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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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정동칼럼] 칼을 주고받는 대통령과 장군들
내란을 주도한 국군 방첩사령부. 사령관이 윤석열의 고교 후배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부대의 태생적 기질이었을 거다. 보안사, 기무사, 안보지원사라는 이름을 거쳐 방첩사까지 간판을 바꿔 달았지만, 하는 일은 내내 엇비슷했다.
안보 관련 정보를 살뜰히 챙기거나 간첩을 잡는 일은 거의 없었고 군 내부 동태를 살피는 게 핵심이었다. 박정희는 자신을 닮은 내란 세력이 나올까 두려워했다. 병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장군들의 동태를 살피고 싶었다. 박정희는 1977년, 육해공군이 따로 운영하던 방첩부대를 합해 보안사를 만들었다. 이 특별한 부대는 오로지 대통령의 안위를 지키는 일에만 골몰했다. 보안사에 대통령은 곧 국가였다.
보안사는 김대중·김영삼 등 정치인을 비롯한 1300여명의 민간인을 사찰했고 정치공작을 일삼았다. 사람을 잡아다 불법구금하고 고문하는 게 일상이었다. 보안사라는 이름은 노태우 때 기무사로 바뀌었지만 행태는 달라지지 않았다. 비교적 최근이던 박근혜 정권 때는 계엄을 준비했고 세월호 참사 때는 민간인을 사찰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기무사를 폐지하고 군사안보지원사령부를 창설했지만, 바뀐 건 이름뿐이었고 변화의 근거는 대통령령이었다. 그나마 집권 1년4개월이 지난 다음이었다. 반면 윤석열은 과감했다. 집권 6개월도 안 되어 안보지원사를 방첩사로 바꿨다. 문재인식 개혁(?)은 4년 만에 좌초됐다. 법률 근거 없이 대통령령으로 이름만 바꾼 한계는 명확했다.
윤석열 정권은 반동적이고 거침이 없었다. 내란범죄자 전두환·노태우가 전직 사령관이었다며 둘의 사진을 버젓이 방첩사 본청 복도에 걸었다. 하지만 전·노에 앞서 사령관이었던 김재규의 사진은 걸지 않았다. 김재규는 유신의 심장을 쏜 의인으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범죄를 저질러서 뺀다면, 전·노의 사진은 결코 걸 수 없는데도 그랬다. 규정도 무시했다. 국방부 부대관리훈령은 ‘부패 및 내란·외환죄 등으로 형이 확정된 지휘관’의 사진 게시를 금지하고 있다. 방첩사는 예우나 홍보 목적이 아닌 역사적 기록 보존 목적으로는 게시가 가능하다는 엉뚱한 변명을 했다. 같은 목적이라면 김재규 사진만 왜 뺐냐는 질문에는 답조차 없었다. 방첩사는 대놓고 보안사를 계승했다. 그 결과는 방첩사가 내란의 핵심으로 역사에 재등장한 12·3 사태였다. 전두환의 보안사가 그랬듯, 여인형의 방첩사도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마치 그런 게 원래 자기 임무였던 것처럼 굴었다.
국민 입장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는 이상한 부대, 이 허무맹랑한 조직에는 별 셋짜리 사령관을 비롯해 장군이 6명이나 있다. 대한민국 육군의 장군 숫자가 패권국 미국 육군의 장군 숫자보다 많은 희한한 상황을 감안해도 너무 많다. 대통령이 좋아할 일을 하니까 신나는 진급 잔치를 벌여왔던 거다. 장군은 좋은 대접을 받는 영예로운 자리지만, 부담스러운 자리이기도 하다. 장군의 명령에 숱한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으니 현명하고도 신중한 판단을 요구받는 무거운 자리이기도 하다. 겨우 대통령의 의중이나 따르자고 방첩사에 6명이나 되는 장군을 배치했다는 것은 그동안의 군대 운영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를 보여준다. 하긴 박정희 이래 어떤 대통령도 장군들과 제대로 만난 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