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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50주기... 지상파 방송들의 '위선'이 안타깝다 (오마이뉴스, 2020.11.12)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11-13 10:44
조회
21

"늘 우리의 민주주의가 이만큼 오기까지, 많은 헌신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자들께 훈포장을 수여했습니다. 한 분 한 분, 훈포장 하나로 결코 다 말할 수 없는, 훌륭한 분들입니다. 시민사회와 유관단체의 광범위한 추천으로 선정되었고, 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전태일 열사를 가슴에 담고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평생을 다하신 고 이소선 여사님, 반독재 민주화 운동으로 일생을 바친 고 박형규 목사님, 인권변호사의 상징이었던 고 조영래 변호사님..."


지난 6월 제33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기념사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전태일 열사와 열사의 어머니인 고 이소선 여사의 이름을 가장 먼저 길어 올렸다.


정부는 올해 훈·포장 대상에 '민주주의 발전 유공' 부문을 신설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서울 용산구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현 민주인권기념관 예정지)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고 전태일·이한열·박종철 열사의 부모, 조영래 변호사 등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19명에게 훈·포장과 표창을 수여했다. 
 
그리고 12일 오전 주목할 만한 뉴스가 전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고(故) 전태일 열사에게 국민훈장을 추서하는 기념식을 개최한 것. 이날 문 대통령은 13일로 50주기를 맞는 고 전태일 열사의 기일에 맞춰 열사의 동생인 전순옥 전 의원과 전태삼, 전태리씨를 청와대로 초청,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대리 수여했다.


청와대는 노동계 인사에게 국민훈장 중 1등급인 무궁화장이 수여된 것은 처음이라고 부연했다. 이는 지난 3일 국무회의가 전태일 열사에 대한 국가 차원의 예우가 이뤄지도록 하는 영예수여안을 의결한 결과였다.


평가가 엇갈릴만 해 보인다. '지금이라도 다행'이라는 반응과 함께 50주기에 이르러서야 현직 대통령이 훈장을 추서한 것을 두고 '늦은 감이 없지 않다'는 반응이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 더, 전태일 열사가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숭고한 희생과 함께 떠난 지 50년이 흐른 지금, 전태일의 후배인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과 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개탄이 그것이다.


정부의 훈장 추서 소식에 12일 전태일 재단은 "전태일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역사와 사회에 분명하게 아로새긴다는 점에서 뜻 깊은 일"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리고 재단 측은 "훈장 추서가 전태일로 멈추지 않고 다른 수많은 열사·희생자에게도 적용되기를 희망한다"면서 오늘, 여기의 '전태일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상파의 외면
 


전태일 50주기다. 전태일 3법의 조속한 입법을 촉구한다. 출근해서 퇴근하지 못하는 노동자가 더는 발생하면 안 된다. 산업재해는 멈춰야 한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도 근로기준법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 특수고용노동자를 비롯한 모든 노동자에게 노조 할 권리를 줘야 한다.


전태일은 자신이 아닌 자신보다 어려운 시다·미싱사의 처우를 개선하려 실천했다. 나를 아는 모든 나와 나를 모르는 모든 나를 살리려고 자신을 던졌다. 지금의 한국사회에 절실한 것은 낮은 곳을 향해 손 내민 전태일 정신이다. 어려운 이웃과 힘든 동료 먼저 생각하는 한국사회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12일 전태일재단 논평 중)


전태일 50주기로부터 딱 한 달 전인 지난달 13일, KBS1 <역사저널 그날>은 "나를 살리려고 자신을 던졌"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50년 전 삶을 공을 들여 조명한 바 있다.


방송 직후, 관련 글에서 "이렇듯 향후 한 달간, 이후 2020년 남은 기간 내내 전태일이란 이름이 소환될 것"이라고 썼다(관련 기사 : <환풍기 없는 작업공간, 피 토하는 여공 목격한 청년의 결심>). '그간 파급효과가 상당한 대중예술과 방송이 전태일의 절규를, 그 유언을 지속적으로 조명해왔다면 어땠을까'란 바람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소망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셈이 됐다. 


정치권의 관심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발의에 집중돼 있다. 보수야당이 참여의 제스처를 보였고, 진보정당이 손을 맞잡았다. 그러자 여당이 발의에 잰걸음을 내는 중이다. 언론의 관심도 여기에 맞춰져 있다. 특히 방송사들은 최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주목하고 있다. KBS가 지난 7월부터 보도한 <일하다 죽지 않게> 연속 기획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다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함께 '전태일 3법'에 포함된 근로기준법 11조 개정(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 노동조합법 2조 개정(간접고용,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원청 사용주의 책임 적용)은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는 분위기다. '전태일 3법'이 지난 9월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소관 국회 상임위원회에 배정됐다는 점을 감안해도, 실제 법제화에 이룰 수 있을지 근심이 들 정도다.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밖에 '전태일 50주기'에 대한 방송사들의 관심은 미미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일상의 뉴스 보도는 정부의 훈장 수여 소식처럼 '50주기 특수'나 행사 관련 뉴스에 해당하니 논외로 치자. 뉴스나 시사토크, 예능 외에 '전태일 50주기'를 조명하는 특집 프로그램이나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손에 꼽을 정도다.


특히 지상파 3사는 KBS를 제외하곤 '외면'에 가까워 보인다. 전태일 50주기 관련 특집 프로그램이나 정규 시사교양 프로그램 중 관련 기획을 찾아 보기 어렵다. K정규 프로그램인 <역사저널 그날>에 이어 12일 방송되는 KBS1 <다큐인사이트-너는 나다>가 유일하다.  


해당 프로그램은 경비원, 노년층, 10대 노동자 등 50년 전과 비교해도 여전히 열악한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을 진단하는 한편 2020년의 '전태일들'을 위로하는 가수 양희은, 안치환, 하림, 래퍼 치타의 노래를 연결시킨 형식이라고 한다. 종종 무게 있는 다큐를 선보였던 <다큐인사이트>의 야심작으로 기대를 모은다. 하지만, 실제로 지상파 3사 중 방송을 예고한 관련 프로그램은 이게 전부다.


반면 tbs tv는 12일 밤 방송되는 다큐멘터리 <너는 나다>를 통해 노동운동을 이끌어 온 시대별 '전태일들'을 되짚는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주인공 홍경인이 내레이션을 맡은 음악 서사극으로 알려졌다.


tbs는 또 13일 오전엔 우리시대 청년 '전태일들'의 삶을 조명한 라디오 다큐멘터리 <2020 전태일 랩소디>를 편성했다. 같은 날 밤엔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방영한다. 역시 같은 날 CBS TV는 유튜브 채널에서도 볼 수 있는 특집 다큐멘터리 <기독청년 전태일>을 방송한다. 지상파가 외면한 전태일을 그나마 비지상파 방송이 대신하고 있다고 한다면, 과장인 걸까.


어떤 위선


"MBC를 비롯한 대한민국 모든 방송국은 노동을 말할 자격이 없다."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의 김한별 부지부장, 12일 <미디어오늘>, <전태일 기획 보도 방송사들, 자격 있나> 중에서)


김한별 부지부장은 12일 오후 전태일50주기범국민행사위원회,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공공연대상생기금 등이 방송사들이 밀집한 서울 상암동 상암문화광장에서 개최한 '전태일 50주기 33차 캠페인 방송노동자 작은 문화제'에 참석,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위와 같은 일침을 가했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이어 김 지부장은 "(상암문화광장) 앞에 있는 MBC는 최근 고정적으로 일했던 보도국 작가들을 프리랜서라는 허울 좋은 핑계로 하루아침에 해고한 일이 있다"며 "평소엔 프리랜서 취급하지 않고, 해고할 땐 프리랜서라는 방송국의 위선"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2017년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tvN 고 이한빛 PD의 사망 이후 구성원들의 노동력을 갈아 방송을 제작하는 거대 방송사들의 노동환경과 방송국을 지탱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프리랜서‧계약직 노동자들의 처우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맞이한 전태일 50주기와 이에 대한 지상파들의 외면과 무관심은 무척이나 상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몇 개 특집 프로그램이 그 방송사의 정체성과 방향을 결정하지도, 방송국 내 정책 결정자들이나 구성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시대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되짚는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시청자들에게 선보일 때, 또 그것이 전태일 50주기라는 시기와 맞물릴 때 어떤 선언적인 의미가 더해지고 방송사의 방향성을 제고하게 만드는 효과를 지닐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운 대목이다.


"서울신문, 대단합니다. 아무도 쓰지 않는 부고를 쓰는 것도 대단하고, 또 1면 광고를 포기하는 것도 대단합니다. 전태일 열사 50주기에 맞춘 언론사 기획중에 단연 최고입니다. 이제 지자체장들 챙겨주는 이상한 기사들만 포기하면, 정말 멋진 언론이 되겠습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이 12일 <서울신문>의 1면을 공유하며 페이스북에 적은 글이다. 이날 <서울신문>은 "산재 야간노동자 148명(사고, 과로, 질병 등)의 사망 경위 등에 대한 정보를 모아 부고 기사로 이들의 죽음에 대한 사회적 의미와 위험성 등을 전한다"며 광고면을 포함해 1면 전체를 부고로 채웠다. '전태일 50주기' 하루 전 나온, 소셜 미디어상에서 호평을 이끌어낸 대담한 기획이었다.


방송과 달리 일간지들의 경우, <서울신문>의 파격은 아니더라도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경쟁하듯 갖가지 기획 기사를 마련했다. 그렇다면 거대 방송국이 유튜브와 경쟁하는 시대, 방송사들이 추구해야 할 공영성은 어떤 방향을 가리키는가. 또 이런 질문도 던질 수 있겠다.  


전태일 50주기에 맞춰 전태열 열사에게 1등급 훈장을 추서한 정부와 50주기 기획을 마련하고 노동환경을 돌아본 일간지들, 그리고 별다른 기획이나 특집을 선보이지 않은 방송사들 중 어느 쪽이 평소에 더 '위선'적인가란 질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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