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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왜 반성조차 없나? - <메이지의 그늘> 강좌 마무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2-16 16:32
조회
118
지난 1월 31일 부터 매주 화요일, 3주 동안 열렸던 이찬수 교수의 <메이지의 그늘> 강좌가 3강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번 강좌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으로 희생되거나 피해를 본 사람들, 국가들에 대해 왜 공식 사죄가 없는지, 왜 반성조차 없는지를 일본 천황제의 지배원리를 통해 알아본다는 취지에서 이뤄졌다.
이찬수 교수는 일본 근대화를 추동했던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이 천황을 무상(無上)의 주권자로 설정하고, 이를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했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사실상 정치의 종교화로 '천황교'의 탄생에 다름 아니다.
천황제의 정당성을 통해 국가적 통일성을 기하고 서양의 요구에 맞춘 종교의 자유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 메이지 정부의 과제였다. 이를 위해 메이지 정부는 기존의 신사를 확대하고, '호국영령'이란 말을 발명해 낸다. 1890년에 '교육 칙어'를 반포하고 '대일본제국 헌법'을 반포해 천황의 신격화에 기반한 국가통합을 도모하기도 한다. 이로서 천황은 헌법의 원천이자 초헌법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천황이 초헌법적 존재이자 신과 같은 자리에 위치시킴으로서, 천황이야말로 일본인들의 현실적, 정신적 꼭짓점에 위치한 존재로 설정한 이러한 조치는, 한편으로 전쟁과 전쟁 패배로 인한 책임에 있어서 주체의 모호성 문제를 만들어낸다. 1945년 8월 14일 발표된 히로히토 천황의 '대동아전쟁 종결조서'는 전쟁의 결과가 '패전'이 아니라, 세계 멸망을 피하기 위한 전쟁이었고 스스로 이를 종결시켰다는 메시지를 만들어낸다. 어디에도 '패전'이라는 말은 들어있지 않았다. 일본 정치사상의 권위자인 마루야마 마사오는 이를 "무한책임을 지는 자의 무책임"이라고 규정한다.
여기에 일찍이 제사를 통해 백성통합을 이루려는 제사정치의 문화는 일본의 정치는 일본인들의 내면 세계에 깊이 파고 들었다.
'공기(空氣)'는 우리가 분위기라고 일컫는 것보다 농도가 짙은 말이다. 일본인들에게 "공기를 좀 읽어라"하는 것은 판단 주체가 외부에 있는 만큼, 외부를 의식하라는 의미이다. 야마모토 시치헤이라는 학자는 <공기의 연구>라는 저술을 통해 "일본의 사회와 조직은 논리적 이론이나 합리적 근거가 아닌 '공기'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하고 있다. '공기'는 일본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인 셈이다.
이렇듯 천황제 원리의 이데올로기화와 그것을 떠받치는 제사정치, 판단과 결정은 '공기'에 따른다는 일본인들의 정신 세계는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 그것에 따른 책임의 수행에 있어서 주체를 가린다. 국민은 전쟁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천황에게 돌리고, 인격적 판단이 '비인격적 지배 메커니즘'안에서 형성되는 일본의 지배구조와 일본인들의 내면 세계가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태도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이찬수 교수의 설명이다.
일본인의 공(公)과 사(私)에 대한 전통적 관념도 책임을 은폐한다. 원리적 개념으로서 도덕적 규범을 형성하는 한국이나 중국의 '공' 개념과 달리, 일본의 公은 상위에 의한 하위의 포섭이자,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관(官)의 세계이다. 일본의 공은 하나의 '영역' 개념인 셈이다. 사(개인)은 공에 대비되는 개념이 아닌, 그것에 종속되는 개념일 뿐이다. 그러니 "나를 없애고 공적인 것을 살린다"는 것이 일본에게 있어서는 화(和)가 되는 것이고, 이것은 일본의 정신이 된다.
일본은 스스로를 '문명의 전형'으로 내세우고자 했다. 그 만큼 자기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데는 취약했다. 이찬수 교수는 마지막 3강에서 이것을 가능케하는 일본의 철학 사상을 소개하고 그것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되었는지도 지적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지속해오던 조상 숭배와 영혼 숭배에 덧붙여진 제사 정치의 강화, 천황제의 지배논리가 결합되면서 부국강병이 국민적 설득구조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일본의 정치세계와 사회문화적 작동원리가 지금은 많이 약화되었고, 신종교의 등장이나 개신교 등에 의한 천황제 반대 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여전히 국가에 저항의 동력은 미약한 수준이라는 것이 이찬수 교수의 지적이다.
이번 강좌는 일본의 제사 문화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는지, 어떻게 천황의 지배원리가 공고화되고, 한편으로 전후 일본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그들의 정신 세계는 어떤 것인지 등 일본 정치 이해의 핵심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 지 단서를 찾는 시간이 되었다.
이번 강좌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으로 희생되거나 피해를 본 사람들, 국가들에 대해 왜 공식 사죄가 없는지, 왜 반성조차 없는지를 일본 천황제의 지배원리를 통해 알아본다는 취지에서 이뤄졌다.
이찬수 교수는 일본 근대화를 추동했던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이 천황을 무상(無上)의 주권자로 설정하고, 이를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했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사실상 정치의 종교화로 '천황교'의 탄생에 다름 아니다.
천황제의 정당성을 통해 국가적 통일성을 기하고 서양의 요구에 맞춘 종교의 자유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 메이지 정부의 과제였다. 이를 위해 메이지 정부는 기존의 신사를 확대하고, '호국영령'이란 말을 발명해 낸다. 1890년에 '교육 칙어'를 반포하고 '대일본제국 헌법'을 반포해 천황의 신격화에 기반한 국가통합을 도모하기도 한다. 이로서 천황은 헌법의 원천이자 초헌법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천황이 초헌법적 존재이자 신과 같은 자리에 위치시킴으로서, 천황이야말로 일본인들의 현실적, 정신적 꼭짓점에 위치한 존재로 설정한 이러한 조치는, 한편으로 전쟁과 전쟁 패배로 인한 책임에 있어서 주체의 모호성 문제를 만들어낸다. 1945년 8월 14일 발표된 히로히토 천황의 '대동아전쟁 종결조서'는 전쟁의 결과가 '패전'이 아니라, 세계 멸망을 피하기 위한 전쟁이었고 스스로 이를 종결시켰다는 메시지를 만들어낸다. 어디에도 '패전'이라는 말은 들어있지 않았다. 일본 정치사상의 권위자인 마루야마 마사오는 이를 "무한책임을 지는 자의 무책임"이라고 규정한다.
여기에 일찍이 제사를 통해 백성통합을 이루려는 제사정치의 문화는 일본의 정치는 일본인들의 내면 세계에 깊이 파고 들었다.
'공기(空氣)'는 우리가 분위기라고 일컫는 것보다 농도가 짙은 말이다. 일본인들에게 "공기를 좀 읽어라"하는 것은 판단 주체가 외부에 있는 만큼, 외부를 의식하라는 의미이다. 야마모토 시치헤이라는 학자는 <공기의 연구>라는 저술을 통해 "일본의 사회와 조직은 논리적 이론이나 합리적 근거가 아닌 '공기'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하고 있다. '공기'는 일본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인 셈이다.
이렇듯 천황제 원리의 이데올로기화와 그것을 떠받치는 제사정치, 판단과 결정은 '공기'에 따른다는 일본인들의 정신 세계는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 그것에 따른 책임의 수행에 있어서 주체를 가린다. 국민은 전쟁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천황에게 돌리고, 인격적 판단이 '비인격적 지배 메커니즘'안에서 형성되는 일본의 지배구조와 일본인들의 내면 세계가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태도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이찬수 교수의 설명이다.
일본인의 공(公)과 사(私)에 대한 전통적 관념도 책임을 은폐한다. 원리적 개념으로서 도덕적 규범을 형성하는 한국이나 중국의 '공' 개념과 달리, 일본의 公은 상위에 의한 하위의 포섭이자,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관(官)의 세계이다. 일본의 공은 하나의 '영역' 개념인 셈이다. 사(개인)은 공에 대비되는 개념이 아닌, 그것에 종속되는 개념일 뿐이다. 그러니 "나를 없애고 공적인 것을 살린다"는 것이 일본에게 있어서는 화(和)가 되는 것이고, 이것은 일본의 정신이 된다.
일본은 스스로를 '문명의 전형'으로 내세우고자 했다. 그 만큼 자기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데는 취약했다. 이찬수 교수는 마지막 3강에서 이것을 가능케하는 일본의 철학 사상을 소개하고 그것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되었는지도 지적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지속해오던 조상 숭배와 영혼 숭배에 덧붙여진 제사 정치의 강화, 천황제의 지배논리가 결합되면서 부국강병이 국민적 설득구조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일본의 정치세계와 사회문화적 작동원리가 지금은 많이 약화되었고, 신종교의 등장이나 개신교 등에 의한 천황제 반대 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여전히 국가에 저항의 동력은 미약한 수준이라는 것이 이찬수 교수의 지적이다.
이번 강좌는 일본의 제사 문화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는지, 어떻게 천황의 지배원리가 공고화되고, 한편으로 전후 일본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그들의 정신 세계는 어떤 것인지 등 일본 정치 이해의 핵심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 지 단서를 찾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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