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비친 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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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오항녕의 독사관견 AI 공유지를 지켜라
자본 논리로 AI 공유지에 철조망을 친다면
영화의 디스토피아가 곧 현실로 닥칠 것이다
미국과는 달리 대한민국 정부의 기능이 현재까지
온전하게 작동해서 천만다행이다
정부는 ‘초과 세수를 어떻게 쓸지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시민도 논의에 참여하자
역사학자는 ‘모든, 언제나’ 같은 말을 잘 쓰지 않는다. 모든 인간이 다르듯, 모든 사건은 같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끔 예외는 있다. “모든 나라는 ( ) 때문에 망한다.”
일단 질문이다. 위 괄호 안에 들어갈 말은 무엇일까? 전쟁, 토목공사, 부정부패 등이라고 답한다. 맞는 말이다. 이를 공통적으로 묶는 게 세금이다. 국가는 세금을 걷지 않으면 전쟁도, 토목공사도 벌일 수 없다. 부패하기도 어렵다. 아무튼 세금을 잘못 거두면 망한다.
세금: 논과 밭, 그리고…
대동법 얘기를 잠깐 해보자. 조선시대는 세종 때부터 전세(田稅), 군역(軍役), 공납(貢納)의 세 종류 부세가 정비되었다. 대동법은 선조 후반부터 시작되어 숙종 때 마무리된 세제 개혁인데, 현물로 받던 공납을 전세로 통합한 것이다. 공물로 내는 지역특산물이나 1차 가공품은 산출이 안정적이지 못하였다. 그렇기에 방납(防納·공물 대리납부업)의 폐단은 구조적이었다.
선조 초반 율곡 이이는, 연산군 때 놀고먹느라 확 늘어난 공물을 줄일 겸 공물을 쌀로 거두자는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물론 공납을 전세로 통합하는 개혁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품 종류가 쌀이나 콩으로 바뀌다 보니 고을마다 이해가 달랐고, 지방·중앙 재정도 조정해야 했다. 숱한 논의와 조정 끝에 대동법은 1결당 12두(斗)로 수렴되었다. 전세가 4두였으니까 전세의 3배가 된다.
1:3, 이게 무슨 의미였을까? 우선, 전세는 농사를 짓는 논과 밭에서 거두던 세금이었다. 세종 때 토질과 풍흉에 따라 나누어 매겼던 데서 인조 때부터 4두로 고정되었다. 세종 때 기준으로 하(下)의 하(下)에 해당하는 농지에 부과되던 가장 낮은 세율이었다. 그렇게 거두어도 될 만큼 농업 생산력이 안정되었다는 말이겠다. 그러니 안정된 세금원으로 국가 수입을 통일하는 게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대동법에서 얻은 가설
논과 밭은 대개 누가 가지고 경작하는지, 거기서 무엇이 나는지 파악이 쉽다. 그래서 세금의 첫 번째 대상이 되었다. 그럼 대동법 12두로 변했던, 당초 현물로 내야 했던 공물의 근거는 무엇일까?
공납은 논과 밭(때로는 집터 포함) 이외에 산과 들, 강과 바다에서 뭔가 얻어서 살고 있으니 내라는 세금이었다. 그걸 왕정 아래에서는 왕토(王土)라고 불렀다. 백성은 모두 왕의 신하이듯이, 왕의 위력이 미치는 곳은 모두 왕토였다. 고대 노래를 모아놓은 경전인 <시경(詩經)>에선 “넓디넓은 하늘 아래 왕의 땅 아닌 데가 없으며, 모든 땅의 바닷가에 이르기까지 왕의 신하 아닌 이 없다(普天之下, 莫非王土; 率土之濱, 莫非王臣)”고 선언하였다.
여기서 1:3의 두 번째 의미가 나온다. ‘국가의 눈’으로 볼 때 백성들의 생존(재생산)에 미치는 영향이 논밭보다, 흔히 ‘산림천택(山林川澤)’이라고 부르는 산과 들, 강과 바다가 3배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된다. 소유 또는 배타적 점유지인 논과 밭보다 공유지인 산림천택이 사람들의 삶에 더 중요했다는 말이다. 그곳은 동물성 단백질, 버섯, 나물, 약초, 땔감, 건축자재 등 생계 자원의 창고이자, 나들이와 놀이의 공간이었다.
왕조가 역사의 산물이듯
우임금은 하(夏)나라 왕조를 연 인물이다. 그 전에는 왕조(dynasty), 즉 핏줄에 의해 세습되는 왕이 없었다. 요순시대라고 할 때 들어본 요(堯)임금은 순(舜)에게 왕위를 넘겨주었고, 순임금은 우에게 또 그렇게 하였다. 우임금도 익(益)에게 선양하려고 했는데, 민심이 익에게 가지 않고 우임금의 아들에게 갔다고 전해진다.(<맹자> ‘만장 상(萬章 上)’ 6) 우리가 아는 왕조가 시작된 것이다.
이 설화를 덧붙이는 것은 현재 당연하게 여기는 대의 민주주의 역시 역사적 산물이라는 점을 상기하기 위해서이다. 과거는 흘러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현재가 전부인 줄 착각한다. 그러나 현재 역시 언젠가 미래였고, 흘러가면 과거일 뿐이다. 과거, 현재, 미래는 그저 변화(易)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우임금이 만들었다는 아홉 개의 솥.
우(禹)임금의 거짓말
우임금에게 이런 전설이 있다. “하나라에 덕(德)이 있을 때 먼 지방 나라들이 각각 그 산천(山川)의 기이한 사물들을 그려 올리자, 아홉 개의 솥(九鼎·구정)을 주조한 뒤 그 사물들의 모습을 새겼다. 모든 사물이 거기에 갖추어져 있어서 백성들이 귀신(鬼神)의 간교함을 알게 되었던 까닭에 인민들이 천택(川澤)과 산림(山林)에 들어가도 불약(不若)을 만나지 않고 이매(螭魅)나 망량(罔兩)과 마주치지 않았다.”(<춘추좌씨전> 선공(宣公) 3년)
불약은 나무 귀신, 이매와 망량은 각각 산과 강의 귀신이라고 한다. 아홉 개의 솥이란 우임금이 아홉 군데 지방(九州)의 금을 한데 모아 만들었다는 전설의 솥인데, 이후 ‘구정’은 제왕의 상징이 되었다.
우임금이 만든 솥을 보고 인민들이 귀신들의 모습을 알게 되었고, 도망치거나 피하여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얘기이다. 이들 귀신, 유령은 삶의 터전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불확실성 또는 변수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홍수나 가뭄 또는 사나운 짐승일 수도 있다. 나아가 생계의 리듬과 메커니즘의 불안정성일 수도 있다.
거짓말의 배경
정말 그랬을까? 원주민이 숲과 늪지를 보면서 귀신이 나올 곳으로 낯설게 생각했을까? 우리는 귀신이나 유령이 사는 공간에서 수렵채집이든 농경이든 하며, 이미 사람이 살고 있었을 것이라고 쉽게 추정할 수 있다. 로빈후드가 왕의 군대를 놀리듯 싸웠던 셔우드 숲을 생각하면 된다. 그 숲에서 헤맨 자는 누구였는가? 정작 구정이 필요했던 건 백성이 아니라 우임금이었다.
원래 우임금은 치수(治水)의 업적으로 알려져 있다. “요임금이 우에게 홍수를 다스리게 하였다. 우가 땅을 파서 바다로 물을 빼고 뱀과 용을 몰아내어 수초가 우거진 곳으로 추방하였다. 수해(水害)가 멀어진 뒤 사람을 해치는 새와 짐승들이 사라진 뒤에야 사람들이 평지를 얻어 살게 되었다”고 <맹자>에 실려 있다.
치수와 함께 우임금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변곡점은 그가 공물 수취를 처음으로 체계화했다는 점이다. <서경> ‘하서(夏書)’ 편은 그의 시대를 잘 정리한 역사기록인데, 우임금이 구주의 지리와 명산대천, 각 지역의 토질과 공납 체계를 얼마나 촘촘히 파악하려고 했는지 잘 보여준다. <세종실록(世宗實錄)>에 들어 있는 <지리지(地理志)> 역시 이 ‘하서’의 구도와 발상을 따른 것이었다.
이렇게 우임금은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에 세금을 매기기 시작하였다. 사고팔지 않거나 사고팔 수 없는 대지(大地, 이 번역어가 지구=earth인 점을 기억하라!)인 산과 들, 강과 바다라는 공유지에서 공물을 거두었다. 이 대지는 논밭보다 인간의 생존, 생계에 훨씬 중요했다. 인류의 역사는 대지를 둘러싼 왕과 백성, 자본과 시민의 싸움으로 모습을 바꿔가며 지속되었다. 그리고 최근 몇년 새로운 대지인 인공지능(AI)을 둘러싸고 분투가 시작되었다.
본격화하는 AI 공유지 침탈
지난 9일 AI 회사 ‘앤트로픽’이 자기네 역사상 가장 강력하다고 선언한 모델 둘을 내놓았다. ‘페이블 5’와 ‘미토스 5’. 지난 3일 오후 5시21분, 미국 상무부로부터 앤트로픽으로 편지가 날아왔다. 미국 시민이 아닌 모든 사람, 심지어 앤트로픽에서 일하는 외국인 직원까지도, 이 두 모델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이었다. 이유는 ‘국가안보’였다. 그러나 편지에는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적혀 있지 않았다.(송종운, 시민언론 민들레, 6월15일자)
디지털 공유지 침탈은 국적 제한에 한정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논리로 AI 공유지에 철조망을 친다면 영화의 디스토피아가 곧 현실로 닥칠 것이다. 미국과는 달리 대한민국 정부의 기능이 현재까지 온전하게 작동해서 천만다행이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AI 시대 한국 사회는 풀스택(전 공정 처리) 능력을 갖추고 있고, 이를 통해 예상되는 초과 세수(稅收·세금 수입. 기업의 초과 이윤이 아니라!)는 ‘이름을 나중에 뭐라고 붙이든’ ‘이걸 어떻게 쓸지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우리 시민들도 논의에 참여하자. 우리 일이니까. 나도 칼럼에서 AI 공유지라는 주제를 계속 다루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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