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오창익의 인권이야기

[경향신문 정동칼럼] 다시는 대통령이 총칼을 들지 못하게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5-03-21 17:23
조회
290

마치 봄날을 기다리는 것 같다. 봄꽃이 막 시작할 무렵, 갑자기 큰 눈이 내렸다. 봄은 올 듯 말 듯 영 쉽지 않았다. 내란 사태를 극복하는 일도 그랬다. 해괴한 셈법을 동원해 내란 우두머리를 석방했고, 탄핵심판은 늘어졌다. 헌법재판소는 결정이 왜 길어지는지 설명조차 없었다.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조차 없었다. 국민의 노심초사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란 세력의 반발을 염려해 결정문을 다듬고 또 다듬으며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지만, 막연한 추정일 뿐이다. 국가기관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기본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이제 꽃샘추위도 물러나고 봄은 성큼 다가왔지만, 헌법재판소에서 들려올 봄소식은 아직이다. 답답한 나날이다. 그래도 머지않았을 거다. 결과야 알 수 없지만, 헌법과 법률대로라면 파면이 분명하다. 우리는 이렇게 또 한고비를 넘게 될 거다.


문제는 앞으로다. 박근혜 탄핵 이후 우리의 민주주의는 굳건하다고 여겼다. 적어도 퇴행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는 삐걱거렸고 윤석열 정권 출범이라는 결정적 오점으로 이어졌다. 윤석열 정권의 패악질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퇴행은 50년 가까운 세월조차 훌쩍 건너뛰었다.


윤석열은 한동안 멀쩡해 보였던 사람이었다. 그가 내란을 일으킬 거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그게 핵심이다. 지금과 같은 토대라면, 제2의 윤석열이 나오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어떻게 해야 윤석열 같은 괴물을 막을 수 있을까?


오랫동안 정치를 했던 이들은 개헌을 이야기한다. 개헌이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것처럼 주장한다.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중임으로 고치면 ‘제왕적 대통령’을 비롯해 어떤 문제든 단박에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뭘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근거 제시도 없이 구호만 요란하게 외친다. 실제로는 내각제를 꿈꾸는 일부 개헌론자들에게 우리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문제의 핵심은 대통령이 권력기관을 한 손에 틀어쥐고 맘대로 쓰는 데 있다. 경찰, 검찰, 국가정보원, 군대 등 권력기관은 오로지 국민만을 위해 존재해야 하지만, 대통령에게만 충성하는 이상한 조직이 됐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변질했다.


대통령은 인사권과 징계권, 당근과 채찍을 갖고 권력기관 종사자들을 장악하고 제 맘대로 움직인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권력기관에 대한 대통령의 장악력이 느슨해지기도 하지만, 윤석열 같은 사람이 등장하면 권력기관이 친위쿠데타에 동원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대통령의 눈에 들면 성범죄로 쫓겨났거나 능력 부족으로 일찌감치 승진을 포기한 퇴역 장군도 한자리를 차지하는 부푼 기대를 가질 수 있다. 충암고 출신들이 그랬듯, 대통령과 통하면 만사형통이다. 그렇다고 행정부 소속 기관들을 대통령이 아닌 누군가에게 맡겨둘 수도 없다.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선출한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잘못하면 내란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대통령이 있었기에 권력기관 개혁도 가능했다.


답은 민주주의에 있다. 권력기관에도 민주주의 일반 원리를 적용하는 거다. 권력기관에도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적용하고 민주적 통제와 감시를 받게 하는 거다. 이를 위해 국민권익위원회나 국가인권위원회를 설치했다. 하지만 권력 감시를 위해 호민관 역할을 해야 할 기관들은 민망한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고쳐 쓰는 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망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