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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오피니언 오항녕의 독사관견 讀史管見 아마? 확실히!…국무회의 생중계라는 당대사

<승정원일기> 실물 사진. 현재 생중계되는 국무회의는 기록관리법에 따라 남겨야 하는 공공기록이며, 당대사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승정원일기>처럼.
"16세기 조선의 정치 주체로 등장한 사림은 과거시험서 문장력만 보는 게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질문이 핵심이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왕 눈치나 보며 업무분장에 매이는 속류 공무원이 아니라,
나라와 사회를 조망하는 기풍을 유지하도록 훈련한다는 의미였다
생중계되는 국무회의가 21세기 버전의 공무원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듯하다
청년들의 사회안목을 깊고 넓게 만드는 당대사 교육 자료다"
잃어버린 당대사를 찾아서
역사 연구가 되려면 다룰 사건에서 30년 이상은 지나야 한다는 말을 종종 한다. 그래야 ‘객관적’ 서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지나서 난다는 유명한 구절도 함께 인용된다. 하지만 이런 역사학의 태도를 폴 벤느는 신랄하게 비판했다. “사회학과 인류학, 두 학문은 현대문명의 역사를 분담하는데, 하나는 문명인을 맡고 하나는 미개인을 맡는다.”
벤느의 말은 당대사를 포기한 19세기 이후 이른바 현대 역사학의 편협성에 대한 비판이다. 물론 한국 대학의 커리큘럼에 현대사도 있다. 광복 이후 시대를 대개 그렇게 부른다. 하지만 광복도 이미 80년이 지났다.
당대사라는 개념은 흔히 말하는 현대사와 다르다. 당대사는 어떤 사람들이 살아 있을 때 만들고 겪고 기억하는 역사를 말한다. 조선의 실록 자료였던 사초, 이븐 할둔이 쓴 <역사서설>, 유럽 봉건시대 연대기나 교회에서 보관하는 출생기록 등은 모두 당대사였다. 우리 사회에서 당대사를 메우려는 노력은 2000년 전후 기록학으로 나타났다. 잃어버렸던 역사학의 토대가 다시 부활했고, 법률과 제도의 뒷받침을 받았다.
그것밖에 안 돼요?
2월24일 나는 당대사 사료(史料) 하나를 건졌다. 국무회의에서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하천, 계곡 등 불법 점용시설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고했을 때이다. 전국의 실태를 조사했다는 그는 “전국에 모두 835곳이 조사되었다”며 이후 추진 방법과 과정까지 보고했다.
이때 이재명 대통령이 물었다. “조사 건수가 전국에 835곳이라는 거지요?” 이 대통령은 경기도에서 조사했을 때도 이보다 많았다며, 윤 장관에게 이 조사를 믿느냐고 되물었다. 한 번 더 조사하도록 하고, 그다음에는 감찰을 해서 누락된 사례가 나오거든 담당 공무원이나 지방자치단체에 대해 직무유기 등으로 처벌하라고 지시했다.
공무원들이 불법 점용을 못 본 체하고 철거할 수 있는 데만 조사했으리라는 게 이 대통령의 추정이었다. 불법 점용에 따른 과징금이 적으니 적발되면 과징금 내고, 명의 바꾸어 가중처벌을 모면한다거나, 과징금을 내지 않고 미뤄도 손해가 없기 때문에 그마저도 내지 않고 버티는 게 이익이 된다고도 지적했다. 나처럼 젊은 학생들도 이 회의를 보기만 한다면 불법 점용의 피해를 파악하리라 생각했다.
세계에서 처음?
국민주권정부에서 시작한 국무회의 생중계, 녹화중계라는 사건을 두고 어떤 언론인은 세계적으로 없는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나는 다른 시대와 지역의 국무회의가 어떠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조선시대에는 국왕과 신하들이 국정을 논하는 자리는 사관의 사초와 <승정원일기>에 모두 기록되었고, 지금 우리도 그 기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국무회의 생중계가 좀처럼 발견하기 어려운 현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뉴스를 통해 백악관 등의 회의가 보도되기는 하지만 일부 편집된 것이거나 설명이 딸린 사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국민이 지금 남다른 경험을 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더구나 국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얘기가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에, 간혹 지지부진하거나 별로 일을 안 하는 것 같은 공직자가 ‘깨지는’ 모습을 보면서 딱하면서도 묘한 효능감을 느낀다. 어떤 블로거는 이를 두고 회의가 이렇게 재미있을 일이냐며 낯설지만 신선한 경험이라고 반겼다는데, 필자도 같은 느낌이었다.
쓸데없는 걱정
회의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생산적인 경우가 적었다는 경험 때문일 것이다. 회의가 진지하게 진행되더라도 그 진지함이 쉽지는 않다. 토론까지 겹치면 에너지는 더 많이 든다. 때론 한 말 또 하는 상황도 감내해야 한다. 당연히 이런 회의를 보는 건 고역일 때가 많다. 하지만 의견을 모으지 않고 어떻게 민주주의가 가능할 것인가? 그런 점에서 나라 차원의 최고 심의·의결 기구인 국무회의 생중계는 산교육의 장이다.
그런 까닭에 작년 12월, 필자는 인권연대 칼럼에서 현 국무회의에 대한 두 가지 걱정을 적어놓았다. 요약하면 첫째, 대통령의 ‘모두 말씀’은 없앴으면 했다. 이 대통령의 토론 방식은 수평적, 상호적이지만, 경직된 형식이 지속되면 표현을 제약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둘째, 대통령의 판단이나 의견을 들이받는 장면이 종종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필자가 보기에 국무위원들이 대통령에게 너무 공손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보니, 내 걱정의 일부는 쓸데없었다.
웃는 남자들
“다주택 중과세 유예는 이번 확실하게 5월9일까지인데. (웃으며) 아마는 없습니다.”
“‘아마’ 없어요!”
“확실하게 할 겁니다.”
2월10일 국무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잔잔한 웃음이 일었다. 부동산 정책의 일환으로 매년 유예되어왔던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를 반드시 시행하겠다는 구윤철 부총리의 보고에서 나온 티키타카였다. 이 장면은 바로 한 주 전에 있던 상황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오늘이 아마 중과를 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아마 이런 기회를 이용해서 국민들께서 중과를 받으시는 일이 없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재경부 장관님, 말씀 도중에 ‘아마’라는 표현을 두 번 하셨거든요. ‘아마’는 없습니다.”
2월3일 국무회의에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 계획을 보고받은 뒤, 이 대통령이 바로 ‘걸고 들어온’ 말이 ‘아마’였다. 애매한 말을 쓰면 정책 전달이나 효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정부의 의지를 정확하게 전해야 한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한 주 뒤 정책에 대한 감각과 언어가 공감을 이루면서, 웃을 수 있는 여유도 생긴 것이겠다.
관료에서 공직자로
이렇게 국무회의는 진화 중이다. 준비된 보고로 그치지 않고, 부처 간에 어떤 현안을 두고 단순한 의견교환을 넘어 토론이 일어나기도 한다. 촉법소년의 나이 하향, 설탕과 밀가루 가격 담합, 농지 이용과 휴경지 조사 사안에서 그러했다. 해당 부처만이 아니라 다른 부처에서도 사안에 대한 견해를 주저 없이 내는 모습이 늘어나고 있다.
알렉산더 우드사이드는, 과거제 즉 시험을 통해 인재를 뽑아 나라를 운영했던 동아시아의 중국, 베트남, 조선의 경험이 근대성의 요소로 정당하게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가 모든 역사는 중앙집권 근대국가로 향하게 되어 있다는 식의 목적론을 깔고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이른바 선진국이라던 서구 관료제 전문가들이 관료제가 지닌 책임 분담의 역설을 고민하며 갖게 된 문제의식이었다.
‘위에서 시키는데 어쩌란 말이냐’ ‘담당자가 지금 자리에 없다’는 공무원들의 답변은 낯설지 않다. 윗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거나 업무 분장을 통해 책임을 분산하면서 정작 국정에 대한 포괄적 안목이 사라지는 병폐는, 19세기에야 시험을 통해 공무원을 선발하며 관료제를 도입했던 그들의 난제였다. 그러니 동아시아의 오랜 관료제가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6세기 조선시대의 새로운 정치 주체로 등장한 사림(士林)들은 과거시험에서 문장력만 보는 경향을 비판했다. 과거시험에서 인간과 사회, 세계에 대한 질문이 핵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중고등 역사교과서에 등장하는 사장(詞章)보다 경학(經學)을 중시했다는 서술의 본뜻이다. 관직에 나가 국왕의 눈치나 보면서 업무 분장에 매이는 속류 공무원이 아니라, 나라와 사회를 조망하는 경세가의 기풍을 유지하도록 훈련한다는 의미였다.
국민주권정부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다. 하나 생중계되는 국무회의가 21세기 버전의 공무원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듯하다. 시민, 특히 청년들이 이 사회를 생각하는 안목을 깊고 넓게 만드는 당대사 교육 자료가 풍부하게 제공되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오항녕의 독사관견 讀史管見]아마? 확실히!…국무회의 생중계라는 당대사](https://img.khan.co.kr/news/2026/03/02/l_2026030301000036000005511.jpg)
역사학자. 전주대학교 교수. 인권평화연구원과 율곡국학진흥원 이사. 조선시대 사상사를 중심으로 역사이론, 기록과 기억을 연구하고, 시민들과 함께 고전을 읽는다. 공동체와 공유의 역사 경험이 21세기 희망이라고 본다. <역사의 오류를 읽는 방법> <사실을 만난 기억> <공유지, 문명사의 키워드> <‘퇴계학파-율곡학파’ 구도의 역사성> <실록이란 무엇인가>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 <조선의 힘> <사통(史通)> 등의 논저가 있다.
*讀史管見 : 역사를 읽는 소박한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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