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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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정동칼럼] 휴대전화 없는 학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2-23 13:06
조회
269

휴대전화가 필수품을 넘어 ‘신체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몸에 딱 붙어 있는 것처럼 종일 들여다보고 있으니 적당한 표현이다. 그러나 어떤 신체 부위도 내내 우리의 시선을 묶어두진 못하니, ‘신체의 일부’라는 표현도 부족해 보인다. 휴대전화는 우리의 삶 속으로 푹 들어와 있다. 다른 사람과의 소통은 물론, 오락과 취미, 공부와 업무 등 온갖 일상, 여러 가지 일과 놀이가 모두 휴대전화와 함께한다. 뉴스를 보고 음악을 들으며 일정을 챙기는 것은 물론 자신의 건강상태까지 꼼꼼하게 점검해준다.


어린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린이가 자기 휴대전화를 갖게 된 것은 초등학교에 진학한 다음이겠지만, 부모가 틀어주는 동영상을 보며 휴대전화에 눈을 맞추는 것은 거의 태어나자마자, 유아차에 앉기 시작할 때부터였을 거다. 그래서 문제다.


어린이·청소년은 배우고 익힐 것들이 많다. 문해력과 수리력을 기르는 교육활동에 참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친구를 사귀고 뛰어노는 일에도 열심이어야 한다. 평생의 반려가 될 악기 하나쯤은 다루고, 운동도 하나쯤은 익히는 게 좋다. 그러나 휴대전화의 세계에 빠지면 이 모든 게 불가능해진다.


휴대전화 속의 세계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왜곡된 경우가 많다. 휴대전화 속에는 사람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교양과 상식이 넓게 자리한 세상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사람을 도구로 만들고 누구든 쉽게 깔보고 함부로 대하는 이상한 세상도 차고 넘친다. 얼마 전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를 원숭이로 그린 동영상을 자신의 SNS에 올린 것처럼 극단적 인종혐오와 상대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경우도 많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이 어떤 상처를 받든지 아랑곳하지 않는 비정함도 반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성장기의 어린이·청소년의 경우에는 늘 휴대전화만 끼고 살지 않도록 어른들의 각별한 지도가 필요하다.


학교는 어떨까?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교사의 지도를 따르지 않고 그저 휴대전화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 아무리 뛰어난 역량을 지닌 교사라도 휴대전화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는 학생 앞에서 가르친다는 것은 그저 헛수고에 불과하다. 그러니 어린이·청소년이 휴대전화에만 몰두하게 방치할 수는 없다. 휴대전화의 세계에서 벗어나 진짜 사람들의 세상으로 나올 수 있게 도와야 한다. 휴대전화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쓰도록 휴대전화에 대한 교육과 안내, 때론 금지도 필요하다.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가 청소년의 SNS 금지, 학교에서의 휴대전화 금지 등을 제도화해 휴대전화와 관련한 다양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은 성찰이 바탕이다. 마침 우리도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해 학교에서의 휴대전화 사용에 대한 원칙을 마련했다. 3월부터 시행하는 이 법률 제20조의 5(스마트기기의 사용 제한 등)는 “학생은 수업 중에 휴대전화 등 스마트기기를 사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연한 원칙을 이제라도 확인한 거다.


일단 수업시간 문제는 이렇게 해결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은 어떻게 하나? 수업시간이 아니니 맘대로 쓸 수 있어야 하나? 아니면 학교에서는 아예 휴대전화를 쓰지 못하도록 해야 하나? 학부모가 학교에 간 자녀들과 소통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하나?


‘초중등교육법’은 여러 민감한 문제를 “필요한 사항은 학칙으로 정할 수 있다”고 슬쩍 피해가고 있다. 이러면 일선 현장에는 혼란이 생긴다. 학칙을 만들어서 휴대전화를 규제하라는 것도 아니고, 알아서 하라는 식이면 곤란하다. 잘못하면 죽도 밥도 안 되는 엉뚱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이때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교육감이다.


시민이 선출해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데다, 광역자치단체마다 한 명씩 뽑으니 시도지사만큼의 대표성도 갖고 있다. 이런 사람이 앞장서서 학교에서의 휴대전화 문제를 풀어주면 각급 학교의 혼란은 막을 수 있다. 각급 학교에서는 교육청이 마련한 ‘표준 학칙’에 따라 일관된 기준을 갖고 움직이면 된다.


곧 지방선거다. 이번 선거에 나서는 교육감 후보들은 어린이·청소년의 학교 내 휴대전화 사용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혔으면 좋겠다. 휴대전화 없는 학교를 상상해보자. 학교는 오로지 공부와 친구들과 노는 일에만 열심이어야 한다는 교육철학을 학생과 학부모에게 진지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보자. 정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일관된 행정을 펼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