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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의 의의1_개념의 중요성(정한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5-06 10:29
조회
240
정한별/사회복지사
‘짓다’라는 단어는 매우 복잡하면서, 묘하다.
‘밥을 짓다, 옷을 짓다, 집을 짓다’와 같이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는 의미로 모두 사용되는 단어임과 동시에, ‘죄를 짓다’처럼 자신과 타인의 생존과 자유의 침해를 초래할 수 있는 일에도 사용된다. ‘글을 짓다, 노래(시)를 짓다’라고 쓸 때는 자신 생각을 전달하는 일에도 사용되는 단어다. 그리고 ‘이름을 짓다, 개념 짓다’처럼 어떤 대상의 본질이나 존재를 정의케 하는 의미로도 ‘짓다’가 사용된다.
지난 4월 23일 장애계에서 20년 넘게 기다려온 「장애인권리보장법」이 통과되었다. 이 법은 기존 개인적·의료적 접근 중심의 장애 관련 정책과 제도에서 나아가 사회적·권리적 차원의 접근을 법으로 실현코자 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 관련 기본법의 성격을 갖고 있는 「장애인복지법」은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에서 1989년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되어 현재까지 그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다. 다만, 이 법은 장애를 기본적으로 의료적·개인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한계를 갖고 있다. 장애인을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라고 정의하고 신체적·정신적 장애 모두 의학적인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장애를 권리적 차원에서 다루려고 한 법적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7년 제정된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 차별금지법)」은 지금도 꾸준히 요구하고 있으나 제정이 요원해 보이는 「차별금지법」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법률이다. 이 법은 장애인 차별이 단순히 개인 간의 문제, 매너(예의), 인간 됨됨이의 문제가 아닌 인권적·사회적 문제이며 법적 처벌과 손해배상까지 발생할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라는 것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물론 이 법의 존재를 모르는 시민, 그리고 장애인 차별이 위법사항이라는 것을 모르는 시민이 여전히 많다. 국회의원도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2015년에는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되었다. 모든 장애인에게 적용되는 권리법이 아니라, 발달장애라는 특정 장애 영역에만 국한하여 작동되는 법률이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대한민국에서도 장애를 권리적 차원에서 접근하고자 한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두 법 모두 장애를 권리 차원에서 접근하고자 시도한 부분은 분명히 있으나 그 기초를 장애인복지법에 두고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법의 출발인 “장애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장애인 차별금지법」은 「장애인복지법」의 장애인의 정의를 준용한다고 정의하지 않으나 사실 그 내용이 매우 유사하다. 「장애인 차별금지법」은 장애를 “신체적·정신적 손상 또는 기능 상실이 장기간에 걸쳐 개인의 일상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초래하는 상태를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장애가 있는 사람을 장애인”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발달장애인법」은 「장애인복지법」의 장애인 관련 규정을 그대로 준용하면서 발달장애인의 정의를 설명하고 있다. 두 법 모두 의료적·개인적으로 장애를 정의하고 있는 「장애인복지법」을 거의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는 부분은 차이가 크지 않다.
이에 장애 개념에 관해 묻는 사람들에게 국내의 장애 개념과 함께 꼭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의 장애 개념을 함께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장애를 단순히 신체적·정신적 손상의 차원(개인적·의료적)에서만 설명하는 게 적절치 않으나, 한국에서는 장애를 사회적 차원에서 개념 짓고 있는 명확한 법률 체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를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개념이며, 손상을 지닌 사람과 그들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사회에 완전하고 효과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저해하는 태도 및 환경적인 장벽 간의 상호작용으로부터 기인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장애를 의료적·개인적 관점이 아닌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이런 말이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자가용 차량 운전자가 셀프 주유소에 방문했다. 셀프 주유소인 것을 알고 주유소에 진입하여 주유하려고 했는데, 차에서 내려 휠체어에 옮겨 타는 일도 어려웠고, 간신히 휠체어에 옮겨탔으나 휠체어를 탄 채로는 결제하고 설치된 주유기에서 주유 호스를 꺼내 주유를 하는 일 모두 어려웠다. 셀프 주유소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의 편의를 고려하여 주유를 위한 동선과 주유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주유하려고 한 운전자가 도저히 방법이 없어, 직원을 불렀다. 직원은 “여긴 셀프 주유소니까 당신을 도와줄 의무가 없다, 당신의 개인적이며 지극히 특수한 사정 때문에 생긴 일까지 자신이 도와줄 수 없다며 다른 주유소에 가보라”고 한다(이 일은 실제 발생한 일을 축약·각색한 것이다). 이 일은 정말 개인적인 문제 때문일까? 만약 셀프 주유소가 다양한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 접근할 수 있도록 동선을 배치하고 주유기도 설치되어 있다면, 혹은 인적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 어떨까? 그럼 셀프 주유소를 방문하는 다양한 사람은 주유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장벽을 겪는 일이 확연하게 줄지 않을까?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에게 장벽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런 게 바로 장애를 개인적·의료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권리적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지난 4월 23일 통과한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장애의 개념을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의 내용을 완전하게 수용하며 장애를 사회적·인권적 차원에서 명명하고 있다. 동법 제3조는 “장애를 사회의 문화적·물리적 및 제도적 장벽 등의 환경적 요인과 신체적ㆍ정신적 특성 등 개인적 요인 간의 상호작용으로 인하여 일상생활 또는 사회참여에 제약이 있는 상태를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을 정의하기 어렵다.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주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하지만, 사회 속에서 우리 자신은 타인에 의해 정의된다. 이에 어떻게 개념 짓느냐가 특히 중요한 것이다. 실제 장애는 이미 존재하는데, 장애를 어떻게 개념 짓느냐가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존재하는 장애도 어떤 사회 속에서 존재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천양지차다.
이외에도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인권적 측면에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지역사회 자립생활. 탈시설에 대한 규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다음 칼럼에서 다루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