⁄구치소 강의를 진행하였다. 무엇보다도 무더운 여름날, 점심 식사 후 나른해지는 오후 시간이라 “졸음과의 전쟁”을 각오했는데, 놀랍게도 세 번의 강의 동안 조는 사람들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매번 20명 정도의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했는데, 수업 태도가 매우 진지했다. 통일에 대한 관심도나 북한에 대한 이해도도 “일반 시민”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잠깐! 일반 시민들이라니.... 나도 모르게 이들을 “범법자”라고, 일반 시민과 차별하고 구분 짓고 있는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이런저런 실정법을 위반하여 일시적으로 구금된 이들은 굳이 분류한다면 “갇혀 있는 시민”이라고 불러야 옳을 것이다. 이들은 “격리되어야 할 자”가 아니라 “다시 통합되어야 할 자”인 것이다. 수용자들을 “교정‧교화” 시킨다고 교정시설에 가두어 놓고는 우리는 그들을 까맣게 잊고 있다. 그들은 거기에서 “썩어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와야 할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재소자들과 같이 고생하고 있기에는 교도관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포화 상태에 이른 교정시설들의 열악한 환경은 교도관들의 근무조건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남부구치소에서 만났던 한 교도관은 여름철이 제일 힘들다고 말했다. 여름에 분쟁이 제일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한 방에 성인 남자 7~8명이 생활하고 있는데, 비좁은 데다 덥고, 게다가 화장실 하나를 함께 사용하다 보니 사소한 일에도 신경들이 날카로워져서 싸움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신영복 선생의 책이 생각난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었던가? 여름철 감방에서는 바로 옆의 재소자가 원수처럼 느껴진다는.... 겨울철에는 상대방의 온기가 필요해 동료 재소자가 난로같이 느껴지지만, 여름철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지글지글 끓는 37도짜리 화로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윤석열 구금 이후 그의 변호인들에 의해 교도소 에어컨 설치 요구가 나왔지만, 그에 대한 국민정서상 에어컨 설치는 무망한 일이다. 전국 교도소 어디에도 수용자를 위해 에어컨이 설치된 곳은 없다. 그의 육중한 몸매를 생각하면(속옷 입고 누워서 발버둥 치는 모습까지는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이 여름 안된 일이기는 하지만 그는 그래도 일반 재소자에 비해서는 엄청난 특혜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1인당 0.4 평 정도의 생활공간만 허락되는 일반 재소자들에 비하면 3.2평 규모에 수세식 변기까지 갖춰진 그의 독방은 엄청난 특혜 아니겠는가? 교도소 과밀수용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지난 윤석열 정권 3년 동안 더 악화됐다(지난해 8월 기준 전국 교정시설의 수용률은 124.5%, 서울 구치소는 152.9%에 달했다). ‘검사 독재정권’의 폐해가 드리운 그림자가 단기간에 과밀수용의 정도를 극단적으로 악화하고 있다. 게다가 벌금을 내지 못해서 노역장으로 유치되는 ‘환형유치’ 건수도 지난 정권에서 급등하였다. 전문가들은 과밀수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설을 확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으로 가석방의 확대, 불구속 수사 원칙의 정착 등을 지적하고 있다. 의정부 교도소에서 만난 한 교도관은 재소자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교정‧교화”라면서 가석방 제도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감옥은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곳이다. 최근 통계를 보면 교도소에는 마약 사범과 경제 사범, 그리고 특히 여성 재소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아픈 현실을 축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의정부교도소 강의를 나가서 대기하던 중 한 무리의 여성 재소자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아, 그런데 거기에서 아주 가슴 아픈 장면을 보게 되었다. 무리 맨 끝에 한 젊은 여성이 지나가는데, 그녀의 품에는 어린 아기가 안겨 있었다. 엄마와 함께 아기도 같이 “징역을 살고” 있는 것이다. 엄마와 떨어져 있는 것보다는 그나마 같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그 아이가 나중에 기억하게 될 유년 시절의 풍경은 어떤 것이 될지, 강의실에 들어서기 전부터 내 마음은 착잡하다. 80여 분에 걸친 강의가 끝났다. 수강생들은 매우 진지하게 내 강의를 들었다. 통일이 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라는 나의 질문에 다양한 대답이 나온다. 지하자원이 풍부해질 것이라든지, 군사 강국이 될 것이라든지 하는 대답에서부터, 빈부격차가 심해질 것이라든가 싼 북한 노동력으로 인해 노동 시장이 안 좋아질 것이라는 사회학적 답변까지 나온다. 80분간의 만남을 뒤로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오후의 태양이 이글거리는 바깥세상으로, 그들은 다시 몇 개의 철문을 지나 서로가 서로에게 ‘화로’가 되는 감방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들은 오늘 강의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어려운 현실에서도 재소자들의 사회 복귀를 위해 노력하는 교도관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일도 많은 그들에게 이런 ‘평화인문학’은 분명 번거로운 ‘가외의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매번 성심성의껏 임하던 그들의 모습에 경의를 표한다.  
2025-08-04 | hrights | 조회: 344 | 추천: 10
서보학/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재명 정부의 검찰개혁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3일 취임 30일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 “검찰의 기소를 위한 수사, 조작된 사건 구성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발언하며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 필요성을 분명하게 강조했다. 검찰개혁의 완수와 관련해서는 “추석 전까지 제도 얼개를 만드는 것은 가능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공언에 발맞추어 이재명 정부 첫 여당 대표에 출사표를 던진 정청래, 박찬대 의원도 검찰청 폐지 및 공소청 신설, 중대범죄수사청 신설, 국가수사위원회 신설을 핵심으로 하는 검찰개혁 법안을 추석 전에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한 정성호 장관은 7월 25일 검찰의 첫 고위직 인사를 통해 지난 윤석열 정부에서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하면서 검찰권 남용에 앞장섰던 친윤 검사들을 전부 해임하거나 한직인 법무연수원 연구직으로 인사조치하였다. 지난 3년간 윤석열 검찰로부터 모진 핍박을 받고 사지로 내몰렸던 이대통령은 검찰 권력 해체의 필요성을 뼛속 깊이 느끼고 집권 초기에 검찰개혁을 완수하려는 분명한 의지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앞의 기자회견에서 이대통령은 “국민 여론이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보다 개혁에 더 호의적”이라며, 검찰 스스로 국민의 신뢰를 잃고, 검찰개혁을 자초한 자업자득이라고 지적하였다. 윤석열 정부 집권 3년 만에 나라를 존망의 위기에 빠트린 검찰공화국의 폐해를 경험한 국민 중 누가 이대통령의 지적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윤석열의 파면 및 국민주권 정부의 출범은 지난 70년간 한국 사회 만악(萬惡)의 뿌리였던 검찰에게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할 것을 명령하는 주권자 국민의 결단이다.   지난해 12월 3일 위헌적, 불법적 비상계엄을 선포해 민주주의를 전복하고 장기집권을 꿈꿨던 윤석열은 내란죄로 구속 기소되었으나 지난 3월 지귀연 판사의 납득할 수 없는 법해석으로 구속이 취소되어 석방되었다. 조희대 대법원에 이어 지귀연 판사의 내란세력 동조에 국민은 큰 충격을 받았다. 다행히 윤석열은 내란특검에 의해 다시 구속영장이 청구되어 석방 4개월만인 지난 7월 10일 재구속되었다. 재구속된 뒤 윤석열은 특검수사와 재판을 거부하며 자신의 과오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줘 더운 여름 국민들의 분노게이지를 올리고 있는 중이다. 7월 9일 재구속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윤석열은 영장판사에게 자신이 고립무원의 상태에 놓여 있음을 호소했다고 알려졌다. 정확한 워딩은 알 수 없지만 “변호인들이 특검의 공격으로 다 떨어져 나가고 있는 고립무원의 상황이라 혼자 싸워야 한다”, “국무위원들도 본인 살길 찾아 떠나고, 다들 불리한 진술을 하고 있다” 등이 변명의 핵심 내용이다. 윤석열의 치졸한 변명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범죄의 중대성과 증거인멸의 위험성을 고려해 재구속하였다. 권력을 쥐고 있을 때는 주변에 아부하는 사람들이 들끓었으나 권좌에서 물러나 법의 심판을 받고 있는 윤석열의 곁에는 이제 아무도 없는 상황이다. 권력의 무상함, 정치세계의 냉엄함을 엿볼 수 있다. 무더운 여름 에어컨도 없는 방에서 땀 흘리며 지내는 윤석열은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비참한 현실에 눈을 뜰 것인가. 그래도 에어컨 없는 좁은 방에서 12~13명씩 혼거하는 다른 재소자들에 비해서는 사정이 나은 편 아닌가. 장님 무사 윤석열을 이용해 온갖 비리를 저지르며 탐욕을 부렸던 김건희도 곧 특검에 의해 구속되기를 기대한다.   사진 출처   현재 윤석열의 처지 역시 자업자득이다. 윤석열은 평생 특수부 검사로 살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을 감옥에 보내면서 살았고 그 덕택에 출세했다. 개중에는 죄를 지은 사람들도 있겠으나 검찰 특수부의 수사관행상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억울하게 감옥에 간 사람들도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간혹 검찰 특수부가 한국 사회의 건강을 부패세력으로부터 지키는 대단한 조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특수부의 명성은 허상에 불과하다. 특수부가 무리한 수사와 억지 기소로 많은 억울한 사람을 법대에 세워 고통을 준 사실은 과거 검찰 특수부의 대명사였던 대검중수부의 무죄율이 일반 형사사건 보다 수십 배나 높았던 통계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지난 2013년 인권침해와 정치적 하명수사로 악명이 높았던 대검중수부가 폐지된 이후에도 특수부의 무리한 수사와 억지 기소에는 달라진 것이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적한 바와 같이 검찰 특수부는 기소 방침을 정해 놓고 수사를 하기 때문에 당사자의 자백(심지어 거짓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강압수사, 먼지털이식 별건수사, 가족 또는 지인에 대한 무차별 수사를 일삼고 때로는 증인에게 위증(거짓 진술)을 교사하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또한 변호인들에게 압력을 넣거나 공격하여 변호를 그만 두도록 하는 파렴치한 짓도 저질렀다. 실제로 특수부 수사를 받는 피의자가 변호사를 구하기 어려운 것은 변호사들이 검찰의 보복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수부 수사를 받는 피의자는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특수부 검사의 요구대로 자백하거나, 심지어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거짓으로 자백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가족이나 주변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자살해야 하는 극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검찰 수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인권연대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추적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4~2023년의 20년간 검찰 수사를 받다가 자살한 사람이 163명, 경찰 수사 과정에서 자살한 사람이 76명이었다. 경찰 수사가 전체 사건의 약 97%, 검찰 수사는 약 3% 정도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자살한 사람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피의자를 극한 상황, 심지어 자살로 내모는 강압적 수사 관행, 인권침해 수사 관행이 검찰에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특수부의 수사는 악명 높다. 그런데 이런 특수부의 수사가 유능하다고?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주장이다. 반면 김건희의 각종 부패의혹에 대한 부실수사에서 알 수 있듯이 검찰의 자기편 봐주기 수사도 열거하기 힘들 만큼 사례가 많다. 검사들이 입만 열면 인권보장과 부패척결을 내세우지만 얼마나 허망한 말들을 쏟아 낸 것인지 알 수 있다. 사진 출처   그런데 요즘 추가된 특수부 수사의 대표적인 악습이 하나 더 있다. 무지막지할 정도의 수사기록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것이다. 지난 4월 4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12·3 내란 사건 첫 공판에서 윤석열은 자신을 구속취소 결정으로 풀어준 지귀연 재판장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재판장님, 내가 시작이니까 말씀드리는데 유죄 입증은 검찰이 하는 거 너무 당연합니다만, 그래도 재판을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공소장이 난잡하고, 증거라는 것도 어느 정도 될 만한 거 딱 골라서 던져줘야 그거 가지고 증거인부를 다투든지 하지, 지금 뭐 일단 (대검 내란 특별수사본부의 수사기록이) 7만 쪽에, 증거목록만 천몇백 페이지라는데 이래가지고 재판이 되겠습니까.” 수사기록이 7만 쪽에 달하면 웬만큼 많은 변호사가 달라붙지 않는 한 그 기록을 다 검토하고 방어준비하는 것이 사실상 곤란하다. 피고인이 기록을 복사하는 데만 비용이 통상 1~2천만 원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 변호인이 한두 명에 불과하고 더구나 피고인이 구속되어 있다면 방어 준비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재판부도 그 기록을 다 검토하고 재판에 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재판은 검사에 의해 끌려 다니기 십상이다. 게다가 중요한 사건에서는 공판검사만 예닐곱 명 이상이 들어온다. 법정에서 한두 명의 변호인과 함께 자신을 방어해야 하는 피고인은 형사소송법의 이론상으로만 검사와 대등한 당사자이지 실제로는 검사의 먹이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윤석열은 자신이 이런 처지에 놓여 있음을 하소연한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자신도 이런 수사를 평생 저질러 오면서 피고인을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트려왔다. 예컨대 지난 5월 1일 조희대 대법원이 당시 이재명 대선후보자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유죄 취지로 원심을 파기 환송할 때 수사기록 및 재판기록이 7만여 쪽에 달했다. 때문에 당시 대법원이 그 기록을 다 보지도 않고 판결을 선고해 부실하게 재판하였다는 비판이 일었다. 사례는 더 있다. 대북송금 사건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검찰 수사기록도 7만 쪽이 넘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이 수사팀장으로 참여했던 특검의 ‘적폐수사’는 수사기록이 더 어마어마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8만 5천 쪽, 박근혜는 12만 쪽이었다. ‘사법농단’의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우에는 무려 20만 쪽이 넘었다. 경제력이 탄탄해 많은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소수의 사람을 빼고는 대부분 피의자·피고인은 이런 수사기록의 산더미에 파묻혀 죽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식의 나쁜 수사를 평생 해오면서 수많은 사람을 방어권도 제대로 보장하지 않고 감옥에 보낸 윤석열이 이제 와 법정에서 검찰 수사의 문제점과 자신의 처지의 곤궁함을 토로한 것은 심각한 자가당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고립무원은 윤석열의 자업자득이다.   필자는 윤석열에 대해 일말의 동정심을 갖지 않는다. 그동안 저지른 수많은 악행에 상응하는 엄한 처벌을 받고 고통을 느끼기를 원한다. 그래야 이 땅에서 저마다의 직분에 충실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많은 국민이 ‘사필귀정’이야말로 불변하는 인생의 법칙임을 확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제 검찰의 존재를 더는 용납할 수 없다. 수차 강조하였지만 이제 검찰은 고쳐 쓸 수 있는 단계를 지나갔다. 폐지만이 답이다. 이대통령의 공언대로 가을에 검찰청을 폐지하고 수사-기소 분리를 완성하여 앞으로는 더는 수사권과 기소권 모두를 한 손에 쥔 검사들에 의해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는 국민이 나올 수 없게 해야 한다.   서보학 위원은 현재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5-07-28 | hrights | 조회: 416 | 추천: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