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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모아 목소리를 낼 지역의 주인들을 기다리며(신종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4-15 11:34
조회
269

신종환/ 공무원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의 단편소설 「외투」·「코」의 주인공이 근속 승진의 하나로 직급이 오름을 오히려 두려워했듯, 언제나 저연차·저직급으로 머물길 바랐지만, 어느새 시간은 흘러 전보다 약간 큰 권리와 더욱 큰 책임을 맡게 되었고, 주변인들도 어느새인가 중책을 맡게 되었다. 세금이 많이 소요되는 사업, 공사나 건축은 지역 위정자의 홍보 간판의 역할을 수반하게 된다, 아니 수반해야만 한다.

 

지금도 무척 존경하는 당시 동 주민센터 사무장님은 임용 초 우리에게 애성을 지녀야 한다고 종종 말씀하셨다. 공직에 들어와 처음 듣는 애성이란 말은 지역 공직사회에서 시민, 그리고 나아가 시민을 위한 일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마음가짐을 칭할 때 주로 사용하는 말로 이해하고 있다. 일선 공무원일 때는 시민을 마주하고 위하는 일이 가깝고 직관적이라서 내가 애성을 갖고 있다고 자신했는데, 이제는 각자의 업무와 그 결과물이 애성을 반증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가시지 않을 때가 잦다.

나아가 지금처럼 선거를 코앞에 두고서는 본격적인 선거에 돌입하기 전 하나의 간판이라도 더 늘려야 하고, 간판은 화려하게 위정자를 비춰야 하기에 담당 공무원들은 마른오징어에서 물을 짜내듯 생기와 시간을 차출당하며 예산 조각들을 기워 큰 홍보 거리를 만들고 기한 내 사업을 준공하도록 종용한다.

위정자의 소신과 지향점이 명확하면 사업 전반의 일관성과 철학이 담지 되지만, 아니면 세금은 그저 어딘가로 맹렬히 흐르다가 의미 대신 특정인들만을 위한 스펙터클만을 남긴 채 사라진다. 해수욕장이 있고, 해수욕장은 아니나 물놀이를 할 수 있는 해변이 있음에도 여름이 되면 아동용 물놀이터 운영을 위해 수도세만 매달 3천여만 원에 기타 부수비용까지 하면 훨씬 큰 비용이 소요되는 사업을 수년간 진행한 것이 그렇다, 누적된 방문객을 이리저리 붙여 1년에 몇만 명이 방문했다는 대외 보도자료에 실린 웃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 외에 사업의 효용성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은 아직 보지 못했다.

 

한강버스 진수식에 참석한 오세훈 서울시장(저자 제공)


 

관광 유행에 출렁다리가 있었다면, 건강 시설의 유행에는 맨발걷기길이 있어서 3~4년부터 열심히 세상에 맨발로 흙길을 걷자고 홍보하던 국제맨발걷기협회의 노력이 세금을 만나, 지자체마다 각종 맨발걷기길과 그 부수시설이 뿌리를 내렸다. 이런 부류의 시설은 출렁다리와는 달리 적당한 습기 등과 길의 평탄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황토볼장의 황토볼을 집으로 가져가시려는 시민들로부터 황토볼을 지키기 위해 관리인이 필요하고, 공무원이 수시로 현장을 점검해야 하는데 그 노고가 실질적으로 시민들의 건강 증진에 이바지했다는 의미 있는 추적연구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다만 준공식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위정자들과 협회 관계자들, 그리고 그 주변을 안개꽃처럼 둘러싼 해당 동의 통장들과 각종 위원의 사진을 여러 번 보았을 따름이다.

그 이후에도 큰 세금은 큰 업적으로 남아야 하기에 우리는 사업 기간을 압축하는 과정에서 생략되거나 빠진 절차로 인한 처벌을 러시안룰렛처럼 떨며 기다려야 했고, 이후 의정감사 등에서는 떠도는 수치들을 모아 어떤 의미처럼 치장해야 한다.

 

이런 목적 모를 사업과 지출이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지자체가 일단은 쇠락보다는 어느 정도의 발전을 이루고 있는 걸 보면, 손민석 씨가 쓴 『우리는 왜 대통령만을 바라보았는가』에서 그가 한 “어떤 제도에서 위정자의 선택은 그 자체의 효용성보다는 제도 자체를 작동시키는 데에도 의의가 있다”라는 말을 실감한다. 지자체가 지역 협회에 보조금을 주고 개최하는 체육대회의 물품 구입처가 마침 협회장 지인의 스포츠 가게이고, 대략 2박 3일 간의 대회가 종료되고 난 후 정산서에 찍힌 물품들의 이후 용처는 불분명하더라도 이런 행사의 영향으로 지역에 스포츠 동호회들이 어느 정도 활성화 되기는 하니까. 그렇다면 올바른 곳에 그 돈이 일관적으로 쓰인다면 그 발전은 어떠할 것이고, 우리 공무원들의 자기 효능감은 또 어떨 것인가.

 

선관위의 물품들에는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라고 적혀 있지만,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다른 색깔 옷을 입고 신상품 야바위처럼 뒤섞어 있거나 그 각설이가 물어온 또 다른 각설이가 새롭다는 구호를 지겹고 구태의연하게 읊어대는 걸 구경하다 덜 나쁜 한 놈을 고르는 것이 지방자치의 꽃이라면, 그리고 그 각설이가 또 비슷한 일을 다른 말로 꾸며 우리를 부릴 것을 생각하면 이 꽃이 마냥 달갑지는 않다.

다만 언젠가 여러 사람과 그 사람들이 만든 의견들이 밀집되어 유의미하게 위정자에게 어떤 올바른 방향을 반복적으로 요구하여 시민의 목적을 관철해서 유의미하게 행정력이 발휘되도록 하는 목소리가 변방에도 늘어난다면, 그게 먼 훗날 피어날 언감생심 같은 민주주의의 꽃이 될 것이다.

철마는 힘차게 달릴 능력이 있고, 공무원은 행정에 대한 수요를 지탱할 능력이 있다. 이번 지방선거가 하나의 끝이 아니라, 성취감과 불만과 자극이 되어 시민이 우리를 올바르게 휘두를 문화를 발아케 할 심적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