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인권연대

home > 활동소식 > 월간 인권연대

[275호] 여전히 경찰을 지휘하려는 검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8-18 16:30
조회
337

윤동호/ 국민대 법과대학 교수


 노무현 정부 시절 검경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던 2005년 12월 이런 일이 벌어졌다. 사기죄를 범한 아들의 아버지는 그 아들을 경찰서에 출석시키겠다고 경찰 A에게 약속한다. 그 사기범은 경찰서에 자진 출석하고 약 5분 후에 A는 사기범을 긴급체포한다. A는 긴급체포 승인 건의서와 구속영장 신청서를 검찰청에 접수한다. 그런데 검사는 구속영장청구 전 피의자 대면조사를 위해 긴급체포한 사기범을 검사실로 데려오라고 A에게 명령한다. A는 불응한다. 이 명령은 2003년 검찰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구속영장청구 전 검사사전면담제도에 근거한 것으로서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검사는 A를 인권옹호직무명령불응죄와 직무유기죄로 기소한다. 검사의 명령은 현재는 폐지된 형소법 제196조의 수사지휘권에 근거한 것으로서 경찰은 이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형소법 제196조는 ‘사법경찰관은 모든 수사에 관해 검사의 지휘를 받고, 검사의 지휘가 있는 때에는 이에 따라야 한다’고 규정했다.


 법원은 유죄를 인정한다. 검사의 인치 명령은 긴급체포의 적법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적법하고 타당한 수사지휘활동으로서 경찰은 이를 따를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1심은 징역 8월의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그 선고를 유예하고, 2심은 그 형량을 더욱 낮추어서 자격정지 6월의 선고유예를 판결하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갈등에서 비롯된 사건이라는 점을 밝힌다. 선고유예는 극히 예외적인 판결이다. 2020년 형사공판사건 중 선고유예 비율이 1심은 0.7%, 2심은 0.4%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치명령의 근거를 수사지휘권에서 찾는 것은 옳지 않다. 피의자의 의사에 반하는 검사의 인치 명령은 별도의 법률적 근거가 필요한 강제처분이다. 또 이를 인권옹호직무명령으로 볼 수도 없다. 인권옹호직무명령불응죄에서 말하는 인권옹호직무명령은 검사의 모든 명령이 아니라 경찰이 불법적으로 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명령으로 봐야 하는데, 이 사건의 경우 경찰에 의해 이루어진 피의자 인권의 제한은 합법적이다. 검사가 직접 방문해서 면담할 수 있으므로 인치와 인권옹호직무를 동일하게 볼 수도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 2021년 1월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루어졌다. 경찰에 대한 검사의 수사지휘권이 폐지되고 검경관계가 상호협력관계로 변경되었다. 형소법 제195조는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수사, 공소제기 및 공소유지에 관하여 서로 협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2021년 2월 이런 일이 발생한다. 야채 행상을 하는 1톤 화물차 운전자 甲은 중앙선이 없는 골목길에서 우회전을 하던 중 진행 방향 오른쪽에 주차 중인 차량과 부딪히는 사고를 낸다. 그러나 甲은 이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였기에 별다른 조치 없이 약 100m 가량을 더 간 지점에 차를 세우고 장사를 시작한다.


 마침 부딪힌 차량에서 운전자 乙과 동승자 丙이 대화 중이었고, 乙은 甲의 차량 번호를 확인 후 112에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의 도주차량죄(이른바 뺑소니)로 신고를 한다.


 현장에 출동한 관할 파출소 경찰관은 乙의 진술을 근거로 교통사고 발생상황보고서에 ‘甲의 차량 오른쪽 앞바퀴로 乙의 차량 왼쪽 앞바퀴를 충격한 것‘, ’부상신고수 0명’으로 기재한다. 사건을 인계받은 관할 경찰서 교통범죄수사팀은 다시 현장에 나가서 甲의 차량을 발견하고 사고흔적을 확인한 다음 甲에 대해 음주 여부와 사고경위 등 조사를 하는데, 甲은 사고를 낸 사실 자체를 부인한다. 乙의 차량에서 흠집이나 파손을 발견할 수 없다.


 교통범죄수사팀 경찰관 P는 사고일로부터 3일 후인 일요일에 차량 대조 등 조사를 한다. 乙이 평일에는 생업으로 바빠서 조사를 받을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경찰서 주차장에 모인 P, 甲, 乙은 두 차량 자체와 바퀴의 크기와 높이를 대조하여 본다. 甲의 차량이 밭에서 묻힌 흙이 乙의 차량에 남긴 자국 등을 종합하여 ‘타이어끼리 접촉한 사고’라는 결론에 이른다.


 P는 이틀 후에 乙과 丙을 피해자로 조사하면서 자필진술서를 받는다. 이때 乙과 丙은 사고 후 5일째 되는 날 처음 병원 가서 발급받은 진단서를 제출한다. 乙의 진단서에는 ‘경추와 요추의 염좌 및 긴장. 최소 10일간 치료가 필요함’, 丙의 진단서에는 ‘경추의 염좌 및 긴장, 우측 팔꿈치의 타박상. 최소 10일간 치료가 필요함’이라고 각각 기재되어있다.


 그 다음 날 피의자로서 P의 조사를 받은 甲은 사고사실을 인정하고, 당일 발행된 자신의 차량에 가입된 종합보험 가입사실 증명원을 제출하며 해당 보험사가 사고 보증을 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P는 ‘甲의 차량이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서 교통사고처리 특례법(교특법)에 따라 공소권이 없는 교통사고에 해당하므로 불송치결정을 한다’는 취지로 수사결과보고서를 작성한다. 이 결정은 상급자의 결재를 받고 수사심사관의 검토를 거쳐서 경찰서장 명의로 사건 발생일로부터 약 보름 후 甲, 乙, 丙에게 통지하고, 교특법위반 기록 일체를 검찰에 송부한다.


 위 보고서에는 甲이 사고사실을 알았음에도 도주한 것은 아니므로 특가법 위반은 아니고, 사고현장을 촬영한 CCTV 영상은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이 기재되어있다. 그러나 3일 후 검찰청 검사는 이 두 가지 점에 대한 재수사를 요청하면서, ‘충격 당시 “쿵”하는 소리가 나거나 차량에 충격이 전해졌는지 여부에 관해 乙과 丙의 구체적 진술을 들을 것’도 포함한다.


 P는 乙과 丙을 다시 불러 조사하지 않고, 그 이전에 들었던 乙의 진술을 토대로 乙이 ‘당시 충격은 타이어의 고무 부위가 서로 접촉된 것으로 경미하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기재하여 재수사결과서를 작성하여 검사에게 송부한다. 그런데 乙과 丙은 경찰에서 조사받을 때와 달리 검사의 조사를 받으면서 ‘당시 충격이 컸고, 몸이 아파서 병원 치료를 받았다’고 말한다. 乙은 ‘경찰이 甲의 편을 드는 것 같아 억울했고, 보험사기꾼처럼 몰아가는 것 같아 화가 났다’는 말도 덧붙인다.
검사는 P를 허위공문서작성등죄로 기소한다. 1심은 유죄를 인정한다. 乙과 丙이 검사에게 한 진술에 신뢰를 두고, 추가 조사 없이 재수사결과서에 乙과 丙의 진술로 기재한 점, 사고 후 한 달 동안 乙이 18회 받은 진료 기록 및 두 달 동안 丙이 35회 받은 진료 기록에 주목한 것이다. 그러나 2심은 무죄라고 본다. 재수사방식은 경찰의 재량이다. 검사가 요청한 대로 乙과 丙의 진술을 직접 청취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乙과 丙은 경찰의 불송치결정은 받은 후 이의제기도 하지 않았고, 그 진술의 일관성도 없다. 검사에게 한 진술을 신뢰할 수 없다. 2심은 乙과 丙을 피해자가 아니라 ‘이른바 피해자(피고인의 상대방격인 인물)’, ‘피고인과 대립관계에 있는 소송관계인’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검찰은 상고한다.


 검경관계가 지휘복종관계에서 상호협력관계로 변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여전히 경찰을 지휘하려고 한다.


전체 2,172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2089
[276호] 바깥의 삶
hrights | 2022.09.20 | | 조회 226
hrights 2022.09.20 226
2088
[275호] 인권연대 7월 살림살이
hrights | 2022.08.26 | | 조회 256
hrights 2022.08.26 256
2087
[275호] 함께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2022년 7월)
hrights | 2022.08.26 | | 조회 349
hrights 2022.08.26 349
2086
[275호] 인권연대 2022년 7월에는 이렇게 살았습니다
hrights | 2022.08.26 | | 조회 333
hrights 2022.08.26 333
2085
[275호] 경찰국 폐지 공동대책본부 출범
hrights | 2022.08.26 | | 조회 307
hrights 2022.08.26 307
2084
[275호] 이희수 교수의 <인류본사>
hrights | 2022.08.26 | | 조회 245
hrights 2022.08.26 245
2083
[275호] 윤석열 정권의 경찰 장악, 헌법과 법률로 따져본다
hrights | 2022.08.18 | | 조회 501
hrights 2022.08.18 501
2082
[275호] 윤석열 정부 100일은?
hrights | 2022.08.18 | | 조회 262
hrights 2022.08.18 262
2081
[275호] 여전히 경찰을 지휘하려는 검찰
hrights | 2022.08.18 | | 조회 337
hrights 2022.08.18 337
2080
[274호] 인권연대가 창립 제23주년을 맞았습니다.
hrights | 2022.07.22 | | 조회 236
hrights 2022.07.22 236