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비친 인권연대
> 활동소식 > 언론에 비친 인권연대
[경향신문] 오피니언 오항녕의 독사관견 讀史管見 감사, 위로, 그리고 반가움…추석의 역사성
![[오항녕의 독사관견 讀史管見]감사, 위로, 그리고 반가움…추석의 역사성](https://img.khan.co.kr/news/2026/09/14/l_2026091501000431100042611.jpg)
"바쁘게 사느라 못 보았던 사람들을 만나고, 만나 위로하고 격려하며 함께 놀며 맛있는 거 먹는 기회가 되는 것만으로 명절의 의미는 충분하다"
"감사와 반가움 그리고 위로가 가능한 리듬과 길을 찾아보자
그 길을 찾으면 21세기형 K문화가 된다"
"가끔 어긋나고 삐걱거려도 서로 탓하지 말자
우리는 지금 적응하면서 진화하고 있을 뿐이다"
쌀도 같은 쌀이 아니고 사과도 같은 사과가 아니다.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고조선, 조선, 그리고 대한민국의 쌀, 사과, 사람은 다르다. 그것이 놓여 있는 관계와 조건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예외는 없다. 과거의 삶이 변화했듯이 지금 우리의 삶도 변화할 것이다. 이런 배치의 변화를 역사성이라고 부른다. 역사 공부의 목적 중 하나는 이 배치를 이해하는 데 있다. 추석이 다가오는 만큼 오늘은 그 역사성을 생각해보려고 한다.
사과도 붉게 익고
입추 뒤에도 노염(老炎·늙은 더위)이 계속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처서, 백로와 함께 선선해지면서 가을이 오고 추석도 다가왔다. 더위(暑)를 한곳에 치워놓고(處), 쾌청한 가을 하늘처럼 이슬이 맑아지는(白露) 절기가 지나야 여름이 끝나나 보다. 더위는 에어컨으로 이길 수 있는 게 아니다.
선선해진 건 좋은데, 추석이 가까워지면서 결정해야 할 이슈가 생긴다. 차례 지내는 일이다. 첫째네는 산후조리 중이라 오기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교통량을 고려해서 명절 때는 오지 말고 평소에 보자고 얘기해둔 터였다. 혼자 사시는 장모님 댁에는 가야겠지 싶다가, 차례 지내고 나선 길이 막혀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옆에 있던 아내는 “명절에 다들 모여서 먹고 얘기하는 게 참 좋았는데…” 하며 말꼬리를 흐린다.
아내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명절마다 할머니, 작은할머니, 작은아버지들, 당숙 내외는 우리 집을 찾았다. 할머니는 새댁인 아내를 따뜻하게, 또 사뭇 고생한다 싶게 쳐다보며, 같이 전도 부치고 나물도 무쳤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들 흉도 보고, 힘들었던 농사일 얘기도 웃음 속에 묻어 들려주셨다.
불편함과 상처
그 뒤 할머니들은 돌아가셨고, 작은아버지, 사촌들은 병환이나 직장 등으로 명절 차례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것이 20~30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였다. 그래도 명절 때는 기숙사에 있던 아이들이 돌아와 그런대로 적적하지 않게 차례를 지냈지만, 기제사 때는 그것마저 여의치 않았다. 아내와 둘이 술 따르고 올리고…
이 무렵, 드라마나 칼럼에서 제사, 차례를 둘러싼 가족의 갈등을 자주 다루기 시작했을 것이다. 제사나 차례의 갈등은 명절 자체로 전이되는 듯했다. 가네, 마네, 시댁이 먼저네, 친정이 먼저네 등등. 사람이란 본래 그리 지혜롭지 못해서인지, 이런 사안은 곧잘 누군가를 낡은 인식의 소유자로 묘사하거나, 자신들만 아는 이기적인 존재로 치부하는 방식으로 정리 아닌 정리가 강요되기도 한다. 그 끝은 불편함과 상처만 남았다.
남편: “조금 일찍 가서 어머니 음식 하는 거 도와드려야 하지 않을까?”
아내: “그래, 한번 해보지 뭐!”
남편: “먼저 가 있어. 돌잔치 잠깐 들렀다 가서 도와줄게.”
아내: “… 돕는다구? 나를?”
남편: “응. 왜?”
아내: “나는 느네 할아버지 얼굴도 본 적 없거든. 내가 너를 돕는 거라고 생각되지 않니?”
남편: “어, 음, 그런가…”
무척 인상적이라 적어두었던 대화인데, 웹툰과 드라마로 나왔던 <며느라기>라는 작품의 일부다. 위 대화에 나오는 ‘도와줄게’, 나도 아내에게 종종 했던 말이다. 집에 제사가 많았는데 아내는 직장을 다니면서 얼굴도 보지 못한 조부, 조모, 증조부, 증조모, 얼마 안 있어 어머니와 아버지 제사를 준비했다. 그리고 나는 ‘도왔다’.
위의 ‘아내’, 즉 ‘며느라기’의 말은 지당해서 토를 달 데가 없다. 그리고 남편의 태도도 좋아 보였다. 남편이 저런 자세는 가져야 살아남아 사랑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당시 저런 바람직한 자세는 드물었던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의 과장을 감안해도, 여전히 ‘명절증후군’이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추석의 역사성
이는 일종의 아노미 현상이다. 역사학도의 입장에서 이는 사람들끼리 다투고 상처받을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명절이나 제사를 대하는 태도가 변화한 것은 인간성의 변화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세상과 사회가 변했기 때문에 나타난 양상이다. 추석은, 추수감사절이 그렇듯이, 대체로 온대지방에서 가을에 곡식을 수확하고 이 삶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위로하고 반기는 시간이었다. 감사는 선조에게, 위로는 자신들에게, 반가움은 이웃과 가족에게 향했다.
요즘 우리에게 가을 수확이 갖는 의미는 다르다. 농업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90% 이상의 사람은 월급에 익숙하지 수확의 리듬 속에서 살고 있지 않다. 게다가 가족이나 친척이 같은 동네에 사는 것도 아니다.
한때 이 생활 공간의 차이와 명절의 만남을 메우기 위해, 우리는 귀성(歸省)이라는 정겹고도 처절한 행사를 치르면서 관성의 법칙을 견뎠다. 오죽했으면 ‘귀성 전쟁’이란 말이 나왔을까. 하지만 고향도 희미해졌다. 우리는 직장을 옮기고 이사를 다닌다. 이런 처지가 고향(Heimat)으로부터의 소외일지, 그저 그런 새로운 삶의 방식일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대부분의 생활조건임은 분명하다. 즉 우리에게 닥친 이슈는 도덕적 요구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는 뜻이다.
누가 할 수 있겠는가?
나 어릴 때는 친척들이 대부분 같은 동네나 근처에 살았고,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할아버지는 자시(子時·밤 12시)에 제사를 지낼 수 없었을 것이다. 서울 사는 아이와 며느리가 어떻게 전주 사는 아버지 집에 와서 밤 12시에 제사 지내고 다음날 출근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뿐이랴! 예전에는 이웃이 도와주었기에 제사상도 수월하게 차릴 수 있었다. 지금은 이웃이라도 그렇게 얼굴 트고 지내지 않는다. 인사하고 지내는 이웃이라도 대부분 직장에 다닌다. 그러니 제사를 혼자 준비해야 한다. 종교적인 이유를 제외해도, 우리는 예전처럼 제사를 모실 조건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마을에 머무는 사람들이 사라지자 상여 나가는 풍습이 사라지고 장례식장이 생긴 것과 같은 이치이다.
소박한 나의 대책
그래서 나는 제사와 성묘 등을 형편에 맞게 운용한다. 술은 화이트 와인이나 사케 등 맛있는 술을 쓴다. 내가 좋아하는 술이다. 조상님도 좋아하실 거라 믿는다. 성묘 때는 물로 대신할 때도 있다. 음식은 제철 과일을 중심으로 차린다. 동태전과 호박전 그리고 삼색나물(시금치, 숙주나물, 고사리)은 아내가 금방 만들 수 있다고 해서 차린 적이 있는데, 큰아이가 그걸로 비빔밥 만들어 먹기를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도 바꿨다. 나와 아내 둘만 지내게 되면서 제사상에는 과일과 꽃만 올리기도 했다. 가끔 육회처럼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음식도 준비하는데, 곧 내 안주가 된다. 집안에 특별한 일이 있으면 제문을 쓰기도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는 아예 작은아버지, 고모들과 교통 편한 음식점에서 기일이 든 주말에 점심을 같이하며 추모 예배를 드리는 방식으로 바꿨다. 장인어른 기일에도 추모 예배를 드린다. 당신께서는 신자가 아니었지만 장모님께서 독실한 신자이시기 때문이다. 제사라고 부르든, 예배라고 부르든, 예불이라고 부르든 그 뜻은 하나다. 다들 이런 방식을 좋아하신다. 맛있는 것도 먹고 서로 얼굴도 보니까. 후손들이 밝은 얼굴로 함께한다면 조상님도 기뻐하실 것이다.
율곡의 조언
조선 전기, 불교 중심 사회에서 유교 사회로 서서히 변화하면서 상례나 제례가 미처 정리되지 못했다. 당연히 사람들은 지금 우리와 비슷한 난처함에 빠졌다. 그때 율곡 이이는 <격몽요결(擊蒙要訣)>을 통해 대강의 방법을 제시하면서 큰 원칙을 이렇게 말했다. “제사와 차례는 사랑과 공경의 정성을 다하면 된다. 가난하면 집의 형편에 어울리게 차리고, 병이 있으면 자기 기운을 헤아려 지내면 된다.”
바빠서 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만나서 위로하고 격려하며, 함께 놀면서 맛있는 거 먹는 기회가 되는 것만으로 명절의 의미는 충분하다. 이렇게 감사와 반가움, 위로가 가능한 리듬(禮)과 길(道)을 찾아보자. 그 길을 찾으면 21세기형 K문화가 될 것이다. 못 찾고 함부로 살면? 그런 집단을 예전엔 오랑캐라고 불렀다. 어긋나고 삐걱거려도 서로 탓하지 말자. 우리는 지금 적응하면서 진화하고 있을 뿐이다.

오항녕 전주대 명예교수
|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 |
| 4156 |
New [경향신문] 오피니언 오항녕의 독사관견 讀史管見 감사, 위로, 그리고 반가움…추석의 역사성
hrights
|
16:01
|
|
조회 5
|
hrights | 16:01 | 5 |
| 4155 |
[월요신문] "경찰관은 현장으로, 행정업무는 일반직이"
hrights
|
2026.09.11
|
|
조회 71
|
hrights | 2026.09.11 | 71 |
| 4154 |
[퍼블릭타임스] “경찰 수사인력 부족하다면서 경리 업무는 왜 경찰이 합니까”
hrights
|
2026.09.09
|
|
조회 60
|
hrights | 2026.09.09 | 60 |
| 4153 |
[로이슈] '민생치안 확립을 위한 경찰청 일반직공무원 역할 확대 방안' 국회 토론회
hrights
|
2026.09.09
|
|
조회 56
|
hrights | 2026.09.09 | 56 |
| 4152 |
[피앤피뉴스] 경찰청 노조 “경찰관 행정업무 줄여 현장으로”…일반직 역할 확대 제안
hrights
|
2026.09.09
|
|
조회 62
|
hrights | 2026.09.09 | 62 |
| 4151 |
[충청매일] "경찰관은 현장으로, 행정은 일반직공무원이 전담"
hrights
|
2026.09.08
|
|
조회 60
|
hrights | 2026.09.08 | 60 |
| 4150 |
[아시아경제] "벌금 못 내 감옥 갈 판"…장발장은행, 25명에 7500만원 대출
hrights
|
2026.09.01
|
|
조회 207
|
hrights | 2026.09.01 | 207 |
| 4149 |
[디지털타임스] 전직 경찰청장이 심사위원…장발장은행, 벌금 못 낸 25명에 총 7482만원 대출 결정
hrights
|
2026.09.01
|
|
조회 183
|
hrights | 2026.09.01 | 183 |
| 4148 |
[강원도민일보] “벌금 못 내면 감옥행”…장발장은행, 25명에 역대 최대 7482만원 대출
hrights
|
2026.09.01
|
|
조회 180
|
hrights | 2026.09.01 | 180 |
| 4147 |
[경기일보] “가난 때문에 감옥 가지 않게”…장발장은행, 25명에 7천500만원 대출
hrights
|
2026.09.01
|
|
조회 210
|
hrights | 2026.09.01 | 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