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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결 사회에서 홀로 잘 살기가 불가능함을 코로나가 우리에게 가르쳐 줘” (위클리서울, 2021.01.21)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1-21 16:04
조회
101

[심층인터뷰]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 3회


<2회에서 이어집니다.>


- 유럽연합 독일의 벌금제도를 보자. 도입했을 때,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다면.


▲ 독일의 경우, 벌금을 일수 날짜로 매기는 ‘일수(日數)벌금제’가 있다. 독일 형법은 벌금 액수를 ‘1유로~3만 유로’까지 분위를 정해, 소득에 따라 3만 분위로 세분화했다. 잘못이 같다면 벌금 선고도 10일, 20일 하는 식으로 똑같이 선고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내야 하는 벌금 액수는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서로 다르다. 똑같은 벌금 10일 형을 선고받았을 때, 아주 가난한 사람은 10유로(1만 3천3백 원)만 내지만, 아주 큰 부자라면 30만 유로(4억 45만 원)를 내야 한다.


몇 년 전에 모 유통 재벌가의 딸이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아 벌금 500만 원형을 선고받았지만, 항소하지 않았다. 왜냐면 벌금형으로 받는 고통이 전혀 없는 데다, 재벌이 ‘겨우 5백만 원 때문에 재판을 하냐’는 비난을 받기 싫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그러나 독일처럼 벌금을 매긴다면, 500만 원을 환형유치의 일반적인 기준인 일당 10만 원으로 환산하면, 벌금 50일 형이 되고, 여기에 3만 유로를 곱하면 150만 유로(20억 3천만 원), 또는 그보다 훨씬 더 큰 벌금형이 선고되었을 수도 있다.


물론 독일이라면 그렇다는 거다. 벌금 액수가 커지면 재벌이라도 부담스럽다. 벌금은 오로지 자기 돈으로 내야 하니까, 더 큰 부담이다. 독일처럼 1 대 3만까지는 아니라도 1 대 10이라도 분위를 나눠주면 좋겠다.


- ‘재산비례 벌금제’에 대한 시민 인식은.


▲ 이 제도에 대해 775명(72.9%)이 ‘들어 본 적이 없다’로 나왔고, 288명(27.1%)만이 ‘들어 본 적 있다’고 밝혔다. 학력이 높거나 연령대가 높을수록 이 제도에 대한 인지율이 높게 나왔다. 제도 도입 찬성률은 전체 75.6%인 804명이 답했다.


75% 이상의 사람들이 성별과 나이, 학력, 소득에 편향되지 않고 개인소득이 클수록 반대하거나 낮아서 찬성하는 상관관계는 없었다. 찬성하는 이유로는 384명(47.8%)이 ‘경제력을 고려해 벌금을 매기면 미납자가 감소할 수 있다’가 가장 많았다.


또 298명(37.1%)은 ‘경제력과 무관하게 동등한 형벌효과를 볼 수 있다’, 345명(42.9%)이 ‘가난한 자의 벌금 미납으로 교도소-구치소 재구금 감소’, 198명(24.6%)이 ‘경제 상황을 고려해 벌금형이 선고돼 법원 선고형량 신뢰’, 125명(15.5%)이 ‘현 사회시스템으로 개인 경제 상황 파악 가능’으로 나타났다.


- 반대하는 이유는.


▲ 응답자의 190명(73.4%)이 ‘동일범죄 처벌이 빈부 차이로 달라지는 것은 불합리’로 나타났고, 85명(32.8%)이 ‘가난한 자의 벌금 미납을 여전히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또 44명(17%)이 ‘현 국가시스템이 개인의 경제 상황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 42명(16.2%)이 ‘고액 벌금자 증가로 오히려 미납액이 증가’, 22명(8.5%) ‘총액 벌금제가 재산비례 벌금제보다 문제점이 적기 때문’으로 나왔다.


재산비례벌금제를 처음 시행한 나라는 핀란드인데, 놀랍게도 1921년, 정확히 백 년 전부터 이 제도를 시행했다. 우리가 100년 전의 핀란드만큼도 안된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이건 오로지 정책 의지가 없어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없어서 도입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 인권 강국, 미국은 어떤가.


▲ 미국이 인권 강국이란 표현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미국이 강대국인 건 맞지만, 선진국은 아닌 것 같다. 대선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아주 후진적인 독재국가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재판은 배심제를 하고 있다.


재판권이 국민에게서 나왔고, 국민에게 속한다는 것은 제도로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의 기소에 대해서도 기소배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기소권도 국민에게서 나온 권한이니 국민이 직접 통제하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죄가 없는 사람을 오로지 괴롭히기 위해서 기소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KBS 정연주 사장 사건 등 셀 수 없이 많다. 반면 죄가 많은 데도 기소하지 않는 사건도 너무 많았다. 이게 ‘독립된’ 검찰만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탓에 생긴 부작용들이다.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민주적·시민적 통제가 절실한 거다.


- 일본의 경우는.


▲ 일본에도 검찰권에 대한 시민적 통제 수단으로서 ‘검찰심사회’라는 제도를 두고 있다. 미국의 기소배심과 비슷한 제도다. 민주주의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모든 권력은 국민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하며, 모든 권력은 국민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원칙이 잘 지켜져야 하는 제도이다. 한국 검찰 제도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 과거 86 민주화 세대가 현재 정치권 핵심 세력이 됐지만, 정의와 평등, 사법개혁 등 변혁은 보이지 않는다.


▲ 집권 세력의 주류가 86세대가 되었다. 아주 특별한 노력을 했다거나 비결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세월이 흐르면서 30년 전의 20대가 50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주류 역할을 할 나이가 되었을 뿐이다.


86세대에 대한 여러 비판에 대해 누구보다 86세대가 경청해야 하며, 또 성찰해야 한다. 특히 공평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비상한 각오로 노력하지 않으면, 86세대도 예전 세대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느 틈엔가 도태되어 버릴 것이다.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가 무척 중요한데, 정의와 평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이를테면 재산비례벌금제를 도입하느냐 그렇지 않냐가 86세대가 어떤 존재인지를 확인시켜 줄 거다.


- 가난하고 힘없는 건설노동자 등의 산재 사망이 줄지 않고 있다.


▲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새로운 법률이 만들어진 것은 그나마 진전이지만, 너무 미흡했다. 거대 양당은 이럴 때는 호흡이 잘 맞는 것 같다. 그렇게 비판받던 정부안보다도 훨씬 후퇴했다. 기업의 로비가 너무 쉽게, 잘 통하는 것 같다.


기업 로비가 잘 통하는 만큼 산재로 죽는 노동자들이 많아진다. 산재로 가장 많이 죽어가는 업종이 건설업이고 이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추락사다. 그런데 추락사는 어떤 상황이든 시대착오적이다. 안전장치만 잘 마련하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죽음이다.


안전장치를 제대로 설치하지 않으면 누구든 강력하게 처벌하고 금전적 손해도 묻는다면, 산업재해는 단박에 엄청나게 줄일 수 있다. 기업의 목적은 딱 하나, 돈을 벌자는 것인데, 산재 사고가 나면 돈을 잃는다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안전한 산업현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거다. 그러면 사람들이 쉽게 죽지 않는다.


- 중대재해법이 이미 만들어졌는데.


▲ 물론 없는 것보다는 낫다. 진전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너무 미흡하다. 사람들이 당장 떨어져 죽어가는데, 나중을 기약하자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정부가 훨씬 더 비상한 각오로 나서야 한다. 이건 국민의 목숨에 대한 이야기다. 매우 두렵고 떨리는 쟁점이다.


- 산재도 국가통제가 가능하지 않나.


▲ 한국의 여러 죽음들을 분석해보면, 한국적 상황을 잘 알 수 있다. 살인사건 사망자 숫자는 일본 다음으로 적다. 늘 세계 두 번째 수준이다. 반면 자살, 교통사고, 산업재해는 세계에서 가장 나쁜 상태다.


우리의 관심이 어디에 쏠려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거다. 아직도 많이 높지만, 그래도 교통사고 사망자만 해도 지난 20년 동안 엄청나게 줄였다. 시민과 정부가 함께 노력한 덕분이다. 어떤 죽음이든 노력하면 줄일 수 있다.


- 우리 사회 ‘공동체 의식’이 부족한 것 같다.


▲ 누구든 부자가 가난한 사람이 될 수 있고, 또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다. 부가 상속되는 일도 있지만, 아닐 때도 있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거대한 공동체다. 사회 한쪽 구성원들이 심각하게 아프고 심각하게 상처받는데, 다른 구성원들은 행복할 수만은 없다.


그렇게 착각하고 있다. 사회는 같이 만들고 같이 병들어가는 거다. 코로나 사태가 그것을 일깨워 준다. 감옥에 갇힌 사람만 코로나에 걸리는 건 아니다. 가족도 있고 법원도 다녀야 하고 변호사, 판사 자녀와 검찰청 자녀들 모두 코로나에 걸린다. 검사 판사가 코로나에 걸리면 그 가족도 걸린다.


한국 사회 전체 감염률을 낮추는 게 중요하지, 가난한 사람들은 낮고 부자들은 높은 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것도 착각하는 거다. 우리 사회에서 가난한 약자 소수자들이 어떤 대접을 받는가는 가난하지 않거나 약자가 아니거나 소수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공동운명체이기 때문이다.


- 잡초가 사라지면, 숲속의 거목도 죽듯이 서민이 위태로우면 부자들도 위험해진다. 장발장도 국가와 사회의 무관심에서 나왔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특히 ‘코로나’ 시대에 약자에 대한 배려와 협동 정신이 요구되는데, 이 시대 장발장이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메시지를 말한다면.


▲ 지금 코로나 시대에 온 인류가 공동운명체라는 걸 가르쳐 주고 있다. 지금은 우리가 별로 걱정 안 하지만, 국내 감염이 줄어들면, 해외 감염도 같이 걱정해야 한다. 돈 있어도 해외여행도 못 가는 시대다. 우리 모두 세계와 하나로 연결돼 있고, 초연결 사회에서 살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과수원업자들도 베트남 등에서 인력이 오지 않아 힘들다. 산업 전반에서도 마찬가지로 고통을 겪고 있다. 요즘 명동거리를 가보면, 한 마디로 공포다. 중국인 없는 명동부터 남대문 시장까지 그쪽 일대가 황량하다. 상권이 고사 상태다.


지금은 ‘원 월드’(One World), 하나의 세계인데, 한국 안에서도 ‘하나’가 되지 못하고, 빈부 차이로 또는 지역별, 세대별로 편을 가르면서 ‘저들(사회적 약자)이 어떻게 돼도 나와 상관없어’라고 착각하고 있는데, 이건 어마어마한 착각이다.


스스로의 존재 기반을 허무는 착각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같이 가야 한다. 지금 시대에는 긴밀하게 다 연결된 사회이기 때문에, 여기서 떠나 살아갈 방법은 없다. 중국인이 핸드폰을 안 사주면, 삼성반도체 수출도 끊긴다. 한국 상품을 가장 많이 사주는 나라가 중국이다.


만일 중국이 정치적으로 불안하거나 격변이라도 일어나면, 경제적 타격을 가장 크게 받는 나라는 한국이다. 수출 못 하면 큰일 난다. 우리는 식량 자급도 못 하고 있다. 쌀만 먹고 살지 못한다. 밀가루도 먹고 삼겹살도 먹어야 한다. 식품, 공산품 등 모두 수입해야 산다. 시장에 가면 국내산은 별로 없다.


초연결 사회이기 때문에, 이제는 나 혼자 잘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같이 가야 한다. 우리 사회에 너무 아프거나, 또 너무 힘든 사람이 없게 하거나 적어도 줄어들도록 하는 게 시대적 과제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한성욱 선임기자 se3399@weeklyseou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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