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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만 남은 n번방 방지법 제정”…21대 국회에 바란다(한겨레, 2020.04.19)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4-21 11:27
조회
86

[21대 국회에 바라는 21개의 간절한 외침]


국가보안법 폐지·n번방 방지법 제정 등


“사람 죽는 일터 처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도


‘슈퍼 여당’에 민생·인권법 처리 기대


4·15 총선이 범진보 진영의 압승으로 끝나자 지난 20대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민생과 인권 관련 법안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 함께 180석을 차지했다. 여기에 정의당과 열린민주당, 무소속 등을 합하면 범진보 진영은 전체 의석수(300)의 63%가 넘는 190석에 이른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해 정부·여당에 힘을 실어주려는 표심과 더불어 2016년 ‘촛불집회’에서 모아진 개혁 과제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기를 바라는 민심이 작용한 결과다.


민주당은 지난 20대 총선에서 범진보 진영의 지지에 힘입어 제1당이 됐음에도 개혁 법안 처리에 소극적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촛불’을 타고 19대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이룬 뒤에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국회 과반이 안 돼 야당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힌다’는 등의 이유를 댔다. 민심은 그런 여당에 개헌을 뺀 모든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힘을 줬다. 더 이상 ‘야당 탓’을 하지 말라는 준엄한 경고이기도 하다. <한겨레>는 5월30일 개원하는 21대 국회를 향한 사회적 약자의 바람을 들어봤다.


텔레그램 성착취 ‘엔(n)번방 사건’ 피해자들은 국회에서 논의만 하다 만 ‘엔번방 방지법’을 제정해 “가해자를 엄벌하고 피해자를 일상으로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참사 이후 6년째 각종 혐오 표현에 시달리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은 재난피해자 2차 피해 방지법 제정을 요구했고, 한 해 855명(2019년 기준)이 숨지고 있는 산업재해 피해자 가족들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어 사랑하는 가족을 앗아간 기업을 처벌해달라”고 했다. 간첩 조작 피해자 유우성(40)씨는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차지했던 17대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문했다. 숙명여대에 합격했다가 학내·외 혐오 여론 때문에 입학을 포기한 트랜스젠더 법학도 한주연(가명·22)씨는 “우리 모두를 위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해달라”고 했다. 이제 여당을 비롯한 범진보 진영이 이들의 정당한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1)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자: ‘엔(n)번방 방지법’ 제정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자 ㄱ씨는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바탕으로 한 ‘엔번방 방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그는 “물리적인 폭력이 없다고 해서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 정도가 낮은 건 아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가해자 중에는 청소년들도 있는데, 청소년이라고 해서 처벌을 감형해주는 사례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박사방’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디지털 성범죄 피해 여성 전반에 대한 지원책도 필요하다. 이사 지원을 해준다는데, 임대주택은 보증금이 500만원 가까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어서 현실적인 대책인지 모르겠다”며 “피해 영상 등의 삭제 지원을 24시간 동안 실시간으로 해주고, 피해자가 피해를 회복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지원책을 더 체계적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임신중지권리보장법 제정


문설희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 조항을 ‘헌법불합치’로 판단했지만 1년이 지나도록 여성의 임신 중지 권리를 보장하는 법은 마련되지 않았다”며 “21대 국회는 여성이 약물로 임신중지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임신 중지 관련법 제·개정을 통해 여성의 기본권과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3) 청년유니온: 고용보험법 등 개정


주당 노동시간이 15시간에 못 미치는 ‘초단시간 노동자’을 위한 법 개정 요구 목소리도 나왔다. 초단시간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주휴수당, 연차수당, 퇴직금 지급 대상이 되지 못하고, 4대보험도 제대로 들지 못한다.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은 “20대 초단시간 노동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며 “21대 국회가 근로기준법과 고용보험법 등 초단시간 노동자 관련법을 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4) 노년유니온: 고용보험법 개정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한국이 고령사회가 됐지만 65살이 넘어 취업한 노인들은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연령에 따른 차별이기 때문에 고용보험법을 개정해 65살 이후 취업해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강조했다. 김 처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내걸었던 공약인 만큼 21대 국회에서 꼭 통과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5) 산재 피해 가족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산업재해 피해 가족들의 숙원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다. 2018년 12월 김용균씨가 석탄 이송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뒤 20대 국회에서 ‘김용균법’으로 명명된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지만, 이 법은 정작 김씨가 죽어간 작업장은 규제 대상에서 빠져 있어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으로 불렸다. 이에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활동가 이상수씨는 “지금으로선 사람이 죽어도 500만원도 안 되는 벌금만 내고 끝나게 된다”며 “자식과 가족을 잃어 고통스럽지만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걸 보면 산재 피해 가족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사실만 확인하게 된다. 21대 국회에서는 죽음을 반복하는 기업을 막을 수 있는 입법안들이 마련돼야 한다. 산재 피해 가족들이 첫손에 꼽는 법이 바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라고 말했다.



6) 국가보안법 피해자: 국가보안법 폐지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40)씨는 해묵은 과제로 남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했다. 그는 “저도 피해자지만 국가보안법으로 사형당하고 피해를 본 사람이 셀 수 없이 많다.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며 “검찰은 이제까지 보수정권의 입맛에 맞게 국가보안법 피해자를 많이 만들어왔다. 조작된 피해자 수가 얼마나 되는지 규모를 파악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씨는 이어 “남북교류법 위반 등 간첩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은 충분하다. 국가보안법의 존재로 남북관계는 더 얼어붙었고 그럴수록 위험해질 수 있다”며 “이번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을 확보했다. 민주와 진보를 주장해온 세력에 힘이 주어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폐지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7) 성소수자: 생활동반자법 제정


결혼한 지 11개월째 된 동성 부부 김용민(31)씨는 21대 국회에서 생활동반자법이 제정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생활동반자법은 생활동반자 관계를 맺은 사람이 국가에 등록하면,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복지 혜택 등의 권리를 보장하고 둘 사이의 분쟁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저희는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로 살아가고 있지만, 성소수자 가족의 권리를 포괄하는 법과 제도가 미비해 공공, 의료, 금융 등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서로의 보호자로서, 그리고 가족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다양한 혜택에서 배제당한다”며 “이미 한국에는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성소수자가 있다. 21대 국회에서는 생활동반자법 제정이 반드시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8)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징벌적 손해배상법 등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조순미(51)씨는 징벌적 손해배상법 제정을 요구했다. 조씨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피해 기업의 잘못이 확실히 정리되지 않아 사과를 받지 못하고 있다. 특검으로 대기업과 공무원들의 책임을 밝혀야 한다”며 “그 이후 피해자 심리치료와 소아·청소년들의 특별관리 다질환치료시스템도 마련돼야 하고, 징벌적 손해배상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9) 장애인 학부모: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전면 개정


중증·중복 장애를 지닌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의 어머니인 조경미(35)씨는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개정을 요구했다. 조씨는 “특수학교 수업은 아이 수준에 맞추니까 흥미롭게 듣는데 비장애 ‘일반’ 학급에선 다른 아이 평균 수준의 수업을 듣고 실무사도 아이마다 배치되지 않아서 학교 가는 걸 싫어한다”며 “통합학교 지원을 명시하고, 교원 교육과 연수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10) 청소년 부모: 한부모가족지원법 넘어선 입법 마련


청소년 부모 김민선(가명·19)씨는 한부모가족지원법과 별도로 ‘청소년 부모 지원법’이 입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기도 어리고 미성년자여서 일할 여건이 마땅치 않아 임신했을 때 2~3개월 동안 찜질방 등을 전전했다”며 “문화센터나 보건소 육아교실도 편견 탓에 가지 못했고, 한국토지주택공사 한부모지원주택도 자부담이 5% 필요하다. 별도의 청소년 부모 지원법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1) 인권연대: 소득 연동형 벌금제 제정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소득에 연동하는 벌금제 제정을 요구했다. 그는 “형벌로 인한 고통은 부자든 아니든 크기가 같아야 한다. 그런데 동일 범죄에는 동일한 벌금을 내도록 하는 현행 벌금형은 부자에겐 너그럽고 가난한 사람에겐 가혹하다”며 “재산이나 소득에 따라 벌금을 다르게 부과하는 ‘소득 연동형 벌금제’가 시행돼야 한다. 대통령 공약이었는데 3년째 입법화가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12) 청소년: 공직선거법 개정


18살 김화현양은 청소년의 정당 활동을 보장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을 요구했다. 김양은 “선거권 연령이 만 18살로 하향되었지만, 여전히 선거권을 가진 청소년은 극히 일부다. 다수 청소년은 정당에 가입할 수도, 선거운동을 할 수도 없다”며 “청소년은 현재를 살아가는 시민이다.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이야기하고 원하는 일상을 선택할 권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13) 트랜스젠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숙명여대에 합격했던 트랜스젠더 법학도 한주연(가명·22)씨는 다시 차별금지법 제정을 부르짖었다. 그는 “차별금지법은 차별받는 사람들을 위한 시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어떤 이유로든 차별받아선 안 된다는 걸 보여주는 법”이라며 “특정 종교 지지자들을 의식해 이 법에 반대하는 정치적인 전략이 개입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21대 국회에서 꼭 통과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14) 세월호 유가족: 재난피해자 2차 피해 방지 법안


장훈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6년 넘게 이어지는 세월호 관련 혐오 표현을 규제할 재난피해자 2차 피해 방지법 제정을 요구했다. 그는 “피해자를 공격하고 폄하하고 모독하는 모든 행위는 강력히 처벌받아 마땅하다. 피해자 두번 죽이기 방지법이 필요하다”며 “21대 국회에서 법 제정으로 차별과 혐오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15) 이주노동자 단체: 고용허가제를 노동허가제로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 센터 대표는 이주노동자를 옥죄는 두 족쇄인 ‘고용허가제’와 ‘근로기준법 63조’ 개정을 요구했다. 이주노동자는 고용허가제 때문에 사업주의 허락 없이 직장을 옮길 수 없다. 노동 시간과 휴식에 관한 법인 근로기준법 63조는 농어촌·축산 노동자를 예외로 정하고 있어 이 분야 이주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일하고, 한달에 하루도 못 쉬어도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



16) 민변: 사법농단피해자구제특별법 제정


송상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무총장은 사법농단 피해자를 위한 ‘피해자구제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송 사무총장은 “사법농단에 의해 공정성이 침해된 상태에서 판결이 확정된 재판 피해자가 공정한 재판부에 재심을 받을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며 “사법농단 재발을 막기 위해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농단 판사에 대한 탄핵도 21대 국회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17) 4·3사건 유족: 4·3특별법 개정


제주 4·3사건으로 외가 식구가 목숨을 잃은 현승은(52)씨는 4·3특별법 개정을 요구했다. 현씨는 “특별법 개정을 통해 실질적인 배상·보상이 이뤄져 4·3 희생자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위로, 명예회복이 이뤄져야 한다”며 “불법 군사재판으로 졸지에 수형인이 돼 ‘빨간 줄’이 그인 분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유족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18) 정신장애인: 정신장애인 권리증진법 제정


권오용 정신장애인권연대 카미 대표는 “정신장애인을 특별하게 관리하는 차별적 법률만 존재하기 때문에 한국엔 정신장애인 병상만 8만개에 이른다”며 “20대 국회에 정신장애인 권리증진법 입법청원까지 했으나 발의조차 되지 않았는데, 21대 국회는 정신장애인의 권리를 증진하고 지역사회가 돌볼 수 있도록 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 군인권센터: 군형법 개정


군형법 92조 6항은 군인 등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하면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2017년 육군 중앙수사단이 군대 내 성소수자를 색출한 뒤 이 조항 위반으로 처벌하도록 지시해 23명이 입건됐고, 이 중 4명이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며 “21대 국회에서 이 조항을 폐지하고 군대 내 인권 문제를 개선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20) 동물권 단체: 임의도살 금지법 제정


동물권 단체 ‘카라’의 김현지 정책팀장은 21대 국회가 동물권을 주요 입법 의제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 식용 산업이 지속되는 한 ‘반려동물 복지’가 있을 수 없으므로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동물 살해를 금지하는 ‘동물에 대한 임의도살 금지법’이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며 “아울러 축산물위생관리법이 식품으로 유통시킬 수 있다고 정의하는 가축에서 개를 제외해야 한다”고 말했다.



21) 정의기억연대: 여성인권평화재단 설립 근거법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은 “일본은 많은 비용을 들여 연구자를 양산해 역사를 왜곡하고 왜곡된 정보를 전세계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며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의 피해 사실을 조사하고, 교육까지 체계적으로 진행하는 ‘여성인권평화재단’을 설립할 근거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20대 국회에서 정춘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이런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지만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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