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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에 AI가 나왔다(김태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4-07 15:56
조회
546

김태형/ 프리랜서 방송작가


 

AI는 이제 더는 먼 미래의 기술도, 스마트폰 속 편리한 도구도 아니다. 이미 우리가 매일 쓰는 앱 곳곳에 들어와 일상을 움직이고 있고, 생성형 AI는 신기한 장난감처럼 질문을 던져보는 단계를 넘어 기획안 작성, 자료 조사, 초안 구성, 자막 문구 정리 같은 전문 업무의 영역까지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다시 말해 AI는 도구에서 하나의 직업을 대체할 수준까지 발전했다. 노동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대체 인력이 되고 있다. 방송 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방송작가로 생성형 AI를 어디까지나 보조 도구 정도로 여겼다. 아이템의 얼개를 잡거나, 인터뷰 질문의 방향을 넓혀보거나, 흩어진 자료를 빠르게 정리하는 데에는 분명 유용했지만, 결국 프로그램의 색깔을 읽고, 출연자의 말투와 감정을 살리고, 현장의 공기와 흐름을 원고에 담아내는 일만큼은 사람의 몫이라고 믿었다. 방송 원고는 단순히 문장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아니라, 회의실에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맞추고, 섭외의 맥락을 읽고, 인터뷰의 결을 조율하고, 한 줄의 멘트에도 청취자와 시청자의 호흡을 계산해 넣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성형 AI가 방송작가라는 직업 자체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등장하는 새로운 버전의 생성형 AI를 접하면서 그 믿음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자료를 찾는 속도는 훨씬 빨라졌고, 신뢰도도 높아졌다. 문장은 더 자연스러워졌으며, 기획의 의도까지 읽어낸 듯한 결과물을 내놓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AI는 단순히 일을 돕는 수준을 넘어 사람의 일자리 가까이에 걸어 들어오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노동시장에 등장한 AI…. 기술의 발전이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쌓인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25년 발표에서 전 세계 일자리의 25%가 생성형 AI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ILO는 여기서 중요한 점을 함께 짚었다. 더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는 단순한 대량 소멸이 아니라, 직무가 쪼개지고 재구성되는 “변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변형도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직무가 바뀐다는 것은 결국 사람이 새 기술을 익히고,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고, 때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역할로 이동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국제 AI 안전 보고서도 AI 확산 속도와 기업 채택 속도, 제도 대응 수준에 따라 노동시장 충격이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술이 일자리를 한순간에 없애지 않더라도, 기술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은 같은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실제 방송가에서는 신규 인력을 뽑을 때 AI 활용 능력을 평가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AI 활용을 유행 정도로 봤다면 이제는 업무의 필수 능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정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AI를 활용해야 한다. 치킨게임을 하듯이 AI와의 일자리 경쟁은 의미가 없다. 더는 ‘내 직업이 사라질까, 안 사라질까’라는 질문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질문은 ‘내 일의 어떤 부분이 AI로 대체되고, 어떤 부분은 오히려 더 중요해질까’이다. 반복적이고 규칙 기반인 업무, 자료 정리와 초안 작성 같은 영역은 이미 AI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반대로 맥락을 읽고, 사람을 설득하고,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능력은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아 있다. 세계경제포럼은 2030년까지 노동자 100명 가운데 59명이 재교육이나 직무전환 훈련이 필요할 것이라고 봤고, 이 가운데 11명은 필요한 훈련을 받지 못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숫자가 말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의 경쟁력은 ‘AI를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AI를 이해하고 활용하면서도 인간적 판단력을 유지하는 사람’에게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챗GPT를 활용해서 만든 이미지(저자 제공)


 

하지만 AI로 인한 일자리 소멸 위기감을 단순히 개인의 자기 계발 문제로만 돌리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실제로 OECD는 2025년 보고서에서 AI가 노동시장에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지만, 현재 교육·훈련 공급은 그 변화 속도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금 제공되는 훈련의 상당수는 고급 AI 전문기술에 치우쳐 있고, 일반 노동자에게 필요한 기초적 AI 문해력 교육은 더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모두가 개발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거의 모든 노동자가 AI를 이해하고 자기 일에 활용할 최소한의 역량은 가져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평생직장을 지키는 방법은 AI를 막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AI와 함께 일하는 법을 가능한 한 빨리 배우는 데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AI 산업 육성과 별개로 안전 규제와 책임 원칙을 더 분명히 세워야 한다. AI 전문들이 공통으로 강조하듯, 강력한 AI는 기업의 자율적 선의에만 맡길 수 없는 영역이 되고 있다. 독립적인 평가, 위험 기준, 감사 체계, 고위험 시스템에 대한 제한 원칙이 필요하다. 둘째, 노동시장 충격을 줄이기 위한 재교육 체계를 국가 차원에서 촘촘하게 설계해야 한다. 특히 중장년층, 사무·행정직, 플랫폼 노동자처럼 변화에 먼저 노출되는 집단에게는 ‘나중에 실업이 생기면 지원한다’라는 방식이 아니라, 변화가 오기 전에 미리 훈련과 전환 기회를 제공하는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 셋째, 사회안전망도 더 두터워져야 한다. AI가 생산성을 높여 사회 전체의 이익을 키운다면, 그 전환 비용 역시 사회가 함께 부담해야 공정하다.

결국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질문은 ‘AI를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AI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그 과정에서 사람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기술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공포에 머무는 것도, 무조건 낙관하는 것도 아니다. 철학자는 목표와 통제의 문제를 경고하고, 과학자는 안전 연구의 필요성을 말하고, 국제기구는 노동과 교육의 재설계를 주문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사회의 선택이다. 개인은 배움을 멈추지 말아야 하고, 기업은 전환의 책임을 나눠야 하며, 정부는 성장과 보호를 동시에 설계해야 한다. AI를 막을 수 없다면, 적어도 AI 시대에 사람이 밀려나지 않게 만드는 질서는 지금부터라도 서둘러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