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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파산의 늪에서 꺼내준 단돈 10만 원… 문턱 낮지만 상환율은 90%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7-31 12:00
조회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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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계층 대상 무담보·무이자 대출… 소액 거래로 신용 쌓으며 대출 늘려
벌금 미납자 대상으로도 대출 운영… 대출 이용자가 후원자로 이어져
채무조정·사회적 금융으로 영역 확대


 



“돈이 절실한 사람들은 하루 1만 원도 구하기 힘들어요.”

경기 수원에서 자녀 다섯을 키우는 유도은 씨(42)는 2020년 유산 후유증으로 인한 통원 치료가 길어지면서 결국 직장을 그만뒀다. 이후 팬데믹이 찾아오면서 다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개인 파산에 몰렸다. 남편이 돈을 벌긴 하지만 수입이 작고 불규칙해 생활비를 대기에도 부족했다. 파산 면책자를 상대로 하는 고리 대부업체에 손을 벌리기도 했을 만큼 벼랑 끝에 서 있었다.

더는 버티기 어렵다고 느낄 때쯤 무담보·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이른바 ‘사회연대경제조직’을 알게 됐다. 지난해부터 급할 때마다 적게는 100만 원 남짓한 돈을 빌렸다가 갚기를 반복하고 있다. 덕분에 최근 검정고시를 치렀고,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준비하고 있다. 유 씨는 “은행 빚, 카드 빚 모두 막히면서 안 좋은 생각까지 하게 됐지만, 사회연대경제조직 덕에 이제는 돈을 갚아 나가며 신용도 쌓고, 못 이룬 꿈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후원금을 재원으로 민간에서 취약계층, 저신용자에게 무이자 혹은 낮은 이율로 돈을 빌려주는 사회연대경제조직이 정부, 금융기관의 획일적인 빚 탕감 정책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소액으로 시작해 신용을 쌓는 만큼 돈을 빌려주는 방식 덕분에 상환율이 90%에 달한다. 벌금형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갇힐 뻔한 사람들도 사회연대경제조직을 통해 돈을 빌리고 갚은 뒤 또 다른 후원자로서 어려움에 부닥친 또 다른 사람을 돕는 데 기여하고 있다.

● 소액으로 신용을 쌓는 경험이 높은 상환율로


‘더불어사는사람들’은 기초생활수급자나 한 부모, 차상위 계층, 신용 회복과 파산 경험자 등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무이자, 무담보로 소액을 대출해 주는 사회연대경제조직이다. 2011년 8월 법인을 설립한 이창호 대표는 처음에는 신용 없는 사람들에게 대면 대출 심사를 거친 뒤 100만 원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금융위원회가 현재 진행 중인 ‘포용금융 전략추진단’의 정책서민분과 민간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2012년 언론 보도 등을 통해서 사업이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돈을 빌려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대출 심사를 받으러 서울로 오라고 할 수는 없었다. 만난다고 100% 돌려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사업 구조를 비대면으로 바꿨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빌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2012년 연간 3000만 원 수준이던 대출 잔액은 2025년 8억8000만 원 수준으로 늘었다. 다음 달에는 누적 대출 50억 원을 넘어서게 된다.

눈에 띄는 부분은 상환율이다. 출범 이후 15년간 1만860명이 돈을 빌려 갔는데, 열에 아홉은 상환했다. 이 대표는 “소액(10만 원), 신용 쌓는 경험, 믿음을 줬기 때문에 돌려받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소액을 내주니 빌려 간 사람도 갚는 데 부담이 없었다는 것이다. 상환할 때마다 한도를 늘려준 점도 상환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10만 원을 대출한 후 상환하면 한도를 늘려 15만 원을 빌려주는 식이다. 갚는 경험을 되풀이하며 신용이 주는 혜택(한도 증대)을 몸소 깨닫게 해준 것이다.

이 대표는 “급하게 돈을 빌리려는 사람들은 가족들조차도 등을 돌린 경우가 많은데, 그런 분들에게 대출을 내주는 건 단순히 돈을 대주는 게 아닌 믿어주는,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구에서 중고 물건을 사고파는 박모 씨(45)가 대표적인 경우다. 은퇴 자금으로 반품·환불 제품을 저가에 사서 이윤을 붙여 파는 일을 하는데 최근 사기를 당해 폐업 직전까지 내몰렸다. 그러다 더불어사는사람들을 알게 됐고 경매로 떼 온 물건 대금을 치러 가까스로 어려움을 극복했다. 박 씨는 “가족들이 걱정하니 차마 사정을 말하지 못했는데 사회연대경제조직의 도움으로 재기할 수 있게 됐다”면서 “받은 물건을 판매해 곧장 빌린 돈을 갚을 수 있었다”고 했다.

● 얼마나 잘 갚을지보다는 정말로 필요한지



장발장은행은 벌금형을 선고받은 뒤 벌금 낼 형편이 못 되는 이들에게 무이자로 최대 500만 원을 빌려준다. 돈을 빌리려면 소정의 서류를 제출한 뒤 대출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실제 심사가 까다로워 통과하는 사람보다 탈락하는 사람이 더 많다. 장발장은행 대출 심사위원회에는 김학성 전 법무부 교정본부장, 민갑룡 전 경찰청장 등이, 운영위원에는 송영삼 전 광주지방교정청장 등이 참여하고 있다.

그렇다고 시중은행들처럼 ‘얼마나 잘 갚을 것인지’ 신용 평가점수를 따지는 건 아니다. 그 대신 ‘얼마나 필요한가’에 방점이 찍혀 있다. 경기 평택시에 사는 기초생활수급자 함모 씨도 가까스로 심사에 통과했다. 함 씨는 지난해 개인 사정으로 6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돈이 부족해 교도소에 갇힐 뻔했지만 장발장은행 대출 심사위원회는 함 씨가 기초생활수급자인 점, 어머니가 치매로 요양 병원에 계신 점, 무엇보다 홀로 돌봐야 할 자녀가 3명이 있다는 점을 들어 250만 원을 빌려줬다. 함 씨는 “돈을 빌리지 못했다면 두 달여간을 감옥에 있으며 가족들과의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릴 뻔했다”고 회상했다. 함 씨처럼 장발장은행을 찾은 사람들은 2015년 2월부터 2026년 7월까지 1669명에 달한다. 이들에게는 29억 원 넘는 대출이 나갔다.

장발장은행 대출 심사위원인 양영철 제주대 행정학과 명예교수는 “마약, 대포통장, 상습범 등 범죄는 제하고 힘없고, 아픈 생계형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대출 승인을 내준다”면서 “매년 벌금을 못 내서 교도소에 가는 수만 명의 장발장을 위해 많은 후원자들이 관심을 갖고 소액 기부를 하고 있는데 이것이 활성화된다면 사회 전체가 따뜻해지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장발장은행 후원자 중에는 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던 사람도 많다. 1000원이고 1만 원이고 사정에 맞게 후원하고 있다.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사람들이 빌려준 돈이기 때문에 대출자들도 갚아야 한다는 의지가 강한 편이라고 했다. 한정된 재원도 상환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돈을 갚지 않으면 나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돈을 못 빌리게 됨을 인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회연대경제조직의 외연은 넓어지고 있다. 롤링주빌리는 후원금으로 부실채권을 매입하거나 기부받아 해당 채권을 탕감하는 사업에서 더 나아가 상환 능력을 상실한 채무자와 채권자를 중재하며 원리금을 조정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회연대은행과 신나는조합은 취약계층 대상 저리 대출 사업을 넘어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 비영리단체나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예비창업팀을 지원하고 있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사회연대경제조직은 기성 금융기관이 할 수 없는 역할을 대신 해주는 측면이 있기에,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정부에서 기부자들에 대한 세액공제 등 혜택을 늘려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일률적 조정-탕감 대신 대출 문턱 낮춰야

정부도 저신용자,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번 정부 들어 새도약기금이라는 명목 아래 금융기관으로부터 5000만 원 이하, 7년 이상 연체 채권을 매입해 88만5000명에 대한 빚 독촉을 중단시켰다. 신용도와 무관한 단일 금리(연 4.9%) 상품과 100만 원을 연 4.5%에 10년간 상환할 수 있는 대출도 공급하겠다는 입장이다.

5대 금융그룹(KB,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도 올해 상반기(1∼6월) 중 2조3000억 원의 연체채권에 대한 자체 채무조정을 진행했고, 1조5000억 원 규모의 장기 연체 채권을 소각했다. 이 같은 활동은 2030년까지 계속 진행된다.

다만 천편일률적인 빚 탕감은 신중히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의도와 달리 ‘나라가 돈을 갚아준다’는 도덕적 해이가 사회 전반에 퍼질 수 있어서다. 신용도와 상황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금융기관은 1, 2금융권 등으로 체계화돼 있는데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되면 다른 금융기관들의 역할이 사라져 전체 금융 생태계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빚을 탕감받는 사람들의 재산과 소득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지, 채무 조정 과정에서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기관도 대출 심사의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계적 신용평가 시스템을 통한 대출 거절이 이루어지더라도 소액을 빌려줄 수 있는 방법을 찾거나 전국 단위 점포를 기반으로 신용회복위원회나 사회연대경제조직 등을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신용도가 낮다는 이유로 금융기관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시혜성으로 채무를 조정, 탕감해 주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 선제적으로 대출을 내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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