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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선생님-한결같기 위한 흔들림의 증명(신종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4-04-30 10:44
조회
129

신종환 / 공무원


때때로 어떤 이를 기억하는 것은 기억하는 이의 삶을 비추는 일을 거친다. 그 분을 적게 알았던 이의 짧은 삶이 그분을 반사하며 새롭게 비추기에. 그리고 그의 삶에서 멀리 있던 나같은 사람의 마음이 가끔은 선생님과 가까웠던 사람들이 미처 모르던 선생님의 어떤 색을 보여줄지도 모르니까..


사진: 독서신문


홍세화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 같이 틈나는 대로 토론을 나누던 친구들과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와 ‘세느강은 좌우를 가르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를 읽었을 때였다. 저항이 삶의 당연한 방향이거니 했던 그 때 글에 비치는 선생님의 인상은 당시 두서 없이 읽던 책들에 등장하는 부당함에 굴하지 않던 수많은 지식인 중 한 명이었다. 대학생활이 시작된 2009년의 대학가는 아직 취업의 압박이 세지 않고 사고의 자유와 청춘의 열기가 배움의 열의와 잘 붙어있던 시절이었고,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허기진 그들을 접하려는 명사들의 강연들이 도처에 있었고 홍세화 선생님은 그런 명사들 중 한 분으로 기억되었다.


많은 이들이 마이크를 놓고 조용히 사라진 어느 날 선생님의 이름이 인터넷에서 보였다. 악화일로를 걷던 진보신당의 대표직에 홍세화 선생님이 ‘오르고 싶지 않은 무대’에 올랐다는 내용이었다. 해야 한다는 당위에 기꺼이 투신하는 모습에 감탄하면서도 난파선같은 당에 뛰어드는 모습에 탄식이 흐르는 한편 그의 선택이 이해되지 않았다. 가야 하는 길을 가는 태도의 빛남에 마음을 기대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그 무게는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해 뒤 인권연대의 송년회에서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은 선생님께 질문을 드린 일이 있었다. 5‧18 혁명 당시 어떻게 그 많은 이들이 현장으로 발길을 향했는지 모르겠다는 나의 말에 선생님은 고민할 일이 아니라는 듯 말씀하셨다. “그야, 사람이니까.” 나는 그 말이 인상에 남아 당시 세월호 집회 현장에 나가자는 대자보를 쓰며 그 말을 적었고 속된 말로 오래 우려 먹었다. 지금에 이르러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지불해야 할 것이 많다는 걸 배우고서야 선생님의 대답은 사람이기 위해 스스로 겪었던 많은 시도들이 만들어낸 말임을 막역하게 안다.


또 약간의 시간이 지나 선생님은 인권연대에서 벌금을 낼 여력이 없는 이들을 위해 준비한 장발장 은행의 은행장이 되었다. 선생님을 전혀 모르는 이가 이 글을 읽으면 역순으로 적은 것이 아니라고 할지도 모른다. 장발장 은행장에서 진보신당의 대표로, 대표에서 이름난 명사로. 한겨레 기획위원에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인, 말과활 발행인이 된 행보도 마찬가지. 가능성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선생님의 길은 어디로 가야하는지에 대한 한결같은 자의적 떨림이 만든 선명한 궤적이었다.


어느 시간 동안 있을 만한 방향 대신 있어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 계속 묻고 그대로 가는 이는 드물다. 그가 있었던 곳이 계속 머물 만큼 아늑한 곳이었다면 더욱. 고병권 선생님은 공학적 지식과는 달리 철학적 지식은 자신의 삶이 이론을 비추기에 그렇지 다른 삶을 살면 앎이 훼손된다고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홍세화 선생님은 의도치 않게 본인이 말한 바를 삶으로 증명했다.


가능성의 유무와 사회‧경제적 기준에 머무는 시선으로는 선생님을 이해할 수 없다. 눈 돌리면 물러지는 당위성의 경도를 단단히 다듬고 잠깐이면 어두워지는 가야 할 미래를 애써 밝혀 아마 스스로를 비추고 덥혔을 거라 조심히 짐작만 해봄직한 잊히는 감각.


선생님은 잊어서는 안되는 어떤 감각의 증명이었고 이를 위해 수반하는 노력의 총량이었고 수반되는 노력이 설명되는 까닭으로 내 삶에 뿌리내려주셨음을 애써 마음 어느 곳에 새긴다.


당연한 것이 드물어진 나날에 선생님이 없으실 세상이 무서워지고 슬퍼지고 아쉬워 바둥거리기에 앞서 선생님이 있어 살아가는 큰 방향이 어긋나지 않을 수 있었던 사람들의 한 명으로 지면을 빌려 마음을 전해본다. ‘선생님이 계셔서 크게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고마웠습니다. 힘껏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