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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아무튼, 폐업하고 싶습니다! 장발장은행 [6411의 목소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5-12-15 10:09
조회
2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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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벌금제 개혁으로 노역장 유치를 줄이자. 장발장은행 10주년 기념 정책토론회’ 모습. 필자 제공

 

길주희 | 인권연대 간사


 

벌써 설립 11주년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당장 벌금을 내지 못해 감옥에 끌려가는, 현대판 장발장을 외면할 수 없어 낸 일종의 ‘궁여지책’. 가난한 시민을 돕기 위해 무담보·무이자로 벌금을 빌려주는 은행, 인권연대의 ‘장발장은행’ 이야기입니다.


궁여지책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장발장은행은 참 꾸준히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2025년 11월 현재 134번의 대출 심사 회의가 열렸고, 그사이에 감사한 일도, 안타까운 일도 많았습니다. 초대 은행장이었던 홍세화 선생이 돌아가시고, 정범구 전 주독일대사가 2대 은행장으로 취임하시기도 했습니다.


장발장은행을 막 열었던 때에는 전화가 많아서 다른 업무를 할 수 없을 정도였기에, 인권연대 사무국 모두가 ‘장발장 은행원’이 되어 상담에 매달렸습니다. 취재차 방문한 기자도 은행원이 되었고, 인권연대 후원 회원들도 십시일반으로 도와주셨지만, 일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의 해결을 미뤄온 결과가 서민의 고통으로 성큼 다가온 걸 체감했습니다. 물론 가끔은 승인되지 못한 분이 욕하실 때도 있습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장발장은행의 문을 두들기셨을 텐데, 한정된 장발장은행의 재원 때문에 다 도와드리지 못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래도 이 모두를 견디게 하는 건, 정말 어려운 상황에서도 꾸준히 갚아나가는 장발장들이 지킨 신뢰와 인권연대의 노력을 알아주시는 분들의 격려 덕분입니다.


 

2015년 ‘국회로 간 장발장’ 포스터.

2015년 ‘국회로 간 장발장’ 포스터.


 

얼마 전 대출 승인받은 장발장 ㄱ씨는 마트에서 컵햇반과 도시락 등 5만원 상당의 음식을 ‘훔쳐’ 먹었습니다. 어린 시절 이혼한 부모님과의 절연으로 챙겨줄 사람 하나 없던 ㄱ씨는 심각한 우울증과 불안으로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팠던 그는 결국 음식에 손을 대고 맙니다. 겨우 스물을 넘긴 ㄱ씨는 5만원의 돈이 없어 저지른 생계형 범죄로 30배 정도 되는 금액의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그는 처벌은 당연하나, 돈이 없어서 감옥에 가는 건 너무 무섭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기초생활보장법상 수급자인 ㄴ씨 역시 너무 배가 고파서 편의점에서 5600원 상당의 음식을 훔친 죄로 2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사기 피해자이나 역으로 가해자로 몰려서 벌금형을 받은 사례도 왕왕 있습니다. ㄷ씨는 이혼 뒤 어려운 상황에서 대출 광고를 보고 선불폰을 개통했는데, 피싱 사기에 이용된 걸 경찰을 통해 알게 되었으나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ㄹ씨는 정부 지원이라고 홍보한 한 사이트에서 대출받았다가, 개인정보가 악용되어 장발장은행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렇게 힘겹다고 표현하기도 벅찬 상황에서도 대부분의 장발장은 신뢰를 지키고, 장발장은행의 선순환을 돕고 있습니다.


 




지난 2월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벌금제 개혁으로 노역장 유치를 줄이자. 장발장은행 10주년 기념 정책토론회’ 모습. 필자 제공

지난 2월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벌금제 개혁으로 노역장 유치를 줄이자. 장발장은행 10주년 기념 정책토론회’ 모습. 필자 제공

 


벌금 미납으로 감옥에 갇힌 사람은 문재인 정권 시기에 연간 3만명 정도였으나, 2021년에는 2만1868명으로 줄었습니다. 윤석열 정권이 출범한 2022년에는 2만5975명으로 늘었고, 2023년에는 5만7267명으로 대폭 늘어났습니다. 내란 직전인 2024년 말에는 대략 6만5천명까지 증가했는데, 2025년 6월 이재명 정부 출범 전후로 하락세에 들어섰습니다. 이에 비례하여 지난해 폭주했던 장발장은행 대출 문의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습니다.


장발장은행을 폐업하기까지 또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해결책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벌금제를 개혁하면 됩니다. 그동안 인권연대는 장발장은행 대출심사위원분들과 치열하게 논의하고, 차곡차곡 개혁안을 만들었습니다. 올해 초에는 ‘벌금제 개혁으로 노역장 유치를 줄이자. 장발장은행 10주년 기념 정책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벌금을 노역으로 전환하는 환형유치 1일 환산액을 물가 인상분 등을 반영해 조정하고, 소득·재산 비례 벌금제를 도입하며, 벌금 분할 납부와 벌금형 집행유예를 활성화할 것 등을 제안했습니다.


로 인해 벌금형을 받은 이들이 벌금을 안 내겠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한달 안에 몇백만원을 갚는 건 불가능하니 분할해 달라는 겁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 환형유치 대신 사회봉사를 하거나, 소득에 비례한 벌금제를 도입하는 등의 방법이면 비극은 얼마든지 줄일 수 있습니다. 더는 현대판 장발장이 나오지 않기 위해 더 많은 분이 연대해주신다면, 그 끝은 훨씬 더 빠르게 다가올 것입니다.


아무튼, 하루빨리 외쳐보고 싶습니다. “드디어 폐업합니다! 장발장은행”.


후원계좌: 하나은행 388-910009-23604(장발장은행)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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